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정리하시느라 고생하셨네요~ 형제님 고맙습니다! 진화론에 가려 구원받지 못한 분들이 진리에 눈이 뜨이는 귀한 길이 많이 열리길 기도 드립니다~
2023-06-30 09:17:54 | 목영주
2023년 6월29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경건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깊은 내면의 기쁨과 만족을 누린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연구하고 삶에 적용하여 윤리적이고, 순종하는 삶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풍성한 자원을 이용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며 그 자원을 이용해야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다.
제 7장 하나님에 대한 행복한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라.
기도란 우주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독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보통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벌을 받을까 걱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로마서 8장 1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관해 무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인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은 자기중심적인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 몰두하는 이들에게 찾아온다.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두려움이 갈수록 깊어지게 마련이다. 하나님 안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임재 가운데 머무는 특권에 가슴이 떨리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갈망이 나날이 짙어진다. 주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러워한다.
겸손은 기도하게 만드는 요인이자 열매이다.
영적 겸손은 스스로의 허물과 연약함에 무자비하리만치 정직해야 한다.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쓰는 ‘허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가식을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허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고백과 회개는 진실한 기도에 꼭 필요한 결정적인 성분이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데려간다. 인간의 결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현장이다.
올바른 기도에는 회개가 따라야 한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지는 대신 우쭐거리며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기도는 자기 합리화나 남 탓, 자기 연민, 영적인 교만 따위를 버리기를 요구하고 또 그럴 힘을 준다. 허구를 벗으면 벗을수록 기도는 그만큼 풍성하고 깊어질 것이다.
도깨비방망이, 요술 램프, 행운을 비는 주문 등의 얘기가 사방에 차고 넘치는 걸 보면, 이미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욕구를 조화롭게 처리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아서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주님은 거룩한 뜻에 어긋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그 뜻에는 멀리 내다봤을 때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들이 포함된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그렇다면 스위치가 전구에 에너지를 공급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빛은 전기에서 나왔다. 스위치는 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전구를 동력원과 연결시켜 주는 장치일 뿐이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건 요술 주문 같은 게 아니다. 주술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능력이나 경력에 의존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고 용납해 주신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배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놓는 작업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주님의 거룩한 인격과 구원사역을 압축해 놓은 일종의 속기록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한행실에 기댈 게 아니라 주님의 청구권에 의지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좋은 아버지라면 다 그러하듯, 하나님 아버지 역시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다. 성령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확신과 깨달음을 얻는다. 성경을 읽고 본문이 하나님에 대해 무얼 알려 주는지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위대함에 눈을 뜨면 자신의 죄스러움을 새로이 실감하게 되는 법이다. 죄를 더 깊이 인식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고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솟는다. “ 더 많이 용서받은 이가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 한다” 고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포도나무에 접붙인 가지와 같다는 뜻이다. 줄기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갈수록 분명하게 드러나길 기대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말미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은 유혹의 싸움이 일상적으로 지속되고 있으므로 승리를 위해 주님의 능력, 성령님의 권능, 성경적 진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추상적인 지침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영적인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갑으로 가슴을 가리며, 복음에서 비롯된 평안으로 신발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로 공격을 막아 내야 한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기도하며, 늘 기도하라고 바울은 부탁한다.
기도는 정직한 자기 인식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올바르게 기도하면 영적인 시야가 투명해진다. 바리새인 같은 위선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기도에는 인간들 사이에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투명한 정직성이 포함된다.
가면은 벗겨지고 ‘척’도 통하지 않는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 이다.
2023-06-30 07:23:22 | 이은정
너무나 쉽고, 너무나 어려운 신앙생활
성경을 읽다보면 세상이 외치는 소리와 성경이 외치는 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두 소리는 확연히 다르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교회의 정의가 나온다. 거룩히 구별된 성도가 바로 교회인데, 구별되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로 구별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고린도전서 1장 2절)
신앙생활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인데, 세상이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성경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일 것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쉽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어렵다고 호소한다. 예를 들어, 남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조용히 하면 너무나 쉽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면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어려워지는 것이다. 아래 내용을 음미하면서 나는 어떤지 점검해 본다.
1. 세상은 개선하라고 하고, 성경은 다시 태어나라고 한다.
2. 세상은 자기를 홍보하라고 하고,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한다.
