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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를 다녀와서(4) 미디어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     이번 성지순례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을 넘어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신비가 무엇인가? 그 신비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지만, 성경만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비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생각은 오로지 남는 것은 기록뿐이라는 것이었다. 기록은 우리 사랑침례교회의 미디어 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도행전 13장부터 21장까지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이 소개된다. 많은 교회, 지명, 사람들이 나오는데, 지금은 현장에는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는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여기가 OOO 교회 터”라고 소개하는 곳이 그럴듯하게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성경을 보면 빌립도 교회는 루디아 집에서 시작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서 시작하였고, 골로새서 교회는 에바브라가 시작하였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라는 여인의 집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교회는 가정교회였다. “여기가 OOO 교회 터” 라고 하는 곳이 가정교회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변천하여 우리가 이번에 본 교회 터가 되였는지를 연결시켜 주는 매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아쉽게도 사진기는 1839년에 발명)이라도 찍어 놓았더라면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고, 누구군가 글을 남겼다면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사랑침례교회는 미디어 선교를 잘 한다고 외부에 알려져 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미디어는 매체를 말한다. 매체는 어떤 것을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미디어 선교를 한다고 할 때 미디어(매체)는 기록 매체, 저장 매체, 인쇄 매체, 녹음 매체 등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선교의 산출물은 자료다.   이런 자료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게 된다. 기록으로 남아야만 영원토록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다음 세대들이 이어받을 수 있고, 연구하고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침례교회가 미디어 선교를 하는 이유가 있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느낀 점에 대한 글은 오늘 4회로 마친다.
2023-12-13 13:13:56 | 이규환
  로마서로부터 히브리서에 이르는 14개 바울 서신서에 접하여 무척 궁금해하던 때가 있었답니다. 사도 바울은 도대체 누구한테서 그토록 위대한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까, 바로 그 점을 말입니다.   로마서 내용 일부만 대충 짚어보더라도, 불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1:18-32),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3:21-26), 아담과 그리스도(5:12-21), 죄를 향해서는 죽고 의를 향해서는 살아 있다(6:1-14),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6:15-23), 율법에서 벗어남(7:1-12), 율법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7:13-25),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음(8:1-11), 성령을 통해 양자 됨(8:12-17) 등등의 그야말로 심~~~오한 진리를 구약성경 조각들 이리저리 짜맞춰 알아낼 수는 없는,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위 궁금증에 대한 답은 일단 성경에 나와 있다고도 할 수 있겠군요. ‘내가 선포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아니하고 배우지도 아니하였으며 다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주어졌느니라’라고, 갈1:11-12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원래 궁금증이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법.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 즉 1:1 PT 받은 건 그렇다 치고...그렇다면...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계시들을 받았을까, 그 점이 또 새로이 궁금해지더군요. ^^   ‘자신의 은혜를 통해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내가 자신의 아들을 이교도들 가운데서 선포하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하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아라비아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노라.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내가 베드로를 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보냈다’라는 갈1:15-19 말씀은 위 새로운 궁금증 관련 약간의 단서 정도를 제공할 뿐, 답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말씀 내용을 분석해 보면...1:1 PT 장소는 아라비아...뿐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참 아리끼리하죠. 아라비아에서 꼬박 삼 년 보낸 것도 아닌 것 같거든요.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가 다시 아라비아로 갔다라는 말은 안 나오는 걸 보면 말입니다.   