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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의 솔직한 간증에 저는 한참 모자란 인간임을 새삼 느낍니다. 그럼에도 이런 저를 위해 죽으셨다가 묻히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구원을 보장해 주신 예수님,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6-02-26 15:24:36 | 김지훈
형제님, 솔직하게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화...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바로 시작되는 것이 성화이니 겪을수록  예수님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거죠. 외딴 곳에 혼자 살면 성화도 없겠지요. 어울려 사회속에서  살아갈 때 빚어지는 것이기에.  
2026-02-26 13:12:08 | 이수영
형제님~멋있으세요!위로받고 오늘하루도 예수님 드러내며 잘 살아내겠습니다아~ 맞는말을 긍휼의마음으로 예쁘게 전달해도 억울한 입장에 놓일때 저는 하나님말씀만 뇌에 남겨놓아요. 또한 몇초있다 제가 죽는순간이라고 상상할때는 죄성강한 제가 아주 망가뜨리지는 않더라고요.. 제 믿음은 너무 나약해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가득채우고 낙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새로운창조물이라 여기며 무릎짚고 일어나요. 멈추면 포기할것 같아 지금까지 잘왔고,저는 분명 또 낙심할테니 성화기간을 죽을때까지 잡았어요~^^ 지금 이시대 거룩하고자하는 사랑침례교회 저희들을 보시고 나라위해 기도 드립니다. 예수님..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옛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린도후서5장17절
2026-02-26 10:20:28 | 목영주
최근 작심하고 성령충만, 성화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강해를 들으며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성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오늘은 어처구니 없는 고백을 하려고 한다.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성령 충만은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삶의 변화라고. 성화는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과정이라고.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래, 나도 변해야 한다.” “이제는 조금 더 온유하게 말하자.” 진심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그런데 그날, 불과 세 시간 뒤에 나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목소리는 높아졌고 표정은 굳어졌고 말은 날카로워졌다. 설교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입으로 상처 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게 나였다.   그 날은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화를 내는가. 왜 나는 이렇게 자주 무너지는가. 처음에는 상황을 탓하고 싶었다. 상대의 말투가 문제였다고, 내가 충분히 화낼 만했다고 합리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문제는 결국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내가 틀렸다는 뉘앙스를 견디지 못했다. 분노의 뿌리는 자존심이었다. 성령 충만을 들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내 중심에는 여전히 내가 서 있었다.   나는 성화를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성화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드러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인정에 굶주린 사람이었다. 나는 인내한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참고 있다가 폭발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은 성화는 나를 포장해주지 않고, 오히려 나를 벗겨낸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불편하고 아프다.   예전 같았으면 “저 사람이 잘못했다”라고 말하며 끝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내 태도가 부끄럽다. 여전히 화를 낸다. 여전히 감정에 흔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이것이 내 죄라는 것을, 이것이 내 교만이라는 것을.   어쩌면 성화는 넘어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는 선택이라는 것을.   성령 충만은 항상 평온한 얼굴이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을 찾는 방향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도망치지는 않고 다짐한다. 화가 올라올 때 잠시 멈추는 연습을 하자. 즉각 반응하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고르자. 하루를 마치며 내 말을 돌아보자.   크게 변하지 못하더라도 조금씩은 달라지기를 바란다. 성화는 느리다. 그러나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 화를 냈지만 그래도 다시 하나님께 돌아간다.   이것이 지금 나의 솔직한 간증이다.
2026-02-25 15:06:44 | 이규환
하나님의 말씀을 이리저리 해석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보니 이단 삼단이 나오는 거죠~ 왜곡하지 않고 문맥을 살피고 문자 그대로. 보아야 잘못 가지 않지요. 오직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데 속히 오시기를 ......