3. 세상은 넓은 길로 가라고 하고, 성경은 좁은 길로 가라고 한다.
4. 세상은 자기를 채우라고 하고, 성경은 자기를 비우라고 한다.
5. 세상은 자기를 높이라고 하고, 성경은 자기를 낮추라고 한다.
6. 세상은 먼저 된 자가 되라고 하고, 성경은 나중 된 자가 되라고 한다.
7. 세상은 소리 나게 도우라고 하고, 성경은 소리 없이 도우라고 한다.
8. 세상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하고, 성경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9. 세상은 위로 올라가라고 하고, 성경은 아래로 내려오라고 한다.
10.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고, 성경은 주님이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11. 세상은 땅을 보라고 하고, 성경은 하늘을 보라고 한다.
12. 세상은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고,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
13. 세상은 어둠으로 나오라고 하고, 성경은 빛으로 나오라고 한다.
14. 세상은 출세하라고 하고, 성경은 거룩하라고 한다.
15. 세상은 자기의 뜻을 성취하라고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라고 한다.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한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검증하도록 하라.(로마서 12장 2절)
2023-06-29 19:28:26 | 이규환
귀한 생명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10개월 동안 아기 품느라 수고하신 자매님 축하드려요! 두 분 라온이를 건강하게 이 시대의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할 믿음의 사람으로 잘 키워내시길 기도합니다!!
2023-06-29 13:35:36 | 박혜영
마제스티 찬송가_그 사랑이 날 건졌네 (Love Lifted Me) : 456장
소프라노 고은희 / 알토 백윤정 / 테너 김상진 / 베이스 권혁준 / 피아노 우종미
https://youtu.be/Q1G0Ob_2QKM
2023-06-28 15:12:18 | 관리자
ㅎ ㅎ
형제님의 특이한 생각에 이렇게도 생각하며 볼 수도 있구나 하고
놀라요.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성경말씀을 읽을 때 그 당시 시대를 알아보는 방법은 옳은 방법이잖아요.
2023-06-28 07:50:50 | 이수영
감사합니다
다음 주일에 뵐게요 ~ ^^
2023-06-28 00:19:34 | 최영오
교만에 대하여 한참 생각하고 갑니다
framework,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2023-06-28 00:10:47 | 최영오
처음으로 성경 말씀 읽어 내려가던 당시, 어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구절 또는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
주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에 관한 표현이 차~암 문학적으로 느껴졌던 구절, 즉 ‘고레스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이름을 주었노라’ 그리고 ‘네 이름으로 너를 부르는 나 곧 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라는 구절을 대표적 예로 들고 싶군요.
위 대표적 예의 경우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 속에 여섯 번 나오는 ‘담에다 소변보는 자' 라는 표현이 또한 그 하나랍니다. (삼상25:22, 삼상25:34, 왕상14:10, 왕상16:11, 왕상21:21, 왕하9:8 참조)
처음에는 말입니다...^^...앞서의 그 멋진 구절, 즉 ‘네 이름으로 너를 부르는 나 곧 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에 조금은 근접할 정도의 문학성을 느꼈답니다. 담에다 소변보는 자라고라고라...?...오예! 서서 소변보는 자, 즉 남자를 이토록 기발하게 표현하다니...! 탄복과 함께 미소가 흘러 나오더군요.
그런데...그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어느 날...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다...!...그게 그런 뜻이 아니다. 남자가 아님에도 담에다 소변보는 자가 있었다는 말이로구나. 그러니까, 담에다 소변보는 자 하나라도 남기지 않는다는 말씀인즉, 소변볼 때를 기준으로 하면 분명히 남자임에도 여자로 살아가는 자들까지도 없애 버린다는, 그런 뜻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로구나 라는 생각 말입니다.
