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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사님의 글을 읽으니 1983년 방영되었던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 화면에 충혈된 눈을 떼지 못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질곡의 세월을 버티고 오늘을 일구어 온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노고와 무엇보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그리고 먼저 구원받은 자의 영적 책무까지 모든 것들을 차분하게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2015-01-03 09:27:23 | 김대용
후기 요약 내용 중 "주위에서 공동체를 만들라"는 메세지는 긴장을 주면서 저에게도 추천을 하시내요. 특히 "의도적으로 아주 가까운 친구 모임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는 지혜는 꼭 배우면서 실천하고 싶습니다. 실제 사회일원으로서 통념적인 정리성에 비춰볼 때 옛 친구들과 퍽 소원 단절되고 있기때문입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고립상황에서도 거의 부담이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평안하다는 점은 오히려 담론의 동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책을 읽고 바른 길을 걷도록 붙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1-03 01:50:53 | 최상기
책임(責任)의 사전적 뜻을 보면, ‘맡아서 행해야 할 의무나 임무. 또는 그것에 대한 추궁이나 의무를 지게 되는 제재’로 되어있다. 영어로는 ①responsibility (지위 또는 일에 대한 책임) ②blame (실패등에 대한 책임) ③charge (대금 청구) ④accountability (회계적 책임) ⑤obligation (법적 책임) 등 다양한 단어로 표현이 된다. 어제 저녁, 사위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관람하였다. 윤덕수라는 할아버지의 회고로 1950년 한국전쟁 때 흥남철수 작전으로 시작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덕수네 가족은 아버지, 엄마, 남동생, 끝순이, 막순이와 함께 6식구가 중공군의 공격을 피해 피난행렬에 밀려 들어간다. 아버지는 남동생을, 어머니는 여동생을, 덕수는 막내동생을 업고 밀려드는 인파속에서 철수하는 군함에 기어올라 간다. 군함에 막 올라타려는 순간 덕수가 업고 있던 막내 여동생을 떨어트리고 만다. 자신의 몸만 갑판위에 올라있고 여동생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는 순간 5가족은 오열을 터트린다. 그 순간 아버지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덕수에게 입혀주고 막순이를 찾아 다시 내려갈 중대 결심을 한다. 덕수는 안된다고 소리 소리를 쳤지만 아버지의 결심은 확고하다. ‘이제 네가 가족의 가장이니 어머니와 동생을 책임지라’고 당부를 하면서 군함 아래로 내려간다. 결국 아버지와 이별한 채 부산에서 피난만의 생활을 하게된다. 이후 덕수는 선장이 되려는 장래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동생들과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위해 독일의 탄광 광부로 지원하게 되고, 월남전 때 베트남 행을 자원하여 결국 고모가 운영하던 ‘꽃분이네’라는 가게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중략> 영화의 끝 무렵에, 덕수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부탁한 일에 대해 ‘이 정도면 그 책임을 다 한 것 같다’고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지난 날의 과거 회상을 마친다. 덕수 할아버지의 지난 삶에 우리나라 근대사의 모든 역경이 그 속에 다 녹아있다. 그러기에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 마음으로 눈으로 공감하며 받아들였다. 오늘 날의 모습이 덕수 할아버지와 같은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아버지가 기족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가족을 향한 책임과 부지런함이다. 때로는 강하게도 보이고, 고집스럽게도 보이고, 인정이 없어 보이는 듯 하지만 아버지라는 위치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덕수의 아버지는 덕수에게 자신의 겉옷을 입혀주고 찾을 가능성이 없는 딸을 찾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그 모습을 통해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아버지의 책임감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어려운 것을 경험한 세대는 자식의 세대에 어려움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어려움이 가져다 주는 고민과 갈등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책임을 지지않으려는 세대는 얼마나 위험한 세대인가?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본적인 책무라 생각한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셨다. 창조주께서 창조물들에게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죽음을 자원하셨다. 누가 죽음을 보여주기의 방편이라 생각하겠는가? 죽음은 아버지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며, 막중한 책임감의 최종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존경과 사랑과 신뢰를 갖게 된다. 아버지된 우리들은 비록 죽음까지는 가지 않을지라도 모든 상황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2015-01-02 13:06:09 | 조양교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엎드려 기도하는 지체들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하나님께 이뢰고 도움을 구해야 할 항목들이 너무 많은 것같습니다. 스펄젼이 설교할 때 지하방에서 기도로 함께 했던 수많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2015-01-02 09:04:22 | 조양교
