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와 통제사회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31명이 고령산과 북한산을 넘어 청와대를 향했다. 이것을 '1·21 무장 공비 사태'라고 부른다. 31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신조는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고 말해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에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주민등록증의 탄생이다. 효과적인 간첩 색출을 위해 전 국민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남북 관계 특수성 때문에 한국은 세계 최고 효력을 갖는 신분증 제도를 갖추게 됐다.
미국에는 주민등록증 같은 범국가적 신분증이 없다. 주별 운전면허증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정도다. 정부가 공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국민 개개인 정보 수집에 제한을 두기 때문이다. 종이로 된 사회보장 카드가 있지만 이 카드 번호로는 연령, 성별, 거주지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알 수 없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일본 등 웬만한 선진국에는 국가 차원의 신분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기류에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유엔에서는 신분증 관련 초대형 프로젝트(ID 2020)가 진행 중이다. 목표는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디지털 신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로드맵은 '2020년 기술적 토대 마련, 2030년 목표 달성'이다.
기술적 토대는 이미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ID 네트워크' 개발을 완료했다고 한다. 조만간 디지털 ID로 전 세계 어디서나 출생, 국적, 거주, 신용 조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아마도 향후 디지털 ID는 '스마트폰 속 ID' 방식으로 구현될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반면 식별번호는 모든 사람에게 부여돼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ID의 궁극적 지향점은 다름 아닌 '인간의 신체'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인도 국민의 90%(12억 명) 이상이 생체 기반 디지털 ID(아드하르)를 갖고 있다. 인도 국민들은 상점과 병원에서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카운터에 설치된 스캐너로 지문이나 홍채를 스캔한다. 이를 통해 신원이 확인되면 고객 은행 계좌에서 해당 상점 계좌로 사용 금액이 이체된다.
디지털 ID와 함께 주목받는 것이 디지털화폐(CBDC)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각국 중앙은행들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안정적 통화정책을 교란할 수 있다고 보고 CBDC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CBDC가 도입되면 원, 엔, 달러 등 각국 법정 화폐가 디지털로 바뀐다. 정부는 편리성과 효율성, 완벽한 알리바이 입증과 완전범죄 퇴치, 물 샐 틈 없는 사회보장 등 각종 장점을 앞세워 생체 ID와 CBDC 도입을 홍보할 것이다.
문제는 치명적 부작용이다. 디지털 ID, CBDC에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개개인의 동선, 각종 상거래 행위가 실시간 체크된다.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투명하게 벌거벗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투명사회'다. 사람들은 늘 투명한 세상을 꿈꿔왔다. 투명성이 신뢰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투명사회는 신뢰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통제사회, 감시 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모든 것이 벌거벗겨진 투명사회에서 권력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특정 개인의 삶을 옥죄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비슷한 일을 목격했다.(출처 : 매경)
잘 알다시피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모든 사람에게 이마나 오른손에 표를 받게 하고, 이 표 없이는 매매를 할 수 없게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디지털 ID와 CBDC 도입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 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요한계시록 13장 16~17절)
2024-07-18 23:22:50 | 이규환
-우리 햇수의 날들이 칠십 년이요,강건하면 팔십 년이라도 그 햇수의 위력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 위력이 곧 끊어지매 우리가 날아가 버리나이다- 시편 90편 10절 하나님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후로도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때 또는 변명핑계이유를 대고 싶을때 하나님말씀으로 정신차리고 판단, 회개 하겠습니다~^^
2024-07-12 22:39:07 | 목영주
이세벨의 처참한 죽음와 회개의 기회
열왕기하 9장 30절~37절까지 '이세벨의 처참한 죽음'이 나온다. 이세벨의 비참한 최후를 읽으며, 그녀가 조금이라도 빨리 회개를 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여러 번 회개의 기회를 놓쳤다.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로서, 그녀의 악행과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께 진노를 샀다. 로마서 2장 5절은 "오히려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이세벨의 최후를 잘 설명해 준다.
이세벨은 여러 차례 회개할 기회를 가졌지만,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1. 엘리야의 경고: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대언자들과 대결한다. 엘리야는 바알의 대언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하나님이 참된 신임을 증명했지만, 이세벨은 이를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이세벨은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 했다(열왕기상 19:1-2). 이 사건은 그녀에게 명백한 경고였지만, 그녀는 이를 무시했다.
