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윗이 그런 말을 했었네요.. 끊임없이 형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네요. 주님이 현재 저를 있게하신 그 위치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힘을 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2014-04-01 15:41:27 | 이정희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지겠지만, 그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에 둥지를 트는것은 분명히 당신의 책임이다.
아주 좋은 글이네요.
샬롬
패스터
2014-04-01 10:39:11 | 관리자
아멘!
2014-04-01 09:19:48 | 이수영
의롭게 살아라.
구원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성도답게 살 것을 가르치신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고결하게, 주변사람들에 대해서는 의롭게, 그리고 하나님아버지께 대해서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선하게 살지 않으면서 자신이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런 기독교 신자가 너무 많다. 잘못된 길, 더러운 길, 불의한 길을 걸으면서도 성령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그런데 내가 '거룩하지 못한' 길을 걷는다면, 어떻게 그 분께서 그 길에 함께 하실 수 있겠는가?
당신의 생각은 당신의 태도와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각을 당신의 일부로 간주하신다. 평안의 생각, 연민의 생각, 긍휼의 생각, 친절의 생각, 사랑의 생각, 하나님을 생각하는 생각, 하나님의 아들을 생각하는 생각... 이런 생각들은 순수하고 선하고 고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령님과 친해져서 가까이 지내기 원한다면, 당신의 생각을 잘 지켜야 한다. 당신 영혼의 거룩한 성소에서 온갖 탐욕의 들짐승들이 으르렁대거나, 음란한 생각의 날짐승들이 둥지를 틀어 자리 잡도록 방치하지 마라. 그것들을 허락하는 순간, 당신의 영혼의 성소는 바로 황폐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당신의 생각을 굳게 지켜라.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지겠지만, 그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에 둥지를 트는것은 분명히 당신의 책임이다.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잠4:23)
"이것이 성령님이다" A.W 토저.
2014-03-31 23:47:53 | 박진태
내가 잘못 알지는 않았는가?
"우리가 유대로 들어가자, 하시매 그 분의 제자들이 그 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최근에 유대인들이 돌로 선생님을 치려 하였는데 또 거기로 가시나이까? "(요11:7,8)
본문에서 제자들은 하필이면 어려움을 겪었던 유대로 다시 가자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그리로 가시려 하시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말씀이 틀릴리가 없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오히려 그 분께 해가 될 것 같아 보이더라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불순종이야말로 예수님께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주님의 명령이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내 생각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혹시 그 일이 주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시는 것을 막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충성하고 있습니다.
과연 제대로 주님의 뜻에 충성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그 분의 말씀만을 믿고 걸음을 내딛는 것을 의미합니다.(마14:29)
나의 생각에 대한 충성은 먼저 내 생각을 앞세워 모든 것을 따져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신뢰입니다.
당신은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걸음을 내딛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까? 그냥 기쁨으로 단순하게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때 너무 따지지 마십시오.
당신은 주님께 충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주님의 말씀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생각을 주님의 말씀에 덧붙이고 있습니까?
"그 분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2:5)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2014-03-29 19:09:28 | 박진태
좋은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3-29 11:58:34 | 관리자
어느날은 사랑까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죄에 대해 죽었다여겨지기만 해도 감사한 하루입니다. (그래도 가야지요 뭐..)
기운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4-03-29 09:57:05 | 목영주
위로의 글 고맙습니다. 세상적으로 형통하게 되더라도 지금 이순간을 기억하며 형통함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느 경우든 말씀을 놓지 않게 아이들에게도 가르치겠습니다.
2014-03-29 09:44:06 | 목영주
형제님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도 알려주시면 더 좋지요~
누구도 자기 뒤통수는 보지 못하기에 거울이 필요하지요.
거울이 보여주는것이 제모습이지만
여러가지로 왜곡으로하는것이 사람인 것같아요.
부모가 자식을, 조부모가 손자를, 남편이 아내를,자부심이, 자만심이.....
정직하게 보여주는 대로 보는 것도 지혜인것 같아요.
2014-03-29 09:02:38 | 이수영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내가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시편 30:6)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해마다 좋은 날씨 덕분에 풍년이 되고, 벌이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려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온 가족이 항상 건강하고 화목한 가운데 아무 걱정없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합시다.
누구든지 이렇게 항상 즐겁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가 설사 지금까지 살았던 성도들 중 가장 훌륭한 성도라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건방져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 훌륭한 다윗조차 형통한 삶이 계속되자,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고 어리석게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다윗보다 조금도 더 낫지 않습니다. 아니 그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존재들 아닙니까?
혹시 지금 잘 나가고 있습니까? 조심하십시요.
