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이라 냄새가 납니다.
신기하게도 언행에 묻어나요.
겸손한 성도가 많으면 분위기가 부드럽지요.
투기와 질투가 있는 곳엔 겸손이 사라지고요.
모쪼록 우리는 주님을 인식하며 살아야 겠어요.
항상 코람데오!
2024-06-27 20:00:58 | 이수영
무릎을 꿇는 용기
무릎을 꿇는 것이 비겁한 것일까? 열왕기하 1장에서는 아하시야 왕이 병상에 누워 엘리야를 데려오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명령은 받은 대장들은 요즘 말로 하면,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서 체포영장을 가지고 체포하려고 온 것이다. 세 명의 오십인 대장이 엘리야를 데려오려 하지만, 그들 중 두 명은 부하들과 함께 죽고, 세 번째 대장은 살아서 엘리야를 데리고 왕에게 간다. 죽은 오십인 대장과 살게 된 오십인 대장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
첫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그때에 왕이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 올라갔는데, 보라, 엘리야가 산꼭대기에 앉아 있으므로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이르시기를,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엘리야가 오십인 대장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네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하며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렸더라.(열왕기하 1장 9-10절)
첫 번째 오십인 대장은 왕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 엘리야에게 올라가 "하나님의 사람아, 왕이 내려오라 하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 대장은 그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들을 태워버리게 했다.
두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왕이 또한 다시 다른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이같이 이르시기를,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네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하매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렸더라.(열왕기하 1장 11-12절)
두 번째 오십인 대장 역시 비슷하게 엘리야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아, 왕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다."라고 말했다. 이 대장 또한 엘리야의 권위를 무시했고, 그 결과 첫 번째 대장과 마찬가지로 불에 타 죽게 되었다.
세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왕이 다시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보내므로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이 올라가 엘리야 앞에 온 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에게 간청하며 그에게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내 생명과 당신의 종들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 눈앞에서 귀히 여기소서. 보소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전의 오십인 대장 두 명을 그들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태웠으니 그러므로 이제 내 생명을 당신 눈앞에서 귀히 여기소서. 하매 주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그들 두려워하지 말고 그와 함께 내려가라, 하므로 엘리야가 일어나서 그와 함께 왕에게 내려와(열왕기하 1장 13-15절)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은 앞선 두 대장과는 달리 겸손하게 엘리야에게 다가갔다. 그는 엘리야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목숨과 부하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겸손과 존중이 엘리야에게 전해졌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와 함께 내려갔다.
교훈
1. 존중과 겸손의 중요성: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장은 엘리야의 권위를 무시하고 명령조로 대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반면, 세 번째 대장은 겸손과 존중으로 엘리야에게 다가갔고, 이는 그의 생명을 구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특히 권위자와 소통할 때 겸손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2. 하나님의 권위 인식: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그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하고, 그의 말씀과 그의 대리자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3. 기도와 간청의 힘: 세 번째 대장은 겸손하게 엘리야에게 간청했다. 이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청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열왕기하 1장의 이야기는 겸손과 존중,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기도와 간청의 힘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러한 교훈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겸손과 존중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2024-06-27 09:16:34 | 이규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한 형제님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2024-06-21 13:05:14 | 이남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을 인공지능에 알리는 방법
인공지능에게 킹제임스 성경을 학습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해결 방법을 알게 되었다.
1.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문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이미 학습해서 다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ChatGPT4o(챗지피티포오, 최근 버전)에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인용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과 창세기 3장 1절을 설명해 달라고 하니, 아래와 같이 답변을 주었다.
요한복음 3장 16절(John 3:16)은 기독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 중 하나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그로 인해 주어진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의 중심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 KJV)에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창세기 3장 1절(Genesis 3:1)은 인간의 타락과 죄의 시작을 다루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 내에서 죄의 기원과 유혹의 본질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 KJV)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Now the serpent was more subtil than any beast of the field which the Lord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의 문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GPTs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GPTs는 ChatGPT4o에 탑재되어 있다. ChatGPT4o에 들어가서 ‘Explore GPTs’를 클릭하고 이어서 ‘create’ 버튼을 눌러서 생성할 수 있다.
