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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드셨을텐데...내색없이 여느때처럼 오히려 성도님들 한분한분 챙기시며 안부를 물어주시니 전혀 힘드심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영육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바른교회를 위해 애쓰시는 목사님과 함께 구경꾼이아닌 협력자가 될수있도록 부족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육적인 힘겨움가운데 영적위로로 힘을 더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늘 목사님과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힘내세요 목사님^^*
2010-09-17 12:59:32 | 장영희
아 ~ 그러셨군요목사님^ 성도들의 아픔과 어려움은 광고도 하시고 기도도 하시고 방문도 하시고 꼼꼼히 챙기시는데..... 목사님 자신의 아픔은 성도들앞에 쉽게 내놓지 못하시겠구나하는 생각이들어 마음이 짜~안 하내요. 목사님 ~ 그냥~ 죄송한 마음이드내요. 감사하다는 말씀밖에는 드릴말씀이 없군요. 그리고 찬양 기대하고 기다릴께요.
2010-09-16 21:26:29 | 김인숙
저는 주일 오후 예배 이후 집에 가서 누웠습니다.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 힘들었습니다. 어제까지 근 나흘을 집에서 누워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열병이 매우 힘들더군요.   이런 저런 생각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어느 피아니스트 자매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냥 눈물이 핑 돌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한 편의 설교 이상으로 제게 큰 감동을 주며 위로를 주었습니다. 글의 힘이 대단하더군요.   조만간 우리 교회에 모셔서 오후에 같이 찬양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찬송가를 좋아해서 영과 혼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그 자매님을 통해 내 영도 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느 구경꾼의 회심  난 당신을 먼발치에서 몇 번 보았습니다많은 무리가 당신을 따르고 있었고 나도 그 무리 중의 하나였습니다자신의 전 재산을 버리고 생업과 가족도 뒤로 한 채 당신을 따르는 이도 있었지만, 난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았습니다.그런 광신자로 분류되는 것도 싫었고 솔직히 당신이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라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니기에는 당신의 말씀과 행실이 너무 놀라웠고 그렇다 하기에는 당신의 배경과 행색이 너무 초라했습니다.당신 주위엔 온갖 병든 자들과 냄새나는 이들이 득실거렸고 세리와 창기의 친구란 소문마저 나도니난 당신의 주위를 맴돌았을 뿐 그 문하로 들어가는 것은 망설였습니다한 소년의 물고기 두 마리와 떡(빵) 다섯 개로 무리를 먹이실 때 나도 그 떡(빵)을 좀 떼었으나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면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을 잡아들인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내가 당신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습니다메시아도 아닌 것이 메시아 행세를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생각했습니다 나는 금요일 그 골고다 언덕에 가지 않았습니다그동안 당신을 쫓아다니느라 밀려있는 일도 많았습니다당신은 그들의 계획대로 그렇게 무력하게 끌려갔다 하더군요온갖 조롱과 채찍 속에 옆구리는 창에 찔려 물과 피를 다 쏟고차마 눈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다 하더군요그들은 가시로 엮은 관을 씌어 유대인의 왕이라 놀려대며 침을 뱉었다 하더군요십자가에 벗기운 채 매달려 있는 당신을 보며 그래도 어떤 이들은 당신이 삼손처럼 마지막 힘이라도 좀 써 주길 바랬다 했습니다 그런데 왠 말입니까온 세상이 당신을 포기한 바로 그때에 성막 휘장이 찢기워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왠 말입니까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당신이 살아나다니요당신이 구름타고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무엇이여다시 오리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은 또 무슨 소리입니까그럼 당신이 바로 '메시아' 였다는 말입니까 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엘 갔었습니다난 그곳에서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에게 임하였고 그것은 나에게도 임하였습니다.내 몸은 떨리었고 나의 마음은 신비로 가득 찼습니다 나는 변화되었습니다나는 더 이상 육에 속한 옛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당신을 만질 수 없었지만 꼭 만지는 것만 같았습니다난 당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나에 대한 당신의 극진한 사랑에 감격의 눈물이 흘러 내렸고나의 방관과 배신으로 찢기운 당신을 생각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난 마가의 다락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예수님의 영, 보혜사 성령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나는 오늘도 죽음을 각오하고 촛불을 밝히며 카타콤으로 향합니다내가 사자의 밥이 되고 사지가 찢기워지는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 계시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당신께서 내게 힘주시고 하늘의 소망을 갖게 합니다 나, 베드로 아니고 바울 아니나이 작고 무명한 자 당신이 안다 하시매나는 마냥 행복합니다. (1998. 달라스에서 김준희) 
2010-09-16 10:35:01 | 관리자
아직 목자의 길을 간접적으로 밖에 알고 있지 못한 저로서는 목자를 그저 이해하려고 하면서 옆에서 권면할 뿐, 대신 짐을 저드릴 자격(?)이나 능력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분명, 목자는 주님께서 세우신 사역자입니다. 세상에서의 각 분야의 리더들도 힘이 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겸손히 묵묵히 지고 자기를 부인하면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삶이 어찌 쉽겠습니까?! 분명, 자신이 죽어야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주님께서 정하신 원리인 듯 합니다. 목사 칼럼을 보고서 이렇게 밖에 화답을 못해드리겠습니다. 승리하세요.
