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1단계에 머무르는 관계가 있는 반면,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도 3~4단계로 발전하는 관계가 있기도 하죠.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6단계까지는 우리 사랑침례교회 성도간 추구해야 할 목표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쇠가 쇠를 예리하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자기 친구의 얼굴을 예리하게 하느니라. (잠27:17)
교회에서 지난 시간들과 지체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면 오히려 단계를 추월(?)하다가 실족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를 지체로 여기기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나타났던 문제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운함이나 실망, 분노 등으로 표출되곤 하지요. 무론 교회 안에서의 친밀함 유지와 발전은 '섬김'을 담보로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귀한 인사이트를 제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5-04-18 16:06:37 | 정진철
나쁜 교리, 미혹하는 엉터리 교리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회계보고 할 때 어떻게 하려교???
2025-04-18 07:25:21 | 이규환
친밀함의 7단계
『사람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의 저자들은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제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제시간이 늘어나면 날수록 더 친밀해진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이에 교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소개한다. 매튜 켈리의 저서 『친밀함』이다. 읽어보면 나는 몇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어느 정도 수준의 친밀함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글을 읽으면서 각 단계의 설명이 끝나면 잠시 멈추고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1단계 : 상투적인 인사말의 단계
첫 번째 단계는 가벼운 인사말과 형식적인 대화의 단계이다. 예를 들어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잘 지내세요?", "네, 잘 지냅니다"와 같은 인삿말을 주고받는 수준이다. 누구와도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이 상투적인 대화는 아주 얕은 관계의 시작이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소통이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공유하는 감정도 거의 없는 상태다.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이거나 아직 친하지 않은 사이에는 이런 인사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만약 가장 가까운 사이마저도 매번 이런 얕은 인사치레에만 머무른다면, 그 관계는 깊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들은 1단계가 아닐까?
2단계 : 사실을 공유하는 단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서로 사실과 정보를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한다. 날씨 이야기, 뉴스나 연예계 소식, 스포츠 경기 결과, 또는 오늘 일터에서 있었던 일처럼 객관적인 사건과 정보들을 이야기하는 단계다. 대화의 분량은 늘어날지 몰라도, 여전히 자신의 속마음이나 감정은 드러나지 않은 채 비교적 안전한 주제들만 오간다. 이런 사실 위주의 대화는 갈등이 생길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성도들이나 가볍게 아는 사람들과는 이 정도면 무난하다. 하지만 대화가 늘 날씨, 뉴스, 일상 이야기 수준에 머문다면? 서로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 기회는 없을 것이다.
3단계 : 의견을 교환하는 단계
세 번째 단계에서는 서로 의견과 생각을 나누기 시작한다. 이제 대화 주제가 단순한 사실을 넘어, 정치나 사회 이슈에 대한 견해, 취향의 차이, 삶에 대한 가치관처럼 개인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상대에게 나라는 사람의 일부를 보여주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내 정치적 견해를 말하거나, 어떤 영화에 대해 서로 상반된 의견을 나누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 의견을 공유하면 대화의 깊이는 깊어지지만, 동시에 충돌의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믿는지 드러내는 만큼, 상대가 그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3단계가 친밀함으로 가는 가장 큰 관문이다. 많은 인간관계가 3단계에서 나타나는 의견 차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멈춰 서 버린다. 사소한 의견 충돌로 멀어지거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다시 피상적인 대화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3단계를 인간관계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관문을 통과한다면, 즉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두 사람은 비로소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를 넘어 진짜 친한 사이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달라도 이해해보려 하고, 때로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자. 여러분은 가까운 사람들과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의견 충돌을 두려워해 대화를 피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며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지?
4단계 : 희망과 꿈을 나누는 단계
네 번째 단계에 이르면 서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즉 희망과 꿈을 나누게 된다. 이제 현재 일어나는 일뿐 아니라 앞으로 바라는 것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에게 내가 가장 바라는 꿈이나 인생의 목표를 털어놓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이루고 싶은 꿈, 앞으로 5년 후에 되고 싶은 나의 모습, 또는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상대와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꿈과 희망을 솔직히 이야기하려면 우리는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 꿈을 이야기했다가 비웃음을 사거나 무시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우리의 소망을 얘기하게 된다.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면,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뜻일 것이다. 서로의 꿈을 알게 되면 관계에는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이 생긴다. 둘이 함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서로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여러분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혹시 지금 머릿속에 그런 사람이 떠오르는가?
