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힘듦도 크게 느끼는 겁많은 제 성격을 감사해야 하는 거였네요~^^ 적절한 시련 그리고 훈련으로 제가 배은망덕할 확률을 줄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내 형제들아,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다 기쁨으로 여기라. 너희 믿음의 단련이 인내를 이루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야고보서1장 2-3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4-05-23 21:38:04 | 목영주
참 귀한 권고의 말씀압니다! 나의 존재를 비롯해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 노래로 감사하길 원합니다!!
2024-05-23 10:53:53 | 박혜영
샬~롬
늘 좋은 글로 저희를 '생각'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처음글에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가 된다는 말'과 함께
몇가지 예로 든 말씀들 모두 현실속 저의 모습인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작은것이라도 감사할 것들을 찾아 매 순간 감사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길 노력해야 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4-05-23 10:24:15 | 이명숙
사람은 참으로 반복에 익숙해지죠.
첫사랑을 지금까지 유지하면 좋을텐데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이 사람 속성을 아시는 주님께서 저에게 질책하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늘 마음속에 있어 감사해요.
항상 작은 것에 감사하며 감사를 늘려가려 해요.
2024-05-22 17:43:44 | 이수영
은혜가 반복되면 권리가 된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호의를 자주 베풀면 상대방은 그 호의를 당연한 걸로 생각하고, 자칫 권리로 착각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호의를 하나님의 은혜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 은혜는 우리의 행위나 자격과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인해 주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종 이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권리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은혜는 결코 우리가 요구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은혜에 감사해야 하며,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은혜는 그 자체로 기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으로 인도하는 힘이라고 가르친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은혜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와는 전혀 관계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오류를 범한다. 마치 은혜가 우리의 권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용서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우리는 회개 없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시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한 성도가 큰 죄를 짓고 진심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하자. 처음에는 이 용서를 큰 은혜로 여겼지만, 이후 같은 죄를 반복하면서도 항상 용서받을 것이라고 당연히 여길 수 있다. 이로 인해 그의 회개는 형식적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하지 않게 된다. 결국, 그의 신앙은 점점 약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질 수 있다.
한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물질적 풍요와 건강을 누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불평하며 왜 축복이 지속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잊고, 오직 자신들의 요구만을 앞세우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신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기도 응답에 크게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번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된다. 어느 날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을 때, 그는 하나님께 실망하며 신앙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는 그의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 교인이 교회에서 많은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크게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봉사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중에는 봉사 활동이 어려워질 때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왜 자신에게 더 많은 은혜를 주지 않느냐고 불평하게 된다.
한 사람이 성경 공부와 기도를 통해 깊은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처음에는 이러한 영적 성장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크게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된다. 만약 영적 성장이 정체되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지 못할 때, 그는 하나님께 왜 더 이상 영적 성장을 주지 않느냐고 불평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신앙이 은혜를 당연시한 결과다.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감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은혜를 발견하고 찬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은혜에 대한 감사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한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해야 한다. 작은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찾고, 그것에 감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받은 모든 축복에 대해 감사하며, 그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를 항상 감사해야 하며, 절대로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은혜를 권리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매일 새로워질 수 있으며, 그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도록,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2024-05-22 09:20:08 | 이규환
책을 읽으면 다양한 생각과 사고가 가능하죠.
다만 세상의 책들은 인본주의가 깔려있어서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죠.
혼자하는 독서는 치우칠 수가 있어 함께 읽고 나누는 책친구가 있으면 좋아요. 논제를 작성해 토론할 수 있으면 더욱 좋구요.
무엇보다 우리 교회 자매모임이 그래서 좋답니다.
2024-05-22 06:44:29 | 이수영
너와같은 대언자라 하니 바로 믿어버렸어요..
저같아도 믿었을 거에요.
늙은 대언자는 대체 그런 거짓말을 왜 했는지?
