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들이 2,3,4단계를 섞으면서 살아가고 있구나싶은게 휴-다행이에요~^^대부분의 사람들이 1단계를 벗어나기 힘들어 늘 제자리걸음..1단계 벗어나는게 관건인것 같아요. 사람이 변할때--(빠르게 변화는 못해도)육신이 죽어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줄곧 있을때-추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라디아서2장2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12-06 23:09:10 | 목영주
이스라엘이여! 꼭 7년 환난기까지 가려는가?
최근 목사님의 ‘성경 맥잡기’ 강해를 듣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으로 붙잡혀 가기 전에 이들에게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라.”라고 수없이 외치신다. 이스라엘은 끝내 돌이키지 않고 포로로 잡혀간다. 목사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를 모른다.’라고 지적하신다. 목사님의 이 말씀이 귀에 들어오는 순간, 예전에 공부했던 William Howell의 ‘배움의 5단계’가 생각났다. 아래 그림을 보자.
1. 배움의 5단계
1단계 :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1단계는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단계이다.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단계이다. 1단계에 머무르면 영원토록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성장은 아예 꿈조차 꿀 수 없다.
2단계 : 무지를 인식하는 단계2단계는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는 단계이다. 배움의 필요성이 생기고 학습의지가 발생하는 단계다. 2단계는 배움의 출발점이자 변화의 시작점이다.
3단계 : 학습을 하는 단계모르는 것을 배우는 단계이다.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고 익히는 과정을 밟는다.
4단계 : 활용하는 단계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하고 활용하는 단계이다. 지식이 기술로 전횐되는 단계이다.
5단계 : 가르치는 단계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는 단계이다. 진정한 마스터리 단계이며, 가르침을 통해 이해가 더 깊어지는 단계이다.
2. 이스라엘의 상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돌아오라, 회개하라” 말씀하실 때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그들은 죄를 지었음에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와 불의한 행위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였다.
말라기서는 반복해서 이런 대화를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말 1:6)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이름을 더럽게 하였나이까?”(말 1:7)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말 3:8)
이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영적 무지를 드러낸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왜 그들은 죄를 몰랐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이처럼 영적으로 눈이 가려졌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키는 외형적 행위에 만족하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보지 못하였다.
둘째, 죄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죄가 반복되면서 무뎌졌고, 결국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셋째, 말씀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말씀은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만, 그들은 단지 지식으로 쌓을 뿐이었다.
넷째, 대언자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수많은 대언자를 보내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들을 배척하고 말씀을 외면하였다.
이 그림에 따르면, 가장 아래 단계는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며, 가장 위는 '배운 것을 가르치는 상태'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죄를 지었음에도 자신이 죄인임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 상태에서는 어떤 외침도 들리지 않으며, 어떤 회개의 자극도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는 데에는 3가지 조건이 있다. 가장 빠른 변화는 거의 죽다 살아났을 때이다. 그다음으로는 역할이 바뀔 때이고, 그다음으로는 책을 읽는 것이다. 예상하건대, 이스라엘은 거의 죽다 살아나야 변할 것이다. 성경에는 7년 환난기를 거쳐야 이스라엘이 변한다고 말한다. 스가랴는 7년 환난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2/3가 죽고, 1/3도 금을 제련하듯이 혹독한 시련을 거친다고 말한다.
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무감각 속에서 숨겨져 있다. 이스라엘처럼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묻는 순간, 이미 죄의식은 마비된 상태일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 3:7)
여기서 질문,
이스라엘이여! 꼭 7년 환난기까지 가려는가? 그 이전에 돌이킬 수는 없는가?
성도들이여! 몇 단계에 있는가?
2025-12-06 15:53:28 | 이규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처럼 재미있는 역사서를 통해 교훈을 주셨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악행을 서슴없이 짓는 인간은 정말 '허접한 실체'인 것 같습니다. 비성경적인 위정자를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돌이키고 성경 말씀을 통해 바른 눈을 갖길 원합니다.
2025-12-02 19:09:51 | 김지훈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니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으나 과정 속에 있는 우리는 분함이 솟아나기도 하고 낙담도 하곤 합니다. 수없이 오래 기다려야 하니 더 어렵습니다..