5단계 : 감정을 공유하는 단계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이 단계에 도달한 두 사람은 기쁜 일은 얼마나 기쁜지, 슬픈 일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넘어서, 그 일을 통해 내가 느낀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령 "오늘 OO에게 혼나서 굉장히 속상했어"라고 말하거나, "네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라고 감정을 표현하는 식이다. 이러한 감정의 공유는 상대에게 내 마음의 문을 여는 행위이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 혹시라도 내 진심을 드러냈다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용기를 내 솔직해질 때, 비로소 상대방은 내 기쁨과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아가며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두 사람이 감정적으로 깊이 교감한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웃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어깨를 내어 주며 눈물을 받아줄 정도로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 여러분 곁에는 마음 깊은 곳의 감정까지 숨김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기쁠 때나 슬플 때,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공감해 주는 그런 사람이 떠오르는가?
6단계 : 약점과 상처를 드러내는 단계
여섯 번째 단계에선 나의 약점, 두려움, 그리고 실패까지 모두 드러내는 단계다. 이제는 완전히 솔직한 관계,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단계다.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감추고 싶은 약점이나 과거의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완벽해 보이고 싶어서 실수나 실패담을 숨겨두곤 한다. 그러나 진짜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런 가면을 벗고 나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까지 보여준다. "사실 나는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어.", "내겐 이런 상처가 있어" 하고 고백할 수 있는 상대, 바로 그가 6단계의 관계다. 내 약점과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여전히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상대가 나를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고 감싸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 고백을 들은 상대는 나를 위로하고 용서하며 끝까지 곁을 지켜준다. 때로는 잘못한 일에 대해 따끔하게 충고해 줄지언정, 결국에는 등을 돌리지 않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서로의 결점까지 받아들이면, 두 사람 사이의 신뢰는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해진다. 여러분에게도 자신의 가장 약한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내게 고스란히 털어놓은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라.
7단계 : 진정한 필요를 채워주는 단계
마지막 일곱 번째 단계는 진정한 필요를 서로 채워주는 단계다. 이는 친밀함의 절정으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서로의 마음, 생각, 꿈, 상처까지 모두 공유한 두 사람은 삶의 필수적인 부분에서까지 협력하게 된다. 한마디로, 서로의 인생을 서로가 완전히 돕고 지지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필요"란 상대의 행복과 성장, 그리고 삶의 안녕에 꼭 필요한 것들을 뜻한다. 물질적인 지원이 아니라, 정서적・정신적 버팀목이 되고 영혼까지 살펴주는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힘들어 지쳐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은 먼저 알아채고 곁에서 끝까지 응원해 주는 것이다. 굳이 말로 부탁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무엇이 절실한지 알아차리고 채워주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입니다. 나도 상대를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내어 주고, 상대도 나를 위해 헌신한다.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성장해 가는 모습이다. 이쯤 되면 두 사람은 거의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유대를 느끼게 된다. 세상에 이런 관계는 흔치 않다.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인연이 아니기에 더욱 귀한 보석과도 같다. 여러분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서로의 삶을 깊숙이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 사람도 없다.
지금까지 인간관계 친밀도의 7단계를 살펴봤다. 여러분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1단계나 2단계, 기껏해야 3~4단계 수준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과 7단계의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성도, 직장 동료, 이웃, 아는 지인들과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정한 친밀함은 많은 사람과 넓게 맺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과 깊게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깊이의 정점에까지 이른 관계는 인생에서 많지 않아도 된다. 단 한 사람. 단 한 사람과라도 7단계의 친밀함을 맺고 있다면, 그 관계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과 겉돌며 느끼는 외로움보다, 한 사람과 깊이 연결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의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깊이로 결정된다.
이 책의 저자는 친말함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비결은 '상대에게 계획없이, 조건없이,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관계에도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2025-04-18 07:05:26 | 이규환
인간인 나의 믿음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극명한 차이지요.
인간에게 믿을 구석을 찾고 찾아도 죄밖에 없고
죄없으신 주님의 믿음만이 흔들림없지요.
2025-04-17 14:58:44 | 이수영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더 낮아지는 마음을 갖길 원합니다. 어지러운 때에 교회 안에서 지체들과 나누는 교제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2025-04-17 08:42:13 | 김지훈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미혹하는 사탄의 간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작은 누룩도 용납하지 않아야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2025-04-17 08:41:02 | 김지훈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죠.
