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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과날줄...너무 멋진 표현이네요 지난 시간은 분명히 지금에 비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힘든 줄 모르고 잘 지냈는데 지금 예배당은 더욱 황홀할 정도의 환경이라 집보다 더 머무르고 싶은 장소이지요. 마치 우리는 조촐한 신혼생활로 시작해서 조금씩 조금씩 윤택해져 가는 신혼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살림살이도 새거고 새집 단장하느라 즐거운 시간을 지내고 있지요. 이곳은 진리의 기둥과 예배,그리고 만남의 장소로서 충분히 그 사명을 담당하겠지요. 하루하루 우리가 드리는 마음과 정성과 헌신과 봉사는 씨줄과 날줄이 되어 언젠가는 훌륭한 무늬으로 완성되겠지요. 실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굵고 짧은 게 아니라 품질좋은 실크처럼 가늘고 길수록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패턴의 모양을 잘 만들어 내겠지요? 게다가 우리 교회는 지역교회이지만 홈페이지와 멀리서 방문하는 반가운 손님들로 인해 매주마다 특별한 날이 되는 것 같아요.
2012-05-21 06:46:34 | 오혜미
정말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성장했네요^^ 영민이까지 소풍에 합류했군요. 매일 보니까 차이를 모르겠더니만 이렇게 사진을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이- 수고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드려요. 7색깔 무지개 색은 청기자가 짜넣고 있나봐요^^
2012-05-21 01:13:50 | 이수영
오전예배를 마치고 김밥과 간식을 싸들고 주일학교 아이들과 교회에서 가까운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여기 저기 자유롭게 흩어져서 주님 주신 봄을 마음껏 느끼고 왔습니다.             어느새 영민이도 유년부에 합류해서 형님,누나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과 각각 한조가 되어 선생님 말씀 잘듣고(?) 힘차게 뛰어 놀았지요.     작년 이맘때쯤에도 다녀왔었는데 그때에 비하니 아이들 정말 많이 자랐네요.     몇 안되는 아이들인데도 카메라에 집중 아니 되옵고 따로따로~ㅎㅎ     역시 예쁜 공주님들 *^^*         영민이는 매일 보는데도 항상 "근데, 아줌마는 누구세요??" 처음 보는 아줌마 보는양  표정이 ㅋㅋ     얼마나 신날까요.     맏형 답게 의젓한 태현이 입니다.     엄마 아빠 모습이 가득가득~ *^^*       자그만 했던 동해도 많이 자랐네요.     잠시도 똑같은 모습일수 없는 우리 아이들, 그래도 단체 사진 잘 찍고 왔답니다.ㅎㅎ     우리 예쁜친구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주세요. ^^  
2012-05-21 00:58:23 | 관리자
지난 토요일에는 침례탕을 보수하느라 11층이 온통 석회먼지 투성이여서 가까운 곳의 성도들과 목사님까지 청소하느라 수고를 많이 하고 애써주신 덕에 오늘  성도들이 깨끗한 상태로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부부가  교회이전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셨는데다  청소까지 하시느라 오후에는 간만에 영문을 받아 보았어요. 더 공부가 되었죠? 목사님도 청소에 기꺼이 참여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청소당번이신 염 진호 형제님 가정이 아침 일찍 도착하셔서 청소하셨어요. 자매님과 태경이도 걸레로 창틀도 닦고 이곳저곳 닦고 쓸고... 송 호 형제님 가정은 어제 오셔서 힘든 청소에 참여 하셨구요.   성도님들이 교회가 논현동으로 이사 온 후 부터는 조금씩 일찍 오시네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헤매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지만, 새 예배당에 일찍 오시고 싶으시죠? 일찍 오셔서 전도지를 갖고 나가서 배부하시는 성도들도 계셨어요. 오전에 일찍 오시면 봉사할 기회도 많고-1층과 지하에 배너를 세운다거나 스카이 라운지 같은 식당에서 커피 마시며  교제할 여유도 있답니다. 방문객들도 맞이해 줄 기회도 있고요. 오늘은 멀리 포항에서와 파주와 철산동에서 일찍 오신 분들이 계셨어요. 손님이신 키 큰 형제님께 환기시킨 창문 닫는 일에 도움도 받고요^^   옥상이 우리 전용이 아니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올라와 담배를 피운 꽁초와 쓰레기들이 많았는데 옥상에 올라가신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이 손으로 주섬주섬 주워 담아 치워주셨답니다. 다른 사람이 어질러도 우리 성도는 깨끗하게 치우는 본보기를 보여 주신 것 감사해요. 건물 관리인에게 옥상에 재떨이와 쓰레기통을 준비해 달라고 하면 좋겠어요. 건물 안이 금연을 해야하다보니 흡연자들이 옥상으로 올라오는 것 같거든요.   매 주마다 특별한 날이고 여러 가지 일들로, 여러 가지 색깔로 소래 교회에서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짜기 시작했어요. 드러나지 않는 성도들의 헌신과 수고와 아름다운 찬양과 기도의 씨줄과 날줄로-
