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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다. 교회는 세상의 다른 제도와 기관과는 달리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는 곳이다. 하나님은 교회에게 진리의 횃불을 높이 쳐들라고 명령하신다.   우리는 진리를 무기로 삼아 사탄의 거짓으로 이루어진 견고한 요새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한 목표를 향해 매진할 때 교회는 마침내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11장. 교회 권징의 요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미국 교회,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가 왜 그렇게 거룩하지 못한 것이죠?”   그 원인은 우리가 잘못된 말씀을 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리적으로 올바른 설교를 듣고 있는 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에는 무관심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대화에만 의존하면서 자녀를 지나치게 자유롭게만 기를 수는 없다. 자녀들에게 해야 할 의무만 말하고 아무 징계를 가하지 않는다면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기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범법한 동료 그리스도인을 다루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예수님이 세우신 원리는 오늘날 교회의 권징을 다룰 때에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반드시 권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키셨다. 교회의 권징은 교회 위에 군림하는 상위 법정이나 일반 법정에서 다룰 만한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교회를 언급하셨기 때문에 제판관의 신분으로 앉아 판결을 내리는 계급구조는 무엇이든지 허용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끼리 세상 법정에 서로를 고소하는 행위를 단호히 나무랐다. 이 말은 ‘왜 너희의 불평거리와 문제를 동료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불신자들이 관할하는 법정에 들고 나가느냐?’ 라는 뜻이다. 교회의 권징이나 논쟁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법정은 교회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권징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에 대해 책임은 각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있다. 따라서 교회 밖이나 그 위에 판결 조직을 구축하는 것은 잘못이다.   권징의 목적은 사람을 내쫓거나 당황하게 만들거나 자기 의를 주장 하거나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성경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회복, 곧 범법한 그리스도인을 다시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항상 회복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교회의 권징이 모든 사람의 범법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교회의 권징은 범법한 사람을 방치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보다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도에서 비롯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혼들을 높이 존중하는 마음과 교회가 거룩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한다.   권징의 절차 마테복음 18장 15~17절은 권징을 네 가지 단계로 나눠 자세히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 범법한 사람에게 혼자 찾아가서 말하라. 범법한 그리스도인들을 대할 때는 우리도 얼마든지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6장2절 너희는 서로 남의 짐들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곧 왕의 법이자 자유의 법이요 사랑의 법이다. 따라서 온유한 마음과 사랑으로 형제나 자매에게 다가가서 짐을 잘 짊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두 번째 단계: 증인들을 대동하라. 권징의 두 번째 단계는 한두 사람의 증인을 대동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부터는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범법을 확실히 지적해 진정으로 죄들을 고백하며 뉘우치게 하기 위해서다. 증인을 참석시키라 하는 것은 범법을 꾸짖는 사람과 꾸짖음을 받는 사람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다.   세 번째 단계: 교회에 말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범법한 그리스도인이 증인들의 권유도 듣지 않는다면 그때는 교회에 보고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권징의 목적은 회복이다. 혼자서 권유해도 효과가 없고, 두세 증인의 말도 소용이 없을 때도 우리는 여전히 범법한 그리스도인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 번째 단계: 이교도처럼 여기라. 교회의 말 듣기를 무시하거든 그를 이교도나 세리같이 여기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사람을 경멸해야 한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교도나 세리를 진정으로 사랑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범법을 지은 사람이 회개를 끝까지 거부하거든 불신자를 대하듯 하라는 뜻, 곧 성도의 교제를 단절하고 교회가 누리는 축복과 혜택에 참여할 기회도 주지 말라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출교시켜야 한다.   권징의 능력 권징의 과정에 하나님이 동참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다른 그리스도인의 범법을 꾸짖는 것은 사랑이 없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징은 하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싸움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일치해 범법한 사람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면 하나님도 우리와 뜻을 같이하신다.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성부의 뜻과 성자의 사역을 이루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역자로서 권징의 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교회 권징은 교회의 순결을 지키는 열쇠고, 순결한 교회는 우리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능력을 준다.          