2. 아합 왕의 회개:
열왕기상 21장에서 나봇의 포도원 사건 이후,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다. 아합은 엘리야의 말을 듣고 옷을 찢고 금식하며 회개했다(열왕기상 21:27-29). 이세벨은 이 때에도 남편의 회개를 보고도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3. 예후의 등장:
열왕기하 9장에서 예후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이세벨의 죄악을 심판하러 온다. 예후가 이세벨에게 다가올 때, 그녀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예후를 조롱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열왕기하 9:30-33).
이세벨은 여러 번 회개할 기회를 가졌지만, 이를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악행을 지속했다. 엘리야의 경고, 아합의 회개, 예후의 등장 등 여러 차례 하나님은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에게도 회개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아야 함을 잘 보여주는 것 아닌가!!!
2024-07-11 08:31:11 | 이규환
일상에서의 작은 증언을 실천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4-07-09 14:13:50 | 김지훈
형제님, 감사합니다^^
작은 것의 중요함을 일깨우시네요.
2024-07-05 18:29:47 | 이수영
작은 소녀의 증언과 복음 전파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시리아 군대 대장 나아만의 나병 치유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작은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사마리아에 있는 대언자 엘리사를 소개하며, 나아만이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녀의 간단한 증언은 나아만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과정을 통해 복음이 어떻게 전파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1. 나아만의 나병
나아만은 시리아의 군대 대장이었지만 나병에 걸려 있었다. 나병은 당시 치유가 불가능한 병으로 여겨졌으며, 사회적으로도 큰 낙인이었다. 그는 그의 지위와 권력에도 불구하고 이 병을 치유할 수 없었다.
2. 작은 소녀의 증언
나아만의 아내에게는 사로잡혀온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가 있었는데, 이 소녀는 나아만의 상황을 보고 그의 아내에게 말한다. “내 주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대언자와 함께 계신다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분의 나병을 고치리이다,” 이 소녀의 간단한 증언은 나아만의 아내를 통해 나아만에게 전해졌고, 나아만은 이 정보를 믿고 행동에 옮기게 된다.
3. 왕에게 전파됨
나아만은 소녀의 말을 듣고 시리아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을 보내며, 그가 나병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왕은 당황했지만, 엘리사는 이 소식을 듣고 나아만을 자신의 집으로 부르도록 한다.
4. 엘리사의 치유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르단 강 속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명령한다. 처음에 나아만은 이 명령에 화가 났지만, 그의 종들의 설득으로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었고, 그의 나병은 깨끗이 치유된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돌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복음 전파의 원칙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1. 일상에서의 작은 증언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작은 증언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믿고,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2. 믿음으로 행동을 촉구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이들이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행동할 때, 복음의 진정한 힘을 경험할 수 있다.
3. 파급력 있는 전파
복음은 한 사람에게 전해진 후,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4. 순종의 중요성 강조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해야 한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열왕기하 5장에서 나아만의 나병 치유 이야기는 작은 소녀의 증언이 어떻게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복음 전파의 중요성과 원칙을 배울 수 있다. 작은 증언, 믿음의 행동, 파급력 있는 전파, 순종의 중요성을 기억하며, 우리의 일상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이러한 원칙을 실천하면 좋겠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2024-07-04 18:45:37 | 이규환
좋은 글입니다.
2024-06-28 11:40:51 | 이남규
권위가 낮은 사람에게도 겸손,친절할 수 있는건 하나님계심을 아는것으로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작은 존재라는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인듯 싶어요~^^ 드러나지않아도 묵묵히 교회섬겨주시는 형제님자매님들께 많이많이 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2024-06-27 23:01:27 | 목영주
교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이라 냄새가 납니다.
신기하게도 언행에 묻어나요.
겸손한 성도가 많으면 분위기가 부드럽지요.
투기와 질투가 있는 곳엔 겸손이 사라지고요.
모쪼록 우리는 주님을 인식하며 살아야 겠어요.
항상 코람데오!
2024-06-27 20:00:58 | 이수영
무릎을 꿇는 용기
무릎을 꿇는 것이 비겁한 것일까? 열왕기하 1장에서는 아하시야 왕이 병상에 누워 엘리야를 데려오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명령은 받은 대장들은 요즘 말로 하면,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서 체포영장을 가지고 체포하려고 온 것이다. 세 명의 오십인 대장이 엘리야를 데려오려 하지만, 그들 중 두 명은 부하들과 함께 죽고, 세 번째 대장은 살아서 엘리야를 데리고 왕에게 간다. 죽은 오십인 대장과 살게 된 오십인 대장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
첫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그때에 왕이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 올라갔는데, 보라, 엘리야가 산꼭대기에 앉아 있으므로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이르시기를,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엘리야가 오십인 대장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네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하며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렸더라.(열왕기하 1장 9-10절)
첫 번째 오십인 대장은 왕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 엘리야에게 올라가 "하나님의 사람아, 왕이 내려오라 하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 대장은 그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들을 태워버리게 했다.