위 갈1:15-19 말씀뿐 아니라,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라는 고후12:7 말씀 등으로 짐작컨대,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많은 특별한 계시들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위 말씀 구절들로 인하여,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계시들을 주셨을까...가 더욱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가끔 인터넷상을 뒤적거려 보았습니다만, 제가 궁금해하던 그런 내용에 관한 자료들은 없더군요.   엊그저께 구입한 신학원 마지막 과목 필독서 무려(^^) 세 권 가운데 ‘은혜와 근성의 사람 바울’(찰스 스윈돌 지음, 곽철호 옮김)이라는 책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속에 혹시 제 궁금증들에 대한 답이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로 거의 총알 같이 읽어보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그토록 빨리는 안 읽어보죠.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건 이후 삼 년 동안의 행적, 뭐 좀 알아냈냐구요? ^^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책 내용에 따르면, 바울의 아라비아 생활에 관해 연구한 사람들 많았던 것 같습디다만, 제가 찾고 있던 답은 안 나와 있었습니다.   답은 아니었습니다만, 마치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글이 있더군요. 해당 부분만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이 어떤 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여러 이론들을 가지고 그 빈곳을 채우려고 한다.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여정의 목적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제안들이 넘쳐난다. (중략) 진리는,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다.   ...   더 이상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분량을 몰라도 유분수지, 그렇잖아도 제안들 넘쳐나는 그런 곳에 얼쩡거려 봤자 다치는 일밖에 더 있을까 싶어서... ^^ ( 끝 )  
2023-12-12 00:07:59 | 최영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3) 교제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     성지순례의 또 다른 매력은 함께 하는 성도들과 교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성지순례는 자연스럽게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왜냐하면 버스, 순례지, 호텔, 식당 등에서 자연스럽게 조우하기 때문이다. 약 11일 동안 총 52명의 성도들을 좀더 깊고 넓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소득이었다.   [버스 안에서] 한 버스에 26명씩 나누어 탔다. 10일 동안 한 버스를 타고 움직이다 보면 성도들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것이 진짜 모습이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가는 성도도 있고, 이곳저곳 자리를 옮기는 성도도 있었다. 버스가 출발해야 하는 시간도 깜빡 할 정도로 호기심 많은 성도들도 있었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은 한 곳에 꽂히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또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의 필요(물, 간식 등)를 자진해서 채워주는 성도, 매번 버스에 여행 가방을 싣는 데 도움을 주는 성도도 있었다.   [순례지에서] 같은 버스를 탔지만 현장에 내려서 구경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동선이 겹치게 된다. 옆으로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하게 된다. 폐허된 곳을 볼 때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정교한 곳을 볼 때는 감탄을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분은 이러한 것을 보고 이렇게 느끼는 구나!”라며 서로를 알게 된다. 가끔 A버스와 B버스가 순례지에서 만날 때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호텔에서 같은 방을 쓰면서] 호텔에서 잘 때는 2인 1실이었다. 부부, 모녀, 자매가 같은 방을 쓰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역시 혼자 온 형제와 자게 되었다. 나와 방을 같이 쓰게 된 형제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깊게 사귈 수 있었다. 무려 열흘 동안 한 방을 쓰니 무슨 말을 못할까?   [식당에서] 하루 세 번 식사 때도 교제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성도들이 선호하는 메뉴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이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동석하는 성도들의 식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스나 터키는 중국이나 동남아 나라들보다는 향이 그리 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 호텔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녁 때 수프가 맛있었는데, 비슷해 보이는 수프가 아침에는 영 맛이 달라 먹기가 힘들었다. 나오는 메뉴마다 다 입맛에 맞을 수는 없다. 어떤 분들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김, 깻잎, 김치 등을 내놓기도 했다. 주로 빵과 과일 위주로 식사를 하는 분들도 있고, 현지식이 입맛에 맞아서 그런지 두 세 번씩 가져다 드신 분들도 있었다. 어떤 성도는 너무 잘 먹어서 살찔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이번 성지순례는 함께 한 성도들에 대해서 더 넓고 더 깊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줄곧 함께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제가 이루지게 된 것이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를 서로 주고받다 보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매력도 있다. 나를 웅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평소에 이미 다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성도들의 참 모습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023-12-07 08:56:22 | 이규환