송구영신 예배 후에 새벽 늦게까지 교회에서 함께 교제를 나누고 가셨는데 이렇게 또 글을 올려주셨네요. 새해 첫날 새벽 대화의 주제 중 하나였던 기도에 관한 스펄전의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1-01 20:18:33 | 김대용
"항상 기도하고 기도 중에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으라.(골4:2)"   성경에는 기도에 대한 말씀이 아주 많아서 기도의 책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실로 성경에는 기도에 관한 예화, 교훈, 약속들로 가득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의 사례만 봐도,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하던 야곱,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 다니엘, 마음을 다해 늘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던 다윗, 기도해서 하늘에 불이 내려오게 했던 엘리야, 감옥에 갇혀서도 찬양하며 기도했던 바울과 실라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외에 기도에 대한 명령이나 기도에 관한 가르침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는 아무리 많이 해도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쉬지 말고, 날마다 매순간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 지금 기도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영이 둔감해져서 자신의 영이 얼마나 헐벗고 굶주려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영혼의 초라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시기 바라십니다.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성도가 수줍어서 머뭇거리며 간구하는 것도 기도요, 악한 영들과 싸우는 성도가 주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도 기도요, 주님 품안에서 죽어가는 성도가 주님께 부탁하는 마지막 소원도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생명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 가운데 아버지의 얼굴을 구하며, 기도의 통로를 통해 하늘로부터 생명수를 받아 그 힘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밝아온 새해에는 날마다 더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님과 늘 깊이 교제할 수 있게 간절히 기도바랍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스펄전의 묵상중."
2015-01-01 11:36:38 | 박진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과, 이 시대의 구원방주 사랑침례교회, 그리고 그 백성의 진정한 평강과 은총이 이 역사를 일구어 나가시는 아버지하나님 안에서 방주의 맨앞에 선 정동수목사님과 그 성도들과 온 애국백성으로 부터 全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5-01-01 09:27:17 | 오영수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5:30)"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새롭게 창조되면, 내가 주님의 죽음에 연합되어 죽었다는 사실이 실 생활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곧 '나'는 항상 십자가의 죽음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고, 창조된 '새로운 나'는 모든 일에서 주님께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고 하시면서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셨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되시면 우리는 말 한 마디마저도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말과 행동은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선 "말하기를 더디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진노하는 것도 더디 하라.(약1:19)"   주님께서는 쓸데없는 장황한 말과 세속적인 언행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죽어야만 침묵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는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옛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말이 많은 것입니다. 장황스런 말들이 처리되도록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십시오. 우리는 매순간 주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만 의지하며 말하는 사람은 행동도 주님만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일에 아버지와 동행하시면서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셨던 모든 말씀은, 전적으로 아버지를 의지해서 아버지로부터 받아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순종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나'를 처리한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오 주여. 말을 지어내며 함부로 말하는 '나'를 십자가에 처리하소서. 오 주님, 우리의 말과 행동을 다스려 주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그 말만 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만 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도(제시 펜 루이스).
