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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제님의 글이 저도 매번 기다려져요. 똑같은 마음으로 아멘이 되거든요. 단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순전하고 진실하게 믿음생활을 하되 꾸준함이 없으면- 꾸준함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형제님이 가장으로서 가정을 잘 이끄는 결과가 두 자녀를 통해 눈에 보였는데 그 비결이 형제님의 꾸준함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네요. 뛰어난 강점은 겸손이 결여되기가 쉽지요. 강점이 있는 성도는 늘 주님을 대하는 심정으로 성도들을 대하면 절로 겸손해 질 것 같아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고요. 단체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뛰어난 리더 한 사람보다는 성실하고 꾸준한 긍정적인 성도들인 것 같아요. 작은 것에도 힘을 더할 줄 아는.
2012-02-01 16:04:24 | 이수영
드러내서 훌륭하다고 말씀드리면 쑥스러워 하실 줄 알지만 저절로 그런 말이 나옵니다. 정말로 우리 교회에 필요한 말씀을 짚어 주신 것 같아 감탄도 되고요. 언제라도 필요한 생각이지만 놓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성도가 많아지고 바빠지고 뭔가 이루어질 때 꼭 생기는 문제의 열쇠라고 봅니다..진실함,겸손함,배려,리더십!!!! 감사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저와 제 남편은 많이 배우고 은혜를 받았고 소득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성도님들의 꾸준한 기도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2012-02-01 14:23:18 | 오혜미
형제님의 글을 대할때마다 마음에 부드럽게 잘 다가옵니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형제님의 꾸준함의 강점이 매번 성도칼럼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가정예배도 드리시는 모습 또한 본받고 싶네요...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저도 제 자신을 비춰보는 시간을 갖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2-01 12:49:01 | 주경선
1월의 마지막 날을 눈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요즘 저는 가능한 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일거삼득을 얻고 있습니다. 어제는 세찬 눈바람으로 고생은 되었지만 그나마 혼잡구간이 아니라서 여유로운 귀가길을 가졌습니다. 2월의 첫날, 엘피지 가격의 인상소식과 영업장내 눈치우는 부산한 소리와 함께 저녁시간 가정예배때 읽을 잠언서를 묵상하였습니다. 저는 강점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굳이 하나 꼽으라면 꾸준함(?)... 진정한 강자는 다른 사람의 강점을 잘 활용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특히 사랑교회에는 전문가도 많고 강점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 강점들이 예수님안에서 잘 다듬어지고 합력되어지면 해야할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강점들을 교합시키는데는 진실함, 겸손함, 배려, 리더십 등이 있겠지요,이런 것들을 잘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절 지혜로운 자들과 함께 걷는 자는 지혜로우려니와 어리석은 자들과 사귀는 자는 멸망을 당하리라.21절 재앙은 죄인들의 뒤를 따르거니와 의로운 자들은 좋은 것으로 보답을 받으리라.22절 선한 사람은 자기 자손의 자손에게 상속 재산을 남기거니와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잠언13장) 잠언서에서는 지혜로운 자, 의로운 자, 선한 자, 부지런한 자가 한 부류의 사람이고, 어리석은 자, 불의한 자, 사악한 자, 게으른 자가 또다른 한 부류의 사람을 지칭합니다. 나 홀로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자들과 함께 걸으라고 가르침을 주십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함께 하는 것으로 더 지혜롭게 됩니다. 재앙은 죄인들의 몫입니다.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일어나지 아니하려니와 사악한 자에게는 해악이 가득하리라." (잠12:21절) 하나님은 공평하시므로 죄인에게는 재앙을 주시지만 의인에게는 고난을 주심으로 허물을 교정하시고 더 성숙되게 하십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그 선이 자손대대로 상속재산으로 물려집니다.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선을 물려 주는 일일 것입니다. 죄인들이 재물을 쌓는 목적은 자신의 정욕을 위함입니다. 그러나 정작 쌓여진 그 재물이 의인을 위해 쌓인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악인이 정욕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쌓은 재물을 의인은 그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지혜에 지혜를, 선에 선을 쌓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2-02-01 11:08:35 | 조양교
들을 귀가 있어 오늘 우리교회를 방문하신 분들을 반갑게 만났습니다.용인에서 1시간 걸려서 오셨고kjv 성경을 사서 본지1주일 되었다고 하고여러 형제님들과여러가지를 질문도 하고 점심 시간에 교제하고 나서방문하길 잘 했다는 말씀하고돌아가셨어요.keepbible 은 아직 모르고 계셨고요.이런 들을 귀가 있는 영혼들이 있어매주가 즐겁고 기대가 되지요.오늘 김 **형제님 오전 말씀을 통해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고 돌아가셨어요.주님이 때 맞추어 보내신 것 같아요.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진리임을 또 느끼게한 하루였지요.