성지순례를 다녀와서(2) 성경이 다시 보인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에 사도행전 13장부터 20장까지를 읽었다. 요한계시록도 2장과 3장을 읽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서신서도 읽었다. 떠나기 전에 읽었던 사도행전, 계시록, 서신서들을 다녀와서 다시 읽으니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사건이나 용어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아테네를 방문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철학자들 앞에서 설교를 한 아레오바고 언덕(마르스 언덕)을 찾았다. 사도행전 17장에 아테네 사람들이 모든 일에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음을 지적하고 창조의 하나님을 선포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언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이를 웅변하고 있는 듯했다.    <아레오바고 언덕, 저 뒤편이 파르테논 신전이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간다. 여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게 된다. 아굴라와 함께 천막을 만들어 자비량 선교를 한다.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문다. 사도행전 18장에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재판석으로 끌고 간 내용이 나온다. 아래 사진은 재판장의 베마 터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 선 것이다. 내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 앞에 서서 회계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 자리를 베마라고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었다.    <사도 바울이 갈리오 총독 앞에 섰던 베타 터>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네아폴리스에 도착하고 빌립보로 간다. 여기에서 두아디라 출신의 자주색 옷감 장수 루디아를 만난다. 그리고 점치는 영에 사로잡힌 어떤 소녀의 영에게 명령하여 나오게 한다. 이 일로 실라와 함께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감옥의 간수를 구원한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드로와 항구>   사도행전 13장은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설교를 했다는 비시디아 안디옥이 나온다. 생각보다 외진 곳이었다. 이런 곳을 걸어서 다녔다는 것을 듣고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를 두 번 방문했다. 이곳에서 디모데를 만난다. 루스드라는 완전 시골이었다. 이곳에 디모데라는 훌륭한 청년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 산골에 지금 모스크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사도 바울이 처음 설교했던 장소의 터>   골로새서 2장 1절에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육신으로 내 얼굴을 보지 못한 모든 자들을 위해 얼마나 큰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 너희가 알기를 내가 원하노니’라고 나온다. 이 편지를 라오디게아 성도들도 읽었다. 아래 지도를 보면 골로새서에 편지하면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 성도들을 언급하는지 알 수 있다. 리커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라오디게아에서 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지점에 골로새서가 있고, 라오디게아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지점에 히에라폴리스가 있다. 골로새서는 이번에 가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봤다.    <세 지역은 루커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서로부터 차가운 물을, 히에라폴리스로부터 뜨거운 온천수를 공급받았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다고 지적받은 이유를 성지순례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히에라폴리스의 야외 온천장에서 직접 발을 담가 보았다.   아울러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7개 교회에 편지하는데, 어떻게 속속들이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서에서 사역을 했다. 그러면서 7개 교회를 두루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래 사진은 버가모 터의 모습인데, 저 뒤편(빨간 점선)에 사탄의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요한계시록 2장 13절)    <버가모 교회 뒷편에 사탄의 자리라고 알려져 있는 곳>   베드로전서 1장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한다. 아래 지역을 방문하면서 사도 베드로가 여기까지 와서 말씀을 선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베드로전서 1장 1절이 눈에 훤히 들어온다.     성지순례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성경이 낯설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지도로만 봤던 성경의 지명들을 직접 밟아보고, 성경에 왜 이런 내용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배경을 알게 되니까 성경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다녀온 사람들만 특혜를 누린 것 같아서 함께 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끝.
2023-12-01 21:32:26 | 이규환
형제님, 간결하게 지도와 사진을 섞어 일정을 기록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오래전에( 1990년도) 갔던 곳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땐 사진도 별로 못찍었어요.  남는것이 사진 밖에 없다던데. 그래도 다녀온 후에 성경을 읽을 때 실제로 느껴졌고 내발로 걸었던 곳이 생각나서 좋았지요. 방문했던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을 때 더욱 현실감있을 거에요. 다음 기록도 기대가 됩니다.
