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내어드리면 드릴수록 생활이 점점 더 open되어짐을 느끼며, 성령님께 맡겨지니 전보다 더 성실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두 딸내미~ 예수님과 동행하는- 진실되고 안식된 삶을 어렸을때부터 맛보게 해주신 하나님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013-09-23 09:39:30 | 목영주
이 아침에 자신을 솔직히 내어 놓은 진실한 글을 세상을 한껏 만끽하며 살 수 있는 젊은 형제님으로 부터의 고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교회를 바른 교회로 인도하고 있는 모토라 생각합니다.
소심과 위선...사이에서 고민하고 점검하시며 마침내 글을 올리는 분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어제 설교중에 저는 우리 성도들이 가장 인간적이어야 하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앞으로 이 30대가 바로 그런 분들이 되어 교회를 잘 이어갔음 좋겠습니다.
감사해요.
2013-09-23 08:23:33 | 오혜미
몇 년 전에 고스도치 한 마리를 잠깐 키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고슴도치는 귀여웠지만 무척이나 경계심이 많았습니다. 만져보려고 하면 가시를 세우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날 며칠을 '도치야' 라고 부르며 사료를 주다보니 가시를 세우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한 달여 정도 지나고 나니 고슴도치는 저의 목소리만 들어도 주인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더 이상 가시를 세우는 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목소리만 듣고도 자신의 집밖으로 나와 저의 손바닥 위로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고슴도치라는 작은 동물이 주인을 알아보는 것이 저에게는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기뻤습니다. 저는 그런 고슴도치를 보면서 '짜식 이제야 철이 들었네~~' 라며 녀석의 기특함을 칭찬했던 적이 생각이 납니다.
그 고슴도치를 생각하자니,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이 혹시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 말입니다. 돈으로도 명성으로도 아닌. 오직 하나. 그분을 주인으로 섬겨드리고 인정해드리는 것. 그것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닐까? 라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어봤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내 신앙생활을 뒤 돌아 보게 되었는데, 참으로 교만한 한 사람[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여느 이교도들처럼 돈으로, 명예로, 봉사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적인 가짜 하나님 앞에 기꺼히 노예가 되는 것을 스스로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오면서 동시에 타인과 비교해가며 정죄하는 교만한 인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남들은 십계명을 중시했지만, 그 사람은 한 가지를 더 보태서 십 일 계명을 만들어 놓고 그 중에서 십 일 계명을 최고의 덕으로 삼고 살아왔음을 하나님 앞에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십 일 계명은 바로 ‘들키지 말아라!’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분을 주인으로 섬겨드리고 인정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우리 인간에게는 구원이 되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 자체가 우리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 그런데, 이것마저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다는 것은 정말로 은혜 중에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묵상하니 하나님께서 마치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나만 믿어. 그래야 살아. 너희가 살아야 내가 기뻐.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기쁨이고 영광이야. 내가 문을 열어놨잖아<계 3:8>. 그러니까 너희는 들어오기만 하면 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잖니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살꺼야<계 3:20>. 아들아! 우리 영원히 함께 살자..,”
나 같은 것이 뭐라고.., 우리 인간이 뭐라고..,
새삼, 그런 은혜를 이미 누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묵상한 순간 스스로에게 던져진 한 가지 질문으로 부터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과연, 나는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시며 철든 자녀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최근에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 제목과 내용들이었습니다. 그 기도들을 떠올리기 위해서 잠시 눈을 감아봤지만(솔직히 눈을 감기도 전에 답은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내 유익을 위한 기도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필요할 때만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내 주인은 분명 하나님이셨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필요에 의한 하나님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믿음 좋다는 말도 나름 들었고, 또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자부해왔는데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그런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니 스스로를 평가하는 네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바·리·새·인’
그런 저의 모습을 보니 저는 마치 ‘고슴도치형 인간’인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고슴도치보다도 철이 덜든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다가도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나 삶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인에게 가시를 세우며 따지고 드는 그런 철없는 고슴도치형 인간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그런 철없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저에게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롬 8:38-39>. 그 은혜는 십자가 사건 만큼이나 신비 중에 신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롬 8:27>
그 감사에 내 혼의 주인이 되어주신 주님의 신비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리며 마땅히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고개도 쳐들지 못한 채 몇 마디 말씀을 드려봅니다.
