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엡! 알겠습니다...^!^
2012-03-06 18:45:06 | 최현욱
이크~ 제가 치명적인 오류가 될 소지가 있다고 느낀 부분은 위에도 적었듯이 “바른 지식과 바른 명철을 가진 자는 반드시 지혜로운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형제님의 댓글의 말씀처럼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 명철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판단"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지혜로운 자로 이끌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반드시'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될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이어지는 형제님의 결론, “바른 지식이 들어오고, 바른 명철을 갖게 되며,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까지 되었으면 합니다.” 에서 바로 나타납니다. 제가 저의 글에서 설명하였듯이, 바른 지식, 바른 명철, 그 다음에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의 순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형제님이 사용하신 '그래서'라는 단어가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인과관계를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앞의 요소들이 뒤의 요소를 만들지 않는 상황에서 그 단어를 쓰게 되면 잘못된 치명적인 오류를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님은 또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인격적으로 드러난 삶으로 보았기에.."라고 댓글에서 부연 설명 하셨는데, 본문에서 밝힌 “지식과 명철이 전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을 때 지혜롭지 못하게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와 같이 생각해 보면, 결국 지식과 명철 이 두가지가 전인격적으로 다루어 지는 것을 "지혜"와 동일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글에 자세히 밝혔듯이 "지혜"는 지식과 명철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질문하셨기에 조금 자세히 설명 드렸습니다. 제가 새로이 올린 글에 인용한 잠언의 본문들을 하나씩 직접 찾아 가시면서 따라가 주시면 제가 말씀 드리려는 논지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구분해 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꼭 저의 글 말미에 달린 [보충설명]을 읽고 깊이 상고해 주시기 부탁 드립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저는 형제님의 글의 논리성을 문제 삼는 것이지, 형제님 글에 나타난 의도와 순수한 결론의 깨끗함에 늘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3-06 18:42:00 | 김정훈
이런 이런..!! 지금 기억이 날듯 말듯..ㅠㅠ 죄송하지만, 다음 주에 교회에 가면 꼭 저를 만나서 인사 나눌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2-03-06 18:25:30 | 김정훈
몇 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완전한 지식, 완전한 명철, 완전한 지혜를 가지신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구요, 저의 경우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 명철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판단,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인격적으로 드러난 삶으로 보았기에 순서를 정해서 균형된 삶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예수님안에서 여러 케이스의 적용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2012-03-06 18:20:51 | 조양교
형제님, 이렇게 이해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저는 형제님의 글 안에 내포된 논리성을 문제 삼은 것이지, 형제님이 글을 쓴 의도나 목적이나 결론의 순수성에 대하여는 너무도 께끗하고 유익한 글이라는데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저의 부족한 지적을 너그러이 받아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위에 오혜미 사모님의 댓글에 달린 저의 대답을 꼭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2012-03-06 18:17:51 | 김정훈
아, 저는 아직 등록된 회원이 아니라 사진이 없습니다. 이제 수습? 3개월 보내고 어디에 쉽게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서 이렇게 용기내서 홈피 공간에 들어 왔습니다.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김정훈 형제님과는 2주전에 교회에서 식사 같이 한적은 있습니다. 계속 좋은 말씀 부탁 드립니다.
2012-03-06 18:17:09 | 최현욱
^^ 그런데 형제님 사진이 교회 홈피를 아무리 뒤져 봐도 안보이네요~ 교회서 뵈면 먼저 인사라도 해야 할텐데..
2012-03-06 18:05:53 | 김정훈
하늘 나라로 향하는 울 사랑침례교회 행복 열차는 오늘도 목사님과 조양교형제님 김정훈형제님 등의 순전한 연료의 충전으로 잘 달리고 있네요. 물론 기관사는 우리를 끝까지 놓지 않으실 예수님 이고요..감사합니다
2012-03-06 18:03:54 | 최현욱
감사합니다, 형제님. 위에 오혜미 사모님의 댓글에 달린 저의 덧글을 꼭 읽어 봐 주십시오.
