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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석글 감사합니다. 생각보다는 조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레이디가가 공연이 토요일에 있었잖아요 인터넷 발 기사에 일부 기독교인들이 항의시위하는 내용들이 있었고 공연반대와 현대카드 불매운동을 하자는 기독교의 목소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누리꾼들의 댓글들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추잡한 욕을 해 되는 누리꾼들을 보면서 속으로는 '지옥에나 가라' 라고 저주 아닌 저주의 생각을 품고 씩씩거리기도 했습니다. 저도 레이디가가에 대해 ( )욕을 해가면서 댓글을 도배하고 싶었지만 꾹 꾹 참았습니다. 저도 성질이 못됐나 봅니다. 겉으로는 공연반대의 의사만 예의를 가추어 표현하는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저질 문화를 반대하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동참을 해 보았습니다. 싸우는 것은 즐겁지 않은 일인데 싸워야 할일은 사방군데 많네요!!!!
2012-04-29 01:12:27 | 노영기
성경 기록 중 하나님께서 헛되이 주신 단어는 없기 때문에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줄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읽은 내용을 자신의 말로 요약 정리하고, 그것을 묵상하여 자기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목사님들의 설교를 속기사처럼 일일이 다 받아적을 수 없기 때문에 들으면서 요약해서 노트 한 페이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2012-04-28 22:15:15 | 김문수
사람이 꾸는 꿈은 현실에서의 갈등이나 마음 속의 욕망이 반영되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계획을 알려주기 위해 주신 꿈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 계시는 "네가 나중에 출세할 것이다", "부자가 될 것이다" 등과 같이 개인의 욕망을 달성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지요. 은사주의 교회에서 야곱의 예를 들어 "꿈을 꾸려고 하고, 뭔가를 보려고 하고, 그것을 입으로 자꾸 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데 (4차원의 영성), 이런 것은 성경 말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상입니다. 좋은 꿈을 꾸려고 노력하기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분의 관심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거기에 헌신하는 것이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04-28 22:08:56 | 김문수
요셉이 형들의 잘못 하는 일을 아버지께 알게 한 일들이 형들의 미움을 샀지요. 꿈이야기도 바르게 아뢰었음에도 아버지와 형들의 원망을 사게 되었고 결국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지요. 요셉이 이후에 이집트에서 외롭게 지내면서 고향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과 형들과의 일들, 아버지 등 등... 이런 일들을 돌이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주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살게 되고 더욱 더 주님을 가까이 의지하고 믿음이 성숙되어가게 되지 않았을까요? 바른 것을 바르다고 하는 데에도 태도나 마음의 문제에 대해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요셉이 "두려워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한 말에서 넓은 아량과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모든일에 감사하라는 말씀과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오직 우리의 길을 아버지 하나님과 주께 의지하게 됩니다.
2012-04-28 16:00:29 | 이수영
형제님의 글 이야기를 기다린답니다.^^ 진작에 활동하셨어야 하는데 말이죠. 담담하지만 정감이 느껴져 참 좋은데요. 얼마든지 자유롭게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모두 빨강이나 초록일 수 없지요. 무지개색과 혼합색들이 섞여 있어서 아름다운거 아닌가요?
2012-04-28 15:40:40 | 이수영
한국교회에서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대표적 케이스가 바로 요셉의 사건이죠 하나님을 잘믿으면 국무총리 된다 -_-;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가 되어버린 요즘 참 씁쓸함을 금할길이 없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2-04-28 15:11:03 | 송재근
루 월레스(Lew Wallace)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군요, 그는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없애버릴 책을 써서 인류를 그리스도에게 매어있는 굴레로부터 벗겨주자고 다짐했답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허위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제1장을 마치고 제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그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 펜을 꺽고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후에 쓴 소설이 벤허이랍니다. 진리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진정한 승자입니다.최 형제님으로 부터 이어지는 진리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2012-04-28 12:40:11 | 조양교
교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 교회를 다니면서도 구원을 받지 못했던 시절에 교만했던 마음이 있어서 고백하는 글입니다. 자칫 잘못 하다가 별 내용도 아니면서 자주 올리는 글 때문에 저를 미워하지나 않으시려는지요.   * 처음 교회로 인도를 받고 성경을 받았으나(이때 받은 성경이 개역한글이었음) 교회 생활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분들은 저마다의 직분이 있는 상태고 특별히 찬양대를 섬기는 분들이라 저와의 교제가 거의 없었죠. 거의 방목 수준 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설교를 듣긴 들어도 딴 생각(?)이 자꾸 들어오고, 그렇게 주일예배를 드리고 총알(?)같이 교회를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작심을 하고 성경을 한번 처음부터 읽어 보아야겠다 마음을 먹고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한줄 읽으면 눈이 스스르 감기고 또 도리도리 한번하고 또 보려고 하면 스스륵! 이제 창세기 덮고 마태복음으로 갑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더하데요. 누구를 낳고 또 낳고 저 어린 시절 하이틴 영화에서 학생들이 대사하던 그 내용이 나오는 겁니다. 햐! 어디부터 읽어야 재미가 있을까? 어디 성경 쉽게 가르쳐주는데 없을까? 먼저 교회 다닌 분들 보다 늦었으니 빨리 알아야할 텐데... 성경 속에 교회 생활 지침 같은 것도 있겠지? 막연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죠. 성경의 구조도 잘 모르겠고 깨알 같은 글씨에 페이지도 많고 이때에 교만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 합니다. 사실 교만인지도 잘 모르고 만행?을 저지르려고 계획하게 되었죠. 무엇이었냐고요? 요즘 길에 다니다 보면 모 단체에서 가끔 콘사이스(concise)성경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보시죠. 이것처럼 내가 성경을 한번 줄여보리라 마음을 먹은 거죠. 우습죠? <이 생각을 할 때에는 콘사이스성경은 보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한글은 말 줄이기에 자신이 좀 있었거든요. 학창시절 노트정리는 일가견이 좀 있었습니다.<자랑임^^> 그런데 막상 성경을 펴 놓고 글자 한 자 한 자 들여다보면서 함축을 시키려고 하니까 두려움이 막 드는 겁니다. 