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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요즘 오순절 은사은동, 신사도 운동 등으로 인해 방언, 예언, 신유 등의 은사(선물)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매주 금요일 모임에서 고린도전서를 강해하고 있습니다.이번에 고전12-14장까지 강해한 것을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방언 및 각종 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추후에 고린도전서 강해 전체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원합니다.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이해하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고전14:20).   샬롬   패스터   1. 방언 및 각종 은사 강해_01 (고린도전서 12-14장)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564   2. 방언 및 각종 은사 강해_02 (고린도전서 12-14장)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565   3. 방언 및 각종 은사 강해_03 (고린도전서 12-14장)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566   4. 방언 및 각종 은사 강해_04 (고린도전서 12-14장)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567   5. 방언 및 각종 은사 강해_05 (고린도전서 12-14장)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568
2014-06-07 09:28:0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0일이 지났습니다.그 50일 동안 저를 비롯한 온 교회가 구원파의 만행으로 인해 우리 주님의 이름이 훼손될까 봐 가슴 졸이며 지내왔습니다. 자유 민주 체계 자체를 흔드는 이들의 악랄한 시도가 속히 마무리되어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바로 비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로마서 13장과 베드로전서 2장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과 국가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6월은 호국 보은의 달입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이 나라의 자유가 어떻게 수호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 속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되면서 이런 존귀한 가치들이 보존되었습니다. 값비싼 희생으로 얻은 이런 자유가 단순 평등이라는 미명하에 훼손되지 않도록 같이 기도하며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평등이 자유 앞에 가면 공산주의/사회주의가 되기 쉬우며 성경은 이런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자유도 이런 기본적 자유의 가치에서 나옵니다.   정연수/조현아 커플의 결혼식 이후 배경식/이경아 커플이 결혼하고(14일), 21일에는 김인숙 자매님 따님이 결혼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많은 커플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말세에는 마귀가 결혼 시스템을 바꾸어서 결혼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청년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을 장려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따르는 경건한 자손을 배출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으로서의 최소 의무입니다.   오늘 점심에는 청년부 바비큐 파티가 교회 옥상에서 있어서 저와 제 아내도 참석합니다. 청년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녁 금요 모임(6월 6일)은 쉽니다.   주의 만찬은 공지하지 못했으므로 6월 15일로 연기됩니다.   교회의 미디어 사역이 잘 정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과 발도 미디어와 함께 뛰면 좋겠습니다.   지역 모임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예배드리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목요일 11시의 자매 모임도 기억하시고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옷차림> 책자를 읽으시고 남녀노소 모두 복장에 신경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분리된 단정한 모습이 우리의 언행에서 나와야 합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157   사랑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6-06 10:34:48 | 관리자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말씀처럼 사탄 마귀의 악랄한 공격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므로, 우리 모두 영적으로 깨어 있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설 날을 망각하지 말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거룩한 삶, 경건한 삶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2014-05-19 13:59:28 | 한원규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저는 <가정과 결혼> 시리즈로 8회에 걸쳐 오전 예배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때에 믿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성도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오늘 아침 설교에서도 다시 한 번 저는 믿는 남편들이 폭행과 폭언을 하면 안 되고 또 아내에게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write_id=512   짧은 기간에 이런 설교를 몇 차례 하다 보니 혹 우리 교회에서 누가 그런 일을 하는가 보다 하고 추측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유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저의 큰딸은 미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사위와 딸 모두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거기서 교육을 받았기에 한국식 교회에 익숙하지 않아 미국 독립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8년 전에 이 아이들과 저의 막내딸 그리고 가끔 미국을 방문하는 제 아내 등은 볼티모어에 있는 좋은 독립침례교회를 찾아서 잘 다녔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제가 보기에도 선량해 보이고(인상이 대단히 좋음) 양심적인 분처럼 보였으며, 그 목사님의 아버지도 독립침례교회 목사님인데 참으로 경건하게 보이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제가 그분들 모두를 모시고 식사 대접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설교도 깔끔하게 잘하고 전형적인 독립침례교회 틀에 매이지 않고 여러 면에서 목회를 잘하였습니다. 저의 아이들과 사위도 바이올린 연주, 노래도 하고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도 하며 교회에 적응을 잘하였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교회는 부흥을 해서 큰 대지를 사서 이사도 가고 여러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가끔 제가 미국을 방문해서 찾아가 보면 흠잡을 데가 없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저의 큰딸에게서 놀라운 소식이 왔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목사님이 사모님을 자주 때려서 사모님이 경찰을 불러 조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 교회의 어떤 처녀 자매와 불륜을 저지르고 교회 돈을 유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사모님을 때렸고 이번에는 사모님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이야기했으며 아예 친정에 가서 안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자기 부인이 정신적인 문제로 앓고 있으니 그 말을 믿지 말라고 교인들에게 이야기하였는데 이런 식의 변명은 통계적으로 볼 때 아내를 때리는 남편들의 공통적인 행동양식이라고 합니다.   이 일이 제 딸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한 뉴스라 그 아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저나 제 아내도 그런 소식을 접하고 믿기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요, 그래서 그 목사님은 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두렵네요.”라고 제 큰딸이 카톡 메시지를 보내서 그 아이가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3,000년 전 구약 시대의 다윗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제 주변에서,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보시다시피 목사도 아내를 때릴 수 있고 간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육신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아내에게 폭행하고 폭언을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런 일은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이혼 사유에 해당합니다.   또한 자기 몸만 생각하고 아내와 자식의 문제나 복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즉 무관심도 이에 필적하는 죄악입니다. 이 무관심 역시 아내와 아이들을 병들게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남편(아빠)과 함께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폭언, 폭력, 무관심의 대다수가 남편들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저는 목사로서 우리 교회 성도들과 저 자신에게 선한 양심의 경고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설 것을 기억하고 구원받았어도 두려움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 배우자, 자녀들, 부모에게 친절을 베풀고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그 뒤에야 교회와 사회와 나라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가정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교회를 이끌고 나가는 목사인 저는 심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다음의 성경 말씀을 기억하고 남편 형제들이 아내와 자녀들을 관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하면 좋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4-17절 14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의 이전 정욕들에 따라 너희 자신을 꾸미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 16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느니라.  17 사람들의 외모를 중시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너희가 부르며 간구할진대 너희가 여기에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지내라.   에베소서 5장 25-28절 25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  26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27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자들도 마땅히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느니라.   샬롬   패스터
2014-05-18 19:23:46 | 관리자
요즘 하나님의 뜻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을 올립니다.우리 교회 성도들은 위 글을 꼭 읽고 원래 책도 교회 도서관에 있으니빌려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의 뜻을 직통 계시로 착각하고 직통 계시(꿈 등)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심히 두려운 불신의 행위입니다.샬롬패스터http://new.cbck.org/BoardRedirect/book/169  