2023-11-27 07:26:30 | 이수영
감사합니다. 잘 찍으신 사진 그리고 일정별로 간결하게 정리된 자료와 소감도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본 지역과 이름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생생하게 접하고보니  이번 성지순례 가신 분들이 얼마나 은혜가 되었을지 상상이 되네요. 참 좋습니다.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11-25 03:45:44 | 이정자
한 마디로 완전 대~~~~~~~~박의 성지 순례 후기로군요.    머~언 옛날 머~언 곳에서 가슴 속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하나로 거룩히 구별된 삶 살고 가신 분들의 모습 보이는 듯 그분들 숨결 느껴지는 듯합니다.    참으로 주님 안에서 쓰신 글, 너무나 완벽한 후기이기에 그렇겠죠. 자~~~~~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2023-11-25 01:14:41 | 최영오
교회에서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같이 동행하지 못한 나로서는 모두들 어떻게 보내며 순례길을 다녔을까 ? 하는 궁굼증이 생기곤 했는데 사진과 함께 알기쉽게 잘 설명 해주신 이규환 형제님 감사합니다. 샬롬 !
2023-11-24 08:40:02 | 오승록
성지순례를 다녀와서(1) 주요 일정   이번 성지순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하고, 느끼고, 배운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성지순례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몇 차례에 걸쳐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주요 일정은 아래와 같다.   [순례지 개요]   이번 성지순례는 그리스와 터키(튀르키예)였다. 주요 순례지역은 아래 점선으로 표시된 곳이다.   <성지순례 지역>     [1일차]   11월 8일 오전 5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경이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도착해 있었고, 출국 수속이 진행 중이었다.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하여 약 12시간을 비행하여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허브 공항으로 우리나라에서 인천공항을 벤치마킹해서 지어준 공항이며, 인천공항보다 3배 이상 큰 공항이라고 한다. 참고로 터키(튀르키예)는 우리나라 면적보다 8배 넓고, 인구는 9천만 명이라고 한다.    <이스탄불 국제공항 전경>     [2일차]   이스탄불에 있는 호텔에서 잠간 눈을 붙이고 8시 30분에 이스탄불 공항에서 그리스 수도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아테네 공항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이동했다.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 아테네의 바위지대에 있는 성채이며, 건축학적,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대 건축물들의 유적지(파르테논 신전 등)가 있다. 아크로폴리스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단어 ἄκρον (아크론, "아주 높은, 최상의")과 πόλις (폴리스 "도시")에서 온 것이다. 아크로폴리스라는 단어가 포괄적이고 그리스에 다른 많은 아크로폴리스들이 존재하지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의 중요성으로 인해 흔히 아크로폴리스라고 하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말한다.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감옥을 잠간 보고, 아레오바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레오바고 언덕 입구에는 사도행전 17장 21-30절까지가 기록된 동판이 있었다.   아레오바고는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아레이오스 파고스’(아레스 언덕)라는 커다란 바위 언덕이다. 이곳은 오늘날로 치면 고등법원이다. 당시 철학자들이 이 돌 바위 언덕에서 재판할 사람들을 재판했고 이슈를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어 응변하게 했으며, 자기들 철학자들끼리는 토론하며 변론하던 장소였다. 이후 로마시대에는 아레스 언덕을 로마 신화 전쟁의 신 이름을 따 마르스 언덕이라 불렀다. 킹제임스 성경에도 마르스 언덕으로 나온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와 베레아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다 고초를 겪고 아테네로 옮긴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 아테네 사람들아, 내가 알고 보니 너희가 모든 일에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도다. 내가 옆으로 지나가며 너희가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이 글 즉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는 글이 새겨진 제단을 발견하였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경배하는 그분을 내가 너희에게 밝히 알려 주리라.