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깨워 주는 글 감사드려요(귀욤귀욤한 두 아드님이 같이 생각나네요~^^)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핍박경험은 목사님사모님,리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제 성화의 밑거름된건 확실하지만, 목사님 사모님보다 앞에 서서 빗발치는 교회밖 화살을 막아내어 저의 고마움감사함(을 넘어 죄송함죄책감)을 줄이고 싶은 마음은 사랑침례교회 들어설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 크기가 같네요..그저 제가 있는 이곳에서 기쁨평강감사로 예수님 드러내다 예배참석 한자리에 앉아 있는 정도밖에 못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사랑침례교회를 생각하실때 저의 마음,우리 성도님들 마음까지 다 읽으시고 사랑침례교회를 지켜주시리라 믿고.. 오늘 하루 잘 마감하겠습니다~
2024-07-23 14:45:26 | 목영주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엡2:8 말씀은 우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하 ‘우리 성경’이라 함)과 NIV 성경, 개역개정성경, 새번역 성경 등의 현대역본 성경(이하 ‘현대역본 성경’이라 함)이 동일함에도...믿음이 구원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 측면에서는 우리 성경과 현대역 성경이 서로 명백히,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가...?...라는 생각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랬답니다.
바꿔 말씀 드리면, 우리 성경 말씀에 따른 이신칭의와 현대역본 성경 말씀(...?)에 따른 이신칭의는 서로 다른 이신칭의...임에 틀림없다고 봐야 할 것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이하에서는 서로 다른 이신칭의 관련하여 구체적 사안들을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성경의 책 중에서 교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책, 믿음 강해서라고 배운 바 있는(신학원에서) 로마서 중에는 이런 말씀이 있죠.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믿음 A)에 의해 모든 자들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들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이는 그 의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라는 롬3:22 말씀 말입니다. 이신칭의의 메커니즘을 명쾌히 설명하는 말씀 아닐까요...? 그 말씀에 따르면, 사람이 의롭다 인정받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현대역본 성경의 대표격(?)이라 할 NIV 성경 상의 해당 구절, 즉 롬3:22 내용인즉,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믿음 B)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이 의롭다 인정받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사람의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믿음 A’와 ‘믿음 B’가 과연 서로 견주기나 할 만한 정도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늘과 땅 차이 만큼이나 다르지 않습니까...? ‘믿음 A’와 ‘믿음 B’는 확실히 서로 다른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 성경과 현대역본 성경은 명백히 서로 다른 이신칭의의 교리를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상하다...저토록 서로 다른 이신칭의의 교리임에도 어떤 논란도 없단 말인가...?...그런가...?...라는 궁금증 말입니다.
온라인 상을 검색해 본 결과, 역시 논란이 있어 왔고 오늘날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봅니다. 검색 결과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던 주제로서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다는군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Christ) : 우리 성경
이 관점에 따르면 칭의, 즉 의롭다 인정받음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완전한 순종과 신실함에 근거합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의가 믿는 자들에게 전가(轉嫁)됨으로 인해 믿는 모든 자들이 의롭다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faith in Christ) : 현대역본 성경
이 관점에 따르면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의 행위에 근거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께 의지하는 개인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다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
글을 마무리해야 할 때쯤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생각들을 해 봅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인정받는다...라는 그 말씀이야말로 참된 진리의 말씀, 올바른 이신칭의의 교리임에 틀림없다는 생각, 즉 확신을 하게 되는군요.
우리 성경, 즉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있음에 무한한 자긍심 느끼는 동시에 새삼 감사 드리는 한편...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2:20 말씀 잊지 않으리라 다짐해 봅니다. ( 참고 : 현대역본 성경의 경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표기하고 있음 )
그리고 또...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그렇다면...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즉 개인의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 인정받게 된다고...그렇게 열심히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예 의롭다 인정 못받을까...?...라는 약간은 생뚱맞은(^^)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사실은...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믿고서 의롭다 인정받지 못한다면...안타까운 일이요 가슴 아픈 일이잖습니까. ( 끝 )
2024-07-22 22:06:14 | 최영오
주민등록증이 김신조 사건 이후에 생긴 것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해박한 지식과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항상 좋은 글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마지막 때에 마음을 다잡아 인간적으로 친하고 가까이 계신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아이들을 바르게 양육하는 데 더 힘쓰겠습니다.
