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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ITY CONCERT를 보고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음악회, 정말 감동적이었다. 눈이 호강하고 귀가 호강했다. 어디 가서 이런 훌륭한 음악회를 관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진행되는 내내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마음을 흔들었다. 노래가 나올 때마다 예수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이 교차하면서 묘한 감정에 콧날이 시큰거리기도 하고, 마냥 기쁘기도, 어떤 대목에서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기도 했다. 그 순서를 따라 가보자.   첫 번째 순서는 여섯 분의 형제자매들이 들려주는 ‘Green sleeves’였다. 이 곡을 그저 ‘푸른 소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16세기경에 작곡된 잉글랜드의 전통 민요라고 한다. 플루트, 기타,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의 합주가 잔잔하면서도 애절하게 들렸다.   두 번째 순서는 미래의 새싹 유치부 친구들이었다. 출연자는 16명으로 기억한다. “차렷!, 인사!”로 시작하여 고린도전서 13장을 전부 외우는 기염을 토했다. 외우기 시작할 때 조마조마 하면서 지켜봤는데 끝까지 성공하자 청중들은 환호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세 번째 순서는 유년부 친구들과 엄마들이었다. 예수님 사랑하심은, 하나님의 부르심 두 곡을 들려주었다. 예수님 날 사랑하심이 성경에 써있다고 알려주는 유년부 친구들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돌이키심이 없고,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주의 부르심이라고 알려주는 엄마들이 가족 음악회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다.   네 번째 순서는 피아노 독주였다. 곡은 쇼팽이 1842년에 완성했다고 하는 ‘영웅’이었다. 연주자(권세율 군)는 놀랍게도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이 곡은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아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연주자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는 것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났다. 중학교 3년을 건너뛰고 고등학교(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꼭 그렇게 되길 우리 모두 응원하면 좋겠다.   다섯 번째 순서는 김홍석 형제의 독창이었다. 곡명은 아침을 뜻하는 마티나타(Mattinata)였다. 사회자가 밤에 부르는 사랑에 노래(세레나데)가 무엇인지, 아침에 부르는 노래가 무엇인지 질문을 하면서 이 곡을 소개했다. 이 노래를 들어보니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이 노래를 배워볼까 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여섯 번째 순서는 듀엣(우종미, 고은희 자매)이었다. 사회자는 이 곡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3막에 등장하는 아리아 ‘편지의 2중창’이라고 소개한다. 백작 부인과 수잔나가 반복적으로 주고받는 내용이 반복된다. 사회자가 쇼생크 탈출에도 이 곡이 나온다고 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나중에 쇼생크 탈출을 다시 한 번 보면서 이 곡이 어떻게 들려지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곱 번째 순서는 권혁준 형제의 독창이었다. 사회자는 레미제라블의 뮤지컬에 나오는 곡으로서 장발장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감(스탈스)의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느끼는 곡이라고 소개한다. 이 곡을 장발장 입장에서, 경감의 입장에서 각각 들어보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덟 번째 순서는 한륜기 형제의 Saxophone 연주였다. 곡명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재즈버전으로 편곡했다고 한다. 하얀 눈이 내린 설경을 배경으로 연주되는 Saxophone 연주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Saxophone은 처음 배울 때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해도 잘 안된다고 하는데, 어찌 그리 잘 부는지 Saxophone에 문외한인 나는 그저 감사하고 감탄할 따름이었다.   아홉 번째는 7명의 혼성 중창이었다. 곡명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였다. 너무나 익숙한 내용이라 함께 따라 불렀다.   열 번째는 외국에서 우리 사랑침례교회를 사랑하는 해외 형제자매들의 순서였다.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이 성탄 메시지와 케롤을 들려주었다. 참여해 주신 분들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길 바란다.   열한 번째 순서는 남성 듀엣(김 혁, 김한상, 기타 손재현)이었다. 곡명은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였다. 기타의 선율과 함께 듣는 묘미가 있었다. 이들은 언제부터 연습했을까? 어디서 연습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들었다.   열두 번째 순서는 박하늘 자매의 독창이었다. 곡명은 ‘주님은 나의 구원이시라.’(The Lord is my Salvation)였다. 영어로 부르는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아들 하나님께 영광, 성령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온다.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가 어우러진 멋진 무대였다.   열세 번째 순서는 청년부 합창이었다. 곡은 ‘높은 곳에 있는 내 집’이었다. 이 곡이 1945년에 작곡하게 된 배경을 영상으로 확인하고 들으니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39명의 청년들이 율동과 함께 전해주는 가사에서 새예루살렘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그네 생활 모두 마치고 그곳에 가면 다시 헤매지 않고 나는 황금길 다니겠네.   열네 번째는 특별 순서였다. 올 한해를 돌아보며 우리 사랑침례교회가 중점을 두고 했던 일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교회의 비전을 소개하며 성도들이 책 배송을 위해서 수고하는 활동들이 배경 화면으로 깔리면서 ‘예수님 나의 구주 삼고’라는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월별 주요활동들과 성지순례 내용이 소개되었다.   