2014-12-30 00:41:14 | 박진태
제 아내가 자매 모임의 취지를 밝힌 글을 썼습니다. 어떤 모임이든 모임의 성격이 확실해야 모이는 분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매님들 간에 삶을 진솔하게 나누는 교제가 풍성해지면서 우리 교회도 풍성히 성장하기 원합니다. 가까이 계신 자매님들의 많은 참여 부탁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12-27 17:20:34 | 관리자
자매 모임의 목적과 의미   2014년도 어느덧 몇 날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오늘 저는 교회가 시작된 이후로 계속되어 온 자매 모임에 대해 특히 그 목적과 의미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일단 제 개인의 의견을 정리해 보면,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권면하며 교제하라는 성경의 권면에 따라(히10:24~25) 논쟁의 여지가 없이 교회 안의 지체들과의 사귐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는 사실 공적 모임이 일반 교회에 비해 매우 적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거의 일주일 내내 성도들을 교회에 붙잡아두는 일반 교회의 폐단을 답습하지 않기 위함입니다(참고로 미국의 거의 모든 침례교회들도 이런 식으로 교회를 운영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주중에 유일하게 모이는 자매 모임은 자매들 간의 깊은 믿음의 교제와 건강하고 활기찬 교회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반 교회에서 흔히 있는 주중 자매들의 모임이나 지역 모임은 교회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준 형식의 틀 안에서 수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자매님들이 목요일에 모이는 모임은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따라 유연한 자세로 모일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모임의 리더를 특정인으로 지명하지 않은 채 서로서로 주체가 되어 말을 하고 제한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매시간 그 주제에 맞는 인도자를 선정하며 또 연락과 정리를 위해 총무를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조율하기 위해 저는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사모라는 위치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또 어느 면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제 마음은 이렇지만 자매님들 입장에서는 사모의 위치에 있는 저를 어렵게 생각하거나 또는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자매 모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매님들과 교제하고 소통하며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고 이해를 구하며 또 교회가 가는 방향과 추구하는 바를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목사의 아내인 사모가 함께하는 자리이므로 저는 이 모임이, 성도들이 목회자와의 벽을 허물고 허심탄회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교회를 세우고 이루어간다는 동기 부여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자매 모임은 성경 연구반이나 기도 모임반의 성격을 띠지 않은 ‘자연스러운 교제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런 교제를 통해 서로 삶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며 경험을 나누되 매번 달라지는 주제에 따라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매 모임은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자기의 삶을 오픈하고 진정한 지체로서의 관계를 맺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주중에 직장생활을 하거나 먼 거리에 있는 자매님들은 아쉽게도 어쩔 수 없지만,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진솔한 마음이 오고 가는 이 모임을 통해 진정한 사귐을 가질 수 있고 믿음의 자매들을 만날 수 있으니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귀한 시간입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사랑, 이해, 격려, 위로, 나눔 그리고 권면과 용서까지도 생생하게 터득하고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매모임을 살아 있는 믿음의 장(場)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자매 모임의 취지와 방향 설정을 위해 바람직한 의견이 있으면 홈페이지나 이곳에 덧글을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자매 모임의 취지를 이해하신 자매님들 가운데 목요일에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오셔서 같이 삶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2015년에는 자매 모임에도 큰 부흥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쇠가 쇠를 예리하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자기 친구의 얼굴을 예리하게 하느니라.(잠27:17)   정혜미 드림  
2014-12-27 17:16:03 | 관리자
자유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국가이다. 1620년 8월 영국 국교의 탄압을 받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 미국에 정착하여 맨손으로 땅을 갈고 교회를 세웠다. 이들의 노력이 오늘날 미국의 초석이 되었다. 그후 프랑스와 유럽연맹의 도움으로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의 기금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폭파된 이후 그 자리에 ‘프리덤 빌딩’이 세워졌다. 2006년에 상영된 아마겟돈이란 영화에서도 지구로 돌진하는 소행성을 파괴하기 위해 우주선 2대가 발사된다. 우주선의 이름이 인디펜던스호와 다른 하나는 프리덤호이다. 그런데 그중 인디펜던스호는 유성에 의해 파괴가 되고 프리덤호에 탔던 주인공이 극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유는 너무도 소증하다. 우리나라에도 이 자유의 물결이 봇물과 같이 밀려들고 있다. 어린아이들도 부모로부터 자유를 외치고, 학생들도 교권으로부터 자유, 기성의 정치권력으로 부터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는 현실이다. 