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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개역성경으로 말씀을 읽을 때 좋아했던 구절이 이사야 26장 3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입니다.   여기서 심지는 우리가 쉽게 연상할 때 초를 지탱하는 심지를 이야기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음이 한결같고 믿음직스런 사람을 이야기 할 때도 '그사람 심지가 참 곧은 사람이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흠정역으로 보니, 주께서는 생각을 주께 고정시킨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인데도 참 의미가 확연하지요. 우리에게 보다 명확하고 선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사실이 참 새삼 은혜로 다가옵니다.   다음은 제임스 낙스목 사님이 쓰신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요즘 자매모임에서 <성령의 열매>를 읽고 함께 교제를 나누기에 어젯밤 읽다가 너무 좋은내용이라 잠시 공유합니다.    여기 보시면 지키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그분은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십니다. 완전한 평강(perfect peace)이란 말씀이 실로 놀랍지 않으십니까? 누구를 지키십니까? 그의 생각(whose mind)이 주님께 머물러(is stayed)있는 자를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세계를 생각 속에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발적으로 생각을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고정시키는 사람들에게는 완전한 평강(화평, 평화)을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6장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건강과 질병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질병이 왔을 때도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머물게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번영을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이 닥칠 때도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고정시킬 수는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올바른 선택이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환경과 여건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thought)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악한 추측과 상상과 생각을 사로잡아 주님께 드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진실한 것, 정직한 것, 올바른 것, 순수한 것 ...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살아갈 때 영적 승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의심, 두려움, 염려, 분노, 쓴뿌리, 이 모든것들 대신 위에 열거된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의 생각을 가득 채운다면 곧 그것이 승리입니다.   우리 모두 생각대신 기도를 하십시다. 아멘!    구구절절 귀한 내용이라 올려봅니다. 샬롬~
2014-12-11 09:45:37 | 김경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4:17)"   만약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다면 얼마나 반갑고 기쁘겠습니까!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 짧아서, 우리가 그분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하는가 싶으면, 어느 새 그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장차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뵙게 될 날을 생각만 해도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그분께서는 잠시 머물다 떠나시지 않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구세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경이로움에 잠겨..넋을 놓고 바라보리라. 영원 속에서 그분의 기이한 사랑을 흠모하리라..)   천국에서는 마귀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계21;4)" 하신 말씀처럼 슬픔도 없고, 아픔도 없습니다. 아무 걱정도 없이, 찬란한 영광중에 계시는 우리 주님을 벅찬 가슴으로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의 그 빛나는 얼굴을 항상 바라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마음 설레는 일입니까!   아, 그 날이여, 언제나 오려는가! 언젠가 저 죽음의 문을 넘어서면, 우리는 빛나고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우리 주님의 눈부신 영광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말할 수 없는 기쁨의 교제를 누리는 천국의 입구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이란, 보내는 우리에겐 아쉬운 이별이지만, 떠나는 본인에게는 사랑의 주님과의 설레는 상봉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슬퍼하면서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스펄전의 묵상중.   "소천하신 장모님을 생각하며 발췌하였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신 형제 자매님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드립니다."
