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이 참 빠르다 "하고 느끼고 있었지만
흥미가 있는 수치로 계산하여 주시니 더욱 실감이 나네요.
주님은 거름을 주시고, 오래 참으시면서 기다리지만
시간은 결코 멈출줄도 모르고 잠시도 기다려 주지를 않네요.
하나님의 그 크신긍휼에 감사하며
남은 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형제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2015-12-29 11:57:23 | 김영익
어느덧 2015년의 끝자락에 와 있네요.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을 해보건만 세상 삶이란 것이 녹녹지 않네요.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간다고 하죠.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세월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는 정도가 각기 다릅니다. 강물과 같이 흐른다는 사람도 있고, 화살같이 흐른다는 말도 있고, 번개와 같다는 표현도 씁니다.
주관적인 수치보다는 객관적인 수치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에서의 시간을 태양의 움직임을 통해 가늠하게 하셨습니다. 동쪽 하늘에 떠서 다시 동쪽 하늘에 뜰 때까지의 기간을 하루라고 합니다. 창조이래 한번도 어겨진 적이 없는 검증된 사실입니다. 아마도 내일 해가 동쪽에서 안 뜰 것을 고민하시는 분들은 없겠죠^^ 하나님께서 태양을 창조하신 이래로 변함없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 하늘로 지고 있습니다.
이제 세월의 빠르기를 계산해 보겠습니다.
하루는 24시간이죠. 하루라는 시간이 어느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까요?
한번 계산해 보겠습니다.
하루를 초로 환산하면, 24시간 * 60분 * 60초 = 86,400초입니다. 지구의 둘레는 대략 40,000키로미터입니다.
40,000,000미터 /86,400초 = 493미터/초
1초에 493미터의 속도로 태양이 지구 둘레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믿거나 말거나 땅위에서 숨쉬고 있는 사람은 그 시간속에서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KTX는 시속 200키로로 갑니다. 200키로 /60분/60초 = 55미터/초
승용차는 시속 100키로로 갑니다. 100키로 / 60분/ 60초 = 27미터/초
지구상에서 1초의 흐름은 KTX보다, 승용차가 달리는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월은 KTX나 승용차가 달리는 속도와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가만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가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어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사실 느끼지 못할 뿐이지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중일수도 있고,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중일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할 것입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월의 무상함입니다. 무상함을 느끼기 전에 세월의 급박함을 인식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보내었던 시간들보다 앞으로 보낼 시간이 적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2015-12-28 12:06:43 | 조양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늘 일찍 오셔서 성도 한분 한분을 반가이 맞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몸된 교회 안에는 장성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함께 어울어져 주님의 몸을 구성하고 있지요.
또한 교회 안에는 주인과 손님과 같은 지체들이 서로 어울어져 있지요.
지나온 한 해를 반성하며 좀 더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성도가 되어야 겠다는 작심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15-12-19 11:46:12 | 이재신
정말 시간의 빠름을 느낄 새 없이 시간이 지나가네요.
한 해가 또 가기 전에 교회를 바라보며 각자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하네요.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다치거나 아팠을 때 불편함과 힘겨움을 느끼며
지체의 소중함을 깨닫듯이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소중한만큼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새해에는 좋은 교회를 위해 우리 모두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5-12-17 12:23:16 | 김상희
올 한해의 파노라마를 잘 요약한 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분명히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글에 언급된
뺀질한 분들 혹은 교회의 백년지객 같은 분들도
나름 본인은 괴롭고 힘들며 내적 갈등도 있었을 겁니다.
더불어 이러한 분들을 따스한 마음으로 품지 못한
속 좁은 제 모습도 통렬하게 반성해 봅니다.
이 모두가 인간의 한계요, 우리 모두의 공통분모가 아닐는지요.
이러한 영적 어려움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사랑침례교회라는 배가 순항하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며 몸부림치다가도 이내 불굴의 자세로
믿음의 여정을 걸었던 사도 바울처럼 다시금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차분하게 성화의 삶을 살아나가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하기에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참 행복합니다.
제때 댓글을 올린다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
마음의 위로와 감동을 담을 수 있는 귀한 글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12-16 12:28:52 | 김대용
넘치면 넘치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다들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우린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거겠죠?
올 한 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섬겨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015-12-15 17:54:37 | 심경아
전라도,경상도에서 반나절 이상 걸려 오시고,
또한 자동차로 오랜시간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기쁜맘으로 힘들게 달려와서
매 주일 자리를 꽉 채워주시는 성도님들 각자가 가장 고귀한 교회의 뼈대를 형성하고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관심과 섬김과 사랑과 귀한 교제들이 있어 교회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것이 아닐까요.
바른신약교회로, 바른성경을 전하는 교회에서 예배드림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주님다시오실때까지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 영광이 되고 하늘의 보상을 넉넉히 받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빌 3:14, 킹흠정)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고전 3:8, 킹흠정)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며 저마다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2015-12-15 17:20:39 | 김영익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가 견고하게 설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주님으로 부터 받은 은혜와 감사를 마음속에 담지만 말고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더욱 성장하리라 생각됩니다.