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며 또 무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사도행전 17장 22절-25절) 바울이 온갖 미신으로 가득 찬 아레오바고에 서서 유명한 기독교 변증을 했던 곳이 바로 아레오바고 언덕이다. 이어서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제1회 근대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주경기장을 구경하고, 고린도로 이동하여 고인도 유적과 베마 터와 고린도 운하와 바울이 머리를 깎았다는 겐그레아를 찾았다.   <아테네 전경>     <아레오바고 언덕>     <아레오바고 언덕 입구에 사도행전 17장 22-30절까지가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파르테논 신전>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개최됐던 아테네 주 경기장>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감옥>     <고린도 베마 터>     <고린도 운하>     <사도 바울이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 겐그레아 항구>     [3일차]   마테오라 지역으로 이동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4번째인 마테오라(Meteora)는 말 그대로 불가사의였다. 지금은 도로가 포장되어 버스로 그 기이한 곳을 달려 가까이에서 경험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떻게 저런 곳에 저렇게 피난처, 아니 수도원을 건설했을까?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테오라(Meteora)는 그리스어이며 “매달린 바위”, “공중에 매달린”, “하늘 바로 아래”라는 뜻이요, 그리스에서 아토스산 다음으로 정교한 큰 수도원이 많이 밀집한 지역이다. 여러 수도원이 자연 사암 바위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위치상 중부그리스의 핀토스 산맥과 페네이오스 강 근처의 테실리아 평야의 북서쪽 끝이다. 마테오라(Meteora)에는 여섯 수도원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11C경부터 수도사들이 운둔하기 시작했으며 14C 최초의 수도원인 “Grear Meteoro Metamorphosis”가 설립되었고, 그 수가 계속 증가해 16C에는 약 20여개의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테오라 지역의 한 수도원>    아쉽게도 베레아와 데살로니가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스쳐 지나갔는데, 들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참고로 베뢰아(Berea)는 데살로니가(Thessalonica)에서 남서쪽 약 80km 떨어진 베르미오스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케도니아의 한 도시이며, “무겁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곳은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시 실라와 함께 데살로니가(Thessalonica)에서 전도한 후 거쳐 간 마을이다.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며 그것들이 그러한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므로 그들 중 많는 사람들이 믿었고 또한 그리스 사람인 귀부인들과 남자들 중 적지 않는 사람이 그러하더라.’(사도행정 17장 11-12절) 실제로 이곳 사람들은 바울의 전도를 잘 받아 신자가 많이 생겼다. 그러나 데살로니가(Thessalonica)에서 바울의 전도를 방해했던 유대인들이 이곳 베레아(Berea)에까지 와서 무리들을 선동하여 소란케 하자 바울은 혼자 배를 타고 아테네로 향했다. 후에 바울의 아시아 선교 동행자 중 소바더는 이곳 성 출신이다.(사도행전 20장 4절)   데살로니가(Thessalonica / Thessaloniki,테살로니키)는 동•서양을 연결하는 아치형의 문 같은 위치에 있으므로 교통의 요지이며, 에게해의 항구도시이다. 특히 이곳은 로마와 동방을 맺는 주요 군사 도로인 “에그나티아 가도”의 중심지에 있었고 “빌립보”에서 약 161km의 지점에 있었기에 군사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다. 바울은 로마의 에그나티아 (Via Egnatia) 고속도로를 통해 2차 선교 여행을 했다. 이 도로는 기원전 145년 마케도니아 총독으로 부임한 에그나티우스(Egnatius)의 명령으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도로명은 에그나티우스 총독의 이름을 따라 ‘에그나티아’라고 명명되었다. 이 도로는 약 25년 동안에 건설되었고 길이가 무려 696마일(1,120km)이다. 에그나티아 푯말을 보고 직접 걸어보면서 갈라디아서 4장 4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때가 충만히 찼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 충만의 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도로의 발달이었다. 그래야만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로 가는 지방도로>      <비아 에그나티아, 모든 길은 로마로, 곳곳에 이런 길이 있다>   [4일차]   암피볼리 사자상을 잠간 구경했다. 