혹시 이 단어 또는 말 속에 숨은 뜻이 내가 모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이건 한글개역을 가지고 느낀 생각입니다.>   ** 시간이 흐르고 방황?하는 속에서 감사하게도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손에 넣었고 또 정동수목사님의 성경론 등과 같은 강의를 듣고 비로소 그때 실행? 하려고 했던 생각이 엄청난 교만 이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단어와 또 문장으로 인한 해석이 엄청나게 다르게 되어 질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 특별히 성경대로 믿는 우리에겐 글자 한 글자, 한 글자가 엄청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결국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려는 것이 단어, 단어인데 그것을 임의로 바꾸거나 줄이려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죄 구나!!!   *** 우리사랑침례교회성도님들은 다 잘 하시고 계신거죠?   요즘 바빠서 즐겁습니다. 회사일이 바쁜 것이 아니라 펴진 홈피돗자리에 장난감(글)을 늘여 놓을 생각 때문에 행복합니다. 무공해여야 되는데 혹시 가지고 놀다 다치시는 분이 계시면 어쩌지 하는 염려도 살짝 하면서... 성분분석은 실력 있는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해 주실 줄로 믿으며 저는 성경말씀을 배운 것 까지만 재료를 써서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직 성경을 잘 모르므로 재료가 빈약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하여 주셔요) 아직 교제를 못해서 성함도 얼굴도 모르지만 성도님들 사랑합니다... 제 아내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을 한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랑침례교회성도님들 한데는 부끄럽지가 않으니 어떡한데요?   - 킹제임스흠정역성경과의 만남 2주년을 자축하며 반성합니다 - ^^돌아오는 4월30일이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의 말씀과 사랑을 시작한 2주년 되는 날입니다^^ 월요일에 올리려고 했으나 저희 회사 사무실 이전 때문에 바쁠 것 같아서 미리 올립니다....
2012-04-28 11:33:16 | 최현욱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꿈은 이루어 진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꿈을 많이 꾸라고 하기도 하고, 좋은 꿈 꾸라고들 합니다. 좋은 말 같지만 제가볼땐 아닌 것 같아요. 문자적으로 볼때 계속 잠만 자라는 이야기 잖아요? 생각하는 것과 꿈꾸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잠자는 자는 꿈을 꿀 수는 있지만 생각하는 자는 꿈을 이룰 수 있다' 고 들은 말이 있었는데 가물가물^^
2012-04-28 11:16:50 | 최현욱
  요셉만큼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야곱의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라 귀여움을 독차지했지만 그것은 요셉의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사람을 의식하기보다는 하나님앞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발견합니다. 그러기에 그의 여러 가지 행동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집안의 막내이지만 외람되게 바른 소리를 하다보니 형들의 시기로 죽음의 문턱에 까지 이르게 되고 급기야는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요셉은 이집트 파라오의 소유물을 관리하는 호위대장 보디발의 집의 노예가 됩니다. 아버지와 형들과 함께 살았던 환경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었지만 요셉의 믿음에는 변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또 한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용모가 준수한 것을 알고 부적절한 관계를 갖자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이를 단호히 거부한 요셉은 강간범으로 몰려서 결국 왕궁의 지하 감옥에 갇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원망스런 상황입니다. 이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답변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최악의 상황입니다. 히브리 노예의 신분으로 강간범으로 몰리고, 그것도 대상이 파라오 호위대장의 부인이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은 포기해야 할 입장입니다. 이정도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원망 뿐 아니라 저주까지도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어떤 환경도 요셉을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의 입에서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감옥으로 밀어 넣은 보디발의 아내에 대해서도 쓴 뿌리를 갖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삶에 감동을 받은 간수들은 요셉에게 감옥의 모든 일을 맡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감옥에 갇혔던 잔 맡은 자의 우두머리의 꿈을 해석해 주는 일로 대 반전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꿈을 해석하는 재능으로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주게 되고 일약 이집트의 2인자의 자리에 까지 올라갑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나중에 기근 때문에 찾아왔던 형제들과의 대화에서 형제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상처 준 일로 인해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형들에게 안심을 시키고 오히려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의 직에 올랐지만 여전히 요셉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향하여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이 선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하게 하셨나니 21 그러므로 이제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어린것들을 부양하리이다, 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친절히 말하였더라.“(창50:19-21절) 사람들은 요셉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요셉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며 아무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서 요셉과 같이 꿈꾸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정작 요셉은 하나님께 꿈꾸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꿈꾸는 자가 되려한 적도 없었으며,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주어진 위치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앞에서 최선의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요셉을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시키시고 이집트의 총리까지 세우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요셉과 같이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믿음을 간직하며, 항상 하나님앞에서 사는 자와 같이 주어진 일에 성실하며, 쓴 뿌리를 갖지 않고 주어진 위치와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저 자신도 이러한 요셉의 믿음을 본받기를 원하며 애꿎은 상처의 치유를 논하고 꿈 타령하며 성공 스토리로 내모는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2012-04-28 10:02:04 | 조양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