유튜브가 우리 교회엔 복음 전파의 통로가 되니 참 하나님의 일하심의 한계를 우리 기준으로 정하는 건 무의미한 거란 생각도 드네요.
주일에 몇몇 형제님들과 이 뉴미디어 누룩에 대한 고민을 얘기했었는데 형제님의 귀한 나눔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5-04-15 09:13:50 | 정진철
성도들 간의 교제...친밀함...그 속에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닮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 진리의 말씀 진작 배우지 못한 채 날려보낸 세월이여! 흑흑 ㅠㅠ ... ^^
2025-04-14 23:58:08 | 최영오
이런 생각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인터넷, 유튜브 그리고 AI의 등장 및 그 맹활약으로 인해 단12:4 말씀 중의 ‘지식이 증가하는 마지막 때’는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것들 가운데 특히 유튜브는 인간 삶의 동반자 급 자리 차지한 지 이미 오래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바로 그 유튜브 때문에 힘써 쌓아가던 말씀 체계 망가뜨릴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더군요. 그러니까, 누룩(?) 들고 다니는 유튜브를 신실한 청지기(^^) 쯤으로 알고 그것과의 화평 분위기 즐기다 보면 칭의, 성화, 영화는커녕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다니기 딱 좋은 세상...아닌가 싶더라는 거죠.
완전(^^) 본의 아니게, 서울의 어떤 교회 예배 현장을 담은 1분짜리 유튜브 쇼츠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럴듯한 가운 차림의 목사님이 갈2:20 말씀을 외며 외치더군요.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말입니다. 세계적 규모의 드넓은 예배당(그 교회 표현에 따르면 ‘성전’) 안에 화답의 우렁찬 함성 “아멘!”이 울려 퍼졌음은 물론입니다.
그 장면을 접하는 순간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을...보고 싶지 않은 이런 모습을 다시 보게 되는구나, 유튜브 너 때문에’라는 서글픈 생각 말입니다. 우리 성경, 즉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는 분명히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이들은 달라도 보통 다른 정도가 아니잖은가...!...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버리신’과 ‘자신을 주신’, 그 차이는 논외로 함) 그러니까, 유튜브가 감추고 있던 ‘믿음의 누룩’ 같은 게 감지되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해 모든 자들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들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이는 그 의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라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롬3:22 말씀에 의거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원리를 명쾌히 설파한 위 롬3:22 말씀에 따르면, 1)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님), 바로 그것이며, 2) 그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재론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님)에 적용된 하나님의 ‘의’가 믿는 모든 자들에게(로 넘어와) 임한다, 즉 전가(轉嫁)된다...라고 규명되어 있습니다.
위 롬3:22 말씀 내용을 달리 표현하면, ‘칭의’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믿음(애당초 믿을 게 아닌...? ^^)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바로 그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칭의’의 본질을 살펴봄에 이어 ‘믿음’의 근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믿음의 근원...그 의미가 다소 애매한 측면 있습니다만...어쨌든...^^...제가 생각하는 ‘믿음의 근원’에 관한 주요 말씀 구절들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the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 면에서 큰 담대함을 획득하느니라...라는 딤전3:13 말씀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한 구원(salvation through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에 이를 수 있느니라...라는 딤후3:15 말씀이 그 예들로서, 그것들에 따르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 그 근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위 갈2:20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라고 선언, 즉 신앙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칭의’의 본질과 ‘믿음’의 근원에 관하여 롬3:22, 딤전3:13 그리고 딤후3:15 말씀들을 설파했던 사도 바울이,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만나 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기까지 충성했던 사도 바울이, 차원이 다른 기독교 교리 담은 복음을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았노라(갈1:11~12 참조) 했던 사도 바울이 과연...‘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노라...라고 했을까요...?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절대로 그렇게 말했을 리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한편, 오히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그 말씀을 숙연함 또는 비장함 가운데 했으리라...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산다는 것, 이들 둘의 차이가 어쩌면 인간 중심으로 사는 것과 하나님 중심, 즉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것의 차이, 바로 그것 아닐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바른 성경, 즉 참된 하나님 말씀으로 믿음 생활 영위할 수 있음에 대한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 한편, 유튜브 등이 뿌려대는 누룩들에 주의하여 항상 그것들을 털어내며 믿음 생활 계속할 책임, 그리고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누룩들을 더 빠른 속도로 제거해 나갈 책임, 그러니까, 바른 성경 가진 자로서의 의무...같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그 내용이며 분위기가 너무나 가슴으로, 마음(heart)으로 와닿기에 갈2:20 말씀 중 해당 부분을 원문 그대로 옮겨 적어 봅니다.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이어서 그 내용 그대로, 그 분위기 그대로 정확히 번역한 우리 성경, 즉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중 해당 부분 또한 옮겨 적어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그리고...조용히 화답해 봅니다. 아멘...!...이라고 말입니다. ( 끝 )
