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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신체의 감각기관중 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띄워주셔서 성경말씀을 믿고 세상에서 결코 누릴수 없는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사는것을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가장 값진 것을 볼수 있는 눈을 주신 주님께 마음의 눈을 고정시키고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겨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집니다.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글 항상 감사합니다.
2014-01-24 14:52:25 | 이정희
우리의 생각, 경험, 주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우리의 눈을 단일하게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 믿음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응시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걸음마를 떼어 나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2014-01-24 09:40:01 | 조양교
눈의 중요성에 대하여......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는 말이 있고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百聞以不如一見)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 확실한 대언에 말씀에 의지하여 단일한 눈, 단일한 마음으로 단일한 성경을 늘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골 3:22, 킹흠정)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2014-01-24 09:36:01 | 허광무
조양교 형제님 안녕하세요 글로써 만나니 또한 반갑습니다. 영어로 찾아보니 단일 = single 이네요. 이 뜻은.. 1. 단 하나의, 하나뿐인(one only), 유일한(sole), 2. 혼자만의, 1인용의 등등이 있습니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누가복음 11장, 33 누구든지 등잔불을 켜서 은밀한 곳이나 통 밑에 두지 아니하고 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것은 들어가는 자들이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몸의 등불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단일하면 네 온 몸도 빛으로 가득하되 네 눈이 악하면 네 몸도 어둠으로 가득하니라. 35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위 말씀의 구절이 문맥상 더 이해하기 좋은거 같습니다. 성경전체에서 single을 검색해 보면.. 마 6:22, 눅 11:34, 행 2:46, 엡 6:5, 골 3:22 총 5번 사용되었네요. 앞의 두 구절은 single eye 로.. 뒤의 세 구절은 singleness of heart 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마음 = 눈 = 빛 :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순종하는 단일한 눈과 마음이 외부의 빛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지 저는 생각이 되어집니다. 사실 이제까지 이 말씀을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형제님이 쓰신 좋은 글을 보며 저 또한 사람들의 빛을 쫓지나 않는지, 하나님께 눈으로나 마음으로나 단일하게 하고 있는지 반성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4-01-24 00:39:15 | 강평원
또다시 우리 50대 청년의 사유와 저작활동에 깊이 찬사를 보냅니다. 말씀을 자세히 읽어야 하며 말씀의 완전성을 마음에 새기도록 일깨우는 사명이 우리 교회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해 주시니 다시한번 정확한 말씀의 달콤함을 느낍니다. 자꾸 읽어놔야 안목의 정욕을 조절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1-23 18:31:43 | 오혜미
"{주}께서 듣는 귀와 보는 눈 그 둘을 다 만드셨느니라." (잠20:12)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을 최첨단 동영상 카메라로 만드셨습니다. 눈의 정교함을 연구한 논문만 해도 그 분량이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보는 눈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는 눈은 하나님의 목적하신대로 사용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공통의 특징중 하나는 눈이 두개라는 것인데요, 두개의 눈은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촛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눈은 0.1미리 이하의 작은 크기나 비물질적인 것들은 보지 못하도록 적당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는 보이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고 부정확하므로 보는 것을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됩니다. 어쨋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눈을 통해 수많은 정보들이 쉴새없이 뇌에 전달됩니다. 이토록 신비한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6:22,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22 몸의 등불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단일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되 23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흠정역)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몸이 빛으로 가득하게 할 수 도 있고, 또 어둠으로 가득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결론은 눈을 악하게 하지말고 단일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단일과 악"을 대비하고 있는데요, 왜 "선과 악"으로 대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역성경은 "눈이 성하면(좋으면), 눈이 나쁘면"으로 대비를 했습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개역)  이 글을 문자대로 이해하면 시력이 좋으면 온 몸이 밝고, 시력이 나쁘거나 안경을 쓰면 온 몸이 어둡다는 뜻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영해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죠, 그러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일단 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위 20절에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재물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고,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구제, 기도, 금식을 할 때 사람앞에 보이려 하지 말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께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24절 이후부터 두 주인에 대한 언급이 있고, 육체와 땅의 일을 구하기에 앞서 33절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의 말씀을 하시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 22,23절을 보겠습니다. 시력이 좋고 나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악은 선의 반대로서의 악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부터 벗어난 것이 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누리는 육체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알려주고 계신 것이고요, 우리의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땅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어야 하며, 하늘의 복을 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부와 명예에 눈을 두는 것은 악한 것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늘의 복에 눈을 단일하게 두는 것이 우리 온몸을 빛으로 가득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개역성경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지만 흠정역 성경으로 통해 그 의미가 분명히 와닿고,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눈을 이 땅의 삶을 살면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알려주시는 구절입니다.    