2023-11-04 10:10:13 | 이은정
정리해 주신 글을 읽으면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휴거의 소망으로 진정 살맛나는 요즘의 저입니다~^^ 하나님 만날 그날까지 이 땅에서 도전하며 견디며 도전하며.. 예수님의 믿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2023-10-24 21:03:29 | 목영주
안녕하세요^^ 이번주는 벼룩시장과 교제모임을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실하게 참여해주신 자매님들께 감사드리며 모임을 통해 더욱더 교회를 알아가고 성장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9장. 주님의 방법에 의한 주님의 사역   고린도전서 15장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바울은 주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항상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넘치게 해야 한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찾아와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일을 중요한 의무로 인정하고 고린도전서 15장58절을 적용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주님의 일일까?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살펴보면 된다. 주님은 크게 두 가지 일을 하셨다. 하나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을 굳건하게 세우는 일이었다.   신약성경은 “주의 일”이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님의 일에 힘쓸 때 우리의 수고는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 주님의 일을 위한 수고는 공허하거나 무의미하지 않고, 무익하거나 헛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많은 변화와 열매를 가져온다.   교회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항상 주님의 일, 즉 복음 전도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그분의 방식으로 행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네가 사는 날 동안 나의 사신이 되어 나의 말을 온 세상에 전하지 않겠느냐?’라고 부탁하신 다니 참으로 황송한 일이 아니겠는가?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와 아볼로의 사역을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일을 행할 수 있는 실천 원리 일곱 가지를 언급했다.   - 미래의 비전 주님의 일에 헌신하며 복음 전도의 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직도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항상 그런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 한다. 그에게는 비전이 있다. 그는 이미 이루어진 일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생각한다.   미래에 비전이 있다면 지금부터 계획과 준비를 갖춰 하나님이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시는 즉시 비전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 기회가 찾아오면 즉시 행동에 돌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인가 할 일을 주실 때까지 기다릴 거야’라고 말하면서 아무런 목적이 없이 세월만 보낸다면 하나님은 아무 일도 맡기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오직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일을 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조만간 비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실 것이다.   - 유연한 태도 미래의 일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유연한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바울은 훌륭한 계획을 세웠지만 늘 유연한 태도를 잃지 않았고, 하나님께 중도에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온전히 내어 드렸다.   - 철저한 사역 주님의 일은 대충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하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려면 그 사람에게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 단지 전도지를 건네주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육성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자로 그분을 섬길 때는 철저한 헌신으로 탁월한 사역을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능력의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현재에 충실한 태도 머릿속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이 일꾼이 되고 싶다면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는 미래를 위한 역량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다.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를 가르치셨다. 주인은 충성된 종을 칭찬했다. 현재 일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다음번에 더 큰 책임을 맡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 적대 세력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용기 문제가 없는 곳에는 아무 사역도 필요하지 않다. 캠벨 모건은 사역하는 곳에서 아무런 반대에 부딪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잘못된 곳에서 사역을 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 바 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이상 머물면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나중에 에베소에서 있었던 영적 싸움을 회고하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원수들이 하나씩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고후 1장8~10절)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직면한다. 그런 혹독한 박해 앞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사역의 모험을 감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모든 적대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도전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사역하기 어려운 장소를 찾아라.   - 팀 사역 바울은 팀 사역을 중시하는 지도자였다. 바울은 지도자들을 이끌던 지도자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모두가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팀 사역을 소중하게 여겼다.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덕을 이루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받아들이는 한편, 자기도 그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교회가 단합된 팀으로 일하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우리의 믿음이 확실한 진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사역을 인정하라. 우리도 바울이 아볼로를 대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사역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역 팀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팀 동료에게 억지로 주의 일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유능한 지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이 팀 동료에게 하시는 말씀을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 선한 지도자는 성령께서 팀 동료들 가운데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도록 배려한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행하면 주님이 상을 주러 오실 때 칭찬을 들을 것이다.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부탁한 일을 잘 해 냈구나.”   10장. 왜 나는 교회를 사랑하는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교회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부가 되기보다 그 주변을 맴돌면서 단지 구경꾼처럼 의미 없는 출석만 반복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교회에 관해서는 냉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복음주의 진영 전체에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교회를 열렬히 사랑한다. 교회를 섬기는 일은 나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게 한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는 이유 몇 가지를 성경에게 찾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주님이 친히 교회를 세우신다. - 교회는 영원한 계획의 완성이다. -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현실이다. - 교회는 지상에 드러난 천국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교회다.                