2014-12-11 00:29:39 | 박진태
샬~롬 저는 노란 들국화 향기보다 하얀 백합꽃 향기를 참 좋아합니다.. "어두운 밤이되면 은은히 비춰주는 달과별을 보며 너는 외롭지 않고 즐겁다고 속삭이겠지" 란 글귀에선 그간 잊고 살았던 어릴적 소녀의 감성을 깨우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떠한 환경이 주어지든 그 환경을 잘 다스리고 정리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면서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분명 능력의 하나님 손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며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라 믿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속마음을 짐작할수 있으며 좋은말에는 늘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나쁜말에는 늘 독한 냄새가 난다는 탈무드의 지혜는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새겨야할 말임을 또 한번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느곳에 있든 잠시라도 주님의 기쁨의 도구로 쓰임받는 시간 되길 기도 합니다.. 자매님,귀한글 감사 합니다.^^
2014-12-10 11:44:26 | 이명숙
지난 주일에는 장모님이 돌아가셨다고 떡을 제공해 주셔서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인지 몰라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장례식에도 가보지도 못하고 떡만 맛있게 먹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섬기시는 모습 고맙습니다. 어느 형제님인지 살짝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늘 좋은 글은 보는데 어느 형제님인가도 궁금했고요.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014-12-10 06:43:58 | 윤정용
잘 살아가는 길   어떤 시골 마을에 이상한 장사꾼 하나가 들어 왔습니다. 그 장사꾼은 이렇게 외치면서 마을을 누비고 돌아다녔습니다.    “자, 여기 잘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잘 사는 방법을 사시오! 이 방법을 사면 절대 실패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장사꾼이 소리치는 말을 듣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길을 걷던 사람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장사꾼이 떠들고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잠깐 사이에 장사꾼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여보시오,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을 내가 사겠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한 랍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나한테도 파시오. 나도 삽시다.”하고 떠들어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사꾼은 다른 장사꾼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옷도 잘 입었고 흰 수염을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점잖게 생긴 노인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시오. 오늘은 특별히 잘 사는 방법을 공짜로 나눠 주겠소. 바로 이 말이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이오. 사람의 속은 들여다볼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속마음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좋은 말에는 늘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나쁜 말에는 늘 독한 냄새가 나는 법입니다. 혀는 사용하기에 따라 가장 좋은 것도 되기도 하고 가장 나쁜 것도 될 수도 있습니다.”   ㅡ탈무드 지혜의 책에 있는 글을 옮겼습니다.ㅡ   우리가 다 많은 것에서 실족하나니 만일 어떤 사람이 말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면 바로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요 능히 온 몸도 제어하는 사람이라.       약 3 ; 2                                                                      주여 나를 잡아주소서   찬란하게 아름다운 세상에 취해서 마음을 뺏기고 주님을 잊고 살까 두렵습니다. 달콤한 세상 재미에 빠져 먹고 마시며 즐길 때 주님의 십자가를 멀리 떠나갈까 두렵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나를 받아 주소서. 외롭게 홀로 서 있을 때 포근한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감싸 주시고 힘이 없고 연약하여 울고 있을 때 주님께서 힘 있는 능력의 손으로 나를 잡아 주소서.   주여 나를 주님의 기쁨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가 주님을 의지합니다.                                        환     경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그 환경은 벗어날 수가 없답니다. 환경을 잘 다스리고 정리해 나간다면 어떠한 환경도 그 사람에게는 좋은 벗이 될 수 있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보면 그 환경이 그 사람을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이든지 지배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이 그를 감당치 못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는 능력 있는 분의 손에 붙잡힌 자일 것입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이런 삶을 살 수 없답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감사하는 자는 그분의 자녀일 것입니다.                                                      들  국  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들판에 홀로 피어서 열심히 열심히 아름다운 모습을 바람에 휘날리며 그윽한 향기를 멀리멀리 보내고 있는 들에 핀 들국화야!   무엇이 그리 기뻐서 늘 방실방실 웃으며 해님을 보고 웃고 있느냐 ? 어두운 밤이 되면 은은히 비춰주는 달과 별을 보며 너는 외롭지 않고 즐겁다고 속삭이겠지.   바람에 부탁해서 삭막한 도시 속에서도 맡을 수 있도록 너의 그윽한 향기를 실어 보내렴.   지치고 찌든 삶 속에서 너의 향기로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아주 많이 보내다오. 눈으로 안 보여도 너의 존재로 세상이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행복할 거야 .   ㅡ 위의 글 들은 십 년 전쯤 적어 놓았던 글들입니다. ㅡ                                                            
2014-12-10 06:30:37 | 윤정용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까지 자신을 못 박은 죄인들의 용서를 하나님께 간구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용서라는 것은 심지어 사치로까지 여겨집니다. 때로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 관계가 금방 회복되고 화목하게 보이는 것만을 용서와 화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요 동역자였던 바나바와의 강렬한 갈등을(행15:36~41)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바로 그 갈등의 원인이었던 마가에 대한 애정 어린 평가로써(딤후4:11) 갈무리했던 것처럼 어떤 경우에는 화해의 열매가 무르익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살 수 있길 저도 간절히 소망합니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분주함 속에도 변함없이 신실하게 좋은 글을 다듬어 올려 주셔서 항상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4-12-09 16:49:05 | 김대용