가는 길이 웬지 계속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합니까? 그렇다면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요. 하늘에 한 점 구름도 없이 맑은 날씨만 계속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형통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늘 행운이 따른다면 우리는 그 성공과 행복에 도취되어 목에 힘을 주면서 엄청 잘난 척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세상적으로 계속 형통하기만 하는것은 오히려 아주 무서운 시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통들에 대해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연단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둔해지면서 차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때문에 주시는 속 깊은 선물입니다.
"스펄전의 365일 묵상 중"
2014-03-28 23:21:20 | 박진태
경건서적중 읽은 내용중에 오랬동안 은혜받은 글을 올립니다.
주께서 심판하신다.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 5:10)
바울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드라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정결한 빛 가운데 살아가는 법을 안다면,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이루어주신 놀라운 일들을 기쁨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면서 항상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서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해 주님과 계산해야 되는 그 순간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거룩한 사람일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실족할 수 있습니다.
죄의 대가는 죄의 완고성입니다. 죄가 우리 속에 끈질기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필코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애를 쓰고 기도해도 계속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게 됩니다. 죄의 대가는 우리가 그 죄에 점점 더 익숙해지며 그 죄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안 될뿐더러, 차츰 그것을 죄로 여기지도 않게 됩니다.
이런 죄와 싸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단순히 죽는데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안에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 2:20)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때 그들보다 훨씬 더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빛 가운데 사는 것은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주님처럼 매순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가장 치명적인 바리새주의는 위선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입니다. 자신은 죽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2014-03-28 22:49:13 | 박진태
정말 모든게 감사인데 그것을 잊고 불평할때가 너무 많았던 제 자신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을 따라 부릅니다^^
2014-03-25 21:57:07 | 태은상
앞으로 종교영화는 계속 이런 변개와 왜곡으로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 같습니다.
영화 son of God의 속임수
이 영화는 The Bible이라는 미니시리즈 중에서
신약 예수님의 사역 부분을 편집하여 영화화 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마켓에서 이 DVD를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화 예고편에서 예수 역할을 맡은 자가 '세상을 바꾸자'라는 말을 한 것이 수상해서
이 DVD를 사서 처음 구약부분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성경 속 예수님은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고 하셨지
단 한 번도 ‘세상을 바꾸자!“ 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미니시리즈에서 구약을 통해서 보여 지는 하나님은
영화 ‘노아’에서 묘사한 이기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신처럼 보입니다.
신이 정해 놓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하여 인간은 고통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는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런 혹독한 시련을 주는 신에게
마지못해 억지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세 천사가 등장할 때는 처음 등장부분이
죽음의 사신들이 서 있는 것처럼 어둡고 음산하게 묘사됩니다.
롯을 구하러 간 천사들은 명령을 받고 수행하는 잘 훈련된 무사들처럼
칼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거의 무협지 수준입니다.
가장 눈에 거슬렸던 것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일단 구약에 나온 성경 인물들은 전부 지저분하고 우중충하며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들로 꾸며 놓았는데
특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늙고 자비심이 없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에 반해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갈은 젊고 아름답고 지성적인 여자로 등장하여 매우 대조적입니다.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질투의 눈으로 쳐다보는 얼굴이 얼마나 추하게 나오는지 모릅니다.
결국 사라의 질투 때문에 쫓겨나는 이스마엘과 하갈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매우 마음 아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원래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이므로 모든 것이 상속되어야 하는데
사라의 질투심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속을 위한 약속의 씨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켰던 모세는 약간 정신이 나간 광인처럼
몰골도 지저분하고 이상한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영화 ‘십계’에서 보여주던 모세의 모습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신비스런 능력을 부여받은 미친사람이 갑자기 등장하여
헛소리를 해서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는 모습처럼 보이게 합니다.
삼손에서도 삼손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결국 사람들을 죽이고 난 후에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었냐는 반문을 함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길 원하시고 좋아하는 잔인한 분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의 모습도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로 등장하고
모든 성경 속 인물들이 비성경적으로 묘사됩니다.
드라마 전체를 통해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게 나오는 여자는 하갈하고 젊은 나이의 동정녀 마리아입니다.
( 중년의 마리아 역을 맡은 사람은 이 미니시리즈 제작자 부인입니다.)
이 DVD를 보면서 이들이 이것을 제작한 목적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슬람 종교에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이스라엘이라는 유대민족들에게 더욱 반발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슬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는 믿음을 갖을 수 있습니다.