2023-10-23 23:08:18 | 이은정
아름다운 자연 가운데 교회로 부르신 목적을 나누셨네요^^ 주님이 베푸신 은혜가운데 매일 살아가며, 성화를 거쳐 영화에 이르게 되기에 그날을 기대하는 소망가운데 있어요.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2023-10-08 02:12:39 | 이수영
요즘 구약을 읽는 중이라 그런지 순종을 하나님이 참 귀하게 보신다는 생각..그리스도인이 된이후의 제삶도 돌이켜보면서 순종이라는 말이 뇌리에 계속 남습니다. 순종이라는 단어가 더 제것이 되고 싶은 마음에 저는 갈라디아서2장 20절 말씀을 붙들겠습니다..부르심의 목적-[영화]를 꿈꾸며 마치 지금 이루어진것처럼 상상하니깐 마음이 좋네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2023-10-07 19:39:45 | 목영주
안녕하세요^^   이번 주 모임은 오랜만에 야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파란하늘과 자매님들의 모습이 참 조화롭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8장. 교회의 소명   불행히도 교회라는 명칭은 그 심원한 의미를 잃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에게 교회는 길 한쪽 모퉁이에 세워진 콘크리트 건물을 의미하거나 로마 카톨릭 교회나 예전을 중시하는 개신교 교단과 같이 종교적 신분과 질서에 입각한 성직계급 구조를 의미한다.   교회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church' 라는 영어 단어를 파생시킨 ’에클레시아‘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것이다. ’부른다‘를 뜻하는 헬라어 동사 ’칼레오‘에서 파생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28절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정의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집단이다. 교회는 인간의 조직도 아니고, 인간의 지혜나 능력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또한 교회는 선량하고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조직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를 불러 교회에 세우셨다.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성경구절이 많다. 이렇듯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을 부르시어 교회를 세우셨다. 또한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연약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교회가 성공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고, 교회가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때문이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직접 그분의 나라를 위해 일하시게 하는 데 있다.   바울에 따르면 교회란 하나님이 은혜로 죄 사함과 구원을 베푸신 자들의 모임이다. 우리는 성령침례를 받은 자들의 공동체다.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교회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 교회는 목자이신 주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라고 부를 수 없다.   부르심의 목적 - 성화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신 목적은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구원자이신 주님과 성부 하나님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야한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며, 육신의 정욕을 좇아 행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의로운 교회로서 겸손과 죄들의 회개와 권징과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   부르심의 목적 - 연합 교회는 인위적으로 정한 규범을 준수하는 조직체나 특정한 형태의 종교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참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   부르심의 목적 - 순종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지 성경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배우고 삶에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무장시키는 것이 교회 지도자의 임무다. 단순히 성경을 소유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성경을 알고 이해해 영적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   부르심의 목적 - 통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의 역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러한 완성 상태를 현재에 보여 주는 상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목적은 성도의 연합을 통해 참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은 겸손에서 비롯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춰 아름다운 겸손을 보여 주셨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아니라 서로를 돌봐야 한다. 오직 겸손을 가르치는 교회에서만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부르심의 목적 - 영화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운명은 영화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부패하고 악한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하고 무한한 기업을 잇는 후사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어 그분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실 날을 고대한다. 우리는 곧 사라질 세상에 우리 삶과 자산을 투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도시를 바라본다.   히브리서 11장 10절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부르심의 목적 - 찬양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세상은 물론, 그분과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분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늘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 내 결정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                          
2023-10-07 09:10:52 | 이은정
신실하게 참석하시고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올바른 기본교리에 든든히 서가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서로 섬기고 교제하며  주님오시는 날까지 지속되야지요. 본보기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2023-09-24 09:27:04 | 이수영
저의 부족함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인지 체크 잘 해보았습니다~디모데후서 4장2절 말씀이 제것이 되어 하나님께 떳떳하고 그분과 더 친해지길 (살짝 자매모임에 묻어서) 기도 드립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때가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
2023-09-23 20:02:54 | 목영주
