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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제가 안 튀어나오게)예수님은 오늘도 저의 주인이십니다  그다음, 급진적인 사랑을 하기위해 저의 옛사람은 죽었습니다..이렇게해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잘 안되는 저의 천성입니다..상대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도 내것을 표현할때 예의를 갖추어서 전한다면,그것만으로도 건강한 의사소통이라고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마귀를 대적하라.그러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하나님께 가까이 가라.그러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야고보서4장7,8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9-06 15:45:20 | 목영주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예전에 간증할 때, '이공제공'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말이지요. 이공제공을 응용하며 '이킹제임스 성경 제 여타 성경'하면 됩니다. 킹제임스성경으로 여타 성경을 물리친다는 말입니다.
2025-09-04 22:53:42 | 이규환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비밀   요즘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 중 하나가 바로 테토남, 에겐녀, 테토녀, 에겐남이다. 이 단어들은 각각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 성향을 기반으로 사람의 대인관계 스타일을 유쾌하게 분류한 개념이다.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밈 같지만, 놀랍게도 이 네 가지 유형 조합은 현실 속 인간관계에서 자주 겪는 감정과 갈등을 꽤 정확하게 짚어준다.   테스토스테론은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경쟁심, 추진력, 직설적인 표현, 결정력과 같은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반면 에스트로겐은 여성에게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감정적인 교감, 공감 능력, 배려, 눈치와 같은 섬세한 감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 두 호르몬은 남녀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사람마다 어느 호르몬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느냐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   이 두 가지 호르몬과 남녀를 조합하면 네 가지 조합이 나온다. 이 네 가지 조합에서 각각의 특징과 갈등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1. 테토남과 에겐녀의 조합 테토남은 추진력 있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효율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다. 반면 에겐녀는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 조율과 배려를 중시한다. 이 조합은 마치 리더와 조율자의 만남 같다. 테토남이 빠른 결정을 주도하면, 에겐녀는 그 사이에서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환상의 짝이 될 수 있지만, 감정 표현 방식이 너무 다를 경우 오히려 서운함과 오해가 쌓일 수도 있다. 특히 테토남의 직설적인 말투는 에겐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에겐녀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테토남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2. 에겐남과 테토녀의 조합 감성적이고 섬세한 에겐남은 주로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관계를 조율하려 하고, 테토녀는 강단 있고 솔직하게 말하며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처음에는 정반대의 매력에 끌리기 쉽다. 테토녀는 에겐남의 다정함과 배려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에겐남은 테토녀의 당당함에서 자신감과 에너지를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테토녀는 "왜 그렇게 말을 아껴?" 하고 답답함을 느끼고, 에겐남은 "왜 그렇게 말이 세지?" 하며 상처를 받는 경우가 생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는 조합이다.   3. 테토남과 테토녀 조합 둘 다 직설적이고 주도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땐 말이 잘 통하고, 함께 일하면 추진력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속전속결, 목표지향적 성향이 잘 맞기 때문에 프로젝트나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연애나 친밀한 관계에서는 자존심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서로 물러서지 않고, 감정보다 논리를 앞세우는 대화가 반복되면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대화를 하다가도 "그래서 누가 틀렸다는 거야?" 하는 식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서로 존중과 감정적인 배려가 없는 상태라면 관계가 지치기 쉽다.   4. 에겐남과 에겐녀 조합 이 조합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눈빛으로 읽고, 상처받지 않게 조심하며 말하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관계가 형성된다. 감정적인 교감이 깊고, 다투더라도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풀어나간다. 하지만 갈등을 피하려다 오히려 대화가 부족해지고, 서로의 진짜 속마음을 모르고 오해가 쌓일 위험도 있다. 둘 다 양보하려다 정작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우유부단해지는 경우도 있다. 감정을 잘 읽는 만큼, 솔직한 표현과 의사 결정력이 함께 갖춰질 때 더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네 가지 조합을 살펴보면, 어떤 조합이든 완벽한 건 없고, 갈등 없는 관계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성향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태도다. 우리 성도님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런 용어를 사용하고 있구나!” 정도만 알면 될 것 같다.   참고적으로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은 나이들면 분비 비율이 바뀐다고 한다. 따라서 남자에게는 에스트로겐이, 여성에게는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된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낙엽만 보고도 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이것이 성화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호르몬의 비율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이 예전에 비해 다소 과격(용감)해지는 이유도 호르몬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25-09-04 22:38:45 | 이규환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나 악한 사람들과 유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디모데후서3장12절,13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른 가치로 대한민국이 다시 세워질때-회개와 감사 무엇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계심을 깨닫게 되는 소망으로-내일도 긴터널을 잘 견디겠습니다.. total truth..급진적인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vHI_zylc4c  