2012-03-06 18:00:32 | 김정훈
지식, 명철, 지혜는 일정의 공유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분명히 다른 각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인격체로 묘사되고 있는 부분으로 보아서는 동일한 분 곧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예수님오시기 1000년전에 기록된 글이므로 쉽게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 필요한 금이나 은보다 지혜를 구하라고 하신 것은 지혜가 곧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는 방편으로 제시된 것은 분명합니다. 세가지중 어떤 것을 앞세우느냐 하는 문제에 그리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새로운 이슈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쨋든 제 글이 불편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도는 받아들이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제가 올린 글의 내용의 촛점은 과거에 제가 성경말씀을 알고 깨달은 것만큼 제 삶이 바르지 못한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는 글이었구요(지금도 그러하지만), 저만 똑똑한 채 하면서(제똑똑이) 믿는 자와 교제가 단절된 싯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운 자와 함께 걸을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 새로워지고, 더 명철해지며, 더 지혜로워진다는 결론을 염두에 둔 단순한 글이었읍니다. 형제님의 글과 세미나는 정신을 번쩍들게 해서 제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서 매우 신섬함을 느낍니다. 같은 말씀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을 넓혀 주는 것 같아 새로운 자극제가 됩니다. 논쟁보다는 건전한 토론을 통해 갖고 있는 믿음의 공극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형제님의 창조과학 분야를 다룰 수 있고, 믿음의 베이스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바른 이해를 논하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네요,
2012-03-06 17:56:59 | 조양교
부흥사라고요?? 저를 놀리시는 말씀이지요?? 아닙니다. 천부당 만부당 합니다. 저는 저의 글 "호루스의 눈"에 달아 주신 조양교 형제님의 댓글에 대한 답으로 썼듯이,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자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조 형제님이 인용해 주신 사도 바울의 고백의 말씀으로 감동과 위로를 받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날 답글을 썼던 사람입니다. 아울러 제가 3월 5일 날짜로 올린 글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였은즉.." 또한 제가 행한 미약한 일을 하나님은 "신실하다"고 칭찬해 주실 것이며 그 은혜는 누구라도 받은 바 달란트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칭찬해 주신다는 것을 성도님들과 같이 나누고자 함이었고요..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조 형제님의 그 날 달아 주신 댓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토요일 밤을 세워 세미나 ppt 만들어 준비하고 주일 오후에 세미나 마치고 돌아와 정말 그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거든요! 저는 지금도 왜 어떻게 해서 조 형제님이 그 날 하필이면 사도 바울의 그 말씀을 제게 보내 주셨는지 참으로 신기하고, 하나님께서 조 형제님을 통하여 제게 들려 주신 위로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의 따스한 격려의 글에도 늘 감사를 드립니다. 부흥사라고 한 말씀이 (당연히 놀림이 아니라) 저를 세워주려 하심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
2012-03-06 17:54:13 | 김정훈
요즈음은 지식의 혼란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름인가를 기준없이 판단하기가 참 모호하지 않은가요? 매스미디어의 넘쳐나는 가쉽거리들이 마치 저마다 다 옳은 양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혜를 찾으려는 노력보다 (요일2:16)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 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안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넘어 지게 되겠지요(이것은 단순한 제 생각입니다). 김정훈 형제님께서 부흥사 역활 지금도 훌륭히 하고 계십니다. '부흥'이라는 뜻이 좀 과격한 표현으로 얼빠진 사람들 돌아오게 하는것 이라고 알고 있는데 혹 잘못 된것인지요?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혼들을 돌아오게 하는것...감사합니다.
2012-03-06 17:52:54 | 최현욱
최 형제님...반갑습니다.
말한마디 제대로 나누어 보지 못하는 바쁜 주일이라 이렇게 여기서 인사를 나누고
게다가 형제님의 마음속 이야기까지 듣게 되니 홈피의 선행이 분명해 지네요.
저도 꿀 맛이 아니라 매실 맛이라는 표현에 한 표 던집니다....^*^
2012-03-06 17:07:18 | 오혜미
네...더욱 확고하게 무엇이 먼저 있어야 하는지 타락한 기독교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
확실한 선을 그어 주신 것 같네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평만한데 왜 이리도 혼잡한지 어쩜 그 궁극적인 원인분석을 해 주신 것 같아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순종 ...