2012-01-29 20:46:25 | 이수영
오래 전에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TV 프로그램 가운데, “특수 공작원 소머즈” 라는 프로가 있었다. 사고로 잃게 된 오른 팔과 두 다리 그리고 한쪽 귀를 인공전자기관으로 대체하여 정상인과는 다른 초능력을 갖게 된 한 여성 특수공작원의 이야기였다. “소머즈”에 있어서 특히 인기 있었던 것은 초능력적인 전자 인공 귀였는데, 멀리서 들려 오는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그런 귀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과학은 아직 소머즈 같은 초능력은 아니지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사람의 귀에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하여 청력을 회복하여 줄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으니 이런 식으로 기술이 계속 발전해 간다면 실제로 공상과학 속에나 나오던 ‘소머즈의 귀’를 보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를 통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사실에 얼마만큼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귓속을 들여다보면 그 세밀한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귀에 부딪힌 소리는 먼저 외이도-우리가 귀지를 팔 때, 귀 후비개로 지나면서 건드리게 되는 부분으로 대략 2.5 cm 길이에 7 mm의 직경을 갖는다-라고 부르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그 통로의 끝에 연결된 마치 펼쳐진 우산 모양으로 생긴 얇은 고막을 진동 시킨다. 이때 만들어진 진동은 고막에 연결된 세 개의 작은 이소골을 차례로 통과 하면서 그 귀에 들어온 소리의 강도를 증폭시키는데, 이소골이 들어 있는 이 부분을 중이라고 하며, 대략 우리가 보통 커피에 넣어 먹는 각설탕만한 크기의 공간에 해당한다. 중이 속의 이소골은 그 구조와 배치가 소리를 증폭시키기에 매우 적절하게 놓여 있어 우리의 귀에 들어온 소리를 거의 잃어버림 없이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제 이소골을 통과한 소리는 마지막으로 대략 완두콩만한 크기의 달팽이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달팽이관 속에는 약 눈물 한 방울에 해당하는 부피의 액체가 들어 있어, 고막에서부터 이소골을 통해 전해져온 소리의 진동은 이제 이 달팽이관 속 액체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게 된다. 이 액체 위에는 얇은 막이 하나 떠 있는데, 물결이 움직일 때마다 이 막이 같이 움직이면서 거기에 붙어 있는 미세한 머리카락 모양의 신경세포들이 이 막을 통해 전해지는 물결의 높낮이를 감지하게 되고, 그것을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뇌에 전달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 방울의 적은 액체 속에서 생겨나는 물결의 파고를 가지고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소리의 신비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사람의 귀는 보통 20에서 20,000 Hz 사이의 주파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참고로 이야기 하면, 피아노의 소리는 27.5에서 4,186 Hz의 소리를 내며, TV를 켜고 소리를 가장 낮게 줄여 놓았을 때 나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는 16,000 Hz에 해당 한다), 그 중에서도 약 2,500 Hz 부근의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외이도의 구조가 이 주파수 부근의 소리를 가장 잘 증폭해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주파수 부근의 소리는 자그마치 우리의 고막이 불과 1억 분의 1cm 즉, 수소 원자의 두께에 해당하는 길이만큼만 움직임으로도 소리를 전달 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수소 원자의 직경에 해당하는 길이만큼의 고막의 미세한 움직임이 달팽이관 속의 눈물 한 방울만한 액체에 파고를 일으키고, 그 물결의 높낮이를 머리털 같은 신경세포가 감지하여 전기 신호를 일으키고 그것을 뇌에 전달하여 마침내 소리를 듣게 하는 과정을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설계를 통하지 않고 우연히 생겨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겠는가?   우리들은 아주 어릴 적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주변의 소리에 익숙해 와서 듣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그래서 청각을 잃어버린 세상을 상상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쉽지 않은데, 마치 TV의 벙어리 화면을 보는 답답한 기분은 아닐까? 사실 소리는 우리에게 많은 신비감을 주며, 또 상상을 자극한다. 음악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성을 떠 올려 보라. 소리의 세계는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지만, 우리를 또 다른 존재의 차원으로 인도한다.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으며,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삼중고의 유명한 헬렌켈러는 만약에 한 가지를 골라서 회복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이 겪고 있는 삼중고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소리를 듣고 싶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과연 듣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새롭게 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연 몇 번이나, 우리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청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했었던가?   성경에서는 소리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요한복음은 처음에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 1:1).