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관심으로 격려해주시고 조언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셔서 사랑침례교회의 한 지체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송내동의 지역교회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2009-05-04 16:52:25 | 김상희
사실 교회의 간판을 사랑이란 말로 쓰기엔 너무 진부하고 무의미한 듯한 단어였지만
정말 기본에 충실해야하고 우리의 약점을 항상 기억하기 위해서 붙인 교회이름을
잘 파악하시고 권면의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송래지역을 전도의 어장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저희보다도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역 특성까지 연구해 주신 것에 감탄했습니다.
승리교회와 달리 사랑교회의 모토를 잊지 않도록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축사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2009-05-04 14:21:51 | 정혜미
사랑침례교회 창립, 문제는 없는가?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사랑침례교회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여러 성도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며 함께 사랑침례교회 창립에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마 오늘 처음 이 사랑침례교회를 방문하신 분들은 ‘송내역’이라는 랜드마크를 통해 이곳에 오셨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제가 첫 번째로 드리고 싶은 질문은 “왜 송내역 근처에 교회가 또 세워져야 하나?”입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무려 50여 개의 교회가 이미 송내역 주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교회를 이곳에 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200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서울지하철 1호선 역들 가운데 유동인구가 2위인 곳이 송내역입니다. 하루 20만 명 이상이 유입되는 곳이 바로 이 지역입니다.
그리고 종교별 인구통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독교인은 1.4% 감소하여 861만6천 명으로 나타난 반면, 천주교를 비롯한 타종교인들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수많은 영혼들이 왕래하는 길목인 송내역 주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가 또 세워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장로교회나 감리교회 등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교파가 아니라 침례교회, 그것도 ‘독침’이란 약어로 회자되는 독립침례교회가 세워져야 합니까?
제가 지난 2월 1일 이 사랑침례교회 주일오전 예배 때 설교하면서 종교다원주의의 아이콘이 된 오바마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하였습니다만, 이제는 기독교인이라 해도 성경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 곧 절대진리로 믿지 않는 경향이 전 세계적으로 점차 농후해지고 있습니다.
어제가 석가탄신일이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석탄일을 맞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절에 가서 108배를 하는 것으로 대체하거나 또는 부처님 탄생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는 기독교회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문자 그대로 최종권위로 믿는 독립침례교회가 창립되는 것은 매우 환영받아야 할 사건입니다.
마지막으로, 왜 ‘사랑’이란 타이틀을 내건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까?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매우 진부한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까? 특히 세상과의 분리를 주장하는 거룩한(?) 성경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은 자칫 세상과의 타협을 암암리에 묵인하는 누룩과 같은 위험한 개념이 아닌가요?
물론 성경에 ‘거룩하다’는 말은 611회 나오고 ‘사랑’은 488회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성경은 사랑보다는 거룩함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교회 안에서 거룩함과 사랑이 갈등을 일으킨다면 반드시 거룩함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모든 것을 성취하는 것은 사랑입니다(마22:34-40; 롬13:8-10).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시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금석이 사랑이기도 합니다(요13:35; 요일3:14).
실천신학적인 면에서 본다면 진정한 사랑을 행하기 위해서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가 소요될 수 있습니다(고전13:4-7; 벧후1:3-6).
제 좁은 소견으로는 ‘독침’의 약점이 상대적으로 사랑과 구제의 부족이지 않을까 하는데, 이처럼 과감하게 ‘사랑’이란 타이틀을 내건 독립침례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그야 말로 신선한 충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모쪼록 이 사랑침례교회를 통해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가운데 올바로 서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를 이뤄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벧전4:8).
감사합니다.
2009-05-04 13:31:31 | 관리자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까지 모두 다 표정이 밝아서 좋았습니다. 비록 "에고..다리 아파.." 하는 말은 나왔지만요.하하.. 다음 큰 일엔 슬리퍼 하나씩 가지고 와서 해야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바지 챙겨와서 본격적으로 일하시던 분도 계셨고요. 처음 한 큰 일 치루기..성공적이었다는 평을 우리끼리 했답니다. 서로간의 교제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답니다.
