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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믿음의 형태가 단순히 발생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참 어려워요ㅜㅜ 요번 주제는 선생님 없이는 소화하기 힘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교제하시고 적어 내려가시는 자매님들 대단하십니다~~
2018-12-10 08:29:09 | 김세라
이런 아이디어를 내서 추진한 선생님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 마음이 쑥쑥 안 큰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어요~ 울 선생님들 대단하세요. 새싹들에게 바른걸 심어주셔서 고맙습니다아~
2018-12-09 17:32:10 | 목영주
12월 2일 첫주에는 유년부 친구들의 TMS 3분 스피치가 있었습니다.우리 유년부 친구들이 열심히 준비했고 못 나오는 친구들도 따로 영상을 보내주어대부분의 아이들이 참여하였습니다.평소와는 사뭇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한 유년부 친구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냅니다.^^귀여운 우리 아이들의 스피치를 들어보세요 ♡♡1학년 스피치https://youtu.be/6qwzdDAF-DY2학년 스피치https://youtu.be/-fDbicHyLKQ3학년 스피치https://youtu.be/r94p0L0t93k
2018-12-09 08:13:36 | 주경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권위 안에서만이 가능함을 이 장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인간적 질서와 권위는 전체주의를 낳거나,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권위가 무너지면, 혼란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감소하게 되는 것을 대한민국을 살면서, 역사를 통해서 알게되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고, 다시 10장을 읽어보니, 미국의 교회사를 통해서도 같은 원리를 발견합니다. 결론은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연구하고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바로 세우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가정, 교회, 국가에 속한 개인이 자유와 행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수고하는 사랑침례교회가 오늘도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2018-12-08 09:31:03 | 최재원
성경적인 근본을 지킨다는 것이 변화없어 보여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것이지요. 거룩함을 지켜가며 분별있는 사랑의 균형이랄까~ 채리티 홀은 모든것이 다 아름다워 보여요^^ 엘리가 커서도 외할머니 댁과 교회를 찾아오면 좋겠어요^^
2018-12-07 22:35:16 | 이수영
최근 좌파세력이 대한민국 모든 분야에서 활개를 치고 수도 한복판에서 김정은 찬양대까지 등장했음에도 사법당국과 공권력인 검경은 손놓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에 보수 일각에선 보수주의에 대한 여러 견해를 제시하며 선명성을 제고하려 하지만 기독교인이 공감할 내용은 다소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 중 미래한국에서 '레이건의 신앙과 보수주의'란 제목의 좋은 글이 올라와 공유하고자 글을 쓰며 아래 글은 컬럼 중 인상적인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얼마 전 러셀 커크의 100주년 생일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 샤론선언문을 발표할 당시 주역이었던 몇 명의 보수주의 거목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필자가 이들에게 물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커크와 버클리가 설파한 보수주의를 친구들에게 설명하다 보면 결국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나의 주장을 보게 됩니다. 이게 맞는 겁니까?” 이제 노년이 된 그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보수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323  
2018-12-07 20:06:56 | 정관영
완전한 진리10_ 미국과 기독교가 만나 누가 이겼을까? 제2차 대각성 운동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우리 수중에 있다.-토마스 페인(Thomas Paine)   제1차 대각성 운동 때 부흥사들이 공격했던 것은 교회구조나 학문 자체가 아니라 성직자를 특권계급으로 만들어버린 악습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2차 대각성 운동에서는 교회라는 권위 자체가 “횡포”라고 비난 받았다. 만인 제사장직은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종교를 뜻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복음주의자들도 “인식론적 위기”에 빠져들었다. 미국의 정신을 그대로 흡수했고, 어떤 면에서는 반권위주의적, 반역사적, 개인주의적 관점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이는 기독교 지성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당시의 정치문화에 대해 독특한 성경적 관점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치적 자유와 영적인 자유를 동일 시 했다.   문제는 기독교가 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기독교를 좌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정치 영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것이 무비판적으로 교회에 적용되어 고도의 개인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교회론을 낳았다.   