2014-05-15 13:26:38 | 관리자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오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주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내게 더 많은 명철이 있으며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더 잘 깨닫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내 발을 삼가 모든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판단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참으로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훈계들을 통해 내가 명철을 얻으므로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시편119:97-104) 그리스도인들에게 쓸데없는 스트레스와 혼란을 가져다주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관련된 문제는 아마도 최고로 높은 순위를 자랑할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지도하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의의 행로들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시23편). 그렇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인도하신단 말인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내가 아침의 날개들을 취하여 바다 맨 끝 지역들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9-10). 하지만 이 말 또한 그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로그인’만 하면 하늘에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받을 수 있는 대화방을 개설해 놓으셨단 말인가?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서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의사소통하시면서 그들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에 대한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단 말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특정한 단계들이 있단 말인가? 만약에 그러한 단계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공식은 무엇인가? 도대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이 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롬8:14).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도와 인도를 받는 사람들만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문제가 어찌 스트레스를 주지 않겠는가?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원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입는 옷, 우리가 가지는 직업, 우리가 결혼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교회에서 내가 하는 역할이나 내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질문들 앞에서 다소 위축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싶은 그리스도인들의 열망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스스로를 괴롭힌다. 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일을 그토록 힘들어하는가? 왜 그것으로 인해 그토록 불안해하는가?   부득이하게도 그 대답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들과 기대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공통적인(그리고 전통적인) 관점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일단 밝힌 다음에 그러한 관점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바른 관점을 모두 아는 것이 도움될 것이다. 잘못된 관점  이 관점은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경우 하나님의 인도란, 그와 같은 계획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 버린다. 만약에 그와 같은 계획이 존재한다면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계획이 있다면 매사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언제나 한 가지 결과만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 하나님의 핵심적인 뜻, ‘완벽한 계획’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에 결혼이 들어가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에는 단 한 사람의 배우자가 내정되어 있으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신중하게 ‘찾아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의사 결정은 수수께끼 풀기가 되어 버린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라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는 ‘형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치 퍼즐 조각처럼 찾아서 서로 맞출 수 있는 단서와 암시들을 흘리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확신은 그러한 태도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점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오늘 당신이 어떤 신발을 신을지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나님은 오늘 아침에 당신이 무엇을 먹기를 원하시는가? 오늘 당신이 읽어야 할 성경 구절 혹은 당신이 가야 할 휴가지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은 무엇인가?   일터에 자가용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가, 아니면 기차나 택시를 타야 하는가? 만약에 하나님께서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면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일관되게 매사에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의사결정에 대한 그와 같은 관점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상식과 개인적 기호에 기초해서 자유롭게 선택한다. 만약에 그들이 매우 종교적이라면 종교적인 주문으로 자신들의 선택에 ‘세례’를 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하도록 나는 인도를 받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있다” 와 같은 말들로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예화   다음의 짤막한 이야기를 통해서 잘못된 관점의 예를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함께 첫날을 보내게 된 아담과 이브를 한번 상상해 보자. 죄가 없었기에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에덴동산에 거주하는 원예가로서 바쁜 하루를 보낸 아담은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집으로 왔다. 그는 집으로 가면서 나무에서 요리 재료들을 따갔다. 이브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아담은 개인 풀장인 비손 강에서 수영을 즐겼다.   그러나 부엌에서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이브는 자신이 맡은 임무가 너무도 막중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도 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맛있는 과일들 중에서 무엇을 요리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이브는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그 많은 과일들을 다 먹을 수는 없었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이브는 알고 있었다. 이제 갓 결혼한 이브는 초반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놓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브는 자신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아담에게 부탁했다. “내가 저녁 식사로 무엇을 준비하기를 원하시는지 주님께 물어봐 주세요.”   아담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새로 주시는 계시가 없구려. 우리의 식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밖에 없구려. 그러니까 ‘이 동산에 있는 그 어떤 나무의 열매든 다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안 된다’는 말씀 말이요.” 아담은 자신이 금지된 나무에서는 열매를 따지 않았다고 이브를 안심시켜 주었다.   이브는 여전히 결정을 못했고, 식사 준비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몹시 배가 고픈 아담은 아삭아삭하고 빨간 사과가 아주 맛있어 보여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에 정말로 화평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사과를 먹도록 인도를 받는 것 같소.” 이브는 사과를 먹는 데에 순순히 동의했고 자신에게도 아담과 같은 ‘화평’이 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과를 먹기로 한 결정이 이브에게 새로운 문제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아담, 이 사과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밀까요, 깍둑썰기를 할까요, 으깰까요, 파이 안에 넣어 구울까요, 아니면 사과파이나, 튀김이나, 푸딩을 만들까요, 아니면 사과 턴오버(turnover, 잼 들을 넣어 반원형으로 접은 파이)를 만들까요, 아니면 그냥 날 것으로 먹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인도를 나는 기꺼이 받기를 원해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한 번만 더 하나님께 가서 물어봐 주겠어요?”   다시 한번 기도를 하고 나서 아담은 말했다. “마찬가지의 대답을 받았소. ‘이 동산에 있는 그 어떤 나무의 열매든 다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안 된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본 아담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요, 이브, 주께서는 그 말씀만으로도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충분하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소. 하나님께서는 내가 정확하게 무엇을 먹고 어떻게 그것을 먹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나는 확신하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정을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구려. 오늘 내가 짐승들의 이름을 붙인 것처럼 말이요. 하나님은 내가 알아서 그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소.”   이브는 충격을 받았지만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이 과일들 중에서 어떤 것을 저녁 식사로 먹든 내가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든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요?