2024-07-22 19:49:45 | 김지훈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성도의 책무는 부족하게 하면서 목회자와 그 가족들에게 높은 기대를 갖고 있는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됩니다.
2024-07-22 19:40:22 | 김지훈
부제
1. 목사가 건강해야 성도를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교회가 건강하게 된다.
2. 슈퍼맨 목사는 없다.
안녕하세요. 정관영 형제입니다.
‘목사도 사람이다’란 제목의 독서 후기를 몇 차례 정도 남기려 합니다.
내용 대부분은 책을 요약 정리한 것이고
제가 사랑침례교회에 약 10년 동안 출석하면서 느낀 점을 뒷부분에 첨부하는 형식이 될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목사님이 이 책을 소개하실 때
저는 많은 경건 서적 중 하나로 여기고 제 나름에선 목사님, 사모님, 교회에 대해 마음을 열고 있다고 생각해서 읽지 않았습니다.
혹시 책을 읽지 않은 채 목사님, 사모님, 교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호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으시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관점에서 목사님, 사모님, 교회를 위한다는 것과 연구하고 조사하면서 검증되어 현실적으로 목사님, 사모님, 교회를 위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크다는 걸 저는 책을 통해 느꼈습니다.
의미 있는 책을 읽으면 정리하려는 제 습관에서 시작된 칼럼이 사랑침례교회에 다니면서도 아직 사랑침례교회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미약한 이 글을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으면 합니다.
PS. 저자는 미국 장로교 목사들로 인용하는 글에서 정서상 약간 생소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내용을 "한국 교회와 사랑침례교회에 적용"하는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추천사(스콧 사울스-내쉬빌 크라이스트 장로교회 담임목사)
하이라이트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 목사는 신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목회 말고 그 일을 업으로 삼으라고 충고했다.
-이는 목사에겐 높은 수준이 요구되니 신중히 따져서 결정하는 뜻과 함께 목회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1. 스콧 사울스는 20대 신학생 시절 지역 신문에 만성 우울증에 걸린 30대 젊은 목사의 자살 기사를 읽었다. 자살한 그는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와 기도로 극복하려 했지만 끝없는 악마들과의 싸움 대신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있기로 결단했는데 아이러니한 건 그 ‘악마들’중 일부가 그가 목회한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
2. 또 세인트루이스 지역의 다른 목사도 우울증 문제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자 예수님을 믿었고 은혜를 전하며 복음의 희망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던 유능한 목사들이 왜 자신에 대해서만은 희망을 잃어버리고 말았을까? 하는 의문이 스콧 사울스의 세계를 흔들었다.
3. 목사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나 홀로 세상을 걷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특히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세상을 등진 두 목사도 그들을 따르고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진정한 친구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서를 보면 너무 외롭고 너무 힘들지만, 교회에 폐를 끼칠까 봐서 아무에게도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목사는 절대 약해지면 안 되고 다른 사람처럼 나약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면 안 되는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4. 수많은 목사가 감정의 나락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목회하는데도 그런 게 아니라 목회를 하기에 그런 것이다.영적 전쟁에서 오는 압박감과 자기 스스로와 교인들의 비현실적인 요구, 무책임하게 늘어놓는 목사에 대한 험담과 오해, 휴일(휴식, 충전)의 결여, 과중한 업무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와 갈등, 남과의 비교, 경제적 어려움 같은 문제들로 목사들은 다른 직종의 사람보다 불안과 우울증세를 겪을 확률이 높고 육신과 정신의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5. 톰 레이너 박사는 교인을 대상으로 목사가 일주일에 몇 시간을 목회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조사한 적이 있는데 최소 114시간(주일을 빼면 하루 19시간)을 목회에 투자해주길 바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교인들이 부당하고 터무니없는 것을 목사에게 요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6. 목회는 목사 가족의 희생도 불가피하게 만든다.교인 중에는 목사에 대한 다양한 불만을 목사 사모를 동네북으로 삼아 신나게 두들겨대는 교회 내의 불만세력들이 있다. 목사 사모는 무척이나 외롭고 고독한 자리다. 가족만큼이나 교회도 목사를 언제나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7. 목사 자녀 또한 희생이 불가피하다.교인들은 목사의 어린 자녀들마저 성숙한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바란다. 자연히 목사 자녀들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또래 친구들처럼 굴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부담을 느껴 항상 예의 바르고, 착하고, 똑똑하고, 신앙심 깊은 아이로 보이려고 한다. 이런 부담감 때문에 일부 목사 자녀들은 완벽주의와 스트레스에 정신적, 신체적으로 시달리고 일부 아이들은 반항의 길로 들어선다.