오래참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요.
2025-12-01 20:51:17 | 이수영
긍휼많으신 전능자 하나님아버지 때문에-불의를 보는것을 넘어 억울함을 당할때도 감사거리 찾고,최악의 상황에서도 선하게 이끌어주실 것을 붙드는-나약한 자녀입니다.
-오 큰 산아,네가 누구냐?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그가 그것의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크게 외치며 부르짖기를,은혜,은혜가 그 돌에 있을지어다.하리라,하셨느니라,하니라.-스가랴4장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12-01 17:38:27 | 목영주
스스로를 짚어볼 글 주심에 감사 드려요. ^^
2025-12-01 12:49:30 | 최영오
하나님 말씀, 즉 성경 속에서 우리는 수천 년 역사에 걸친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읽기를 잠시 멈추고 그들 삶을 곱씹어보게 되는 경우가 드물잖게 있죠. 그럼으로써 해당 경우에 관한 말씀의 깊이를 더욱 실감하게 됨은 물론입니다.
그런 경우에 관한 것으로서, 북이스라엘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 집의 비극 관련 말씀들을 곱씹어보는 과정에서 일었던 느낌 또는 생각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참고로,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초대 왕 여로보암은 여로보암(1)로,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 즉 오늘의 주인공 왕은 여로보암(2)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주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눈으로 보기에 옳은 것을 집행하면서 잘 행하고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에 따라 아합의 집에 행하였으므로 네 사 대 자손(thy children of the fourth generation)이 이스라엘 왕좌에 앉으리라(왕하10:30), 바로 이 말씀으로부터 북이스라엘 다섯 번째 왕조, 즉 예후 왕조가 시작됩니다. 예후는 여로보암(2)의 증조부로서, 북이스라엘 왕으로서는 열 번째죠.
예후로부터 그의 사 대 자손, 즉 스가랴에 이르는 계보와 제위 기간들을 살펴본바, 예후 / 28 년 -> 여호아하스 / 17 년 -> 요아스 / 16년 -> 여로보암(2) / 41 년 -> 스가랴 / 6 개월 로 확인됩니다.
아합의 집에 대한 심판 임무 완수의 공로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시작된 예후 왕조, 그 왕좌는 말씀 그대로 정확히 예후의 사 대 자손인 스가랴에서 끝납니다. 102 년 6 개월만에 말입니다. 마지막 왕 스가랴의 경우, 무려 41 년 동안 장기 집권한 아버지로부터 왕위 물려받은 지 불과 6 개월만에 역모자의 칼에 쓰러집니다.
여로보암 2세 재위 기간 중에 있었던 일들이 왕하14:23-2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여로보암(2)이 사마리아에서 통치하기 시작하여 사십일 년 동안 통치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것을 행하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1)의 모든 죄(단과 벧엘에서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로 인한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음.
2) 그러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손으로 친히 하신 말씀대로 여로보암(2)으로 하여금 다마스쿠스(시리아에 빼앗겼던)와 하맛(유다에 속하였던)을 포함한 이스라엘 고토를 되찾도록 해주셨음.
3) 이는 주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매우 심하여 갇힌 자도 없고 남은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임.
그러니까, 여로보암(2)의 악행을 당장이라도 심판하고 싶으셨지만, 하나님 당신의 백성이 너무 불쌍하여 긍휼 베풀어주신 결과, 오히려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국운이 융성했던 때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악행과 긍휼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희박했던 듯한 여로보암(2) 치하 북이스라엘의 극심한 사회적 불의와 약자 압제(암2:6-7, 암4:1, 암5:10-12 참조), 형식적인 종교 행위와 위선(암5:21-24 참조), 도덕적 해이와 영적 무감각(암2:7, 암6:4-6 참조)은 가히 최고조에 달했던 것 같습니다.