2014-01-23 15:41:50 | 조양교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기록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모호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해주신 것들을 분명하게 붙들어야 겠습니다. 복음과 구원은 가장 선명하게 알려주신 내용입니다. 디지탈 시대에 꼭들어맞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01-21 18:00:05 | 조양교
우리 50대 청년들의 활발한 사유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속적으로 주님을 높이고 말씀을 드러내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바치는 모습이 참으로 본이 됩니다. 구원에 대한 정확한 설명에 또 힘이 납니다. 아멘!
2014-01-21 12:52:06 | 오혜미
제목이 정말 참신합니다.^^ "하나님은 애매모호한 것을 싫어하시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신다."는 이 부분이 제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복음을 모호한 것으로 변개하는 악함에 맞서 변개되지 않은 진리를 전하는 우리 모두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2014-01-21 12:01:29 | 김대용
구원은 디지털이다.애매모호한 아날로그적인 것이 아니다.다시 태어나는 것, 구원은 확실한 실체이지 애매모호함이 아니다.(요 3:3,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태어나지 않은 것은 0 이고, 태어난 것은 1이다.사람이 만든 컴퓨터는 확실한 정보 전달을 위해서 0과 1만을 사용하여 명령과 데이터를 형성한다.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체의 유전자 DNA도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 이라는 4가지의 염기를 사용한 디지털 정보체계 이다.이것들은 다시 A-T와 D-C와 만 결합되게 되어 있어 확실한 디지털 정보 체계로 명령과 데이터를 형성한다.컴퓨터와 생명체의 정보 전달 체계가 애매모호한 아날로그 체계라면 아마도 혼돈 그 자체 일 것이다.제대로 된 통계가 생성될 수 없고, 생명체의 재 생성도 불가능 할 것이다.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면,(요 3:3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요 3:4 )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하매(요 3:5)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이다.우리는 육적으로 어머니의 양수인 물속에서 첫 번째로 태어났고 영은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우리의 죽어있는 영은 성령에게서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우리를 혼란하게 하였던 다음(벧전 2:2, 개정)의 성경 구절로 인하여 다시 태어남의 의미가 혼미해져 어디까지 자라나야 구원에 이르는 것 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아날로그적인 성경 구절을 바른 성경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벧전 2:2, 개정)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시인하고 다시 태어난 것은 영의 상태가 0에서 1로 바뀌는 단 1회의 사건으로 영이 다시 태어난 획기적인 사건이다.구원은 애매모호한 아날로그적인 사건이 아니고 죽었던 영이 산영이 된 사건이다.다음(벧전 2:2, 킹흠정)의 성경말씀 처럼 새로 태어난 아기 이다.그리고 말씀의 젖으로(성경말씀으로) 성장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축복된 신생아 이다.(벧전 2:2, 킹흠정)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구주의 보혈로, 영적으로, 새롭게 탄생한 하나님 나라의 신생아!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른 복 받은 신생아 이다.(고후 7:10, 킹흠정)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함을 설명하셨다.(요 3:3,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요 3:4, )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하매(요 3:5, )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6, )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요 3:7, )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우리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영이 다시 태어난 것이다.영원히 죽을 인생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하나님은 애매모호한 것을 싫어하시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신다.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라.애매모호한 혼돈 속에서 살지 말고 확실한 말씀을 붙들어야 구원받은 자의 영이 행복하다.(약 5:12, 킹흠정) 그러나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먼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맹세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라. 이것은 너희가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2014-01-21 11:39:41 | 허광무
