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히브리서 강해는 2번 더 하면 끝납니다.
그 이후에 적당한 시간에 소그룹 모임을 다시 한 번 갖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7-07 14:49:20 | 관리자
"너희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너희 몸을 위해 너희가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상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당연히 염려하는 것을 가리켜 불신앙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때까지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어디에 있느냐? 이번 휴가 계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느냐? 네가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혼란에 빠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 주님 아닌 다른 것을 맨 앞에 놓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미리 염려하느라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지 마십시오.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돌보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세세한 일들로 늘 염려를 달고 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주시는 말씀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마귀입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의 염려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 세상의 염려는 항상 사소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보거나 손에 쥐지 못하면 믿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것이 불신앙의 시작입니다.
이 불신앙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2014-07-05 23:02:11 | 박진태
형제님의 글을 읽고 나니, 한 마디로 "주님만 바로보는 삶"이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어떻게? 보다는 왜? 라는 외 글자가 마치 돌처럼 저에게 날라오는듯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애정결핍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삶. 하늘의 보상만 바라보는 삶. 그런 삶이 아직까지는 추상적이라고 느껴져서 제 자신이 괴롭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실제적으로 제 삶에 다가오고, 느껴질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7-04 10:41:55 | 김상진
많은 공감을 합니다.
'나는 알아~' 또는 '너보다 많이 알아~'
라는 식의 위선의 모습이 제 안에도 가득한 것 같습니다.
이런 공식이 제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지길 간절히 원하는 바입니다.
겸손한 복음전도자가 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7-04 10:34:34 | 김상진
참 요목조목 잘 말씀해주셔서 그날의 교제가 생생합니다.
인생선배님들의 조언으로 월요일은 다 찾아들으며 폭우를 만난듯하였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보면볼수록 왜이리 말씀이 달콤한지요.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2014-07-04 00:03:48 | 이청원
형제님의 글을 통해 이 시대의 여러 모습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같은 성도이지만 소명을 받고 양떼(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바르게 이끄는
목회자(목자) 혹은 설교자의 직무는 직업이 아니라는 언젠가 들었던 어떤 목사님의 말씀에
저도 100%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천만 가지 직업보다 열등해서가 아니겠지요.
"이렇게 슬프고도 악한 시대에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직무 중에 가장 위대한 직무"라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명쾌한 말처럼 그 어떤 직업이나 직무가 소유할 수 없고 비교 조자 불가한
육중한 가치를 지니기에 직업 혹은 돈벌이 수단이라 감히 칭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목회의 직무가 이렇게 타락하고 그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현실을 보며
목회자와 성도들 모두는 양방향에서 입체적으로 사안을 보며 성경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자칫 현시대의 타락을 피하고자 다른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면
구더기가 생길까 무서워 장을 못 담그거나 목욕물만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
2014-07-03 21:16:30 | 김대용
왜 바른것을 알면서 바르지 않은것들을 버리지 못할까?
바른것을 알았으면서 왜 떠나는것일까?
정말 공감하는 왜?입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해온 분 일수록 자연스레 몸에 습관화 되어 있는 것이 많지요.
바르지 못한 것을 알면 버리기가 필수인데 그게 안되면 어려움에 처하는 것 같아요.
알고 - 결단하고 - 실행하기 까지 자기부인의 길이지요. 우리 모두가.
2014-07-03 20:23:28 | 이수영
샬~롬
사랑침례교회에 와서 유독 이 의문들을 많이 반복하는 저를 봅니다..
왜, 사람들은 바른성경을 외면할까?
왜, 사람들은 바른걸 알려줘도 듣지 않고 들을 생각도 못하는걸까?
왜, 바른걸 알면서도 떠나는 걸까?
왜, 바른걸 믿으면서도 바르지 않은것들을 버리지 못할까?
왜, 왜일까요?
2014-07-03 16:59:50 | 이명숙
"왜? 저의 삶은 변화하지 않나요?"