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놓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내가 무엇인가를 실행하기 전에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의 모든 세부사항을 구석구석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함께 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경우는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것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과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 경건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사용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과일 샐러드를 먹자!”   잘못된 관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이브는 마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단 하나의 올바른 선택을 찾아다니는 신비로운 여행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브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광범위한 자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뜻’은 동그라미 안에 찍혀 있는 자그마한 점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가 가능한 거대한 강과 같다. 그 가능성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백 혹은 수천 가지의 대안적 선택들이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동하는 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에 문제가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다.   충격적인 진실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폭넓은 자유보다는 끝도 없는 규칙들을 더 편안하게 여긴다. 그들은 지혜보다는 미성숙을 선호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아기처럼 자신들에게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기를 원한다.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려주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모든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한 성인처럼 다루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원칙들을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타당한 결정들 중에서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올바른 관점   어떤 특정한 사건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어난 것인지를 묻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는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어는 서로 완벽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그와 같은 구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뜻은 계시되었거나 혹은 계시되지 않았다. 다음의 도표가 우리의 사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 _ 도표의 왼쪽 부분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도덕적 뜻 혹은 하나님의 교훈적 뜻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서 기대하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싫어하시는지를 설명해 준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 우리가 일하고, 쉬고,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눕고,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모든 것 - 의 기준으로 삼기를 원하시는 모든 윤리적 원칙들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을 알려 주셨다. 그 뜻은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성경66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십계명에 그 개요가 들어가 있으며(출20장), 더 요약해서 두 개의 주요 원칙으로도 주셨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22:36-40). 우리가 이 원칙에 따라서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숨겨진 뜻 _ 도표의 오른쪽 부분   하나님의 숨겨진 뜻은 하나님의 주권적 뜻, 은밀한 뜻, 혹은 언약적 뜻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정하신 모든 일과 관련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령적 뜻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뜻은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이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확실하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이다. 그 청사진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 까지 포함해서 - 다 들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적 맹세를 성취해 가시는 동안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사용 하실지가 다 들어 있다. 이 은밀한 뜻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천사들이 자유롭게 내린 결정들을 다스리고 지배하셔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이루신다. 이 말은 모든 것이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숨겨진 뜻에 대해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내일 아침에 당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일 오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목적과 명령 속에서 정해진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것을 계획하고 계신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그 어디에도 ‘당신의 인생을 향한 완벽한 계획’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셋째 ‘뜻’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시지 않다. 당신의 인생 지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은밀한)뜻 안에 있는 수십억 개의 세부 요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우여곡절을 안고 있는 그 지도를 알기를 기대하지 않으신다. 만약에 그와 같은 인도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좌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뿐이다.   모세는 그것을 신명기 29장 29절에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은밀한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서 속하거니와 계시된 그 일들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나니 이것은 우리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밀한 일은 우리 하나님께 속하거니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인도는 성경에 다 나와 있다. 말하자면 “나타난 일이 율법의 모든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관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사 결정을 잘하는 방법이다.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거나 논리적으로 암시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전부다. 우리가 성경과 일관된 결정을 내리는 한 우리는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뜻이다.   2. 우리가 그 뜻을 안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적 뜻을 엿볼 수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왜냐하면 안다 해도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의도하시고 명하신 일들은 피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 나아가서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보여 주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비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한가?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리의 죄와 실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는 우리의 모든 도덕적 그리고 비도덕적 행동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선한 행실과 악한 행실들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덕적 뜻을 어기는 많은 일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밀 한 뜻에는 모든 역사속의 모든 사람과 천사들의 완고함과 불신앙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아담의 죄,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화형당한 순교자들에게 가해진 잔인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밀한 뜻을 보여 주셨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을 보여 줄 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만약에 내일 오후 3시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서, 당신이 특정한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도 아닌 이유는 그러한 말을 해야 마땅한 것인지를 당신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하나님의 인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이러한 경우에는 특히 혀의 사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말이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결정에 대해서 충분한 안내자가 된다.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기억하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심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사탄까지도 말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심지어 사탄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스터플랜에 계획해 놓지 않으신 일들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된 도덕적 뜻에 근거해서 심판을 받는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면과 관련된 행동 원칙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준비시켜 준다. 하지만 성경은 반드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행동하기란 너무도 쉽다. 해석의 오류를 피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기도의 역할은 무엇인지, 논리적 추론의 역할은 무엇인지도 살펴볼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에서 발췌, 피터 블룸필드,  성서유니온선교회 
2014-05-15 13:19:28 | 관리자
제가 다니던 전 교회도 위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기에 전 20년 섬겼던 교회를 미련없이.. 주저없이..망설임 없이..나왔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런 이유로 다니던 교회를 뒤로한채 상처받은 심령을 안고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찾아 이곳 사랑침례교회로 온줄 압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줄 아는 목자가 있는 이곳 사랑침례교회는 위와 같은 타락의 과정을 겪지 않도록 바른걸 찾아온 바른 성도들이 함께 지켜갈 줄 믿습니다.. 마지막 기도에 저도 아 멘 으로 화답 합니다..
