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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해도 저물어 가네          우리의 인생도 저녁이지          이젠          놓아야 할 때          그게 기쁨이든          그게 고통이든         하늘과 땅 사이에       단 하나 남는 건       우리의 영원한 생명       진실은 오직 하나뿐       하나님이 하신 불변의 약속            연극의 막이          닫히려 하네          하나님이 펼쳐오신          장대한 세상 구속의 드라마         친구여       이제는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네       초림의 때처럼       아무도 생각지 못한 때       주님의 재림도       더한 무관심의 밤에 묻힌 채       그렇게 오고 있다네            준비가 됐나          오늘 밤이 그 밤이 돼도          그분 앞에 설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한 어둠 속에          그 많은 의문들로 몸부림치며          그분의 사랑의 흔적           하나도 없는          영원한 절망을 견디며 살 수 있을까         친구여       내가 이 말을 전해 줄       단 하나의 벗이기에       참다 참다 말하려네       피를 토하듯 말하겠네            겨울이 가면          어김없이 오는 봄보다          더 확실하게          주님 다시 오신다네          깨어          잠시만 둘러봐도          밤 이미 깊어          새벽이 오려하네         부디 이 친구의 말       헛되이 듣지 마시게       우리의 긴 우정이       저 아름다운        영원의 여정으로 함께하기를!  
2022-12-23 10:42:22 | 박혜영
형제님 글을 12월 9일 오밤중(^^)에 읽고나서...12월 10일부터 지금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왔답니다. 교회 앞을 피해 돌아가곤 하던 제가 믿게 된...신비, 그 정체가 무엇일까...?...한번 밝혀보려고 말입니다. (거짓말 아님) 그런데...역시...모르겠더군요.  신비 중의 신비, 풀기엔 너~무 어려운 신비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
2022-12-22 22:39:05 | 최영오
신비 중에 신비   오랜 동안 풀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나를 포함해서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만나지도 않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설령 누군가로부터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해도 잘 믿지 않는다.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동거동락했던 제자들도 믿지 않았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며, 창에 찔린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한다.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말은 알겠는데, 처음에 어떻게 말씀을 믿게 되었느냐는 것이 늘 의문이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되어 있고,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들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 전에 어떻게 해서 믿게 되었냐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완강하게 거부한다. 심지어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예수님)이 실존했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다. 나도 예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환자라고 불렀다. 거의 미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해서 2천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을 거닐다가 돌아가신 그분(예수님)을 믿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연구를 해봐도 설명할 길이 없다. 신비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내가 믿게 된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같은 것을 들었는데도 어떤 이들은 믿고, 어떤 이들은 거부하는지 이것 또한 신비가 아닐까? 우리 성도들을 볼 때마다 그저 신비스럽다.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3장 9절)
2022-12-08 15:53:12 | 이규환
  성경 말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떤 낱말 또는 구절에 붙잡혀 한참 동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더군요.   이 글은...며칠 전, 요한복음 10장 33-34절 말씀에 붙잡힌 나머지, 한참 동안 다른 생각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참 동안이나 성경 구절들 살펴보며 여러~가지 생각들 하게 된 경우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3-34절   유대인들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 하는 것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요 신성모독 때문이니 곧 사람인 네가 너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라,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너희 율법에,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하였노라 하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위 요한복음 말씀 중 밑줄 친 구절, 즉 내가 말하기를...이라는 대목이 갑자기 저를 탁! 붙잡더군요.   엥?! 너희,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가리켜 신들이라고 불러주셨던 그분이 예수님이셨다...고라고라...?...그러면...자욱한 연기 속 진동하는 시내산으로 강림하신 JHWH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율법의 말씀들 중 하나, 즉 출애굽기 22장 28절 말씀, 그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말씀...?!...그럴 리가?!...라는 엉뚱한(생뚱맞은? ^^)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입니다.   위 요한복음 10장 34절 말씀하실 당시의 예수님께서는 성경 기록 그대로, 그러니까, '내가 말하기를'이라는 그 표현까지를 포함하는 성경 기록, 즉 시편 82편 6절 말씀을 인용하신 것 같습니다만...해당 시편의 존재는 모르고 출애굽기 22장 28절 말씀, 즉...너는 신들을 욕하지 말며 네 백성의 치리자를 저주하지 말라...는 그 구절만 알고 있던 제가...예수님께서 “출애굽기 22장 28절, 그것 내가 한 말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걸로 잘못 알아들었던 거죠. ^^   시편 82편 6절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는 다 지극히 높은 자의 아이들이라.   위 시편 말씀을 확인하는 순간, 하나님 아는 지식 한참 딸리는 제 스스로를 반성하는 한편으로...^^...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지, 삼위일체, 즉 세 분이 한 하나님...그러니까...결국은 그분이 그분...아닌...감...?...그렇다면...예수님께서 “출애굽기 22장 28절, 그것 내가 한 말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문제될 것...도 없고...또...그렇게 알아들었다고 크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   생각이 이에 이르자, 위 요한복음 10장 34절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 그분이 바로 시내산에 강림하셨던 JHWH 하나님이심을 입증하는 구절(들), 바꾸어 말씀드리면, 예수님 = JHWH 하나님임을 입증하는 구절(들)이 성경 속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라는 또 다른 생각이 들더군요.   딸리는 지식으로 성경 속 여기저기 돌아다녀 봤지만...애당초 너무 야무져서 차라리 황당한 꿈 꾸었음을 알아차리매...훗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 어쩌고 하며 일단 포기하고서는...매일 조금씩 듣고 있던 마태복음강해 중 그날 물량(^^), 즉 43강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놀라운 일이 일어났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역시...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알고자 하는 자 앞에 보여주시더군요, 언제나처럼 말입니다.   마태복음강해 43강, 바로 그 속에 답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마태복음 11장 10절 말씀과 말라기 3장 1절 말씀에 의거하여 예수님 = JHWH 하나님...임을 명쾌히 밝혀 주셨거든요.   