사도행전 17장 1절에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지나 데살로니가에 갔는데, 거기에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으므로’ 라고 나온다. 아마도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는 도중에 이 사자상을 보았을 것이다. 성경에는 바울이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에서 사역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도 이 사자상만 잠간 보고 빌립보로 이동했다. 빌립도로 이동하여 그 당시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곤 하는 강가로 갔다. 여기서 그 유명한 두아디라 출신의 자주색 옷감 장수 루디아를 만나게 된다. 루디아 기념교회, 바울 감옥터를 방문하였다. 바울의 감옥터는 지붕이 없고 두꺼운 벽만 남아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붕은 무너져 내린 것 같다. 바위산 기슭에 있는 바울 감옥터를 보면서 “아! 여기가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곳이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고난을 당했던 바울과 실라의 신앙을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암피폴리스의 사자상>      <사도 바울이 루디아를 만났던 강가>     <루디아 기념 교회>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빌립보 감옥터>     이어서 그리스에서 터키로 이동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올 때는 비행기로 이동한 반면, 그리스에서 터키로 갈 때는 비행기가 아닌 버스로 이동했다. 터키 입살라 국경까지 가는데 차가 많이 막혔다. 터키 차나칼레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 경이었다.   <터키 입살라 국경>   차나칼레(튀르키예어: Çanakkale)는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차나칼레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1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 있고 다르다넬스 해협과 접한다. 이 해협을 지나는 차나칼레 대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교이며 우리나라 기술로 건설된 다리이다. 북쪽에 있는 유럽 지역을 횡단하는 페리가 운행되며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유적이 남아 있다.   <차나칼레 전경>     [5일차]   드로아를 방문하고. 버가모, 두아디라, 에베소로 이동하여 사도요한 무덤, 누가의 묘, 셀수스 도서관, 원형극장 등을 관람했다. 5일차부터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개 교회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유럽으로 가게 된 드로와 항구, 저 건너편이 그리스다>     <버가모 교회 터>     <두아디라 교회 터>     <에베소 원형극장>     <에베소 셀수스 도서관>     <사도 요한 묘>     <사도 요한 기념교회>     [6일차]   필라델피아, 사데를 방문하고 파묵칼레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목화의 성’을 의미하는 파묵칼레는 단층을 뚫고 나오는 온천수의 칼슘 퇴적물이 형성한 독특한 지형지물(地形地物)들로 만들어진 진귀한 광경 때문에 터키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파묵칼레에는 17곳의 온천 샘물이 있다고 한다. 온천수에는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이 포화되어 있는데, 테라스를 지나는 과정에서 칼슘분이 침전되고 이산화탄소가 분리되어 물을 따라 흐르게 된다. 영겁의 세월이 흐르면서 계단식 저수지가 차곡차곡 형성되며, 신비의 지형을 형성했다. 고대인들은 이 온천을 즐겼다고 한다. 파묵칼레는 로마황제들이 즐기던 곳이었으며,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방문했다는 설도 있다.   <필라델피아 교회 터>     <사데 교회 터>     <파묵칼레 전경>     [7일차]   7일차에는 히에라폴리스, 라오디게아, 비시디아 안디옥을 순례한 후 꼬냐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라오디게아는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동남쪽으로 약 72km 떨어진 곳에, 에베소에서는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도시의 맞은편 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는 히에라폴리스가, 북동쪽으로 약 14km 지점에는 골로새가 있다. 라오디게아는 히에라폴리스로부터 온천수를, 골로새서로부터 찬물을 공급받았는데, 뜨겁지도 차지도 않다고 지적받는 내용이 확 와 닿았다. 뜨거운 물은 뜨거운 것이 본질이고 차가운 물은 찬 것이 본질인데 이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지적받았던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 3장 15절)   <라오디게아 교회 터>      <히에라폴리스 원형극장>     <히에라폴리스 사도 빌립보 무덤>     <히에라폴리스 야외 온천, 여기서 성도 전원이 발을 담그고 잠시 피로를 풀었다>     <사도 바울이 첫 설교를 했다는 비시디아 안디옥>     [8일차]   갑바도기아로 이동하여 이고니온, 루스드라 순례 후 지하도시 데린쿠유를 방문했다. 