2014-05-14 16:57:22 | 이명숙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아침(14년 5월 11일)에 알지 못하는 어떤 분이 <목사의 타락 과정>이라는 글을 카톡으로 보내왔습니다.생각할 것이 더러 있으므로 같이 나누고자 올립니다.아마 글의 원저자는 목사인 것 같습니다. 저부터 선한 양심을 지키는 목사가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   목회자들은 어떤 타락 과정을 밟는가?   1. 힘든 목회 생활 속에서 처음 가졌던 소명들이 점점 식는다.   2. 목회 소명이 식으면서 은혜도 식고 그러면서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3. 세상 것을 가지고 싶어진다. 돈도 가지고 싶고, 좋은 차도 타고 싶어진다.대형 교회 목사들 보면 부러운 마음이 생긴다. 노후를 위해 집도 한 채 마련해 두고 싶어진다.   4. 세상 것을 찾다 보니 교회를 키워야 한다.교회를 키우는 목적이 영혼 사랑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5. 목회자도 사람이다. 자기가 성공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진다.그래서 세상에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교회를 키워야 되겠다고 마음먹는다.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방법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도입한다.온갖 세미나에 쫓아다니면서 방법론을 배운다.   6. 교회 건물을 크게 지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교회 건물을 잘 짓는다.세상 비즈니스 방법, 마케팅 방법을 교회 성장에 사용한다.   6. 진리를 말하고, 회개를 외치면 다들 도망간다고 생각되니까, 인간 비유 맞추는 설교하기 시작한다. 천국 설교, 지옥 설교를 하면 인기 없어지니까 세상 부귀영화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설교한다.번영 신학을 도입하고, 부자 되도록 부추기는 설교하기에 바쁘다.   7. 세상 비즈니스가 '고객 중심'이 되어야 성공하는 것처럼,목회자들도 성공하기 위해서 '성도 중심'의 목회를 한다.그러다 보니 교회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고 성도들, 대중들이 되어 버린다.예수님의 뜻이 중요한 것 아니다. 대중들의 뜻이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판을 친다.다수결이 최고의 힘을 가진다. 그러니 목사들도 표를 던지는 청중들에게 비유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마치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에게 한 표를 구걸하는 것처럼 목회자들도 그렇게 굽실거리기 시작한다.   8. 상황이 이 정도쯤 되면 목회자는 성도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어떻게든 교회 돈을 좀 더 자기 앞으로 빼내서 유용하고,차세대 통장을 만들어서 자식 유학시키고,자기 노후 대책 세우기 바쁘다.   9.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중형교회가 되면 '교만'해지기 시작한다.노회장쯤 되고, 목사 세계에서도 파워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면 목에 힘을 준다.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세상 영광의 맛을 보면서 점점 세상으로 빠져간다.그것이 사탄이 놓은 올무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10. 이렇게 교만의 올무에 빠지게 되면 사탄은 이 목회자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이젠 세상 영광을 취하게 해 준다.정치인들도 손을 뻗쳐오고, 지방 자체 단체에 있는 시장을 비롯한유력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교제가 이루어진다.그러면서 정치적 파워도 생기고, 사회 유지로서 한 몫을 감당하게 된다.그럴수록 마귀는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올려 주어서 다시는 내려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세상 사람들은 그런 목사를 '성공한 목사'라 하지만, 영적으로는 마귀에게 완전히 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11. 교회가 대형화될수록 사단의 공격은 점점 더 강해진다.대형교회는 목회자로서의 성공의 척도가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그런 대형교회는 사단의 밥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하나님이 그렇게 해 준 것으로 생각하지 누가 마귀가 그렇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겠는가?그러나 대형교회는 이미 마귀들이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다원주의를 받아들이고, 혼합주의로 나가지 않는데 어떻게 대형교회가 가능하겠는가?부부간에도 맞지 않아 다투고 이혼하는 판국에수천 명, 수만 명이 한 뜻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진리를 고집하고, 회개를 외치고, 천국 지옥을 외쳐보라!장례식 예배, 추도 예배 폐지한다고 해 보라!아마도 교인들이 데모할 것이다. 그러니 대형교회 목사는 그들과 타협하여 혼합주의로 가 버리는 것이다.   12. 돈은 하나님만큼이나 힘이 있다.그래서 목사들이 처음엔 하나님을 의지해서 시작했지만 나중엔 돈을 붙잡는다.교회를 지어야 하고, 선교사업도 해야 하는데 그것을 기도로 하기보다는 돈으로 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사탄에게 넘어간다.사탄은 돈을 주어서 선교도 하게 하지만, 구원 없는 선교, 열매 없는 선교를 하게 한다.목사도 속고, 성도들도 속고, 다 하나같이 속는다.그렇게 하고선 목사도 교회도 자기들이 선교 많이 한다고 나팔을 불고, 광고하고, 인터넷에 올린다.   13. 대형교회 목회자는 인기 연예인을 방불케 한다. 그 인기에 맛 들여진 목회자들은 자꾸만 스크린에 나오려 하고,자기의 설교 모습을 전국 방송에 내보내려 한다. 이렇게 해서 자기 영광을 구하며, 자기를 나타내려 하다 보니예수님은 뒷전이고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고 만다.   14. 목회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음란 마귀'가 찾아온다.수많은 아름다운 여성도들을 대하다 보면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목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단은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음란에 약한 것을 알기 때문에 여자를 통해 접근해 온다. 목사 자신이 천국을 위해 고자가 되지 않은 이상집요하게 찾아오는 음란의 영을 물리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사모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또 육체적 접촉이 없다 할지라도 마음에 이미 간음하게 된다.수많은 목회자들이 음란죄에 빠진 것이 현실이다. 유명할수록 더욱 그러하고, 부흥사일수록 음란죄에 빠져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설마 저 목사님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다. 누구도 모르지만 예수님은 아신다.   15. 목회자로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면 국가조찬기도회에 초청을 받게 된다.크리스천 국회의원 기도회에도 가게 된다.그렇게 정치인들과 접촉하게 되면 위세 등등한 목사님이 된다.변질되기 시작한다. 정치에 관여하게 된다. 누구를 밀어 주라고 하고어느 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둥 정치적 발언을 교회 강단에서 하게 된다.이미 사탄에게 넘어간 상태이다.   16. 