2024-05-17 14:22:04 | 이수영
지도해 주는 형제님의 글이 위로가 되는건 왜일까요..하나님 뵐날을 고대하며 어떤 상황,시간을 맞이하든 섬기는 마음으로,하나님 말씀으로 위로..생활해야 겠다고 다시 다짐합니다~^^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단순한 자들에게 깨달음을 주나이다- 시편 119편 13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4-05-17 07:32:36 | 목영주
경건 서적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경험한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특별한 계기는 3가지다. 첫째, 거의 죽다가 살아나는 경우, 둘째, 역할이 변하는 경우, 셋째, 책을 읽는 경우다.
1. 거의 죽다가 살아나는 경우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가까스로 살아난 경험을 하면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급격하게 변할 수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험은 사람이 현재의 삶과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자아 성찰: 죽음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가치 재정립: 삶의 우선순위가 변화하고, 이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가족, 건강, 행복 등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행동 변화: 이런 경험 후에는 이전보다 더 용감해지고 결단력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2. 역할이 변하는 경우
사회적, 직업적 역할의 변화도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역할의 변화는 새로운 책임과 기대를 수반하기 때문에 사람은 이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킬 필요성을 느낀다.
기대 변화: 새로운 역할에 맞는 기대와 요구가 생긴다. 이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결혼 전에는 주로 개인적인 목표와 기대에 맞춰 생활하지만, 결혼 후에는 배우자와의 공동 목표와 기대를 맞추어 살아가게 된다. 서로의 기대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변화시키게 된다.
역할의 다양성: 결혼 후에는 배우자, 부모, 혹은 자녀의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할 때가 많다. 이러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람은 여러 가지 능력과 성격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 부모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성장해 온 과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길러왔는지, 부모의 마음과 희생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학습과 성장: 역할 변화는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게 하며, 이는 개인의 성장을 촉진한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발전하게 된다. 결혼 생활과 자녀 양육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게 하며, 이는 개인의 성장을 촉진한다. 가사 분담, 재정 관리, 자녀 양육 등 새로운 역할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발전하게 된다.
3. 책을 읽는 경우
독서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도구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접하게 되며, 이는 사람의 내면을 깊게 변화시킬 수 있다.
지식 확장: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음으로써 지식의 폭이 넓어진다. 이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자기반성: 책 속의 인물이나 상황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 이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변화를 위한 동기를 부여한다.
영감과 동기부여: 책 속의 이야기와 교훈은 사람에게 큰 영감을 준다. 특히 자서전이나 성공 사례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도 변화를 시도해 보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사람이 변화하려면 극단적인 경험, 역할의 변화, 그리고 독서를 통한 깨달음이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 그러나 첫째 경우와 둘째 경우는 어렵다. 변화하기 위해서 죽음에 이르는 경험을 할 수가 없고, 역할이 바뀌는 경우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성도가 목사가 될 수 없고, 신입사원이 곧바로 팀장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접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경건서적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변화하기 위해서~~
2024-05-16 08:24:12 | 이규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4-05-15 14:44:29 | 김지훈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
요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라고 했다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분명한 것은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열왕기상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늙은 대언자가 등장한다.
열왕기상 13절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에 분향하려는 여로보암 왕에게 대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의 사람이 대언하는 것을 듣고 있던 여로보암 왕이 손을 내밀며, “그를 잡으라.” 하고 말할 때, 왕의 손이 마비가 된다. 이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이제 주 곧 네 하나님의 얼굴을 향해 간구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여 내 손이 다시 내게 회복되게 하라.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주께 간청하니 왕의 손이 전과 같이 회복이 된다.
