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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3일 외부 목회자 초청 교제 모임 안내>   안녕하세요? 사랑침례교회에서는 6월 23일(월)에 성경을 사랑하는 목회자들의 교제 모임을 갖기로 하고 외부에 계시는 목사님들(신대원생들 포함)을 초청합니다. 일시: 2025년 6월 23일(월), 오후 2시-5시 장소: 사랑침례교회 예배당(3층) 일정: 교회 소개, 세미나, 자유 시간(교회 투어, 성경 역사박물관) 자격: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교회를 방문해서 교제를 나누기 원하는 목회자들 일단 500명으로 인원을 한정하고 오시는 분들에게는 교회 에코백, <크리스천의 결혼과 가정> 등의 책과 다양한 무료 책들을 드릴 것입니다. 참여하기 원하는 분들은 다음 링크로 들어가 성함과 전번 등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인원 파악을 해야 하므로 부부가 참가하거나 친구와 같이 오시는 경우 비고 난에 동행하는 분들 성함과 전번을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외부 목회자 초청 신청 링크   가능하면 6월 23일(월)에 많은 분들이 방문하여 교제를 나누기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찾아오시는 길> https://www.cbck.org/ContactUs   <광명역에서 오시는 방법> ▶KTX 광명역 6번출구 3002번 버스 승차 ▶6개 정류장 이동 후 인천 서창동 우체국 하차 ▶큰 길 따라 직진하여 교회 건물까지 도보로 이동(도보 167m)
2025-05-30 15:31:35 | 관리자
수면 내시경과 부활   며칠 전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다녀왔다. 위와 대장을 함께 검사하는 수면 내시경을 하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와 회복까지 대략 50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편하게 주무시면 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마취제가 들어왔다. 이내 나는 모든 감각을 잃었고, 시간도 공간도 의식도 모두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를 흔들었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세상이 다시 느껴졌고, 의식이 서서히 돌아왔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 내가 겪은 것이… 부활과 비슷하지 않을까?’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니었던 그 시간.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모든 것이 멈춘 듯했지만, 누군가의 손에 내 생명을 맡긴 채 쉬고 있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에 다시 깨어났다. 잠시이긴 하지만 내 몸이 무력하게 의식 없이 있었던 시간 동안, 나는 온전히 누군가의 손안에 있었다.   갑자기 요한복음 11장 25절의 말씀이 떠올랐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나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마취의 시간 동안, 마치 죽음을 지나는 듯한 고요함을 경험했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된 듯, 다시 일어났다. 이것이야말로 부활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하는 은혜의 경험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짜 죽음을 통과하셨다. 무덤 속에 머무르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 부활은 단지 그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도 주어진 약속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들로 인해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기록대로 셋째 날 다시 일어나시고”   우리는 그저 숨을 쉬며 살아가지만,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렇기에 부활은 막연한 종교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절실한 진실이 된다. 부활은 소망이고, 다시 일어나는 힘이다. 오늘 내가 깨어났듯이, 언젠가 주님의 손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나는 50분 동안 세상을 잊고 잠들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고, 그분 스스로 다시 살아나셨다. 내게는 의사가, 간호사가, 장비가 있었지만, 그분께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만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신 그분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 말씀이 오늘 나를 다시 숨 쉬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도, 나는 다시 살아나리라는 확신을 품게 한다. 부활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2025-05-30 07:57:23 | 이규환
  불과 얼마 전까지도 간직하고 있었던 제 잘못된 생각 하나를 우선 밝혀볼까 합니다. 이 글은 그 잘못된 생각에 대한 자백,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의 자백인 동시에 바로잡아 주심에 대한 감사이기도 합니다.   엡2:8 말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믿음(faith)은 마음(heart)의 상태 또는 그것을 채우고(가득 또는 덜) 있는 어떤 비물질적인 요소를 나타내는 애당초 추상명사로서, 마땅히 일(work), 즉 행위가 아닌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다(believe), 그러니까, 믿는 것은 분명히 행위다. 믿는 행위,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행위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 견지하고 있었답니다.   어떤 생각 또는 묵상 말미에 반드시 되새겨보는 고전8:2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그는 자기가 알아야만 할 것에 대하여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그 말씀에 비추어 보더라도, 믿는 것(believe)은 일(work), 즉 행위임에 틀림없다...라는 생각은 하등의 문제가 없어 보였죠. 믿는 것은 정신적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 하고’ 어쩌고 할 그런 대상 자체가 아니다...