자유의 개념이 너무 훼손되고 있다. 자유의 사전적 의미는 ‘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속하고 얽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구속하고 얽매는 것은 고통과 압제를 주고 악하게 대우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호의와 선을 배척할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낳아주신 부모를 거역하고, 가르쳐 주신 스승을 비방하고, 정상적인 국가의 권력에 대항할 자유는 사실상 내맘대로 살겠다는(방종)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악을 선택하지 않고 선을 행할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있다. 극한의 통제를 받고 있는 북한 땅의 경우 하나님을 믿을 자유가 없다. 거주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사생활마저 통제되고 감청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유란 악으로부터 해방되고 선을 행할 자유를 의미한다. 진정한 자유란 어떤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첫째, 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에서 언급되었듯이 죄와 죽음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큰 자유일 것이다. 죄와 죽음은 끊임없이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얽매이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만이 가능하다. 예수님의 피의 권능으로 죄와 죽음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죄와 죽음은 여전히 실존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생명과 성령의 법에 지배받는 존재가 되었으므로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것을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의 몸을 더 이상 불의의 도구로 내어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의 몸을 의의 도구로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살아가면서 나를 얽어매는 것은 돈 곧 재물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돈이다. 돈에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도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가난한 자라고 예외는 분명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돈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있는가? 간단하다. 재물이나 돈보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갖고 있는 재물을 기꺼이 허비할 수 있으면 된다. 사도 바울의 경우 하나님께 '올인한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세 번째, 죽을 때까지 나를 얽매는 것은 혀이다. 혀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완고하다. ‘어떤 사람이 말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면 바로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약3:2) ‘혀는 불이요 불법의 세계니라. 혀는 우리의 지체들 가운데서 그와 같아서 온 몸을 더럽히고 본성의 행로에 불을 붙이며 지옥 불 위에 놓여 있느니라.“ (약3:6) 혀와 마음은 대단히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혀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나의 경우 말이 적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말에 대한 실수가 많아서 난처한 입장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선한 보고를 쌓는 일을 게을리하는 순간이 바로 혀에 구속되고 얽매이는 순간이다. 구속받아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의 큰 희생을 통해 믿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예수님을 통해 부여된 이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힘써 알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누리는데 사용해야 겠다.
2014-12-23 15:50:34 | 조양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롬6:1-2)"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13)"   십자가는 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함께 다룹니다. 즉 죄인을 죽게 함으로써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순간적인 동시에 지속적입니다. 즉, 처음에 주님의 죽음에 연합되면서 내가 단번에 죽지만, 그 후에도 나는 지속적으로 죽어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1) 순간적인 죽음 :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되어 이미 죽었습니다. 이것은 완료된 사실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6장2절의 죽음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죽음과 연합되어 '죽어 있는' 나의 영적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십자가 안에서 이미 '죽어 있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알고, 그 '죽은' 위치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2) 지속적인 죽음 : 로마서 8장13절의 죽음은 죽이는 행동을 말합니다. 이것은 곧 로마서 6장2절에서 이미 '죽은' 성도들이 이제는 성령님에게 순종해서 자연인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 즉 거짓, 음란, 미움, 분노, 다툼, 염려 등을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으면서도 육신에 대해서는 계속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깨닫고 나면 나도 주님을 위해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아직도 죽기가 부담스럽다면 아직 주님의 그 사랑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주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십자가의 도(제시 펜 루이스).
