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자매님~
자녀들도 바른 진리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21-10-12 15:48:48 | 이명석
환영합니다. 자녀들도 잘 적응하면 좋겠어요~
정말 애국자시네요~
2021-10-12 11:23:24 | 이수영
맞아요~! 어떤 때는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게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참 그걸 알면서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또 그게 잘 안돼요.
2021-10-12 09:57:58 | 이남규
애국자 집안이 오셨네요~!
환영합니다.
사랑침례교회를 통해 즐거운 신앙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2021-10-12 09:52:45 | 이남규
대가족이네요.
많이 많이 환영하고
네명의 아이들이 잘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2021-10-12 09:47:23 | 김영익
양세화 자매님!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2021-10-12 07:08:28 | 이규환
먼곳에서 자녀분들과 함께 오시는군요.
아이들이 너무 이쁘고 귀여워요. 오랫만에 올라오는 새가족 사진이라 더 반갑네요.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어 기쁘고 환영합니다.
2021-10-11 23:27:58 | 김혜순
여주에서 오시는
양세화 자매님
따님 첫째 박필리, 아드님 둘째 박필호,
아드님 셋째 박필수, 아드님 넷째 박필민
환영합니다 :)
2021-10-11 16:09:03 | 관리자
요즘은 세상이 악해선지 사람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에요.
정상적인 사고가 통하지 않고요...
2021-10-11 11:12:59 | 이수영
네^^감사합니다~
2021-10-11 11:07:20 | 이수영
우와! 대단하십니다.공부하신 내용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10-11 10:35:36 | 이규환
성경읽기 퀴즈 정답 10월 1주(10월 4일~10월 10일) 마가복음, 갈라디아서안녕하세요? 10월 1주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본문 : 마가복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오직 새 포도즙은 반드시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느니라.(막2:22)”라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오셔서 주시는 새것들(새 명령과 성령님)은 유대교가 아닌 새로운 시스템(=기독교)으로 수용해야 한다.
2. 막8:15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사두개인들)의 누룩은 무엇을 나타내는가?(마태복음16장 참조)
거짓 교리(마태복음16:12)
3. 괄호 채우기(막10:45)
사람의 [아들]은 ( )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 )을 많은 사람의 ( )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섬김, 생명, 대속물
4. “카이사르의 것들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바치라.(막12:17)”는 예수님의 말씀은 신약시대에는 정치와 종교가 어떻게 바뀌었음을 나타내는가?
정교일치(유대교)에서 정교분리(기독교)로
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의 휘장’이 어떻게 되었는가?(15장)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짐(막15:38) -- 이제부터 누구라도 직접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에 나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본문 : 갈라디아서
6. 갈1:6에서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3장 참조)
믿음+행위(율법준수)로 구원받는 것(갈3:1~6)
7.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본보기로 제시된 구약의 인물은?(3장)
아브라함(갈3:6)
8. 율법이 주어진 목적은 무엇인가?(3장)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범법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드러내려고(갈3:19,22)
9.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가?(4장)
아바(=아빠) 또는 아버지(갈4:6)
10. 괄호 채우기(갈5:1)
그리스도께서 ( )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그 ( ) 안에 굳게 서고 다시 ( )에 얽매이지 말라.
자유, 자유, 속박의 멍에
2021-10-11 10:32:45 | 관리자
옳은 소리를 듣는데, 왜 기분이 나쁠까?
옳은 말, 바른 말을 해 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됐고, 너나 잘 하세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왜 그럴까? 아래 3구절은 모두 징계에 관한 내용이다. 3구절 중,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기분 나쁜 구절은 어느 것일까?
⓵‘보라,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사람은 행복하니 그러므로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욥기 5장 17절)
⓶‘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고 그분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것에 싫증을 내지 말라. 주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바로잡아 주시되 마치 아버지가 자기가 기뻐하는 아들을 바로잡아 주는 것같이 하시느니라.’(잠언 3장 11절~12절)
⓷‘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대우하듯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가 무슨 아들이냐? 모두가 징계 받는데 참여하므로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는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2장 7절~8절)
정답은 ⓵번이다.