(주님. 저는 아둔하여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어 내 힘으로 주님께 뭔가를 해드리려고 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생각만으로 주님을 섬길 뿐, 몸과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습관을 쫒아 주님께 온전히 드려지지 못하고 있네요. 그러나 주님. 정말로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서 저에게는 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안계시면 어찌 할 뻔 했는지 아찔함을 느낍니다. 가끔은 가시로 주님의 마음을 찌르는 못된 짓을 하지만 여전히 참으시고 지켜주시는 주님께 그저 고개를 숙일 뿐 무엇을 해드릴 수도 없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끝 날까지 버리지 않고 함께 해주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힙니다. 드릴 것은 여기 눈물만 있으니 눈물이라도 받아 주실련지요~~)
쑥스러운 묵상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글을 올렸지만, 소심하여 삭제했다가 다시 올립니다. 이 교회와 여러 지체들 그리고 귀한 목사님을 알게 된 것이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샬롬.
2013-09-23 00:55:35 | 김상진
한 편의 멎진 시를 읽었습니다.
꽃 보다 사람이 아름답지 못하는 이유.
크게 공감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3-09-23 00:54:47 | 김상진
이 글을 읽고 나니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 좋아 했는데 달리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 소개 하신것 처럼 어쩜 글을 이렇게 아름답게 쓰시는지....
형제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좋습니다.
2013-09-22 21:55:32 | 김혜순
이런 모임후여서 오늘 점심 식사후 교제를 더 정겹게 나누셨군요^^
심히 부러운 모습입니다.
이런 소모임이 활성화 되면 훨씬 더 친밀해 지고 가족같은 느낌이 많이 생길것같네요.
2013-09-22 21:51:13 | 김혜순
명절때 친척들이 모여도 TV와 스마트폰 게임등으로 각자 시간을 보내는 시대에 정통 윷놀이가 너무 재미 있었습니다. 문영석형제님과 이수영자매님도 다음에는 함께 윷을 던지러 오세욤. ^^
2013-09-22 19:25:26 | 최호준
청년들 부럽네요.
모이면 헤어지기 싫었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딱히 심각한 주제가 아니어도 한 성령안에 있음으로
참으로 즐거운 시간들~
그릴을 처음 사용해 본 소감이 어때요?
행복한 느낌이 부러움을 부르네요
근데 사진 속의 글이 너무 복잡혀요..개인적으로.
2013-09-22 07:15:20 | 이수영
정말 오붓한 명절모임이네요.
단촐하니 친밀감도 진해지고 교제도 깊고
가까이 사시는 행복이고
적극적으로 준비해 주신 분들 덕분에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간이었겠지요?
명절 끝날 뒤풀이가ㅡ참 좋습니다^^
2013-09-22 07:10:39 | 이수영
부럽다~~~~~~~~~
2013-09-21 23:54:13 | 문영석
잔잔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주마등처럼 과거가 생각나게 합니다.
좋은글 감사하고 저도 늘 배움을 갈망하는 학생처럼 열심히 신앙을 해보렵니다...
감사합니다
2013-09-21 23:49:29 | 문영석
아~~` 이런일이
함께하지 못함 아쉬움이 진하게 전해옵니다...
교회에 갔더라면 2등은 내꺼였는데 정말 아쉬움이 남습니다.
즐거운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저는 오늘 과거 다녔던 몇몇 지체들과 열띤교제를 했습니다..
2013-09-21 23:37:56 | 문영석
CBCK소식은 정말 신속하네요.^^ 원래 계획은 다음주 토요일에 찐하게 바베큐 파티를 펼쳐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학원 개강일과 겹쳐서 급하게 명절뒤 오늘 윷놀이로 변경했슴다.