2014-12-19 22:15:25 | 박진태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이 엄청난 도덕적 실패를 경험했기에 그의 저작과 설교는 참고하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다윗이 죄를 범한 이후에 기록한 글들은 성경에서 제외시켜야 할 겁니다. 큰 아픔과 좌절을 겪은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이 전해 준 귀한 교훈을 잘 정리해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리더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적용해야 할 지침으로 알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4-12-19 12:08:52 | 김대용
이제 12월의 한 중간이 지나간다. 그 어느 겨울보다 초반부터 강추위다. 매서운 칼바람으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않고 두꺼운 속옷을 겹겹이 싸매어 입는다. 올 겨울의 날씨가 심상치 않아 뽁뽁이?라는 것을 외풍이 직접닿는 유리창에 붙였다. 가족들이 한결 낫다고 한다. 낮시간이 짧아지고 밤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지다 보니 활동감도 많이 떨어진 듯하다. 그래도 추위를 이겨내려고 하다 보니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고 충분히 수면을 하면 한결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다. 추위와 더불어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몸에 긴장감이 많이 드는 그런 시간이다. 최근 목사님의 추천으로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 한권인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 (고든 맥도널드) 라는 책이다. 맥도널드 목사님은 40년 가까운 목회를 하셨고. 은퇴후에도 강연과 집필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초교파 복음주의 목사님이시다.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리더로서의 삶을 살수밖에 없다. 특별히 이 책은 영적 리더를 위한 내면세계의 건축법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실제 경험을 통해 우러나온 내용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간과해서 안될 귀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의 일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하 책 내용 발췌) 데이비드 맥컬러우의 책 ‘위대한 다리’에는 맨허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브루클린 다리 건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 다리는 이스트 강위로 아치형으로 건축되어 있다. (공사기간 : 15년, 1883년 완공) 1872년 이 다리의 설계 책임자는 이렇게 보고했다. ‘수면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뉴욕 타워를 위해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반 대중에게 간단하게라도 해명하고 싶습니다. 지난 겨울 토대를 쌓기 위해 수면 아래 쏟아부은 석조와 콘크리트의 양이 지금 눈에 보이는 브루클린 타워에 사용된 양과 동일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리더십에 관한 변함없는 원리를 보여준다. 리더가 오랜 시간 견뎌낼 수 있느냐는, 수면 아래에서(리더의 영혼 안에서) 하는 작업에 달려 있다. 우리는 그 작업을 예배, 경건의 시간, 영성 훈련이라 부른다. 그 작업은 조용한 가운데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만이 보시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1. 중심 찾기 리더십을 열망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리더가 되는 것은 특권이지만 그 대가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리더는 자신이 하는 말을 모두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리더의 삶에는 비평가들이 따라 다니기 마련이며, 또 어떤 경우 이런 비평가들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재빨리 터득하게 된다. 영적 리더들이 세상의 가치관을 확실하게 무너트리기 위해서 영적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하다.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영성고전을 힘껏 읽지 않는다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다. 2. 따라 살아야 할 좌우명 샤를르 드 푸코(1858-1916)는 ‘하나님의 임재앞에 거하고 ... 사람들과 함께 거하는 삶’이란 어구로 자신의 한평생을 표현하고 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썼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바람을 동기로 삼지 말라. 당신이 기도하는지 알 수 없도록 내밀한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 이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알고자 하는 것 외에 다른 동기는 갖지 말라.’ 사람들과 함께 거하는 삶이 하나님의 임재앞에 거하는 것보다 쉬운가? 아니면 어려운가? 매력적이고 호감가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약하고, 가난하고, 신뢰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 함게 하는 것은 어떤가? 여기서 나의 성품과 소명은 매일 시험대 위에 오른다. 3. 영혼을 기경하기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될 영혼을 훈련하는 작업은 그리스도인 리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는 추가로 할 일도 아니고, 선택사항도 아니며, 3순위에 있는 일도 아니다. 이러한 핵심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리더십의 자리에 있지 못하거나 그가 이룬 업적도 하나님의 영광이나 그분의 뜻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4. 동기 찾기 나는 성숙하지 못한 영혼에게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현상들을 보았다. 