8. 목사 자녀가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지키기란 매우 어렵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교인들의 주목을 받아 여섯 살배기도, 10대의 청소년도 똑바로(?) 모범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노골적인) 압력에 시달린다.
9. 이런 현실적 문제들 때문에 도드 목사님과 맥누선 목사님이 고맙게 느껴지며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교인이라면, 목사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예수님을 받드는 길인지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머리글(래리 맥누선-썬스케이프 수련회 사역자)
하이라이트
-교회의 비극은 곧 당신의 비극이다. 당신과 당신 가족은 목사로부터 신앙의 도움을 받을 것이고 교회는 목사의 지도력으로 운영될 것이다.
-교회의 건강 상태는 일차적으로 지도자의 정서적, 영적 건강 상태에 달려 있다. (피터 스카지로)
1. 몇 달 전만 해도 교인들이 손뼉을 치며 목사님 최고라고 치켜세우더니 석연치 않은 이유로 목사를 해임하는 일은 미국에선 다반사로 교회에서 쫓겨난 많은 목사는 비난의 포화 속에 좌절하고 무너진다. 가족을 부양할 다른 방법이 있다면 많은 목사가 목회를 그만둘 것이다. 미국의 교회들은 지금 쇠퇴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교회를 이끌어갈 목사들이 건강하지 못해서다.
2. 교회의 비극은 곧 당신의 비극이다.당신과 당신 가족은 목사로부터 신앙의 도움을 받을 것이고 교회는 목사의 지도력으로 운영될 것이다. 당신의 교회가 부흥해서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길 원한다면 반드시 목사의 건강(영적, 신체적, 정서적)부터 챙겨야 한다.
【목사의 세계】
1. 지난 5년간 목사와 전도사를 해임한 교회가 미국 교회의 3분의 1이나 된다. 사태의 발단은 보통 소수의 불만분자, 영향력 있는 장로 권사들이다. 그들은 목사의 단점과 실수를 빌미로 교인들을 선동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수의 목소리는 다수의 목소리를 누르고 세력을 얻는다. 소수의 교인이 목사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끌어내리는 동안 다수의 교인은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쳐다보며 침묵한다.
2. 목사에게 요구되는 역할들은 상상을 초월한다.훌륭한 설교자, 자상한 상담가, 유능한 행정가, 과감한 비전 제시자, 노련한 전략가, 수완 좋은 모금가. 강력한 지도자······
3. 목사의 일거리는 한도 끝도 없다 보니 좌충우돌을 피할 수 없어 비난은 일상사이고 장시간의 격무는 삶과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갈수록 피로가 쌓이고 회의와 좌절감이 찾아드는데 이런 상황에서 건강하게 살아남을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의 오해와 몰인정이 하루하루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스스로가 무능한 인간처럼 느껴져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4.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매달 천오백 명의 목사와 전도사가 사임을 한다고 하니 활력 있고 재능 있는 헌신적인 주의 일꾼들을 그토록 많이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미국 교회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겠는가?