명절을 명절처럼 보냈던 기억이 아득했는데 너무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최상기형제님께서 약속하셨던 호박식혜의 자연의 달콤함은 맛을 보지 못하신 분들은 상상을 못하실 겁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2013-09-21 23:17:13 | 최호준
오늘 오후4시, 교회 11층에 추석연휴가 끝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 하며 6가정이 모여서
주안지역 윷놀이 대회를 했습니다.
푸짐한 상품을 놓고 열띤 윷놀이를 펼친 결과 김병호 형제님, 임경숙자매님
팀이 우승을 하였습니다. 특히 결승전에서 거의 질뻔 했는데 김병호 형제님이
한꺼번에 모를 5번이나 하면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기적을 보는 듯 했습니다.
윷놀이후 맞은편 중국집에서 목사님 사모님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들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래도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분들은 교회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목사님과 신앙의 교제를 나누다가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세밀하게 모임을 준비해 주신 최호준형제님 감사합니다.
2013-09-21 22:18:11 | 관리자
우왕~~~~ 아직 옥상 바닥을 밟아보지도 못했는뎅..ㅠㅠ 왕 부럽! 왕 부럽! ... ^^
* 송도신도시 G-Tower 29층 부페(실은 간단 구내식당) 강추합니다.
-평일 구내 사무실이 오픈할 경우에만 오픈하는 구내식당입니다. 누구나 이용이 가능합니다. 식비 5천원입니다.
-식당내에서 원두커피 자판기(300원) 뽑으셔서 테라스에서 한잔. 전망 좋습니다.
-29층 엘리베이터 내려서 바로옆에 식권판매자판기에서 식권을 구입하신뒤 입장.
-점심: 11시반~1시반 저녁: 5시~7시.
* NC cube(카날웍) 천천히 걸으시면 재밌습니다.
2013-09-21 21:25:53 | 최호준
# 나는 꽃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지루하게 길었습니다.
장마가 7월 한 달 동안이나 오락가락 이어지더니 장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기다리고 있던 무더위가 8월 한 달을 무섭게 달구었습니다.
그러나 계절의 바뀜이야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8월의 달력을 떼어내자 벌써 아침저녁 바람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지난 두 달 동안 비도 왔고 너무 더워서 하지 못했던 운동을 하리라 마음먹고
가벼운 복장으로 동네 뒷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 동네 뒷산 길은 내가 이곳에 살기 시작한 이후 계속 올라 다닌 길입니다.
이제는 낯이 익을 대로 익어서 오름세며 내림세가 한 눈에 환합니다.
길목마다 서 있는 나무들의 크기며, 심지어 풀 한 포기의 모습까지도 눈에 익어
이름이라도 지어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동안 못 보았다고 여간 새롭게 반기는 것 같지 않습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길가의 이름 모를 잡풀들은 또 그것들 나름대로
모두가 반갑다고 손짓하고 어찌 그리 오랫동안 뜸하였느냐며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나 풀들도 모두가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하긴 꽃과 나무와 풀들이 거기서거기지 무슨 특별나게 다를 게 있으랴 만은
자연이 아름답다 함은 꽃과 나무와 풀들과 바위덩이까지 포함해서 이르는 말이기에,
이제 막 긴 여름의 무더위를 견뎌내고 가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산 전체가
한 덩어리의 꽃밭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한 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걸으며 뜻밖에 문득 깨닫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니, 오랫동안 한 마디 말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던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어떤 의미를
이제야 비로소 한 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는 왜 문학을 좋아하는가?”라는 것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이끌어내지 못하였던 것처럼
나는 왜 문학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정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왜 문학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과는 달리
삶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에 그 답은 이미 내 속에서 정리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문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내 속에 없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얄궂게도 내 속에 있는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를
한 마디 말로 속 시원하게 표현해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연인 이었던 아내가 “왜 나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딱히 답할 말을 찾지 못하여 그건~그건~ 하였듯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답을 한마디 말로 정리하여 끄집어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이런저런 단편적인 답들을 끄집어 내 보기는 하였지만 만족한 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장 만족한 답을 오늘 오랜만에 뒷산에 오르다가
꽃처럼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보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떠오르듯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문학은 나의 희망사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나에게 문학이란 참으로 희망사항이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사랑해온 문학이란, 남의 글을 통해서 읽은 많은 문학작품들과
그리고 마침내 내 손으로 쓴 이런저런 글들의 모든 내용들이
한마디로 나의 희망사항들이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쓴 글들은 모두가 나의 희망사항들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시겠지만 나는 결코 내가 쓴 글 속에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글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은 현실의 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 희망사항 속의 나 일 뿐이었습니다.
