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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애정소설일 것이라는 편견(!)으로 책은 읽어 보지 않았었는데, 영화는 나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자매님 말씀처럼, 다양한 관계 속에 대입해 보면 또 다른 시사점을 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샬롬.
2013-11-09 21:34:50 | 김지훈
스토리가 흥미롭네요. 재미있는 사랑이야기 정도로만 볼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안광으로 거기에 내포되여 있는 교훈과 가치를 파악해내여 삶의 지혜로 삶는 것이 바람직 하겠지요. 어떠한 작품을 보든지 우리는 정면적인 교훈과 반면적인 교훈을 포착해 건설적으로 또한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좋은것 같아요. 좋은 내용과 취지를 올려주셔서 고마워요. 샬롬.
2013-11-09 09:19:52 | 이춘옥
저는 이 책을 25년전쯤 대학교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남자는 (도대체) 알기 힘든 여성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감명(?)깊었던 기억이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책 제목이 Pride and Prejudice인데, Pride가 "오만"으로 번역된 것입니다. Pride가 자동차 이름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오만이라고 번역된 책 제목을 보면서 의아한 생각을 했던적이 있었습니다. 프라이드-자존심-오만-교만... 인간의 죄의 근원이라고 생각되는 교만.... 고개를 꼿꼿히 쳐들고 하나님께 대드는 교만.... 창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께 감히 따지려드는 교만....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의 한도 끝도 없는 교만.... 학교에서 선생님께 대드는 학생의 시건방진 교만... 교회에서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교회의 질서를 헤치려는 교만.... 제가 그랬습니다. 교만했지요. 교만이 철철 넘쳐흘렸습니다. 예수님이 도대체 누군데 내 허락도 없이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 죄를 대신 갚아주시는가? 라고 생각했던 교만의 대마왕, 교만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죄인이 하나님께서 무한한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한도 끝도 없으며 하나님의 위대하심 또한 감히 헤아려 알수도 없습니다. 로마서 13장1~2 모든 혼들은 더 높은 권력들에 복종할지니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 아멘.
2013-11-09 05:30:20 | 김형욱
 다음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이라는 코너에 “신데렐라 구두를 차버린 여인”이라는 제목의 칼럼 내용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 관한 서평입니다. 소설 속 이야기의 줄거리를 파악하시라는 의미에서 잘 요약 된 서평을 올린 것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잠시 고전을 감상하시면서 사색을 즐겨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미 2006년도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기회가 되신다면 영화로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 제인오스틴은 과연 이 소설에서 무엇을 이야기 하려 했는지 직접 들어 알 수는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단순히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소극적 해석 보다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오만과 편견’이라는 이해와 관계적 측면에서 이 작품을 바라봤으면 합니다. 특히 결혼 안한 싱글들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연애소설로만 바라볼게 아니라 부부의 관계, 혹은 교회 안에서의 관계로도 대입해서 본다면 더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수많은 매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청혼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고려하셔야지요. 당신의 지참금이 너무 적어서 아마도 당신의 장점과 많은 사랑스러운 자질의 효과를 상쇄할 테니까요.”(첫 번째 구혼자 콜린스 목사가 엘리자베스의 거절을 믿을 수 없어 하며 한 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우리가 처음 서양 문물을 접했을 때, 서구의 ‘숙녀’는 얼마나 선망의 대상이었던가. 그러나 많은 ‘숙녀’의 삶은 치욕적인 곡예였다. 여성이 자력으로 생계를 영위할 수 없던 사회에서, 숙녀는 필사적으로 결혼을 해야 했다. 그런데 결혼 시장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모두 적령기 여성의 배우자 찾기가 주제이다. 오스틴의 여섯 권 소설 중에서 제일 활기 넘치고 아기자기한 ‘오만과 편견’(1813년 출간)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닛은 지주 계층이기는 하지만 부친의 생존 기간 내에 결혼을 하지 못하면 생계가 막막해질 처지다. 아버지가 아들이 없어서, 남자 후손에게만 토지를 상속하는 ‘한정상속’ 제도에 의해 부친 사망 후에는 전 재산이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상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무일푼의 여자라도 데려가겠다는 신랑만 나서면 감지덕지 매달릴 의사가 추호도 없다.   인구도 적고 미혼 남성이 별로 없어서 결혼시장이 지극히 좁은 이 시골마을에 다시라는 남성이 등장하는데 처음 대면하는 날, 엘리자베스와 춤을 추라는 친구의 권유에 엘리자베스의 외모가 “봐 줄만은 해도 내 마음을 동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대꾸하는 것을 엘리자베스가 들었다. 