신 한 켤레를 얻기 위해 가난한 자를 팔고, 내가 너희의 명절날들을 미워하고 멸시하며 너희의 엄숙한 집회들에서 냄새를 맡지 아니하리라, 가난한 자들의 머리 위에 있는 땅의 티끌을 탐내며 온유한 자들의 길을 굽게 하고 한 남자와 그의 아버지가 동일한 젊은 여자에게로 들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려 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으뜸가는 기름을 자기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의 고통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아니하는도다...대충 감잡히지 않습니까.
결국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목자 겸 농부(암7:14)인 아모스를 북이스라엘로 보내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내가 칼을 들고 여로보암(2)의 집을 대적하여 일어나리라”(암7:9)라고 말입니다. 아모스가 전한 그 말씀은 제사장 아마샤를 통해 여로보암(2)에게 전달되긴 되었던가 봅니다. (암7:11 참조)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2)의 증조부인 예후에게 하셨던 “네 사 대 자손이 이스라엘 왕좌에 앉으리라”, 그 말씀 속 '사 대', 즉 마지막 가까웠음을 90년쯤의 긴 세월 지난 시점의 후손, 즉 여로보암(2)이 부디 알아차리고 돌이키기를 무척이나 바라시면서 아모스를 북이스라엘로 보내시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어쨌든, 그 말씀 듣고서도 정신 못 차린 여로보암(2) 시대의 후반부는 막을 내렸고, 그의 뒤를 이은 왕 스가랴가 즉위 6개월 만에 역모자 살룸에 의해 살해당함으로써 예후 왕조는 끝납니다. 6개월 왕좌...그것도 왕좌에 앉은 것은 맞다고 봐야겠죠.
이상 살펴본 바의 여로보암(2) 집의 비극 관련 말씀들을 곱씹어보는 과정에서 일었던 느낌 또는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세상 모든 일의 주관자, 하나님
세상 모든 일은 오직 한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여로보암(2)이 영토를 확장하고 특권층만의 향락 누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앗시리아를 써서 시리아를 집적거려 그 국력을 약화시켜 주신 결과라는 역사학자들의 견해가 그 증명하는 바라 할 것입니다.
(2) 세상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분에 대한 태도
태도? 물어볼 것도 없이 그냥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어볼 것도 없는 그런 말씀 드리려는 건 물론 아니고...^^...‘평소’의 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항상...그러니까, 평소에 늘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 살아가야 하리라, 마땅히 그래야만 하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3) 냉혹한 집행자를 향한 경외감
하나님을 두고 냉혹한 집행자 어쩌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 두렵긴 합니다만...글쎄요...여로보암(2) 집의 비극에 관한 첫 느낌이 냉혹함, 그것 아니었나 싶군요. 소돔과 고모라에 쏟아지던 진노의 유황불과는 정반대의 얼음장 같은 차가움에 더해진 살벌함...그런 느낌 말입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 집행자 분은 살벌함 느껴지는 차가움 속에서도 눈물겹도록 뜨거운 정을 내비치고 계시거든요. 마지막 돌이킬 기회를 주셨잖습니까.
살벌한 차가움과 눈물겹도록 뜨거운 정이 함께 느껴지는...그러니까, 인간으로선 상상조차 어려운 초월적 차원의 성정(性情) 지니신 정녕 위대하신 절대자를 향해 저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감정...공경심과 두려움, 즉 경외감이 가슴 깊~~~이 느껴졌습니다.
(4) 오픈북(open-book) 시험의 그 책, 성경
너무나도 멀어진 아스라한 추억 속 언제쯤의 오픈북 시험 생각이 났답니다. 인간의 한 번 삶이란 것이 성경, 즉 하나님 말씀 책 펼쳐 놓은 상태로 치르는 시험, 즉 오픈북 시험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에 더하여 강조하고 싶은 사항인즉, 성경은 통상의 오픈북 시험 시 앞에 펼쳐 놓은 그런 책, 그러니까, 봐도 별 도움 안 되는 그런 책이 아니라, 예제 풀이(역사서 등을 의미함)까지 완비된 그런 책이라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책 내용 중의 모범답안 그대로 적어 내기만 하면 100점 만점 몰라도 90점 이상 성적은 보장하는 진짜 책임을 확신했답니다.
