봄의 절정인 아름다운 5월, 사랑침례교회의 많은 자매님들이 모여 재림의 징조 – 뉴에이지에 대한 심도 깊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의 끝이 오고 있다는 여러가지 징조 속에서도 바른 성경 말씀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려 세상의 변화를 바르게 분별하고, 바른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관상기도 운동은 복음주의 기독교 진영에 이미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많은 신실하고 경건한 그리고 존경받는 기독교인들이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의 관상기도를 받아들였다. 머튼은 이 기도를 카톨릭 수도원에서 꺼내어 대중에게 소개하고 대중 사이에서 유행시켰다. 토마스 머튼은 최근 몇 년 사이 어떤 인물보다 기독교 신비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를 불교의 빛으로 보지 않고서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내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대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머튼은 기독교를 진정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의식의 전환 수행이다. 이런 관상기도는 세계의 신비종교 전통과 똑같이 신에게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 의식을 전환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거듭나면 되는 것이다.
레노바레(Renovare)의 창설자인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는 하나님이 관상기도를 하지 않는 신자들에게는 별 능력을 행사하실 수 없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표명한다. “우리는 명상을 통해 정서적이고 영적인 공간을 지어낸다. 그래야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에 내면적인 성소를 건축할 수 있다. “ 그러나, 우리가 관상기도 (명상기도, 침묵기도, 영성기도, 경청기도, 호흡기도, 향심기도)를 통해 성령님께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하는 성경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 성소를 두셨다. 성도 각자가 인도와 이끄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님을 통해서이지 명상이나 침묵을 통해서가 아니다.
침례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신자였던 수 멍크 키드(Sue Monk Kidd)는 자신의 저서 <기분좋게 놀래시는 하나님: 사랑받는 당신을 발견하라>에서 오랜 세월 깊은 공허감과 영적인 허기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담담히 말한다. “왠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분은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상관없는 분이 됐다. 그분은 아주 먼 변두리에 살아, 우리는 거기가 그분의 거처인 줄로 안다.” 그랬던 그녀는 토마스 머튼의 책을 읽은 후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멍크 키드는 관상기도로 향하는 여정을 떠났고, 신성한 단어들을 반복해 소리내어 읽으며 신비한 자각에 이르렀다. 그녀는 자신의 영적인 변혁을 생생하게 기술한다. “나는 우리가 모든 사람들과 하나라는 숨은 진리의 깨달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일부고 그들은 우리의 일부다” 그러나, 멍크 키드는 기독교인과 불신자를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이 내주하실 수 있는 전제 조건인 “거듭남”이라는 그리스도의 요청을 부정한다.
바실 페닝턴(M. Basil Pennington)은 자신의 책 <나의 형 토마스 머튼>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그 영은 온 세상의 진정한 통일과 살아 있는 존재의 거대한 하나됨의 조화 안에 서 있는 머튼에게 빛을 밝혔다. 머튼은 그 가운데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모든 차별을 해소하고 신적인 선함을 온 세상 안에서 그리고 모든 사물을 통해 현재적으로 자각하고 향유하는 꿈이다.” 그는 하나님을 모든 존재의 하나됨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귀의 교리는 온 세상이 신적인 임재를 소유하고 있으며, 온 세상이 하나라고 한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단이다.
이제 우리는 관상기도가 기독교인이 하기에는 결코 영적으로 건전한 훈련이 아니라는 확실한 결론에 닿게 된다. 관상적 영성의 오류는 다음 세가지 이유로 간단하면서도 명쾌하다. 첫째, 성경적이 아니다. 둘째, 신비종교의 방법론에 연결되어 있다. (만트라, 중언부언, 호흡수련 등) 셋째, 동양의 신비 사상에서 나온 개념들에 관대하다. (모든 것 안에 있는 신, 모두가 하나다. – 내재신론 등)
위의 사실에 근거를 두고 우리는 저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첫번째 편지에서 유혹하는 영들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딤전4:1) 한편 성령께서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유혹하는 영들은 동양적인 신비주의 수련을 도입함으로 기독교를 자기 마음대로 다시 만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영국 출신의 두 저자가 뉴에이지 영성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뉴에이지 영성의 주된 경향은 온 세상의 배후에 있는 기본적인 통일성과 이것이 가져오는 하나됨의 감각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오는 통합 운동이다. 모든 생명의 하나됨은 뉴에이지 운동의 중축이다.”
온 세상이 하나이고, 신이 모든 것 안에 있다는 뉴에이지 사상은 완전히 비성경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예수님을 분리하며, 예수님과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을 부정한다. 또한 예수님과 나머지 다른 인간들과의 차이를 부인하는 것이며, 영성훈련을 통해 개개인이 하나님이 나타난 존재라는 사상은 창조주와 창조물 사이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에덴동산에서의 원죄를 부정하고 죄를 부정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뉴에이지의 영향력에 쉽게 물들지 않는다고 느낀다. 오래 전부터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인이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영적, 사회적인 환경을 생각할 때, 우리 모두에게 영적인 분별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깊이 생각해 보면, 성경은 유혹하는 영들, 스스로 엄청난 강도와 효율성을 가지고 자신을 포장하는 영들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요일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 너희는 이것에 의해 하나님의 영을 알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께 속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은 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 그것에 관하여는 그것이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이미 세상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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