큰 교회를 세워 놓은 목회자들은 그 교회 남 주기 아까워서 자기 자식에게 세습시킨다.그 세습 작업은 자기 자식이 어릴 때부터 서서히 이루어진다.유학을 보내서 박사학위를 받아 오게 해서 목사로 강단에 세운다.그러면서 자기는 서서히 뒤로 빠진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식하고 강단을 나눠 먹기 한다.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라 자기 사유화된 교회이다.그런 교회 성도들은 불행하다.   17. 목사들이 한기총이니 총회니 노회니 하는 곳에 나가 한자리하려고 돈 봉투를 돌린다. 서로 싸우고 다툰다. 상대방 후보를 헐뜯는다.세력 다툼을 하고, 정치하기 시작한다.그러다 보니 목사가 아니라 '깡패'가 되고 만다.목사 입에서 "개XX"가 나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면서상대방 세력을 향해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린다.완전히 사탄의 하수인이 되고 만다.   18. 더 이상 목사들이 천국과 지옥에 관심이 없다.믿음 생활이야 어떻게 하든 죽으면 당연히 천국 갈 거라고 믿는다.회개하고는 담쌓은 지 오래다!자기만큼 의로운 자가 없고, 자기만큼 성공한 목회자가 없다고 착각한다. 오직 그들의 관심은 이 땅에 있다.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살까?어떻게 하면 부동산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더 좋은 차를 탈까?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더 많은 재산 물려 줄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자식들 미국이나 외국에 유학시킬 수 있을까?예수님을 발판삼아 출세해 보려고 하고,자기 배를 채우려 하는 목회자로 전락한다.   이런 목사들을 주님이 어떻게 쓰시겠는가?돈과 음란과 명예와 세상 영광, 쾌락, 자기 욕심으로 가득 차서 그런 것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달려가는 목사들을 주님이 어떻게 쓰시겠는가? 그들이 가는 곳은 지옥불이다. 열심히들 달려가고 있다.한국교회 많은 목사들, 하나같이 지옥불로 달려간다. 정말 주님이 쓰시는 숨겨놓은 목회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지금 한국교회 많은 목사들은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큰일이다. 돌이켜야 한다.죽고 싶지 않으면 회개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가운데 목회자가 있다면당신도 타락의 길을 걷고 않는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주님께 책망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말고,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목사의 타락 과정을 당신만큼은 밟지 말기를 부탁한다. 주님이 원하는 정도로 가라!그 길은 고난과 핍박이 있는 곳이다. 좁고 험난한 길이요, 십자가 지지 않고서는 못 가는 길이다.배고픈 길이요, 인기도 없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길이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산다. 목회 실컷 하고 정죄 받지 말고, 지금 돌이켜라!타락한 목사가 되지 마라!'내 마음에 합한 종'이란 말을 듣도록 하라! 주여!한국교회 목사님들 타락을 막아 주시옵소서!예수님이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게 해 주시고,목사님들에게 먼저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목사가 살면 교회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대형교회, 중형교회, 소형교회를 담임하는 모든 목사님들을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고,타락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한국 교회를 살려 주시옵소서!목회자들을 살려 주시옵소서!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그리하여 한국 교회가 마지막 때,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4-05-13 13:19:34 | 관리자
요즘 세월호 참사로 인해 거리 여기저기에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등 명복을 빈다는 내용이 많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희생자들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는 표하지만 절대 명복을 빌지는 않습니다.   명복(冥福)은 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입니다. 사실 명복은 명부에서의 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명부'는 무엇 혹은 어디일까요?   종교학 사전에 따르면 명부는 사후에 향하는 타계의 하나로서 명계, 황천 혹은 구천이라고 하며 영어의 hell 즉 지옥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명복을 빈다는 말은 잘못하면 “지옥에서 복받으십시오!”라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애도를 표하는 말로 명복을 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보면 이 말은 천국의 소망을 주는 기독교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복을 빈다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보통 성도가 죽으면 소천(召天)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즉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선종(善終)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임종 때에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을 뜻합니다. 그래서 천주교회에서는 죽을 때 신부가 집전하는 종부성사를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한편 불교에서는 입적((入寂)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뜻하는 불교용어 '입적'은 입열반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이생의 고통을 벗어나서 열반의 증과를 얻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적멸(寂滅)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으로 고통과 번뇌의 세계를 떠나 고요한 적정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적멸(寂滅)이란 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을 말합니다.   불교는 부활을 믿지 않으므로 심신이 일체의 활동을 멈추고 평정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교도들의 샤머니즘 용어인 선종, 입적, 명복, 음부, 명부, 저승 같은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혹시 교회에서 이런 용어로 문제가 있으면 잘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4-05-09 19:10:38 | 관리자
성령의 열매 중에 마지막에 기록된 절제 절제의 열매가 나 자신부터 풍성하게 맺혀져서 선하게 향기를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무조건 꼬투리만 잡으려는 한국 문화가 저 자신도 정말 싫은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국사람이라는 태생을 버릴수 없다면 나 자신부터 의식 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좋은 글 참으로 감사합니다.!!
