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에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이 광고되어 참 기쁜데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올리려니 마음 좀 그렇네요!
한편으로는 이런 소망없는 세상에 한줄기 빛이이라도 비출수 있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을 알리고 읽도록 권하는 것은 바른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들의 소망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글을 올립니다.
중국에서 10월 13일(지난주 목요일)에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기사 입니다.
[사진=중국 HITVS 캡쳐]
시장 안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나던 트럭이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도 귀찮은 듯 그냥 치고 천천히 시장통을 빠져나간다. 뒤이어 사람들이 지나지만 치여서 쓰러진 아이에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다른 트럭이 다가온다. 이 트럭도 쓰러진 아이를 바퀴로 깔고는 그냥 지난다. 사람들은 쓰러진 아이를 힐끔 볼 뿐 그냥 피해간다.이런 상황은 7분간 계속됐다. 그동안 아이를 지나친 사람만 18명이다. 이 아이는 엄마에게 발견돼 병원에 긴급 후송될 때까지 7분 동안 차에 치이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15일 중국 HITVS가 당시 현장(광둥성 포산시)에 있던 폐쇄회로 TV(CCTV) 화면을 입수해 보도했다.13일 찍힌 이 CCTV 영상에는 시장 내 골목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부모를 찾는 듯 혼자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때 정면에서 시속 20㎞정도로 달려오던 흰색 승합차가 아이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치었다. 운전자는 잠시 멈칫하는 듯 했으나 이내 서서히 차를 전진시켰다. 그리곤 그대로 현장에서 사라졌다.
충격적인 장면은 계속된다. 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피를 흘리며 길에 쓰러졌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고는 지나치는 것이다. 사고 이후 무려 18명의 보행자가 쓰러져있는 아이의 곁을 지나갔지만 그저 쳐다만 보고 아이를 피해갈 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 트럭은 오히려 아이를 다시 한번 밟고 지나갔다.한 여성이 다가와 아이를 쳐다보더니 길가로 옮겼다. 옮기는 도중 아이는 축 늘어진 채 미동 조차 없었다. 후속 조치는 없었다. 잠시 후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달려와 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현재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병원측은 이미 뇌사판정을 내렸다. 아이의 아버지인 왕모씨는 눈물을 쏟으며 무책임한 시민들의 반응에 울분을 토했다. 이 아이는 겨우 두살배기였다.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왕양을 치고 달아났던 운전기사 2명은 공안에 자수를 했다.실제로 중국인들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다 자칫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놓일까 두려워한다.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비에관센스(別管閑事)`가 중국에선 일반적인 풍조로 통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1.10.17 09:27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분노와 슬플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위의 두살베기 여자아이와 같은 두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이 기사를 읽는데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이런 사건들은 참으로 슬프고 비통한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북한에서도 굶주림과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본능적인 행동들을 보이는 동영상들이 떠올라 참 슬펐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존귀히 여기고 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건들은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패륜과 참담한 사건들이 일어나 우리를 슬픔과 분노에 치를 떨게 하지만 매스컴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내게 이런 억울한 일들이 생기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것으로 선을 그을 지도 모르겠지만 주님은 전 세게에서 일어나는 이런 비인간적인 일들과 이런 악한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소망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을 독생자로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위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어 주셨습니다.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신뢰가 무너졌을때 오는 배신감과 모욕을 죽는 순간까지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의 죄에 대한 공의까지 어린양의 속재물로써 감당해야 했으니 주님의 마음을 정말 헤아리기가 어려울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시겠죠?
2000년 전에 예수님이 값비싼 댓가를 치루어 주셨는데 사람들의 모양은 여전히 소망없는 모습들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들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고 위로하는 믿음의 실천이 우리에게 있어지기를 바래봅니다.
2011-10-18 04:03:45 | 노영기
잊지않도록 외워야할 만큼 좋은 내용이예요.
잘 읽었습니다.
2011-09-08 18:27:56 | 김상희
글을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단어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
좋은 글을 대하니 더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네요~
책읽다가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니~
저도 틈틈히 읽어야겠네요~
2011-09-07 21:35:33 | 주경선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1-09-07 10:17:52 | 관리자
네, 진정한 영적 체험에 대해 잘 발췌해 주셨습니다.
