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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증상을 역력히 보이는 아버지를 보며 뇌신경세포의 회로가 얼마나 오묘한 기능장치 인지 특히 뇌부분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실감했습니다. 듣고 이해하고 인지하고 여기에 자신을 낮추는 일이 있을 때에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침팬지와 비교하여 생각합니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 이 말씀의 파워가 느껴집니다.
2011-11-01 11:05:39 | 정혜미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예고편만으로도 저들의 사악한 의도가 너무도 빤히 보이는거 같아 일부로 찾아서 보진 않은 영화였는데 한번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은 같이 보러갈 사람도 없었구요ㅜㅜ 요새 나오는 소위 헐리우드 대작들의 태반이 이러한 주제를 알게 모르게 담고 있는데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2011-11-01 10:07:52 | 유준호
  유인원 행성의 출현?     왠 낯선 침팬지   얼마 전 거리를 누비는 시내버스에 왠 낯선 침팬지 얼굴이 커다랗게 하나 그려져 있는 영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사실 옛날에 TV에서도 보여준 적이 있던 오래된 추억의 명화인데.. 정확히 1968년에 개봉 되었으며, <벤허>로 유명한 찰턴 헤스턴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의 제목이 바로 <혹성탈출>이었다. 최근 버스에 광고된 이 영화는 말하자면 그 뒤에 다시 새롭게 만들어진 <혹성탈출>의 앞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는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는 필자의 기준을 일단 통과할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는 그렇게 끝났다. 치매를 치료하려고 개발하던 약물이 공교롭게 실험용 침팬지의 지능을 상상 외로 높이게 되고, 그 한 마리의 침팬지가 주변의 다른 유인원들을 일깨우며 점차 무리를 확대하여 인간과 분리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것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반면 침팬지의 지능을 높여 주었던 동일한 약물에 감염된 인간은 면역체계가 급격히 약해지고 결국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피를 토하고 죽는 일이 발생한다. 아마 이 영화의 다음 편이 만들어진다면 사람은 점차 멸종되어 가고 지능이 높아진 유인원들은 반대로 인간이 사라진 이 지구를 대신하여 지배하는 이야기로 전개될 것이 충분히 예측된다. 참고로 이 영화의 원제목은 <유인원 행성의 출현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이다.      영화를 보면 어떻게 유인원들의 감정을 진짜 같이 섬세하게 표현해 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전에 <아바타>라는 영화에서 화제가 되었던 소위 요즘 할리우드가 자랑하는 ‘이모션 캡쳐 (emotion capture)'라는 기술적 방법에 흥미가 당길 수도 있겠다. 유인원들이 한 명의 영리한 리더를 통해 점차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가고, 급기야는 인간이 만든 울타리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들 속에서 혹자는 어떤 이유로든 억압 받는 이 사회의 소수를 생각하며 사회적인 측면의 문제의식을 끄집어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인공 침팬지 ‘시저 (Caesar)’가 시간이 지나면서 도구를 사용하고 빠르게 언어 능력을 획득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또 ‘그래.. 과거에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느 운 좋은 유인원이 저렇게 인간으로 진화했을 거야..’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앗, 그렇다면 이건 좀 곤란한데..! 영화에 사용된 기술적인 내용이나 혹은 사회적 문제를 영화 속 유인원들에 은유적으로 비유하여 하나의 담론으로 풀어내는 것은 뭐 상관없지만, 과학적 사실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사실로 믿게 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사람과 동물의 인지능력 차이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은 <인간의 혈통>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사람을 단지 ‘커다란 뇌를 갖고 있는 원숭이’ 정도로 여겼다. 그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인지능력들의 기본적인 형태를 모든 동물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며, 사람은 그저 운 좋게 좀 더 큰 용량의 뇌를 가진 덕분에, 그러한 능력을 갖게 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운 좋게? 도대체 사람과 동물의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에 이것들이 다윈이 상상한 대로 그저 ‘운 좋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일까?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진화론자들이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고 여기고 있는 침팬지를 포함한 모든 동물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인지능력의 차이에는 도저히 우연히 생겼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상상 이상의 엄청난 간격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영화에서 주인공 침팬지 ‘시저’가 관객의 시선을 고정 시키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하는 아주 중요한 한 장면이 있는데, 바로 인간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비록 ‘No'라는 한 단어 이었을지라도 영화를 보는 관객은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강렬한 효과를 끌어내는지.. 