2014-05-08 01:16:56 | 오광일
안녕하세요?   우리 사회에는 무슨 말을 해도 꼬투리를 잡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특히 무슨 문제가 터지면 이때다 하고 선동꾼들이 등장해서 본질과 다른 데로 이슈를 끌고 가려 합니다.   다음 그림은 이런 사람들을 풍자로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잠언은 다음과 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잠언 26장 4-5절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그에게 대답하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을까 염려하노라.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그에게 대답하라.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염려하노라.   샬롬   패스터
2014-05-07 18:03:4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주 설교에서 약속한 대로 잠언이 요구하는 인간상을 요약하였습니다.   같이 살펴봅시다.   샬롬   패스터    잠언이 요구하는 인간상   I. 잠언이 가르치는 인성 교육   A. “아이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아이를 훈련시키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B. 훈계 자체가 사람의 생명이다(잠4:13).C. 마땅히 가르쳐야 할 태도   1. 부지런히 열심히 일해야 함(6:6-11; 11:27; 12:24; 13:4; 15:19; 18:9; 19:24; 20:4, 13; 21:5; 22;13; 26:13-16)2. 정의(11:1; 16:11; 17:23; 20:10, 23; 31:8-9)3. 친절함(11:17)4. 관대함(11:24; 19:6)5. 절제, 말(12:18; 13:3; 21:23), 성질(14:17, 29; 15:18; 16:32; 19:11; 25:28)6. 의로움(12:21, 28; 14:34)7. 정직함(12:22; 16:13; 24:26)8. 친구 잘 사귀기(13:20; 18:24), 특히 배우자(18:22; 31:10-31)9. 신중함(14:16; 27:12)10. 부드러움(15:1, 4)11. 좋은 인품(15:27; 28:18)12. 겸손함(16:19; 18:12; 22:4)13. 은혜롭게 처신함(16:24)14. 솔직함(16:30; 17:20)15. 규제 받음(17:14, 27-28; 18:6-7; 29:20)16. 친구 간의 신의(17:17; 28:20)17. 순수함(20:9; 22:11)18. 옳고 바른 것을 확신 있게 추구함(20:29)19. 일을 잘하는 것(22:29)20. 인내(25:15)21. 만족함(15:16-17; 16:8; 17:1). D. 사실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의 열매이다(갈5:22-23). II. 심는 대로 거둔다(갈6:7-8). A. 지혜로운 아이들은 부모에게 영예를 가져옴(23:24-25; 29:3, 7).B. 어리석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불명예를 가져옴(10:1; 19:13; 28:7).C. 지혜로운 아이들이 많아야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번영한다.
2014-05-07 14:56:29 | 관리자
'원로'라는 수식어는 그냥 붙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 참사를 대하는 제 모습엔 여전히 분노와 불신, 사회 부조리가 크게 보이니 말이지요.. 한국 사회의 의식 수준은 곧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수준을 의미하니 저 또한 예외는 아니라는 마음으로 좀 더 자숙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5-07 09:30:21 | 정진철
고후 11:23-30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냐?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말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26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27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28 밖에 있는 그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내게 닥치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느냐?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느냐? 30 내가 어쩔 수 없이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연약한 것들과 관련 있는 것들을 자랑하리라.
2014-05-06 21:05:24 | 관리자
안녕하세요?   3주 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특히 당사자와 유가족 그리고 구조하는 분들에게 하늘의 큰 위로를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오늘 교회 사이트에 이와 관련해서 글을 올렸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617   이제 우리 교회가 세워진 지 만 6년이 되었습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큰 발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매주 성도들도 400명 이상 참석하고 여러 가정이 방문하며 700여 평의 예배당도 구매하여 평안한 가운데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CD, 전도지, 소책자, 유튜브 미디어 선교 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사역을 확장해 왔습니다. 그 결과 매일 6-7천명이 유튜브 등을 통해 말씀을 접하며 진리를 받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역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저는 말씀을 선포했고 교회는 미디어 사역을 신실히 수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셨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은 매주 방문자가 있었고 근 100명이 새롭게 교회에 정착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수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확장되고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주일에는 미디어 선교 사역을 위한 특별 헌금을 하오니 참여하실 분들은 미디어라고 봉투에 써서 헌금함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미디어 헌금 광고를 두 주 하면서 헌금 광고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형통하게 해 주신 대로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요한계시록을 다 읽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주에 고린도전후서를 읽으며 특히 고후11:23-30을 통해 목사로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치욕을 지고 가는 것이 목사의 직무임을 다시 느꼈습니다. 더 참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지난주까지 해서 가정과 결혼 시리즈 8개 설교를 마쳤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설교를 했습니다. 저와 제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목사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때는 강하게 성경대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처받은 분이 있지는 않을까 대단히 염려됩니다.   교회 학교 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은 오후에 아이들 반에 가셔서 수업에 참여해 주시고 교사들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레는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부모를 공경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6장 1-4절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3 이것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 4 또 너희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5-06 21:04: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저 역시 마음이 심히 아프고 또 동시에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원로 재미 언론인 조광동 선생님께서 뉴데일리에 기고한 글을 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글인 것 같아 올리니 읽고 우리 자신을 돌이켜봅시다.   예레미야 29 : 11 너희를 향해 내가 생각하는 생각을 내가 아노라. 그것은 평안을 주려는 생각이요, 재앙을 주려는 생각이 아니니 곧 기대하던 결말을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샬롬 패스터   '세월호는 한국의 자화상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 많은 어린 넋들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어른들의 잘못으로 바다에 묻히는 것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빠져나오지 않고 제대로 대처만 했어도 구할 수 있었기에 더욱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관료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관계자들이 제대로 훈련이 되었으면 정부가 이렇게 허둥대질 않았을 것이기에 고통은 무력감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참사 뒤 여기에 대처하고 반응하는 정부와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의 본질적인 문제점이 선장이나 선원, 선주에게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조리와 문제점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선객이 구조될 때까지 배를 지켜야 하는 명예와 책임을 팽개친 선장이나, 선객들을 남겨두고 도망쳐 나온 선원들은 큰 벌을 받아야 하지만, 온 국민들의 격한 소리가 어쩐지 공허하게 들립니다. 