성경 말씀 어디에도 그게 그런 뜻이라는 해석은 없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미루어 짐작컨대, 적잖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있었을 것 같고...따라서 담에다 소변보는 자라는 것이 그...렇고 그런 자들을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구나...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악의 씨 다시 뿌려질 수 있는 여지를 아예 확실히 없애 버린다...라는 무서운 의미가 내포된 표현이더군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발한 문학적 표현 어쩌고 할 그런 기분 좋은 내용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 다른 측면에서 보면, 동성애자(sodomite) 어쩌고 하며 자칫 지저분할 수도 있는 내용을 매우 재치있게 표현한 구절이라는 생각 들기도 합니다만. ^^
어쨌든...^^...위와 같은 내용의 글을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듯 교회 홈페이지 상에 올리기도 그렇고 하여, 혼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중...마침 지난 주일 LGBTQ 관련 목사님 설교 말씀 들으면서...차제에 ‘담에다 소변보는 자’ 관련하여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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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가증함의 극치를 향해 가속 페달 밟아대고 있는 듯한 인간 세상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죄성이란...정녕 모질게도 끈질긴,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이로구나...라는 생각 거듭하는 동시에, 대략 3,500년 전의 성경 기록에 적힌 그 죽어 마땅한 가증한 짓들을 이제는 아주 내놓고 자랑스럽게 벌이고 있으니...심판! 하나님 말씀 그대로의 심판,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을 뿐이라...믿는 자들은 더욱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의 비교를 위하여 옆에 두고 있는 NIV 성경의 해당 구절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아니다 다를까...그냥 ‘남자(male)’라고 번역해 놓았더군요. 도무지 개념 자체가 없는 자들이여...!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 온전히 보전된 킹제임스 성경과 그 한글 번역본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있음에, 그리고 바른 교리를 따라 의와 화평의 한 성령님 안에서 믿음생활 함께하는 우리 사랑침례교회 있음에 새삼 감사 감사 드립니다. ( 끝 )
2023-06-28 00:06:44 | 최영오
-과학이라고 호소하는 진화 가설(假說), 그 거짓의 산(山)-연세가 있으시고 성숙하고 신실한 신앙을 가진 성도분들이라면 오늘날 진화론이 정설로 둔갑해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는것에 대해 기가 막힐 겁니다.'아니 요즘 애들은 얼마나 넋이 빠져있으면 진화론 따위를 믿고 있어?!'라고 말이죠.
(사진 - 진화론이 사실이고 성경이 거짓이라고 일주일 내내 온종일 학교에서 세뇌받고 매주 신앙이 약해지는 아이들)
(사진- 진화론 그 자체랄 수 있는 생명의 나무)
(사진 - 가상에서만 존재하는 지질 시대표)
(사진- 진화론을 떠받치는 기둥은 모두 가설에 의한 것이라고 풍자하는 그림)
간추리자면 생존경쟁,적자생존,돌연변이,자연선택 등이 진화론의 요(要)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진화론을 포함한 현대 과학주의를 잉태한 근원적인 토양은 바로현존하는 과정들이 영원한 과정들이므로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들도현재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가정해온 "균일설 또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의 철학인 것입니다.
※ 찰스 다윈은 비글호 여행 기간 동안에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읽고, 자신의 진화론이 작동되는데 필요한 오랜 시간을 확보했습니다.
여담으로 이 동일과정설은 카톨릭과 개혁주의에서 주장하는 종말론인 후천년설,무천년설과 불교의 윤회사상(輪廻思想)또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개인적으로 사료됩니다.요즘 심심치 않게 Karma(업보)와 Circle of life(삶의 순환) 라는 말을 접할 수 있습니다.크리스천이든 아니든 양심과 진지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화론의허술함에 대해 깨달을수 있을 것입니다.과학계에선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과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현대과학의 실험과 발견은 압도적으로 창조를 지지하고 그 증거들을 발견해가고 있는 중입니다.진화론자들은 다음의 3가지 문제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 전이 화석의 부재
(사진 - '종의 기원(1859)'을 썼던 찰스 다윈도 1872년에 출판된 6번째 판 챕터 10.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 에서 " 지질학은 그런 훌륭한 단계적 고리를 제시 하지 않는다. 이는 진화론의 분명하고 치명적인 반론이다."라고 고백)
둘째, 종류(kind)변화의 부재
...혹자는 말합니다. 1865-66년 발표된 맨델의 유전법칙(우열의 법칙,분리의 법칙,독립의 법칙)이 조금만 더 빨리 학계의 주목을 받았더라면지금과 같이 진화론이 득세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죠.