(5) 인간, 그 허접한 실체
그러면 그렇게 예제 풀이까지 완비된 책 펼쳐 놓은 상태로 치르는 시험, 즉 인생 오픈북 시험에서 90점 이상 성적을 얻는 사람이 전체 몇 % 정도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0점은 물론 10점, 20점짜리 수두룩하고 60점 이상은 아예 없던...그러니까, 책 봐도 별 도움 안 되던 그때 그 오픈북 시험이랑 별 차이 없는 점수들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 삶들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 ^^)
이어서, 인간...인간이란 결국 그런 존재 같잖은 허접한 실체의 존재 아닐까라는 씁쓰레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욥25:6, 시22:6 말씀 중의 그 벌레 생각이 났답니다.
(6) 자유의지, 요는 그것이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여로보암(2)이 하나님께 이렇게(감히) 따질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100년 전에 이미 그렇게 정해 놓으셨응께 지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껴?” 라고 말입니다.
여로보암(2)이 상당한 저능아 아니고서야 그런 말 절대 못 하리라는 답이 바로 나오더군요. “내가 칼 들고 일어나리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입에서 나온 그토록 어마무시한 말씀 듣고서도 안 돌이킨 건 결국 여로보암(2)의 자유의지, 바로 그것 때문임이 명백하기에 말입니다.
모든 행위의 발생 이치가 이러함에도 ‘자유의지’ 그리고 ‘예지 예정론’을 문제 삼는 자들은 도무지 이런 생각을 못 하는 건지...아예 안 하는 건지...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 언 듯 듭니다만.
(7) 이 나라가 어쩌면
여로보암(2)의 아들 스가랴를 살해한 살룸 역시 불과 한 달만에 역모자 므나헴에 의해 제거되는 등, 스가랴 사망 이후 대략 28년 동안 다섯 명의 왕이 교체되는 혼란기를 거쳐 BC 722년, 마지막 왕 호세아를 끝으로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우셨다고 봐야겠죠. (왕하14:27 참조)
온갖 부정과 불법으로 왕좌를 찬탈한 무리들이 오히려 기고만장하여 날뛰는 가운데 그 무리들의 수괴를 감히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비유하는 말, 듣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몸 숨겨야 마땅할 불경 극치의 그런 거시기소리가 버젓이 들려오는 이 나라의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모스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로보암(2) 당시의 북이스라엘, 그때보다 어쩌면...더한 상황 아닐까...싶기도 합니다만.
( 끝 )
2025-12-01 12:48:13 | 최영오
저는 21,25번이 제일 취약하네요..어떤날은 말씀 한장에-예쁜 구름보다가-양자역학내용에-하나님계심 가득 확인하고 혼자 신나하다가도 작은염려로 물들어 금새 시들려고 할때가 있어요..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내가 너와 함께하느니라.놀라지 말라.나는 네 하나님이니라.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참으로 내가 내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떠받쳐 주리라-이사야서41장1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 22:23~33) - https://youtube.com/watch?v=63ULtPgQlpY&si=5zXyS24p_a0vhhHU
2025-11-29 17:12:06 | 목영주
세상이 말하는 길은 언제나 선택하기 쉽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좋고, 자기 위안으로 덮여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에 따라 성경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시선과 기준을 따르며 살겠습니다^^
2025-11-29 09:52:48 | 김지훈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살고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세상에 동화되기 싶다는 말에 공감이 되요.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검을 가지고 있기에분별할 수 있지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동행하시니 양심이 민감하게 되요.