열다섯 번째는 남성 중창(김 혁, 이광호, 정연수, 정진철 형제)이었다. 곡은 ‘주님 뜻대로’였다. ‘주님 뜻대로’ 라는 가사가 많이 나온다. 나 비록 연약하여 흔들릴 때가 있겠으나 주가 잡아주시니 주님 뜻대로 살아가리라 라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순서는 채리티 콰이어의 무대였다. 곡명은 ‘Messiah is born’이었다. 메시아 탄생 상황을 웅장하게 표현한 곡이라고 하는데, 28명의 성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화음은 언제 들어도 감동 그 자체이다. 이어서 ‘천사 찬송하여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전 회중이 기립하여 찬송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콘서트 시작 때부터 끝날 때까지 드는 의문점이 있었다. 이들은 언제부터 준비했을까? 어디에서 모여서 연습을 했을까? 시간이 넉넉지 않았을 텐데. 얼추 세어보니 약 100여명이 출연한 것 같다. 멋진 연주, 멋진 노래를 들려준 모든 출연자들께 너무 너무 감사드린다. 또 콘서트를 기획하고 준비하신 분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성도들이 한 없이 자랑스럽고 사랑침례교회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마음은 이미 내년 콘서트에 가 있다.
2023-12-28 14:32:07 | 이규환
  <오늘 묵상 말씀>   제목 : 출생   사사기 13장 24  ¶ 그 여인이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주}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으며   <삼손> 오늘은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삿13:5)>를 보며 재판관 삼손의 출생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 20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23 보라, 처녀가 아이들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모두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023년 크리스마스..... 큰 딸이 결혼하던 해부터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 시작하여 올 해로 세 번째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마니또 선물을 준비하고 여러가지 게임을 해서 승자가 마음에 드는 선물을 가져간다. 이 게임은 주최하는 집이 준비하는데 게임을 하면서 쏟아지는 웃음들로 너무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모두가 기대하고 선물도 궁금해 한다.     나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던 전전날에 예수님 탄생에 관한 이 말씀을 우리 자녀들에게 보내면서 우리 자녀들이 외웠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다. 작은 딸 부부는 나랑 같이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큰 딸은 논현동에 교회가 있을 때 함께 다녔다가 결혼 할 때 사위랑 교회에 인사만 하고 아직 나오지않고 있어서 나의 기도 제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말씀의 능력을 믿고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 특별 이벤트 ●   크리스마스 파티 모임 때 아래의 귀절을 외우는 모든 분께 현금 10만원을 바로 드립니다. 단, 틀릴 때에는 틀린 글자 수 한 개당 만원씩 마이너스 됩니다.   <외울 귀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1장 20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23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드디어 암송 시간이 되었고 큰 딸이 첫 번째로 완벽하게 외우니 큰 사위가 아멘! 이라고 하였다. 아멘! 나는 그 한 마디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큰 딸이 봉투를 받고. 뒤이어 큰 사위가 받고 작은 딸, 작은 사위도 다 받았다.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거금이 나가긴 했지만 아멘! 이라는 그 한 마디에 그것은 더이상 거금이 아니었다. 참으로 기분좋은 지출이었다.  그리고 게임할 때 나는 마음까지 활짝 웃었다.     아멘! 하자 /이정자   주님 말씀 들을 때  아멘! 하자. 그분께서 말씀하시매 그것이 이루어졌으니   주님 향해 노래할 때 아멘! 하자. 찬양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이니   주님께 기도할 때 아멘! 하자.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니   주님 부르실 때 아멘! 하자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   마음이 감동될 때 아멘! 하자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시키시니  
2023-12-25 13:05:14 | 이정자
오늘도 성도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야 할텐데요..악해지는 세상에서 낙심않고 가기만 해도 다행감사입니다..주인이신 예수님 많이많이 도와주세요!!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예레미야서32장27절 하나님말씀입니다
2023-12-22 09:54:13 | 목영주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the called)’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저 유명한 롬8:28 말씀 접할 때마다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한답니다.   성도(saint)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정녕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결과임을, 성도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 즉 콜링(calling) 받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더군요. 사무치게 큰 깨달음으로 느껴지곤 했다고나 할까요.   성경 말씀 중 ‘성도로의 콜링’ 관련 구절들이 몇 차례 정도나 나오는지 우선 검색해 본바, 대충 아래와 같더군요.   