안녕하세요^^   5장 초대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곧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영광스런 하늘나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참 교회를 구성한다.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부름 받은 이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서로 한 몸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가 처음부터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교회의 세 가지 측면, 즉 교회의 설립, 교회의 사역, 교회의 리더십이 있다.   교회의 설립 그리스도인들의 첫 모임이 이루어진 곳은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해 탄생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과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참교회가 될 수 있는 모든 기능을 갖추었다.   현대 교회는 종종 사람들의 관심을 끌 요량으로 오락이나 눈속임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성경의 원리와 인도를 따르지 않는 징후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여러 전도자들이 이곳저곳에 독립 교회를 세웠다. 당시의 교회는 모두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체계 있게 묶어 줄 교단이나 교파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령님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었다. 유대인과 이방인, 가난한자와 부자, 교육받은 자와 교육받지 못한 자 등 모든 계층의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구성했다. 성령님께서 그들을 하나의 교회로 만드셨다.   교회는 오랜 세월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교회는 점차 기업처럼 복잡한 구조와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교회는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전략에만 모든 힘을 기울일 뿐,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확고한 진리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사역 신약성경의 세 서신, 즉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교회의 사역과 조직 구조를 규정한다. 디모데와 디도는 복음 전도자였다.   교회의 기본 임무는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목회자의 사견을 말하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로 눈물을 짜내거나 헌금을 모으거나 프로그램과 오락을 제공하거나 매주 묵상용 책자를 배포하는 등의 일은 교회의 기본 임무와 거리가 멀다. 바울은 오직 건전한 교리에 합당한 것들을 말하라고 했다.   거짓 교리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 교회 지도자의 임무라면 목사는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 매진해야 마땅하다.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거짓 교리로부터 교회의 순결을 보호하는 일을 가장 으뜸으로 생각해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태도로 양떼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의 사역은 단순하다.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곧 교회의 근본 사역이다. 초대 교회 복음 전도자들처럼 영적 진리를 가르치는 것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령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길이다.   교회의 리더십 교회를 다스리는 목사는 그리스도 앞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딤전 5장17절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자들을 그리 여길지니라.   고전 2장 16절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느니라.   목사는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하며 진리를 수호하고 교리를 거스르는 그리스도인을 권징해야 한다. 교회를 강하게 만드는 비결은 교인들 중에서 교회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목사는 자신의 사역을 그리스도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6장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기본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처음 복음을 전한 것은 2차 선교여행을 떠났을 때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언급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또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 수 있다.   구원받은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구원받은 교회, 즉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성공하게 된 비결은 순수한 믿음이었다.   주님을 본받는 교회 교회의 화합은 그리스도인들이 제각기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할 때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의 삶을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해 노력했다.   고난받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구원을 받아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는 어떤 교회든지 시련을 당하게 마련이다.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는 세상과 반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난을 피하기 어렵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고난을 감수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고난을 받으신 주님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당하고자 했다.   복음 전도에 열심을 내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두 가지 방법으로 복음을 전도했다. 첫 번째는 삶의 모범을 통한 복음 전도였다. 이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고 ‘저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야’ 라고 말했다는 뜻이다. 두 번째 방법은 입을 통한 말씀의 증거였다. 교회의 복음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말을 만들어 내지 말고 자신의 말씀을 되풀이해서 전해 주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겼을 뿐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고대했다. 참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그분의 재림을 의식해야 한다.   굳게 서는 교회 주님 안에 굳게 선다는 것은 교리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확고한 사랑을 지닌다는 의미다. 교리는 굳게 믿지만 믿음 생활은 냉랭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 안에 굳게 서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섰다. 성경의 교리를 믿는 믿음이나 서로에 대한 사랑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순종하는 교회 고린도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순종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순종했다. 