2009-05-04 12:29:48 | 백화자
특별히 따로 인사받는 것은 부끄러워요...^*^... 그리고 불편하구요..>.
2009-05-04 10:28:05 | 정혜미
사랑침례교회의 한 지체로서 창립예배의 한 부분을 준비하면서
모든 형제 자매님들 특히 사모님을 비롯해서 자매님들이
한 마음이 되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주님을 향한, 교회에 대한 , 그리고 지체들 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또한 찬양을 드립니다.
저희 사랑 침례교회가 목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지체들이 한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교회로서 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부흥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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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22:54:36 | 김상희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풍성한 음식만큼이나 풍성하고 멋진 우리 자매님들 사랑해요^^
2009-05-03 22:31:05 | 김상희
5월 5일(화) 저녁에는 디모데 스쿨이 없습니다. 이번 주 쉬고 다음 주부터 성막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몇 주 동안 공부하려고 합니다. 5월 12일(화) 저녁 7시 30분에 오시기 바랍니다. - DSJ
2009-05-03 21:55:35 | 관리자
교육 목사로 오신 김형훈 형제님께서 이번 목요일(5월 7일)에 미국의 파송 교회에 가서 목사 시험을 거쳐 안수를 받습니다. 일주일 동안의 여정이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DSJ
2009-05-03 21:53:13 | 관리자
풍성한 식탁을 위하여 수고해 주신 자매님들께 감사해요.
2009-05-03 21:38:57 | 정혜미
너무 아름다운 화음으로...
2009-05-03 21:35:23 | 정혜미
기대가 되는 사랑과 솜씨가 넘치는 음식들이네요. 꼴깍
2009-05-02 21:50:48 | 김윤미
일년에 몇 번(?) 복지관에 행사가 있을때 빼고는 토요일 휴무이니 토요일에 했으면
정말 좋겠네요.
2009-05-02 20:10:48 | 김상희
최원현의 책이야기: 하나님께 가는 길
정말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나님께 가는 길》D.L.무디 지음/차한 옮김(2008.3.라온누리 발간/217쪽/9,000원)
고래(古來)로부터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화두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일 것이다. 분명 ‘우리가 온 곳이 있었고 갈 곳도 있는가’. 그러나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질문에 대한 답은 늘 수수께끼 같았다.
온 곳을 모르는데 갈 곳을 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온 곳을 모르면서 온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 수수께끼를 풀어낼 열쇠를 말해 왔다. 그 열쇠는 ‘사랑’이라 했다. 그러면서 묘한 것은 사람들이 그 열쇠를 손에 받아들고서도 정작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누가 나를 보냈는가, 나는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다시 가야 하는가.
답이 주어졌고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지를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무디는 더 쉽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가는 길》에 그 답이 있다.
D.L 무디, 그는 참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교육 수준이었고 구둣방 점원 출신이었다. 그는 9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윈 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런 환경의 그에게 무슨 지식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가 18세 때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맞이하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지식이 아닌 하늘의 지혜가 그에게 임했던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길’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셨다. 그는 그가 알게 된 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가 소개한 길은 진리였으며 생명이었다. 혼란의 시대에 방향감각을 잃고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무디는 이렇게 묻고 있을 게다.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이제 당신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 당신은 누구로부터 왔습니까? 당신은 누가 있는 곳으로 갈 것입니까
《하나님께 가는 길》은 이런 답답함을 확연하게 풀어줄 것이다. 과학자(의사)의 눈으로 성경이란 프리즘을 통과하여 세상보기를 해왔던 가천의대 차한 교수가 그 뛰어난 분석력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찾아낸 길도 바로 이 답이었다. 그가 번역한 D.L 무디의《하나님께 가는 길》은 아주 부담 없이 우리 눈을 열게 하고 우리 귀를 열게 하고 이내 우리 마음까지 열게 할 것이다. ‘참 그렇군’ 하며 금방 맞장구를 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 안에 뜨겁게 무언가가 자리하게 하리라.