행2:39 –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 / 롬1:7 – 하나님께 사랑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 롬8:28 –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 롬9:11 –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려고 / 롬11:29 –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고전1:2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거룩히 구별(santified)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 고전1:9 –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교제(fellowship)하게 / 고전1:24 –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 고전7:15 – 우리를 화평에 이르도록 부르셨느니라   고전7:17 – 주께서 각 사람을 부르신 대로 그렇게 / 고전7:24 – 각 사람은 자기가 부르심을 받은 때의 상태 / 갈1:15 – 내 어머니 태에서부터 나를 구별하시고(separate) 자신의 은혜를 통해 나를 부르신 하나님   골3:15 – 화평에 이르도록 한 몸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 살전2:12 –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왕국과 영광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 살전4:7 – 거룩함(holiness)에 이르도록 부르셨나니 / 살전5:24 –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살후1:11 – 하나님께서 너희를 이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실 것과 / 살후2:14 –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 딤후1:9 –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holy calling)으로 부르신 것은   벧전5:10 –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분 / 벧후1:3 –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virtue)에 이르게 하신 분 / 유1:1 –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거룩히 구별되고(sanctified)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존되어 있으며 부르심을 받은 자들   ‘성도로의 콜링’이 저토록 많이 언급되고 있음에 일단 놀랐습니다. (성경 공부 얼마나 안 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죠 ^^)   그런데 말입니다. 그에 이어서, 다소 생뚱맞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상하다...성도란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콜링, 즉 거룩한 콜링(holy calling) 받은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혀져 있음에도...성도로 콜링 받았다...라는 말...?...그런 말 들어본 적 없...지...않은가...?...?...라는 생각 말입니다.   성도로 콜링 받았다...그러고 나면, 부르심의 목적(위 빨간색 표시 구절들 참고)에는 일단 부합되는 삶 살아갈 책임 또는 부담(^^) 따를 테니까, 성도들 스스로 ‘성도로의 콜링’ 어쩌고 하는 그런 부담스러운 말 아예 안 하고 안 듣기를 바라는 건...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 아는 지식 일천한 사람의 생뚱맞은 생각 ^^)   ...   어쨌든, 거듭 생각해 봐도, 성도로 콜링 받았다...라는 말에 대단한 자긍심과 함께 엄청나게 큰 책임감, 부담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불러주신 거룩하신 분께 대한 최소한의 도리 아닐까 싶었습니다.   부름 받은(called) 자는 많으나 선정된(chosen) 자는 적으니라...라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 말씀(마20:16, 마22:14) 없었더라도 말입니다.    ( 끝 )             
2023-12-20 21:39:35 | 최영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4) 미디어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     이번 성지순례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을 넘어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신비가 무엇인가? 그 신비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지만, 성경만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비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생각은 오로지 남는 것은 기록뿐이라는 것이었다. 기록은 우리 사랑침례교회의 미디어 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도행전 13장부터 21장까지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이 소개된다. 많은 교회, 지명, 사람들이 나오는데, 지금은 현장에는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는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여기가 OOO 교회 터”라고 소개하는 곳이 그럴듯하게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성경을 보면 빌립도 교회는 루디아 집에서 시작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서 시작하였고, 골로새서 교회는 에바브라가 시작하였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라는 여인의 집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교회는 가정교회였다. “여기가 OOO 교회 터” 라고 하는 곳이 가정교회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변천하여 우리가 이번에 본 교회 터가 되였는지를 연결시켜 주는 매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아쉽게도 사진기는 1839년에 발명)이라도 찍어 놓았더라면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고, 누구군가 글을 남겼다면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사랑침례교회는 미디어 선교를 잘 한다고 외부에 알려져 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미디어는 매체를 말한다. 매체는 어떤 것을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미디어 선교를 한다고 할 때 미디어(매체)는 기록 매체, 저장 매체, 인쇄 매체, 녹음 매체 등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선교의 산출물은 자료다.   이런 자료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게 된다. 기록으로 남아야만 영원토록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다음 세대들이 이어받을 수 있고, 연구하고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침례교회가 미디어 선교를 하는 이유가 있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느낀 점에 대한 글은 오늘 4회로 마친다.
