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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이념에 동조하는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을 편의상 좌파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좌파 그리스도인이 존재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동조하는 것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정신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 평등 평화 정의 이런 것들은 성경이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이고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기에 그것을 말하고 실천하려고 애쓰는 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이런 그들에게 요즘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애국 강연 영상을 보내면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이런 거 보내지 마십시오. 나는 문재인정부 지지자입니다." 나도 한때는 촛불집회가 옳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씀의 기준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고 막연히 무언가 그 정부가 일을 제대로 못하고 소통도 못하는 데 대한 반발심에서였다.  하지만 왜 그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에 대해 말씀에 근거해 듣는 동안 나의 생각이 바뀌고 교정이 되어 이제는 분별이 가능하고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졌다. 북한 탈북자들이 남한에 넘어와서 듣게 되는 한국의 역사가 너무 생소하고 믿기 어려워서 너무 당황스러워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은 날 때부터 조작된 역사를 배우고 일방적 사상을 주입받는다. 그들이 가진 세상은 그것이 다다. 무언가 다른 애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개심을 품게 된다. 그것이 바로 교육의 효과가 아닌가?  그러나 그런 그들이 그들이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났을 때 의문을 가지고 모든 역사를 새로 배우고 깨우치고 알게 될 때 그들의 생각이 비로소 교정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이 고백한다. "속아서 산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 남한에 남아서 생활한 우리는 어떠한가? 역사의 팩트는 배웠어도 그 해석을 어떻게 배워왔던가를 돌아보면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서서히 그리고 교묘하게 왜곡 해석된 역사를 배워왔고 우리의 현대사에서 독재라는 필수악을 경험하면서 원래 대한민국이 기초했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경멸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좌파든 우파든. 우리 인간이 얼마나 완악하고 자기중심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품성을 지닌 "죄인"인 것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해져야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지는 죄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발견되는데 어찌 그 눈을 저 땅 끝에 두고 지혜를 찾으려 하는가? 잠언은 반문한다.  
2018-09-20 10:14:04 | 박혜영
  어느새 날씨가 선선해졌어요.하늘이 예쁘니 구름도 예쁘고나무들도 더 예쁜 것 같아요.요한복음 4장을 한 자  한 자 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천천히  생각하니 벅찬 감동 그 자체입니다.그래서 성경 쓰다가  잠시 감사기도 하였습니다.요한복음 4장14 누구든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줄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그 사람 속에서 >오늘은 갈증을 적셔주는 물을 보며 사람 바깥의 물과 사람 속의 물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영혼을 적셔주는 물이 솟아나오는 생명수를 묵상하였습니다.요한복음 7장37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신 물을 감사하며 시로 표현해 보았습니다.물/이정자예수님께서 주신 물은얼마나 시원한지 눈이 번쩍 뜨여진다.숨이 크게 쉬어진다.그 사람 속에서 우물이 된다.달려가서 마시고달려가서 마셨던 세상의 비싼 물들은새벽안개처럼 사라져도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신 물은터지고솟아나고흘러가서강물을 이룬다.그 사람속에서 영원히 흐른다.오늘도 복된 하루 되시길 바랄게요.♡
2018-09-12 12:29:17 | 이정자
^^ 자매님의 상황과 마음들이 일고 내려가면서 또다른 제 마음의 한부분과 고민들을 털어놓은 것 같았네요. 옆에서 이야기 해주듯 표현해주시니 함께 공감하고 같은 감사도 누려봅니다. 참새 돌보시는 주님! 나를 늘 돌보시네~!