무디의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감화력이 있었으면 1억 명이 그의 이야기와 글에 빠져들었다 하겠는가. 지식으로가 아닌 하늘로부터 온 지혜로 그가 받은 감화와 감동, 하나님의 절대적인 같이하심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복된 소리들이었다. 9장으로 나뉘어진《하나님께 가는 길》은 한 장 한 장을 읽어갈 때마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의 발걸음이 무디가 안내한 곳까지 이르게 한다. 더욱이 예화들마다 맛깔스럽게 우리 마음에 안착하여 참맛을 느끼게 한다.
‘도서출판 건생’ 라온누리가 무디클래식 시리즈 첫 번째로 선보인 차한 교수의 번역 D.L 무디의《하나님께 가는 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배달된 참으로 아름답고 값진 선물이다. 그러나 선물이란 받은 사람이 기쁨으로 열어 자세히 살펴보아야 좋은 선물인지도 알 수 있듯 이 책 또한 펼쳐보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어찌 알겠는가.
현대는 책의 홍수시대다. 그러나 D.L 무디의《하나님께 가는 길》은 이런 홍수 속에서도 금방 눈에 띌 보배로운 책이다. 무디의 뜨거운 열정과 맑은 영혼이 담겨있는 책을 차한 교수는 무디의 심정이 되어 번역하여 우리의 가슴을 조용하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열고 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지침서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로 시작되는 D.L 무디의 음성을 들어보고 싶지 않는가. 이 책을 펴는 순간 분명 당신은 말씀이 뜨겁게 가슴속으로 역사하는 은혜의 체험을 할 것이다.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청운교회. nulsaem@hanmail.net
○ Contents
역자서문
1. 지식을 뛰어넘는 사랑 2. 거듭나면 가는 나라 3. 두 부류의 사람들 4. 위로의 말씀 5. 구원자의 신성 6. 죄에서 하나님께로7. 구원의 확신 8. 모든 것 되시는 그리스도 9. 하나님께 돌아오라
2009-05-02 16:49:15 | 관리자
지난 몇 년 동안 관심을 갖고 많이 본 책들 중 한 부류는 우리말 사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다 보니 영어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끝 부분에는 우리말이 더 중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즉 번역과 우리말 바루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 읽을 만한 작품이 나오게 됨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번역의 승패는 결국 우리말 바루기에서 결정이 납니다. 즉 우리말을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하느냐 - 곧 문장력이- 가 성경 번역의 최종 단계에서 가장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 성경 역시 근 230년 동안의 작업을 거쳐서 세익스피어 당시 영문학이 최고조에 다다른 시점에서 1611년에 드디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안착된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이 위대한 작품이 나온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저는 우리말 쓰는 법을 자세히 공부하게 되었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도 좋은 면이 많지만 우리말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오늘은 이런 종류의 책 중에 하나인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우리문장(장하늘 저, 다산 초당)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우리문장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좋다!'라는 탄성이 계속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들어보라고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크리스천 리더들은 말과 글에 능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곧 말과 글에 능해야 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설교와 설교자'에서 말에 능력이 없으면 아예 목사를 할 생각을 말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성도들만 어려움과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그런데 말을 잘하려면 글에 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잘 보고 익혀서 내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목사들의 설교의 부흥이 없으면 그 교회나 사회에 부흥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우리말과 글을 갈고 닦아서 좋은 리더들이 되어야 합니다. 스펄전 역시 자신의 '목사론' 책에서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 말에 능통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전력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였습니ㅏ. 이 책을 읽어 보면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근본주의 진영 내에 좋은 설교자와 교사와 문장가가 많이 나와서 성도들에게 하늘의 만나를 풍성하게 내려 주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청소년 아이들에게도 아주 좋은 책입니다. 소개해 주십시오.