"베드로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그를 용서하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하라.(마18:21-22)"   용서는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다치는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상대에게 원한과 앙심을 품고 용서하지 않으면 내 속사람에게 독이 퍼져 정서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병에 걸립니다. 그 병은 인간이 만든 약으로는 고칠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합니다. 남들은 실수할 수 있지만 나는 절대 실수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과민합니다. 남들의 말과 행동을 모두 나와 연결시켜 해석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속으로 파고들어, 삶의 참여자가 아닌 방관자가 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래서 대개 외롭고 비판적이며 불안합니다.   용서하려면 먼저 용서받아야 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신 것을 깨달았으면 여러분도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내면에서 앙심의 독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용서가 필요함을 인정하기 전에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가 힘든 대목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항상 남을 비난합니다. 다른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면 자신이 착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단 자기가 그렇게 착하다고 믿으면 용서의 필요성을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뜻으로 사도 바울은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엡4:32)"고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눅23;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피 흘리셨기에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무슨 수로도 그분의 용서를 얻어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그분은 무조건 여러분에게 용서를 베푸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해주시는데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아무리 많은 배상금으로도 보상될 수 없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여러분의 적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입니다.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오늘부터 용서의 마음을 기르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사랑으로 채워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다음번 누가 여러분에게 상처나 모욕을 주거든 마음으로 즉시 용서하십시오. 겉으로든 속으로든 되받아치려는 성향을 일체 물리치십시오. 하나님께 너그러운 태도를 달라고 기도하고, 상대를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증오는 불행과 속박을 주지만 용서는 자유와 기쁨을 가져다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워렌 위어스비).   "참고로 제가 올리는 글 중에 뼛속깊이 체험한 내용입니다."
2014-12-09 01:07:35 | 박진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 글을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보니 그 기준에서 벗어날 때가 참 많았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에서 '나'를 만들어 놓을려다 보니 삶 속에서 "이정도면 뭐~~" 하며 대충 만족해버리거나 교만해지는 삶이 반복되는가 봅니다. 날마다 환경을 통해서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민감하게 느끼고 반응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처럼 단순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2014-12-07 23:04:19 | 김상진
"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는 그것을 잃되 누구든지 나로 인해 자기 생명을 잃으려 하는 자 곧 그는 그것을 구원하리라.(눅9:23-24)"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셨고 여러분의 삶에 뜻을 두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생명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으셨고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육적인 생명과 영적인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생명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갈2:20)"고 말했습니다. 그의 생명은 자신을 위해 간수해야 할 보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 투자해야 할 보화였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삶은 딱 한 번입니다. 삶이 끝나면 더 이상 그리스도께 귀한 것으로 그 삶을 드릴 기회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의 소망은 남들의 길이 아닌 자기 길을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경주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경주에 승리하여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자신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주보다 오늘 좀 더 전진했는가? 아니면 더 뒤떨어지고 영적으로 패배했는가? 다른 그리스도인을 기준으로 여러분을 측정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여러분에게 주시려는 그분의 상이 측정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경주하는 선수가 범할 수 있는 최악의 과오 하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릴보서 3장에서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늘 목표점에 두십시오. 다른 선수들은 주님께 맡기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베드로에게 하신 것과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2)"    사도바울은 기쁨으로 완주하기 원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7절에 그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 의의 관이 예비된 날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사명을 받았든 궁극적으로 그분의 은혜를 드러내는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고 선행과 종교 활동으로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세상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구원을 주신다는 복음 - 기쁜소식 - 알려 주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자 책임입니다. 행위 구원은 나쁜 소식입니다. 아무도 해 낼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 구원은 기쁜 소식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내 생명, 나의 길, 내 사명, 매일 아침 이 세 문구를 되새겨보면 좋을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는 내 생명을 내 것으로 아끼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 바치며 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길을 달리고 있는가? 나는 그분께 받은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문제가 무엇이든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드리면 그분이 여러분 안에 -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길, 여러분의 사명 안에 - 그분의 완전한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워렌 위어스비).