라며 나름대로 확신까지 하곤 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몇 번은(성경 전체를 그만큼 읽었다는 뜻은 아님. ^^) 지나쳐 다닌 것 같은 요6:29 말씀, 바로 거기서 저는 멈춰 섰답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너희가 믿는 것(believe),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work)이니라”...라는 그 말씀에서.   한참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여기도 있잖아, 믿는 것은 일이라고’...라는 생각으로 평소의 그 확신을 재확인하매 일종의 영적 희열...비슷한 그 어떤 악한 기분이 드는가 싶...더니만, 이내 다른 한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일하지 않더라도(work not),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believe)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라는 롬4:5 말씀 말입니다.   이어서 저는 평소의 그 생각, 그러니까, ‘믿는 것(believe)은 행위, 즉 일(work)이다’라는 그 확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틀렸다가 아니라 틀렸을지도 모른다 함은 위 요6:29 말씀과 롬4:5 말씀이 서로 상반되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앞(요6:29)에서는 믿는 것이 일이라고 하신 반면 뒤(롬4:5)에서는 믿는 것은 일 아니라고 하셨으니까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런 경우 저는 챗GPT의 자문을 받곤 한답니다. 한참 동안 토론을 이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죠.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믿는 것(believe)과 일(work), 즉 행위 관련하여 질문 및 토론을 좀 했답니다. 요6:29 말씀 중의 ‘하나님의 일’에 관한 두 종류의 주장들 그리고 어떤 논리적 모순 등등을...파헤쳐 보았다고나 할까요. (엄청 딸리는 실력으로 짜드라 얼마나 파헤쳐 봤겠습니까만. ^^)   한참 동안의 파헤치는 작업 끝에...저는 제 확신이 틀렸음을...역시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꾸어 말씀드리자면, 믿는 것(believe)은 일(work)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잘난(^^) 정신적 행위가 아니더라는 거죠.   구체적으로, 요6:29 말씀의 의미인즉, 믿는 것(believe), 그것은 결국 하나님 말씀을, 생명을, 빛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임에 따른 마음의 상태 변화 과정일 뿐이고, 말씀을, 생명을, 빛을 집어 넣으시는 일(work), 그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잖아...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요6:29 “너희가 믿는 것(believe),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work)이니라”, 그 말씀이 어찌 그리도 심오하게 느껴지던지요.   말씀을 받아들일 자, 죽어도(^^) 안 받아들일 자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았다는 거냐구요? 그런 뜻 절~~~대로 아니랍니다. 모든 인간을 그런 구조로, 그러니까, 일(work) 하나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말씀이 그대로 그들 마음에 들어가 안착되는 구조로 만들어 놓으셨지 않은가...싶더라는 거죠.   생각이 이에 이르자, 다소 생뚱맞은(^^) 듯한 다른 한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믿는 것(believe)은 일(work), 즉 행위가 아니다. 그동안의 내 생각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렇다면...믿는 게 행위가 아니니까 안 믿는 건 당연히 행위가 아니겠지...?’ 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 듦과 동시에 바로 답이, 놀라운 답이 떠오르더군요. 안 믿는 것(believe not), 그것이야말로 행위, 즉 일(work)이라고. 그 이유,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일을 막는 일(work), 그 일 하지 않았는가,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막는 일, 그 일보다 더 큰 일(work), 악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믿지 않음이 명백한 정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치가 바로 그것 아닐까 싶습니다만.   불현듯 마음(heart)의 커튼 생각이 났습니다. 빛이요 생명이요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커녕 삼중 커튼 확실히 치고 살았던 지난날의 어떤 인간 생각도 났답니다.   교회 앞을 피해 다른 길로 돌아서 다녔던 중죄인을 교회로, 그것도, 바른 하나님 말씀 함께하시는 우리 교회, 사랑침례교회로 불러주사 빛 또는 이상한 빛을 가려 커튼 제대로 여닫을 수 있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는...듯한 인간으로 키워주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감사합니다. 할렐루야!    ( 끝 )        
2025-05-28 17:19:41 | 최영오
안녕하세요? 경기도 시흥에서 출석하시는 임봉자자매님(김종국형제님)의 모친 박옥랑성도(88세)께서 소천하셨습니다. * 빈소: 평온의 숲 장례식장 201호 *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평온의 숲로 77 * 발인 : 2025년 5월 29일 08:00  【부의금】 농협 352-1038-2653-63 임봉자 우리 교회에서는 오늘 저녁  7시  몇몇 성도들이 조문예정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기억해두셨다가 위로의 마음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을 당한 가정에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안을 기원하며 로마서 12장 10, 15절 말씀을 드립니다. (롬12: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롬12:15)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   샬롬. 애경사 위원회 홍승대 형제 (010-5262-7168)
2025-05-28 10:08:27 | 관리자