GPTs는 GPT가 여러 개 모여 있다(s)는 의미인데,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의 본래 역할에다가 특별한 용도의 GPT가 탄생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앱스토어에서 필요한 앱(어플)을 내려 받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만들어서(가칭 :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 100% 활용하기) GPTs내에 공개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이용자들은 우리가 만든 이것을 클릭해서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해 준다. 얘는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을 공부한 GPT인 것이다.
2024-06-19 19:48:11 | 이규환
참 좋은 말씀입니다. 미운 생각 덜하게 바쁜 일상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유일하게 제가 뿌듯해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매일 말씀 한줄을 암송하게끔 환경을 만들어준 거예요~^^ 오늘도 주인이신 예수님께 남은 오후를 드립니다..
2024-06-14 16:24:18 | 목영주
Redeeming the time & Fasting
'Redeeming the time'이라는 구절은 에베소서 5:16과 골로새서 4:5에 나온다. 여기서 구속(redeem)은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재조정하고, 세속적인 요소들로부터 시간을 구출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서 어디로 구속해야 하는가?
마귀에게 빼앗긴 시간을 찾아야 한다. 에베소서 5:16에서는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악한 날'은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하는 유혹과 세속적인 방해 요소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시간을 마귀의 영향에서 구속한다는 것은 이러한 세속적인 요소들로부터 시간을 되찾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어떻게 구속해야 하는가?
시간을 구속하는 방법은 금식(Fasting)이다. 에스라 성경사전을 보면 '금식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은 슬픔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할 때 금식했다. 이때에는 몸이 영양분 섭취를 거부하면서 굶주림으로 인한 식욕을 유보시킨다.' 고 나온다. 금식은 음식을 거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좋아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을 자랑하는데 사용하는 영양분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시간을 사용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것이 SNS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절제해야 한다. 금식을 통해 우리는 세속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구속한 다음에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구속된 시간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개인의 신앙 성장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들로 채워져야 한다. 골로새서 4:5에서는 "Walk in wisdom toward them that are without, redeeming the time."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올바른 본보기가 되라는 의미다.
구속된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반영해야 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한 활동으로 채워져야 한다. 구속된 시간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연단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 연구와 기도, 묵상 등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영적 성숙을 추구할 수 있다.
영적 성장에 집중한다. 금식을 통해, 우리는 그 시간을 성경 읽기와 묵상, 기도에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또 금식으로 절약된 시간과 자원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식하면서 절약한 비용을 기부하거나, 그 시간 동안 자원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Redeeming the time"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명령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모든 순간을 영적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2024-06-14 08:30:45 | 이규환
돌아가 쉴 본향 있기에 언제나 감사드릴 뿐입니다
2024-06-13 18:38:05 | 최영오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2024-06-13 18:35:13 | 최영오
항상 감사하라, 아멘! ^^
2024-06-13 18:32:40 | 최영오
아멘!
열심히 읽겠습니다 ^^
2024-06-13 18:29:53 | 최영오
구원의 착각에 대하여 생각하곤 합니다. 날이 갈수록 그런 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알면 알수록 그런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많이 안다는 뜻 절~~~~~대로 아님 ^^)
어떤 경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느냐 하면, 인터넷 또는 유튜브 등에 나와 그럴듯한 외모와 언변으로 미혹의 가르침 열심히 설파하는 사람들, 영적 무장해제 상태로 아멘 소리 높여 화답하는 더 많은 사람들 접할 때랍니다. 그때마다 떠올리곤 하는 몇몇 말씀 구절들과 관련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롬10:9-10 말씀이 우선 떠오르더군요. 저 사람들 역시 그렇게 믿고 시인했겠지...?...그랬으니까 구원의 확신에 차서 저러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그런데 이어서...하지만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갈1:8 말씀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런 까닭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이것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그들이 다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살후2:10-12 말씀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도 바울이 저주한 바로 그 다른 복음임에 틀림없으니...저 사람들은 애당초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고...하나님께서 보내신 미혹으로 인해 거짓말, 즉 거짓 교리를 더욱 확신하게 되고...결국은 모두 함께 정죄에 이르겠거니...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그러면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롬10:9-10 말씀은 뭐냐, 저 사람들의 경우 믿고 시인했음에도 구원커녕 정죄로 통하는 미혹의 저주를 받았다는 거잖아...라는 생각, 그러니까, 롬10:9-10 말씀에 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더군요.