이것이 타의 모범이 되는 바람직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목회자의 가장 큰 역할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목회자 의견을 설교의 주제로 삼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순종하는 교회를 일구어 낼 수 없다.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하라.   7장 효율적인 교회의 표징   교회 성장의 원리는 모두 성경에서 비롯한다. 성경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이들 원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교회의 목표와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방향을 잃거나 목적 없이 표류하기 쉽다. 방향을 잃은 교회는 그 어떤 성취감도 느낄 수 없다. 성경의 목표 외에 기능적이며 실질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이런 목표는 성경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다.   경건한 지도자 하나님은 항상 경건한 그리스도인을 대리자로 세워 세상을 통치하신다. 교회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경건한 성품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만이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효율적인 교회의 선결 조건이다.   교회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살펴보면   책망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고,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고, (딤전 3장2절)   선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정의롭고, 거룩하며, 절제하고(딛1장8절)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 하고, 쉽게 화내지 아니하며, 자기를 술에 내어주지 아니하고,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에 빠지지 아니하고 (딛1장7절)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인내하고,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고,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 (딤전3장3~4절)   반듯이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리니 (딤전3장7절)   초신자는 아니 되나니 (딤전3장6절)   제자의 직분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세우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자 훈련을 실시할 때는 세 가지 주의해야 한다. 첫째는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둘째는 성경을 삶에 적용해야 한다. 셋째는 모든 문제를 성경을 중심으로 해결해야 한다.   능동적인 성도들 교회의 사역은 모든 성도의 의무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이 주신 영적선물을 활용해 교회의 지체들을 세워야 한다. 올바르게 기능하지 못하는 성도들은 교회 사역에 장애를 초래한다. 따라서 전성도가 사역에 참여해 하나님이 주신 영적선물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로를 위한 관심 역동적인 교회는 성도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서로’라는 말은 삶을 통해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 삶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가정을 위한 헌신 엘리 제사장은 다른 사람들의 영적 문제를 돌보았을 뿐 정작 자녀들에게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벨리알의 아들들이 되고 말았다. 엘리 제사장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너무 바빴던 나머지 정작 자기 자신과 가족을 돌볼 시간이나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가족에 대한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가꾸는 일을 삶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홀히 한다면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교회는 건전한 부부관계와 가족에 대한 헌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성경 공부와 설교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면 사람들의 삶이 변화된다. 이것이 역동적인 교회가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 삶에 적용하도록 유도하는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설교의 목적은 죄들을 깨달아 행동을 고치게 만드는 데 있다. 문제를 적당히 완화시킨다고 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죄들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삶을 변화시켜야만 진정한 기쁨을 되찾을 수 있다.   변화 추구 전통을 신성시해서는 곤란하다. 역동적인 교회는 상실한 과거의 방법을 걸러내는 작업을 정기적으로 이행한다. 교회가 과거의 습관에 안주하면 성도들이 목표를 잃고 방황하기 마련이다.   희생 희생정신은 위대한 믿음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성도들의 믿음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할 정도로 성장하면 교회 지도자가 굳이 나서서 사역에 참여하라거나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다. 효율적이고 순종적인 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즐거이 물질을 드린다.   예배 위대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예배를 중시해야 한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무슨 사역을 행하든지 그분의 영광을 구하는 교회만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다. 교회의 독특성이나 프로그램, 또는 교리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2023-09-23 10:44:06 | 이은정
좋은글 감사합니다^^ 중년이후에 근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믿음 생활에서도 교회의 근육이 탄탄하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한 믿음 생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귀한 교제의 장이 되는 자매모임이 되길 늘 응원합니다^^  
2023-09-18 08:49:03 | 김세라
정리해주신 글귀 하나하나가 모두 귀해서 천천히 잘 읽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으로 (부족한 저를 들여다보는걸 멈추고) 믿음으로 사는 삶 다시 도전하는 마음입니다..개인적으로 -제자사역-이 제 것이 되길 기도 드립니다~^^