다시는 헌칠하고 당당한 외모에 무려 연 1만 파운드의 수입이 있는 대지주여서 최고 조건의 신랑감이지만 비사교적이고 거만해서 곧 마을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그런데 엘리자베스와 다시가 함께 있을 기회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자기를 관찰하는 듯 한 다시의 시선을 가끔씩 느끼게 되는 엘리자베스는 무슨 흠을 찾아내려는 것인가 하고 느낄 정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는 좀 가식적이고 얌전빼는 당시의 숙녀들과는 전혀 다른, 쾌활하고 재기발랄하고 비판적 지성이 예리한 엘리자베스에게 점점 끌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엘리자베스 집안의 지체가 자기 집안보다 현격히 낮고 엘리자베스의 부모, 여동생들이 모두 몰상식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엘리자베스와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이별을 하게 될 때 다시는 청혼을 하고 만다. 엘리자베스는 그동안에 다시가 자기 언니와 그의 친구의 결혼을 방해했고, 위컴이라는 싹싹한 청년의 장래를 잔인하고 비열하게 망쳤다고 오해해 지극히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청혼을 받고 엘리자베스는 순간적으로 다시가 거절당하고 상심할 것을 안쓰러워한다. 그러나 다시가 자기 이성이 만류하는 청혼을 열정에 떠밀려 한다고 고백하자 분노가 치밀어서, 분연히 거절하면서 다시를 자기 언니의 행복을 가로막고 악의로 한 청년의 일생을 망친 비인격자라고 맹비난한다.   다시는 비인격자는 아니었고 무식하고 속된 무리들에 대해 우월감은 느꼈지만 매우 관대하고 공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엘리자베스의 처지에서 자기의 청혼을 거절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단호한 거부와 함께 자신의 인격에까지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는다. 모욕감에 떨면서 엘리자베스에게 자기 친구가 몰상식한 가족과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점은 인정하고 위컴의 일생을 망쳤다는 것은 완전히 오해였음을 해명하는 편지를 써서 건네고 떠난다.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치욕이었으나 차츰 자신의 엘리자베스에 대한 예의와 인격적인 존중이 미흡했기 때문에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역시 다시의 편지를 읽고 자기의 다시에 대한 평가가 상당 부분 자신의 판단력 과신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수치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영영 서로에 대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전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엘리자베스의 철없는 막냇동생으로 인해 집안이 치욕의 나락에 떨어지게 될 위기에서 몰래 전방위로 힘을 써서 그 일을 해결해 준다. 그것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의 다시에 대한 감정은 감사와 존경과 애정으로 변하고, 다시가 다시 구혼할 용기를 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마침내 한 쌍의 이상적인 부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오스틴은 불리한 조건의 젊은 여성 한 명이, 현실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기의 가치에 충실했기 때문에 여성이 원하는 모든 것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단지 인물 좋고 재산 많은 남편이 아니라 한층 향상된 인격자 남편의 애정과 존중까지 얻게 된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다시를 혐오하고 인격을 불신하면서도 그의 뛰어난 조건 때문에 첫 번째 청혼에서 승낙했다면 다시의 부인이 된다는 사실은 같다 해도 그 결혼생활의 내용이나 행복의 질은 결코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번의 청혼 과정은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기제일 뿐 아니라 오스틴이 강조하는 행복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련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바탕이 주변의 속악한 인물들보다 지적이나 도덕적으로 단연 우월한 인물이다. 그러나 서로의 오해와 비난을 소화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결점을 깨닫고 한 차원 높은 도덕성과 포용력, 그리고 겸허함을 터득해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이상적인 결합은 또한 철저한 계급사회이던 영국에서 많은 서민을 보듬는 모범적인 지주와 마님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들은 내적으로 타락해 가던 영국적 가치를 정화하고 다시 확립할―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주역이 되고 영국적 가치를 발전적으로 계승할 2세를 길러 낼 부모가 될 것이다.   이렇게 준엄하고 통렬한 교훈과 꾸지람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소설 속에 담아 놓은 오스틴에 대한 평가는 그녀의 사후 2세기 동안 계속 상승했다.<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영화<오만과 편견>, 2006년작  
2013-11-09 04:36:29 | 김경민
하나님이 주시는 힘에 의지하여 날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 반성하며 미흡하나마 그 분을 닮으려고 더욱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요즘 뭐가 그리도 빠쁜지...책읽을 엄두도 못내고 있는 가운데 반성하는 글을 대하니 숙연해 지면서도 흐뭇합니다.~^-^
2013-11-08 00:02:51 | 박순호
좋은 글 올리셨네요,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낍니다. 구원 받음과 동시에 우리의 악한 습관들이 자취를 감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다 한번씩은 인내하고 가끔은 섬기기도 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함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시죠. "이것과 더불어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겅건을, 경건에 형제의 친절을, 형제의 친절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1:5~7) 아멘.