믿고 시인하는 그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란 말인가...?...어쩌고 하며 한참 동안 딜레마 속을 헤맨 끝에, 롬10:9-10의 마음으로 믿고 시인한다는 그 말씀에는 단순히 몇 마디 말을 통한 신앙 고백 이상의 어떤 정신적 또는 영적 상태까지 내포되어 있으리라...라는 나름대로(어디까지나 나름대로 ^^)의 어렴풋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답니다. 안 그러면 롬10:9-10 말씀이 거짓으로 되니까 말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정신적 또는 영적 상태의 의미 관련하여 약간 덧붙이자면, 정녕 마음으로(in heart) 믿은 사람이라면, 바른 성경 찾아 읽고 또 읽으리라 다짐했을 것이고, 진작 바른 성경 알아봤을 것이고, 성경 말씀이 꿀같이 느껴졌을 것이고, 가르치는 사람의 말이 그러한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 기록 탐구하고 싶은 영적 욕구 느꼈을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는 지식 워낙 일천하여 더 이상의 논리 전개는 그렇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원받지 못했음에도 구원받은 줄로 크게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안타까운 사람들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끝 )
2024-06-13 18:27:53 | 최영오
나그네된 삶.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요.
곧 떠날 이땅에 너무 많은 것이 짐인데 말이죠.
아주 단순하게 진실하게 살아야 하겠지요~
2024-06-08 08:47:48 | 이수영
나그네 마음이기 때문에 섬기는 마음이 어제나 오늘이나 같을 수 있는것 같아요~^^ 그래도 시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휴거 그날을 기다립니다..
2024-06-07 16:45:20 | 목영주
나그네의 정체성
베드로전후서는 주후 65년 경, 로마의 박해로 인해 도처에 흩어져 불같은 시련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소망을 주기 위해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단어가 바로 ‘나그네’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진 나그네들, 곧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화평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베드로전서 1장 1절)
성경에서 나그네라는 표현은 단순히 장소나 신분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 이상으로, 신앙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베드로전서에서 성도들을 나그네로 표현한 것은 그들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나그네라는 단어는 본래 살던 곳을 떠나 일시적으로 다른 곳에 머무르는 사람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본향으로 삼고 이 땅에서 잠시 머무르는 성도의 신분을 상징한다. 나그네는 짐이 많지 않다. 나그네는 소유가 많지 않다. 나그네는 쌓아 놓고 살지 않는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쌓아 놓고 많이 가질 게 뭐가 있는가? 나그네는 짐을 줄이는 사람이다. 가벼운 짐을 가질수록 나그네 생활하기가 편하다. 나그네는 그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그네는 영원히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본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일시적으로 그곳에 머무른다. 이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않음을 의미한다. 낯선 곳에 머무는 나그네는 종종 외롭고 고독하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세속적인 가치와는 다른 하나님의 가치를 따르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그들의 목적지는 본향이다. 이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늘나라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베드로전서는 성도들이 나그네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은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한다. 나그네로서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 즉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야 함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고 선한 행위를 하라고 한다. 나그네로서 성도들은 비록 세상에서 소외감을 느낄지라도, 그들의 선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야 한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2장 13-14절은 주를 위해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나그네로서 성도들은 이 세상의 권위와 질서를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질서를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은 "무엇보다도 먼저 너희끼리 뜨거운 사랑을 품으라고 한다. 나그네로서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고 연합해야 한다. 이는 공동체 내에서의 사랑과 연합이 외부로도 드러나, 세상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은 너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같은 시련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한다. 나그네로서 성도들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인내해야 한다. 고난은 성도들의 믿음을 단련하고, 그들의 영적 성장을 이끌어낸다.