맨델의 완두 교배 실험도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를 확증해 주는 것 이었습니다.한 종류(kind) 안에서 유전적인 재조합에 의해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을 우리는 변이(variation) 라고 합니다.다윈과 그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변화는 사실 종류가 변화하는 진화가 아니라 한 종류안에서 다양해지는 변이에 불과한 것입니다.진화론자들이 믿는 것처럼 소진화(microevolution)-변이와 돌연변이가 무수히 반복되면 대진화(macroevolution)가 발생한다는 것은 여전히 관찰된 증거가 없습니다.성경에 가서보면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11-12,21-25절에서 이르시길 모든 살아있는 창조물을 그것의 종류대로(kind)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스트롱 성구사전에 가서 보면 'kind'는 코드번호 4327으로써 성경에 구약에 31번 사용되었고 히브리어로는 מיין (miyn)이며 그뜻은 'species-종'입니다.20세기에 들어 유전법칙이 생물학계에 보편적으로 인정받으면서 그전까지는 형태에 의한 분류를 했으나 현재는 개체사이에 교배가 가능한 무리를 지칭하는것으로 정착되었습니다. 호랑이,사자,고양이는 기존에 다른 '종'으로 분류되었지만 염색체 숫자가 38개로 동일하며 서로 교배 할 수 있습니다.이처럼 교배의 한계로 정했을 때 가장 가까운 생물학적 분류단위는 '과(family)'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물분류학자들은 기존의 형태에 의한 분류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호랑이,사자,고양이를 다른 '종'으로 분리시킵니다.창세기는 하나님이 각 개별 종(species)들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속(genus/miyn)을 창조하셨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각 속들 안에,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수한 종들로 분리되는 것(종의 분화-speciation라고 불리는 과정)이 가능하도록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청사진을 집어넣어 놓으신 것입니다.
셋째, 유전정보 추가의 부재
진화의 3R : Rearrange(재배열), Remove(제거), Ruin(파괴) =새로운 정보가 없다=진화가 없다진화론에 의하면, 돌연변이(mutations)가 일어나 자연이 생물들을 선택할 때, 새로운 생물학적 정보(new biological information)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생존 경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연 환경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모든 돌연변이가 유익하기 보다는 99.9%유해한것이라고 으뜸가는 진화론자들 조차 인정하는 사실이며 돌연변이로 인해 생긴 변종들은 그대로 놔두기만 하면 거의 모두가 사멸되거나 자기 조상의 형태로 복귀 되거나 합니다.그러므로 신 다윈주의자(neo-darwinists)들의 최후의 유일한 소망인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정보의 증가의 사례는 불가능하며 전무합니다.마지막으로 진화론자들이 무질서와 무기체의 세계로부터질서와 조화로운 우주 및 유기체로 발전되어가고 있다는 거짓 주장에 대해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매우 효율적인 반론 중에 하나 입니다.진화는 모든 과정들이 "질서의 증가"쪽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가설이고 엔트로피 법칙은 모든 과정들이 "무질서의 증가" 쪽으로 향하는 우주 법칙인데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 될 수 밖에 없습니다.그런데 열역학 제 2법칙은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근본 원칙이라고 과학계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 실험적으로 수없이 입증되었고, 모든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법칙은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너무나 확실한 법칙입니다.그러면 진화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반론을 제기 합니다.하나는 열역학 제 2법칙은 이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매우 유한하고 국소적인 곳에서만 관찰가능 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적용의 보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합니다.그러나 이 법칙은 언제,어디서든간에 과학적인 실험을 거치기만 하면 예외 없이 항상 옳다고 증명 되었습니다.또 하나는 열역학 제 2법칙이 소위 "고립계(isolated systems)"에서만 적용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지구 자체는 하나의 열린 계로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진화적 과정과 이 과정이 수반하는, 계속 증가하는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힘의 근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물론 이것역시 철학적 주장으로서 열역학 제 2법칙이 형식적으론 이상적인, 고립계라는 조건으로 정의되어 져야만 하는게 사실이지만그것은 언제나 "열린 계(open systems)" 위에서만 시험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연 속에는 진짜로 고립계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리고 열역학 제 2법칙은 고립계든 열린 계든 상관하지 않고 어디에서 시험을 받든지 항상 옳다고 증명됩니다.바로 이 이유로 인해 기계나 생명체들이 노후되고 노화되어 100%효율을 발휘할 수 없고 영구운동이 불가한것입니다.어떤것들은 일시적, 국소적으로 질서와 복잡성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그 끝은 이 법칙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입니다. 