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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들 장난이 장난이 아니었군요^^ 갈수록 노아의 때와 흡사해져 가니 믿음의 자리에 굳게 서있는게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오전에도 잘못된 일들로 인해 절제하지 못하고 직언을 해버리는 바람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는데.. 제게 참 필요한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2012-07-12 13:36:24 | 김경양
  초등학교 때 방학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갔읍니다. 60년대 후반기였으므로 모든 것이 낙후된 환경이었구요, 도심에서 살다가 친할아버지 집에 간다고 하면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버선 발로 뛰어 나오실 정도로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시 앞서가는 농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이 호롱불을 사용하던 시절에 전기를 가장 먼저 끌어서 사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정에 사기로 된 애자를 감고 전기줄이 쳐있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젖소를 4-5마리정도 키우셨고, 과수원을 갖고 계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과수원을 날라 가듯이 뛰어갑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참외와 수박을 원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고모와 삼촌이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었기에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과수원은 그야말로 땡볕이었습니다. 우마차길 옆으로는 아카시야 덤불이 우거져 있었지만 그늘로 쓰기에는 적당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수원 한 복판에는 원두막이 있어서 그늘도 만들어 주고, 갑자기 소나기가 올 때면 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2층으로 된 원두막은 사방으로 뚫려 있고 그늘 창이 있어서 그야말로 놀이터로는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 원두막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원두막위에서 놀고 있는데 고모가 식칼을 가지고 마루 틈 사이로 찔러대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나는 무서워 가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밑에서 올라오는 칼을 피하려고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고모들은 나의 행동이 재미있었는지 계속해서 칼을 찔러 대었습니다. 칼이 위에서 올라 올 때 마다 펄적 펄적 뛰어 다녔고, 급기야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는데 그 칼에 발을 찔리고 만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목에 당시 칼에 찔린 흉터가 남아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마루 틈으로 칼을 찌른다고 한들 그 틈을 피해서 서있기만 하면 아무 염려가 없었을 텐데 괜히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칼에 찔리고 만 것이죠, 고모들도 칼에 찔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장난삼아 한 것일 뿐인데 장손이 칼에 찔렸으니 크게 당황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 찔린 것만 기억이 날 뿐 다음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청 울었던 것 같고 이일로 고모들은 할아버지에게 혼 줄이 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기억은 흐릿해도 당시 초등학교 1-2학년 때쯤 일어난 이 사건은 지금까지 상처와 함께 두고 두고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도 믿음의 자리에서 벗어 나도록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는데(벧전5:8) 사실 믿음의 자리에 굳게 서 있으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널빤지의 틈을 피해서 널빤지 위에만 그냥 있으면 되는 것이었죠,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마귀는 믿는 자들을 해할 권세가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괜히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위험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험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면 조급한 마음에 성급한 결정을 하거나 믿음의 자리에 이탈된 상태에서 많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7-8절)  장마의 소식도 있지만 더운 여름 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심겨진 생명의 말씀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말씀과 가까이 하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시는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글에서 발췌한 내용을 겸하여 올립니다.     사람들은 저 마다 마음속에 벽이 있다  직언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양면의 칼날과도 같다. 그래서 직언은 홀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새로운 길을 여는 개척자로서의 당연한 착각하기 쉬운데 그래서는 안된다. 이는 직언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다. 사람을 대하면서 일일이 지적하고 성격상 결점을 바로 잡으려 하는 것은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에게 부담감만 안겨주는 것이다. 당신은 직언을 하면서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가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 마다 마음속에 벽이 있다. 그 벽안에 자존심을 숨기고 있는데 당신이 직언을 통해 그것을 깨뜨리려 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 하겠는가? 말은 아낄 수 있을 때 최대한 아껴야 한다. 반드시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원만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라 이것도 기술이다. 진정 변화를 시도하고 싶거든 변화로 인해 잠시 일어나는 문제들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자신이 있을 때 그렇게 하라.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좋은글 중에서-
2012-07-12 11:08:38 | 조양교
둘러보면 혜택받는 것도 많고 누리는 것도 많은데 정작 자족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을 보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보아야 하는데 너무 위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012-07-12 11:04:12 | 조양교