2023-09-16 13:39:54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경은 진정한 영혼 연구에 있어서 유일한 신뢰성 있는 진리의 말씀이다. 성경은 모든 영적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넉넉하기 때문에, 성도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면서 그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이것이 성경적 성화의 과정이다.   3장. 교회의 근육   골격은 육체의 형태를 이루고, 장기는 육체에 양분을 제공한다. 하지만 육체가 활동하고 기능하려면 근육이 필요하다. 교회의 근육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영적 활동이 근육의 범주에 속한다.   설교와 가르침 설교와 가르침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말씀 선포는 교회의 가장 주된 기능에 해당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료하고 권위 있게 선포하는 것이다. 교회는 말씀 선포에 헌신해야 하며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다.   말씀 선포는 설교자만이 아니라 온 교인의 임무다. 설교나 가르치는 일에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만 말씀 선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말씀 선포다. 설교와 가르침에 그토록 큰 비중을 두는 이유는 그 두 가지 사역이 다른 모든 사역을 가능케 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야 무슨 일이든 하지 않겠는가?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배, 기도, 복음 전도, 권징, 목양, 훈련, 섬김과 같은 사역을 어떻게 행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교회는 다른 어떤 사역보다 설교의 가르침의 사역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   복음 전도와 선교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둡고 왜곡된 세상에서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섬김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있다. 복음 전도의 방법은 우리 삶을 통해서, 우리 말을 통해서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하는 증언을 신뢰하거나 불신하게 만든다. 그리스도를 높이 찬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교회가 된다면 사람들이 우리의 증언을 신뢰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교회를 부패시키려고 노력한다. 사탄의 목표는 복음의 순전함을 훼손하고 그리스도인의 증언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방부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구별된 존재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결한 삶을 요구하시는 이유다.   우리는 경건하고 고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예배 우리는 예배 정신이 충만히 깃든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순종할 때 가장 훌륭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배도 순종처럼 하나의 주일 활동이 아니라 삶 자체를 의미한다.   기도 기도에 헌신해야 한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마치 눈을 감고 손으로 더듬는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비춰 생각하며 사는 삶을 의미 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다.   제자 사역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해 성숙한 제자로 육성하는 사역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릴레이 경주에 참여한다. 우리는 믿음의 바통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주어야 한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심어 주었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아라.   누군가를 제자로 양육할 때는 경건한 삶을 독려하며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성경의 진리가 체질화되어야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성숙한 믿음이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삶을 의미한다.   교제 교제는 교회의 필수 기능이다. 교제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사랑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우리는 성도의 교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의 겉모습 우리는 교회를 볼 때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 교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마음이다.   교회는 골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존중하고,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며, 건전한 교리를 신봉하고, 경건한 삶을 독려하며, 영적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장기, 즉 영적 태도를 갖추어야 하고, 고유한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요소만 모두 갖추었다면 교회의 겉모습이나 프로그램의 형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교회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비롯한다. 내면의 모든 것이 올바로 위치하면 겉은 저절로 형태를 갖추게 된다.   4장. 교회의 머리   이 부분은 교회 해부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머리가 없는 육체는 존재할 수 없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기더라도 교회를 자라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다. 그분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주님, 곧 교회의 주권자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주님으로서 교회를 다스리신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일을 집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님의 뜻을 대부분 알 수 있다. 주님은 성경과 인간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다. 주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가르치신다. 최고의 교사는 그리스도이시다. 목사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가 아니라 단지 웨이터에 불과하다. 목사의 임무는 음식을 쏟지 않고 따뜻하고 신선한 상태로 접대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분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죄를 멀리하게 하시며, 영원한 영광을 돌리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는 주님께 속해 있다. 그분은 교회의 건축자이자 소유주요, 구속자이자 초석이며, 또한 모퉁이돌이시다.   예수님은 교회를 완성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무엇도 교회를 이길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는 일을 우리에게만 맡겨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의식하면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영광을 위해 행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보다 더 즐겁고, 영광스럽고, 만족스럽고, 경이로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6장 18절 내가 또한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2023-09-16 07:43:23 | 이은정
교회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고 자매님들과 함께하는 교제로  더욱 우애가 쌓여 가겠지요^^ 모두가 한 나무의 가지이니. 예수님이 공급해주시는 물을 듬뿍 마시며 내면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라지요^^ 신실하게 참여하는 자매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2023-09-09 16:43:43 | 이수영
자매모임 시작 축하드립니다! 저의 딸들 숙제(자매모임후기 읽기)하나 더 생겼네요~^^ 말씀을 잘 알아야 세상보는 내가 끼고 있는 안경이 인간중심인지 하나님중심인지 분별이 생길것 같아요. 순종 겸손 사랑 화합 섬김 성장욕구 충성 소망..실천하기 참 어려운 단어들이지만 하나님에 대해 특히 하나님의 뜻 마음에 대해 잘 알고 (내가 막지만 않으면)성령의 열매로 저절로 실천가능할 수 있지않나..생각을 해봅니다.