당연히 성경 속(시편 90:6; 102:11 ; 102:26/사 40:7;51:6/히 1:12/벧후 3:11-12)에서도 열역학 제 2법칙을 엿볼수 있습니다.이상으로 진화론과 그 허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습니다.진화론에 관한 반증자료와 증거는 너무나 방대하고 현재까지도 계속추가되고 있습니다.이 글을 적으면서 거의 대부분의 자료와 글들을 인용했는데 출처는• 한국 창조과학회 사이트(https://creation.kr/)• 창조과학 선교회의 이재만 선교사의 책과 세미나(안타까운 것은 이분은 자신의 은사랄수 있는 헨리모리스 박사의 KJV 사용의 당위성 전승의 부재,정통 기독교회사와 로만 카톨릭 교회사의 구분 부재 등이 있고 인용에 관한 몇몇 오류가 존재합니다)• 헨리 모리스 박사의 저서위와 같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진리와 신앙의 수호를 위해 고군분투 하시는 믿음의 선진들께 늘 감사한 마음뿐이며아울러 부족하고 아둔한 글이 형제,자매님들의 시간을 뺏지 않았길 간구하며 늘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2023-06-27 18:50:14 | 박세원
2023년 6월 25일 (주일오전)
https://youtu.be/B2rLXCEuZ40
2023-06-26 19:42:36 | 관리자
좋은글 감사해요^^'기도는 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해준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 성품이 변화 된다.'성화되는 과정중에서 필요한 부분이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
매번 어떤 분들이 이런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주시는지 궁금하네요^^
더욱 풍성한 교제가 되시길 멀리서 응원합니다!!
2023-06-26 12:02:25 | 김세라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기도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함께 나눈 것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들에게 능력을 넣어주신 하나님께서 적재적소에
사용하시지요.
2023-06-26 08:49:02 | 이수영
안녕하세요?
6월 3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본문 : 느헤미야
1. 느헤미야가 이끈 바빌론 포로 귀환은 몇 번째 귀환인가?(개요)
세 번째
2. 느헤미야가 한 일은 무엇인가?(2장)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건축(느2:17)
3.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으로 있으면서 자신을 위해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은 기간은?(5장)
십이 년 (느5:14)
4. 예루살렘 성벽은 몇 일만에 완공되었나?(6장)
오십이 일(느6:15)
5.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회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율법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취한 행동은?(13장)
섞여 사는 이들 무리를 이스라엘에서 분리시켜 내보냄(느13:3)
본문 : 에스더
6. 에스더의 히브리식 이름은 무엇인가?(2장)
하닷사(에2:7)
7. 하만은 어느 족속인가?(3장)
아말렉(에3:1) - 아각은 아말렉 왕의 호칭임(민24:7, 삼상15:8)
8. 하만이 모든 유대인을 멸절시키려고 계획한 이유는?(3장)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아서(에3:5,6)
9. 에스더 시대에 누구든지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 왕에게 나아가면 어떤 처벌을 받는가?(4장)
죽음(에4:11)
10. 부림의 뜻은 무엇인가?(9장)
제비(9:24,26)
2023-06-26 08:43:58 | 관리자
2023년 6월 25일 (주일 오전)
https://youtube.com/live/oxr8biKX4Ws
2023-06-25 14:35:45 | 관리자
글을 잘 써주셔서 내용이 머리속에 잘 정리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자매님~~ 고난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지켜주심에 평강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자녀임을 증명하는게 아닐까 싶어요..지나고 나서야 선하게 이끌어 주셨다는 경험은 땡깡을 졸업하고 가만히 견디는 수준까지는 이르게 되었네요~^^ 요즘 세태에서는 세상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씀! 말씀밖에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요..
2023-06-25 08:29:15 | 목영주
2023년 6월22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성경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와 가정 안에서 여성이 맡은 역할을 고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영향력을 중시하며, 특별히 경건한 여성들이 믿음 안에서 순종하는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아내가 집안의 가구나 노예 같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남편이 소중히 여겨야 할 조력자이자 존중해야 할 동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탁월함은 언제나 사회적 지위나 부, 외모가 아니라 도덕적, 영적 성품에서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인위적으로 치장하는 외모가 아니라 경건함과 선한 행위가 여성이 지니는 아름다움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
딤전 2장9절
또한 이런 식으로 여자들도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얌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며
10절
오히려 (하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로 하기를 원하노라.