⓵번 구절은, 욥기 5장에서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가 욥에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를 촉구하면서 한 말이다. 엘리바스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욥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염장을 지르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욥은 열 명의 자녀들을 잃었고, 모든 재산을 잃었고, 지금 현재는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심한 종기가 나서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내 생명을 거두어 가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욥에게, 또 욥과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까?
A라는 의사가 한 암환자에게 수술을 받으라고 권했는데, “이대로 죽겠다.”며 수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B의사가 뭐라고 했더니 암수술을 받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A의사가 B의사에게 물어봤다.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수술을 받지 않으면 자식들이 고생합니다.” 라고 하니 수술에 응했다는 것이다. 대화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했을 때 추스르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 다르다. 특히 감정을 수습하는데 걸리는 시간들이 다르다. 천차만별이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털어 버려라, 예수 믿는 사람이 그 모양이니?” 라고 하면 인간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다. 안 다고 섣불리 얘기 했다가 그게 그 사람한테는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지금 상태나 상황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좋은 얘기를 했는데도 마음이 상할 수도 있고, 심지어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엘리바스의 말을 들은 욥은 “내 고통을 철저히 달아 보고 내 재난을 저울 위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각자의 고통은 비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암환자가 감기환자에게 고통은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감기환자가 암환자에게 고통은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상대방의 기쁨과 슬픔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로마서를 참고하면 좋겠다. 상황에도 맞지 않는 백 마디 말보다는 그냥 함께 기뻐하고, 그냥 함께 슬퍼하라고 한다. 욥의 세 친구들도 처음에 일주일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슬픔을 같이 했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로마서 12장 15절)
2021-10-11 10:28:15 | 이규환
샬롬
최근에 창3:5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함께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어 글을 씁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믿음의 차이가
생기고 예정설에 대한 입장까지 달라지게 될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추후에는 예정설까지 어떻게 연계가 되는지를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이번주 금요모임부터 칼빈주의에 대해서 목사님께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연관해서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Q. 창세기 3:5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이 말씀의 바른 해석은 무엇입니까?
1
먼저, 이 구절을 흠정역과 현대역본으로 비교해서 보겠습니다.
[KJV흠정역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KJV 창3:5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개역한글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공동번역 창3:5] 그 나무 열매를 따 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표준새번역 창3:5]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NIV,RSV 창3:5] "For God knows that when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현대역본은 이 구절을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번역이 이렇게 되어있다 보니, 이 구절을 근거로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에 인류에게 죄가 세상에 들어 왔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왜 두셨냐?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인간은 하나님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 하나님이 선악과를 두셨으며, 그것을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를 확인하는 표시로 매개체로 활용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심지어 영지주의 계열에서는 에덴동산의 뱀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수 있다는 각성을 일으켜준 진정한 하나님의 사도라고 해석할 정도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 모두가 현대 역본의 번역의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2
동일한 구절을 KJB흠정역에서는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ye shall be as gods)...”라고 번역했습니다.
자! 그럼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신들(gods)”의 성경적 용례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욥1:6, 욥38:7)이라 불리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된(created) 자들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낳으신(begotten) 분입니다. 즉, 창조물인 천사들을 신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②[시82:1] 하나님께서 강한 자들의 회중 안에서 서시며 신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는도다. (he judgeth among the gods.)
[요10:34] 너희 율법에 ,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하였노라...(Ye are gods?)
이런 구절에 언급된 “신들”은 이스라엘의 레위 계열의 재판관들을 말합니다( 출4:16, 출22:28)
③ [시86:8, 시97:7]에서 나오는 “신들”은 신이라 불리는 거짓된 우상들을 뜻합니다.
④ 노아의 시대에 치리자와 재판관이 되었던 “하나님의 아들들”(창6:4)(즉 처음 지위를 버리고 타락한 천사들)도 있습니다.
⑤ [요1:1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영적 지위를 얻게 되어, 부활때에 우리 몸이 그리스도처럼 변화되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입으신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엡1:18-20, 요일3:1-3) 다시 말해 성도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3
이렇게 “신들”과 관련된 성경 용례중에 창3:5에 나오는 “신들”의 의미는 우상, 거짓 신들, 이스라엘 레위계열의 재판관, 타락한 천사들이 아닌 문맥상 천사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게 타당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천사에 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별히 [히2:9]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 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는 구절이 있고, 예수님께서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다(히2:16)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볼수 있는건 인간의 몸은 천사보다 여러 가지 능력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고 특별히 천사는 무한한 생명을 지닌 존재이지만,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점입니다.