말라기 3장 1절   군대들의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오리니 곧 너희가 기뻐하는 언약의 사자라   마태복음 11장 10절   이 사람은,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하고 기록된 말씀이 가리키는 자니라.   여기서...위 마태복음강해 43강 내용 중 ‘예수님 = JHWH 하나님' 관련 부분이 특별히 의미심장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해당 부분(2분 23초)만 발췌하여 별도 영상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하단 첨부)   해당 부분 내용이 특별한 만큼, 제 설명보다는 아무래도 논리 정연한 목사님 말씀 들어보심이 유익할 듯해서 첨부하였사오니, 위 밑줄친 부분에 유념하여 한번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군요.   목사님 말씀 듣고 나니까...요한복음 20장 28절에 나오는 사도 도마의 고백이 새삼 거룩하게 들리더군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요한복음 20장 28절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매,   그리고...세 분 하나님, 즉 JHWH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서로 다른 인격체임을 분명히 보여주신 마태복음 3장 16-17절 말씀 떠올리매, 개역성경, NIV 등 현대 역본들에 의한 심각한 성경 변개가 마음에 걸리더군요.   요한일서 5장 7-8절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상의 위 요한일서 5장 7-8절 말씀 중 앞부분, 즉 5장 7절을 감히 삭제해 버리고선 뒷부분, 즉 5장 8절을 둘로 쪼갠 다음 각각 5장 7절, 5장 8절로 만들어 버린 기막힌 성경 변개 말입니다. . . . 삼위일체, 정녕 위대하신 신비여...!  
2022-11-28 16:21:37 | 최영오
우리도 빛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 접하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말씀을 떠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 ^^
2022-11-24 22:14:56 | 최영오
견고한 패러다임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도를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각양각색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절박함(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재림이 임박하다는)을 가지고 전도를 한다. 이런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그렇지만, 예레미야의 뼈속에 사무치는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고백과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   복음을 전할 때, 세상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5가지 정도로 그룹핑할 수 있다. 첫째는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믿어라.”며 말도 꺼내지 말라는 부류다. 이런 부류를 만나면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부류들과 계속 접촉을 시도하면 자칫 관계가 끊어지기도 한다. 둘째는 발끈하는 부류다. 내가 왜 죄인이냐?며 발끈하며 저항을 한다. 셋째는 의심하는 부류다. 어떻게 물 위를 걸어? 어떻게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일 수 있어? 처녀 탄생이 말이 되는거야? 부활이 가능하긴 한 거야? 넷째는 보여 달라는 부류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증거를 보여 봐.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도록 방치할 수 있느냐며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를 대 보라며 보이라고 한다. 이들은 천국과 지옥도 보이라고 한다. 다섯째는 다 좋은데,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 부류다. 정중한 것 같지만 사실 듣기 싫은 것이다. 다음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소식이 없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어느 왕과 같은 부류다.   이상이 내가 전도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이들 반응에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수 필요가 있다. 막연히 이들의 패러다임이 견고하다고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반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창조와 십자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복음 전도의 힌트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힌트가 있다. 이들 부류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은 다 죽는다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이점을 전도에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의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시각도 아니다. 영적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영적 눈을 떠야한다.   “아버지! 우리의 영적 어둠이 깨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십시오.”
2022-11-24 16:12:39 | 이규환
빛과 어둠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죠! 작은 건전지에 의지한 랜턴 하나라도 어둠을 몰아내죠. 작은 랜턴과 비교불가이신 주님은 그 자체가 빛이시라 어둠이 피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둠의 자식인 우리를 빛의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이 너무 놀라워요. 생각할수록!
2022-11-17 17:10:05 | 이수영
참 빛은 그림자가 없다!   2019년 9월부터 시작해서 2021년 5월에 끝난 요한복음 강해를 다시 들으면서, 무슨 일인지 예전에 배웠던 상보성 원리가 자꾸 떠올랐다.   상보성 원리는 닐스 보어(1885~1962, 덴마크)가 1927년에 도입한 개념이다. 양자역학에서 상보성 원리(相補性原理, complementarity principle)는 양자역학적 물체가 어떤 실험을 하느냐에 따라 파동 또는 입자의 성질을 보인다는 원리이다.   보어는 동일한 실재에 존재하는 입자성과 파동성이라는 두 가지 배타적이면서도 상보적인 속성에 주목했다. 고전물리학의 관점에 따르면 한정된 영역에 존재하는 입자와 공간의 일정 범위에 퍼져서 존재하는 파동은 완전히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면 빛은 경우에 따라 입자 혹은 파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절대 동시에 입자이며 파동일수는 없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성이라고 부른다.   신문기사를 작성하는 데 있어 ‘신속’과 ‘정확’은 상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임박한 마감 시간 속에서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기사를 작성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신속성을 추구하면 정확성이 떨어지고, 정확성을 추구하면 마감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낮과 밤은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낮이 오면 밤은 물러나게 된다. 선과 악도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빛과 어둠 또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빛의 특성은 어둠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빛은 어둠을 물러가게 한다. 아무리 어둡던 곳이라 해도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견디지 못하고 물러가게 되어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은 참 빛(1장 9절)이시라고 한다. 창세기 1장 3절의 그 빛이시다. 그 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1장 5절) 그 빛은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빛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받을 수 있는데도...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 아품을 말할 수 있다. 우리 성도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우리는 빛을 안다. 우리는 빛을 사랑한다. 침례자 요한이 참 빛을 증언했듯이 우리도 빛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참 빛은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2022-11-17 12:50:39 | 이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