2018-09-10 23:37:58 | 주경선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십자가 아래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인도하는 것은 성경이지만 단단한 음식은 소화하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의도를 잘 이해하도록 제대로 잘 설명하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인도자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교과서도 각기 다른 것으로 배우니 다른 사고가 정립이 됩니다. "조금 다르고, 좀 빠진 것이 있은들 어때?" 글자 한 글자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는 것과 바른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2018-09-05 15:01:39 | 이수영
아이들 키우면서 전에는 동기부여 또는 기운나게 해 준다는 명분아래 하나님 말씀과 세상 중간쯤 걸터서 키웠었구나 회개한 적이 있습니다. 바른길..하나님 뜻이 분명히 무언지 알려준 사랑침례교회가 그래서 더욱 소중합니다~
2018-09-05 13:51:47 | 목영주
나는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설 때 가끔씩 옛날 일이 생각날 때가 있다. 좀 오래 된 일이긴 하지만 그 날도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파란불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길을 건너고 있는데 차가 빵빵 거렸다.  난 순간 " 왜들 이리 급한 거야."  투덜거리면서 앞 신호등을 보니 아니 빨간불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황급히 되돌아 나오게 되었다.  사정은 이랬다. 그 날따라 내가 바빴던지 나는 앞에 있는 신호등을 봤다가 차 진행 방향의 신호등을 봤다 번갈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차들이 언제 멈출 것인가 차 진행 방향의 신호등에 몰두하다 녹색불이 들어오자 보행 신호등으로 착각한 채 건너게 된 것이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요즘 들어 대한민국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딱 이 생각이 든다.  특히 내 주위의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친구들이 가진 생각들을 들여다 보면 더욱 그러하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종교다원주의 등등 좌의 생각과 하나님의 오른쪽의 생각이 확연히 다르다. 다를 뿐 아니라 결코 섞일 수 없다. 말하자면 보행자 신호등은 보행자 신호등이고 차 진행 신호등은 차 진행 신호등이지 섞일 수 없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몸은 주일 예배 꼬박꼬박 참석하고 사회봉사도 열심히 하는 선량한 그리스도인인데 나는 인권을 위해 동성혼도 찬성하고 성평등을 위해 남성과 여성의 경계도 없애야 하고 약자를 위해 무상복지도 무조건 찬성하고 사회정의를 위해 촛불도 열심히 들어야 하고 평화를 위해 북한의 인권탄압 정부와도 굳건히 손잡고 미국의 간섭과 압제를 배제해야 한다고 믿고 행동하며 말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말이다. 심지어 이 정부가 경제만 빼놓고 다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에야 할 말이 없다.  몸이 교회당 안에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내가 어느 신호등을 주시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신호등을 보다가  자칫 마귀가 주는 신호등에 정신을 빼앗기면 급전직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으니.  잠언 5장을 보면 신호등을 잘못 보는 치명적 실수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마귀의 신호등이 주는 매력을 한 마디로  꿀과 기름으로 비유한다. 얼마나 달콤한 것을 약속하는지, 얼마나 논리가 매끄럽고 유연한지 한번 거기에 빠지면 꿀통에 빠진 파리처럼 나올 줄을 모른다.  그런데 잠언의 말씀은 그 본질을 쑥과 양날 검으로 비유한다.  그것이 주는 달콤한 약속은 실상은 쓰디쓴 쑥이요 영육을 지옥의 끝까지 가도록 베는 양날의 칼이라고. 한번 그 잘못된 신호등에 몰두하면 만나게 되는 현상은 하나님께 향하는 생명의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없게 되고 또 그 좌의 생각들이 얼마나 변신을 잘하는지 그 잘못됨을 깨닫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잠언의 말씀은 경고한다.  거기에 더하여 어떻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처신해야 하는지 해답도 주신다.  "네 길을 그녀에게서 멀리 옮기라. 그녀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한마디로 네 앞의 신호등을 주시하라.   신호등을 바로 보라고 압축할 수 있겠다.  
2018-09-05 13:30:53 | 박혜영
그분을 아는것과 그분에 대해 아는것에 엄청난 차이점 하나님의 미리아심으로 우리 속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그분의 전적인 은혜, 우리의 완전한 순종 우리는 늘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저 우리를 불씽히 여겨달라고...
2018-09-03 06:10:13 | 김경애
문득 이 시를 읽으며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와 그를 만나시는 예수님의 장면이 떠오르네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거듭 세 번을 물으셨을 때 마지막으로 신음하는 베드로의 고백...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우리가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안다(knowest)는 것, 그것은 베드로와 같은 깊은 회개와 자기 부인의 탄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깨달음일 것입니다. 죄인 앞에 나서신 예수님을 마주하는 베드로의 참담한 심정을 예수님은 오직 그 분만의 특유한 온유함으로 대하십니다. 마치 제멋대로 제길로 가던 길 잃은 양을 온순하게 제압하시는 능숙한 목자처럼.... 그런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의 모든 인간적인 번뇌는 눈녹듯 사르르 녹아버렸겠지요... 우리가 그분을 안다는 것... 그것은 그분의 말씀의 깊은 의미를 안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이는 결코 고백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멘!!