다음 단락을 읽어보시면, 참된 영적 체험이 무엇인지 비교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참된 체험이란 '진리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이해하기보다는 외적 체험 위에 자신들의 가르침을 구축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은사주의적 체험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된 계획 및 섭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거나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입니다. 체험이 한 사람의 믿음의 기초가 되면 온갖 거짓된 가르침이 아무런 제한 없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야지, 성경을 어떤 (외적) 체험을 근거로 해서 풀 때는 오류에 빠집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난 강렬한 감정을 수반하는 내적 자각은 꼭 필요합니다.
2011-09-06 23:16:33 | 신대준
아멘.
성령님이 내게 주시는 반응을 알아차리는 내적 자각 맞아요.
지식은 많아도
이 모든 것에서 우러나는 헌신적인 사랑이
실제 행동에서 -성령님의 동행하심을 보게 되지요.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서도 자명하게 보이지요.
하물며 어른은..
네 보물 있는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으면 행동은 절로 나오게 되지 않나요?
2011-09-06 16:04:17 | 이수영
짧은 메모의 글을 올립니다.
우리가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갖게 되면 너무 지식적이고 머리만 커진다는 비판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 말에 우리 마음은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도 말씀이 주는 커다란 체험과 기적이 있습니다.
구원받고 늘 하나님을 중심으로 두고 나를 돌아보는 사람들에게는 매일의 삶에서 세미한 주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내가 가진 체험 위에 말씀을 둡니다.
오늘은 메마르고 무감각한 진리가 아니라 말씀이 주는 활력이 무엇인지 담은 글이 있어 옮겨봅니다.
"진정한 영적 체험속에서는 정서와 감정과 감각이 일상적인 체험을 넘어설 정도로 강렬해질 경우가 많다.
이러한 체험에는 죄에 대한 강한 후회의 감정
정신적으로 충격적인 상황에서 받은 고통을 뛰어 넘는 강한 신뢰감
어려움 가운데서도 넘치는 평안
하나님께 대한 확신 및 소망과 관련된 가슴벅찬 기쁨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강렬한 슬픔
하나님의 영광을 이해할 때의 생기있는 찬양
또는 사역에 대한 고양된 열심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영적 체험은 정의상 성령님께서 조명하시고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난 강렬한 감정을 수반하는 내적 자각이다..."
2011-09-06 15:46:52 | 정혜미
꼭 알고있어야 할 방법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갑자기 많이 아프면 아무 생각도 안 날 테니 모두들 평상 시에
연습을 해두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1-08-24 10:34:14 | 김상희
윤계영형제님~ 이런방법도 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샬롬"
2011-08-24 09:17:14 | 윤범용
잘 읽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2011-08-22 12:53:18 | 김상희
우리교회도 원치않는 질병으로 고통중에 있거나 이미 그 후유증으로 인내하며 생활을 해나가야하는 불편한분들이 적지않게 계십니다. 질서의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체조직에 질서가 조금 불안정하게 된것이 이유라면 기도로 아픈분들의 인체조직이 질서가 잘 잡혀나갈수 있도록 내몸처럼 기도해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약 5:15, 킹흠정)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
마시안해변에서 어제 한 형제님과의 대화중 우연하게 나온 심폐소생에 대해 간단한 지침을 검색공개합니다.
인체에 짧은시간에 가장 심각한 장애를 꼽자면 바로 심장 이상 발작 일것입니다.
아무도 ~ 없는 곳에서 혹은 아직은 심폐소생을 할줄 모르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인 요즈음세상을 살면서
아래 내용이 만에하나 도움이 될것 같아 올려드려봅니다.
2011-08-22 09:31:48 | 윤계영
형제님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함께 믿음의 고백을 정리하신 그 열심도 느꼈습니다.
이런 글들을 자꾸 대해야 육적인 고난과 다툼에서 벗어나 영적인 소망을 크게 부풀릴 것 같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11-08-20 10:37:19 | 정혜미
우리가 이미 주님의 은혜와 복음의 진리를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자주 그것들을 생각(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여, 모두 다 아는 것이지만 나름대로 정리하여 글을 올립니다.
" 부지런히 살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고...(히12:15)."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매이는 죄를 우리가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은 경주를 달리며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인 예수님을 바라보자...(히12:1-2)."