손가락질하는 한국인들의 욕설이 과격해지고, 유가족들의 분노가 격앙될수록, 참사를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정치꾼들의 꼼수가 두드러질수록, 그리고 이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의 북소리가 커질수록 이러한 느낌은 깊어집니다. 여기에 모두 한국의 자화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독립된 사건, 우연한 참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습니다. 세월호는 한국인의 정신과 의식 문화가 반영된 한국 의식 문화의 자화상입니다. 선장 선원이 도망쳐 나온 것을 거품 물고 욕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선장 선원과 비슷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다수 국민의 잠재의식 속에 선장과 선원들이 있을 겁니다. 선장 선원이 어쩌다 돌출한 별종의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 문화의 산물일 것입니다.   미국 군대에 갔다 온 어느 한인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교관이 신병들을 훈련시키면서 "빨리! 빨리!"라고 계속 고함을 쳤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 젊은이는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미국 군대에서 미국인 신병을 교육시키는 미국 교관이 "Hurry! Hurry" 대신에 "빨리! 빨리!"라고 외쳤으니 말입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빨리, 빨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몸을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이 미국 교관이 어떻게 "빨리, 빨리"를 소리치게 됐는지 모르지만, 모르기는 몰라도 이 교관은 주한 미군 출신일 것입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한국의 성급한 문화, 빨리빨리 문화를 목격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례는 코리안 아메리칸 직장에서 일한 타인종에게도 많습니다. 미국의 한인 세탁소나 식당에서 일한 히스패닉들은 제가 코리안인 줄 알면, 많은 경우 "빨리빨리"라고 말하면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합니다.   한국인 의식 속에는 절제하는 브레이크 보다는 속도를 내는 액셀레이터가 지배적입니다. 빨리빨리 성공해야 하고, 빨리 돈 벌어야 하는 조급함과 각박함이 본능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부상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지만, 균형과 절제력을 잃으면서 한국을 침식시키는 부식제가 되고 있습니다.   50세가 되면 은퇴를 걱정해야 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돈과 권력의 줄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 사회에서, 너그럽고 여유 있는 인간의 삶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친구를 왕따 시키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스승이 제자를 꾸짖을 수 없는 교육으로 전락하고, 속이고 모함하는 일이 일상에 자리잡고, 부모도 재산이 없으면 푸대접 받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사회에서 품위 있는 삶과 인격을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의견이 다르면 집단적으로 언어 폭력을 하고, 자기 주장을 위해 상대를 인격 살인을 하는 집단 떼 문화, 억지 떼 문화의 광기 사회에서 합리성과 균형감각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밟고 누르고라도 올라서지 않으면 내가 도태되는 사회 풍조에서, 나라에 충성하고, 인간과 사회에 헌신하고, 시대적 사명에 열정을 바쳐야 한다는 가르침은 빛바랜 깃발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의식문화와 가치관에서 아름다운 인성이 형성되고, 나를 희생해서 남을 구하는 숭고한 인간 정신이 자라기 힘듭니다. 교육이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 로버트를 생산하는 입시 위주의 기능주의가 되는 풍조에서 세월호 선장과 선원이 대량 생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화물을 너무 적재한 것만 제대로 점검했더라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지만, 법과 규정을 안 지키는 것이 어디 세월호 뿐이겠습니까. 왜 해양 마피아를 척결하지 못했고, 왜 외화를 빼돌린 선주를 그냥 두었고, 왜 공무원들이 우왕좌왕 무능하고, 왜 재해 예방 안전 훈련을 하지 않았느냐고 질타하지만, 이것이 어디 세월호에만 있습니까. 한국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켭켭이 쌓이고, 무사안일, 적당주의, 형식주의가 적폐된 사회에서 또 다른 세월호가 시한폭탄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파란색 옷을 입었다고 시비를 거는 시민이나, 교육부 장관이 사고 현장에서 컵라면 먹는 것을 문제 삼은 기자 수준이나, "계란도 넣지 않았는데…"하고 대답한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을 인터넷 신문 1면 톱으로 선동하는 명색이 주류언론의 수준 또한 한국의 자화상입니다. 이성과 합리성이 실종되고 감정과 억지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지엽적 시비를 거는 것 또한 한국 의식의 모습입니다.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다급한 시간에 총리 장관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한심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사표를 내는 것 또한 딱하고 무책임합니다. 더욱이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대통령이 물러가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패를 갈라 반대자는 무조건 미워하고, 무슨 일만 생기만 사사건건 증폭시키는 사회는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갑니다.   유가족도 예외가 아닙니다. 험난한 물길을 헤치고 목숨 걸고 구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왜 빨리 결과를 못 가져오느냐고 절규했습니다. 가족들의 피 마르는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이 모습 또한 조급한 의식의 반영입니다.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슬픔을 참고 자식의 죽음 앞에 전율할 정도로 절제하는 모습을 대할 때 죽음은 더욱 숭고해지고 감동은 깊어집니다.   현장에 간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대통령에게 소리 지르고, 대통령 조화를 치우고, 구조 작업이 느리다고 청와대로 행진하자고 외치는 모습은 격이 떨어집니다. 유가족이라고 해서 무례해질 권리는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참변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하지 않아도 괜찮고, 잘못된 행동을 비판할 수 없다는 분위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돌팔매질을 당할 잘못했으면 무자비하게 몰매를 맞고, 돌을 던질 수 있는 입장에 있을 때는 무절제하게 감정 표출을 하는 것 또한 고쳐야 할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추모의 물결이 한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슬픔의 눈물이 진정함이 되고, 애통하게 가버린 젊은 영혼들을 진정으로 기리는 길은 한국인 의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달라지는 첫걸음은 자기 성찰입니다. 남의 탓으로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을 멈추고, 격한 목소리를 낮추고 각자가 겸허한 성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곳곳에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질주하는 빨리빨리 문화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무능한 수습과 더딘 구조를 비난하기에 앞서, 선장 선원들에게 돌을 던지기에 앞서, 나는 여기서 자유스러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세월호 선장이나 선원이 되지 않을 수 있는지 정직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국가 위기가 도래했을 때 생명을 걸고 지키려는 헌신과 애국심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라의 품격과 정부 수준은 국민 의식의 실상입니다.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재해 예방 훈련을 하고, 정부 시스템을 효율화시키고, 정부 기구의 부조리를 제거할 것을 강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국민의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위로 부터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의식 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정부수술과 국가 개조가 실현되고, 국민의식 문화에 혁명적 변화가 오지 않으면 더 큰 세월호, 대한민국호의 침몰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뼈를 깎는 성찰의 채찍으로 스스로를 개혁하고, 한국 사회에 혁명적 의식 변화의 강물이 오늘의 부조리를 씻어내지 않으면 오늘의 애도 눈물은 일시적 감정 배설로 끝나고 형식문화에 함몰되어 세월의 강물에 흘러갈 것입니다. 세월은 슬픔과 아픔을 치유하는 약이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행동하지 않을 때 세월은 슬픔과 아픔을 되풀이하는 독이 됩니다. "빨리! 빨리!"는 빨리 오지만 빨리 달아납니다. 빨리 빨리에는 모래성의 비극이 있습니다.