민주주의와 성경의 주제들이 서로 깊숙이 얽히는 바람에 어떤 실질적인 정치분석도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많은 이들이 역사적 교회와 고대의 신조와 신학지식을 거부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각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선포하기 시작했다.당시 대중적 복음주의 진영에서 개인주의적, 원자론적 교회관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는 동등하고 자율적인 개개인이 스스로 선택해서 함께 모이는 집합체였다.   미국에서는 자연상태가 역사적으로 실재한 듯 보였다. 독립된 개개인들 사이에 진정한 자연적 평등이 있었다. 그 결과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정치철학이 되었다. 이로 인해 새롭고 흥미로운 사회관이 생겼는데 이들의 새로운 자유주의에 따르면, 사회구조는 하나님이 제정한 게 아니라 개개인이 자기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했다. 자기희생의 윤리는 자기주장과 자기이익의 윤리로 대체 되었다.   복음주의 자들의 반역사적 태도와 과거를 배척하는 거만한 태도는 대각성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유산으로부터 스스로를 열심히 “해방시키고”있었던 셈인데, 그로 인해 얼마나 빈곤하게 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중적 복음주의가 정치적으로는 토마스 제퍼슨의 시대에, 경제적으로는 아담 스미스의 시대에 번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치 경제 영역에서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엘리트주의와 권위를 배격하는 종교 메시지에 더욱 마음을 열게 되었고, 보통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를 옹호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복음주의자들은 당시에 등장한 근대적인 문화에 비판적 자세로 도전받기보다는 기독교를 근대적 경험의 범주에 맞추려고 개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적 복음주의가 옛날부터 내려오던 죄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했지만, 동시에 그 영성과 교회론은 철저히 근대적 성격-반역사적, 반권위주의적, 개인주의적, 자발적(개인의 결심에 따라 좌우되는)-을 띠고 있었다.   대중적 복음주의 운동 진영은, 지도자를 거룩한 인물로 보던 과거의 모델을 제쳐두고 기업가형 지도자, 곧 사람들을 회심시키는데 유용하다면 무엇이든 사용하려는 실용적 영업자 타입의 지도자를 양산 했다.설교방식도 성경본문에 대한 강해가 교인의 절실한 필요를 다루는 주제설교에 밀려났다.   당시나 지금이나 이 같은 기계적 의식구조의 자연스런 결과는 복음에 대한 신실한 태도와 사역자 개인의 덕이 아니라 숫자의 영향력으로 성공을 측정하려는 경향이다.   부흥사들 가운데는 완고한 지도자가 흔했고, 결국 자기들이 비난하던 전통교단의 목회자들보다 더 독단적이고 강력한 통제권을 휘두르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전통신학의 구조에서 벗어나라고 격려했던 매력적인 지도자들이 결국에는 그 그룹 내에서 권위주의적 리더가 되고 마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선동가에 버금가는 존재가 되었다.   쉬운 언어와 정서적 호소를 통해 부흥사들은 광범위한 계층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은 “마음의 종교‘로는 19세기에 부상한 지적인 도전들-특히 다윈주의와 고등비평-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우리시대 북미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장 지배적인 형태는 대중적 복음주의이다. 미국의 모든 종교에서 복음주의 패턴이 주류가 되고 있다. “개인화와 개인주의는 강화되고, 교리와 경건은 약화된” 패턴을 일컫는다. 어쩌면 우리는 “점차적으로 교리가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앨런 울프가 말하듯, “종교생활의 모든 면에서 미국의 신앙과 미국의 문화가 만났고, 미국문화가 승리를 거뒀다.”만일 우리가 복음주의의 유산가운데 최상의 것을 보존하기 원한다면, 냉정하게 그 약점까지 검토하고 개혁을 일으킬 지혜와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매님들과 나눔 이야기♥   * 미국 복음주의 역사를 통해 왜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적 세계관 전통을 지키지 못했는지, 또한 한국교회에서 드러나는 고질적 문제의 근원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 전통적 성직자들은 지적 가르침과 신학적 성찰 등 지성주의에 바탕을 둔 반면, 대중적 복음주의로 양산된 부흥사들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파워에 집중함으로 성경적 교리와 진리에 부합된 가르침이 결여되었음을 통해 바른 요소들의 균형이 필요함을 볼 수 있다.   * 역사를 거슬러 우리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할 때, 우리의 신앙적 전통을 세우고 이어갈 수 있다.   * 교회와 성도들은 지, 정, 의를 골고루 균형을 이루어 갖추어야 한다.각자가 어디에 치우쳐 있으며 취약한 부분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 1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의 배움을 바탕으로 이 시점, 좀 더 우리 교회가 보완하고 가야하는 부분을 온 성도가 책임감을 갖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체험을 강조하고 보여 지는 신앙을 중시하는 교회들의 가르침과 분위기를 통해 빈곤한 영적인 삶을 고스란히 경험을 했었다.   * 성경적인 가르침을 통한 나의 삶의 지침을 얻고자 했으나, 사실 그러지 못했던 지난 믿음의 여정이 있었다. 우리교회는 그렇다면 복음주의로 받은 영향이 어떠한 것이 있을지, 미국 복음주의의 잘못된 잔재가 우리 안에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 이었다.   * 우리교회의 믿음은 영적 체험(존중 하고 믿으나)은 있으나, 이것을 표면화 시키지 않는다.   * 그리스도인에게는 각자가 속한 교회의 믿음이라는 것이 있고, 개인의 믿음이 있다. 여기서 개인의 믿음이 영혼의 자유인 것이다.개인의 믿음을 이해하면 서로를 존중하고 화평한 교회와 믿음생활을 할 수 있다.   * 우리가 기도회를 할 때도 합리적인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의식 있는 기도가 필요하다.   * 우리교회의 공동선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과 더불어 각자가 맞춰 나가야 할 부분이 있음을 염두 해야 한다.   * 미국의 복음, 자유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나 개인적으로 있었으나, 개인의 성향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으로 오는 부작용을 보며 신앙적 균형이 중요함을 느꼈다.   * 오늘날 크리스천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많다. 지성을 나누고 복음의 총체성을 다시 구축하고 회복해야 한다.   “ 한파가 시작된 겨울 아침, 체리티 홀에서는 최고의 다과상이 차려졌어요. 가정에 있는 예쁜 찻잔들을 기증해주신 자매님들 덕분에 티 라이트에 티 포트까지 구색을 맞춰 격조 높은^^ 자매모임을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공부보다는 담소 나눌 분위기라 집중하는데 힘들었지만, 이내 또 진지한 교제에 집중하는 자매님들입니다.   갖가지 반찬이 모일 때 역시 설레이는 밥상이 차려지네요. 각자 준비해온 반찬들로 뷔페가 차려지고 미국서 뱅기타고 할머니댁에 온 엘리아가씨도 맛나게 식사교제에 동참합니다^^김희분, 김세연 자매님께서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인 뜨끈한 된장국으로 명품 밥상을 완성 하셨네요. 섬김에 감사드립니다.“   부천에서 오시는 신현미 자매님의 직장 동료이신 조희수 자매님께서 지난 주일 예배 첫 참석 후 자매모임에 함께 해 주셨어요. 환영합니다♥    
2018-12-07 18:40:21 | 장영희
언젠가도 믿음이의 편지가 소개되었던가요? 그 때도 어린 학생의 성숙함에 놀라서 믿음이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쩜 이리도 예쁜지요. 한참 공부에 몰두해야할 시기에 많이 다쳐 여러가지로 어려울텐데..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의 믿음이 참으로 귀하게 다가오네요. 얼른 낫고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 형통하길 바랄께요. 믿음이 화이팅!
2018-12-07 17:19:01 | 김상희
믿음이가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photo2&write_id=4398#c_4405 여기 있군요. 어린나이에 큰 부상을 당해서 얼마나 낙심 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현대 의술도 좋으니 100% 정상 생황를 할 수 있을거예요. 그리고 기술이 좋아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고... 담대하게 어려움을 이기고 나면 한층 더 성숙한 숙녀로 자라나는 기초가 되겠지요. 모든 사고는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믿는 우리는 그런 일에서도 배움을 얻습니다. 낙심치 말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과 사회에서 중추적인 인물이 되길 기도합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고후 5: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확신에 차서 우리가 몸 안에서 집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로부터 떨어져 있는 줄을 아노니 7,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2018-12-07 12:20:59 | 허광무
고2 학생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아요. 자신을 돌아보는 아름다운 심성과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훌쩍 커버린 믿음이가 정말 대견합니다. 빨리 회복되여서 보고싶은 사람들과 함께 마음껏 주님을 찬양해요.
2018-12-07 11:54:56 | 김영익
매주마다 알차고 서로를 깊히 알아가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여 너무나 좋아보이네요.. 앞으로 이 지역을 표본으로 삼아 많은 지역에서도 활성화가 되면 좋을거 같다란 생각이 듭니다^^
2018-12-07 11:45:57 | 엄인호
세상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에도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믿음이의 고백을 읽으며 무엇 하나 허투루 허락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란 걸 느낍니다. 믿음이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2018-12-07 11:43:09 | 심경아
믿음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skype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들었어요.. 손자매님과 믿음이가 주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니 신실하신 아버지께서 고아처럼 두지 아니하시고 순간순간 이 가정에 크신 사랑을 베풀어주시네요..손자매님께서 간혹간혹 들여주셨던 간증도 너무나 은혜스러웠는데 믿음이의 간증과 믿음으로 큰 은혜 받습니다.. 시험도 잘 치르고 수술부위도 잘 아물어져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믿음아~~♥
2018-12-07 11:31:52 | 엄인호
(빌 4:13)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받아 들일 때 그 성도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에 또 한번 되짚어 생각합니다. 로라윌킨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지기를 소망하면서, 믿음 자매도 얼른 건강 회복하고 좋은 얼굴로 교회에서 즐거운 교제 나누시기를 기도합니다. 좋은 편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12-07 11:28:39 | 이명석
이렇듯 감동과 도전을 주는 믿음이의 신앙고백이 눈물없이는 읽을수가 없군요.빠른회복으로 만날수 있기를 바래요.온 가족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교우들에게 힘이 되고 귀감이 됩니다.
2018-12-07 11:14:41 | 김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