2015-12-15 16:13:16 | 김영식
다음을 참조하세요.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885
2015-12-15 12:17:34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매우 귀한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의 모습을 잘 그려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인 것 같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5-12-15 11:31:38 | 관리자
지난주 뉴욕에서 오신 형제님 간증을 들으면서도 느낀것이지만
그렇게 오고싶어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따금 그 사실을 까먹는다는 것입니다
올려주신 글처럼 늘 감사하는 생활이 중요한것같습니다~^^
2015-12-15 11:15:34 | 조성재
이젠 댓글하나 남기기도 민망한 주변인..교회화장실 청소 한번 못하는 구원투수 입장인 저입니다. 하나님아버지 생각할때 부끄러움이 없는 걸로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교회안에서 어리광만 피우는 성도분들조차 부럽네요^^
제자리를 지키며 헌신하는 성도분들께 (저의 부끄럼을 감추고) "존경합니다" 소리치고 싶습니다~~
2015-12-14 22:30:16 | 목영주
늘 주일에 일찍 오셔서 성도들을 맞으며 새로오는 성도들을 안내하는 일을 신실하게 섬겨주시며 지체 하나 하나에 애정을 갖고 살펴 주셔서 또한 감사합니다.
올 일년을 보내며 그래도 교회안에 큰 우여곡절없이 건강하게 지냈네요..
2015-12-14 21:58:33 | 오혜미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 감사는 제대로 하고 사는지
갚기는 하면서 사는지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주어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은 소망 간절합니다.
2015-12-14 19:50:26 | 김혜순
어느새 한 해가 또 저물어 갑니다....
년 초를 맞이한 것이 어제 같은 데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고 보니
노쇠해? 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기도노트를 정리하면서 기도를 했던 성도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런 일도 있었구나!’
두 줄로 긋고 Tks(감사) 라고 씌여진 지저분한 노트를 보면서 감사하기도 하면서
노트를 정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사실 기도노트엔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기도가 필요했던 일들이 기록이 되었기에
실제로는 여러 부분에서 자원해서 함께 짐을 지며 우리교회 이곳저곳에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 나간 성도들에 대해선 기록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어요.
그래서 핸 폰에 저장된 성도 한 분씩을 떠올리니 자기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준 여러 성도들이 너무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뭐라고 일일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도.....
우리교회는 자원해서 일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집사들도 형제님이라 부르기에 온 성도들이 동등함을 누린다고나 할지?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이 내주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500명이 넘는 대가족이 움직이니 그 중에는
교회 안에서의 맏이의 역할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움직이는 성도들도 있고
교회 안에서 막내역할로 교회 사정 어떤지 모르고 살아가는 막둥이들도 있고
교회 안에서도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녀들도 있고
교회 안에서 주변의 성도의 어려움을 살피며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주는 자녀들도 있고
교회 안에서 작은 어려움에도 잠수를 타기도 하고 늘 어리광만 피우는 자녀들도 있고
교회 안에서 작은 것 하나에도 다투고 징징대고 편만 들어달라는 자녀들도 있고
교회 안에서라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뺀질이인 들 없겠어요?
교회 안에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가며 신실한 자녀들이 대부분이지만
교회 안에 있지만 늘 손님인 채로 있는 자녀들도 있고요.
그러나 그래도 모두모두 한 가족이라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성막을 광야에 지을 때 밑받침과 가로대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든든히 세워져 있어야
성막을 완성할 수 있지만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요.
마치 신실한 성도들이 밑받침과 가로대로 든든히 받쳐 주고 있어서 우리 교회가 지난 세월을
잘 겪어내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가 되고요.
물론 올바른 지도자가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서로 씨줄과 날줄로 엮이어 오늘날의 우리교회가
있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 볼수록 우리 교회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계시고, 동기는 물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각자의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을 아니 감사가 되지요.
목사님은 대표자로 온갖 화살과 비방과 구설수를 혼자 다 받는 위치에서,
사모님은 조력자로서, 야당으로서, 자매로서, 성도로서 또 다 말할 수 없는 온갖 구설수 속에
인내를 배우며
집사들과 지역 인도자들과 교사들과 사무원과 주방과 서점과 방송실 등 크고 작은 그룹을 이끌고 나가는 일은
참으로 많은 마음의 어려움들이 있었을 것이지요.
각자가 생각들도 일하는 방식들도 차이가 있으니 그것을 조율해 나가는 일들이 어렵지요.
주님께선 그러한 어려움들을 통해 서로를 성장시켜 나가시는 것이겠지만
당사자들은 참 어렵지요.
리더가 되어보면 리더의 어려움을 알게 된다고나 할지-
지난 번 소그룹 모임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말이 주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이었어요.
우리 교회에 자의든 타의든 나오게 되면서 변화된 점들을 나누어 주시면 좋겠다고
했는데 유-투브를 보게 된 모든 과정이 결국 주님의 은혜였고 우리 교회 와서 교회생활을 통해서 영적인 안정을 얻으니 가족들이 편안해 한다고.