2013-11-07 19:02:19 | 이춘옥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우리는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회심 이전에 우리의 하루하루는 지옥으로 가까이 가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을 체험한 후에 우리는 천국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갑작스런 변화로 모든 문제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출발에 불과합니다. 구원 이후에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거부합니다. 현재에 누리는 것들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지요. 혹시 지금의 것들에 스스로 만족하고 안도하는 자들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자신을 참되게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겸손한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하셔서 그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더 나은 자로 변화 시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슬픈 모습들이 있습니다. 회심 전에도 통제하지 못하던 이들이 신자가 된 후에도 여전히 참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구원 전과 똑같은 삶을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늘 사람을 변화시키며 그 변화는 반드시 지속적이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피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미리 정하심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그분께 속한 모든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바울의 반응은 자신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모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의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요구들에 진실된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반응했음을 증명했습니다. 빌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  진보하고 변화하려는 불타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지속적으로 헌신했습니다. 그의 삶의 중심과 영역은 신조가 아니라 인격 되신 주님 이었습니다. 빌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 이니라 주님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분의 일을 수행하도록 명령을 내리실 모든 권위를 갖고 계시고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순종케 하실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갖고 계십니다. 바울은 엄청난 시련들을 기꺼이 감내 했습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어려움들을 그는 주님과 함께 나누었고 그분과 교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 되었던 사실을 인정했고 주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난에 자신이 전혀 참여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자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핍박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으려 했습니다. 적대적인 세상에서 그러한 핍박은 당연히 찾아옵니다. 날마다 그는 지속적인 변화를 경험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님을 더욱 더 닮아가고자 했습니다.
2013-11-07 15:19:55 | 이수영
WCC 역사의 뿌리를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알수 있도록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도바울이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라고 권면의 말씀을 한 것 같이 우리의 소중한 영혼이 사탄에게 노략질 당하지 않도록 잘 분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wcc에 가입한 교단이나 지교회에 wcc나 에큐메니컬운동 등의 실체를 알려드려 다 정죄받지 않도록 여러모로 노력해야겠습니다.
2013-11-06 15:17:55 | 이우상
오늘 아침에 페북의 김병삼 목사 "화평케 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 화가 나서 글을 몇개 달았습니다. 퇴근시간이 되어서 김동호 목사가 WCC와 국정원사건을 함께 비교하면서 자신을 색맹에 비유하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모르겠다면서 글이 올라와서 그냥 퇴근하지 못하고 글을 또 날렸습니다. 정치목사라고 해야 할까요? 바른 성경에 대한 관심도 연구도 없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기몰이를 하고는 있지만 설교라는 것을 들어보면 성경말씀은 없고 자신이 읽은 책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식입니다. 회색분자를 자처하는 김병삼 목사는 자신의 본의와 상관없이 WCC관련자로 자신이 감리교단이라서 자동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인데 자신은 WCC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식이고, 김동호 목사는 WCC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답니다. 색맹에 비유하면서요. 참담한 현실을 아주 완전히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정도로 심각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랑침례교회가 얼마나 소중한 교회인지 다시금 소름끼치도록 절감했습니다.