성경에는 진리를 입증하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여성들의 충실한 삶이야말로 그들이 남긴 참되고 영원한 유산입니다.
그들의 삶과 충실한 성품을 배우면서 도전과 격려를 느끼게 됩니다.
자매모임을 통해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삶에 적용 할 수 있게 우리를 성장시켜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5장 기도는 결코 주문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다. 하지만 대화는 인격적인 만남이나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데 그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알기를 원한다.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주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례가 드문드문 나타날 뿐이지만, 신약성경에서는 주님의 삼위일체적인 특징이 여실히 드러날 때마다 그분의 아버지로서의 성품도 뚜렷하고 도드라지게 보여 준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 죄에서 인류를 구하게 하셨으며 그 덕에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될 길이 열렸다.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이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성령님은 구원 받은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거룩한 본성을 심으셔서 가족 유사성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란 말에 담긴 풍성한 의미는 은혜와 믿음으로 입양되어 하나님의 새 식구가 된 이들에게만 적용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공급받는 관계에 들어간다.
기도는 이처럼 친밀한 관계와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껏 느끼고 누리는 방법인 동시에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토대로 평안하고 기운찬 삶을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고대국가와 문화는 백이면 백 사원을 갖추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신성한 존재 사이에 크게 벌어진 틈, 또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반면, 사람은 한없이 왜소하다. 하나님은 완전하지만 우리는 흠투성이다. 사원은 벌어진 틈을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공간이다.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신을 가까이 끌어들일 줄 아는 전문적인 ‘중재자’(제사장)들이 거기서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며 의식을 집전한다.
하지만 너나없이 그런 몸짓들이 죄다 불완전하고 단편적임을 안다. 어느 종교도 그 틈이 메워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종교는 신을 숭배하거나 달래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가까이 지내며 관계를 쌓는 건 불가능하다.
세상의 철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 우리와 똑같이 유한한 존재가 되셔서 고난과 죽음을 겪으셨다.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공로를 세웠느냐와 상관없이 죄를 용서받고 의로워질 수 있는 길을 여시려고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 우리가 감히 주님 곁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거대한 틈 건너편에 계실뿐만 아니라 그 간격을 잇는 다리가 되셨다.
이렇게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깨지거나 고장 나지 않는다. 인간의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결코 주문이 아니다.
성경의 기도는 값없이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아버지의 한결같은 사랑을 근거로 드리는 간구다.
기도는 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해준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 성품이 변화 된다.
여덟 살짜리 사내아이가 장난감 트럭을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렸다고 생각해 보자. 몹시 낙담한 아이는 아빠 엄마에게 달려가 고쳐 달라고 떼를 쓸 것이다. 하지만 울고불고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얘야, 먼 친척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네게 1.000억이라는 큰돈을 남겨 주셨어” 하면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십중팔구 더 크게 울면서 트럭을 고쳐 내라고 아우성 칠게 뻔하다. 아직 어려서 그런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 역시 영적 용량이 부족해서 예수님 안에서 스스로 어떤 신분인지 실감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베푸신 구원의 높이와 깊이와 너비와 길이를 파악할 영적 능력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길 바울이 간구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경건한 지식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1장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절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19절
또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분의 권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23-06-24 16:57:15 | 이은정
2023년 6월 23일 (금요일 저녁)
https://youtube.com/live/z2fk8w7nPRs
2023-06-24 11:50:48 | 관리자
마제스티 찬송가_우물가의 여인처럼 (Fill My Cup, Lord) : 536장
소프라노 고은희 / 피아노 우종미
https://youtu.be/IjqPBmATrJY
2023-06-23 20:01:23 | 관리자
지체(털)이라서 그동안 다른 지체들이 무지 고마웠구나하는 재미난 생각이 드네요~^^ 머리가 시키지않는 일을 지체가 할 수 없듯이 말씀 많이 읽고 깨달아 예수님 말을 더 잘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또한 저보다 연약한 지체들에게는 더많이 기다려주면서 위로,조언으로 함께 걸어가야겠구나..생각했구요. 목사님의 말씀은 10년전 메시지와 거의 똑같은 것에 우리예수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2023-06-23 15:09:42 | 목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