디폴트(Default)와 사형(Death penalty) 선고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에는 우리의 실정법의 원리와 유사하게 주님께서 베푸신 구속의 은혜와 공의를 바탕으로 드러나는 영적인 법리(法理)가 명확하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the Law) 자체가 신정국가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용되어 왔고 다분히 실정법과 같은 성격과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도 부정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특히 로마서는 하나님의 옛법과 새법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의와 구속의 은혜를 설명하는 글임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치르신 희생(대가)이 있었음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속의 은혜와 공의를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조리(條理)에 맞게 깨닫게 하시려고, 대체로 민사법과 형사법으로 양분된 인간의 실정법의 체계에 맞추어 그분께서 치르신 희생이 어떠한 것인지, 즉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어떠한 (상태에 있는) 존재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 중 상당히 많은 사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죄 없으신 주님께서 치르신 대가를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치르신 희생이 얼마나 큰 것임을,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어느 정도 영적으로 파산 상태에 있으며 사형 선고를 받은 비참한 (상태에 있는)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영이시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평생토록 우리의 파산 상태와 비참한 상태에 비례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채무불이행을 뜻하는 디폴트(Default)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은 이미 영적 파산(spiritual bankruptcy) 상태에 놓여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렘2:11-13, 요3:16 등). 우리 인간은 주님께서 비유로 제시하신 자기 주인에게 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빚진 만 달란트는 환전하면 대략 4-5조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 돈으로서 개인적으로 도저히 갚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수치의 부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는 백 데나리온, 즉 환전하면 천만원 정도 빚을 진 동료에게도 긍휼을 베풀지 못하는 사람으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청난 빚을 탕감해 주기 위해 그의 주인이 베푸셨던 희생(대가)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며 그의 주인이 결국에는 그를 형벌을 받도록(값을 돈이 없으니 자기 몸으로 진 빚에 대한 대가를 직접 치르라고) 넘겨주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마18:21-35). 그리고 주님께서 시몬이라는 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신 후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고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을 그치지 아니한 한 여인을 보시고서 여기에서도 죄들을 용서하시는 것을 빚을 탕감해주는 것으로 비유하시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정도는 빚을 탕감 받은 정도에 비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 둘을 모두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는데 그 둘 중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고 질문하시면서, 많은 죄를 용서받은 자는 용서를 해 준 주님을 그만큼 많이 사랑하게 되고 적게 용서받은 자는 용서를 해 준 주님을 그만큼 적게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7:36-50).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되도록 빚을 안지면 우리에게 좋겠지만, 실제로 빚을 져보지 못한 사람은 빚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체험적으로 깊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도 돈을 꾸러 가는 사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민사법은 손해배상이든 채무불이행이든 법의 전반에 걸쳐 공평의 원리를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 빚을 갚지 않고서는 또는 빚이 해결되었다는 법적인 판결을 얻어 내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미 빚(죄)의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빚(죄)의 노예가 되었는지를 깊이 알 때, 주님께서 우리의 빚을 갚으시고 우리를 사신 구속의 깊이도 그만큼 비례하여 알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께 너무나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이를 알든 모르든). 여기에서 우리는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얼마나 영적으로 갚지 못할 죄의 수렁에 빠져 있었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용서(탕감)받았는지(주님께서 어떠한 희생을 대신 치르셨는지)를 아는 만큼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두 번째로 형사상 최고의 형(刑)인 사형(Death penalty) 선고와 관련하여, 우리 인간은 이미 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사형(사망)을 선고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자는 죽으리라 또는 죽는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으며(창2:17, 신8:19-20;17:12-13, 롬1:32, 롬6:23, 약2:10-11 등), 인간은 하나님의 의의 법(말씀)에 순종할 능력을 상실한 존재로서 그분 앞에 가장 가증한 존재인 마귀와 똑같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짓을 하게 되는 불순종하는 존재로 타락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법을 어김으로써 사형(사망) 선고를 받은 죄인들입니다(별도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될 필요가 없고, 오직 사형 집행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만 남았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설 수가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반드시 영원한 사망이라는 혹독한 형벌(지옥불(호수)에서의 죄값을 치르는 것)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혼은 이미 부패하였기에(막7:20-23 등) 육체와 분리되면 당연히 임시 거처인 지옥불(일종의 구치소와 같음)에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크고 흰 왕좌 심판의 날에 각자가 행위로 지은 모든 죄까지 가중되어 혼과 육체가 동시에 영원한 (영적) 감옥인 지옥불 호수에 빠져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지 못하여 지옥불(호수)에 빠진 자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시거나 부르시지도 않으십니다. 