2012-05-20 22:39:10 | 이수영
남성 중창단이 매주 찬양하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곡도 잘 선택하셨고 아주 즐거웠습니다. 자주 등장해 주시길^^ 위에서 찍으니 무대가 아주 널찍하니 좋아보여요. 방송팀의 수고에도 감사 감사^^
2012-05-20 21:54:40 | 이수영
자매님 오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지요. 7월 27일은 도시락데이랍니다. 지역별로 모여서 식사를 나누니까 함께 하면 좋겠다는 바램이- 식구들 모두 소풍삼아 놀러 오시면 어떨지요? 남편얼굴도 딸들도 모두 보고 싶네요. 기도할때 얼굴을 떠올리면서 기도하는데 그려지는 모양이 없어서요. 예배만 참석하고 바로 가야해 교제도 못하니 안타깝고 아까워요. 자매님이 새교회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니 주님의 놀라우신 인도에 기쁘고 즐거워 드렸던 감사가 되살아나네요. 자매님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니 속히 인도하시리라 믿어요.
2012-05-20 21:44:09 | 이수영
  -주의 길을 걸어라- 낮엔 기쁨으로 밤엔 노래로 주의 길을 걸어라우리사는 세상 기쁨 넘치리 주의 길을 걸어라주님 가신 길을 걸어라 주의 길을 걸어라이 땅 위의 모든 사람 구원 얻게 될 주의 길을 걸어라 우리는 모두 다 주의 자녀니 주의 길을 걸어라기쁜 노래 불러 주 찬양하며 주의 길을 걸어라주님 가신 길을 걸어라 주의 길을 걸어라이 땅 위의 모든 사람 구원 얻게 될 주의 길을 걸어라 주의 인도 따라 주님과 함께 주의 길을 걸어라주님 안에 항상 행복 넘치니 주의 길을 걸어라주님 가신 길을 걸어라 주의 길을 걸어라이 땅 위의 모든 사람 구원 얻게 될 주의 길을 걸어라   
2012-05-20 19:48:39 | 관리자
자매님, 지금 자매님 글을 보며 생각이 났네요. 눈인사만 주고 받고 말 한마디 건내지 못하고 그냥 지났네요. 오늘 감회가 또 새로우셨군요. 멀리서 오셔서 이렇게 함께 해주시고 또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래요.
2012-05-20 19:27:33 | 이청원
논현동에서 예배,말씀 듣고 왔습니다. 요부분은 누가 해주셨나요? 이부분은 누가 해주셨나요? 일일이 인사 드리고 싶은 맘 굴뚝 같았어요. 목영주가 시련은 많아도 죽을때까지 다닐 교회는 단번에 해결해 주시는 구나... 하나님아버지께서 날 참 예뻐해 주시는 구나...싶었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저도 언젠가 편히 교회 다니면서 교회화장실 청소할 수 있는 첫날...펑펑 울것 같아요. 그런날 생각하면서 당당히(?) 말뿐인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많이 애쓰셨어요. 
2012-05-20 15:46:53 | 목영주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성경이 꼭 순서데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창세기의 사건은 순서데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창 26:8,9)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의 왕 아비멜렉이 창 밖으로 내다보다가 보매, 보라,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와 즐겁게 놀므로』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보라, 그녀는 정녕 네 아내이거늘 어찌하여 네가 이르기를, 그녀는 내 누이라, 하였느냐? 하니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르기를, 그녀로 인해 내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였기 때문이라.』 이삭은 자기 아버지와 비슷한 사건으로 아비멜렉에게 질책을 당합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 사건의 학습효과로 미리 예방조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구요.