2014-05-06 20:18:5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국민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도 목사로서 또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국민으로서 참담함 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우리나라를 한 계단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슬픔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읽은 좋은 글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감싸주실 줄 믿습니다.   샬롬   패스터   빌립보서 4장 4-9절   4 항상 [주]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의 절제를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이 계시느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진실한 것과 무엇이든지 정직한 것과 무엇이든지 의로운 것과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좋은 평판이 있는 것과 덕이 되는 것과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 9 너희가 내 안에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그것들을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   충격에 갇혀 다툴 건가, 딛고 일어설 건가   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일으킨 주역이다. 그들에게 몹시 큰 충격을 준 사건 가운데 하나가 아사마 산장(山莊) 인질극이다. 그건 전쟁터였다. 일본 공산주의 테러 집단(연합적군파) 소속 5명이 고급 휴양지 가루이자와 아사마 산장에서 관리인 등을 인질로 잡고 219시간 동안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1972년 2월이었다.   열흘간의 총격전은 막 보급된 컬러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시청률이 최고 98.2%를 찍었다. 1억 일본인 거의 전원이 화면 앞에 있었다는 말이다. 범인들은 체포됐지만 3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했다. 소니가 세계에서 최첨단 TV를 내놓고, 일본 1인당 GDP(구매력 기준)는 1만1434달러로 벌써 유럽 선진국 평균치를 앞지르던 시절이었다.   어느 일본인 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잘사는 나라가 됐는데 왜 공산혁명을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무장 인질극을 일으켰는지, 그런 의문이 지금도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질범들이 체포된 후 그들이 배신자 동료를 12명이나 살해한 것을 보며 일본인들은 또 한 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본인들 마음속에 감춰진 야만성을 탄식하는 글이 쏟아졌다. 자기 비하(卑下)가 지식인 사회의 유행이었다.   미국도 강한 나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똑같은 대형 쇼크를 겪는다. 타이태닉호가 침몰하던 1912년 무렵 미국의 1인당 GDP는 5,300달러 수준으로 영국보다 높았다. 그러나 미국 JP모건이 거느린 해운 회사는 영국의 경쟁 회사를 이기지 못했다. 대형 여객선을 건조할 기술도 없었다. 존 피어폰트 모건 회장은 영국의 경쟁 상대를 누르기 위해 타이태닉 건조를 영국에 발주하고 선박 운영도 영국인들에게 맡겼다.   우리에게 타이태닉은 영웅적인 선장(船長)과 애틋하게 꾸며진 러브스토리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얘기는 세월호와 그다지 다를 게 없다. 구명보트 숫자는 적었다. 짙은 안개를 뚫고 나간 세월호처럼 타이태닉도 빙하 출현 경고를 무시하고 출항을 강행했다. 선장은 처녀 항해를 기념하려는 듯 경고를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망루에는 주변을 감시할 망원경 하나 없었다. 타이태닉의 복원력과 설계 구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출항 전 보험 가입을 거부한 보험사도 있었다.   희생자는 1513명이었다. 모건 회장은 승객의 안전을 무시하면서도 자기 전용 객실에 무도회장을 따로 만들고 전용 담배 보관함까지 설치했다. 이런 호사(豪奢)에 대한 비난이 빗발칠 수밖에 없었다. 그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모건그룹 전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모건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 끌려나가 짓궂은 봉변을 당해야 했다.   아사마 산장 사건을 전후해 일본은 '경제동물(Economic animal)'이라는 경멸이 국제사회에서 퍼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가이드 깃발을 따라 루브르박물관을 단체 관광하는 풍경은 유럽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그러나 아사마의 충격 이후 다섯 달 만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라는 정치인이 '일본 열도 개조론'을 들고 나와 정권을 잡았다. 부동산값은 뛰었지만 다나카의 솔직성, 불도저처럼 정책을 밀고 나가는 실행력에 온 국민이 열광했다. 소니는 워크맨을 개발했고, 도요타자동차는 GM과 합작 공장을 세웠다. 안에서 서로 다투기보다는 세계로 나간 것이다. 5년 후 일본은 강대국(强大國)들의 모임인 G7 회담에 동양의 대표 선수로 참석했다. 일본인들은 아사마 사건에서 맛본 모멸감을 딛고 일어선 것이다.   타이태닉의 충격에 빠졌던 시절 미국에는 중앙은행(FRB)도 없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매기는 상속·증여세도 없던 미완성(未完成) 국가였다. 그 당시 미국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못하다며 미국인 스스로를 깔보는 인식이 수많은 문학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흥 부자들은 파티에서 서로 프랑스어 실력을 과시하느라 안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국가를 완성해가는 길에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허점을 메우고 경제력을 키우며 그런 장벽을 뛰어넘었다. 타이태닉의 상처도 인간 중시의 시민의식이 싹트면서 그렇게 아물어갔다.   세월호 참변이나 서울 지하철 사고는 국제 경쟁에 노출되지 못한 부문에서 발생했다. 두 회사 모두 국내 시장에서만 사업을 해온 우물 안 촌뜨기 회사들이고, 사고 관련자들도 대부분 나라 밖에서 외국 경쟁자와 싸워본 적이 없는 내수형(內需型) 인간들이다. 우리가 K팝, 갤럭시폰을 자랑하며 이만하면 국제화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나라 구석구석에는 이처럼 뒤처진 분야가 적지 않다.   잇단 사고를 겪으며 우리의 안전 불감증을 한탄할 수도 있고, 모든 비극은 네 탓이라고 남에게 손가락질하며 서로 다툴 수도 있다. 고장 난 곳을 고치고 뒤진 곳에 더 투자해보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충격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라가 될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다(송희영)
2014-05-03 12:47:5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