사역을 계속해 나가려면 더 깊은 동기와 힘의 원천에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초를 다시 세우는 일을 하려면 먼저 건물의 잔해부터 깨끗이 치워야 한다. 습관, 동기, 환상, 야망, 여러 형태의 교만을 밝히 드러내고 버려야 한다. 이런 행위를 회개라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혼의 가장 강력한 활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사탄의 무기고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속임수에 대한 하나님의 무기이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시몬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베드로의 일행을 보고, 그 능력을 얻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려 했다. 베드로는 시몬이 품은 동기의 기초에 바로 도전을 가했다. ‘21 [하나님]의 눈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므로 이 일에는 네가 차지할 몫도 없고 나눌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사악함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네 마음의 생각이 혹시 용서될 수도 있으리라. 23 내가 보니 네가 쓴맛의 쓸개 속에 있으며 불법에 매여 있도다, 하매 ‘ (행8:21-23절) 바울은 인정받는 욕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바울은 분명히 하나님의 ‘잘했다’는 말씀을 들으려고 애를 썼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동기들이 영혼에 뒤섞일 수 있다. 사람들로부터 ‘잘했다’는 말을 듣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움직인다면 중독같은 것의 조정을 받게 될 것이다. 올해의 필요한 일정량의 인정은 마약처럼 내년에는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동일한 추진력을 갖기 위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인정을 필요로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성취윤리에 영향을 많이 받은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분명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신 덕분이라는 메시지를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승자들’을 찬양하는 것을 들을 때 , 우리 대부분은 자신들도 똑같은 성공을 이룬 때에야 ‘자신의 가치’가 입증될 것이라는 말을 들으려는 유혹을 받는다. 또 자신이 이런 찬양을 받지 못하면 아마도 자신은 원래부터 하나님께 귀중한 존재가 아닐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성취하는 것이 동기가 된다면 최고의 리더가 되어서도 기쁨이 거의 없고 만족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대하고 고상한 동기가 있을까? 물론있다. 모세는 백성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고 고난과 종살이에 대한 하나님의 민감함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종교제도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 목소리를 사용하시도록 내어 드렸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분명 순종의 원리를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린양의 어머니가 되기로 결단했다. 이것들이 우리 삶에서 키워낼 수 있는 동기들이다. 후기 오늘날의 리더들이 오랜 시간 섬기기를 바란다면, 이 책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요약해 주는 네가지 핵심 원리가 있다. 1. 매일 회심을 경험하라 매일 아침 경건의 시간 중에 당신의 삶을 예수님께 재 헌신하는 시간을 가져라, 매일 다시금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누리라. 2. 매일의 훈련으로 당신의 삶을 든든히 하라 성품은 훈련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어있는 영혼으로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삶이 허물어질 때 영성훈련은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줄 수 있다. 3. 소명의식으로 살라 소명을 아는 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인지하라. 당신의 소명은 때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의식하라. 내 경우 하나님께 ‘60대 남자를 위한 새로운 소명이 있으십니까?’하고 물었다. 이후의 대화에서 사람들은 내가 아버지같이 함께 있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통찰의 순간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말해야 할 때이구나’ 이것이 나의 새로운 소명이 되었고 매일 이 소명으로부터 어떻게 살 계획을 세울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4. 주위에서 공동체를 만들라 반드시 당신 주위의 친구들로 이루어진 친밀한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몇 년 전 목사들이 친한 친구들이 없다고 특히 교회에는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건강하지 못한 생활양식임을 깨달았다. 오히려 아내와 나는 의도적으로 아주 가까운 친구모임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오랫동안 이들은 우리 삶에 균형과 지혜를 가져다주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 리더라면, 반드시 수면아래에 견고한 토대를 쌓으라. 그러고 나서 수면위에서, 당신이 섬기는 사람들의 삶속에서 만들어질 활기 넘치는 유산 속에서 그 열매를 관찰하라
2014-12-18 14:36:09 | 조양교