두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왕이 또한 다시 다른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이같이 이르시기를,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네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하매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렸더라.(열왕기하 1장 11-12절)
두 번째 오십인 대장 역시 비슷하게 엘리야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아, 왕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다."라고 말했다. 이 대장 또한 엘리야의 권위를 무시했고, 그 결과 첫 번째 대장과 마찬가지로 불에 타 죽게 되었다.
세 번째 오십인 대장과 그의 부하들
왕이 다시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을 그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보내므로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이 올라가 엘리야 앞에 온 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에게 간청하며 그에게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내 생명과 당신의 종들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 눈앞에서 귀히 여기소서. 보소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전의 오십인 대장 두 명을 그들의 부하 오십 명과 함께 태웠으니 그러므로 이제 내 생명을 당신 눈앞에서 귀히 여기소서. 하매 주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그들 두려워하지 말고 그와 함께 내려가라, 하므로 엘리야가 일어나서 그와 함께 왕에게 내려와(열왕기하 1장 13-15절)
세 번째 오십인 대장은 앞선 두 대장과는 달리 겸손하게 엘리야에게 다가갔다. 그는 엘리야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목숨과 부하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겸손과 존중이 엘리야에게 전해졌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와 함께 내려갔다.
교훈
1. 존중과 겸손의 중요성: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장은 엘리야의 권위를 무시하고 명령조로 대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반면, 세 번째 대장은 겸손과 존중으로 엘리야에게 다가갔고, 이는 그의 생명을 구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특히 권위자와 소통할 때 겸손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2. 하나님의 권위 인식: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그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하고, 그의 말씀과 그의 대리자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3. 기도와 간청의 힘: 세 번째 대장은 겸손하게 엘리야에게 간청했다. 이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청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열왕기하 1장의 이야기는 겸손과 존중,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기도와 간청의 힘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러한 교훈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겸손과 존중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2024-06-27 09:16:34 | 이규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한 형제님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2024-06-21 13:05:14 | 이남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을 인공지능에 알리는 방법
인공지능에게 킹제임스 성경을 학습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해결 방법을 알게 되었다.
1.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문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이미 학습해서 다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ChatGPT4o(챗지피티포오, 최근 버전)에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인용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과 창세기 3장 1절을 설명해 달라고 하니, 아래와 같이 답변을 주었다.
요한복음 3장 16절(John 3:16)은 기독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 중 하나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그로 인해 주어진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의 중심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 KJV)에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창세기 3장 1절(Genesis 3:1)은 인간의 타락과 죄의 시작을 다루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 내에서 죄의 기원과 유혹의 본질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 KJV)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Now the serpent was more subtil than any beast of the field which the Lord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의 문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GPTs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GPTs는 ChatGPT4o에 탑재되어 있다. ChatGPT4o에 들어가서 ‘Explore GPTs’를 클릭하고 이어서 ‘create’ 버튼을 눌러서 생성할 수 있다.
GPTs는 GPT가 여러 개 모여 있다(s)는 의미인데,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의 본래 역할에다가 특별한 용도의 GPT가 탄생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앱스토어에서 필요한 앱(어플)을 내려 받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만들어서(가칭 :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 100% 활용하기) GPTs내에 공개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이용자들은 우리가 만든 이것을 클릭해서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해 준다. 얘는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을 공부한 GPT인 것이다.
2024-06-19 19:48:11 | 이규환
참 좋은 말씀입니다. 미운 생각 덜하게 바쁜 일상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유일하게 제가 뿌듯해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매일 말씀 한줄을 암송하게끔 환경을 만들어준 거예요~^^ 오늘도 주인이신 예수님께 남은 오후를 드립니다..
2024-06-14 16:24:18 | 목영주
Redeeming the time & Fasting
'Redeeming the time'이라는 구절은 에베소서 5:16과 골로새서 4:5에 나온다. 여기서 구속(redeem)은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재조정하고, 세속적인 요소들로부터 시간을 구출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서 어디로 구속해야 하는가?
마귀에게 빼앗긴 시간을 찾아야 한다. 에베소서 5:16에서는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악한 날'은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하는 유혹과 세속적인 방해 요소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시간을 마귀의 영향에서 구속한다는 것은 이러한 세속적인 요소들로부터 시간을 되찾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어떻게 구속해야 하는가?