2025-09-01 16:49:08 | 목영주
  희한하게 변해 버린 세상 따라 절기 또한 어떻게 되어 버린 듯, 처서를 한참 지났음에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여름날의 생기 이미 사라진 주변 초목들 바라보며, 만물의 성쇠가 정해진 때를 따라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탄하곤 합니다. 하늘과 땅 창조하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정녕 위대하심에 경외감 느끼지 않을 수 없더군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니 이는 주의 ‘영’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 사40:7 말씀 되새기게 됨은 물론입니다.   그런데...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니 이는 주의 ‘영’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그 말씀 떠올릴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할까, 서글프다고 할까, 무겁다고 할까...또는 부담스럽다고 할까...좀 그렇더군요. 시들어가는(^^) 인생에 대한 서글픔 때문 아니라...‘영’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 심히 변개되어 버린 현실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다수의 예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전3:21 내용을 관련 말씀 변개의 간단한 일례로 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온전히 보존된 킹 제임스 성경 전3:21 말씀에 따르면,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누가 알리오? Who knoweth the spirit of man that goeth upward, and ···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인즉,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간다는 건 아는데, 누가 그 영들을 알리오, 즉 알아보리오...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NIV 성경 그리고 개역 개정 성경에 따르면,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Who knows if the human spirit rises upward and if···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 특별히 ‘if’ 를 수반한 의문문, 그 의미인즉, 인생의 ‘혼’이 위로 올라가는지 어떤지 그리고 짐승의 ‘혼’이 땅으로 내려가는지 어떤지 누가 알리오...라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저자 솔로만 왕한테 감히 “당신이 알겠어, 내가 알겠어, 누가 알겠어” 라며 비아냥거리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사람의 ‘혼’과 동물의 ‘혼’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한 마디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게다가, NIV 성경 그리고 개역 개정 성경의 경우 영어 원문상의 ‘spirit’, 즉 ‘영’을 ‘혼’으로 번역해 놓았더군요. 그러니까, ‘영’과 ‘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애당초 없는 거죠.   ‘spirit’, 즉 ‘영’을 ‘혼’으로 번역해 놓은 위 건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항을 일단 짚고 넘어가 볼까 합니다.   그 하나로서, NIV 성경에 있어 ‘혼’ 관련 각주(脚註)에 적힌 ‘히, 영’, 그 의미 - 히브리어로는 영 - 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바, 히브리어로 ‘영’이면 ‘영’으로 번역해 놓을 것이지, 무슨 황당한 말 하고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설마 전3:21 히브리어 원문이 잘못된 거다, 그런 뜻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다른 하나로서는, 영어 원문 성경에 무려 535회 나오는 ‘soul’, 즉 ‘혼’을 살전5:23, 히4:12 같은 경우 빼고는 모두 ‘사람’ 또는 ‘자(者)’ 등의 다른 말로 바꿔 버린 개역 개정 성경이 위 전3:21 말씀 중의 ‘spirit’, 즉 ‘영’을 뜬금없이 ‘혼’으로 번역하고 있으니, 설마 아~무 생각 없이 번역하지는 않았을 텐데, 참으로 황당할 따름입니다.     이처럼, NIV 성경 그리고 개역 개정 성경의 경우, 일례로서의 위 전3:21 말씀을 포함한 상당수의 ‘영’ 그리고 ‘혼’ 관련 말씀들의 변개로 인해 적어도 ‘영’ 과 ‘혼’에 관한 진리 체계가 심각한 왜곡 정도를 넘어 완전 붕괴 상태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지 않을까...라는 생각 하곤 합니다.   그러한 생각 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할까, 서글프다고 할까...그렇게 되더군요. ‘영’ 과 ‘혼’에 관한 진리의 말씀 자체가 심히 변개된 성경 들고서 하나님께 경배드릴 사람들, 무척 많은 사람들 생각 때문입니다. 그들의 경우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 요4:23 말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그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입니다.   관련하여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영’에 관한 진리의 말씀 거의 없다시피한 성경들이다 보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어쩌고, 또는 성경에도 없는 ‘영성’을 훈련하고 어쩌고 하는...엉뚱한 말들이 오히려 대단한 의미로 쓰이는 현실, 그것이 이해할 만하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또한 그러한 생각 할 때면,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할까, 부담스럽다고 할까...그렇게 되더군요. ‘영’에 관한 진리의 말씀은 물론, 총체적 진리, 즉 토탈 트루스(TOTAL TRUTH)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된 성경, 즉 킹 제임스 성경으로 믿음 생활 하는 사람으로서의 의무...책임 또는 사명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위 의무, 책임 또는 사명 같은 것을 진리 전쟁...그 전장의 한쪽 귀퉁이에 선 한 전사의 비장한 심정 같은 것에 비유한다면...분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 말하자면, 꼴값떠는 – 헛소리...일까요...? ^^ ( 끝 )          
