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전에는 저에게 정말 무서운 책이었는데 지금은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책입니다. 좋은 묵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5-06-12 11:18:21 | 김삼호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께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42장 5절(흠정역)
요즘 성경읽기 밴드 모임에서 욥기를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져보았습니다. 욥기 읽기를 마무리 하면서 개인적으로 묵상한 내용을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욥기는 어린시절 주일학교 동화설교로도 많이 보고 들었던 내용인데, 실제로 욥기서 자체가 내용도 많고 그 안에 욥과 세친구의 대화의 수준의 상당히 철학적인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깊이 파고 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먼저 욥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면...
욥기1:1 ...욥이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더라.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의 인생이 사탄의 시기 질투로 인해 하나님의 허락하에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욥기2:7-9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심한 종기가 나오게 하매 그가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자기 몸을 긁으며 재 가운데 앉아 있더라. 이게 그의 아내가...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하되
인생에 이런 풍파가 밀려올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기 앞에 펼쳐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망과 한탄을 하다가 급기야는 하나님을 원망, 저주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욥도 마찬가지고 인생의 칠흑 같은 어둠의 터널의 기간을 거치게 됩니다.
욥기3:1 욥이 자기 입을 열어 자기의 날을 저주하니라.
욥기7:20-21 ...내가 주께 죄를 지었사오니 주께서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주께서 어찌하여 내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며 내 불법을 제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시기에는 회개를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회개가 아닌 교리적인, 지식적인, 원망섞인 회개를 하고 있는 욥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치 제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참으로 낯 뜨거웠습니다. 회개하고 기도하면 용서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면서 왜 빨리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원망섞인 투정을 부리는 모습 말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모르는 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이해가 안되어 주님께 따져 묻기도 합니다.
욥기21:7-8 어찌하여 사악한 자가 살아남고 늙도록 지내며 참으로 권세도 강하냐? 그들의 씨가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서고 그들의 후손도 그들의 눈앞에서 그러하도다
또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한 게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잘못하고 계시는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욥기34:5 욥이 이르기를, 내가 의롭거늘 하나님께서 나의 공정함을 빼앗아 가셨도다
이렇게 되자 하나님께서 욥을 만나주시며 창조주하나님, 온 우주 만물의 주관자이신 스스로 계신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욥이 깨닫도록 하시며 일침을 가하십니다.
욥기40:8 네(욥)가 또한 내(하나님) 판단의 공의를 무효로 만들려 하느냐? 네가 너를 의롭게 하려고 나를 정죄하려 하느냐?
이렇게 되자 이제 욥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를 하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욥42:2-6 “주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사오며 어떤 생각도 주께 숨길 수 없음을 내가 아오니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하였사오며... 알지 못한 일들을 말하였나이다...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께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몹시 싫어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여태까지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하나님 즉, 자신이 의롭게 살면 복주시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분으로만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온 우주만물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으로 생각의 전환을 하는 순간,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들과 행동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됩니다. 즉, 주님에 대해서 들었던 신앙생활에서 이제는 주님 그분 자체를 뵈옵는 신앙으로 신앙의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무지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늘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이 티끌과 재와 같은 존재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진정으로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신앙의 혁명을 경험한 모세, 이사야, 베드로, 바울 등등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이 찾아올 때,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볼려고 노력하는 삶 가운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난관이 찾아올 때, 욥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가운데서 창조주 하나님은 늘 선하시고 항상 옳으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음의 반석위에 굳건히 올려놓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에 풍성한 것들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고린도후서7장10절(흠정역)
2015-06-12 02:04:57 | 오광일
조은자자매님, 잔잔하게 적어주신 내용 중에서 제 가슴에 와 닿은 구절이 '아버님의 임종이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기쁨과 부활 휴거 재림의 소망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읽는 제가 오히려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밝은 모습으로 만나 인사 나누겠습니다.
2015-06-08 09:49:58 | 한원규
헤어짐의 아픔이 있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복된 소망이 있다는 것이
믿는 자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하루속히 평온한 마음을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2015-06-06 22:40:17 | 조양교
조 자매님
얼마나 마음이 허전하시겠어요?
우리 산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죽음에 대해 더 생각해 보고 영원을 사모하는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힘내세요.
샬롬
패스터
2015-06-06 12:41:45 | 관리자
자매님
주님만이 우리의 참된 위로자신 것을 일찍부터 깨닫고 계셨네요.
겪고 싶지 않고 순서도 없지만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의 평강이
우리를 붙드시는 것이 감사합니다.