2013-11-06 00:05:53 | 최호준
노아의 시대와 같은 이 시대에.. 사랑침례교회가 노아의 방주와 같은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곳곳마다 상한 영혼들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오네요! 오늘 천안에서 어떤 형제님이 오셔서 (성경 구입하시려고 인천 소래까지 오셨네요.) 짧게 나마 교제 하였습니다. 그 형제님 말씀하시길... "매주 아주 죽을 맛입니다. 짜증나 죽겠습니다... 그런데 온 가족이 몇십년동안 섬기는 교회다 보니 쉽지가 않네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위로는...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를 주셔서 선한 방법으로 교회를 옮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뿐이었어요. 주님의 긍휼 하심이 우리 민족을 덮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2013-11-05 00:01:55 | 오광일
지난 40년동안 WCC에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해준 곳이 바로 한국교회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열린 제10차 WCC는 반대하는 한국교회들이 너무 많아서 완전 파장분위기 라고 전해들었습니다. 서명운동만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하네요. 반대운동에 가장 핏대세운 교단은 고신측과 합동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라도 광주 소재 교회들이 크게 한 몫 했다고 합니다.(통합측이면서도 유일하게 앞장서서 반대했던 교회는 안디옥교회라고 합니다.벌써 통합측에서 교단 탈퇴를 의논한답니다.) 분위기가 이쯤되자 가짜 목사들이 자신들은 가입하려는 의사가 없었는데, 주최측에서 임의로 자신들의 교회와 자기의 이름을 허락도없이 올렸다면서 변명들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번 기회로 어떤 교회와 목사들이 가짜인지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이젠 발빼봐야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아직 한국에 의식있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에 기쁩니다.
2013-11-04 23:49:00 | 김상진
한눈에 알아볼수있게 정리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간 회의에서 논의 된 내용을 보니 더 놀랍네요. 정신 바짝차리고 깨어 있어야 겠다는 생각과 말씀안에서 단단하게 하나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3-11-04 10:45:34 | 김혜순
그당시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기는 하나 좀 꺼림칙하게 여겨졌는데 이글을 읽고나니 잘 이해가 가네요. 예전에 어떤 목사님은 페이스북에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로 이 영화를 언급하셨길래 이건 좀 아니지않나 싶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2013-11-04 03:37:01 | 레베카 키
샬롬!   성도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광일 형제 입니다. WCC 실체에 대해서 대략은 아시겠지만 요즘 한국교계가 WCC 10차 총회사건으로 인해 떠들석 하여 많은 분들이 질문과 생각들이 있으신것 같아 조금이나 제 의견을 써서 성도여러분의 유익을 드리고자 합니다.   1. WCC 지난 총회를 통한 사악한 열매들   1차 회의(1948.8.3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공산주의는 가난과 불완전으로부터의 구원의 수단 (용공주의) 2차 회의(1954.8 미국 에반스톤) :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 시키기 위한 world community를 위한 투쟁 3차 회의(1961.7 인도 뉴델리) : 마르크스주의는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필수이념이라는 성명서 채택                                          (종교다원주의,혼합주의시도, 해방신학)   4차 회의(1968.7 스웨덴 웁살라): 혁명가(게릴라)들에게 지금 지원을 위해 모금운동 시작                                            (공산 게릴라 지원) 5차 회의(1975.11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 마르크스 게릴라 운동 묵인, 각기 다른 성생활 묵인 6차 회의(1983.7.24 캐나다 벤쿠버) : 오직 예수를 부인, 종교다원주의(예수 믿지 않아도,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주장)예수이름 배제운동 7차 회의(1991.2 호주 캔버라) : 무속신앙 접목, 범신론적 종교혼합주의 8차 회의(1998.12.3-4 짐바브웨 하라레) : 일부다처제 주장 및 촉구&묵인 9차 회의 (2006.2.14-23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 성적 소수자들(동성애자들)에게도 성직을 허락하는 제도적 구조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동성애 성직자 지지 2. 사악한 WCC를 따르는 자들은 과연 구원받은 자들 이었을까요?   올바른 성경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단번 속죄 영원한 구원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WCC에 가입한 수많은 목사들은 구원이 취소되는 것인가? 아니면 처음 부터 구원받은 적이 없는 종교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종교지도자였을 뿐인가? 아무리 그래도 인상도 좋으시고, 인품도 좋으시고, 훌륭한(?) 신학교에서도 공부하시고, 사랑(?)이 넘치시고, 인간적으로 너무 좋으신 분들인데...혹시 평신도인 내가 WCC를 잘못 알고 오해하고 있는 것인가?... 이밖에 수많은 질문들과 헷갈림들이 이번 WCC10차 총회사건을 두고 한국 교계를 떠들석 하게 하고 있습니다.   3. WCC찬성= 배도 혹은 배교 인가? 배교하면 구원 취소되는가?  이 문제는 어려워 보이지만 의외로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 됩니다.WCC찬성(옹호)= 떨어져 나가는 일(배교)인가?   