나사로와는 달리 호의호식하며 살았으나 모세와 대언자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한 한 부자의 이름을 주님은 아예 언급하시지도 않으셨고, 입술로만 주여 할 뿐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불법을 행한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는 그들을 전혀 모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감옥에 들어가면 죄수의 번호만 부를 뿐, 죄수의 이름은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미 사형 선고를 받고 당연히 죽임을 당할 가치 밖에 없는 자에게 자유로운 사회인에 걸맞는 합당한 인격이 어떻게 인정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평생토록 자유롭게 되는 큰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과 그분의 법을 존중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도 그것에 대한 답례로 그를 존중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명명백백 공의에 부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 중에 아마 살인죄가 가장 큰 죄목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동료 인간들도 아닌 만물의 주인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해왔습니다(심지어는 기회만 오면 영원히 죽을 수 없는 그분을 죽이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땅에 오신 그분의 아들을 대적하고 죽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나라의 왕이나 황제와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을 대적하고 죽이려 한다면 그는 아주 극악한 죄인으로 분류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알든 모르든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을 죽이려고 해왔습니다. 가장 위대하신 분을 대적하고 죽이려 했으니, 이미 특급 살인죄를 저지른 우리 인간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천박한 인본주의자들처럼 자신이 보기에 다른 착한 일(?) 한다 해도, 우리는 그 극악한 죄인(살인자)의 신분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결코 의롭다(죄 없다)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그분께서 우리의 이러한 살인죄를 용서(사면)해 주셔야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으며 죄 없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디폴트와 사형(사망) 선고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있는 길도 실정법의 법적인 원리에 따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실정법을 능가하는)에 의해 이루어진 구속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공평의 원리와 공의의 원리에 맞게 죄를 담당하시고 죄값에 해당하는 모든 희생(대가)을 치르셨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합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for our transgressions)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for our iniquities)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chastisement)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with his stripes)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바른)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hath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사53:4-6).”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지셨으니(bare our sins in his own body on the tree)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by whose stripes)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벧전2:24).”
“그리스도께서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once suffered for sins)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the just for the unjust)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려 하심이라(벧전3:18).”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slain) 주의 피로(by thy blood) 모든 족속과 언어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hast redeemed us) 하나님께 드리셨으며(계5:9)”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면이 없느니라(without shedding of blood is no remission)(히10:22).”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justified by his blood)…(롬5:9)”
“…자주 자신을 드리실 필요가 없으시니 …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by the sacrifice of himself) 죄를 제거하였느니라(to put away sin)(히9:25-26).”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through the offering of the body of Jesus Christ once for all)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히10:10).”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a ransom for many)로 주려고 왔느니라(마20:28).”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ye are bought with a price).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으니(ye are bought with a price), 너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7:23).”
마지막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디폴트와 사형(사망) 선고에서 벗어난 것을 입증해 주는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 피흘리시고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여 대신 고난 받고 죽으신 후, 묻히셨다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입니다. 그분은 직접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자신과 함께 양 옆에 있었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명의 다른 죄수들과는 다른 차원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분이 정말로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권능 있게 증명하셨습니다(행17:31, 롬1:4). 그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분의 죽음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죽음과 별반 차이가 없는 죽음이며 갚지 못할 자기 빚으로 인해, 사형 선고 받을 자기 죄로 인해 죽임당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성경의 증거도 무의미해지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raised again for our justification)(롬4:25).”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in Christ Jesus)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나를 해방시켰(hath made me free)기 때문이라(롬8:2).”
주 예수께서 영적 파산과 사형(사망) 선고 받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희생(대가)을 치르신 분임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게 인정받았다는 것을 입증하시기 위해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할렐루야!