그래서 왕이 고마워서 그랬는지 집에 같이 가자고 하며 보상을 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이에 하나님의 사람이 왕의 집 절반을 준다고 해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 아니하고 이곳에서 빵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겠다고 하면서, 주께서 말씀으로 내게 이같이 명하여 이르시기를, 빵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네가 왔던 같은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나이다. 하고는 벧엘로 올 때 택한 길로 되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간다.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로 돌아오는 길에 벧엘에서 늙은 대언자를 만난다. 늙은 대언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기 집에 가서 빵을 먹자고 한다. 이에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같은 대언자라는 말을 듣고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주께서 말씀으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거기서 빵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네가 올 때 택한 길로 가려고 다시 돌아서지도 말라. 하셨느니라, 하므로,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대언자니라. 천사가 주의 말씀에 의거하여 내게 말하며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 그가 빵을 먹게 하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그러나 그가 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였더라.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 그의 집에서 빵을 먹고 물을 마시니라.(열왕기상 13장 17-18절)
하나님의 사람은 같은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거짓 대언자의 말을 듣고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거짓 대언자에게 속아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사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여기까지가 열왕기상 13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요즘도 이런 유의 음성, 직통계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속삭인다. 속삭이는 속내는 뻔한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런 사람에게 대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래와 같이 말하면 된다.
“나도 하나님께 기도해 봤는데, 당신에게 그런 말씀 한 적이 없다고 하시던데요.”
그러므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고린도전서 10장 12절)
심지어 네 형제들과 네 아버지 집, 바로 그들도 너를 배신하였고 참으로 그들이 무리를 불러 네 뒤를 따르게 하였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그들을 믿지 말라.(예레미야 12장 6절)
2024-05-10 19:45:48 | 이규환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진짜가 아니다 라는 대화를 오전에 했는데 자매님 글을 보니 같은 맥락의 이야기어서
공감이 갑니다. 저는 아직 경험 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손주를 본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식 키울때
느끼지 못한 기쁨이라고. 너무 이쁘고 봐도 봐도 또 보고 싶다고 하네요 ㅎㅎ
태중에서 잘 자라 건강하게 태어나 모두에게 기쁨이 되면 좋겠어요
많이 축하드려요.
2024-05-04 20:21:35 | 김혜순
글과 자료 잘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좋은 증거네요~!
2024-05-02 15:13:09 | 이남규
아멘.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2024-05-02 09:22:41 | 이수영
생명 탄생의 신비
남자의 정자는 몇 억분의 1이라는 경쟁을 뚫고 여자의 난자와 결합한다. 이것을 수태라고 한다. 수태가 된 태아는 약 40주가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세상에 태어난다. 태아의 수태되는 과정과 자라는 과정을 보면 신비하기 그지없다. 아래 사진을 보면 10주 차에 아이의 발바닥이 선명하게 보인다.
임신 5주 차가 되면, 아기의 신경계는 이미 발달하고 있다. 주요 장기의 기초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 심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미 자체 혈관이 일부 존재하기 시작하며 혈액이 순환되기 시작한다.
임신 7주 차가 되면, 이 단계에서 뇌가 빠르게 성장하는데, 머리가 나머지 신체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이 시기의 배아는 이마가 크고 눈과 귀가 계속 발달한다.
임신 10주 차가 되면, 이제 아기는 비교적 자유롭게 몸을 흔들기 시작하기에 초음파 스캔을 통해서 아기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기의 눈은 반쯤 감겨 있지만 빛에 반응할 수 있다. 귀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섬세한 윗입술을 가지게 된다. 코에는 두 개의 작은 콧구멍이 생기고 있으며 턱뼈도 형성되고 있다. 아기의 젖니 역시 작은 크기로 나오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사람)의 세포 하나에 대한 정보(30억 쌍의 염기서열)를 받아 적으면 1,000,000페이지가 되며, 우리 몸에 담겨 있는 총 정보는 백과사전 1,000권 x 60조 개가 된다.
이 엄청난 정보가 인간의 설계도(blueprint) 안에 들어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어쩌면 이렇게 정교할까?
누가 만들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이 시편 139편에 있다. 생명 탄생 과정이 놀랍게도 성경에 잘 묘사되어 있다.