5. 피터 스카지로는 “교회의 전체적인 건강 상태는 일차적으로 지도자의 정서적, 영적 건강 상태에 달려 있다”라고 했는데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당신 교회의 목사가 건강해야 당신도, 당신의 가족도, 당신의 교회도 건강하다. 나아가 당신이 사는 지역과 사회와 국가도 건강해지는 것이다.
6. 지치고, 우울하고, 좌절감에 시달리는 목사가 어떻게 교회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많은 목사의 삶이 고달프지만, 목사는 보통 힘들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교인들에게 징징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7. 목사도 다른 교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더 높은 존재도 아니고 더 천한 존재도 아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일 영적인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주일 설교나 각종 설교를 통해 당신과 당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도와주고 그 진리를 삶에 적용하도록 이끌어 준다. 매주 성경을 손에 들고 사람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8. 그러나 목사의 역할은 주일 설교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교인들에게 현명한 상담을 해주고, 지혜와 소망을 심어주고, 고난의 순간과 기쁨의 순간에 함께 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질문에는 허리를 굽혀 대답해주고, 노인의 마음에는 위안과 소망을 주어야 한다. 목사에겐 고정된 일과가 있어도 수시로 다양한 변수들이 일어난다.
9. 목사는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행정가이기도 하다. 정규직 교역자와 일하는 소수의 복된 목사도 있지만 대부분 목사는 뚜렷한 자기주장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과 교회 운영과 행정을 함께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다루면서 행정을 처리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고 장담컨대 목사들 대부분은 교인들과의 인간관계를 다루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10. 교단 지도자들, 동료 목사들, 교회 교역자들, 교인들, 심지어 목사의 가족들도 목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기대해 목사를 짓누르며 활기를 잃어버린다. 목사 어깨에 얹힌 짐이 많고 무거워질수록 목사 개인의 신앙생활이 무너지고나면 목사의 사생활이 타격을 받는다.성경 공부와 개인 기도는 목사의 필수 의무이지만 눈에 보이는 다급하고 과중한 교회 업무에 치이면 뒷전으로 밀려나 허무감과 회의가 찾아와 의기소침해진다.
11. 교인들 누구에게나 시련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자녀의 탈선, 불의의 사고, 질병, 실질, 가정 파탄, 이혼 등등······. 그럴 때 교인들에게 필요한 건 상처를 어루만지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목사다.
【도움 없이는 실패할 게 불 보듯 뻔하다!】
1. 이 세상은 예수님이 필요하다. 당신이 다니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사와 교인들이 하나님 왕국을 위해 연합할 때 살아서 활력이 넘치는 일이 일어난다. 교인들의 도움 없이, 목사 혼자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세 번이나 요청하셨지만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해 곯아떨어졌다.
2. 목사가 짊어진 짐을 예수님과 비교할 순 없지만 때론 목사들도 예수님처럼 모든 짐을 혼자 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사실 대화의 통로가 막힌 경우가 많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런 형태가 바뀌지 않으면 목사들은 사명을 감당하는 데 실패할 것이고 그 실패는 곧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3. 모세의 양옆에는 아론과 홀이 서 있어서 모세의 팔을 들어주어 모세가 계속해서 지팡이를 들 수 있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현재의 교회들도 마찬가지다. 목사, 교인, 교역자 모두 필요한 일꾼이다. 하지만 곁에서 팔을 함께 올려주는 사람이 없어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목사들이 많다.
4. 제리와 낸시 월시 목사 부부 이야기는 30~33페이지에 있는데 낸시 사모가 외도로 불륜을 저지르고 떠나려 했지만, 목사 남편과 교회가 용서하고 받아주어 교회로 돌아와 성장한 에피소드를 다룸.
5. 글쓴이(래리 맥누선)는 목회자 자녀로 태어나서 성장 후 목사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도덕적인 큰 잘못으로 교회에서 해고되고, 소송이 진행되어 결국 감옥에 가는 사건이 전 미국에 뉴스로 보도되어 전국적인 파문이 발생했다. 결국 글쓴이는 주일 예배 때 해명하면서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쏟았지만, 교인들이 보여준 연민과 사랑으로 좋은 교회가 되었다는 에피소드는 33~34페이지에 있음.