2012-05-20 08:58:45 | 허광무
질문의 전반적인 내용을 종합해보면, 형제님이 고민하고 있거나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영적인 성장과 성화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유명한 설교자나 변증가가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직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구원과 성화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면 대부분의 의문점들은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영접기도"를 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이 구원은 우리의 행함이나 신앙의 연륜이나 도덕적으로 수준높은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죄로부터 멀어졌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와졌는지는 성화의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구원받은 사람의 현 상태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키와 몸무게가 얼마나 자랐느냐, 말을 잘 하느냐, 혼자서 걸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다시 태어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행위에 대한 문제는 설교와 말씀 - 특별방송 - "야고보서 이해와 오해 풀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C.S. Lewis가 다른 종교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했는지, 금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셨는지만 주의해서 읽고 그대로 따르시면 됩니다. C.S. Lewis가 사회적으로는 유명한 변증가일지 모르지만, 저는 마법과 판타지 등 이교적인 요소들을 기독교에 접목시키려는 사상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3. 신본주의에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통치를 인정합니다. 제사장이나 인간 왕이 중심이 되는 제도를 신본주의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약 교회 성도들은 성전이나 제사장이 없지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진리의 말씀을 따르며 성령의 통제 하에 주님께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학문은 인본주의이고, 신학은 신본주의일까요? 교회 일은 거룩한 일이고, 직장 일과 가사는 세속적인 일일까요? 일주일은 단 하루의 거룩한 주일과 6일간의 속된 평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에 대해서는 별도로 성경을 읽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해서는 www.keepbible.com에 있는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학에 "무한대"의 개념이 나옵니다. "무한"이라는 것을 통해서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수학자라면 그의 학문적 관점은 인본주의가 아닐 겁니다. 인본주의 학문의 대표적인 것이 심리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사람은 날 때부터 죄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라는 진리를 발견했다면, 그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All truth is God's truth. 수학, 화학, 기계공학, 물리학, 천문학, 정치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이런 학문들이 인본주의인가 아닌가, 이것들을 지양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보다 이 학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스포츠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0257&page=2)
2012-05-20 01:55:31 | 김문수
허광무 형제님이 제기하신 부분에 많은 의견들이 있는데 정답은 말씀 그대로 믿는것이 바른 믿음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이 논리적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자 신학자들이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해서 주석을 다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었기 떄문입니다. (대표적예로 모세의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바다가 갈라진 것이 아니라 달밤에 갈대숲을 지난것을 그림자 떄문에 바다가 갈라진것이라 해석등등 -_-;) 가장 보편 타당한 의견을 제시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성경은 꼭 쓰여진 순서대로 기록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고 한 것은 90세에 이삭을 낳기 훨씬 전입니다. 하갈을 첩으로 준 이전일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사래가 일시 애굽에 살다가 돌아와서 아비멜렉에게 수치를 당할 번 한 후, 사래가 더 늙으니 자기의 종을 남편에게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사래의 나이 76세에 이스마엘이 태어났으므로 아비멜렉과의 사건은 사래의 나의 67세~75세 사이에 일어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물론 70세 전후의 나이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그런 할머니에게 반할 수 있을까요? 노아홍수전에는 사람들이 900세, 800세 이상을 보통 살았습니다. 아담은 930세를 살았고 노아는 950세를 살았습니다. 영화 등에 노아홍수때 노아를 늙은 할아버지 배우로 분장시켰는데, 전혀 틀린 이야기입니다. 노아 600세에 홍수가 났으니까 지금으로 친다면 노아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홍수가 난 것과 같습니다. 노아홍수 후에 기후, 환경의 변화로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노아의 손자 아르박삿은 438살까지 살았고, 아르박삿의 증손자 밸렉은 239살까지 살았고, 벨렉의 손자의 손자인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205살까지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살까지 살았고, 사라는 127살까지 살았는데 당시 나이로 보아서, 또 여성들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라가 결코 오래 살은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137살 이후에도 다시 후처를 취하여 많은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지금과 건강, 수명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그후 칠대, 팔대 후손의 수명은 현재 인간의 수명과 비슷하여 집니다. 사라는 분명히 대단한 미인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라가 70세 정도였다는 것은 지금으로 친다면 40세나 40세 초반 정도의 나이, 아무리 늙었다해도 50세는 안넘은 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미모에 충분히 아비멜렉이 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에 유명한 미인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40대 중반 사진 모습을 보았는데 아주 매력적이어서 충분히 사람을 매혹시킬만 하더라구요. 그 당시 사라는 지금 70 노인 할머니의 쭈구렁탱이 모습은 물론 아니었지요. 당시 먼 나라, 우르에서 온 외국여인인 사래가 특히 매력적으로 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 네이버 지식인 답변 中 절대 태클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의견제시 입니다. 형제님 덕분에 자료를 찾아보고 성경을 읽고 아뭏튼 좋은 공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5-20 00:06:19 | 송재근