2025-04-14 23:33:52 | 최영오
저는 소규모 자매모임을 통해 제가 보지못한 저의 부족함을 알게되어 점점더 겸손해지고 좋더라구요. 무엇보다 모든 대화의 끝이 하나님,예수님으로 귀결되어지는 것이 가장 좋구요! 가끔 제 부족함 드러나지는 것에 이불킥할때도 있지만 묵묵히 지켜봐주며 힘내~하시는 자매님들께 무한감사입니다. 믿지않는 지인들과의 관계는 말그대로 성화의 바다 한복판에 놓여있는것 같아요- 복음을 전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의식적 각오만으로는 안되더라구요..여러모로 허접해서 그런지 저는 (제가 죽고)말씀으로 무장해야지만 핍박을 평강으로 끝낼수가 있었습니다..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진심으로 휴거의 소망이 뭔지 알게되어 감사드려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니리라.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4장16,1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4-11 07:55:28 | 목영주
『사람은 어떻게 변화되는가?』을 읽고(E) : 친밀함
이 책 4장에서 한 개인이 은혜 가운데 성장하고 변화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5장에서는 변화의 과정이 단순히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소그룹에서 교제를 나누던 한 여인의 가족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성장하고자 한다면 관계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우리는 “안 될 게 뭐 있어? 어쨌든 사람들과 엮이는 건 복잡하고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왜 필요하지? 성경 묵상도 기도도 혼자 하는 거잖아!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라고 생각한다. 이웃과 함께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고, 복잡하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은혜 안에서 성숙을 격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본디 공동체를 이루며 살도록 창조되었지만, 타락으로 인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절실한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는 관계가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채워 주는 동안에만 그것을 추구한다. 즉 우리는 관계와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저자들은 변화는 공동체가 함께하며 이루어가야 할 목적이며 지속적인 변화에 있어 교제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강조한다. 공동체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 그분 자신이 공동체로 거하신다는 사실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완벽한 조화와 사랑 그리고 일치 가운데 함께하신다. 우리는 관계에 대한 스스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관계 맺기는 사람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이 되는 일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위격은 그 존재와 행함의 모든 면에 있어서 언제나 다른 위격과 일치되신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기에 친밀한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이 우리 본성에 심어졌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그렇게 창조되었기에 관계를 갈망한다.
혹여 다른 성도를 꺼리는 마음이 들 때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나뉘심으로써 우리가 연합될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누군가가 죄를 짓거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죄를 지을 때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나뉘심으로써 자신이 화목하게 될 수 있었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부디 이 점을 명심하고서 그리스도의 몸 된 관계에 접근한다면,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한다.
실로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성도들과 깊은 관계를 기뻐하는 일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여정의 첫걸음이다. 그분을 닮는 것이 곧 변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고자 구속적 공동체에 속하게 하셨다. 우리가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할 때 그것을 더 충만하게 이해하게 된다. 구속의 역사는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와 더불어 다른 이들과의 관계 역시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밀함이 변화의 핵심이다. 친해지면서 배우고 느끼고 공감하면서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음미하며 이 책의 독후감을 마친다.
2025-04-10 11:14:44 | 이규환
주께서는 온유한 자들을 들어 올리시며 사악한 자들을 땅바닥에 던지시는도다.(시편 147편 6절)
이 구절이 자꾸만 되뇌어집니다.
2025-04-10 09:59:48 | 이규환
그래서 성경 번역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올바른 성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행복합니다.
2025-04-10 09:52:24 | 이규환
대한민국 땅의 모든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통회하고 회개하며 주 하나님께로 진실되게 나아가기 원합니다. 주님의 계획을 기다리며 ,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길 간구합니다.