【목회자 돌봄 사역】
1. 목회자들이 가끔 교회를 떠나 재충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나 더 중요한 건 목회 현장과 최전선에서 목사를 도와주는 일이다. 목사도 언제든 상처받을 수 있고 여느 인간처럼 유혹에 흔들리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양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마음과 한뜻을 가진 동행자들이 곁에 있으면 목회는 즐겁고 신나는 모험이 된다.
2. 좋은 교회의 교인들은 목사도 지친다는 걸 알고 아론과 홀이 되어 곁에서 짐을 받쳐주지 않으면 목사가 쓰러진다는 것을 안다. 짐은 혼자서 지면 안 되고 여러 사람이 나눠서 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결국 목사와 장로와 교인들이 서로를 위하고 힘을 합친다면 목사가 상처받고 탈진하는 비극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2024-07-22 19:12:56 | 정관영
글을 다 읽고나니 끝이 더 가까워진 기분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믿는 자들은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좋은 글 소개 감사합니다.
2024-07-19 11:38:50 | 이남규
투명사회와 통제사회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31명이 고령산과 북한산을 넘어 청와대를 향했다. 이것을 '1·21 무장 공비 사태'라고 부른다. 31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신조는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고 말해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에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주민등록증의 탄생이다. 효과적인 간첩 색출을 위해 전 국민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남북 관계 특수성 때문에 한국은 세계 최고 효력을 갖는 신분증 제도를 갖추게 됐다.
미국에는 주민등록증 같은 범국가적 신분증이 없다. 주별 운전면허증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정도다. 정부가 공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국민 개개인 정보 수집에 제한을 두기 때문이다. 종이로 된 사회보장 카드가 있지만 이 카드 번호로는 연령, 성별, 거주지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알 수 없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일본 등 웬만한 선진국에는 국가 차원의 신분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기류에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유엔에서는 신분증 관련 초대형 프로젝트(ID 2020)가 진행 중이다. 목표는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디지털 신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로드맵은 '2020년 기술적 토대 마련, 2030년 목표 달성'이다.
기술적 토대는 이미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ID 네트워크' 개발을 완료했다고 한다. 조만간 디지털 ID로 전 세계 어디서나 출생, 국적, 거주, 신용 조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아마도 향후 디지털 ID는 '스마트폰 속 ID' 방식으로 구현될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반면 식별번호는 모든 사람에게 부여돼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ID의 궁극적 지향점은 다름 아닌 '인간의 신체'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인도 국민의 90%(12억 명) 이상이 생체 기반 디지털 ID(아드하르)를 갖고 있다. 인도 국민들은 상점과 병원에서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카운터에 설치된 스캐너로 지문이나 홍채를 스캔한다. 이를 통해 신원이 확인되면 고객 은행 계좌에서 해당 상점 계좌로 사용 금액이 이체된다.
디지털 ID와 함께 주목받는 것이 디지털화폐(CBDC)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각국 중앙은행들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안정적 통화정책을 교란할 수 있다고 보고 CBDC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CBDC가 도입되면 원, 엔, 달러 등 각국 법정 화폐가 디지털로 바뀐다. 정부는 편리성과 효율성, 완벽한 알리바이 입증과 완전범죄 퇴치, 물 샐 틈 없는 사회보장 등 각종 장점을 앞세워 생체 ID와 CBDC 도입을 홍보할 것이다.