추가 : 2-2)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나 문화 등에 관련한 여러 생각이 뒤엉켜 있는 가운데 한 질문임을 참고하시면 보다 이해가... 명확할까요? 구체적으로는 라는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문화와 결별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복음성가, 신앙 서적 등에 담긴 경건하고 성스러운 것만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문화'를 창세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되려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2012-05-19 20:43:57 | 문석휘
1. 폴 워셔란 유명한 목사가 있습니다. 이 곳을 찾는 여러분도 이곳 저곳에서 이 분의 설교 영상 등을 보셨을 것입니다. Illbehonest.com이란 사이트에도 영상 등이 잘 편집되서 올라와 있죠. 확실히 제 마음과 혼을 가차없이 찌르는 설교가 많습니다. 함부로 '은혜'가 가득한 설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여간 볼 때마다 나 자신을 점검하게 되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폴 워셔 목사도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것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http://www.samil.org/zbxe/londonhorace_06/5309 에 적힌 글이 있습니다.    인용한 글의 요지를 제 나름대로 추려보자면,   1) '영접 기도' 한 번 했다고 하여 구원을 얻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것은 되려 거짓 복음이다 : 이에 동의합니다. 2) 당신의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하고 삶의 스타일이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에 맞추어져 있을 때에 비로서 당신은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 역시 동의합니다.    (저번에도 비슷한 글을 킵바이블에 쓴 것 같긴 하지만) 궁금한 것은 "행함이 없음으로 증명된 그들의 믿음의 부족"이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즉, 진정한 회개는 단지 나의 죄를 자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전히 죄성에 젖어 있기에 비록 완벽할 수는 없을지라도) 거룩함에 다가서기 위한 행위가 함께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이것도 결국은 행위와 믿음의 결합적 구원이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 C.S. Lewis    Mere Christianity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기독교 '변증서'를 써낸 사람으로 유명하죠 . 제 친구도 저에게 이 책을 권했고 저 또한 읽어보았습니다. 확실히 정말 깔끔하고 읽기 좋다는 생각을 볼 때마다 합니다.  다만 궁금한 것이,    1) 책에서 '여타의 종교도 나름대로 어떠한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노력한다' 라는 식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타의 종교도 배울 점이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이러한 서술이 종교 통합 내지 종교 다원주의를 이미 염두에 두고서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최소한 그러한 작업의 논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2) 절대 금주(teetotalism)를 요구하는 것은 이슬람이지 기독교가 아니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어서 "특정 부류의 악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자기들이 포기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다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특별한 이유로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는 순간, 혹은 그런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순간, 그는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자체에 대한 의견들은 어떠신지요? 저도 원론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만, 분명한 정죄와 판단이 필요할 것임에도 언제, 어디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력이 미숙한 상태입니다.   3. 이른바 '신본주의'에 관하여  위에서 인용한 폴 워셔의 설교에서도 드러나고 (우리는 하나님이 불쾌해하는 것을 너무나 사랑한다), 여타 기독교 방송 등의 내용(일례로 CTS에 출연한 사람의 "주일에는 경건하게 지내기 위해 이메일이나 인터넷 뉴스도 확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발언 등)에서도 이른바 인본주의를 지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자는 신본주의적 자세가 깔려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1) 그렇다면, 이른바 제사장과 왕이 중심이 된 것과 같은 고대 국가의 신정 형태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요? 여러 글을 보다보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목회자 등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 인본주의를 경계하고 부정해야 함이 구원과 성화에 관련한 영역에서는 당연히 인정될 수 있으나, 이른바 '학문'의 영역에서는 그것이 힘든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16세기 르네상스 운동의 모토가 인본주의이고 지금의 세계를 이룬 학문이 모두 이와 같은 인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러한 인본주의를 지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골로새서 2:20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로부터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늘 어찌하여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이 규례들에 복종하느냐?     여러 부분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글이 좀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읽는 데 불편함이 없으셨기를 바랍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cf. 2-2)는 절대 제가 과음해서 난동을 부리려는 걸 합리화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개역한글에서는 골 2:20의 '유치한 원리'를 '초등학문'으로 번역했기에 아마 3-2)와 같은 의문이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2012-05-19 20:35:33 | 문석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창세기 20장에 보면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납니다. (창 20:2)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가리켜 이르기를, 그녀는 내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가니라. 아기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연로한 할머니(여인의 관례가 멈춘) 사라를 아비멜렉이 데려 갑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사라가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사라의 신체를 젊게 되돌려 놓으신 거라 생각 됨니다.
2012-05-19 18:31:10 | 허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