제 첫 질문에서 킹제임스성경과 사랑침례교회를 통해 답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형제님의 글을 통해, 늘 질문하고 배우는 모범생의 모습으로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2014-07-03 12:27:04 | 태은상
과학 문명의 발달은 저장매체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하우를 자신만 갖고 있다가 죽으면 후손은 그 노하우를 알길이 없습니다. 그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기면 후손들은 기록을 바탕으로 더 발전된 형태를 통해 더 나은 기능과 편리성을 강구하게 됩니다. 역사시대에는 대부분 종이 기록에 의존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메모리와 랜칩의 개발로 용량이나 처리속도 또한 방대하고 과거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이용하고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죠?
어떻게? 라는 의문을 해결해 나가면서 불편했던 것들이 편리하게 되고, 성능이 개선되고, 세분화, 전문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능을 잘 활용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들 수 있고,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으로 그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빨리갈까? 마차, 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이 탄생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에 이길까? 칼, 화살, 총, 대포, 미사일, 핵무기 등이 개발되었습니다. 일상의 편리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어떻게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삶의 질과 양이 풍성해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라는 의문을 해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선진국보다는 원시부족과 같은 나라의 행복지수가 더 높게 나옵니다. 사람은 먹고, 입고, 자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왜? 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왜? 라는 문제에 대해 나름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제시한 사람들을 보통 성자나 현자, 사상가, 철학자라 부릅니다. 인생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왜 죽는가? 등등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고민하던 때도 있었고,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한 차원높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나름 고상한 척 해보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들이 전도라는 매체로, 요즘에는 유투브라는 매체로 성경기록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왜? 라는 문제에 끊임없이 부딪히게 됩니다. 왜 성경을 읽어야 하나? 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해야 하나? 왜 교회를 나가야 하나? 왜 예배를 드려야 하나? 왜 기도를 해야 하나? 왜 암송을 해야 하나? 믿음의 본질적은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바른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고 합당한 행실이 우리 삶속에 배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할 때 거기에서 하나님 말씀의 회복과 경건한 삶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에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갖고 다양한 종교 시스템으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천주교, 성공회, 개신교, 침례교, 등 개신교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이름으로 자기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물과 조직과 사람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왜? 라는 본질적인 질문보다는 어떻게? 라는 현상적인 질문이 더 중요해지게 됩니다.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해결하면서 현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사람이 없는 교회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끌어 모을까? 궁리합니다. 연예인 간증집회를 하면 될까? 두 날개 운동을 하면 될까? 건물의 편의성을 증대시켜 볼까? 등등을 강구합니다. 큰 교회는 나름대로 또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큰 덩치를 유지해야 할까?
교회안에서도 속성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양산합니다. 성경 속독법, 기도하는 법, 예배드리는 법, 등 등, 사역자들에도 일어납니다. 직업으로서의 목사, 전도사, 직원 등 자신의 삶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헌신적 섬김에 따라 일정한 보상차원의 사례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사례 자체를 목적으로 교회에 봉사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신학교도 목사나 성경교사가 되려는 사람이 훈련 차원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신학교가 목사나 교사 양성기관으로 전락해 버리면 일자리 없는 목사나 교사는 교회나 그 당사자에게도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신학교는 신학교를 유지해야 하니까 검증안된 사람까지 학생을 유치를 할 수 밖에 없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영역에서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도 설교중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라는 화두를 종종 던지십니다.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왜 봉사하십니까? 왜 교제를 하십니까? 왜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덧글을 다십니까? 왜 헌금을 하십니까? 왜 학생부 교사를 하십니까? 왜 주방 봉사를 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일에 분주했던 마르다보다는 주님의 무릎옆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경청했던 마리아를 향해 네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보고 돈을 보고 했을 때 실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라는 질문에 진솔한 답변을 찾을 때 비로소 마음과 행함이 일치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선순환을 추구하는 삶이 우리 가운데 있었으면 합니다. 두서없는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2014-07-03 10:34:39 | 조양교
눈 인사만 했었던 어르신들과 가까이서 믿음과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각자의 시대와 삶과 환경은 너무 달랐지만...
주님의 목적대로 하나되게 하신 것에 큰 위로와 기쁨과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소모임을 통해 귀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4-07-02 10:25:46 | 태은상
자매님! 늘 감사합니다...
이렇게 섬세하게 짚어서 스케치해주시니 참 의미 깊은 교제로 자리하는군요.