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으로 ‘이르심으로’ 천지를 지으시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의 길을 예비한 침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 (마 3:3). 예수님이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을 때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있으며 성령이 임하셨다 (마 3:16-17).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에도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으며 (행 2:2),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를 만나 회심할 때에도 하늘에서는 음성이 있었다 (행 9:3-4). 이제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벌어 질 때에도 하늘에는 큰 음성이 있어 축제의 소리가 하늘에 자자하게 될 것이다 (계 19:1-8). 이와 같이 성경은 매우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소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청각을 가지고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다양한 소리가 있어 저마다 자기 소리를 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신다. 그것도 아주 고요한 작은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왕상 19:12) 그 분의 음성에 우리가 귀 기울이기를 원하신다. 그야말로 우리의 고막을 수소 원자 두께 만큼, 눈꼽의 눈꼽만큼 움직이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귀를 열어 그 분의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싶은 것이다. 태초부터 계시어 우리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며, 너희는 내 음성에 순종하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렘 7:23)라고 말씀 하신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그 귀를 진리로부터 돌이켜 꾸며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니 (딤후 4:4), 주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교회에 거듭하여 말씀 하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3:9),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계 2-3장). 아멘.
2012-01-29 19:24:18 | 김정훈
때가 가까운 것이지요.. 미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시작부터가 "신세계 질서"를 꿈꾸며 시작된 나라였기에 지금의 이 모습은 어쩌면 "그들"이 오랫동안 꿈꿔온 바를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2012-01-26 23:05:01 | 김정훈
설 다음날 저녁식사후 처가 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간단한 예배와 기도의 시간을 가졌읍니다. 그 자리에서 처형에게 두딸이 있는데 저희 교회 예배에 출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멀리 떨어진 관계로 조카들과 소원했었는데 가까이 지내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믿음안에서 잘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2012-01-25 09:00:27 | 조양교
안녕하세요? 공교롭게도 이번 설날에 여행을 하게 되어서 편찮으신 어머님께 죄송한 생각이 들고 멀리 떠나오니 새삼 명절이었음이 아쉬운 생각이 드네요. 가족모임이 너무 형식화 되다보니 진정으로 믿음안에서 함께 기뻐하는 모임이 더 즐겁고 매 주일이 명절 기분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우리가 너무 가족들에게 성의를 못보여서 일까? 아님 가족들은 정작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일까? 한 해 한해 나이를 더해가는 ..그러니까 저에게 두번째 의미가 마음에 와 닿는데 이젠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가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가족외에도 명절이면 찾아 오는 사람 ,찾아 뵐 어른들이 많이 있어야 할텐데 너무 각박하게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2-01-24 13:21:14 | 오혜미
아~ 이말이 조형제님글에서 나온말 이었군요. 아침에 남편이 교회가는중 가족에게 설날의 까치이야기를 하다가 "아치”가 뭔지 아냐고 했을때 제가 뭤도 모르고 "까~~아치!” 해서 웃었네요. ^^ 가족들이 모두 모였는데 선한영향력(?)을 발휘할새도 없이 각자의 볼일로 식사만 하고 흩어지게 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2-01-22 21:33:34 | 이청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알지만 순위의 중요성에 있어서 간과하는 부분인것 같아요. 우선 순위에 두고 교육하고 본을 보이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문제이지만 특히 아이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병행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2-01-22 20:18:53 | 김상희
말세지말의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도 가속도가 붙어 지구의 종말을 알리는 징조와 현상이 가속화되겠죠. 하나님 보실 땐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러나 지구의 종말이 우리에겐 아버지와 함께 하는 영원의 시작이 될테니.. 영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더욱 정신차리고 살아야할 때인것 같아요. 세상의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2012-01-22 19:07:28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