1부_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 그믐달_ 나도향 무상_ 이은상 청추수제淸秋數題_ 이희승 낙엽을 태우면서_ 이효석 헐려 짓는 광화문_ 설의식 수정 비둘기_ 김동인 행화杏花_ 윤오영 청춘예찬靑春禮讚_ 민태원 수인영가囚人靈歌_ 이어령 산정무한山情無限_ 정비석 책_ 이태준 신록新綠의 고허古墟_ 이은상 영동永同을 지나며_ 박두진 그리운 시절_ 김환태 잡초처럼_ 이영도 육사비문陸史碑文_ 조지훈 백설부_ 김진섭 권태_ 이상
2부_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 문장론 글을 쓰는 마음_ 윤오영 문장도는 고행도苦行道다_ 안병욱 ‘쉽게 쓰기’의 어려움_ 이형기 ‘좋은 문장’은 그 사람에게서 배어나는 향기다_ 한승원 소설을 쓰기 위해 독약까지 맛본 플로베르의 교훈_ 정건영 아적我的 독서론讀書論_ 윤오영 관조의 세계에서 번져오는 희열_ 김규련 씨름하듯, 기진해서_ 임선희 낯선 것은 익숙하게, 익숙한 것은 낯설게_ 권현옥 선 채로 꾸는 꿈_ 노정숙 사람, 순간, 정열_ 박미경
3부_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 마름질 거룩한 본능_ 김규련 새하얀 명함 한 장_ 김소운 도마뱀의 사랑_ 이범선 빠름과 느림의 사이_ 전희천 동백꽃 필 무렵_ 김성우 이 일만 끝나면_ 이시형 페이터의 산문散文_ 이양하 새벽을 맞는 마음으로_ 이시형 그랜드캐니언_ 천관우 애월涯月 단상斷想_ 임선희 아리랑과 정선_ 김병종 행복幸福의 조건條件_ 김형석 미운 간호부_ 주요섭
지은이의 말 작가 소전
다음은 여기에 있는 작은 글입니다. 크리스천들 간에도 이런 사랑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9-05-02 16:48:03 | 관리자
크리스천 교사가 지은 책 중에서 이 책 즉 '사람들이 따르고 싶은 리더의 조건'은 사도 바울의 인생 여정을 그리면서 거기서 발견되는 크리스천 리더의 특성을 요약하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다른 리더십 책과 달리 사도 바울에 대한 강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회심 사건부터 로마로 이송되는 전 과정 속에 드러난 그의 인격과 리더십이 너무나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한 번 책을 잡으면 놓기 어려울 정도로 저자는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바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그의 인간적 비애와 자기를 배반한 그 사람들을 향한 간절한 심경 묘사 등은 리더가 겪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 준다.
리더는 반드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스도의 인내와 장래의 소망으로 극복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 책에서 저자는 바울을 통해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교회의 리더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일독을 하면 좋을 것이다. 나중에 디모데 스쿨에서 이런 책을 교재로 해서 크리스천 리더십 세미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Preview
성경의 리더십 원리는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과 정계와 세상 모든 분야의 리더십 트렌드를 선도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리더십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리더십 담론은 다분이 이전의 잘못된 개념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목회자이자 교사이며 베스트셀러 저자인 존 맥아더(John MacArhur)는 이 책 <사람들이 따르고 싶은 리더의 조건>에서 그 잘못을 바로잡고 있다. 리더십은 직함에서 오지 않는다. 성격이나 카리스마의 문제도 아니다. 철권의 권위와도 같지 않다. 참된 리더십, 변덕스레 요동하는 세상에 굴하지 않는 리더십은 훨씬 깊은 원천에서 온다.
맥아더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영적 리더 가운데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의 저작을 기초로 "참된 리더의 26가지 특성"을 제시한다. 당신이 기업 리더이든 공직 리더이든 교회리더이든 부모이든 교사이든 학생이든, 바울의 삶은 당신이 리더십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해줄 것이다.