더욱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소망하며 예쁜 도전을 받습니다
2014-07-02 00:58:14 | 최상기
소그룹 모임 후기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격의없이 마음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의 형제 모임에서도 타교회에서는 권위적이고 또한 이러한 장소/시간이
없어서 대화를 나눌수 없었는데 우리 교회는 이런 시간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느끼신 것이겠지만 평상시에도 새로운 식구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여야
겠다고 생각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014-06-30 14:52:32 | 장인교
매번 소그룹 모임은 형제 자매님들에게 인기폭발인것 같습니다.
그만큼 교제에 목말라 하고 있는것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시간이 아쉬운 소그룹 모임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교사라 매번 모임 참석을 못했는데 어제는 학부모 모임으로 다같이 모여 교제하는 시간 가져서 좋았습니다.
2014-06-30 11:59:16 | 이정희
자매님 오랫만에 소상한 모임 이야기 올리셨네요.
알콩달콩 서로의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늘 교제를 사모하며 서로 돌아보고 함께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4-06-30 11:01:28 | 김혜순
오랜만에 제비뽑기로 소그룹 모임이 있었지요.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어요.
자기소개와 기도제목, 우리와 함께 하게 된 간증들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 더 가까워 진 느낌들로 하나가 된 시간이었어요.
정말 여자들의 속성은 관계 중심적이라 남편이 먼저 설교를 접한 경우에
자매님들이 형제들 속을 까맣게 애태우는? 기간이 길었다는^^
2대 3대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종교적 행위가
숨 막히고, 기쁨이 없고, 늘 천국에 못 갈 것 같은 갈등 속에 있을 때
유투브를 통해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어
“맞아, 맞아. 이 말씀이 100번 맞아”
“ 이 목사님은 설교를 헛소리 없이 성경만으로 하시는데 이런 목사님도 있나?”
“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쁨이 있어. 꼭 찾아가 봐야지.....”
남편이 들으라고 오랫동안 공들였어도 관심이 없다가 간간이 들려오는 설교가
마음에 조금씩 받아 들여져 남편 출근하면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으로 화답이 되어 자꾸 듣게 되더라는 간증도 있었지요.
(혹시 혼자 나오시는 분들도 지혜롭게 말씀을 틀어 놓는 센스가 도움이 될 듯
싶어요. 이미 하시고 계시겠지만요^^)
공통적으로 우리 교회에 와서 주님 안에서 영, 육이 자유롭고 마음의 안정과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주일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하셨지요.
수원에서 오시는 고정순 모친님은 연세가 81세이고 눈도 좋지 않으세요.
너무 먼 거리를 힘들게 오시는 것을 보시고 목사님이
가까운 교회 다니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울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아파도, 죽어도 난 우리 교회 꼭 와야 해요. ”
토요일이 되면 교회 올 생각에 너무 좋고 들떠서 잠이 안 올 때가 많다고....
모두 눈시울이 붉어지며 이러 저러한 걱정에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요.
다른 자매님도 교회생활을 많이 했어도 마음이 가까운 사람들이 없었는데
우리교회 와서는 교제는 서로 많이 못하지만
보고 싶고 마음이 가고 그래서 주일이 기다려진다고 하셨고요.
영혼의 양식을 섭취하느라 주위의 사람들을 생각 못하고 있었다는 반성도 있었고,
예전엔 틀린 것을 지적하고 가르치려 했었던 자신이 설교 말씀으로 인해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는 말씀과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는 것을 통해
듣는 귀가 있는 지인들에게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셨지요.
오늘 김 영균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내가 좋은 것이 은혜가 아니고
징계와 책망이 은혜라는 말씀에 아멘이 되어서 감사했고
성경적인 바른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깊은 감사가 되었고
실제로 선한 일을 실행하는 것이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임에 아멘이 되었지요.
요즘에 어떤 말씀들이 마음을 주장 하는가에 대해서
시편 119:36 내 마음을 주의 증언들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시편 19;14 오 나의 힘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주여, 내 입의 말들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나훔 1;7 주는 선하시고 고난의 날에 강한 요새가 되시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아시나이다.
잠언 3:5-7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네 눈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잠언 4:23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
이어서 말씀암송의 중요성도 이야기 하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다 되어 버렸어요.