이제 고통도 아픔도 없는 가장 안전하고 기쁨이 가득한 곳에
계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평상의 일로 돌아오셔서 밝은 모습 뵈요~
2015-06-06 09:18:33 | 이수영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 성도님들의 사랑 가운데서 아버지의 장례예식을 잘 마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마음의 무거운 짐과 염려가 있었는데 주님께서 평안한 가운데 모든 것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은 제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큰 기쁨과 우리 몸의 부활 휴거 재림의 소망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정말 몸으로 마음으로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영정 사진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의 어떤 모습보다도 더 밝고 환한 모습, 영화로운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소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와 주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병상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늘 평안한 모습은 제게 언제나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랜 치매로 딸조차도 깜박깍박 하셨지만 모든 것은 다 잊어버려도 주님에 대한 믿음과 그동안 들어서 생각나는 말씀들을 꼭 붙잡고 남은 삶을 잘 정리하시길 기도했었는데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셨음을 마음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철없던 20대 초반
엄마가 돌아가셨던 그 순간에도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이 얼마나 크게 제 귀에 그리고 마음에 울려 퍼졌었는지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변하고 또 쇠하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이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었는지요.
그리고 그 약속대로 지금까지 저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리고 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5-06-06 07:38:51 | 조은자
일상 생활가운데, 그속에서 주님을 묵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형제님의 자세를
저도 본받아야겠습니다.
좋은 묵상들 감사합니다^^
2015-06-06 00:12:51 | 오광일
그리스도인의 신분으로서 가까이해야 할 것과 마땅히 멀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끌리는 대로가 아닌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2015-06-05 10:17:21 | 조양교
요사이 몸의 표현이 자유로워지고 솔직해졌다고 해도 오히려 사랑을 대하는 마음은
점점 더 인스턴트화 되어만 갑니다.
우리네 인생이 바르게 위치를 변경함으로써 정돈되어 간다면
그 본질은 몸 이전에 마음일 것이란 생각을 귀한 글을 읽으며 잠깐 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고즈넉한 분위기가 넘치는 깊은 묵상의 글을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06-04 15:17:44 | 김대용
형제님, 그런장면을 보면 흔히들 쯧쯧 혀를 차며 세상이 말세야.. 한마디씩 하며 지나칠 일을 주님과 연관지어 생각하며 영적인 깨닳음을 얻으시는 모습이 귀하시네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도 형제님과 마찬가지로 눈만뜨면 세상으로 돌려지는 두 눈을 주님께로 향하도록 위치변경 해야겠습니다.
2015-06-04 12:58:45 | 이정희
유용수 형제님, 가까이 할 것을 멀리 할 때 우리 마음에 불행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마치 부모 자식 간에 거리감이 생기면 부모도 자식도 행복감을 느낄 수 없듯이 말입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이고, 형제,자매지간에도 그렇지요!
빨리 원인을 제거하고 그동안 내 곁에 소중히 두었던 나의 자존심과, 부모 자식 간의 친밀한 관계 회복 이란 '위치 변경' 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행복을 회복할 수 있듯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서 행복은 불가능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5-06-04 12:27:24 | 한원규
유 형제님, 감사합니다.
위치 변경이라는 제목이 참 좋으네요.
좋은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6-04 09:50:52 | 관리자
# 나의 위치변경
공항출국장에서 영화에서나 보아왔던 장면을 그야말로 실감나게 라이브로 보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무슨 영화촬영을 하는 줄로 착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젊은 청춘남녀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상인 듯
서로가 서로를 포옹하며 입맞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의 문화와 의식들이
빠른 속도로 서구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하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특히 결혼식장에서는 신랑신부가
양가부모님과 많은 하객들 앞에서 입 맞추는 것을 너무 당연시합니다.
신혼여행지 에서는 더욱 노골적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행동하는 것들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들 세대들은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도
보는 눈이 쑥스럽고 행동하려는 내가 민망스러워 그렇게 하지를 못 했는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세대와 세대 간의 차이,
즉 문화의 차이 의식의 차이 그래서 행동의 차이로까지 나타나는 것인가 봅니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와 의식들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세대들은 이런 것들을 가능한 한 좋게 이해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신랑신부의 이러한 모습들이 더욱 솔직하여 그냥 아름답게만 보일 뿐입니다.
그네들 역시 너무 행복해 하는 표정들이지 않습니까?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들을 피부로 속삭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에 빠져있고 달콤함에 녹아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함께 빠져있고 녹아있는 것입니다.
웅덩이에 빠져있으면 바깥이 보이질 않는 법!
설탕과 프림이 녹아있는 커피 한 잔속에는 이들이 보이질 않고
진한 커피의 향 만 물신 풍길 뿐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그저 아름답게 이해할 수밖에,,,,,,,,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은 저렇게 가까이 한 몸이 되어 있어야 하겠구나!”
이러한 생각을 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기쁨이 있으며 거기에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어떤 것이든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이 가까이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때 사람들은 허전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며
불행함을 느끼는가봅니다.
그렇다면 멀리 있어야 할 것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면
이것은 얼마나 큰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오~그렇구나!
바로 그것이로구나!
빠른 화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듯 어떤 단어 하나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가까이 할 것과 멀리 할 것의 위치변경!
이 위치변경이란 단어가 뜨거운 여름철 팥빙수를 급히 먹을 때
머릿속을 때리는 것처럼 그렇게 내 머리를 아프게 때리고 지나갑니다.
“위치변경!”