2023-09-09 08:05:54 | 목영주
안녕하세요^^ 한 달간의 여름방학을 끝내고 가을의 시작과 함께 목요자매모임이 개학 하였습니다. 무더위에 고생하였지만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오니 계절의 변화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번 학기에는 존 맥아더의 ‘하나님이 계획하신 교회’ 책을 가지고 풍성한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1장18절 또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오.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 가운데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1부 교회 해부학 1장. 교회의 골격   모든 교회는 성장과 쇠퇴라는 동일한 굴곡을 거친다. 첫 세대는 대개 진리를 발견하고 확립하는 일에 전념했다. 둘째 세대는 진리를 유지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세 번째 세대는 교회 사역에 그토록 무관심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바로 첫 세대와 둘째 세대와 함께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태로운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힘써 노력해서 이룩한 것들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싸움에 동참하지 않은 관계로 대가를 치른 적도 없고, 그러니 값진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도 못했다.   인간은 단 한 번의 삶을 산다. 진리를 발견하고 확립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룩하신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모든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은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하면 비판을 일삼는다. 작가 토머스 하디는 아름다운 풀밭에 갈 때마다 거름 무더기를 보고 불평하는 친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사고방식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는 몸이다.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한 몸 안의 많은 지체), 해부학 측면에서 그 구조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육체는 뼈, 장기, 근육, 살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 역시 골격(근본 진리), 장기(영적 태도), 근육(여러 가지 기능), 살(프로그램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육체가 가능하려면 일정한 구조가 필요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건전한 구조를 형성하려면 뼈대 역할을 하는 근본 진리가 필요하다. 근본 진리란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불변의 교리를 가리킨다. 근본 진리를 포기하면 모든 골격이 주저앉아 교회는 종말을 고할 수박에 없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현대 교회는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느끼도록 돕는 걸 목표로 삼기도 한다. 현대 교회는 영을 위한 가짜 약을 제공하면서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심리 상담, 자긍심 고취, 오락 등 여러 가지 유희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해야만 인생의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야고보서 4장8절 하나님께 가까이 가라. 그러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 너희 죄인들아, 너희 손을 정결하게 하라. 두 생각을 품은 자들아, 너희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지은 죄가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를 겸손히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그분을 높여야 한다. 인간 중심의 교회를 세우고자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 삶과 예배의 중심이 되셔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진리 가운데 타협할 수 없는 두 번째 진리는 성경의 절대 권위다. 성경은 늘 공격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심하게 훼손하는 공격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믿지만 그 가르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성경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믿지만 그 가르침을 한 구절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해할 수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일까?   마태복음 4장4절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우리의 양식이라면, 우리는 모든 말씀을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설교는 이 점을 등한시할 때가 많다.   교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세 번째 요소는 건전한 교리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그분께 헌신할 생각이라면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요즘에는 교리를 잘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부드러운 설교, 즉 재미도 있으면서 듣기에도 편한 설교를 전하기 좋아한다. 알맹이 없는 설교가 주를 이루다 보니 교리를 가르치거나 논하는 설교는 좀처럼 듣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굳게 붙잡을 수 있는 진리가 필요하다. 성도에게는 삶을 구축할 수 있는 굳건한 교리적 토대가 필요하다.   교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순결한 신앙 인격이 있다. 우리는 좀 더 순결한 신앙 인격을 갖추고 고결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순결한 삶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는 바울의 권고처럼 도덕적 기준을 강화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교회에서 권징을 실시하는 이유다.   순결한 신앙 인격에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건만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너무나도 많다. 얼마나 순결한 삶을 살고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양다리를 걸친 상태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그분의 사역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교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는 영적 권위다. 성경은 주님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는 이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한다. 그들이 우리의 영혼을 보살피는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들을 본받아라. 