또한 카톨릭 쪽에서는 역시 예수 보다
어머니 마리아가 더 강하고 위대하다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예수의 모습이
마치 고난 속에서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나약한 아들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시작부터 이기적이고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예수는 마리아가 특별히 신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서
마리아 때문에 태어난 선지자와 같은 인물일 것이라고 유도하고 싶은 것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끝까지 참으시고 사랑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죄악에 대해서는 용납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전능자 하나님은
이 영화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수가 당하는 육체적 고통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하여서
영화 속에 뿌려 놓은 악한 의도들을 숨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 속에 늘 따라다니는 여자가 있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얼마나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수 년 전 베스트 셀러였던 다빈치 코드나 다른 반기독교 서적에서 말해 오던 대로
예수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심지어 그녀를 통해 예수가 낳은 자식이 있다는 거짓 생각을
은밀하게 믿게 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예수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 했다라고 보거나
아니면 그 신의 아들의 후손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믿음을 유도시켜서
나중에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유리하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올바른 성경적 분별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될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한 번 보는 건데 어떠냐고 생각하겠지만
앞으로 미래에 세계를 위기에서 구할 어떤 인물이 등장하여 ‘세상을 바꿉시다!’ 라고 외친다면
이 영화를 본 믿음이 적은 자들은 영화 속 예수의 모습과 미래의 그 어떤 인물을 동일시 할 수 있을 위험이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잘못된 영화들로 인하여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에서 섬기는 하나님은
무자비하고 세상에 심판 내리기를 좋아하는 신처럼 비춰질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기독교가 세상에서 욕을 먹는 모습이 많이 비춰지고 있는 시대에
이런 영화로 인해 잘못된 인식이 생긴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어떤 인물이 미래에 등장하여 기적적인 능력을 행하면서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우리가 신뢰할만한 신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새로운 신을 설정하여 그 신을 따르고 믿자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들이 믿고 따라야 할 신은 ‘예수 믿어야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인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나쁜 신이 아니라,
모두를 사랑하여 어떤 종교든 받아들일 수 있는 신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누구든지 예수 없이도 선하게 살면 다 구원해주는 신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통합에 반대하는 기독교는 잘못된 것이고
그들은 비난 받는 것 마땅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son of God'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영화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것인지를 분명히 살펴봐야 합니다.
결코 성경 속 예수님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셔서
주변에 영화를 본 자들에게 분별하여 바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를....
출처 : 회복교회 / 향목
http://m.cafe.daum.net/aspire7/9z5w/9522?q=%EC%98%81%ED%99%94%20son%20of%20&
2014-03-25 10:21:13 | 허광무
영화를 참 꼼꼼히 보셨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못한 분들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조목조목 분석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개봉 첫 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보다 빠른 흥행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
영화 ‘노아’의 성경 변개 즉 실제 있었던 역사에 대한 변개는 참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와 관련된 보도 영상이 있어 주소 링크를 올립니다.
*'성경 영화' 줄이어 개봉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4/2014032490337.html#none;
영상 맨 마지막 기자의 코멘트가 참 의미심장합니다.
“영화 전문가들은 노아처럼 성서 속에 친숙한 소재만 빌린 채 내용을 재창조(?)하는 경향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런 현상들로 인해 성경의 권위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더욱 해체되고 변질되어 불신자들이
구원받을 가능성을 더욱 떨어트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사탄 마귀는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염원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전도용 영화로 활용될 수 있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를 무참히 짓밟은 영화 ‘노아’같은
이런 악한 문화현상은 앞으로 더욱 자주 강하게 일어날 것이 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더욱 예리한 분별력이 갈수록 절실해 지리라 봅니다.
훌륭한 분석의 글을 올려주신 형제님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2014-03-24 23:43:44 | 김대용
좋은 분석 감사합니다.
저도 내일 저녁에 보려고 했다가 오늘 아침에 취소했습니다.
이런 사람들 도와줄 때가 아니지요.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3-24 15:16:24 | 관리자
오늘 오전에 자매님들의 카톡방에서도 이 영화에 대해 열띤 토론이 있었는데 형제님께서 잘 정리해서 올려주셨네요. TV에선가 영화 선전을 하기에 안그래도 노아의 방주에 관한 내용인지라 궁금했었는데 역시나 네요.
조금도 안보고 싶네요...
2014-03-24 14:33:42 | 이정희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 보려고 했는데 인터넷에서 평이 나빠 보지 않았습니다.
내용 정리를 참 잘해놓으셨네요. 고맙습니다.