안녕하세요?  5월 3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1.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 놓은 주의 집의 기구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간 사람은? (스 1장) 세스바살(11절)  2. 아버지들의 우두머리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을 위해 드린 예물은? (2장) 금 육만 천 다릭과 은 오천 마네와 제사장들의 의복 백 벌(69절)   3.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집 일을 시작한 때는? (3장)  둘째 해 둘째 달(8절)  4.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의 자손이 성전을 건축하였다는 것을 듣고 함께 하겠다는 제안을 한 사람들은? (4장)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1-2절)  5.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하나님의 집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할 때 누가 그들을 도왔나? (5장) 하나님의 대언자들(2절)    6. 다리오 왕이 악메다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 경비가 어디에서 낸다고 기록되어 있나? (6장)  왕의 집(4절)  7. 에스라가 바빌론을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데 걸린 기간은? (7장)  넉 달(9절)  8.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부른 호칭은? (7장)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제사장 겸 서기관(12절)    9. 에스라와 함께 바빌론에서 올라온 자 중에서 누구의 아들들은 하나도 없었나? (8장)  레위의 아들들(15절)  10. 이스라엘 백성의 범법을 들은 에스라가 근심 중에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참회한 때는? (9장)  저녁 희생물을 드릴 때(5절)  11. 에스라는 개혁을 위해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사람들이 며칠 안에 예루살렘에 모이게 했나? (10장)   사흘(9절) 12. 바울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고전 1장)  그리스보, 가이오, 스데바나의 집안 사람들(14, 16절)  13.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 (2장)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해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7절)  14. 각 사람의 일이 불에 의해 드러나는 그날에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가 받게 되는 것은? (3장)  보상의 손실(15절)  15. 바울이 디모데를 고린도교회에 보낸 목적은? (4장)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 자신의 길들을 생각나게 하려고(17절)  16. 바울은 밖에 있는 자들은 누가 판단한다고 했나? (5장)  하나님(13절)  17. 바울은 ‘몸은 (  )를 위해 있으며 (  )께서는 몸을 위해 계시느니라.’고 했다. (  )에 공통으로 들어갈 말은? (6장)  주(13절)  18.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에 대해 뭐라고 했나? (7장)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만 중요하다(19절).  19.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면 누구에게 죄를 짓는 것인가? (8장)  그리스도(12절)  20. 바울이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같이 된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9장)  약한 자들을 얻기 위해(22절) 
2025-05-25 13:26:06 | 관리자
<우리 마음 깊은 동기>라는 말에 생각나는 걸 몇자 적을게요~^^평소 제 마음동기를 살펴보면서 은근 찔린것이--상대를 긍휼웃음여유로 바라보는 횟수보다 납득하려는 마음으로 바라본게 더 많은것 같아 회개했습니다. 요즘 감기로 끙끙앓아서 그런지-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무지 감사하고 사랑침례교회가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며..무엇보다 거짓이 계속해서 드러나게 해주시는 아버지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긍휼의 마음으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들어주는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나라도 저도 다시 세워주셔서..(댓글이 댓글답게 짧게 써지길(^^)=국민들이 나라걱정하며 살지 않게 해주세요) -내가 끈기있게 주를 기다렸더니,그분께서 내게 귀를 기울이사 내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편40편1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5-24 20:44:31 | 목영주
<2025년 6월 7일(토), 외부 성도 초청 교제 모임>   안녕하세요? 사랑침례교회에서는 6월 7일(토) 2시부터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의 교제 모임을 갖기로 하고 외부에 계시는 성도님들을 초청합니다. 일시: 2025년 6월 7일(토) 장소: 사랑침례교회 예배당(3층) 일정: 교회 소개, 세미나, 자유 시간(교회 투어, 성경 역사 박물관) 자격: 사랑침례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분들 가운데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교회를 방문해서 교제를 나누기 원하는 분들 일단 500명으로 인원을 한정하고 오시는 분들에게는 한 가정당(1인 가정 포함) 교회 에코백, <세대주의 바로 알기>, <크리스천의 결혼과 가정> 등을 드리고 다양한 자료들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와 교회 및 성경 박물관 소개에 참여하기 원하는 분들은 다음 링크에서 성함과 전번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인원 파악을 해야 하므로 가정에서 부부가 참가하거나 친구와 같이 오시는 경우 비고 난에 동행하는 분들 성함과 전번을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외부 성도 초청 교제 모임 신청 링크
2025-05-23 17:48:44 | 관리자