나는 모든 부류의 리더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 교회 내의 리더십과 사역 철학이라면 내 다른 저서들에서 이미 다룬바 있다. 이 책의 목표는 그게 아니다. 이 책의 목표는 리더십의 성경적 원리를 추출하되, 기업 리더, 공직 리더, 교회 리더, 부모,교사, 개인적으로 제자 삼는 자, 중고등부 리더 등 모든 분야의 리더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할까? 물론 모두가 같은 수준의 리더로 부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리더십이란 것 자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류와 정도만 다를 뿐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각 리더로 부름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영향력을 미치라는 명령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라며 독자들의 영적 미성숙을 책망했다. 이렇듯 분명히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치도록 부름받았다. 따라서 지위, 직급, 재능, 업종과 무관하게 당신은 자신의 수준에서리더가 되도록 부름 받았다. 그래서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현재 당신이 자신을 "리더"로 생각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머리말 중에서>
○ Contents
머리말
1부 사슬에 매인 바울: 행동하는 리더십
1. 신뢰를 얻는 리더2. 주도권을 행사하는 리더3. 용기를 발휘하는 리더4. 상황을 주관하는 리더
2부 고린도의 바울: 포화 속의 리더십
5. 사람들을 향한 리더의 헌신6. 자신의 진실성을 변호하는 바울7.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8. 진흙으로 만들어진 리더9. 리더의 전투
3부 인정받는 일꾼: 성경적 기준의 리더십
10 실격되지 않으려면11 리더의 자격 요건
4부 에필로그
12. 리더의 성공척도
저자소개부록: 참된 리더의 26가지 특성
2009-05-02 16:47:19 | 관리자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종류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 한 종류는 리더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모임 - 정부, 학교, 교회, 동창회, 클럽, 가정 등 - 이 있는데 이 모든 모임의 흥망성쇠는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의 여러 인물들을 살펴보면 성경 역시 리더십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가장 좋은 리더십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위대한 리더처럼 말하라'(전미옥/갈매나무)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이 책으로 인해 즐겁게 지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리더십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가장 쉽게 포인트를 지적해 주고 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들 이상으로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들의 수준이 어떤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런 것을 얻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데 크리스천들이 수수방관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면 안되겠지요.
오늘 오후에는 부천의 송래역 근처의 여러 사무실 공간을 보고 왔고 역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맘에 드는 시설을 보고 왔습니다. 조건만 맞으면 계약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4월 중순에 디모데 스쿨이 시작되면 추후에 크리스천 리더십 세미나, 크리스천 말하기 세미나 등도 열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의사소통에서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위대한 리더에게서 배우는 소통(커뮤니케이션)의 기술
1. Simple : 적군에게는 기뻐할 일이 사라졌고, 아군에게는 슬퍼할 일이 사라졌다-카이사르
2. Story :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일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을 화제로 삼고 싶어 한다.
3. Humor : 사람은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프다. 즐겁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William James
4. Individuality : 눈은 10년 앞을 내다볼지라도 발은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
5. Balance : 커뮤니케이션은 리더와 조직원이 비전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된다.
6. Sympathy : 마음으로 대화하라. 쿠션 언어를 사용하라.
공감은 연민, 동감과 구분되는 감정이다. 연민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감정이고, 동감은 객관적인 태도를 잃고 상대방에 휩쓸리기 쉬운 감정이다. 공감은 중립적이고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않는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다.
7. Listening :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 - 징기스칸
8. Praise : 회사의 최우선 순위는 직원들이다. 그 다음 순위는 고객이다. 이것이 수익의 진정한 원천이다.- 하워드슐츠(스타벅스)
9. Charisma : 커뮤니케이션에서 침묵은 때로 수백 마디의 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말 잘하는 것보다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는 포용력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소통의 기술이 중요한 시대다. 실제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리더들의 말은 분열 대신 단합. 좌절대신 도전하는 용기를 줌으로써 희망이 되고 비전이 되었다. 리더의 말은 국민의 말을 이끄는 마차다.
그동안 우리 역사속 많은 지도자들은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으로 국민을 이끌어왔다. 산업화 시대엔 리더의 말 한 마디에 이견을 낼 수 없었다. 거꾸로 지도자의 "막말" 한 마디가 나라의 언격(言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명지대 김정운 교수는 "참여정부의실패는 의사소통의 실패"라면서 "벼랑끝 언어전술"파괴적 언어희열, 상대를 논리적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국민 저항만 초래했다."고 평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배려하는 말하기,경청 훈련은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 고 입을 모은다.특히 유머 감각은 부모의 창의력과 긍정적인 사고 방식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말썽꾸러기에 학교공부는 꼴찌였던 에디슨을 역사에 기록될 발명 왕으로 만든 것은 "톰, 네가 너무 우수해서 학교 공부가 널 따라오지 못하는구나" 하며 격려했던 그의 어머니의 말 한마디였다.