2010-08-31 12:45:28 | 신대준
목사는 늘 절망할 수 있지만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외쳐야 할 역설의 사람입니다. 오늘 읽은 스펄전의 글을 증거로 기록함이 좋을 것 같아 글을 적습니다.   목사의 절망 - 스펄전의 "Lectures to My Students"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절망을 일으키는 가장 좋은 몇 가지 상황을 간단하게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첫째는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직후이다. 오랫동안 염원해 온 소원이 성취되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큰 영광을 받으시고 위대한 승리를 성취했을 때 절망하기 쉽다. 특별한 축복을 받으면 마음이 하늘 높이 치솟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누릴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경우가 많다. 주님은 자신의 전사들이 지나치게 승리에 도취되는 위험을 자초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그런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에 그들의 잔에 실망을 가득 채워 주신다.   2. 큰 기쁨이나 흥분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우울한 시기가 찾아온다. 시련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위급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솟아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끝나면 다시 연약한 본성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3.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전에 대개 적지 않은 절망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앞에 놓인 어려움을 생각하노라면 마음이 밑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 경우에도 처음 런던에 목사로 부임했을 때 그와 같은 심정을 느꼈다. 내가 이룩한 성공이 오히려 나를 두렵게 했다. 새로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사역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은 나를 고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절망하도록 만들었다. 내 입에서는 저절로 애처로운 탄식이 터져나왔으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라고 찬양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성도들을 인도할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차라리 한적한 시골에 파묻혀 살거나 미국으로 건너가 오지에 홀로 둥지를 틀고 그곳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그때 당시만 해도 나는 내인생의 새로운 휘장이 걷히고 그 뒤로 드러날 광경에 커다란 두려움을 느꼈다.   4. 마음의 평화와 조용한 인생을 꿈꾸는 사람은 절대로 목회 사역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 사람이 목회 사역에 종사할 경우에는 혐오감을 느끼면서 돌아설 것이 분명하다.   이 글과 함께 읽은 고린도후서 4장 7-12절은 목사의 태생적 위치를 보여줍니다.   7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난처한 일을 당하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9 핍박을 받으나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나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이처럼 사망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일하느니라.   12절에 있듯이 목사는 항상 죽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삶이 목사의 삶입니다.   스펄전 같은 위대한 목사님도, 엘리야 같은 위대한 대언자도 절망에 빠져 죽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오늘 내게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주께서 선한 대로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
2010-08-28 21:37:48 | 관리자
일 년에 얼마나 성경을 읽으십니까?성경 읽기표가 있으면 성경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읽은 데를 체크하시면 됩니다. 자료실의 문서자료에 가면 PDF 파일이 있습니다.다운받아 쓰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46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47  한기만 형제님이 문서 작성과 아트지 인쇄를 도와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05-10 12:19:00 | 관리자
요즘 교회가 확장되면서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이끌고가는 목자로서 저는 여러 사람이 아무런 여과 장치도 없이 우리 교회에 마음대로 들어와 활보하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올 때에는 적어도 우리 교회가 어떤 것을 믿는지 잘 확인 하시기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이기에 100%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굵직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이 있으면 우리 교회의 멤버가 되거나 자주 방문하는 경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교회 홈페이지에 교리에 관련된 글을 쓰기 원하거나 교회 멤버가 되기 원하시면 먼저 목사나 집사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설교와 말씀' 부분에 있는 '우리의 믿음'에 관한 설교 자료 등을 잘 살펴본 뒤에 신중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후 300년경에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 종교가 되었을 때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느니까 좋아서 무조건 이들을 수용하고 이들의 이교도 신앙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발전/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둔 채 우리 사랑침례교회는 단순히 '사람의 증가'가 아니라 '바른 사람의 증가'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밝힙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에 좋은 사람이 많아야 더 좋은 사람이 생깁니다, 목사님"   맞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또 좋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옵니다. 