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09일 (금요일 저녁)
https://youtube.com/live/5lShDqby8rE
2023-06-11 10:56:51 | 관리자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 ^^
2023-06-10 18:38:39 | 최영오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 ^^
2023-06-10 18:38:02 | 최영오
기도의 힘은 특별합니다.
위급한 순간에 합심하여 하는 기도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그러나 기도는 특별하고 거창하게 격식을 갖추어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제 경우는 일상속에서 주님과 대화하듯 기도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니까요.
간절히하는 기도는 일상적인 기도와는 다르더군요.
기도라는 말은 한 단어지만 때마다 다르게 되는 것은 저만 그런지~
2023-06-09 16:29:10 | 이수영
새로운 주제로 자매모임을 하였네요^^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023-06-09 15:53:49 | 김세라
2023년 6월 8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
오늘은 “ 팀 켈러의 기도 ” 책을 가지고 교제를 나누는 첫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중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또한 삶에 적용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15절
그러므로 어찌해야 하겠느냐?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한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한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
제 1장 바른 기도를 꿈꾸다.
- 명상센터를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
한 세대 전에 일어난 영성과 명상, 관상 등에 대한 관심이 아직까지도 서구 사회 전반에 걸쳐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비틀즈가 동양의 명상에 눈길을 주면서 순식간에 대중화의 물꼬가 트인 뒤로 제도 종교의 쇠락과 맞물려 꾸준히 확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정기적인 예배의 통상적인 절차를 아는 이들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영적인 갈망은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존재한다.
교회 역시 기도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져 왔으며, 묵상이니 관상이니 하는 옛 전례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움직임이 일었다. 온갖 ‘영성 훈련’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기관과 조직, 네트워크, 전문가들이 곳곳에 차고 넘친다.
- 기도는 세상을 거스른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7-18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받은 영적인 복을 이해하고 경건한 지식과 통찰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바울이 쓴 글을 다 살펴봐도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환경과 처지를 바꿔 달라고 호소하는 대목이 들어 있지 않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살고 있었다.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바울의 기도들에서는 좀 괜찮은 황제를 만나게 해 달라거나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는 병사들에게서 지켜 달라는 건 물론이고 다음 끼니를 책임져 달라는 간구조차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요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기도 제목 리스트에 올려놓고 요청했음직한 온갖 유익한 조건들을 구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얻어야 할 결정적인 응답은 환경의 변화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실재를 강렬하게 감지하지 못한다면 좋은 환경은 지나친 자신감과 영적인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심 ‘요긴한 게 다 수중에 있는데 굳이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밝아진 마음‘이 없으면 좌절과 낙담에 빠질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땅히 그래야 하듯 한없는 위안을 주는 게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삶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더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외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두면 내면생활은 어둡고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혼자라는 생각에 무얼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기 검열을 거듭할수록 심기가 불편해지고 급기야는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서 반성이니 성찰이니 하는 게 도무지 불가능한 형국에 이를 것이다. 거기서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진실성이 삶에서 완전히 실종될 수도 있다. 속에는 자기 회의와 걱정, 자기 연민, 해묵은 원한 등이 그득해도 겉으로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영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건강하고 온전한 듯 행세한다. 하지만 어떻게 마음속의 여러 방들에 들어가 무엇이 들어찼는지 확인하고 처리할 방도를 가늠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서, 내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한, 백이면 백 위선에 빠지고 만다.
참다운 자신을 찾으려면 지켜보는 눈길이 전혀 없을 때, 이러저러한 상념에 잠기도록 몰아가는 압박 요인이 전혀 없는 순간에 무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살피라. 생각이 하나님을 향해 흘러가는가? 잘난 체하지 않는 겸손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가? 솔선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내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말이 개인주의적이거나 이기주의적인 생활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더 잘 알아 가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해야 하고 개인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공동 예배에도 참석해야 하고, 고요히 묵상하는 동시에 성경을 공부하기도 해야 한다.
- 기도를 알려거든 성경을 펼쳐라.
성경은 시종일관 하나님을 말한다. 기도와 관련한 이야기가 갈피갈피 골고루 스며들어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기도가 위대한 것은 곧 인간의 삶 가운데 미치는 하나님의 손길과 영광이 크고 넓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성경은 일관되게 이 진리를 증언하는 길고 긴 간증이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바치며 장대한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그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대목이다. 구약성경 욥기는 주로 욥이라는 인물이 엄청난 고통 속에서 기도로 나가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기도로 백성들을 고쳤으며,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성전이 변질되고 타락했음을 통렬히 비판했다.
기도는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성경 어디를 펴든 금방 찾아볼 수 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계신 자리마다 어김없이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어디나 계시고 한없이 크신 분이므로 기도 역시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
- 기도라는 위대한 길에 들어서 보라
기도는 ‘인간을 처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숨결’이다. 기도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기도는 인간이 갈구하는 영혼의 깊은 안식이다. 기도는 힘과 생명력의 유일한 근원인 ‘영혼의 피’다. 예수님의 이름에 기대어 기도하고 그분이 베푸시는 구원을 믿고 기도하면, 영적으로 임금님 앞에 서기에 합당한 예복을 ‘잘 차려입은 인물이 된다’
평생 동안 가야 할 기도의 험한 여정을 막 시작하는 이들은 너나없이 자신이 실체를 가늠하지 못한다.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저마다의 실상과 마주한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는 스스로의 참모습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기도는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의 참다운 됨됨이를 공부하고 그분께 스스로의 진수를 드리는 행위이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 가는 일이란 얘기다.