맞습니다. 모두 어른들의 책임이지요. 아이들에게는 이제 '몬스터'도 좋은 것처럼 미화 시키는 세상이되었고, 게다가 전교 1등이면 재수 없다며 학대를 하는 지경이라고 하니, 이제 공부로만 전교 1등을 해서는 안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수없다는 소릴 안들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나쁜 짓도 전교 1등을 해야되는 분위기라고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교회와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2014-01-21 10:08:31 | 김상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참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엄마, 저 전교 1등이에요. 저도 스트레스는 풀어야죠.”라는 말을 하는 몬스터로 아이가 자란 것은 그런 환경을 만들고 허용한 우리 모든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참으로 폭탄주&음란 문화에 취해 있는 우리 사회의 일부 전문직 어른들과 절묘하게 overlap 됩니다. 이 지상의 어느 교회에서든 아무리 자녀의 교육이 지고한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신앙의 가치를 가볍게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깊은 타락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내 것을 포기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 항상 사탄 마귀는 그 지점에서 위선의 불씨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합니다. 부디 진리를 위해서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 위대한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견고하게 간직되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4-01-20 14:24:01 | 김대용
어렸을 때는 공부보다 인성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한 표를 던집니다. 성경말씀 묵상은 당연히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경에 비할 바는 안되는 책이지만, 인문학 서적 중에서 '논어'와 같은 책으로 인성공부를 곁들이면 좋다고 봅니다. 논어는 너무 쉬고 간결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해하기 좋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정에 넘쳐나길 기도하겠습니다.^^
2014-01-19 21:22:38 | 김상진
아이들의 양육에 관한 것은 어느 가정에서나 해당되는 과제이지요. 그래도 자매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성경으로 바르게 훈육하고 키워내려는 데는 귀감이 됩니다.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초중고 학생들을 보면 참 암담하기 짝이 없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시키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아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선과 죄악'의 구도이든, 인생의 중대한 문제가 되든지 간에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어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자매님.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아이도 11살이네요. ㅠㅠ 언제, 시간이 되면 부부끼리 교육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해보면 좋겠네요~ 샬롬~~ ^^
2014-01-19 21:18:04 | 김상진
만만치않은 공부 가르치는 어려움보다 인성 안 잡힐때 눈물이 나고 어렵습니다. 집에서만이라도 공부는 인내를 기르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게끔 심어주고 싶고, 유언도 다른건 좀 못해도 말씀은 습관되게 살다와라.. 적어놨습니다. 오늘도..(죽을때 덜 후회되게) 아이들을 예수님 마음으로 바라보아지길 기도합니다.
2014-01-19 14:20:44 | 목영주
오늘 이제 11살이 된 제 첫 아이를 앉혀 놓고 심각하게 야단을 쳤습니다. 평소에도 엄하게 하는 편이지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점점 더 말을 안듣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친다고 하고, 엄하게 키워 본다고 하고, 나름 성경적으로 아이를 바르게 키워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역부족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단지 회초리 몇대를 때리기 보다는 아이에게 진실하게 죄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의미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정말 힘이 듭니다. 제 자신 하나 주님 앞에 바로 세우지도 못하면서 아이를 바르게 양육하기란 참으로 아이러니 같습니다. 세상에 소망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자녀도 다 부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득 말씀을 보니 제 안에 평안이 생깁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생의 기쁨과 소망이 제 안에서 샘솟아 넘칩니다. 정말 예수님 한 분 만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아이도 주님께 맡깁니다. 최근에 창세기부터 아이와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이 말씀이 제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내가 보건대 아브라함은 분명히 크고 강력한 민족이 되며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 안에서 복을 받으리니 이는 내가 그를 알기 때문이라. 그가 자기 자녀들과 자기 뒤에 있을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명령할 터인즉 그들이 주의 길을 지켜 정의와 판단의 공의를 행하리니 이로써 주가 아브라함에 관하여 말한 것을 친히 그에게 이루리라, 하시고(창18:18~19)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었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아브라함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형제님의 깊이 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1-19 01:20:46 |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