형제님의 절박한 심정까지 읽게 되어서 더욱 은혜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형제님은 우리 침례교회의 부흥사가 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스릴과 긴장감과 함께 영혼들을 일깨우고 호령하는 사령관의 직무가 필요한 시대에 말입니다.
2012-03-06 16:53:21 | 오혜미
맞습니다, 이지선씨의 간증도 참 감동적입니다. 댓글에 감사 드립니다.
2012-03-06 16:51:18 | 김정훈
그 말씀에 위로가 됩니다. 예방주사, 건강한 사고! 감사합니다~^^
2012-03-06 16:47:07 | 김정훈
네... 전에 예방주사를 맞았잖아요.. 그래서 김정훈형제님의 딴지(?)글은 우리에게
예리한 분석과함께 건강한 사고를 더해 줍니다..
다시한번 세밀하게 생각는 시간이 되네요...
2012-03-06 16:35:24 | 오혜미
귀한 간증을 달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꿀맛 보다 매실 맛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네요~^^
2012-03-06 14:59:35 | 김정훈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 만이 모든 것의 답임을 깨닫습니다.
조양교형제님의 글이 올라와 댓글 달고 돌아서려 하니
김정훈형제님이 글을 올려 정말 빠른 속도의 해답들을 성경에서
정리해 주시네여.
모두가 홈피앞을 떠날 수 없도록....
저희들의 눈과 마음을 ,시간과 생각을 붙드는
멋진 홈피입니다.
2012-03-06 14:59:06 | 박진
오늘은 구약성경 잠언에서 말하는 참 지혜로운 자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특히 지혜와 명철, 그리고 지식의 관계를 중심으로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의로운 길을 가는 자, 부지런한 자, 겸손한 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단 한마디로 압축하여 표현 한다면, “지혜로운 자는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의 순종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순종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지식과 명철이 있다손 치더라도 ‘의지’로 ‘순종’을 택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을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그는 분명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된다는 ‘바른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동산을 다스리며 선악과를 멀리하려는 ‘바른 명철’함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브에게 사탄이 뱀의 모습으로 유혹하며 다가왔고, 연이어 그 이브가 자신에게 선악과의 열매를 먹도록 권했을 때, 그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비록 ‘바른 지식’과 ‘바른 명철’을 갖고 있었을지라도 종국에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 된 것입니다.
잠언에 기록된 내용을 쭈욱 하나씩 따라가 보면, 결국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더 나아가 명철과 지식조차도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잠 2:6). 그런데, 이들의 관계를 면밀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얻을 수 있으며 (9:10), 그것을 얻게 되는 자들에게 생명나무가 됩니다 (3:18).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제가 앞서 위에서 말한 ‘순종’을 의미하며, ‘순종’하는 자라야 ‘생명나무’를 얻게 됨은 자명합니다 (아담의 예를 잘 살펴보시고 또 예수님이 어떻게 순종의 모범을 보이셨는지 상고 하십시오). 결국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요, 생명나무를 얻게 되는 자요, 즉 순종하는 자 입니다. 그러기에 잠언 기자는 계속해서 지혜가 으뜸가는 것이고 (4:7)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이 그것과 비교될 수 없다고 (4:11)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명철은 지혜와 거의 동등하게 사용되어져 나옴을 봅니다. 예를 들면 잠언 3장 13절에 “지혜를 찾는 자와 명철을 얻는 자는 행복하니”라고 되어 있고, 계속하여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고, 네 마음을 명철에 쏟으며” (2:2),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4:5), “지혜가 외치지 아니 하느냐? 명철이 자기 음성을 내지 아니하느냐?” (8:1),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직접 “지혜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명철들로 하늘들을 굳게 세우셨도다” (3:19)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혜와 명철은 그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로 봤을 때는 거의 동의어처럼 바꿔 사용하여도 크게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하여 볼 부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세운 명철을 의지하거나 (3;5), 자신의 눈에 지혜로운 자, 즉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가 되는 어리석음을 주의하라고 (3:7) 잠언 기자는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거의 동의어처럼 그러나 다른 뉘앙스로 반복과 강조의 효과를 위하여 사용되어 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식은 지혜와 어떤 관계일까요? 지혜로운 자는 학식 (혹은 지식)을 더하게 됩니다 (1:5). 지혜는 재치 있는 창안물들에 대한 지식을 찾아냅니다 (8:12). 지혜로운 자들은 (그 지혜로 말미암아) 지식을 쌓게 됩니다 (10:14).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가르치게 되고 그 결과 그의 입술에 학식을 더하게 됩니다 (16:23).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분별 있는 자라 불릴 것인데 (16:21), 분별 있는 자 즉,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에 지식을 얻고 그 귀는 지식을 구하게 됩니다 (18:15). 이와 같이 지혜로운 자가 지식도 얻거나 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 즉, 지혜의 시작을 이루는 것 (9:10) - 이 이제는 잠언 기자가 적은 것처럼 지식의 시작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되는 까닭이 되기도 합니다 (1:7).