2014-12-07 22:39:47 | 박진태
형제님 올리신 글을 읽으니 언젠가 읽었던 가슴뭉클한 짧은글이 떠올라 적어봅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어느날, 자신이 그간 걸어온 삶의 길을 돌아보니 기쁘고 즐거웠던때는 발자국 네개가 나있는데 죽을만큼 괴롭고 힘든 인생의 구렁텅이를 지날때는 발자국이 두개여서 주님께 투덜댔답니다. "주님! 항상 저와 함께하신다고 하셨는데 왜 정작 제가 힘들고 어려울때는 함께있지 않으셨나요?" 그러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야, 네가 힘들고 어려운 절망의 구렁텅이를 지날때 내가 너를 안고 그 곳을 지났단다" 주님께 감사한 첫눈 내리는 12월의 첫날입니다.
2014-12-01 14:07:16 | 이정희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늙었으되 지금까지 의로운 자가 버려지거나 빵을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5)”  다윗이 자신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쓴 말입니다. 늙어서 자기 삶을 뒤돌아보던 다윗은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자기를 돌보셨는지 깨달았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아무리 늙고 싶지 않더라도 세월에는 속수무책입니다. 노화는 삶의 일부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고후4:16)”고 했습니다. 다윗이 젊었을 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셔 골리앗을 죽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늙었을 때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셨으며 나라를 안정시키고 성전 건축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시편 37편25절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기운을 북돋우시는 약속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바뀌고 삶이 어떻게 변하든 하나님은 절대 변치 않으시며 그분의 약속은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노년을 맞은 다윗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항상 자기와 함께 하셨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는 성경말씀에 자주 등장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마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그가 언제나 하나님 뜻 가운데 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낙심하여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범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은 다윗을 책망하고 징계해야 하셨지만 절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버림받은 기분일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25절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급에 대한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고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일상적 필요에 관심이 있으실까요? 물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떨어지는 참새도 지켜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예수님의 3년간 공적사역 중에도 사람들의 신체적, 정서적, 물질적 필요를 놀랍게 채워주셨습니다. 그분은 어린아이를 아끼셨고, 문둥병자들과 장애인들에게 시간을 내주셨으며, 굶주린 자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최고의 행적은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입니다. 인간의 가장 절실한 필요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자들의 애원에 귀를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슬퍼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에 응답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긴 생애를 돌아보며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절대 버리지 않으셨고 모든 필요를 채우셨으며 앞으로도 항상 채우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고 그분을 위해 살고 있다면,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어떠하든 안심해도 좋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다윗의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맡기십시오. 어느 날 여러분도 다윗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늙었으되 지금까지 의로운 자가 버려지거나 빵을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워렌 위어스비).
2014-12-01 00:47:06 | 박진태
어쩜 글을 이렇게 잘 쓰실까요? 생각을 정리하기도 벅찬데 생각을 잘 표현한 글 한편으로 다시금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낙엽도 제대로 보지 못한 가을을 보내고 벌써 내실을 다져야 할것 같은 계절이 기다리고 있네요. 이겨울...그리고 2014년의 한달을 그 어느때보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2014-12-01 00:39:03 | 주경선
형제님! 험난했던 믿음 여정을 다시금 글로 접하게 되어 은혜가 됩니다. 성도를 언제나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이후로도 형제님의 가정과 삶 속에서 늘 동행해 주실 줄 믿습니다.
2014-11-28 16:10:27 | 장용철
글로 읽으니 차분하게 보게 되네요. 참으로 우리 선진들의 신앙의 측면을 바로 보게 되고 그때는 성경이 그것 밖에 없었던 시대였지요. 지금은 바로 번역된 성경이 있으니 보는 눈과 들을 귀가 있으면 누구든지 올바르게 믿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2014-11-28 13:54:15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