이런 배경지식을 갖고, 뱀이 하와를 유혹했던 상황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된다”는 뱀의 말이 하와의 마음속에서 ‘선악과를 먹으면 천사들처럼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될수 있겠구나.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품게 했을 것이고, 이제 뱀에 말에 속아(딤전2:14) 선악과를 먹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하와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발휘해 불순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준 명령(창2:17)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이 한 가지였고 그들은 그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창3:11, 17).
"...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창 3:11)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는 그것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하고 말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창3:17).
다시말해 첫 사람의 죄는 현대역본에 번역된 것처럼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교만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발휘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롬5:19] 한 사람(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
4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악과에 대한 선택의 여지 없이 다시말해 자유의지가 없는 존재로 창조해 버리셨다면, 인간은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자유 의지를 발휘해 하나님을 향한 사랑, 두려움, 신뢰를 보이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의 매개체로 선악과를 두셨으나, ‘선악과를 먹게 되면 신들과(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난 점이 많은 천사들) 같이 될 것이다’는 뱀의 거짓말에 속아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범죄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첫 사람 아담이 자유의지를 발휘해 범죄의 길을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자유의지를 발휘해 하나님의 긍휼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나오는 길을 여전히 열어 두셨습니다. (요3:16)
[창3:5] 구절을 공부하면서 이런 부분들까지 같이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샬롬
2021-10-09 10:55:08 | 오광일
2021년 9월 19일 (주일오후)
https://youtu.be/x09rzM3jO_w
2021-10-05 20:46:24 | 관리자
2021년 10월 3일 (주일오전)
https://youtu.be/pO5055TKf6o
2021-10-04 21:50:07 | 관리자
안녕하세요?
경기도 양주에서 출석하시는 정병우 형제님 어머님(故 변영순 80세)께서 오늘(2021년 10월 4일) 오전에 소천하셨습니다.
■모바일부고장■
http://f123.kr/RRI6426FFKSM
° 빈소 : 경기도 의정부시 을지대 병원 장례식장 7호실
° 위치 : 경기 의정부시 동일로 712
° 발인 : 2021. 10. 06(수)
° 장지 : 서울시립승화원
상주 : 정병우
부의금계좌 : 우리은행 1002051456408
우리 교회에서는 애경사 위원장과 지역 인도자 그리고 몇몇 성도님들이 오늘(10월 4일) 저녁 7-8시경에 조문할 예정입니다.
성도님들께서도 기억해두셨다가 위로의 마음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을 당한 가정에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안을 기원하며 로마서 12장 10, 15절 말씀을 드립니다.
(롬12: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롬12:15)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
샬롬
애경사 위원회 강재구 형제(010-3730-6547)
2021-10-04 15:58:13 | 관리자
감사드려요^^
2021-10-04 13:33:54 | 이수영
나는 가끔 우리가 한 가족을 이룬 이 땅 위에서 부모 자식 아내 남편으로 살아가다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살아갈 때 그 때는 그 관계성이 형제자매의 한 세대로 국한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시공을 초월한 모든 그리스도들이 한 형제지매의 관계를 가진 한 세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씀을 기억할 때면 "연극"을 떠올리게 된다. 연극에는 한 극작가가 있고 그 연극을 연출하는 감독이 있고 무대가 있고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
우리 인생이 연극과 비슷하다고 할 때 우리 인생이라는 큰 줄거리를 세우고 세상이라는 삶의 무대를 마련하고 연출해 내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세상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어떤 의미에서 배우인 우리의 삶이 있다.
보통 연극에서 우리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접하고 거거서 각자 맡은 역할을 열연하는 배우를 보게 된다.슬픈 스토리도 있고 기쁜 스토리도 있으며 치열한 대립구도 속에서 긴박감을 더해주는 연기도 보게 된다. 하지만 한 편의 연극이 끝나면 거기 출연했던 배우들은 극 중의 관계성으로부터는 완전히 자유하다. 더 이상 극 중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남편이 아니다.