왜냐하면 바로 그 언어야 말로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인지능력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엄청난 힘이 있는 능력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다른 동물은 물론이고 침팬지조차도 인간의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그런 언어능력은 없다.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이 탁월한 언어능력은 가령 원하는 정보를 무한 반복하여 집어넣어 표현할 수 있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범주를 구별하여 인식할 수 있는 등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셰익스피어를 읽어 보라.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들어 보라. 지금까지 인간과 침팬지의 언어를 연구하여 얻어낸 중요한 결론이 있다면,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개념들을 습득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보통 3살을 넘어 가면서부터 배우게 되는 내용부터는 침팬지가 결코 따라 올 수가 없으며 그때부터 점점 인간과 침팬지의 언어 능력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탁월한 인지능력 가운데 또 하나는 인간에게서만 관찰되는 복잡한 사회 인지능력이다. 가령 18개월 된 어린 아이도 ‘감정이입’의 능력이 있어서 자신의 인형이 상처를 입는 것을 보면 가서 위로해 주거나 고쳐 주는 등의 행동을 한다. 또한 6개월밖에 안 된 아이도 이미 마음속에 사물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심리적 표상을 갖고 여기에 긍정 혹은 부정의 값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마치 여러 개의 마주 댄 거울의 상이 겹쳐 보이듯이 속에 겹겹이 끼워진 여러 개의 심적 상태를 가질 수 있기도 하다. 가령, “A는 B의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야한다는 것을 C가 믿고 있다고 D가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실제 행동으로 관찰되는 상황을 가령 “선생님을 쳐다보는 A를 바라보는 B를 응시하는 C를 관찰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기술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성에 기초한 인간의 심층적인 인지능력은 동물에게서는 그와 비슷한 것조차도 찾기가 어렵다. 더 나아가 동물에게는 소위 ‘지식’의 심적 표상이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관찰되는 형태의 ‘가르침’의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 동물에게서 간혹 관찰되는 ‘가르침’과 유사한 행동은 대부분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으며 ‘적응’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인간의 ‘가르침’은 제한이 없는 많은 목표를 향한 광범위한 영역에 적합한 가르침이다.   인간과 동물의 뇌, 그 구조적 차이점   이제 인간의 뇌는 동물과 어떻게 다른지 잠시 살펴보자. 신경과학자들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간의 뇌는 다윈이 말한 대로 다른 포유동물의 뇌와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이에 힘입어 인간의 뇌를 보다 미세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즉, 사람의 뇌는 침팬지를 포함한 다른 포유동물의 뇌와는 달리 훨씬 복잡한 신경 연결망으로 엮여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특히 언어와 연관된 부위나, 감정이입과 죄책감 등 사회적 정서와 연관된 뇌 부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영화에서 한 과학자가 치매 치료제로 개발한 약을 침팬지에게 주사함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능을 획득하고 그 결과 침팬지가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논리 및 언어 능력을 얻게 되는 설정은 영화를 재미있게 끌어가기 위한 스토리 전개에는 필요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그런 약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앞으로도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영화 속의 그 약은 필경 신경 세포의 재생 및 성장을 촉진 시키는 약일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 뇌 속의 신경 세포는 단순히 그 양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망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그 기능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이때 연결망은 어떤 선행된 프로그램을 따라 기초 회로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 반복적인 학습 및 경험을 통하여 가지치기를 해나가도록 짜여 있다. 따라서 어떤 약이 비록 신경세포의 양이나 가지 수를 증가시키도록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복잡하고 정교한 인지능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위에 이것들을 안내하는 또 다른 절차와 메커니즘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결국 이것은 ‘정보’의 개념으로의 선행 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간의 뇌에는 대략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이는 자그마치 은하계에 존재하는 별의 숫자와 동일하며, 이들 천억 개의 뇌세포 중 같은 것은 또한 단 하나도 없다! 인간의 뇌를 통하여 흐르고 있는 전기화학적 신호들이 어떻게 지각, 기억, 감정, 사회성과 같은 고차원적인 인지능력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지 그 규칙을 해독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매달리고 있지만, 그 답의 극히 일부를 밝혀내는 것만도 아직은 너무도 버거운 상태이다. 뇌 속을 흐르는 신경암호들은 종종 디지털 컴퓨터의 기계암호에 비유되곤 한다. 