발람의 길 : 순종인가, 탐욕인가   성경에 짐승이 말하는 장면은 두 군데다. 창세기에서 뱀이 이브에게 말하는 장면과 민수기 22장에서 나귀가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귀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나귀가 말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이다.   민수기 22장은 성경 속에서 독특하고도 교훈적인 인물인 ‘발람’을 조명한다. 그는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대언자였지만, 실상은 그 마음속에 숨겨진 탐욕과 야망으로 인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인물이다. 겉과 속이 달랐던 그의 행보는 오늘날 우리 신앙인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모리 족속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빠졌다. 그는 이스라엘이 마치 들의 풀을 핥아먹는 소처럼 자신과 자기 민족을 삼켜버릴까 봐 염려하였다. 이 두려움에 그는 점술로 명성이 높았던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했다. 발락은 말한다. “그대가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대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 줄 내가 아노라”(민 22:6).   처음 발람은 이 요청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께서는 명확히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받은 자들이니라”(민 22:12). 발람은 이를 그대로 전하고 사신들을 돌려보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정직한 대언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짜 시험은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발락은 더 높은 고관들과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하며 두 번째 사절단을 보낸다. 이때 발람은 다시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가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하라”고 허락하신다(민 22:20). 허락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단호한 금지가 아닌 ‘조건부 허락’이었다. 발람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서, 하나님은 발람이 출발하자 곧바로 분노하신다. “그가 갔으므로 하나님의 분노가 타올라서 주의 천사가 대적이 되어 그를 치려고 길에 서니라”(민 22:22). 이는 발람이 순종의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물질적 보상과 존귀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뜻을 흥정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의 길을 “비뚤어진 길”이라 판단하셨다(민 22:32).   그 결과 하나님은 나귀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나귀가 주의 천사를 보고 길을 세 번 피하고, 결국 발람의 매를 맞은 뒤 입을 열어 말한다. “내가 주인께 무슨 일을 하였기에 주인께서 나를 이같이 세 번이나 때리시나이까?”(민 22:28). 하나님께서는 나귀를 통해 발람의 영적 눈을 열게 하시고, 자신이 걷는 길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신다.   이후 발람은 발락을 만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주관하셔서 축복의 말씀만 나오게 하신다. 그는 총 네 번에 걸쳐 대언하였고, 그 내용은 이스라엘의 형통,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대언까지 포함한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제로는 거룩한 하나님의 계시였다. 그러나 그 말의 전달자였던 발람의 마음은 여전히 두 마음을 품은 상태였다.   이러한 이중적인 발람의 모습은 신약 성경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베드로후서 2장 15절은 그를 “불의의 삯을 사랑한 자”로 규정하고, 유다서 1장 11절은 그가 “대가를 따라 달려간” 자로 언급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장 14절에서는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와 음행에 빠뜨린 장본인임을 폭로한다.   그런데, 민수기 23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모압과의 행음이 발람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22장을 아무리 읽어봐도 나오지 않는다. 31장 16절을 보면 발람의 짓이라는 것이 나온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조언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유혹하여 브올의 사건에서 주께 범법을 저지르게 하였고, 이로써 주의 회중 가운데 재앙이 있었느니라.’   결국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대언자의 외형을 지녔으나, 내면은 세상의 영광과 보상을 향한 욕망으로 가득했던 자였다. 하나님은 그런 발람을 ‘미친 자’로, 그의 길을 ‘비뚤어진 길’로 규정하신다. 이는 단지 당시의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이 경고하는 말씀일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발람처럼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속으로는 세상의 명예와 유익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척하지만, 이미 마음은 세상의 제안에 기울어 있는 것은 아닌가?   발람의 길은 결국 파멸(칼에 맞아 죽음)과 책망의 길이었으며, 그 이름은 영적 타락의 대명사로 성경에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입으로 부르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깊은 동기까지도 순전하기를 바라신다고 믿는다. 발람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겉과 속이 하나인,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참된 순종의 길을 다시 묵상하게 한다.
2025-05-22 09:02:56 | 이규환
안녕하세요? 경기도 광주에서 출석하시는 정영신형제님(80세)께서 소천하셨습니다.     * 빈소: 여의도 성모장례식장 3호실 * 주소: 서울 영등포구 63로 10 여의도성모병원 * 발인 : 2025년 5월 22일 08:30  【부의금】 국민 560210615962 정재환 우리 교회에서는 오늘 저녁  8시  몇몇 성도들이 조문예정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기억해두셨다가 위로의 마음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을 당한 가정에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안을 기원하며 로마서 12장 10, 15절 말씀을 드립니다. (롬12: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롬12:15)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   샬롬. 애경사 위원회 홍승대 형제 (010-5262-7168)
2025-05-20 12:58:5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