남아 있다면 그 연극을 하며 가졌던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면서 회상하는 특별한 유대관계를 가질 것이다. 그 관계성의 공유는 그 연극을 함께했던 배우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극작가가 되신 우리의 현실적인 삶의 연극에 있어서 말 그대로의 연극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배우들 각자가 누리는 스토리텔링의 자유가 아닌가 한다. 연극에서 배우는 자기의 말로 연기할 수 없다. 오직 작가가 써 준대로 외어서 해야만 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펼쳐놓으신 연극의 장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배우가 스토리텔러다. 완전 자유로운 배우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제 일이 생각난다.오랜만에 네 친구가 만났다. 모처럼 느긋하게 담소를 즐기면서 각자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특히 치매를 앓고 계시는 아버지를 돌보는 친구가 안하무인격으로 자녀를 막 대하는 아버지가 너무 싫다고, 아버지 때문에 왜 자기가 이 나이에까지 자기가 누려야 할 행복을 빼앗겨야 하느냐고 탄식조로 토로했다. 그 친구의 어릴 적 삶을 들어 익히 아는 우리로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왜 우리가 부모에게 무조건 효도해야 하느냐, 그건 마땅히 해야 하는 게 아니다.부모다운 부모가 아니라면 냉담하게 대한다 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뭐 우리나라가 성리학사상에 너무 쩔어 있어 그렇다 저렇다 하면서 논리를 댔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법"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 아 이래서 하나님 말씀이 중요하구나!"를 실감했다.
사실 두 친구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어머니들을 잘 모셨기에 처음에는 그 상황만 생각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만일 삶의 어려움만 따지면서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무시하고 각자 좋을 대로 판단하고 행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하니 그건 바로 무법천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요 오늘날 빈번한 패륜의 죄들이 아무 죄책감 없이 벌어질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하나님의 보상"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하늘에 쌓아두실 보상을 믿지 못하고 이 땅에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탓이 아닐까?
결국 우리 인생은 이렇게 마련해 주신 연극의 장인 이 세상에서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 다시 말해 어떤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가야 할지 늘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우리는 이 하루 또 어떤 스토리텔링을 만들며 살게 될까?
2021-10-04 12:49:23 | 박혜영
안녕하세요?
교회를 다니면 개인 기도나 대표 기도를 하게 됩니다.
대표 기도는 예배를 드리는 전쳬 회중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생각하고 준비해서 해야 합니다.
대표 기도를 잘못하면 모두에게 폐를 끼칠 수 있으므로 대표 기도를 맡으신 분은 다음 영상을 보면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대표 기도 바로 하기>
https://youtu.be/A5bEyQjvHg8
1. 대표 기도에 들어갈 내용: 하나님 찬양(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아들 예수님, 지난 1주 동안의 은혜), 교회와 민족의 필요 간구, 병든 자, 선교, 예배 시종 주관 간구, 총 5-6분 정도
2. 아버지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끝난다.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3. 공중기도를 바르게 하기 위해 지양해야 할 것들
A. 기도 서두에 ‘할렐루야’를 넣거나 성경구절 암송을 하는 것
B. 기도 첫 머리에 교훈이 될 만한 성경 구절을 낭송하고 기도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다분히 성도를 의식한 기도요,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망각한 처사이다.
C. 기도의 형태를 빌려서 남을 가르치려는 기도: 자기 잘못을 회개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를 빌려서 남을 가르치려 하는 것
D. 심지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임에도 마치 설교하듯이 하는 기도, 자기의 성경 지식을 성도에게 과시하려는 듯한 기도도 있다.
E. 자기 과시를 위한 기도: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드리는 상투적 기도, 자신의 죄와 유한한 상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회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로 철학적으로 드리는 기도
4.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 신문 기사, 데이터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말고 30초 정도만 간단히 아뢴다. 신문 기사를 읽듯이 길게 나열하면 마치 하나님이 그것들을 모르는 분처럼 인식되고 성도들도 TV 뉴스를 보는 것처럼 된다. 또한 이 부분을 기도 맨 앞에 넣으면 안 된다. 우리의 간구 부분에 간략하게 넣어야 한다.
2021-10-04 11:43:3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