2026-02-04 16:25:03 | 이수영
천국의 소망이 커지고 싶어서 요한계시록 시리즈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우주를 통치하시는 전능자 나의 아버지 닮아 오늘도 신실한 하루 살아내겠습니다.. -보라.내가 속히 가리니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요한계시록22장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kHpnbau4x4
2026-02-04 08:29:35 | 목영주
  하나님 말씀, 즉 성경 읽다 보면, 인간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가히 초월적 차원의 하나님 성품 느껴짐에 따른 놀라움, 두려움 등으로 인해 읽기를 멈추고 한동안 묵상에 잠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초월적 차원의 하나님 성품인즉 신실하심(Faithfulness)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절대적 권능의 하나님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신실함, 즉 faithfulness 를 감히 무시해 버린 듯한 무천년설 그리고 그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밝혀보려 합니다.      AD410년경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제국 멸망(AD476년)의 서막을 열어젖힌 이교도들의 말, 즉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한 결과 망했다"라는 주장에 대한 어거스틴(AD354-430)의 반론을 담은 책, 즉 신국론(The city of God)의 핵심적 내용이 바로 무천년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20장의 그 천년왕국은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재림 사이의 긴 시간, 즉 교회 시대가 영적인 천년왕국인 동시에 교회가 곧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주장, 말하자면, 이스라엘대체신학 말입니다.    대략 1,600년 전의 그 무천년설이 16C 종교개혁 당시의 장로교 창시자 존 칼빈(1509-1564)에 의해 소위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결과, 성도라는 이름의 많은 사람들이 성경, 즉 하나님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즉 문자적으로 읽고 읽은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비유적,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개혁주의 신학에 따른 무천년설이라는 그 주장이 혹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짓는 일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언젠가 언 듯 들더군요.    그날 이후 무천년설, 즉 1)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이다, 2)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의 유죄 또는 무죄를 판단(짧은 밑천으로 감히 ^^)하는 작업에 착수했던바, 그 판단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우선, 1)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이라는 그 주장은 멀쩡한(^^) 천년왕국을 다른 것으로 바꿔 버림으로써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의 전체적 구성을 뒤틀리게 하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게 만든 그 자체로써 일단 ‘죄’ 짓는 일임이 틀림없다 할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계시록 20장 2절부터 7절까지의 6회에 걸쳐 구체적인 내용으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동시에, 엉뚱하게도, 다른 것, 즉 교회 시대가 그것이라고 한 결과...애당초 놀랍도록 완벽 정교하게 짜맞춰져 있던 성경의 전체적 구성은 뒤틀려져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어서, 2)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그 주장의 경우, 성경 말씀의 단순 이해 또는 해석 차원을 넘어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 백성, 즉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 차원에서 살펴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주하나님께서는 여러 성경 말씀 구절들을 통하여,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예의 몇 개 말씀 구절들을 짚어봤습니다.   우선 이사야서 49장 14, 15 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시온은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버리셨고 내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도다.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그리고...예레미야서 31장 35, 36, 37절 말씀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는 낮에 해를 빛으로 주고 밤에 빛을 내도록 달과 별들의 규례들을 주며 바다의 파도가 울부짖을 때에 바다를 나누나니 군대들의 주가 그의 이름이니라. 만일 그 규례들이 내 앞에서 떠나 없어진다면 그때는 이스라엘의 씨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민족이 되지 못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일 사람이 위로 하늘을 잴 수 있고 아래로 땅의 기초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나 또한 이스라엘의 모든 씨가 행한 모든 것으로 인해 그들을 버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위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말씀 구절들에서 강력 분출되는 하나님 전능자의 신실하심이, 영원 불변의 뜨거운 Faith·ful·ness 가 정녕 짜릿한 전율로 마음(heart)에 와닿는 사람만이,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 아닐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늘을 잴 수 있고 땅의 기초들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 빼고.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을 향한 절대 불변의 하나님 사랑이, 읽는 사람 눈물 머금게 할 정도의 절절한 사랑이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상에만 해도 수~~~없이 많은 구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 점까지 생각할 때면, 앞서 예를 든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말씀 구절들이 주는 짜릿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곤 했답니다.   자, 그렇다면 말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되는 거죠? 영원에 계시는 주 하나님 전능자의 신실하심을,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절대 불변의 참된 신실하심을 감히 부정하는 일임이 명백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인 동시에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 즉 개혁주의 무천년설은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의 전체적 구성을 뒤틀리게 하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게 만든 ‘죄’는 물론,    주 하나님 전능자의 절대 불변 신실하심을, 그 초월적 차원의 성품을 감히 부정하는 ‘큰 죄’ 짓는 일일 것이라는 판단 내려 봤습니다.             ( 끝 )    
2026-02-03 21:06:29 | 최영오
나라걱정..기도도 그리스도인답게 하기 위해서 영적인 복을 바라보며 살아야지..결단한 2026년입니다. 사랑침례교회 형제님!자매님! 같이 힘내요~~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 바,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2장9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시대, 새 예루살렘의 도래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 https://youtube.com/watch?v=TkRS4L8Y4ao&si=cyADTb_eFavViANf  