합당한 사람의 첫 번째 단추는 바른 믿음입니다. 그것은 바른 교리입니다. 사랑 이전에 믿음의 진리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왔다가도 견디지 못하고 나갑니다.   오늘 아침에는 여러 교회에서 목사와 화합을 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한 분에게 우리 교회에 오지 마시라고 직접 통보했습니다. 이것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자의 최소한도의 경고 조치입니다.   이 교회에 올 때에는 목사와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협력해서 공통의 왕관을 하나님께 받으리라는 심정을 가지고 와서 섬겨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섬기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도 괴롭고 남들도 괴롭게 만듭니다. 자기의 믿음을 이 교회에서 주장하려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 '소심하고 무기력한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성경에 근거를 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처음부터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을 어기고 우리와 다른 것을 가르치거나 알리려 하면 성경적인 제재를 취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소개의 믿음 진술문 등을 잘 살펴본 뒤 믿는 바가 같다고 판단이 되면 이 교회에 와서 교제를 나누고 정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맞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맞는 데 가서 믿음 생활 할 것을 권면합니다. 아니면 틀린 것이 있을 경우 여기에 와서 고치겠다고 작정을 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런 부드러운 맘으로 와야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이 짧은 세상에서 같은 것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도 힘든데 처음부터 다른 것을 가지고 와서 목사와 성도들을 괴롭히면 얼마나 힘듭니까?   또 이왕 같은 배를 탔으면 선장과 함께 같은 생각을 품는 것이 믿음 생활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믿음도 기쁨도 자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바라건대 우리 교회는 바른 교리 안에서 사랑을 베푸는 좋은 교회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여러 사람이 방문하는 것을 보면서 우려가 되어 목자의 심정으로 한두 자 적었습니다.   교회에 사람이 느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저를 포함해서 성도들이 말씀으로 바뀌고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형제/자매님들이 저와 함께 매진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패스터 정
2010-05-04 17:16:54 | 관리자
지난 4주 동안 오후에는 구원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포함해서 거의 전 성도들이 2시간 동안 집중을 해서 듣고 참여해 주셔서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오전에 전체적으로 100명 이상 나왔고 오후에는 근 90명이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런 교회 많지 않습니다. 이런 참석율은 거의 기적이에요. 하나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시다.   우리의 영혼의 자유가 남용되지 않고 이렇게 하나의 응집된 힘으로 나타나니 정말로 기쁩니다.   특히 아이들이 모두 참석해서 듣고 또 도준이 같은 경우는 꼬박 꼬박 제 질문에 대답해 주어서 제가 몹시 기뻤습니다.   목사의 기쁨은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 기뻐하고 바르게 자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제게 무슨 다른 기쁨이 있겟습니까?   앞으로 새 건물로 이사가면 다시 이전과 같이 아이들도 다 아침에 예배에 참석하게 하려 합니다.   어른들과 같이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설교 들으니까 부모님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교육 방법이며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우리 교회가 교인들  숫자뿐만 아니라 질에서, 수준에서, 희생에서, 사랑에서, 봉사에서, 구령에서 뛰어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틈이 나면 목사와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동수
2010-03-22 13:49:35 | 관리자
요즘 저는 걱정이 많습니다.   설교 말씀이 퍼지고 여러 곳에서 좋은 반응이 생기며 변화하는 것이 보이고 교회가 부흥하며 킹제임스 성경이 점점 더 알려지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과거에 많은 단체와 교회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리더의 종이 되어 결국 추종자가 되고 말더군요. 그래서 두렵습니다. 리더도 결국 자기의 추종자를 사랑하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런데 사람의 추종자는 언젠가 떠납니다. 무슨 이유든지 추종할 것이 사라지면 떠납니다.   저는 저의 사역의 추종자나 저의 교회의 추종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감히 사도 바울같이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분과 저는 급이 다릅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항상 예수님만 보고 그분만 따르기를 원합니다.   진리와 리더가 상충하면 진리를 택해야 합니다. 진리와 교회가 상충하면 진리를 택해야 합니다.   리더나 목사나 교회는 다 유한하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보다, 예수님보다 먼저 자기 교회나 침례나 기타 냄새나는 사람의 무언가를 두는 것은 심각한 죄악입니다. 그런 자들을 눈여겨 보고 뛰쳐나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침례자 요한 같이 이렇게 외치고 실천합시다.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혹시 제가 배도하려 하거나 제 자신의 영광을 구하려는 낌새가 있는 것을 보거든 알려주세요. 고쳐야 사니 도와주십시오. 그런 사람이 진짜 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샬롬.  