2018-09-03 00:05:13 | 김경민
열왕기상 15장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위하여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예루살렘에서 등불을 주셔서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세우고 예루살렘을 굳게 세우려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족속 우리야의 일 외에는 평생토록 {주}의 눈에 올바른 것을 행하고 그분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어떤 일에서도 돌이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남유다가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등불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어리석은 왕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열왕기상 11장28 그때에 이 사람 여로보암은 강한 용사더라. 그 청년이 부지런한 것을 솔로몬이 보고 그를 치리자로 삼아 요셉의 집의 모든 책무를 맡게 하였더라. 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왕국을 솔로몬의 손에서 빼앗아 찢어서 열 지파를 네게 주리라. 열왕기상 12장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집에서 희생물을 드리려고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그들의 주 유다 왕 곧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가 그들이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 가리로다, 하고 28 이것에 관하여 왕이 의논한 뒤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이 너무 큰일이로다. 오 이스라엘아,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을 보라, 하니라. 여로보암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아히야의 옷을 찢어 열 조각의 나라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너는 우상숭배라.사탄이 웃고 있는 줄도 모르는 우상숭배라.르호보암도 하나님을 알고여로보암도 하나님을 알고이승만도 하나님을 알고김일성도 하나님을 알고그러나 이세상은 두 편만이 있으니 하나님이냐!사탄이냐!자유냐!속박이냐!사람을 만드시고 매우 좋았더라 하신 그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알자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알자하나님의 뜻을 알자대한민국이여!
2018-09-02 08:55:33 | 이정자
   지난날 우리가 서창의 빈 터 위에 날려보낸 소망의 풍선들   하나하나 받으시고 미소 지으신 주님!   말씀으로 풍랑 이는 바다 잔잔케 하시고   죽음의 돌 문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 외치신 주님 음성 오늘 응하여   사랑침례교회 서창캠퍼스 시대 열게 하셨으니    온전한 감사와 영광 주님께 돌리나이다    참새 돌보시는 그 주님의 은혜 하나하나 임하는 것 볼 때마다   우리 모두 놀라움으로 감사하였고   태풍의 길도 바꾸시며 빗줄기도 억제하시는 세세한 손길   주님의 그 사랑 눈으로 보게 하시니 더욱 감사하였나이다    우리로 생명의 빛 보게 하시고 영원한 아버지의 상속자로 삼으신 것도 작지 않은데   이 역사의 끝자락에서   어둠의 광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이 대한민국에서   사랑침례교회 작은 양 무리로 모이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따르게 하셨으니   그 사랑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리요    주님!   이 흑암의 땅 위에 사랑침례교회를 시대의 표적으로  굳게 세우사   분명한 소리를 내는 주의 나팔 되게 하소서    "겁내는 이들은 돌아가라, 이제라도 돌아가라"   기드온의 수만 군사도 많다 하신 주님   이제 우리로 기드온의 삼백 용사 되어   "사랑침례교회여 외치라!" 하실 때에   우리의 질그릇들을 깨뜨리고    킹제임스흠정역 바른 말씀의 횃불 높이 들고 크게 외치게 하소서    주님!   우리 모두 주 안에서 하나 되어   끝까지 함께 나아가게 하소서   저 시온의 대로의 끝에 찬송 받으실 주 앞에 이를 때까지      
2018-08-27 15:33:16 | 박혜영
자매님의 책 리뷰를 통해 저도 보고 배우게 됩니다^^ 저도 감리교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입교를 했는데 사랑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라면 아마도 재미없을 것 같아 선택하지 않았을 책 같은데 자매님의 생생한 독후감으로 함께 유익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08-27 09:41:07 | 백윤정