2026-01-27 17:22:52 | 목영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아군인지 적군인지 금방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제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제복을 입고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위치에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흔들리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먼저, 아래 오리와 다람쥐의 예를 보자.   여기 오리가 있다. 수차례 입사 지원자를 냈지만,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고,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면접에서 탈락되는 등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지원한 회사로부터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새로 산 양복에 근사한 넥타이를 매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 직장은 산속이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다람쥐와 함께 나무를 타면 된다고 했다. 체력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스킬이 부족하여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날개까지 동원하면서 온몸으로 종일 나무 타기를 했다. 저녁때가 되어 오리는 발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오리는 퇴근하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겨우 취직을 했는데,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지 걱정이다. 저녁식사를 대충하고 책상에 앉아 고민을 거듭한다. 오리는 오랜 고민 끝에 아래와 같은 간결한 한 마디를 외친다.   “나는 할 수 있다. I Can Do It”   여기 다람쥐가 있다. 다람쥐도 오리처럼 여러 번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다. 오랜 취업 활동 끝에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오리와 마찬가지로 새로 산 양복에 근사한 넥타이를 매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 다람쥐의 직장은 수영장이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오리들과 함께 수영을 하면 된다고 했다. 다람쥐는 예전에 수영을 잠깐 배운 적이 있었지만 수영의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다람쥐는 자신감을 가지고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뛰어드는 순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물을 많이 먹었다. 허우적대기를 반복하며 겨우 하루를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집에 도착한 다람쥐는 책상에 앉아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한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나는 할 수 있다. I Can Do It” 이었다.    오리와 다람쥐는 과연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직장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오리와 다람쥐는 노는 물이 바뀐 것이다. 아무리 할 수 있다고 외쳐도 노는 물이 바뀌면 탁월한 성과는 물 건너간 것이다. 탁월한 성과는 고사하고 살아남으면 다행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재능)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물이 바뀐 줄도 모르고 “할 수 있다”를 외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 예제는 역량과 재능을 설명하는데 곧잘 인용한다. 최근 목사님의 에베소서 설교를 다시 들으면서 문뜩 오리와 다람쥐가 생각이 났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 옮겨 본 적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뭐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체성에 대해서 명확히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님들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면 에베소서 1장을 여러 번, 그리고 꼼곰히 읽어 볼 것을 권고한다. 
2026-01-27 14:17:59 | 이규환
산속에서 나무타기하는 오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면에서 허접한 저는 능력자들의 도움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게 되었고, 하나님자녀된 자부심,주시는 평강으로- 오히려 역량부족을 감추기만 하려는 사람에서 유머,여유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게 된것에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분야에서도 성장하려면 큰 도전 난관을 피할 수 없고, 최대한 강점을 살리고 그것으로 위로받으며 살자하고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어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8장28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12-13 16:24:31 | 목영주
형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빠른 학습 속도가 재능으로 연결 된다고 하면 그만큼 흥미도 함께 가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더라구요. 부모가 자녀의 재능을  잘 관찰해야 하는 것에  공감합니다.  
2025-12-13 00:34:59 | 이수영
숨겨진 재능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이종현 박사의 강연을 들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은사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격하게 공감한다. 은사는 재능과 유사한 개념이다. 이 둘은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달리 부른다. 즉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하면 은사, 사적으로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사용하면 재능이다.    예전에 한동안 재능에 대해서 미친 적이 있었다. 아래는 그때 공부했던 책 『FIRST, BREAK ALL THE RULES』에서 재능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1. 무의식적인 반응 자신이 어떤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이 맨 처음에 나타낸 무의식적인 반응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행동(Say or Do)이야말로 재능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실마리이자, 뇌 회로 중 가장 강력하게 연결된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나타내는 반응은 개개인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고, 어느 정도까지는 업무에서의 성취도도 설명해 준다. 위기 상황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데, 사실 일상생활에서도 재능을 감지할 수 있는 수천 가지 크고 작은 상황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파티에 초대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 파티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당신이 누구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을지 상상해 보라.