★ 리더처럼 말하는 비결 ★
1.잭 웰치(미국 해외기업인)-"쉽게 보여주고 솔직하게 대면하라".2.율리우스 카이사르(로마의 영웅)-"짧고 쉬운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3.에이브러햄 링컨(미국16대 대통령)-"이야기로 마음을 훔처라"4.윈스톤 처칠(영국 총리)-"충분한 준비가 고품격 유머를 낳는다"5.스티브 잡스(미국 해외 기업인)- "남과 다른 차별화가관건이다"6.오프라 윈프리(미국 출판 편집,연예스포츠파워1위)-"마음으로 대화 하라"7.마거릿 대처(영국 여성 총리)-"공감능력이 사람을 부른다"8.징기스칸(몽골제1대왕)-"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9.세종대왕(조선시대 4대왕)-"눈높이를 맞춰야 잘 들린다"10.소크라데스(그리스 철학자)-"사람을 만날 땐 질문을 준비하라"
2009-05-02 16:46:41 | 관리자
좋은 책이 사람을 살립니다. 요즘 교계에서는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인 옥성호 형제가 쓴 책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반응은 극과 극입니다. 너무 시원하게 사실을 밝혀서 아주 좋다는 평과 뭘 몰라서 그런다는 평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형제가 글을 아주 매끈하게 쓴다는 것입니다. 또 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부흥과 개혁사라는 장로교 출판사의 틀 안에 있으므로 더 넓은 것을 보지 못하는 아타까운 면이 있지만 지금까지 내용은 근본주의 성도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드디어 스승을 만났다는 옥 형제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책들을 소개하고 또 여러 책을 읽고 요약 정리하는 방법을 기술한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근본주의 진영 내에도 좋은 저자나 작가가 많이 나와서 영혼의(폐부의) 깊숙한 곳까지 찌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나는 성경만으로 족하다'라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근본주의 신앙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무식과 교만을 나타낼 뿐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의 글을 통해 말로 할 수 없는 위로와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혼을 위한 좋은 교사들입니다. 육신은 없으나 책이 있으므로 우리는 지금도 그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부지런히 책들을 읽기 바랍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혼이 말라 비틀어집니다. 이것은 누구나 쉽게 훑어 보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책이므로 일단 한 번 읽어 보고 또 가끔씩 참조하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드디어 스승을 만났다
○ Contents
추천의 글 : 백금산 글을 열며
책읽기 노하우 1 한 스승을 통한 책읽기
책읽기 노하우 2 씹어먹는 책읽기
책읽기 노하우 3 꿀꺽 삼키는 책읽기
책읽기 노하우 4 책 없이 책읽기
책읽기 노하우 5 원서로 읽기
글을 닫으며 부록
2009-05-02 16:44:40 | 관리자
요즘은 교회사와 더불어 근본주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근본주의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또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로 인해 원래 취지가 크게 퇴색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근본주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국내에는 근본주의에 대한 책이 거의 없는데 김효성 목사님께서 밥존스 대학의 비일 박사가 지은 근본주의의 역사(In Pursuit of Purity)를 번역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책이며 바이블 빌리버라면 한 번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비일 박사는 근본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습니다.
근본주의의 정의
이상적으로 말해, 기독교 근본주의자란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사람들을 접하기를 갈망하며, 성경 전체를 절대적이고 무오하고 권위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옹호하며, 거룩함의 교리와 실천에 확고히 선 사람이다. 이 책에서는 1850년 이후 미국 교회사의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 그것의 정의를 한정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현대의 조직체보다 훨씬 이전으로 소급한다면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어떤 철학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성경의 어떤 해석도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성경의 단순한 문자적 해석도 아니다. 근본주의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이 나아가는 것 즉 무조건적으로 성경을 수용하고 성경에 복종하는 것이다.
다음은 비일 박사 책의 결론입니다. 성경대로 믿기 원하는 사람들이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결론을 올립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붙이면 누가 될 것 같아 줄이니다. 평강을 기원합니다.