2014-03-24 13:45:55 | 허광무
<노아>라는 영화는 카톨릭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제아무리 영화라도 성경을 바탕으로 한만큼 성경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겠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는 훨씬 더 많은 부분에서 성경을 뒤틀어 놨습니다. 의도적이지 않고는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고 판단이 되어질 정도입니다. 마귀는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super ego) 영역에 자신들의 메세지를 남기고 조정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의 메세지는 ‘사탄숭배사상’ 을 주입합니다. 보신 분들은 기억을 더듬으며 아래의 내용을 살펴보며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덧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영화: 지구가 있기 이전에 우주의 해와 별들이 먼저 있었다? (거짓)
성경: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먼저 만드시고(창1:1), 넷째 날에 낮과 밤, 계절과 날과 해, 별들을 만드셨다.(창1:14~18) (진실)
=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지구보다 우주의 별들이 먼저 나타납니다. 그 이후에 해와 지구가 만들어 지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2. 영화: 세상의 모든 생물은 진화되었다. 그리고 인간도 진화 되었다? (거짓)
성경: 모든 살아있는 창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것의 종류대로 지어졌으며(창1:23~25), 인간은 하나님께서 친히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대어 지음 받았다(창1:27). (진실)
= 영화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과정을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빠른 영상으로 그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생각해보면), 진화론을 교묘하게 주입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빠른 영상에서 처음에 바다에서 물고기 같은 것이 육지로 올라오면서 쥐, 도마뱀, 짐승(마지막에 곰 형상) 등으로 발전하면서 마침내 인간이 나타납니다. 교묘하게 진화론을 무의식에 삽입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영화: 노아의 아들들은 셈, 함, 야벳 순서이고, 방주에 오른 노아의 가족은 모두 6명이며, 노아의 가족 이외에도 다른 사람이 탔다? 그리고 야벳과 함의 아내는 없었다? (거짓)
성경: 노아의 아들들은 야벳(10:2~5), 함(10:6~20), 셈(10:21~31) 순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셈보다 야벳이 형이라는 것은 (창10:21)에 나타나 있다. (자세한 것은 https://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70을 참고) 그리고 방주에 노아의 가족은 모두 8명이 탔고, 다른 사람은 타지 않았다. 그리고 야벳과 함에게도 아내가 있었다(창6:18, 7:7, 7:13, 8:16, 8:18). (진실)
= 영화에서는 노아의 가족 중에서 셈만 아내가 있었으며, 야벳과 함은 아내가 없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게다가 두발가인이라는 사람이 몰래 방주에 올라타 동물들을 잡아먹고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진화론을 더 합리화시키려는 의도이며 처음부터 ‘노아의 홍수’ 사건은 존재하지 않은 허구라는 것을 피력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동물을 죽이면 성경은 모순이 되기 때문이지요. 또한 영화는 셈의 아내가 방주에서 쌍둥이 딸 둘을 낳아서 방주에 탑승한 사람의 인원이 총 8명이라고 만들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가 제작진들에게 성경과 다르지 않느냐고 따지고 물으면 그들은 틀림없이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영화는 허구이니 그 정도야 이해해 줘야지요. 어떻게 성경대로 다 그대로 나타낼 수가 있겠어요?” 라면서 은근살짝 능구렁이(마귀)처럼 넘어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구렁이 전략의 열매는 사람들에게 성경도 영화처럼 허구적인 소설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4. 영화: 므두셀라가 노아에게 씨앗을 주게 되는데 노아가 그 씨앗을 심자 네 개의 물줄기가 생기고 방주를 만들 나무들이 생겨났다? 또, 사람을 손가락으로 이마를 밀어 잠(기절)들게 만들고, 불임인 셈의 아내에게 임신할 수 있는 기적을 나타냈다? 또 그는 노아의 홍수로 인해서 죽임을 당했다? (거짓)
성경: 네 개의 물줄기는 아마도 에덴이 있었던 위치로 떠오르게 하는데, 그 마법과 같은 므두셀라의 능력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더군다나 므두셀라가 기적으로 사람을 기절시키고 불임을 치료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는 픽션이다. 그리고 그가 969세를 살다 죽었다는 내용이 창 5:27에 있다는 것으로 보아 홍수가 시작되기 직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므두셀라가 죽은 그해에 즉, 노아가 600세 된 해에 홍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진실)
= ‘므두셀라’ 라는 이름의 뜻은 ‘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는 창이 던져지면 전쟁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므두셀라가 죽자 인류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그 이름에 뜻을 부여해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므두셀라가 기적을 베푸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허구입니다. 영화에서 므두셀라를 마법사처럼 묘사한 것은 지금의 오순절 은사주의처럼 신비주의를 떠오르게 합니다. 즉, 이러한 내용은, “(신비주의) + (허구) = 하나님의 능력” 이라는 식을 떠오르게 하려는 미혹입니다.