2010-03-20 16:33:33 | 관리자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 1:8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요일 1:9
2010-02-20 17:40:33 | 김상희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히 씻김받은 나는 무얼하고 있는가?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저 더럽고 일그러진 영혼에게 겸손히 찾아가서 닦아주고 씻겨주며 약 발라 상처가 아물도록 사랑의 손길을 펼치고 있기는 하는가?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주님께서는 이렇게 살기 바라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성령님 의지하여 이와같이 살아 가렵니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되어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 가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내가 깨끗하게 되리이다.나를 씻기소서.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시편 제51편7절)
2010-01-28 01:16:24 | 나오연
어제는 어느 미국 목사가 적은 다음의 글을 읽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남태평양의 나병 요양소를 방문했다. 본인과 가족을 위해서 격리를 자청한 사람들 - 몸이 흉하게 일그러진 사람들 - 과 인사하며 나는 눈길을 돌리고 싶었다. 그 고통이란 차마 보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눈길을 돌리면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거기에 간 것은 잠시나마 그들의 병을 잊게 해 주기 위해서였는데 말이다.   그들의 몸은 갈 수록 더 인간처럼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에 집중하면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일단 내면의 인간을 만나고 나니 그 뭉그러져 쇠해가는 몸을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끌어안을 수 있었다.   그때 눈길을 돌리지 않기를 잘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남태평양 작은 섬 북단에 파묻혀 격리되어 살아가던 그 사람들이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나병 요양소는 내게 교회의 한 은유가 되었다. 타락의 일그러진 피해자들 - 아직도 죄의 오물에 물들어 있는 - 이 회중석을 채우고 지도자가 되고 감히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가르치고 강단에 서서 설교까지 하는 곳이 교회다. 그래서 나는 사역을 계속한다. 나의 추한 모습으로 인해 목회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체험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의인은 그분 앞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나 자신의 합리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나병같은 죄를 가진 한 인간이 가정을 이끌고 교회를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새삼 새겨봅니다. 죄로 인해 고민할 때, 그래서 목회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느낄 때 손을 놓기 전에 한 번 읽어 보려고 여기에 올립니다. 샬롬.
2010-01-26 21:58:33 | 관리자
라면은 뭐니뭐니해도 주님과 함께 라면이 제일이죠!!!그러해요,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염려하셨지요 에베소 교회의 사랑없는 모습을...진리와 사랑이 잘 조화있게 세워지도록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다 모두들 깊은 은혜의 시간 되셨겠어요
2010-01-13 22:31:31 | 나오연
우리끼리만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주님안에서의 행복이란 정의는 수와 양에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요.남는 자와 남지 못하는 사람들간의 괴리감이 없었음 좋겠고 어느 누구라도 처음이건 매번이건 자유로운 마음으로 친근감을 가지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무시로 있었음 하는 제 소견이예요.
2010-01-13 09:50:31 | 정혜미
교회가 커지게 되면 여러가지 우려가 생기게 마련이나 마음 속에 사랑이 있다면, 아무리 커져도 지금처럼 아름답고 친근한 교제는 계속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저희처럼 저녁까지 남지 못해서 삼계탕을 먹지못하는 분들은 여전히 많을거고요.^^* 그 자리에 참석 못해도 저희 마음은 언제나 주님 사랑과 교회사랑, 성도님들을 향한 사랑으로 넘쳐나는 것 아시지요? 안형제가 아침 여섯시면 출근을 해서 밤 아홉시가 되야만 돌아오니 아무래도 피곤이 쌓여서 저녁까지 함께 하는 것이 힘이드는가 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해 주시면 그때는 저희도 함께 삼계탕 먹고싶어요. 사랑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
2010-01-12 22:57:36 | 이은희
방과 후 교제를 즐기는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갈 길이 먼데도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우리 집이 교회랑 가까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죠.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요.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 온다면 성도들간에 사랑을 쌓을 수가 없었을 거예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구요. 이대로 계속되었으면 좋겠고 많은 가족들이 참석한다면 더 행복할 거예요.
2010-01-12 14:32:37 | 진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