문제는 치명적 부작용이다. 디지털 ID, CBDC에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개개인의 동선, 각종 상거래 행위가 실시간 체크된다.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투명하게 벌거벗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투명사회'다. 사람들은 늘 투명한 세상을 꿈꿔왔다. 투명성이 신뢰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투명사회는 신뢰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통제사회, 감시 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모든 것이 벌거벗겨진 투명사회에서 권력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특정 개인의 삶을 옥죄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비슷한 일을 목격했다.(출처 : 매경)
잘 알다시피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모든 사람에게 이마나 오른손에 표를 받게 하고, 이 표 없이는 매매를 할 수 없게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디지털 ID와 CBDC 도입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 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요한계시록 13장 16~17절)
2024-07-18 23:22:50 | 이규환
-우리 햇수의 날들이 칠십 년이요,강건하면 팔십 년이라도 그 햇수의 위력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 위력이 곧 끊어지매 우리가 날아가 버리나이다- 시편 90편 10절 하나님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후로도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때 또는 변명핑계이유를 대고 싶을때 하나님말씀으로 정신차리고 판단, 회개 하겠습니다~^^
2024-07-12 22:39:07 | 목영주
이세벨의 처참한 죽음와 회개의 기회
열왕기하 9장 30절~37절까지 '이세벨의 처참한 죽음'이 나온다. 이세벨의 비참한 최후를 읽으며, 그녀가 조금이라도 빨리 회개를 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여러 번 회개의 기회를 놓쳤다.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로서, 그녀의 악행과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께 진노를 샀다. 로마서 2장 5절은 "오히려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이세벨의 최후를 잘 설명해 준다.
이세벨은 여러 차례 회개할 기회를 가졌지만,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1. 엘리야의 경고: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대언자들과 대결한다. 엘리야는 바알의 대언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하나님이 참된 신임을 증명했지만, 이세벨은 이를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이세벨은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 했다(열왕기상 19:1-2). 이 사건은 그녀에게 명백한 경고였지만, 그녀는 이를 무시했다.
2. 아합 왕의 회개:
열왕기상 21장에서 나봇의 포도원 사건 이후,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다. 아합은 엘리야의 말을 듣고 옷을 찢고 금식하며 회개했다(열왕기상 21:27-29). 이세벨은 이 때에도 남편의 회개를 보고도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3. 예후의 등장:
열왕기하 9장에서 예후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이세벨의 죄악을 심판하러 온다. 예후가 이세벨에게 다가올 때, 그녀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예후를 조롱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열왕기하 9:30-33).
이세벨은 여러 번 회개할 기회를 가졌지만, 이를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악행을 지속했다. 엘리야의 경고, 아합의 회개, 예후의 등장 등 여러 차례 하나님은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에게도 회개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아야 함을 잘 보여주는 것 아닌가!!!
2024-07-11 08:31:11 | 이규환
일상에서의 작은 증언을 실천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4-07-09 14:13:50 | 김지훈
형제님, 감사합니다^^
작은 것의 중요함을 일깨우시네요.
2024-07-05 18:29:47 | 이수영
작은 소녀의 증언과 복음 전파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시리아 군대 대장 나아만의 나병 치유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작은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사마리아에 있는 대언자 엘리사를 소개하며, 나아만이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녀의 간단한 증언은 나아만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과정을 통해 복음이 어떻게 전파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1. 나아만의 나병
나아만은 시리아의 군대 대장이었지만 나병에 걸려 있었다. 나병은 당시 치유가 불가능한 병으로 여겨졌으며, 사회적으로도 큰 낙인이었다. 그는 그의 지위와 권력에도 불구하고 이 병을 치유할 수 없었다.
2. 작은 소녀의 증언
나아만의 아내에게는 사로잡혀온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가 있었는데, 이 소녀는 나아만의 상황을 보고 그의 아내에게 말한다. “내 주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대언자와 함께 계신다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분의 나병을 고치리이다,” 이 소녀의 간단한 증언은 나아만의 아내를 통해 나아만에게 전해졌고, 나아만은 이 정보를 믿고 행동에 옮기게 된다.
3. 왕에게 전파됨
나아만은 소녀의 말을 듣고 시리아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을 보내며, 그가 나병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왕은 당황했지만, 엘리사는 이 소식을 듣고 나아만을 자신의 집으로 부르도록 한다.