    제목 : 침례의 중요성 저자 : 스탠리 E. 앤더슨           이요한 옮김   <저자 소개>   박사는 테네시주이 미네아 폴리스에서 성경학교를 마치고 잭슨시 대학교에서 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시카고 북침례교 신학대학에서 신학사 및 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세계 2차대전 때 군목으로 참전한 2년을 제외하고는 미국 중서부 및 서남 지역에서 목회자로 봉사했다. 1951년 이래 그는 북침례교 신학대학교의 통신 강좌를 담당해 오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는 다음과 같다. Every Pastor a Counsellor, Nehemiah the Executive, Shepherds to 24,000,000 Service Men, and is Rpme the True Church?   <독후 감상>   저자는 머리말에 침례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정확하게 '성경이 말하는 바"를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성경이 말하는 바..... 하나님의 말씀에 비중을 두는 저자의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는 천주교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유아세례를 받았고, 형제교회에서 죄인이라는 것만 깨달은 채 계곡에서 침례를 받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그리고  그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제거해 주셨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부활의 산소망을 갖게 해주심을 기뻐하며 맑은 정신으로 경건하게 사랑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다시 받았다. 그래서 침례에 대해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더 알고 싶고  나에게 많은 유익이 될 것 같아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알기에 침례는 물에 잠기는 의식 그리고 세례는 이마에 물을 끼얹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헬라어 '밥티스마'를 음역하여 "Baptism(뱁티즘)"이 된 것이 우리나라에서 "세례'로 번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한다. '침례'와 '세례' 이 두 말이 바로 꼭 같은 '밥티스마'라는 말을 두고 번역한 것임을 강조하며  본래의 뜻을 볼 때  '침례'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도 보면  '뱁티즘이 물에 잠기는 의식임을 증거하는  말씀의 사례도 많이 들고 있다. 마3:16, 행 8:39, 요 3:23, 골 2:12, 벧전 3:20.21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하나님께서 침례를 강조하심부터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침례의 의의, 침례가 내표하는 의미.....  10장인 침례와 교회 진리등 아주 방대한 자료들을 통해  성경에서  침례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저자는 그 정확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얼마나 노력 했는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느껴졌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심에 있어서 서북 팔레스타인에 있는 나사렛으로부터 서남 팔레스타인에 있는 요단강까지 100킬로나 되는 길을 침례 받으시기 위하여 걸어오신 부분이다.  나는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주기를 요청하며 하신 <모든 의>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여 보기도 했다.   마태복음 3:15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또하나 흥미있게 봤던 부분은 침례를 아름다운 결혼식에 비유하는 것이다. 결혼식이 서로가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을 상징한다면  침례는 회심하여  전 생애를 그리스도께 바치는 서약이며 구원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7장에서는  침례에 있어서 몇 가지 공통적 오류 중에 <침례와 세례의 비교>가 나오는데  이 부분은 물뿌림 또는 물붓기(세례)와 물에 잠김 (침례) 에 대하여 성경의 말씀은 어떤지 조목조목 비교를 해서 내가 궁금했던 부분들이 명확하게 설명이 되어있음에 아주 유익이 되었다.   이 침례와 세례에 대하여 한 침례교인이 네 시간 동안 유아세례론자와 토론을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 아멘! 소리가 절로 나왔다. 500명 밖에 안되는 마을에서 1,300명 정도 모였고 그중 침례교인의 15배가 유아세례론자였음을 볼 때 이 토론회는 어떤 분위기였는지 알 만 하다.   "나는 침례에 관한 당신의 전도지를 보았소. 그런데 나는 당신의 몇 가지 틀린 점을 지적해야 하겠소. 당신은 나와 이 문제에 대하여 토론할 생각이 있소?"   ""물론이지요. 그렇게 합시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싶어요." (지금이야말로 새롭게 터득한 침례교회 교리를 도마 위에 올려 놓을 절호의 기회라고 그는 생각했다. 토론을 요구해 온 사람은 한 신학교의 전직 교수였다.   이 토론회를 보며 나를 돌아봤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이 책은 침례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게 해 준 백과사전같은 책이지만  내가 영적으로 더 무장해야 한다는 각오도 갖게  해 준 갑옷같은 책인 것 같다.                
2018-08-26 09:28:19 | 이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