한 계산에 의하면, 뇌의 약 10% 정도만 동시에 작동해도 뇌는 적어도 초당 약 1천조개의 정보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것은 인간이 만든 가장 우수한 슈퍼컴퓨터보다 1,000배가 넘는 엄청난 능력이다.   침팬지가 우연히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망상   지난 2001년에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잘 알려진 것처럼 인간의 DNA는 총 30억 개 정도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적 차이를 DNA 염기배열만 액면 그대로 단순 비교하여 약 2%, 즉 6천만 개의 염기에 해당되는 정도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백질을 만드는 염기배열 가운데서도 염기치환이 일어난 것만을 선택적으로 골라 만들어진 수치이며,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임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다가 단백질을 만드는 DNA 염기 배열 이외에 아직 그 기능이 밝혀져 있지 않은 다른 DNA 영역까지 고려하게 된다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염기서열의 차이점은 10% 이상으로 벌어지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이 보다 정밀히 연구할수록 소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어떤 가능한 유전적인 원인 또한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있다.      그렇다 해도 여기서 잠시 계산을 해보고 넘어가자. 진화론자인 할데인(Haldane)은,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한 개체군 내에서 어떤 돌연변이를 고착하는 데 드는 높은 유전적 비용을 고려해 볼 때, 인간의 유전자 내에 약 천 개의 유익한 돌연변이를 고착시키는 데는 대략 600만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수학적으로 계산한 바 있다. 그렇다면 1개의 유전자를 형성하는 데 평균 2천 개의 염기가 요구된다고 가정했을 때, 천 개의 유익한 돌연변이는 적어도 2백만 개의 염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200만 개의 염기마다 600만 년이 걸린다면, 어떤 공통조상으로부터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져 나와 그들의 DNA 중 2% 즉, 6천만 개의 염기 배열의 차이를 만드는 데는 아무리 ‘운이 좋아도’ 적어도 1억 8천만년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진화론자가 말하는 인류가 유인원으로부터 분리되어 진화되었다고 보는 200~400만 년의 시간과는 적게는 45배에서 많게는 90배가량의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너무나도 현격한 인지능력과 또 이를 뒷받침할만한 뇌구조의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만큼의 유전적 차이가 요구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도 모르고 있다.      생물의 우연 발생적 존재의 기원을 받아들이고자 할 때, 더 많은 유전자는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물은 단순히 유전자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것들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순서로 발현되느냐를 지정하는 단계적 명령계통도, 즉 소프트웨어가 또한 필요하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 역시 소위 해부학적 ‘회로’의 구성이 절대적이다. 이를 지시하는 어떤 상위 계통의 명령체계가 필요하고, 이것들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만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과 가정이 요구된다. 여기서 잠시 인간이 만든 컴퓨터를 생각해 보자. 컴퓨터는 결국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이 이상 없이 잘 구동이 되어줄 때라야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한다. 컴퓨터를 사용해 보면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이것이 매우 정교한 지적 설계의 산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뇌라는 하드웨어적 구조의 존재도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낮은 확률에 기댄 막연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놀랍도록 정교한 소프트웨어적 인지기능의 발현과 그것들을 나타내주는 문법(syntax)의 작동은 더더욱 우연 발생적 기원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슈퍼컴퓨터를 초월하는 인간의 뇌의 효과적인 정보처리 능력을 볼 때, 더구나 언어, 의식, 창의성을 가능케 하는 인간만의 놀라운 인지기능을 생각해 볼 때, 이 모든 것들이 발현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 뇌의 존재야말로 그 어느 것보다도 지적 설계론적 기원, 즉 지적인 존재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음을 강하게 증거 한다. 침팬지가 인간이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이다! 미안하다, ‘시저~’!   하나님의 형상과 창조 질서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분명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게 창조 되었다. 그 차이점이 유전자 상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현재 사람이 갖고 있는 총 DNA 염기의 수 30억 중에 그것들이 우리의 세포 내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아는 것은 고작 2% 미만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98% 이상은 아직 베일에 덮여 있다. 