2023-12-13 13:13:56 | 이규환
  로마서로부터 히브리서에 이르는 14개 바울 서신서에 접하여 무척 궁금해하던 때가 있었답니다. 사도 바울은 도대체 누구한테서 그토록 위대한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까, 바로 그 점을 말입니다.   로마서 내용 일부만 대충 짚어보더라도, 불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1:18-32),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3:21-26), 아담과 그리스도(5:12-21), 죄를 향해서는 죽고 의를 향해서는 살아 있다(6:1-14),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6:15-23), 율법에서 벗어남(7:1-12), 율법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7:13-25),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음(8:1-11), 성령을 통해 양자 됨(8:12-17) 등등의 그야말로 심~~~오한 진리를 구약성경 조각들 이리저리 짜맞춰 알아낼 수는 없는,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위 궁금증에 대한 답은 일단 성경에 나와 있다고도 할 수 있겠군요. ‘내가 선포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아니하고 배우지도 아니하였으며 다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주어졌느니라’라고, 갈1:11-12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원래 궁금증이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법.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 즉 1:1 PT 받은 건 그렇다 치고...그렇다면...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계시들을 받았을까, 그 점이 또 새로이 궁금해지더군요. ^^   ‘자신의 은혜를 통해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내가 자신의 아들을 이교도들 가운데서 선포하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하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아라비아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노라.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내가 베드로를 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보냈다’라는 갈1:15-19 말씀은 위 새로운 궁금증 관련 약간의 단서 정도를 제공할 뿐, 답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말씀 내용을 분석해 보면...1:1 PT 장소는 아라비아...뿐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참 아리끼리하죠. 아라비아에서 꼬박 삼 년 보낸 것도 아닌 것 같거든요.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가 다시 아라비아로 갔다라는 말은 안 나오는 걸 보면 말입니다.   위 갈1:15-19 말씀뿐 아니라,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라는 고후12:7 말씀 등으로 짐작컨대,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많은 특별한 계시들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위 말씀 구절들로 인하여,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계시들을 주셨을까...가 더욱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가끔 인터넷상을 뒤적거려 보았습니다만, 제가 궁금해하던 그런 내용에 관한 자료들은 없더군요.   엊그저께 구입한 신학원 마지막 과목 필독서 무려(^^) 세 권 가운데 ‘은혜와 근성의 사람 바울’(찰스 스윈돌 지음, 곽철호 옮김)이라는 책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속에 혹시 제 궁금증들에 대한 답이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로 거의 총알 같이 읽어보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그토록 빨리는 안 읽어보죠.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건 이후 삼 년 동안의 행적, 뭐 좀 알아냈냐구요? ^^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책 내용에 따르면, 바울의 아라비아 생활에 관해 연구한 사람들 많았던 것 같습디다만, 제가 찾고 있던 답은 안 나와 있었습니다.   답은 아니었습니다만, 마치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글이 있더군요. 해당 부분만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이 어떤 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여러 이론들을 가지고 그 빈곳을 채우려고 한다.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여정의 목적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제안들이 넘쳐난다. (중략) 진리는,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다.   ...   더 이상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분량을 몰라도 유분수지, 그렇잖아도 제안들 넘쳐나는 그런 곳에 얼쩡거려 봤자 다치는 일밖에 더 있을까 싶어서... ^^ ( 끝 )  
2023-12-12 00:07:59 | 최영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3) 교제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     성지순례의 또 다른 매력은 함께 하는 성도들과 교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성지순례는 자연스럽게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왜냐하면 버스, 순례지, 호텔, 식당 등에서 자연스럽게 조우하기 때문이다. 약 11일 동안 총 52명의 성도들을 좀더 깊고 넓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소득이었다.   [버스 안에서] 한 버스에 26명씩 나누어 탔다. 10일 동안 한 버스를 타고 움직이다 보면 성도들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것이 진짜 모습이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가는 성도도 있고, 이곳저곳 자리를 옮기는 성도도 있었다. 버스가 출발해야 하는 시간도 깜빡 할 정도로 호기심 많은 성도들도 있었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은 한 곳에 꽂히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또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의 필요(물, 간식 등)를 자진해서 채워주는 성도, 매번 버스에 여행 가방을 싣는 데 도움을 주는 성도도 있었다.   [순례지에서] 같은 버스를 탔지만 현장에 내려서 구경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동선이 겹치게 된다. 옆으로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하게 된다. 폐허된 곳을 볼 때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정교한 곳을 볼 때는 감탄을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분은 이러한 것을 보고 이렇게 느끼는 구나!”라며 서로를 알게 된다. 가끔 A버스와 B버스가 순례지에서 만날 때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호텔에서 같은 방을 쓰면서] 호텔에서 잘 때는 2인 1실이었다. 부부, 모녀, 자매가 같은 방을 쓰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역시 혼자 온 형제와 자게 되었다. 나와 방을 같이 쓰게 된 형제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깊게 사귈 수 있었다. 무려 열흘 동안 한 방을 쓰니 무슨 말을 못할까?   [식당에서] 하루 세 번 식사 때도 교제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성도들이 선호하는 메뉴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이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동석하는 성도들의 식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스나 터키는 중국이나 동남아 나라들보다는 향이 그리 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 호텔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녁 때 수프가 맛있었는데, 비슷해 보이는 수프가 아침에는 영 맛이 달라 먹기가 힘들었다. 나오는 메뉴마다 다 입맛에 맞을 수는 없다. 어떤 분들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김, 깻잎, 김치 등을 내놓기도 했다. 주로 빵과 과일 위주로 식사를 하는 분들도 있고, 현지식이 입맛에 맞아서 그런지 두 세 번씩 가져다 드신 분들도 있었다. 어떤 성도는 너무 잘 먹어서 살찔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이번 성지순례는 함께 한 성도들에 대해서 더 넓고 더 깊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줄곧 함께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제가 이루지게 된 것이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를 서로 주고받다 보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매력도 있다. 나를 웅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평소에 이미 다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성도들의 참 모습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023-12-07 08:56:22 | 이규환
성지순례를 다녀와서(2) 성경이 다시 보인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에 사도행전 13장부터 20장까지를 읽었다. 요한계시록도 2장과 3장을 읽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서신서도 읽었다. 떠나기 전에 읽었던 사도행전, 계시록, 서신서들을 다녀와서 다시 읽으니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사건이나 용어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아테네를 방문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철학자들 앞에서 설교를 한 아레오바고 언덕(마르스 언덕)을 찾았다. 사도행전 17장에 아테네 사람들이 모든 일에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음을 지적하고 창조의 하나님을 선포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언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이를 웅변하고 있는 듯했다.    <아레오바고 언덕, 저 뒤편이 파르테논 신전이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간다. 여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게 된다. 아굴라와 함께 천막을 만들어 자비량 선교를 한다.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문다. 사도행전 18장에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재판석으로 끌고 간 내용이 나온다. 아래 사진은 재판장의 베마 터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 선 것이다. 내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 앞에 서서 회계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 자리를 베마라고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었다.    <사도 바울이 갈리오 총독 앞에 섰던 베타 터>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네아폴리스에 도착하고 빌립보로 간다. 여기에서 두아디라 출신의 자주색 옷감 장수 루디아를 만난다. 그리고 점치는 영에 사로잡힌 어떤 소녀의 영에게 명령하여 나오게 한다. 이 일로 실라와 함께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감옥의 간수를 구원한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드로와 항구>   사도행전 13장은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설교를 했다는 비시디아 안디옥이 나온다. 생각보다 외진 곳이었다. 이런 곳을 걸어서 다녔다는 것을 듣고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를 두 번 방문했다. 이곳에서 디모데를 만난다. 루스드라는 완전 시골이었다. 이곳에 디모데라는 훌륭한 청년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 산골에 지금 모스크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사도 바울이 처음 설교했던 장소의 터>   골로새서 2장 1절에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육신으로 내 얼굴을 보지 못한 모든 자들을 위해 얼마나 큰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 너희가 알기를 내가 원하노니’라고 나온다. 이 편지를 라오디게아 성도들도 읽었다. 아래 지도를 보면 골로새서에 편지하면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 성도들을 언급하는지 알 수 있다. 리커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라오디게아에서 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지점에 골로새서가 있고, 라오디게아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지점에 히에라폴리스가 있다. 골로새서는 이번에 가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봤다.    <세 지역은 루커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서로부터 차가운 물을, 히에라폴리스로부터 뜨거운 온천수를 공급받았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다고 지적받은 이유를 성지순례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히에라폴리스의 야외 온천장에서 직접 발을 담가 보았다.   아울러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7개 교회에 편지하는데, 어떻게 속속들이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서에서 사역을 했다. 그러면서 7개 교회를 두루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래 사진은 버가모 터의 모습인데, 저 뒤편(빨간 점선)에 사탄의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요한계시록 2장 13절)    <버가모 교회 뒷편에 사탄의 자리라고 알려져 있는 곳>   베드로전서 1장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한다. 아래 지역을 방문하면서 사도 베드로가 여기까지 와서 말씀을 선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베드로전서 1장 1절이 눈에 훤히 들어온다.     성지순례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성경이 낯설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지도로만 봤던 성경의 지명들을 직접 밟아보고, 성경에 왜 이런 내용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배경을 알게 되니까 성경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다녀온 사람들만 특혜를 누린 것 같아서 함께 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끝.
2023-12-01 21:32:26 | 이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