2025-04-07 17:35:00 | 김지훈
작년하반기부터 헌물과 무익한 종이라는 단어를 품은 이유도,하루하루 이사야서 53장 5절 예수님을 생각하며 쪼임버티며 평강유지하려 애쓴 이유도 나라해주세요..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낙심 안한것이 너무 억울해 주저앉아버릴수가 없어요..저희 큰애가 엄마가 나라위해 흘린 눈물 하나님이 다 모아놓고 있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창세기 1장1,2절과 출애굽기14장,누가복음 18장 1~8절 하나님말씀으로 반나절만 하나님께 섭섭함 눈물 쏟아내고 살아나왔어요.. 나라를 사랑하는,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눈물이 모아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세요! 아버지 저는 내일도 모레도 아버지계심으로 감사하며 살다가 뵙겠습니다.
-내가 끈기있게 주를 기다렸더니 그분께서 내게 귀를 기울이사 내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편40편1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힘내세요 형제님 자매님..아직도 순간순간 울컥울컥하지만 저보다 더 나라를 사랑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힘내겠습니다..
2025-04-05 22:35:40 | 목영주
거룩하신 하나님을 분노케한 일들
우리가 만들어놓은 거짓신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의 허물로 인해
우리가 노예의 길로 들어설까
심히 두렵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여겨
주시기만을 간구드립니다.
2025-04-05 19:23:28 | 김경애
울었도다.... 울었도다...
울컥합니다.
너희 손으로 만든 것들.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킨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대로 외면 하시고 버려질까 염려가 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길 간구합니다.
2025-04-05 11:23:01 | 김혜순
<오늘 묵상 말씀>
제목 : 눈물의 회개
시편137편
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거기에 앉아 참으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울었도다>
오늘은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며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들로 내 분노를 일으켜 너희 자신을 해쳤느니라(렘25:7)>를 기억하고
<{주}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가까이 계시며 통회하는 영을 가진자들을 구원하시는도다(시34:18)>를 생각하며 눈물의 회개를 묵상하였습니다.
시편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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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도다....
울었도다....
울었도다....
2025년 4월 4일 대통령의 탄핵 결과가 당연히 긍정적으로 나오리라 생각을 했는데 몇 번을 보고 또 보아도 아니 한참 있다가 다시 또 보아도 <파면>이라는 단어가 믿기지 않았다. "전원일치 파면 ㅋㅋㅋㅋ"가 올라온 어느 한 모임의 단체카톡방 문자를 보며 당장 나가기 버튼을 눌러버릴까하는 욱한 마음을 가다듬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은 채 말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그 날 아침 묵상했던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거기에 앉아 참으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137:1)>를 떠올리며 '울었도다'에 대해 생각했다.
바빌론으로 끌려와 시온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들,,,,
그리고 유다의 온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주민들을 향하여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에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았다.
예레미야서 25장
4 또 {주}께서 너희에게 자신의 모든 종 대언자들을 보내시되 일찍 일어나 보내셨는데도 너희가 귀담아 듣지 아니하였으며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도다.
5 그들이 이르기를, 이제 너희는 각각 자기의 악한 길과 너희의 악한 행위들을 버리고 다시 돌아와 {주}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무궁토록 주신 땅에 거하고
6 다른 신들을 따라가며 그들을 섬기거나 그들에게 경배하지 말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들로 내 분노를 일으키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주}가 말하노라. 그럼에도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들로 내 분노를 일으켜 너희 자신을 해쳤느니라.
8 ¶ 그러므로 군대들의 {주}가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가 내 말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9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북쪽의 모든 가족들과 내 종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을 취한 뒤 그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 땅과 그곳의 거주민들과 사방의 이 모든 민족들을 대적하게 하며 그들을 진멸하고 그들을 놀랄 일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너희 손으로 만든 것들!!!!!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킨 것!!!!
출애굽기20장
3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4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곧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그리고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모이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했는데....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킨 지금의 <너희 손으로 만든 것들>은 무엇일까?
너희 손으로 만든 것들!!!!!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킨 것!!!!
이 주제를 바라보며 회개를 생각하고 결단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신명기 4장
39 그러므로 이 날 너는 위로 하늘에서와 아래로 땅 위에서 {주}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그분 외에 다른 자가 없는 줄을 알고 그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며
40 그런 까닭으로 너는 내가 이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법규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라. 그러면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자손들의 일이 잘되고 {주} 네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가 네 날들을 길게 하리라.
2025-04-05 11:12:17 | 이정자
1층 채리티홀을 드나들며 이런 용어적 연구를 실행하시다니!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03-21 10:32:17 | 정진철
러브(love)와 채리티(charity)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03-18 22:59:29 | 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