즉, 인간 유전자 지도를 책으로 비유 한다면, 책의 글자를 읽을 줄은 알았지만, 읽고도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는 단지 2% 정도 밖에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유전학의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면 될 수록 그 새로운 결과들이 진화를 증거 하기보다는 오히려 생명체의 설계 가능성을 더 뒷받침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새로운 증거들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야 비로소 사람들이 창조주의 살아 계심을 고백하게 될 것인가?      사실 바울이 말한 “그분의 보이지 아니 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는 말씀처럼 인간의 육체만 자세히 들여다보더라도 그 놀라운 창조주의 설계 솜씨를 발견하지만,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창조주를 증거 한다. 성경은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 사람들이(창 1:27)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고 말한다(창 2:7). 더 나아가 “사람의 혼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고 목이 탄다 (시 42:1-2)”고 말한다. 물질로부터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비물질적 영혼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며, 또한 그 분의 설계를 강력히 증거 한다.      영화 속에서 약물을 개발하는 과학자 ‘윌’의 여자 친구 ‘캐롤라인’이 몇 번인가 이런 말을 한다. “윌, 자연의 법칙을 거슬려선 않되.” 과학은 잘 다스리면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도구가 되지만, 인간의 탐욕과 오만함이 결합되면 치명적인 재난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바로 그런 것이 SF 영화의 단골 소재가 아니던가! 그러나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도구로서의 과학조차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법칙을 설계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잊는다면 그것은 현대의 바벨탑일 뿐이다! 캐롤라인의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윌,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법칙을 거슬려선 안 돼!!”   글쓴이: 김정훈 (연세대 의대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2011-10-31 23:54:27 | 김정훈
감사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같이 느끼고 감동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날 참석하지 못한 성도님들이나 사랑침례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2011-10-29 11:05:05 | 김정훈
귀한 교회에서 "창조주"를 전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심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성도님들이 모두가 열심으로 들으며 아멘으로 호응해 주시며 따라 오시는 모습에 저도 감동 받았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갈지 기도하며 고민 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2011-10-24 14:58:53 | 김정훈
온 성도들이 귀를 기울여 듣는 가운데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큰 복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더 좋은 말씀을 많이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1-10-24 09:55:09 | 관리자
귀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일반 강의가 아니라 진리를 전달함에 있어 진리추구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 비진리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전달되어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안에 더욱 친밀한 교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1-10-24 08:30:10 | 송재근
강의를 녹화하지 않은 것은 저의 "뜻"이었습니다. 아쉬워도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같은 내용도 여러 사람이 전하면 더 힘이 배가 되지요.. 또한 사람 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보는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할 수록 "증거를 전하는 일"이 듣는 이에게 더욱 힘을 전해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0-24 00:32:51 | 김정훈
맞습니다. 영적전투! 같이 싸울 동역자를 만나기 원합니다. 입에 넣어 주신 말씀이 있는자 어찌 외치지 않으리요~! 주님께서도 우리들이 가만히 있으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백성을 만드실 수 있다 하셨듯이 돌들 앞에서라도 전할 "말씀"이 있다면 그것이 감사한 일이지요! 앞으로도 대화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2011-10-24 00:28:02 | 김정훈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면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되심에 더욱 감사하지요! 주님 오시기를 소망하며 그 날까지 승리하며 달려가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10-24 00:24:15 | 김정훈
오늘은 흥미진진한 강의를 들어서 더욱 새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한사람이 아닌 또다른 분들의 생명력 넘치는 강의는 자칫 타성에 젖을 수 있는 사람의 한계에 도전과 자극을 주어서 더욱 중요한 것같습니다. 정말 곰곰히 생각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더욱 많은 정보와 증거를 많이 나누었음좋겠습니다 올려주신 글보다 강의가 훨씬 더 전달력이 있었는데 녹화가 안된 것이 아쉽네요.. 열정적인 강의와 함께 앞으로 더욱 형제사랑의 열기를 함께 공유할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다른 주제의 강의도 듣고싶습니다...