살후2:3...(중략)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며 그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배교는 살후2:3에 나오는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적용되는 시점이 지금이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지금이다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연속사건일지 일정기간 유예기간이 있은 후에 있을지는 지나친 추측이 될것 같습니다.) 저 죄의 사람(=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야 주 재림 사건(=그 날)이 발생하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이 말씀에 적용시키는 것은 다소 억지가 작용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말씀에서 이 세대를 향한 주님의 경고와 교훈은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내가 잘못 알았다. WCC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면...두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 1) 그가 처음엔 올바르게 구원받은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크신 징계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자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했고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치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능성 2) 그는 처음부터 구원받은 적이 없는 종교인이 였을 가능성 입니다. 그런 종교인이 WCC찬성이니 어쩌니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4. 이시대를 말씀에 비춰보면..   살후2:10...(중략)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         1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12    이것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그들이 다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   물론 위 말씀이 적용되는 시점이 지금은 아니지만 이 말씀에서 주님께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지혜와 교훈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WCC를 추종(겉으로든 혹은 중립적이든 관계없이)하는 자체가 이미 본인이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는 자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찌 해야 할까요? 살후3:1-5에 그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말씀을 정리해보면...   5. 배도하는 한국 교계의 해결책!!   1)주의 말씀이 너희에게와 같이 자유로운 행로를 가져 영광스럽게 되어야 함.   [ 온전히 보존되어 우리글로 손에 들려주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잘못된 교리의 뿌리들을 모두 파내고 올바른 교리를 심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더욱 자유로운 행로를 가지고 한국말을 쓰는 우리 민족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면 그 일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2. 또 우리가 부당하고 사악한 자들에게서 건져지도록 기도하라.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아니하니라. [우리가 아무리 올바른 성경을 갖고 있다 하여도 사악한 무리, 사탄의 무리들은 눈에 불을 키고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간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올바른 성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올바른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바른 성경을 소유하고 있으니 나는 올바른 자이다 라는 환상은 대단히 위험하겠지요.]   3. 그러나 주께서는 신실하사 너희를 굳게 세우시며 악으로부터 너희를 지키시리라.   [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실 것이니, WCC아니라 그보다 더 무서운 세력들이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요. 다만 우리가 "너희"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사람이어야 하겠지요.]   4. 명령하는 내용들을 행하고 행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  [행위 구원이 아니라. 진리안에서 진리에 입각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5. 하나님을 사랑하고 , 인내하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기   [ 이 배도의 시기에 우리가 할일이 뭐 있겠습니까?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시대의 죄들에 대해서는 담대해 주님의 마음으로 경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잘 안듣고 무시하고 오히려 경고의 나팔수들을 역공격할 거라 뻔히 예상됩니다. 인내해야겠지요. 주님 다시오기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이 시기에 한국 교회를 위해서 , 우리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숙한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어서 오세요!! 아멘!
2013-11-04 00:50:44 | 오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