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아니면 처음 만난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낯선 사람들과도 즐겁게 얘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외향적인 사람이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 곁에만 머물고 낯선 사람이 대화에 끼면 불편해하고, 저녁 내내 아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면, 현재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부하직원이 아이가 아파서 출근하지 않았을 때를 떠올려 보자. 그 소식을 듣고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이 무엇이었나? 아이가 어디가 아픈지 누가 돌보고 있는지에 즉시 관심이 쏠렸다면, 공감 재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이 그 사람의 업무를 누가 대신할 것인지를 생각했다면 한 번에 여러 가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자리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줄 아는 재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개인의 반응은 그 사람의 독특한 패턴을 여실히 드러내며, 재능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의 무의식적인 반응은 재능의 원천을 보여주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지만, 이 이외에도 염두에 두어야 할 3가지 수단이 더 있다. 이 3가지는 동경, 학습 속도, 만족감이다.   2. 동경(yearning) 동경(A yearning for something is a very strong desire for it)은 재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경은 자나 깨나 눈에 선하게 그립고 갈망하는 것이다. 유전자의 작용 때문이든 아니면 유아기의 체험이 영향을 미친것이든 어렸을 때 어떤 활동에는 끌리고 어떤 활동은 이상하게 싫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일곱 살 생일날, 어머니가 집에서 하기로 했던 생일 파티를 취소하고 맥도널드에 가자고 했을 때,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일상생활에 예기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싫어한 것이다.   어린 시절 보인 이런 행동들은 모두 복잡하게 연결된 뇌의 여러 시냅스 결합이 일으키는 것이다. 더 약한 결합은 섬세한 자극에 대응해서, 어머니가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면(설사 좋은 의도였다 할지라도) 곧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울어버리고 만다. 반대로 가장 강력한 연결에는 저항할 수 없다. 마치 자석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잡아당긴다. 어떤 대상을 동경한다는 것은 이런 끌림 때문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동경하던 일을 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되는 이유는 사회적 또는 재정적 압박 때문이다.   이처럼 누구나 오랫동안 동경의 대상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동경은 뇌 회로 중에서도 두드러진 강력한 회로가 일으키는 자연현상이다. 따라서 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이런 강력한 회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보여 달라는 내면의 외침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를 원한다면, 그런 외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때때로 ‘거짓 동경’에 잘못 이끌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칵테일 파티나 리셉션에 참석하는 것이 부러워 홍보부서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거나, 단지 사람들을 명령하는 것이 좋아 보여 관리자가 되고 싶어하는 경우가 그렇다. 거짓 동경인지 진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화려하고 남 보기 좋은 면을 제외한 그들의 실제적인 일상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런 거짓 동경을 제외한다면, 동경하는 것을 강점으로 개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3. 학습 속도 학습 속도 또한 재능을 발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모든 재능이 동경을 통해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재능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내면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다. 동경을 통해서 재능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 뒤늦게 무언가가 재능을 자극할 수 있다. 이때 재능의 존재와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속도이다. 새로운 직업, 새로운 도전, 새로운 환경 무엇 때문이든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 뇌는 마치 모든 전구의 스위치가 한꺼번에 켜지는 것처럼 환해진다. 함께 교육에 참여한 어떤 동료보다 배우는 속도가 빠른지를 본다. 그리고 동료들보다 쉽게 익히면 거기에 재능이 있다. 이때 새로운 기술은 너무 자연스럽게 몸에 배서 그것을 실행하고 싶어 좀이 쑤신다.   하지만 그 기술이 판매, 공연, 설계도면 작성, 부하직원에게 피드백하기, 법률 서류 작성, 사업계획서 작성, 호텔 방 청소, 신문 기사 편집 중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나에게 학습 속도가 유난히 빠른 분야가 있다면 자세히 잘 살펴보아라. 거기에서 재능이나 재능이 될 만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만족감 만족감은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가장 강력한 시냅스와 관련된 재능을 발휘할 때는 기분이 좋아진다. 따라서 어떤 활동을 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면, 재능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는, 생산적이며 긍정적인 활동을 찾는 데 성공한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모두 독자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만족감을 느끼는 대상 또한 조금씩 다르다. 여기서 강조하고 하는 바는 자신이 언제 만족감을 느끼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면 재능을 발견하는데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중에, 현재와 미래 중 어느 시제를 의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현재 상황에만 급급해하면서 “이 일이 언제 끝날까?”만을 생각한다면, 재능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즐거워하면서 “언제 또 이 일을 하게 될까?”라는 기대가 일었다면 그 일을 즐기고, 재능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 무의식적인 반응, 동경, 빠른 학습 속도, 만족감은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바쁜 일상에서, 한 걸음 빠져나와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나운 바람 소리를 잠재워라. 그리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이렇게 한다면 재능을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내용은 우리 성도들 자신에게 적용해 볼 수 있고, 또 자녀들의 재능을 발견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들의 재능을 발견하려면 우선, 자녀들을 다양한 상황을 접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관찰이 뒤따라야 한다. 관찰은 자녀가 하는 말(Say)을 듣고, 행위(Do)를 보는 것이다.      오리가 산속에서 다람쥐와 나무타기 경쟁을 하면 결과는 불은 보듯 뻔하다, 반대로 다람쥐가 산속을 떠나 오리와 수영 경쟁을 하면, 이 또한 결과는 자명하다. 재능을 발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5-12-12 18:44:01 | 이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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