세상을 떠나 살 수 없고 바른 정신을 갖고 살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믿는 모든 성도들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2025-11-29 08:31:40 | 이수영
세상의 시선, 하나님의 시선
요한일서 2장 15절과 16절은 읽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자칫 정신 줄을 놓으면 세상에 동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기 때문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준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뜻은 전혀 다르며, 그 둘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세상은 겉모습, 인기, 성과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런 것들이 우리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과 세상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래서 오늘은 "세상은 이렇게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비교를 통해, 우리가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세상은 실수를 비난하지만, 하나님은 회개를 기뻐하신다. (누가복음 15:7)
2. 세상은 성공을 칭찬하지만, 하나님은 순종을 기뻐하신다. (사무엘상 15:22)
3. 세상은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하나님은 나누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히브리서 13:16)
4.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만, 하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를 복되다 하신다. (요한복음 20:29)
5. 세상은 강한 자를 높이지만,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야고보서 4:6)
6. 세상은 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진실하게 말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잠언 12:22)
7. 세상은 외적인 예배를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삶의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 (잠언 21:3)
8. 세상은 자기를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는 자를 기뻐하신다. (누가복음 18:14)
9. 세상은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주는 것을 더 복되다 하신다. (사도행전 20:35)
10. 세상은 유명해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조용히 충성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마태복음 6:4)
11. 세상은 보복하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용서하라고 하신다. (마태복음 6:14-15)
12. 세상은 힘 있는 자를 따르지만, 하나님은 낮은 자와 함께하신다. (이사야 57:15)
13. 세상은 빨리 올라가길 바라지만,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는 믿음을 귀하게 여기신다. (이사야 40:31)
14. 세상은 넓은 길(자신의 길)을 가라 하지만, 하나님은 좁은 길을 택하라 하신다. (마태복음 7:13-14)
15. 세상은 네가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하신다. (고린도전서 6:19-20)
16. 세상은 자기 영광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고 하신다. (고린도전서 10:31)
17. 세상은 지금을 즐기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골로새서 3:2)
18. 세상은 약점을 숨기라 하지만, 하나님은 약할 때 강함이 드러난다고 하신다. (고린도후서 12:9-10)
19. 세상은 자기를 위해 살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웃을 위해 살라고 하신다. (빌립보서 2:3-4)
20. 세상은 인기 있는 사람을 높이지만,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높이신다. (시편 37:6)
21. 세상은 걱정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염려를 맡기라고 하신다. (베드로전서 5:7)
22. 세상은 복수하라 하지만,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로마서 12:19-20)
23. 세상은 자기만 챙기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신다. (로마서 12:10)
24. 세상은 불평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라고 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25. 세상은 두려움 속에 살지만,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이사야 41:10)
26. 세상은 자주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말라기 3:6)
27. 세상은 죄를 숨기지만,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라고 하신다. (요한일서 1:9)
28. 세상은 죽음을 끝이라 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신다. (요한복음 11:25)
29. 세상은 네가 누구냐고 묻지만, 하나님은 내가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 (로마서 14:8)
이 비교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세상의 기준은 시끄럽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세상이 말하는 길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시선과 기준을 따를 것인가?
누군가 물으면, 성도는 당연히 매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2025-11-28 18:33:47 | 이규환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지 돌아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성화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5-11-17 08:34:15 | 김지훈
공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모범이 되어야 말에도 힘이 있으니까요. 그리스도인이지만 yesman은 아니어야 하지요.
복음을 전하면 뒤집어지는 세상은 마지막이 맞아요.
2025-11-16 07:25:46 | 이수영
여러모로 역량부족인 거기다 겁까지 많은 제가 하나님없이,믿음없이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 싶어요. 저의 미숙함이 부끄러움으로 끝나지않고 (하나님갈망하게된)큰 감사 이유가 되게 해주셨어요.
-심지어 달을 바라보아도 그것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참으로 별들도 그분의 눈앞에서는 순수하지 아니하거든 벌레인 사람이야 얼마나 더 그러하겠느냐?벌레인 사람의 아들이야 얼마나 더 그러하겠느냐?하니라.-욥기25장5,6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youtube.com/watch?v=uzVPOd3iJjQ&si=N4jJ48-i3A_gTSDW
2025-11-15 22:42:05 | 목영주
"수세미는 당연아닐테고.." 너무 웃기네요
2025-11-15 15:05:59 | 정예준
사람들은 성경책보다 먼저 성경을 믿는 사람의 삶을 본다는 말씀에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25-11-15 15:02:38 | 정예준
글 읽다보니 감정팔이 목사가 생각나네요.