미래의 근본주의
사실상 모든 영적 운동들이 확신의 힘과 활기에 있어서 마침내 쇠퇴하고 말았다. 한때 역동적으로 신봉되던 진리들이 단지 형식적으로만 신봉되게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너무나 곧잘 그들의 선지자들의 무덤을 장식하는 반면 그들의 가르침을 무시하여 왔다. 그들은 가나안의 언어를 구사하여 왔으나 그 말들이 공허하고 판에 박히도록 허용하였다. 어느 운동이라도 시간의 경과와 함께 닥쳐오는 변질을 온전히 면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런 고난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새로운 지도자들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투들은 끝났다. 새로운 세대들은 조상들이 위해서 싸워야 했던 진리를 습관상 당연시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자연적인 과정들을 억제할 성경적 조치들을 취해야 하며, 그들은 정통신앙의 유일한 참 보존자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께 자신들을 맡겨야 한다. 유일한 참 근본주의자는 싸우는 근본주의자이다. 근본주의자는 그의 칼집을 던져버리고 다윗 왕의 세 용사처럼 성령의 검이 자기 존재 자체의 일부가 되기까지 성령의 검에 들러붙어야 한다. 그는 그 검을 원수들의 가슴에 꽂아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유다서 3절이 명하듯, 이렇게 신앙을 위해 싸운다 하더라도 또 하나의 잠재적인, 교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 역시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어느 집단의 기독교인들처럼 죄의 유혹으로부터 면제된 적이 결코 없었다. 검을 원수의 가슴에 꽂는 것이 이것을 자기 자신의 가슴에 꽂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성격적 근본주의자들은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해야 하며 무오류의 권위 있는 말씀이 자기들의 사상, 동기 그리고 행동을 판단하도록 하는 데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사용할 때 생쥐가 덫에 치이지 않고 치즈를 빼내려 애쓰는 방법으로 사용한다. 신앙의 으뜸가는 투사를 두 손 들게 하는 함정은 신앙을 위한 다툼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공격을 곧 신앙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성경을 다른 이들에 대항하여 사용하고 그리고 나서 이것이 자기 자신에 대항하여 공명정대하게 사용되어도 귀를 기울이기를 거절하는 것은 위선이다.
사소한 일들도 중요하다. 사소한 일들은 단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수월하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화가 나서 말한 한 마디가 그가 선포하는 모든 진리를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효화시킬 수도 있다. 비록 자기 자신의 말로 전한 진리의 사역을 실천하며 살려고 열심히 애써야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완성했노라고 주장하지는 말아야 한다. 설교와 실천 사이의, 대화와 실천 사이의 또는 고백과 실천 사이의 어떤 불일치 때문에 주의 원수들이 비난하게 할 수는 없다. 만일 근본주의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할 특권을 부여받았고 또 명령을 받았을진대(골3:17) 그들은 그분의 명예와 그의 명성의 가장 거룩한 신탁(말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주의의 뿌리가 미국과 아일랜드에서 1857-1861년 있었던 대부흥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그것의 존속도 부흥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는 그 부흥의 의지 여하에 달려 있다. 근본주의가 성경 연구를 위한 신자들의 모임(Believers' Meetings for Bible Study)에서 출생한 것을 우리가 보았던 것과 똑같이, 확실히 그런 생명의 샘을 버릴 때 우리는 멸절을 보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어떤 근본주의자들은 택자의 무리 속에 자기들을 영입하는 일종의 배지로서 다만 구원을 달고 다닐 뿐 좀처럼 진지하게 자기들의 생활 전체를 몽땅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요구에 집중시키고자 멈춰 서지를 않는다. 너무나 많은 교파들이 거룩한 예배법을 성막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듯이 떠나보낸 것 같다. 지나치고 기이한 일들이 어떤 근본주의자들을 놀라게 하여 생명수 샘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 결과 도깨비불을 가지느니 차라리 아무 불도 가지지 않는 편을 택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의 다수가 이런 냉담증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았으나 아무도 그 위험에서 면제되어 있지 않다. 근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이 목마른 영혼 편에 서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부흥 운동은 세 가지 수준에서 일어났는데 이것들은 에드워즈 및 윗필드가 주도했던 것들과 같은 지역 사회 수준, 개교회 수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인 개인 수준이다. 배교가 세상에서 심화되는 것처럼, 참다운 영성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단계가 준비되고 있으므로 성경적 근본주의 안에서 심화되어야 한다.