이 한 단어가 내 마음을 아프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기쁘게도 하고 행복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멀리 있어야할 것이 가깝게 있는 것에 대한 불행함과 함께,,,,,,,,
지난세월 저는 너무 쉽게, 너무도 무감각하게 이러한 위치변경을 접하며 살아왔습니다.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을 가까이 두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매우 중요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고 살아왔으니 말입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중요한 위치에 두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멀리 두어야할 것을 가깝게 두어 그 위치가 변경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며 꼭~움켜쥐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에게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이 가까이 있지 못하는 그 이유는 또 무엇인가!
공항출국장에서 본 라이브의 한 장면이, 젊은 청춘 한 쌍의 사랑 놀음이,
나의 생각을 여기에까지 이끌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
나로 하여금
못 볼 것을 보게 하신 주님!
그 한 장면으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나와 가장 가까이 계셔야할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눈만 뜨면 나의 눈은 세상으로 자꾸 돌려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계셔야할 그 자리에 다른 무엇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의 위치변경을 발견합니다.
주님!
용서하소서!
그리고 불쌍히 여기소서!
이제 나를 당신의 앞으로 돌리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5년 6월 3일(수)
유 용수
2015-06-03 21:16:27 | 유용수
형제님!
깊이 생각해 보며 제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는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5-27 14:29:36 | 이정희
묵묵히..이 단어에서 깊은 신뢰가 느껴집니다
모든 일에서 자기 주장이나 자기 자랑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면서 이 단어가 마음에 들어오면서 잠시나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엄마로서,아내로서,성도로서 ..맡겨진 삶을 기쁨으로 뿌리를 내리며 묵묵히 행하며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5-05-26 22:51:27 | 최은희
묵묵히, 잠잠히 정진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지며, 그와 같이 행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전을 찾아서 조금 정리해 보았습니다.
hold[keep] one's peace 묵묵히 행하다. 침묵을 지키다
묵묵히 (默默-) 침묵하며, 말없이 잠잠히 silently, in silence
2015-05-26 22:26:00 | 박기용
샬~롬
저도 '묵묵히'란 이 세글자가 뇌리에 남는..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습니다..
감사 합니다..
2015-05-26 12:03:06 | 이명숙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평강의 마음을 유지하면서
주님께 모든 짐을 내어 드리는 자세로
묵묵히’의 의미로
모든 일들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글귀가 참 마음에 와 닿네요. 감사드려요.
2015-05-25 09:32:13 | 이수영
묵묵히 행함 (Hold one's peace)
영어킹제임스 성경 읽기 밴드가 올해로 2년차로 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요한복음,누가복음, 사도행전을 읽었고 요즘에는 창세기를 읽고 있는데, 창세기 24장 21절에 “묵묵히”라는 단어를 보고 너무 마음에 감동이 밀려와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의 신부를 구하기 위한 여정이 기록된 장으로 성경적인 결혼을 꿈꾸는 그리스도인들은 미혼 시절 한 번 쯤은 이 부분을 읽어보면서 나의 미래의 배우자를 만났을 때 과연 내가 기도한 대로 그 사람이 행동을 할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 추억이 묻어나는 성경에 한 부분입니다.(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파견한 나이 많은 종의 모습에 관심을 두고 읽게 되었습니다.
창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종 곧 자기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던 종에게 ...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자신이 오랫동안 신뢰해온 종이자 벗 같은 가장 나이 많은 종에게 특별 미션을 부탁합니다. 이삭의 신부감을 찾아오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임무를 부여받고 ...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창24:12 그가 이르되, 오 주 곧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여, 원하오니 이날 내게 일이 잘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친절을 베푸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자.
창24:15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보라, 리브가가...
너무도 순식간에 기도 응답이 되어,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로 적임자임을 증명해주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 이쯤되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을 것입니다. 기도하자마자 기도의 내용이 이뤄지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기도응답에 대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창24:21 그 사람(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그녀(리브가)를 보고 놀라워하며 묵묵히 주께서 자기의 여정을 형통하게 해 주셨는지 여부를 알고자 하더라.
여기서 “묵묵히”라는 단어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held his peace (KJB)
without saying a word (niv)
in silence (nasv)
remainded silent (nkjv)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묵묵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여정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지켜보며 자신 안에 있는 주님께서 주신 평강을 유지하면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 갔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오늘날 적용해 본다면, 성경 신자가 주님 앞에 어떤 일을 행할 때, 묵묵히 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때 단순히 ‘말없이 한다는 의미의 묵묵히’가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평강의 마음을 유지하면서 주님께 모든 짐을 내어 드리는 자세로 묵묵히’의 의미로 모든 일들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에게 단순히 말없이 목사의 권위에 교회의 지시에 순종하기를 강요한다는 사실입니다. 순진한 성도들은 어떤 지시 사항에 말없이 순종하면 그게 믿음인 줄 알고 평생을 종교의 속박 속에 진리안의 참 자유함을 모른 체 살아갑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말없이 행하는 그 모습에 인간적인 감동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럴까요?
주님께서 주신 평강의 마음을 가지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묵묵히 행함.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의미의 묵묵히 행함이 더욱 풍성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벧후1:2 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2015-05-25 00:53:10 | 오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