2025-11-14 14:14:39 | 이규환
아하, 익스피어런스!(아, 바로 이거 였구나)
2025-11-14 13:55:25 | 이규환
제5의 복음서, 세상이 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지인이 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찾아갔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다니자고 했다. 내 말을 들은 지인은 조목조목 그리스도인들의 언행에 대해서 말했다. 거친 표현도 했다.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도를 시도해 보면 말처럼 쉽지 않다. 전하려는 사람은 말문이 막히고, 듣는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성경을 아무리 권해도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게.”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설득력 있는 논리나 감동적인 간증도 때로는 통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성경책보다 먼저, 성경을 믿는 사람의 삶을 보기 때문이다. 복음의 내용을 듣기 전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인격과 태도에서 메시지를 느낀다. 그 사람이 진짜로 믿는 것을 삶에서 확인하려 한다. 결국 복음을 향한 불신은, 성경이 아니라 성경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즉, 복음 전도의 가장 큰 어려움은 복음을 전하려는 그리스도인의 삶 그 자체에 있을 수 있다.
성경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 네 복음서가 있다. 그러나 세상은 오늘도 다섯 번째 복음서, 곧 그리스도인의 삶을 읽고 있다. 아래 사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를 그 지인이 지적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1. 말과 삶이 불일치한 모습
직장이나 가정에서 신앙을 말하는 이가 오히려 비신자보다 더 거칠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기도와 말씀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남을 무시하거나 쉽게 화를 내고, 다른 이의 뒷말을 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처럼 말과 삶이 다를 때, 복음은 설득력을 잃는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모든 것은 지키고 행하되 너희는 그들의 행위대로 하지는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아니하며"(마태복음 23장 3절)
말로는 복음을 전하지만 삶으로는 복음을 부정하는 경우이다. 삶이 따라오지 않으면 진리가 왜곡된다.
2. 물질적 축복을 신앙의 열매로 여기는 모습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믿음이 좋으니 복을 받았다”는 식의 평가가 흔히 들려온다. 직장을 잘 구하고, 사업이 번창하며,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축복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복음을 물질의 풍요와 동일시하는 순간, 십자가의 본질은 흐려진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나?” (마가복음 8장 36절)
복음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다.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누구로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3. 교회 밖 사람들과 거리 두고 정죄하는 태도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때로는 세상 사람들과 벽을 쌓는다. 신앙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쉽게 비판과 정죄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예수님의 태도는 달랐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들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7절)
복음은 담을 쌓기보다 다리를 놓는 일이다. 정죄는 사람을 멀어지게 하지만, 이해는 다가오게 만든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
4. 신앙 고백은 있으나 삶의 열매가 없는 모습
예배는 드리지만, 일상에서는 성경과 무관한 태도가 지속될 때 복음은 의심받는다. 기도는 하지만 변덕이 심하고, 말씀은 외우지만 정직하지 않다면, 누가 그 믿음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야고보는 분명히 말한다.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17절)
복음은 들려지는 것만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다.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 믿음은 말로만 남게 된다.
5.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너희끼리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무슨 사랑을 말하느냐”고 묻는다.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열, 소문과 험담이 이어질 때, 공동체는 복음의 향기를 잃는다. 사랑 없는 진리는 차갑고, 분열된 공동체는 외면당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 35절)
사랑은 교회의 가장 강력한 복음 증거이다. 세상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를 떠올리게 되어 있다.
결론: 우리는 어떤 복음서를 써 내려가고 있는가
세상은 성경책을 펼치기 전에, 그리스도인을 먼저 읽는다.
복음서를 공부하기 전에, 그 복음을 믿는 사람의 태도를 관찰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어떤 복음서를 쓰고 있는가?”
“나를 통해 복음이 선명하게 전해지고 있는가?”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직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날 때, 가장 깊이 전해진다.
오늘도 세상의 누군가는 ‘내 삶이라는 복음서’를 읽고 있다.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날마다 삶을 다듬고, 겸손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 지인은 당분간 믿기 힘들 것 같다.
2025-11-14 13:47:53 | 이규환
우리가 가진 속성 중 특히 경계해야 할 교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5-11-03 08:59:44 | 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