2011-10-24 00:20:09 | 정혜미
김정훈형제님! 오늘 세미나가 너무 인상적었습니다. 아마도 저희교회의 많은 형제, 자매님들은 오늘의 많은 팩트자료를 보지 않고도 믿는바에 있어선 순수성과 예수님안에서의 믿음은 창조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찌라도 깊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료들은 믿는자에게 즐겁고 신명나며 용기를 주며 활력을 주며, 의지를 굳게 하는데 유익하였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세미나를 시작하면서 영적전투와 현재의 상황에 대한 언급이 마치 전쟁중에 작전사령부내에서 전쟁상황을 시시각각 부리핑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흥분과 심장 박동소리가 빨라지고, 진화론을 발로 밟고 창조의 승리깃발을 휘날리는 환희도 맛 보았던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군사가 되어 무너졌던 기초를 다시 세우고 악한 것들과 속이는 것들을 몰아내며 주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대장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자는 마음의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어찌보면 지금 사랑침례교회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을 보급하는 일에 있어서 이러한 영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진리의 보루를 지키고 말씀이 흥왕하는 일을 소망하며 어둠의 권세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올수 있도록 바른 안내도를 제시하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으로 신학교와 교회들 가운데에서 성경의 권위는 많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된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영적전쟁이자 전투가 성경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더이상 소망이 없다고 볼 그런 중대한 주제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꼽는다면 창조와 진화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이 두가지 주제는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닌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을 들으면서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았을때 저분은 말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형제님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분이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돌들을 앞에 세워놓고라고도 진실이라는 것을 외치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얼핏 듣기로 사랑침례교회에서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을 것이라 들었습니다. 지적설계자이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이겠지만 보여준 자료만으로도 하나님의 경이로운 능력에 감탄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종종 시간을 내어 많은 진실과 사실들을 듣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사견으로는 형제님께서 틈틈히 시간을 내어 정동수 목사님의 창세기강해를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KeepBible.com 사이트안에 상단메뉴 중에서 경건의 삶이란 아이콘을 클릭하시면 성경강해 코너가 있습니다. 그곳에 창세기 강해 34강까지 있습니다. 형제님이 흥미롭게 받아드릴 것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천합니다. 형제님의 세미나가 저에게 유익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 하게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
2011-10-23 23:46:09 | 노영기
김정훈 박사님 , 형제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실제로 주님의 창조론을 믿고 있었고 다른 기회들을 통해서도 창조론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오늘의 강의를 들으면서 참 너무도 대단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더 경외심이 깊어 졌어요. 다른 과학부분에 계신 분들의 창조론도 저의 확신을 넓혀 주셨지만 오늘은 더욱 주님께 감사가 되었지요.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으나 그동안 한사람에게라도 더 전해야 하는 영적전투속에 우리가, 교회가 있음을 더 실감하는 날이었어요. 주님께서 기회를 허락하시면 계속 듣고 싶습니다. 수고 감사합니다 형제님!
2011-10-23 23:32:35 | 이수영
사랑하는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 앞에서 오늘 창조과학 강의를 통해서 우리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선포하며 진리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가지 사정 상 강의를 녹화 하지 않도록 하였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고, 대신에 강의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저의 글을 한편 이 자리에 올리니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김정훈-   ********************************************************************************************************** 교회는 왜 창조과학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 된지 이제 150년이 넘었다.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은 본질상 동시에 진리일 수 없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은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오늘날 교회에게 있어 창조과학 사역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받아 적은 것으로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두가 성경이지 어느 부분만 성경인 것은 아니다. 창조과학 사역은 바로 말씀을 창세기 1장 1절부터 바로 믿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창세기는 전체 성경의 토대가 되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서 이 부분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게 되면, 그 뒤에 나오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또한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게 된다. 창세기 중에서도 특히 1장에서 11장의 내용은 우주의 창조와 인류의 기원, 그리고 노아의 홍수를 비롯한 지극히 중요한 인류의 초기 역사를 기록하고 있어, 이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후에 이어지는 성경의 다른 기록과의 연속성을 제공함으로써 아주 중요한 성경적 교리의 기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인본주의 교육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세기 내용을 한갓 신화나 전설로 생각하게끔 공헌하였고, 그 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갔으며,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자들 또한 세상에서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약한 신앙인들로 바뀌어 버렸다. 과거 유럽의 찬란했던 교회들을 생각해 보라. 