루스드라는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쳐주고 바울과 바나바를 경배하려 했던 곳이고, 돌에 맞아 죽을 뻔했던 도시다. 2차 선교여행 시에 디모데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갑바도기아는 베드로전서 1장 1절에 나오는 지역이다.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위치>      <데린쿠유 지하도시 모형도>     <데린쿠유 지하도시 지하 13층,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하생활을 했다고 한다>     [9일차]   갑바도기아의 괴레메 야외 박물관, 젤베 계곡, 파샤바 계곡, 비둘기 골짜기, 우치히사르 순례 후 호텔로 이동했다. 이 지역은 광활하여 지프차로 약 2시간 동안 가파른 계곡을 탐방했는데 중간 중간에 기사가 사진을 찍어준다.   <괴레메의 야외 박물관>      <갑바도기아의 비둘기 계곡, 지하생활을 할 때 비둘기를 길러 양식으로 삼았다고 한다>     <갑바도기아의 파샤바 계곡>     <갑바도기아는 넓고 지형이 험악하여 지프차를 타고 탐방을 했다>     [10일차]   이제 순례의 막바지다. 갑바도기아에서 약 1시간 동안 이동하여 카이세리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이 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수화물(짐)을 보냈다. 같은 터키항공이라서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니는 일은 없다. 국내선을 이용하여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오후 일정은 고대 이스탄불의 심장부였던 히포드럼 광장과 블루모스크, 모스크로 전환된 성소피아 박물관을 관람하고,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탔는데, 터키의 유럽 쪽과 아시아 쪽을 바다에서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유람선 하선 후에는 마지막으로 그랜드 바자르를 관광했다.   <이스탄불의 심장부 히포드럼 광장 오벨리스크>     <성소피아 교회(박물관), 2020년에 모스크로 전환됨>   보스포루스 해협은 튀르키예의 도시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는,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해협으로 러시아의 우랄 산맥, 캅카스 산맥 그리고 다르다넬스 해협과 함께 유럽 지역과 아시아 지역을 나누는 지리적인 경계선이기도 하다. 해협이라지만 폭은 바다치고는 상당히 좁아서 바다라기보다는 한강 같은 좀 큰 강으로 보일 정도로, 최단 폭이 700m에 불과하니 폭이 1km에 근사한 한강과 폭이 비슷한 셈. 이외에도 길이는 31km로 광진교부터 김포대교 정도까지의 길이로 서울 관할의 한강보다도 짧지만, 평균수심 65m에 최소수심 13m, 최대수심은 110m 정도라 한다.   <보스포루스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타고 선상에서 바라본 유럽쪽에 있는 터키의 모습>     <유람선 선상에 바라본 또 다른 터키의 모습, 터키는 국토의 3%가 유럽에 있다>   그랜드 바자르는 이스탄불의 구시가지 중심에 자리하며 '카파르 차르쉬'(Kapali Carsi, 덮여 있는 시장)란 이름으로 불린다. 461년 개장한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시장이다. '바자르'는 중동이나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시장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랜드 바자르'라는 명칭에 걸맞게 규모가 엄청나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교차한 골목을 따라 늘어선 점포의 수가 약 4천500개에 달하고 성문처럼 생긴 입구가 21군데나 있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명품이라고 하는 썰어먹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고기를 썰어먹는 것처럼 보인다.   <지하철을 타고 그랜드 바자르 입성, 1875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나라는?>      <바자르 시장에서 명물 썰어 먹는 아이스림과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이동>     [11일차]   새벽 2시 30분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으로 Go go. 오후 6시 20분경에 도착했다. 갈 때는 약 12시간이 걸렸는데, 올 때는 신기하게도 약 9시간 정도 걸렸다. 순례기간 동안 버스는 원 없이 탄 것 같다. 순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끝.  
2023-11-24 03:23:04 | 이규환
자유의지 참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성경을 읽다보면 특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순종하는 자녀를 바라시는구나..깨닫습니다. (자유의지를 사용하는)자신의 하루를 돌아볼 때 (제기준에 밋밋한 하루인것 같아도) 하나님말씀, 시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2023-11-09 09:27:06 | 목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