4. 엘리사의 치유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르단 강 속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명령한다. 처음에 나아만은 이 명령에 화가 났지만, 그의 종들의 설득으로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었고, 그의 나병은 깨끗이 치유된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돌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복음 전파의 원칙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1. 일상에서의 작은 증언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작은 증언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믿고,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2. 믿음으로 행동을 촉구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이들이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행동할 때, 복음의 진정한 힘을 경험할 수 있다.
3. 파급력 있는 전파
복음은 한 사람에게 전해진 후,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4. 순종의 중요성 강조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해야 한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열왕기하 5장에서 나아만의 나병 치유 이야기는 작은 소녀의 증언이 어떻게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복음 전파의 중요성과 원칙을 배울 수 있다. 작은 증언, 믿음의 행동, 파급력 있는 전파, 순종의 중요성을 기억하며, 우리의 일상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이러한 원칙을 실천하면 좋겠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2024-07-04 18:45:37 | 이규환
좋은 글입니다.
2024-06-28 11:40:51 | 이남규
권위가 낮은 사람에게도 겸손,친절할 수 있는건 하나님계심을 아는것으로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작은 존재라는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인듯 싶어요~^^ 드러나지않아도 묵묵히 교회섬겨주시는 형제님자매님들께 많이많이 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2024-06-27 23:01:27 | 목영주
교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이라 냄새가 납니다.
신기하게도 언행에 묻어나요.
겸손한 성도가 많으면 분위기가 부드럽지요.
투기와 질투가 있는 곳엔 겸손이 사라지고요.
모쪼록 우리는 주님을 인식하며 살아야 겠어요.
항상 코람데오!
2024-06-27 20:00:58 | 이수영
무릎을 꿇는 용기
무릎을 꿇는 것이 비겁한 것일까? 열왕기하 1장에서는 아하시야 왕이 병상에 누워 엘리야를 데려오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명령은 받은 대장들은 요즘 말로 하면,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서 체포영장을 가지고 체포하려고 온 것이다. 세 명의 오십인 대장이 엘리야를 데려오려 하지만, 그들 중 두 명은 부하들과 함께 죽고, 세 번째 대장은 살아서 엘리야를 데리고 왕에게 간다. 죽은 오십인 대장과 살게 된 오십인 대장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
첫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그때에 왕이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 올라갔는데, 보라, 엘리야가 산꼭대기에 앉아 있으므로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이르시기를,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엘리야가 오십인 대장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네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하며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렸더라.(열왕기하 1장 9-10절)
첫 번째 오십인 대장은 왕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 엘리야에게 올라가 "하나님의 사람아, 왕이 내려오라 하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 대장은 그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들을 태워버리게 했다.
두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왕이 또한 다시 다른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이같이 이르시기를,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네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하매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렸더라.(열왕기하 1장 11-12절)
두 번째 오십인 대장 역시 비슷하게 엘리야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아, 왕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다."라고 말했다. 이 대장 또한 엘리야의 권위를 무시했고, 그 결과 첫 번째 대장과 마찬가지로 불에 타 죽게 되었다.
세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왕이 다시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보내므로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이 올라가 엘리야 앞에 온 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에게 간청하며 그에게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내 생명과 당신의 종들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 눈앞에서 귀히 여기소서. 보소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전의 오십인 대장 두 명을 그들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태웠으니 그러므로 이제 내 생명을 당신 눈앞에서 귀히 여기소서. 하매 주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그들 두려워하지 말고 그와 함께 내려가라, 하므로 엘리야가 일어나서 그와 함께 왕에게 내려와(열왕기하 1장 13-15절)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은 앞선 두 대장과는 달리 겸손하게 엘리야에게 다가갔다. 그는 엘리야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목숨과 부하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겸손과 존중이 엘리야에게 전해졌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와 함께 내려갔다.