지금은 텅 비어 버린 그 교회당을 한 때 가득 채웠던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없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다윈의 진화론을 선두로 한 인본주의 사상이 휩쓸고 간 결과들이 아니겠는가? 당시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교인들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교회의 근간을 무너뜨린 다윈의 무덤을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중앙에 안치할 정도로 당시의 교회는 영적인 눈이 멀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미국의 경우도 1925년 테네시 주에서 열렸던 소위 ‘원숭이 재판’이후 기독교인들은 지성과는 거리가 먼 맹신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일반 공립학교의 교과 과정은 물론이고, 박물관을 가도 TV를 켜도 온통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한갓 우연한 존재에 지나지 않게 설명되어지고 있음을 볼 때, 성경을 손에 갖고 있는 교회의 무관심과 침묵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이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를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많은 것 중에서 말단 지엽적인 한 가지 issue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정말 우주 진화의 부산물로서 우연 발생한 존재라면, 죄의 문제가 슬그머니 사라지게 되고, 도대체 복음을 사실로 받아드릴 논리적 이유가 없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복음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단코 누군가 생각하듯이 말단 지엽적인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오늘날 신학교에서조차도 인본주의 학문의 영향으로 진화론과 혼합한 창조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타협하는 이론들은 그 근본이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적 과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재해석하여 내놓은 하나의 신학적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진화론이 어떤 절대적인 과학적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최신 과학 정보들을 볼 때 설계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걸 보면, 성경을 떠나 과학과 타협을 시도하려는 신학적 노력은 언젠가 또다시 그 이론의 수정을 요구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들에 대하여 성경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하여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은 우리들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창조과학은 교회의 여러 지체 중에서 주일학교 및 성인 교육부와 연결 되어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거나, 선교 및 전도부와 협조하여 바울이 이방인 전도에 창조의 메시지를 들고 복음을 전하였던 것처럼 불신자들에게 복음의 기초가 들어갈 마음의 밭을 준비케 하는데 사용되어 질 수 있다. 성경적이면서도 동시에 과학적인 내용을 다루어야 함으로 다분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역이기는 하나, 교회 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본인이 갖고 있는 달란트에 따라 여러 가지 영역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오늘날 교회는 안팎으로 여러 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교회 내에 침투한 세속주의의 영향,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new age의 물결, 세상문화에 대안으로 내놓을 기독교 문화의 부재, 그리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첨단 과학기술의 개발과 그에 따른 교회적 입장의 요구 등등. 신학교 3-4년 동안의 교육만으로 목회자들이 이 모든 문제에 답을 명쾌히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선교 사역에 전문인 평신도 사역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교회의 총체적 방향과 목표는 성경적인 시각에 입각해서 여전히 목회자 중심으로 세워져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역의 내용은 각 분야의 전문 사역자를 중심으로 상호간의 긴밀한 협력 아래에 진행되지 않으면,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 오히려 더욱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의 갈증을 채워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창조과학 사역은 그 한 부분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창조과학 사역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
2011-10-23 19:27:43 | 김정훈
킵바이블에도 글을 같이 공유해서 올렸습니다. 김**형제가 남긴 댓글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중국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생을 살고 죽었지만 지금 현재도 13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과연 몇 명이나 주님과 함께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 100만명정도는 만날 수 있을런지 아니면 10만명 정도는 만날 수 있을런지 그런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류인선 형제님 댓을 보면서 공산주의 유물사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위 연출된 상황들을 몇번이고 들여다보니 공감이 가고 이 공산주의는 정말 사탄의 또 다른 걸작품이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 좋았더라 하셨던 많은 창조질서들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만 해봅니다. 머리속에서 그림이 안그려져요!^^ 요즘 메스컴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절망을 부르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현실들은 점점더 어려운 현실들로 도배되고 있는 것 같구요! 물론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즐길꺼리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세상이죠! 그러나 우리는 외다리길을 걷고 있지 않습니까? 오로지 주님께만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말이죠!!!!!
2011-10-19 15:43:59 | 노영기
참 마음이 그러네요. ← 저에게 와닿는 정도도 겨우(?) 이정도입니다. 몇년전의 이런충격적인 기사가 뜨면 마음이 곤두박질치고 몇날이 지나서야 마음이 진정되는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 별별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그리고 인터넷을 자주 접하다보면 이런 기사는 그저 외면하게 되고 저 자신도 무덤덤으로, . 나의 일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이 추잡해질수있는지 이제 알기에 봐도 못본척, 알아도 모른척. 그래도 그곳에 있었다면 이정도의 시민의식은 아니겠지만 이것이 인간 본성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제 정말 삶에있어서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밖에는 소망이 없군요.
2011-10-18 16:35:00 | 이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