베드로전서에서 나그네로 표현된 성도들의 삶은 이 땅에서의 임시적이고 순례적인 삶을 의미한다. 나그네로서 성도들은 거룩함, 선한 행실, 순종과 존경, 사랑과 연합, 그리고 고난 속에서의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 성도로서 나그네의 정체성을 깊이 이해하고, 베드로전서의 가르침을 삶에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더욱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거친 파고를 헤쳐나가는 우리 사랑침례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고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끌어안았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와 순례자임을 고백하였으니, 그런 것들을 말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느니라.(히브리서 11장 13-14절)
2024-06-05 19:10:54 | 이규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4-06-04 23:09:17 | 김지훈
거짓말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오지요.
벽지에 낙서해 놓고 누가 그랬냐고 물으면 쪽쪽이 물고 누워있는 젖먹이가 그랬다고 대답하니 말이죠.
성악설이 맞는 이유입니다.
주님을 만나고도 습관적인 거짓말이 튀어나오죠...
2024-06-02 13:27:33 | 이수영
아이들의 작은거짓말 저의 변명하고 싶은 마음..역시 사람은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깨닫는 그 순간이 있어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저의 주인이십니다..염두하며 오늘 하루 잘 살아내겠습니다~^^
2024-05-31 07:35:10 | 목영주
들킨 거짓말과 들키지 않은 거짓말
가수 김호중이 음주운전을 하고 거짓말을 하여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거짓말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거짓말은 종종 개인이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한다. 예를 들어, 실수를 감추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거짓말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사람들은 종종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때때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다. 예를 들어, 더 좋은 조건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또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명성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거나 실적을 부풀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중요성을 과시하기 위해 거짓말을 자주 한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단순히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회피와 도피 거짓말은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피하기 위해 한다. 예를 들어,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서 핑계를 대거나, 실수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사회적 학습의 결과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학습할 수 있다. 부모나 친구들이 자주 거짓말을 하면, 이를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된다.
항간에 “들킨 거짓말이 있고, 들키지 않는 거짓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들키느냐, 들키지 않느냐 일뿐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거짓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찌 어찌 하다 점심을 못 먹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가 점심식사 했느냐고 물으면 점심식사를 안했는데도 먹었다 대답한다. 거짓말을 한 것이다.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이 별로 안 느껴진다.
성경은 거짓말에 대해서 무어라 하는가? 성경에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112번 나온다. 맨 처음 거짓말이 나오는 곳은 레위기 6장 2절이고, 맨 마지막은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이다.
레위기에서는 거짓말은 죄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면 원래대로 갚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에다 1/5를 더해서 주라고 한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누구든지 예외 없이 밖에 있다는 예수님의 무서운 경고가 담겨있다. 밖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 즉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다.
어떤 혼이 주께 죄를 짓고 범법하되 곧 자기가 지키도록 넘겨받는 것에서나 동업하는 일에서나 폭력으로 빼앗은 것 등에서 자기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자기 이웃을 속였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도 그것에 관하여 거짓말하거나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행하는 이 모든 일 중 하나에서 즉 그 일에 죄를 지으면 그는 죄를 지어 유죄이므로 자기가 폭력으로 빼앗은 것이나 속여서 얻은 물건이나 지키도록 넘겨받은 것이나 자기가 찾은 유실물이나 혹은 자기가 거짓으로 맹세한 모든 것을 돌려주되 참으로 그것을 원래대로 돌려주고 그것에다 오분의 일을 더해범법 헌물을 드리는 날에 그것이 속한 사람에게 그것을 줄지니라.(레위기 6장 3절~5절)
개들과 마법사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누구든지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밖에있느니라.(요한계시록 22장 15절)
가수 김호중은 거짓말을 해서 인생을 망쳤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도자급들의 거짓말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잊는다. 이들의 말로는 비참할 것이다. 차제에 다른 사람들의 거짓말에 광분하는 것 못지않게 나 자신은 얼마나 거짓말에서 자유로운지를 깊이 생각해 본다.
2024-05-29 23:20:39 | 이규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4-05-25 20:36:24 | 김지훈
요즘같이 너무 좋은 날씨와 산뜻한 풍광 속에 거닐다 보면,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 거저 누리고 있는 은혜에 탄복하게 됩니다.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기쁘게 생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4-05-25 19:57:03 | 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