현실은 이러한데 그런 현실의 내가 아닌 희망사항속의 저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나의 모든 글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오, 오, 참으로 그랬었구나!
나의 현실이 이렇다는 것은 무엇이며 글 속에서 바라는 바 희망사항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한 마디로 현실의 나는 결코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오, 오, 맞았어.
바로 그것이었던 거야!
지금 두어 달 만에 산에 오르며
바라보고 있는 꽃동산 같은 저 자연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나는 결코 저 아름다운 꽃동산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내가 꽃 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구체적인 예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먹는 모습도 아름답지 못하고 배설하는 모습도 아름답지 못합니다.
나는 성질도 아름답지 못하고 버릇과 습관도 아름답지 못합니다.
나는 생각도 아름답지 못하고 태도도 아름답지 못합니다.
나는 한 번도 만물 앞에서 저 나무들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 본 일도 없습니다.
나는 한시도 내 겉과 속을 가리지 않고는 만물 앞에 나설 수 없을 만큼
추하고 더러운 모습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 목사님의 말대로 한다면
나는 배설물과 같은 모습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 같은 사실을 아마 젊은 날부터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예수님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노랫말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지어 부른 시였습니다.
즉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문학작품에서나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다 죄 많은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누가 꽃을 가리켜 죄 많은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도저히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노랫말로 희망사항을 노래하고 시를 지어 희망사항을 낭송하는 것이었습니다.
꽃보다 아름답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도 문학을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해서였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나 자신이 꽃 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글도 쓰고 다른 사람의 문학작품도 읽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웠다면
온 인류의 죄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어 주셨다는
예수님의 기독교구속의 논리는 성립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데 무엇 때문에 대속의 죽음까지 죽어야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꽃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학도 그래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식 문화의 단어로 말하면 문학은 나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써왔던 이런저런 글들도 모두가 나의 희망사항이었으며 하나님께 올리는
나의 간절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2013년 9월21일(토)
유 용수
2013-09-21 21:04:04 | 유용수
위용이 장엄한(?) 그릴을 청년들이 먼저 사용 했군요.
뭘 먹어도 맛있을 청년들이 그릴에 맛있는 것만 구어 드셨으니 맛은 물어 보나마나 겠지요.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을 보내시고 사진을 재밌는 만화로 꾸며주시니
보는것 만으로도 유쾌합니다. 아름다운 청년시절이 그립고 부럽습니다.
2013-09-21 20:43:46 | 김혜순
안녕하세요?
삼대가 한교회를 섬기니 좋으시겠어요.
주님의 복이 넘치는 가정입니다.
한 교회를 섬기게 되어 감사합니다.
진리안에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13-09-21 16:51:16 | 김상희
헤인이 가족 사진이 올라왔네요.
혜인이를 초등부에서 먼저 만났으므로 제게는 혜인이 가족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네요.
저도 딸이 하나인데..ㅋ 무척 단란해 보입니다.
사랑침례교회에 오신것을 기쁜 맘으로 환영합니다.
2013-09-21 16:48:39 | 김상희
자매님^^ 가족이 온전히 함깨하는 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한 지체가 된것이 기쁘고 반갑습니다.
2013-09-21 16:39:06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