우리의 실생활은 선택을 해야 하는 연속인데, 우리가 주님을 아는 자로서
주님을 선택하고, 결단할 때, 자신의 의지를 드려야만 한다는 권면의 이야기들과
실생활에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마귀를 대적하라>는 2009년 12/13일자
목사님의 설교도 권해 주었고요.
집에 돌아와 그 설교를 다시 들으니 너무 새로웠고 다짐하면서
‘망각이 너무 심하구나...’ 싶어 조금 슬프기도 했어요...
A.w.토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드러난 능력> 이라는 책도 소개 되었어요.
신앙과 생활과의 괴리감이 누구에게나 있는데 나의 신앙 성숙도를 알아보는 방법은
얼마나 자기부인이 되고 있는지가 현재의 성숙도라고.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상태가 영적상태라고.
나를 징계하시는 하나님과, 늘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육신을 갖고 있는 한 우리 모두가 영적 전투와 자기부인은 날마다 일어나는 데
승리하도록 끊임없이 희생을 치르면서 영적 성장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한 므나와 각자의 달란트들을 이 마지막 때에
가치 있게 사용하길 원하는 감동 있는 자매님들의 나눔이었어요.
2014-06-30 08:19:12 | 이수영
형제님 말씀에 백번 동감입니다.
저도 1번 2번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많이 시도했던것 같아 반성이 많이 되네요.
앞으로 혼을 향한 긍휼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조급해 하지말고 복음을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4-06-27 15:25:51 | 이정희
신랑과 친정아버지께 이런 식으로 전하고는 있습니다. 신랑 경우는 아주 가까운 사이라 더 어려운 것 같네요~
그래도 맘이 많이 말랑말랑해졌고 제대로 마음을 얻으려면 이 방법이 최고인것 같습니다.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4-06-27 15:08:10 | 목영주
공감합니다.
긍휼을 받은 자이면서도 믿지 않는자에게 긍휼은 참 인색한 것 같아요...
2014-06-27 14:19:07 | 이수영
며칠 전 회사에서 마케팅 관련 세미나를 진행하였습니다.
세미나중 강사의 말에 공감이 가서 몇 자 적으려 글을 올립니다.
세미나의 주제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었습니다.
어떤 사람과 계약을 할 때 흔히 범하는 실수 중 우리의 서비스와 우리회사 제품의 좋은 점을 장황하게 설명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시간을 두고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고객의 필요가가 무엇이고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내고
더 나아가 고객의 입에서 내가 필요한게 이거 였는데 당신네 회사에 있군요 하고 마치 자신이 그 서비스를 발견한 것
같이 느끼도록 대화를 이끌어 나가면서 계약을 성사 시키는 방법 입니다.
그럴 경우 재계약율과 다른사람에게 소개하는 확률이 훨씬 높아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강사가 다음과 같은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습니다.
1. 고객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것 입니다. 고객님이 틀렸습니다. 또는 그 비슷한 뉘앙스
2. 내가 저사람으로 설득 받고 있구나 또는 저사람이 나를 설득하네 라고 느끼는 순간
이 두가지를 고객이 느끼는 순간 고객은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계약은 이루어 지기 힘들어 지겠죠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1번과 2번의 방법으로 하지는 않는지 반성해봅니다.
먼저는 정말 한 혼을 향한 긍휼함이 있어야 하고, 간절히 그 혼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 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 혼이 처한 환경 처지 등을 진실된 대화로 소통하는 것이 기본 인것 같습니다.
여러 각각의 혼들의 자라온배경, 성격, 학력, 등등 모든 혼들이 처한 위치가 틀리 때문에 어떠한 공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 혼이 갈급한바가 무엇이고, 또 궁금한 부분이 무엇이고 이런 것들을 같이 풀어 가는 것으로
복음을 전달 할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우리는 너무 우리것이 완벽하다고 주입식으로 주장하면서 먼저 그들의 귀를 막아 버리게 만들고
또 귀를 막은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상처받고 하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 완벽한 것도 전달하는데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혼에 대한 긍휼함과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하고
내가 말하기보다 간단한 질문으로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게 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필요를 알아내며 적절하 제시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진리를 깨닫게 도움을 줘야 할 것입니다.
물론 많은 시간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이론은 쉬운데 적용하기는 나부터도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2014-06-27 13:42:46 | 김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