주께서 내 콩팥을 소유하셨으며 내 어머니 태에서 나를 덮으셨나이다.(13절)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이는 내가 두렵고도 놀랍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놀라우므로 내 혼이 그것을 매우 잘 아나이다.(14절)
내가 은밀한 가운데 만들어지고 땅의 가장 낮은 부분들에서 묘하게 꾸며졌을 때에 나의 실체가 주께 숨겨지지 아니하였나이다.(15절)
주의 눈이 아직 불완전한 나의 실체를 보셨으며 계속해서 형성되는 나의 모든 지체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되 그것들 가운데 아직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 기록되었나이다.(16절)
2024-05-01 21:29:52 | 이규환
우리는 저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 갑니다.
버스나 기차가 완전하게 운행될 것이라는 믿음,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등등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닐까요?믿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5-01 15:46:59 | 이규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요,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인지요!
2024-04-30 10:48:44 | 이수영
성경인물중에서 인간적으로 예레미야를 좋아하며 백부장은 저의 롤모델이에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위로가 되는 하나님말씀입니다
2024-04-30 09:42:01 | 목영주
한참동안 성경과 세상 서로 비교해 보다 나갑니다
수증기처럼... ^^
영적 음식 한 상 차려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2024-04-29 23:24:41 | 최영오
히11:1 말씀에 믿음의 정의 분명히 내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본질이랄까 속성 같은 것에 대하여 나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믿음의 본질을 보다 리얼하게 마음의 피부(?)로 느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네이버 국어사전과 영영사전 찾아봐도 믿음의 의미 명쾌하게 내리지 못하고 있더군요. 믿음(faith)의 의미 설명한다면서 믿음(belief) 어쩌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사전 탓할 문제가 아닌 것이, 믿음, 그것이야말로 글 또는 말로 표현하기 정말 어려운 단어라 할 것입니다. 어렴풋이라도 정의를 내린다면, 믿음이란 어떤 대상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도록...맡겨 버리도록 하는 심적 요소...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버린 상태의 마음, 그런 경우의 예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두어 살 정도의 갓난애 마음이 그런 상태, 말하자면, 믿음으로 충만한 상태의 마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믿음으로 충만한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 능력이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는 상태일 뿐이라구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말입니다. 너무나 세상적인 듯한(^^) 예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계좌에 1,000억 원이 입급되어 있다면(어디까지나 전혀 문제없는 돈) 얼마나 마음 든든할까요. 적어도 돈에 관한 모든 것을 거기 맡겨 버리게 될 것입니다. 판단 능력 없어서가 아니라, 판단할 것도 없이, 그러니까, 믿고 믿어지고 어쩌고 할 것도 없이 바로 마음 든든하게 되잖습니까. (저만 그럴까요...?...? ^^)
이처럼, 믿음이란...어떤 대상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버리도록 하는 심적 요소...라고 정의하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군요.
여기서 한참 생각에 잠기게 되더군요. 위 예의 경우에 있어서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 한쪽에서 생겨난 것일까...?...어디서 온 것일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한참 후...믿음은 믿음 그 자체라고 할 만한 대단한 존재(위 예의 경우 1,000억 원짜리 예금 계좌)로부터 온 것...전해진 것...아닌가...?...맞잖아...라는 결론 같은 생각에 이르더군요.
그리고...적어도 제 경우를 짚어볼 때, 다소(?)를 넘어 상당히 불경스러운(^^) 감 없잖은 위 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확실히...그분에게서 전해져 왔었지 않은가..라는 생각 거듭하게 되더군요.
이어서...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믿음이 온다...라고 표현하신 롬10:17 말씀이 참으로 진리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인즉,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본질적으로...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 삶의 빈부 또는 귀천은 물론 목숨까지도 맡겨 버리도록 하는 심적 요소...인 한편...그러한 심적 요소, 즉 믿음은 믿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저절로 전해져 오는 것...전이되는 것...아닐까...싶군요.
난원(蘭園)에서 나온 사람으로부터 짙은 난향 느껴지듯이,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는 믿음이, 뜨겁도록 강렬한 믿음이 전해져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끝)
2024-04-29 23:10:18 | 최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