2025-08-31 22:20:04 | 최영오
저는 욥기중 40장 1절~5절 말씀을 좋아합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신다는 생각(의식적훈련)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더운날씨 애국시민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드립니다.. -보소서,나는 비천하오니 내가 주께 무어라 대답하리이까? 내가 내 손으로 입을 막으리이다.-욥기40장4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28gzVW49U
2025-08-02 17:48:42 | 목영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자!   지난주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설교를 들었다. 설교를 들으면서 계속해서 생각나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자’   성경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영광을 접한 이들의 반응을 기록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심에 압도되어 쓰러지거나 엎드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그분의 본질적인 거룩함, 위엄, 권능, 임재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눈에 보이는 환상이나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서, 죄인 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실제적인 임재로 나타난다. 이 영광을 경험한 인물들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에스겔 에스겔은 바빌론 포로 시절,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환상 중에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사방으로 퍼지는 그 광채의 모양은 마치 비오는 날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 모양 같았는데 이것은 주의 영광의 모습을 가진 모양이더라. 내가 그것을 볼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씀하신 분의 음성을 들으니라.”(에스겔서 1장 28절)   또한 에스겔 3장 23절에서도 그는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때에 내가 일어나 평야로 나갔는데, 보라,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영광과 같은 주의 영광이 거기 서 있으므로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3장 23절)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에스겔은 말할 수 없는 경외감에 압도되어 땅에 엎드린다. 직접적으로 “죽겠다”는 표현은 없지만,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전적인 항복의 자세를 취한다.   2. 이사야 이사야 역시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했을 때, 자신의 죄된 상태를 자각하며 이렇게 외친다.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게 화가 있도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며, 또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면서 내 눈이 왕 곧 군대들의 주를 보았기 때문이라 하매.”(이사야서 6장 5절)   이사야의 반응은 단순한 놀람을 넘어서,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듯한 절박함이 느껴진다.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섰을 때 느끼는 절망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 사도 요한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을 때의 장면이 인상 깊다.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매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요한계시록 1장 17절)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서 말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진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다정히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인간이 자신의 죄성과 무력함을 깊이 깨닫고 죽을 것 같은 상태에 빠졌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며, 인간은 본질상 죄인이다. 죄인이 그분의 영광을 직접 마주하면 그 자체로 존재가 붕괴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은혜 가운데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한복음 1장 18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믿음을 통해 담대함과 아버지께 확신 있게 나아감을 얻나니”(에베소서 3장 12절)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가운데 계시하셨고, 그분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죄인에게는 죽음의 공포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의 빛이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시지만 동시에 사랑이시며, 그분의 영광은 심판의 불과 동시에 구원의 빛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이사야처럼 회개하고, 요한처럼 두려워하되,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자. 
2025-08-02 13:21:03 | 이규환
위태로운 나라 사정으로 깊은 절망감을 찍고 올라오니 하나님만으로 기쁠 수 있게 된 요즘 저입니다.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이 제것이 되어진 듯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너희는 내게로 오라~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하시니라.-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거짓이 모두 드러나서 나라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는 시민들이 많아지게 해 주세요..
2025-07-25 17:35:01 | 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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