본인 자신의 영혼이 살아나는 기쁨에 교회 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자기 스스로가 지난 믿음 생활의 잘못된 점에 대해 깨닫고 영혼의 자유를 누리니
너무 행복하다고.
온종일 우리 강해 CD를 틀어놓고 듣는 온종일파^^들이 많았지요.
결국은 우리교회 온 식구들이 행복하다는 것이 되네요^^
우리교회 성도들 모두가 변화의 물결속에 있구나 하는 희망적인 지표도 되어 감사가 되요.
우선은 순수한 젖을 충분히 먹어야 성장도 되는 것이라
내가 먼저 서야 다른 사람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지요?
새해에는 개인적으로 좀 더 천천히 자세하게 성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강해도 함께 들어가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계획도 하게 되네요.
제자리를 지켜내며 헌신하는 많은 성도들이 너무 귀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12월을 보내면서 이런 저런 작은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어요.
바라기는 새로운 해에는 조금씩이나마 주님을 더 기쁘게 해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2015-12-14 15:00:47 | 이수영
세상은 절대 공평하지 못한데, 세상을 만든 신은 공평한 분이라니!!
지금까지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문제였죠.
누구는 부유하게 태어나 평생 놀고먹고, 누구는 쌀 한 모금이 없어 굶어 죽고,
누구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위대한 인물이 되기도 하는 반면,
누구는 부모 잘못 만나 장애인으로 태어나 평생 고생하다 죽고, 이게 공평하다고 할 수 있나요?
이 모든 게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신은 차라리 공평하다고 하지나 말든지.... 라는 거죠.
뭐.. 엄마가 긍정하든 부정하든 , 나는 신의 공정함을 믿어요. 그게 내 신앙의 밑바탕이니까요.
신은 인간을 "자유의지" 를 가진 존재로 만들었어요.
단순히 모든 것을 "신의 뜻대로" 하게 하려면 이런 "인간의 선택권"을 애당초 주지 않았겠죠.
인간이 "신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존재였다면 이스라엘은 타락하지 않았겠죠.
인간이 "신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존재였다면 세상은 공평한 세상이 되었겠죠.
왜 신이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라는 거죠.
이 세상은 절대 "하나님의 뜻대로만" 되지 않아요. 그러기에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인 거죠.
공평하지 못한 것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 세상을 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신의 나라를 이 세상에 구현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인간이 신의 뜻과 다르게 행동할지라도 자유의지를 빼앗아 가지 않으시고,
"인간" 세상에 "인간"의 몸을 빌어, "인간"들 속에서 예수님을 있게 하셨죠. "전능한" 방법이 아니라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과 달리 어긋나갈 때 , 신은 이스라엘 인간들의 자유의지를 뺏고 전능하신 힘으로 바로 잡았나요?
아니죠. 오히려 "인간" 인 선지자를 세우시고 "인간" 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신의 뜻을 알려오셨지 않습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신은 로또 당첨이나 시켜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의 공정성은 신의 것이고, 인간의 모든 것을 미리 마음대로 조종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신이 그의 뜻대로 인간과 이 세상을 마음대로 하지 않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은,
못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인 것이고, 그 이유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믿지만, 이 세상은 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신이 공정한 이유입니다.
2015-12-11 10:45:15 | 박혜영
"그래, 우리의 모든 의는 다 더러운 누더기 같다고 말씀하셨지."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셨는데 있는 그대로 살 수가 없지.."
형제님의 글을 읽는 동안 공감하며 이렇게 되뇌었답니다.
참된 살아있는 예수님신앙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12-02 14:15:44 | 김상희
안녕하세요?
참으로 진솔하며 의미 있는 글을 접하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이런 글들 모아서 조그만 PDF 묵상 집으로 내려고 해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12-02 12:05:20 | 관리자
맞아요! 맞아! 제 경우도 주자매님이 다시 새겨준 문장의 내용과 같아요.
어떤 경우에도 다시 화해 해야하고 다시 마음을 추스려야 하고 다시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하고 다시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신앙인 거 같아요.. 우리의 공통된 믿음이 그렇다면 교회생활도 어렵지 않을 거 같네요.
2015-12-01 22:57:54 | 오혜미
형제님 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글을 읽으면 그안에 진솔함, 삶의 소소한 일들의
깊이 있는 통찰과 표현들이 마치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신것과 같이 진한 향이 우려 나오는것 같습니다.
"참된 신앙은 자식들의 학비를 걱정하는 그 쪼들리는 살림걱정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사소한 일로 다툰 부부싸움의 생각지 못했던 격렬한 감정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랬다가 멋 적게 다시 화해하는 그 멋 적은 화해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람이 살아가는 그 의미를 되새기고
부부싸움 한 후 다시 화해하며 살아야 되는 의미를 되새기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살아있는 예수님신앙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제게 부족해서인지 참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2015-12-01 21:44:56 | 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