우연히 장애인 사업장 얘기를 보게 되었는데 한 아가씨가 눈에 들어왔어요. 항상 즐겁게 웃으면서 일을 하기에 기자가 물었지요.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아니요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고요 이 일이 좋아요.” 하면서 또 환하게 웃는거에요.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처럼... 매일 같이 똑같이 하는 일에 대해서 나는 그 아가씨처럼 즐겁게 일을 했는지? 반성하게 되었어요. 그 사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국가가 주는 돈을 포기하고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원했어요. 일하고 싶다고...... 국가에서 주는 돈 편히 앉아서 받을 수 있지만 내 힘으로 일하고 보수를 받고 나름대로 꿈을 위해 살 수 있어서 좋다고...... 너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반대로 일하지 않고 살 수 없나를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장애가 있지만 자기 힘으로 일하고 작지만 나름대로의 보람을 누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어요.   후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아직까지 직장생활 중인 싱글입니다. “언니는 너무 좋겠다.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 매일 출근해야 하지 않아서.” 공교롭게도 아침에 방송에서 직장을 구하는 절절한 편지를 들었거든요. 어떤 사람은 만원버스에 시달리면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도 그 가운데 끼기를 소원하고 너무 너무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금은 위로가 되었는지 고맙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가끔은 사람들이 눈이 앞에만 있어서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님 안에 들어와 오랜 시간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고통, 어려움, 고난, 오래 기다림, 오래 참음, 오해, 등등- 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었다는 말씀을 인용하지 않아도 고난 중에는 전능자이신 주님께 엎드릴 수밖에 없고 사람의 매를 사용해서 주님만이 신실하시고 유일한 피난처이신 것을 알게 하시고 또한 주님께서 시간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것 같아요.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요. 당시에는 깜깜한 터널 속에서 ‘ 끝이 있긴 한가?’ 싶기도 했지만 이제와 돌아보면 그 가운데 주님께서 보호하시고 눈물로 동행하셨던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나은 환경과 조금 더 풍족한 생활이 목표가 되면 노예가 되어버리고 기쁨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단순하게 몸만 낮추어도 서 있을 땐 전혀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지요. 주님께서도 바울도 겸손을 자주 말하고 족한 줄 아는 마음에 대해서도 언급했지요. 지금 이 시대에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 선택하며 살아야겠어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알면서 친절을 베풀고 나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2012-07-12 01:23:23 | 이수영
티보우 모습이 아주 건장하고 잘생긴 청년이군요. 어쩌다 그 모습이 조롱거리가 됐는지, 아이패치도 참 깜찍하고 세상 곧곧에 주님 알리는 소중한 모습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주자매님 잠 못이루시지 않도록 기도 할게요. ^^
2012-07-10 10:56:31 | 이청원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이 일으키는 놀라운 일들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 저희는 좁은 시야속에 있지만 이렇게 하나씩 알게 되는 기쁨이 있어요. 자매님 감사해요 홈피에 자주 소식주세요^^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감동으로 화답하시네요. 주께서는 생각을 주께 고정시킨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 너희는 영원토록 주를 신뢰하라. 주 여호와 안에 영존하는 능력이 있도다 이사야 26:3,4
2012-07-10 10:40:27 | 이수영
마음이 어려우시겠지만 주께서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동일한 어려움을 갖고 계신 분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아픔을 지닌 성도들에게 놀라운 간증이 될 날을 기다립니다.
2012-07-10 10:18:02 | 이수영
이 모든게 실화라고 하니 정말 감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너무도 신기하고 이성을 뛰어 넘으신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우리의 자녀들이 이런 훌륭한 믿음에 자녀들이 되기를...
2012-07-10 02:36:02 | 주미경
  "팀 티보우"   그는 필리핀 선교사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티보우를 임신했을 당시 어머니는 아메바성 감염에 의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았습니다. 의사는 치료를 위해 낙태를 권했지만 어머니는 뱃속의 아이를 지키고자 약을 먹지 않고 버텼고, 다행히 티보우는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모교인 플로리다대학(UF)을 다니며 수퍼볼 선수가 됩니다. 그는 매 게임마다 여러 성경 구절을 아이 패치(눈부심 방지 밴드)에 기록하며,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속한 대학이 2008년도에 챔피온쉽이 됩니다. 그는 그 게임에서 아이 패치에 요한복음 3:16 말씀을 기록하였고, 이로 인해 24시간 동안 90억회 검색어가 되어 90억에게 복음을 전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물론 안티들도 많았습니다. 사방으로 공격해 왔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프로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아이 패치에 어떠한 글도 표시할 수 없다는 규정에 제제를 당합니다. 더 이상 아이 패치에 성경을 기록할 수 없었지만 터치다운 후 한쪽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이번에는 '티보우잉'이라며 놀립니다. 조롱이요 비아냥입니다. 프로리그에서도 역전승을 일구게 됩니다. 그의 역전승이 계속되면서 팀은 2011년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게 되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점점 열풍으로 바뀝니다. 기도하는 그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게임 도중, 또는 끝나고 난 후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 때문에 '티보잉 Tebowing'라는 새로운 단어까지 만들어 낸 선수입니다. 2012년 1월 8일 결승전으로 가는 관문에서 만난 강팀과 23대 23 동점인 상황에서 연장전이 치뤄졌습니다. 대학리그 때부터 아이패치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알렸던 티보우는 역전승을 이룹니다. 그 날 팀 티보우가 기록한 10개 패스 총 길이는 316야드. 패스 한 개가 31.6야드를 기록, 리서치 조사 결과 이 날의 경기 시청률은 31.6%였습니다. 덴버팀이 승리한 후 '요한복음 3장 16절'이 인터넷 '구글 사이트'에서 무려 1억2천만 번이나 검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https://vimeo.com/44964955
2012-07-10 02:27:31 | 주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