마귀에 관해서 이해가 부족합니다. Q : 정동수 목사님. 안녕하신지요? 부산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성경에 관해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마귀를 심판하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죄 없는 몸으로 달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개역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귀의 일을 멸하시었다고 말하는데(요일3:8).......맞는지요? 마귀를 심판하는 것은 예수님 재림 후에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에 마귀는 이미 심판받았는지요? 일부에서는 부활하셨을 때에 마귀의 일을 멸했다고 하는데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A : 형제님 평안하신지요? 문의하신 부분에 관해 킵바이블 관리팀에서 목사님을 대신해 답변 드리겠습니다. 먼저 인용하신 요한일서 3장 8절 후반부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이 부분은 말씀 그대로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습니다. 여자의 씨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창3:15), 하나님께서 사탄을 그리스도인의 발밑에서 상하게 하시리라(롬16:20)는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신약교회 시대가 열린 지금 이 순간 사탄이라고도 하는 마귀의 일들은 완전히 멸하여졌을까요? 신약교회가 시작된 후에 기록된 바울의 서신서들을 살펴보면 마귀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종들의 일을 방해하며(살전2:18), 간사한 꾀로 성도들을 미혹하고(엡6:11), 그리스도인을 여러 가지 악한 일로 괴롭히며(고후12:7), 불신자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마음을 가리고(고후4:4) 그들이 더 악한 길로 빠지도록 속이고 있습니다(딤후3:13). 마귀가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받고 멸하여졌다면 어떻게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마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위치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마귀들(devils)의 수장인 마귀(the devil)는 과거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에 있었으며(겔28:12~19), 현재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세상의 통치자로서 하늘의 처소 어딘가에 그의 본거지가 있습니다(욥1:6, 슥3:1). 그리고 앞으로 있을 7년의 환난 기간 중 더욱 극심한 환난이 벌어지는 후반기 3년 반의 대환난기에 마귀는 이 지상으로 내어 쫓기며(계12:9,10, 12), 천년왕국의 기간에는 무저갱에 갇혀 있다가(계20:1~3), 천년왕국 이후에 잠시 풀려나 땅에서 민족들을 속이고 모아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계20:7~8). 이것이 마귀의 마지막 활동입니다. 이렇게 마귀의 모든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야 비로소 마귀는 자신의 최종 종착지인 게헨나(Gehenna)라고 불리는 불과 유황으로 이루어진 호수에 던져지게 됩니다(계20:10). 정리하면 마귀는 지금도 매우 활발하게 사악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의 악한 일들이 완전히 멸하여지고 ‘게헨나’라고도 하는 최종 지옥에 던져지는 마귀에 대한 심판의 추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이미 이겼습니다(요일4:4).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마귀의 군대와 여전히 치열한 영적 싸움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의 여정을 신실하게 마칠 때까지(딤후4:7~8) 울부짖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마귀를 대적하며(벧전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들을 이루어가며 삶을 마쳐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이미 약속된 승리와 하늘의 보상이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며(계21:7)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될 겁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마귀(the devil)나 그의 수많은 졸개인 마귀들(devils)은 귀신이 아니며 또 어떤 이단들의 주장처럼 불신자가 죽은 이후에 귀신이 되어 이 세상을 떠도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경의 진리를 잘 숙지하시고 마귀에 관한 아래의 강해 영상과 글들을 시청하시고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마귀(Devil) :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31 *사탄 :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07 *루시퍼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520 *조직신학 33_사탄01 :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77 *조직신학 34_사탄02 :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78 *마귀를 대적하라(설교) :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write_id=89 *마귀인가, 귀신인가? :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56 *사탄(선도) :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consult&write_id=62&page=3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진한 명조체 마귀는 무엇을 뜻합니까? :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48 *귀신유감 :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12 부디 진리 안에서 큰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4-12-17 12:59:05 | 김대용
주께 생각을 고정시키고 주를 신뢰하는 자에게 완전한 평강을 주심을 매 순간 확인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릴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완전한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길...두손모아 기도드립니다
2014-12-17 09:34:39 | 태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