결국 이 모든 말씀이 가르치는 바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로운 자가 되면 그 지혜로 말미암아 지식을 얻게 됨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지식을 얻고 명철을 얻는 순서를 통하여 지혜에 이르게 됨이 아님에 유의 하셔야 합니다. 진정한 지혜,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꺼이 순종하기 원하는 그 지혜가 있으면 지식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이며 세상적인 지식 - 꼭 구원과는 직접 관계없더라도 우리가 세상을 살아 나가는데 있어 유용한 지식들을 말함 - 조차도 필요하다면 자연스럽게 더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가 지식을 먼저 갖게 되더라도, 또 거기서 더 나아가 수행이나 명상이나 선한 행위를 통하여 어떤 명철 (깨달음)을 얻게 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지혜로 이어질 수는 결단코 없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지혜를 얻는다면, 이것은 나중에 결국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자신이 종의 형체를 입어 죽기까지 순종하심을 이루신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한 순간에 조롱하게 되는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5-11 참조).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혜는 위에서 내려옵니다.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며, 우리가 진정 지혜롭다 칭함을 듣는 것은 바로 순종을 이룰 때인데, 그때 지혜는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됩니다. 지식은 지혜를 얻으면 더 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식은 아무리 많더라도 위에서 부어 주는 은혜가 없이는 결단코 지혜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얼핏 지식과 명철 - 이때의 명철은 단순히 철학 및 종교적 깨달음 등을 의미하고 잠언이 말하는 수준의 명철은 아님 - 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는 지혜롭지 못한 모습으로 발견됨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로 오는 지혜 즉, 우리가 마땅히 보여야 할 순종이 결여 되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결국 “지식과 명철이 전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을 때 {원인} 지혜롭지 못하게 되는 것 {결과}”이 아니라, “지혜가 충만하지 않을 때 {원인} 지식과 명철함 또한 올바르게 전인격적으로 나타나지 못하게 되는 것 {결과}”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적합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보충설명]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지식 --> 명철 --> 지혜의 순으로 단계별 성장을 이룬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뉴에이지와 세상의 모든 종교와 찰학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입니다. 일전에 세미나를 통하여 공부한 바대로,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호루스의 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수양과 참선과 선행을 통하여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그들이 말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 지혜를 그들은 "광명"이라고 부르며, 거기서 "일루미나티 (Illuminati)"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우리가 그 지혜에 참여하기 위하여는 "순종"을 택하는 것이라고요! 우리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지식과 깨달음 가지고는 하늘의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받게되면 (말씀에 순종을 의미) 우리는 오히려 지식에도 풍성해 집니다. 이것이 비밀이요 세상과 우리를 구분 짓는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얼핏보면 잠언의 글들이 지혜와 명철, 지식의 단어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져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분명한 선이 보이고, 일견 그저 생활의 지혜를 담은 글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잠언에서 조차도 복음의 핵심을 찌르는 놀라운 비밀의 말씀들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결국 "지혜"를 이야기 하면서 이 모든 말씀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복음 (특히 생명나무를 주목하십시오)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2012-03-06 14:32:55 | 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