근본주의가 무엇인가 줄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세상이 유의해야 할진대, 근본주의 신조는 근본주의자의 마음을 장악해야 한다. 얼음 위에 둔 진리는 죄인의 영혼을 흔들지 못할 것이며 근본주의자들이 자기 진영 내에 원수를 관용해 두는 한 지옥 문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근본주의적 교회들 가운데 부흥을 가로막는 것은 현대주의가 아니라 무감동이다. 근본주의는, 하나님이 주신 오래 참음 - 그 신조가 행위로 전환되는 - 과 더불어 온전히 굴복한 근본주의자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며, 진리의 다스림을 받으며, 진리로 적셔지며, 진리로 즐거워하며, 자신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압도적 열정에 사로잡히는 참신한 세계를 필요로 한다. 이런 순수성의 추구가 근본주의의 거룩한 이상이요, 안내하는 빛이다. 이것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그래야 한다.
순수성을 추구하며 신앙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싸워야 할 자들에게 유다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의 서신을 끝맺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너희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20~21).
Contents
역자서문머리말감사의 말약어표제1부 근본주의의 원천제2부 1930년까지의 장로교 근본주의제3부 1930년까지의 침례교 근본주의제4부 1930년 이후의 분리주의적 근본주의제5부 오늘날의 근본주의참고사항
2009-05-02 16:43:28 | 관리자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분별력이 있습니까? 무조건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대개 그런 분들이 시험의 때에 떨어져 나갑니다. 건전한 사고와 분별력을 갖는 것이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송인규 교수의 신앙 진단서 우리의 신앙이 분별력과 만나기까지를 소개합니다. 한 번쯤 시간을 내서 진지하게 살펴보기 바랍니다.
칼빈주의, 세대주의, 근본주의 등의 틀에 갇혀 분별력을 잃으면 대단히 위험해집니다. 로이드 존즈 목사는 교회사를 살펴볼 때 이단들은 항상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그룹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순순성은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에 역작용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고의 폭을 넓게 갖고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고 지금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하면서 분별력을 사용하여 사람이 만든 틀이 틀리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 책의 목차입니다. 참조하기 바랍니다.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이 있으면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Contents
글을 열며
1부 교리 신학01.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02. 기적과 자연 질서03. 영이신 하나님께 눈과 손이라니?!04. 만물의 선함과 부정한 짐승들05. 욤의 길이06. 방언에 대한 소고(小考)07. 악의 문제08. 그리스도 이전 사람들의 구원 문제09. 물질적 은택과 기복 신앙10. 가계의 저주?11. 성모 마리아12. 환생 신드롬
2부 목회 사역01. 교회 성장에 대하여02.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03. 질문을 할 수 없다......굽쇼?!04. 삼무(三無)교회05. 목사는 일하면 안 되는가06. 헌금에 대한 민감한 사안들
3부 생활 실천01. 일상 생활은 신앙적 가치가 있는가02. 생활 예배를 회복하라03. 누워서 제 민족에 침뱉기04. 비신자의 비방05. 자녀 교육과 학벌 그리고 부모의 역할06. 환경 윤리: 개발과 보전
4부 신앙 일반01. 거저 주는 삶02. 왜 기도해야 하는가03. 신앙은 결국 마음의 문제입니다04. 고지 점령론과 낮아짐05. 왜 남성은 자신을 잘 열지 않는가?06. "사이징(sizing)"의 문제07. 보좌를 흔드는 기도?08. 임시 의식이라는 병09. 종님과 종놈10. 어린 아이처럼 되지 말라11. 목회자의 설교가 곧 하나님의 말씀?12. 손금과 점13. 외식(畏飾)14. "마음에 와 닿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15. 수동성의 문제16. 왜 완성될 천국을 사모하지 않는가
2009-05-02 16:42:2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