성경에는 탄식과 간구, 애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기도는 세상의 악한 현실을 거스르는 일종의 반역이므로 성경에는 숱한 탄식과 간구, 애원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헛된 몸짓이 아니다.
오만한 심령은 성을 공략하는 병기로서 기도가 갖는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예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마음 이야말로 죄를 면할 유일한 피난처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용서와 의로움에 기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 그분 앞에 서지 못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과 연합하게 한다.
기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요, 친밀감이며, 고단한 씨름이지만 본질에 맞닿는 길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하거나, 힘겹거나, 풍요하거나, 삶을 바꿔 놓을 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 기도만큼 위대한 일은 결단코 없다.
2023-06-09 08:19:14 | 이은정
2023년 6월 4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rKMc7Jk0_j4
2023-06-07 22:08:35 | 관리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받은 것이 가장 큰 복이지요. 대복.
그의 됨됨이를 외국 선장인 맥스웰 함장도 알아본 것이 아닐지요?
2023-06-07 15:46:48 | 이수영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가정의 기쁨
교회의 기쁨
이시대는
나라의 기쁨이기도 하네요~^^
2023-06-07 11:22:58 | 최지나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 이 나라에 말씀이 전해지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교회를 섬기며
귀한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대복(큰 복^^)임을 고백합니다.^^
2023-06-07 08:51:35 | 김세라
2023년 6월 4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o4drGXuhFy0
2023-06-06 21:48:27 | 관리자
2023-06-06 19:45:24 | 오광일
좋은 자료 올려주심에 정말 감사 드립니다
조금이라도 널리 알려지도록 하겠습니다. ^^
2023-06-06 09:36:01 | 최영오
바이블빌리버로서의 자부심을 새삼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
2023-06-06 03:09:52 | 최영오
와~!
대단한 자료로군요 ^^ 감사! ^^
2023-06-06 03:07:14 | 최영오
대~단한 자료!
감사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자~~~알 쓰겠습니다 ~ ^^
2023-06-06 03:05:53 | 최영오
엄청 수고하셨을 것 같은데...
참으로 귀한 자료 만들어 올려주심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
2023-06-06 03:03:22 | 최영오
성경을 많이 읽고 정확히 알아야 한다...!
참으로 좋은 말씀으로 가슴에 새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 ^^
2023-06-06 02:59:26 | 최영오
민토 피라미드 기법 활용한 대화
좋은 정보 자~알 보고 갑니다 ~ ^^
2023-06-06 02:55:05 | 최영오
우리 교회 성도 분들 블로그 글들을 가끔 읽어보곤 합니다. 이 글은 그런 글들 읽어보던 중 경험한 어떤 특별한 경우에 관한 것입니다.
그 글은 지난 달 있었던 마량진 성경전래지 기념관 답사에 관한 후기성 글이었습니다. ( 참고 : https://blog.naver.com/huiyaa02)
글을 훑어 내려가던 제 시선이 어느 한 곳에서 딱 멈춰 서더군요. ‘영국 함선 알세트호의 선장 맥스웰 함장으로부터 우리나라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 곧 킹제임스 성경이 전해졌어요’ 라는 대목, 그 중에서도 특별히...조대복, 대복, 그 이름에 시선이 꽂혀 버리더군요. 그리고는 짜릿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전율에 가까운 그런 느낌 간직한 채 일단 다음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그 느낌, 그 격한 감동의 실체를 가리키는 표현이 바로 나오지 뭡니까. ‘망망대해를 뚫고 어떻게 미개한 조선까지 뱃머리를 놓고 올 수 있었는지...정말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믿지 않으면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죠’라는 대목 중의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정리하여 말씀 드리면, 킹제임스 성경을 전해 받았던 첨사 조대복, 대복, 그 이름에 제 시선이 꽂혀 버림과 동시에 느껴졌던 그 짜릿함의 실체인즉, ‘아! 207년 전 마량진, 그때 그곳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있었구나. 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라는 감탄, 탄복에서 비롯된 강렬한 느낌이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제...그 당시 비교적 흔한 이름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 대복, 그 두 글자를 보는 즉시 하나님 떠올리며 전율에 가까운 짜릿함 느끼게 된 경위...랄까...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간단히 말씀 드리면, 첨사 조대복, 그 이름 대복의 한자 표기는 틀림없이 大福, 큰 복이었을 것인데...거룩하신 하나님 말씀, 성경을 완전 흑암뿐인 조선 땅 우매한 백성들(대왕마마 어쩌고 포함) 대표로 받아든다는 것, 그것 이상의 대복, 큰 복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 이름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짜릿함 느껴지지 않으세요...? 저는 아직도 그 짜릿함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만. ^^
조대복 첨사(종삼품 벼슬)의 출생 및 작명 과정은 물론, 온전한 하나님 말씀, 킹제임스성경이 대륙들 돌고 도는 뱃길 거쳐 조선 땅에 전해지기까지의 전체 과정을 하나님께서는 직접 챙기고(^^) 계시지 않았을까 싶군요.
가장 멋진(^^) 성경 구절로서 가끔 혼자 되뇌곤 하는 대목 두 곳,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하셨던 말씀, 즉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이름을 주었노라”(사45:4) 그리고 “네 이름으로 너를 부르는 나, 곧 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사45:3), 그 대목들을 떠올리매 참으로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러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고레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이름 아니고서야 어찌 대복...!...이름 그대로 정확히 엄청나게 큰 복을 받을 수 있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
사람의 마음이 그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주께서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느니라 (잠16:9)...맥스웰 함장의 여정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어느 누가 감히 부인하겠습니까. ( 끝 )
2023-06-06 02:44:20 | 최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