교훈
1. 존중과 겸손의 중요성: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장은 엘리야의 권위를 무시하고 명령조로 대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반면, 세 번째 대장은 겸손과 존중으로 엘리야에게 다가갔고, 이는 그의 생명을 구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특히 권위자와 소통할 때 겸손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2. 하나님의 권위 인식: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그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하고, 그의 말씀과 그의 대리자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3. 기도와 간청의 힘: 세 번째 대장은 겸손하게 엘리야에게 간청했다. 이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청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열왕기하 1장의 이야기는 겸손과 존중,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기도와 간청의 힘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러한 교훈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겸손과 존중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2024-06-27 09:16:34 | 이규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한 형제님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2024-06-21 13:05:14 | 이남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을 인공지능에 알리는 방법
인공지능에게 킹제임스 성경을 학습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해결 방법을 알게 되었다.
1.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문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이미 학습해서 다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ChatGPT4o(챗지피티포오, 최근 버전)에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인용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과 창세기 3장 1절을 설명해 달라고 하니, 아래와 같이 답변을 주었다.
요한복음 3장 16절(John 3:16)은 기독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 중 하나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그로 인해 주어진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의 중심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 KJV)에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창세기 3장 1절(Genesis 3:1)은 인간의 타락과 죄의 시작을 다루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 내에서 죄의 기원과 유혹의 본질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 KJV)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Now the serpent was more subtil than any beast of the field which the Lord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의 문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GPTs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GPTs는 ChatGPT4o에 탑재되어 있다. ChatGPT4o에 들어가서 ‘Explore GPTs’를 클릭하고 이어서 ‘create’ 버튼을 눌러서 생성할 수 있다.
GPTs는 GPT가 여러 개 모여 있다(s)는 의미인데,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의 본래 역할에다가 특별한 용도의 GPT가 탄생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앱스토어에서 필요한 앱(어플)을 내려 받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만들어서(가칭 :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 100% 활용하기) GPTs내에 공개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이용자들은 우리가 만든 이것을 클릭해서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해 준다. 얘는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을 공부한 GPT인 것이다.
2024-06-19 19:48:11 | 이규환
참 좋은 말씀입니다. 미운 생각 덜하게 바쁜 일상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유일하게 제가 뿌듯해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매일 말씀 한줄을 암송하게끔 환경을 만들어준 거예요~^^ 오늘도 주인이신 예수님께 남은 오후를 드립니다..
2024-06-14 16:24:18 | 목영주
Redeeming the time & Fasting
'Redeeming the time'이라는 구절은 에베소서 5:16과 골로새서 4:5에 나온다. 여기서 구속(redeem)은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재조정하고, 세속적인 요소들로부터 시간을 구출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서 어디로 구속해야 하는가?
마귀에게 빼앗긴 시간을 찾아야 한다. 에베소서 5:16에서는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악한 날'은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하는 유혹과 세속적인 방해 요소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시간을 마귀의 영향에서 구속한다는 것은 이러한 세속적인 요소들로부터 시간을 되찾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어떻게 구속해야 하는가?
시간을 구속하는 방법은 금식(Fasting)이다. 에스라 성경사전을 보면 '금식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은 슬픔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할 때 금식했다. 이때에는 몸이 영양분 섭취를 거부하면서 굶주림으로 인한 식욕을 유보시킨다.' 고 나온다. 금식은 음식을 거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좋아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을 자랑하는데 사용하는 영양분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시간을 사용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것이 SNS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절제해야 한다. 금식을 통해 우리는 세속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구속한 다음에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구속된 시간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개인의 신앙 성장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들로 채워져야 한다. 골로새서 4:5에서는 "Walk in wisdom toward them that are without, redeeming the time."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올바른 본보기가 되라는 의미다.
구속된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반영해야 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한 활동으로 채워져야 한다. 구속된 시간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연단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 연구와 기도, 묵상 등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영적 성숙을 추구할 수 있다.
영적 성장에 집중한다. 금식을 통해, 우리는 그 시간을 성경 읽기와 묵상, 기도에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또 금식으로 절약된 시간과 자원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식하면서 절약한 비용을 기부하거나, 그 시간 동안 자원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Redeeming the time"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명령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모든 순간을 영적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2024-06-14 08:30:45 | 이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