5. 영화: 타락한 천사가 거인이 되었으며, 노아를 도와서 방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다? (거짓)
성경: 타락한 천사는 거인이 아니며, 그들이 사람의 딸을 아내로 취해서 아이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강력하고 명성 있는 거인이 되었고(창6:4), 그 거인들이 노아를 도와서 방주를 만들었다는 것도 허무맹랑한 거짓이며, 방주는 노아가 지었다.(창6:22, 7:5)
= 영화에서는 마치 타락한 천사들이 거인들로 변신한 것처럼 묘사되었고, 그들이 아담을 도와 인류개간을 위해서 힘써 도왔으나 인간들이 자신들을 대적했기 때문에 인간과 원수 관계가 되었다고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토리는 루시퍼의 교만이 발견됨을 헛으로 돌리려는 마귀의 전략입니다(겔28:14).
게다가 그들은 아담의 후손인 노아를 도와 방주를 함께 짓기로 결정하고 도와주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용서해주었다는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메시아가 없어도 선(善)을 행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옥은 마귀를 위해서 만들어 진 장소이며 결코 타락한 마귀와 그의 천사들은 용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계20:14).
6. 영화: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짐승들을 구원코자 노아에게 방주를 만드라고 명한 것이지, 노아의 가족(인간)을 홍수로 부터 구원코자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노아와 가족들로 끝이 나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번성하면 안 된다? (거짓)
성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의인이고, 그 세대들 가운데 완전한 자(창6:9)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창6:8에 {주}의 눈에 은혜를 입었다고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홍수 이후에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채우라(창9:1)고 명하실 만큼 하나님은 인간을 짐승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랑하고 계시며 그들을 다스리라는 임무까지 부여하셨다(창9:2). (진실)
=영화에서의 (가짜)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동물을 제외한 노아를 비롯한 그의 가족을 포함하여 인간들은 모두 악하므로 다 죽어야 한다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마치 하나님을 잔인한 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영화에서 노아는 자신이 그 (거짓)메시지를 받들어 인간들이 다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도취되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불순종에 괴로워 포도주를 먹으며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그래서 노아가 옷을 벗고 술에 취한 것으로 묘사 함). 어쩔 수 없이 양심상 하나님의 뜻을 져버릴 수밖에 없다며 노아를 아주 선한 인간이며 참 대언자인양 묘사하고 있는데, 마치 거짓 대언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을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구원받길 원하셨기 때문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기 위한(요3:16) 그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이미 죄와 유전자가 변질되어버린(창6:4) 그 세대를 물로 심판하시고 그 가운데 온전한 노아와 그 가족을 선택하여 메시아의 온전한 씨를 보존 하신 것이다.
7. 영화: 노아가 꿈으로 대홍수를 계시 받았다? (거짓)
성경: <창6:14~21>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명령한 것을 볼 수 있다.(진실)
8. 영화: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뱀의 허물을 노아에게 가보(家寶)처럼 물려줬다?(거짓)
성경: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저주를 하여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으라 했다(창3:14). (진실)
= 영화에서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선악과를 먹게 한 그 뱀의 허물을 손에 감고, 세상 사람들과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라멕이 세상 사람들의 손에 죽게 됩니다. 이 또한 성경과 다르지만 문제가 되는 장면은, 영화 마지막에서 홍수심판 이후에 노아가 뱀의 허물을 되찾아 팔에 감고서 자신의 아들들에게 “번성하라”라며 말을 건냅니다. 이는 사탄의 상징인 뱀을 숭배하며 땅을 채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모든 인간을 죽여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놓고는, 마지막에는 번성하라며 하나님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하고 모순되게 만들어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하나님이 인간의 양심보다 못한 신이며, 그렇기 때문에 말씀보다 인간의 양심이 우선이라며, 인본주의 사상을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되는(떠오르는) 것들을 중심으로 성경과 비교해가며 서술해보았습니다. 이 시대에 사탄은 사람들에게 영화나 소설, 음악과 같은 미디어매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픽션에 불과한 모순덩어리라며 세상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세상의 풍토에 떠밀려 미혹되지 않도록 더 깨어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고, 진리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사랑침례교인이 되시길 소망해봅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롬3:4>
2014-03-24 12:34:17 | 김상진
주의 뜰에서의 한 날이 천 날보다 나으니이다.내가 사악함의 장막들에 거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되겠사오니--시84:10
2014-03-21 15:09:20 | 이종희
지나간 시절에 대해 따스한 미소로 회상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게 쉬운일이 아닌데 열심히 글을 써서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2014-03-21 14:14:16 |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