히브리서 13장17절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회계 보고 해야 할 자들인 것같이 너희 혼을 위해 깨어 있나니 그들이 기쁨으로 그 일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려면 올바른 골격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교회의 목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오직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주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아울러 모든 그리스도인은 순결한 신앙 인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주님이 영적 권위를 부여하신 이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2장 교회의 장기   교회의 골격은 절대 변하지 않는 근본 진리로 구성된다. 근본 진리는 교회 사역의 뼈대로써 육체의 뼈처럼 굽힘이 없이 단단해야 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육체와 마찬가지로 교회 또한 골격만으로 살 수 없다. 육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려면 각종 장기와 혈액이 필요하다. 장기란 영적 태도를 뜻하며, 교회의 생명은 내적 체계에서 비롯한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목표는 성도들이 올바른 영적 태도를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저 지시만 해서는 안 된다. 영적 태도를 고취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선한 행동은 선한 마음에서 비롯해야 한다. 올바른 반응을 이끌어 내려면 먼저 사람들의 영적 태도부터 고취해야 한다. 교회가 영적으로 올바르게 선다면 사람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성령님이 명하시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면 더불어 교회 구조가 저절로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온 성도가 자연스레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성도 개개인이 지닌 영적 태도는 교회 사역을 추진하는 힘이다. 성도들에게 피상적, 율법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자칫 율법적인 행위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습성을 키워 주기 쉽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순종 순종은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순종은 다른 모든 영적 덕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체나 다름없다.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한 번 명령하시면 더 이상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순종이 율법적인 예배 행위보다 더 낫다.   순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해 준다.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   겸손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두 번째 태도다. 겸손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경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귀한 존재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아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 이유다.   겸손한 사람만이 참사랑을 베풀 수 있다. 참사랑은 대상에 의해 좌우되는 속되고 거짓된 사랑과는 다르다. 속된 사랑은 한갓 감정에 불과해 감정이 사라지면 관계도 끝난다. 그런 사랑은 단지 받으려고만 들고 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사랑 성경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의 행위다. 성경의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실천이다. 사랑은 겸손한 마음에서 비롯하는 섬김의 행위다. 성경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준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줄 때는 즉각적이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사랑은 겸손한 마음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행동이다. 사랑은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기쁨과 위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화합 화합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탄은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늘 기회를 엿본다. 교회의 화합은 하나님과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 그래서 사탄이 끊임없이 교회 분열을 책동하려 드는 것이다. 성도들의 겸손과 사랑은 분열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늘 사소한 문재로 서로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우리는 늘 함께 무릎을 꿇고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섬김 교회가 크면 섬김의 사역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역을 행하는 동안 한쪽으로 물러서서 편안히 신앙생활을 즐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시면서 능력을 베푸시는 이유다. 섬기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서로 똑같은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각자가 영적선물을 받은 대로 섬겨야 할 이유다. 하나님은 우리가 관망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섬김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신 영적선물을 계발해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열심히 섬김에 임해야 한다.   기쁨, 평화, 감사, 절제, 절제와 영적 전투, 책임감, 용서, 전적 의존, 유연한 태도, 성장 욕구 갓난아이가 젖을 갈망하듯이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성장은 지식을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사귐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수록 그분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진다. 거룩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충성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단거리 주자와 같다. 그들은 섬김에 동참해 잠시 열심을 내다가 곧 은퇴자처럼 뒷전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라톤 주자와 같은 그리스도인, 곧 오래오래 충실하게 일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을 원하신다. 나이 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슬프다. 나이가 들어서도 충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충실한 그리스도인은 항상 예배와 섬김과 기도를 삶의 최우선순위로 삼는다.   소망 소망은 참으로 위대한 단어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말은 안전한 미래를 뜻한다. 소망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곧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영원한 것을 희망하라.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을 위해 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앞에 영광스런 미래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자.            
2023-09-08 22:40:46 |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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