그분은 지금 부활하여 하늘에 계십니다(히10:12-13). 아무 빚이 없으신 그분은 자신을 대속물로 주심으로써 죄의 노예가 되어 영적으로 파산한 우리의 빚을 다 갚아주셔서 자유롭게 해주셨고, 그분은 또한 의로우신 분으로서 죄를 지어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담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분께서는 살아계셔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된 자, 의롭게 된 자임을 여전히 중보하십니다(히4:14-16;7:25). 그분의 부활은 그분의 이러한 중보가 정당함을 충분히 입증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죽은 그리스도가 아닌 살아나셔서 영원히 살아계시면서 우리의 영적 파산과 사망 선고에서 우리를 완전히 벗어나게 해 주신 것을 당당히 변호하고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있는 자들입니다. 아직 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죽은 그리스도가 아닌 여전히 살아계셔서 우리의 자유롭게 됨과 의롭다 함을 위해 변호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시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셔서 우리가 얻게 된 영적 회복과 영원한 생명의 중보자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2011-08-19 23:43:50 | 신대준
이 찬양이요...
저에게 이 찬양은
힘도 되고,
감사도 되고,
제 자신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는 계기를 주는 귀중한 찬양이에요..
주님을 정말 가장 귀한 분으로 내가 이 세상 것 다 버리고 그 분을 따를 수 있는지..
단지 내가 선교를 나간다거나, 내 재산을 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지금 이 순간 선택의 길에서 '나의 것', '나의 생각'을 버리고 그 분의 뜻을 따른 다는 것이 그 분의 사랑으로 되어짐에도 불구하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매 순간 매 순간 주 예수님을 가장 귀한 분으로 여기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1-07-25 08:32:08 | 정승은
찬양에 마음을 담아 올리는 자매님의 순수한 고백에
저의 마음에도 공명이 일어나네요.
참 저도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세상의 념려 근심이 사라지며 주님을 우러르게 되지요.
사랑의 주님을 바라볼때 찾아오는 마음의 기쁨과 평안,
이 세상이 줄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기쁨과 평안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곧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힘들고 분망한 하루하루일것이 분명 느껴지는데
여러모로 보여지는 자매님과 남편분의 수고와 섬김이 참 아름다워요.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샬롬~
2011-07-23 21:25:09 | 이춘옥
예수님을 모든 것 위에 두기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지요.
자매님의 아름다운 그 마음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겠네요.
주자매님과 개인적인 교제는 못 나누었지만 항상 진솔함이 느껴져요.
두 아들이 캠프를 간 덕에 금요모임에서 만나게 되어 반가웠어요.
나의 구원과 예수님을 생각하며~ 매순간이 기적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2011-07-23 12:55:09 | 김상희
저도 주경선자매님을 사랑합니다......아주 많이요.
2011-07-23 02:13:37 | 이청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은 102장 입니다.
주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명예와 행복과 바꿀수 없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님 밖에는 없네~
오늘 다시 이 찬송을 부르는데 구원 받았던 그때의 그 감격이 밀려옵니다~
삶으로 인해 내가 뒤로 제쳐두었던 예수님을 다시금 저의 전부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도움의 손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내가 처리 해야 할 수많은 일들, 육체의 피곤함과 연약함,
내가 돌보아야 할 우리 아이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어려운 난관들, 당장 살아갈 오늘과 내일, 현실....등등
이 모든걸 내려놓고 다시금 이 찬양의 고백을 통해
내게 구원을 베푸셨던 놀라운 일들을 감사드렸습니다
내게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더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내 모든 즐거움, 행복, 만족 그 모든 것도 예수님과 바꿀수 없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통해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제 마음을 녹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좋은 교회를 만나게 해주셔서 제가 이토록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말씀의 참된 자유함과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공존하며 하나님을 경배할수 있다는것이 놀랍습니다
매순간 순간이 기적입니다~ 사랑합니다~
2011-07-23 01:03:41 | 주경선
식초가 여러모로 쓰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은 잘 못해봤는데, 자매님이 자세히 설명해 알려주시니
확신이 생기네요..
세탁기 부터 청소해야겠어요.
좋은 생활의 지혜 알려주셔서 감사하고요,
다른 용도도 알려주세요.
남은 주간도 승리하시고 주일에 뵈요.
2011-07-22 09:44:32 | 김상희
자매님의 식초사랑 대단하셔요.
좋은정보^나도 사용해야겠내요.
이번주에는 얼굴 뵐수있겠지요?
다음글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2011-07-21 21:10:06 | 김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