시간을 구속하는 방법은 금식(Fasting)이다. 에스라 성경사전을 보면 '금식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은 슬픔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할 때 금식했다. 이때에는 몸이 영양분 섭취를 거부하면서 굶주림으로 인한 식욕을 유보시킨다.' 고 나온다. 금식은 음식을 거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좋아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을 자랑하는데 사용하는 영양분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시간을 사용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것이 SNS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절제해야 한다. 금식을 통해 우리는 세속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구속한 다음에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구속된 시간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개인의 신앙 성장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들로 채워져야 한다. 골로새서 4:5에서는 "Walk in wisdom toward them that are without, redeeming the time."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올바른 본보기가 되라는 의미다.
구속된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반영해야 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한 활동으로 채워져야 한다. 구속된 시간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연단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 연구와 기도, 묵상 등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영적 성숙을 추구할 수 있다.
영적 성장에 집중한다. 금식을 통해, 우리는 그 시간을 성경 읽기와 묵상, 기도에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또 금식으로 절약된 시간과 자원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식하면서 절약한 비용을 기부하거나, 그 시간 동안 자원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Redeeming the time"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명령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모든 순간을 영적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2024-06-14 08:30:45 | 이규환
돌아가 쉴 본향 있기에 언제나 감사드릴 뿐입니다
2024-06-13 18:38:05 | 최영오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2024-06-13 18:35:13 | 최영오
항상 감사하라, 아멘! ^^
2024-06-13 18:32:40 | 최영오
아멘!
열심히 읽겠습니다 ^^
2024-06-13 18:29:53 | 최영오
구원의 착각에 대하여 생각하곤 합니다. 날이 갈수록 그런 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알면 알수록 그런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많이 안다는 뜻 절~~~~~대로 아님 ^^)
어떤 경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느냐 하면, 인터넷 또는 유튜브 등에 나와 그럴듯한 외모와 언변으로 미혹의 가르침 열심히 설파하는 사람들, 영적 무장해제 상태로 아멘 소리 높여 화답하는 더 많은 사람들 접할 때랍니다. 그때마다 떠올리곤 하는 몇몇 말씀 구절들과 관련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롬10:9-10 말씀이 우선 떠오르더군요. 저 사람들 역시 그렇게 믿고 시인했겠지...?...그랬으니까 구원의 확신에 차서 저러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그런데 이어서...하지만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갈1:8 말씀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런 까닭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이것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그들이 다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살후2:10-12 말씀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도 바울이 저주한 바로 그 다른 복음임에 틀림없으니...저 사람들은 애당초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고...하나님께서 보내신 미혹으로 인해 거짓말, 즉 거짓 교리를 더욱 확신하게 되고...결국은 모두 함께 정죄에 이르겠거니...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그러면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롬10:9-10 말씀은 뭐냐, 저 사람들의 경우 믿고 시인했음에도 구원커녕 정죄로 통하는 미혹의 저주를 받았다는 거잖아...라는 생각, 그러니까, 롬10:9-10 말씀에 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더군요.
믿고 시인하는 그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란 말인가...?...어쩌고 하며 한참 동안 딜레마 속을 헤맨 끝에, 롬10:9-10의 마음으로 믿고 시인한다는 그 말씀에는 단순히 몇 마디 말을 통한 신앙 고백 이상의 어떤 정신적 또는 영적 상태까지 내포되어 있으리라...라는 나름대로(어디까지나 나름대로 ^^)의 어렴풋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답니다. 안 그러면 롬10:9-10 말씀이 거짓으로 되니까 말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정신적 또는 영적 상태의 의미 관련하여 약간 덧붙이자면, 정녕 마음으로(in heart) 믿은 사람이라면, 바른 성경 찾아 읽고 또 읽으리라 다짐했을 것이고, 진작 바른 성경 알아봤을 것이고, 성경 말씀이 꿀같이 느껴졌을 것이고, 가르치는 사람의 말이 그러한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 기록 탐구하고 싶은 영적 욕구 느꼈을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는 지식 워낙 일천하여 더 이상의 논리 전개는 그렇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원받지 못했음에도 구원받은 줄로 크게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안타까운 사람들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끝 )
2024-06-13 18:27:53 | 최영오
나그네된 삶.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요.
곧 떠날 이땅에 너무 많은 것이 짐인데 말이죠.
아주 단순하게 진실하게 살아야 하겠지요~
2024-06-08 08:47:48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