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 ^^
2024-02-09 12:30:18 | 최영오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4-02-08 18:57:17 | 이규환
가슴에 팍팍 새기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 ^^
2024-02-06 11:43:08 | 최영오
일전에 올린 바 있는 ‘성경의 주제에 대하여’란 제목의 글과 관련 있는 내용, 그러니까, 그 후속편 성격의 글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상의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 한글판 NIV 성경, 개역 개정 성경 등(이하 ‘NIV 성경 등’이라 함)에는 ‘천국’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앞서의 ‘성경의 주제’ 관련 글에서 말씀 드린 바 있듯이,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고자 하신 왕국, 즉 ‘kingdom of heaven’을 ‘천국’으로 번역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왕국 플랜’ 자체를 삭제 또는 흐려 버리는 행위...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킹제임스 성경 원문 상의 ‘kingdom of heaven’이 NIV 성경 등의 원문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살펴본바, 역시 ‘kingdom of heaven’, 똑같은 ‘kingdom of heaven’으로 되어 있더군요. 바꾸어 말씀 드리면, NIV 성경 등에서만,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만...창조의 마스터 플랜 중 핵심이라 할 ‘왕국 플랜’을 망쳐 놓고 있더라, 이 말씀입니다.
한편...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상의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의 경우는 어떤가 하면, 원문 상으로 똑같은 ‘kingdom of God’을 NIV 성경 등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번역해 놓았더군요.
위와 같은 NIV 성경 등의 번역 실태에 접하여 몇 가지 생각들...나름대로의 심각한 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
우선...‘kingdom of heaven’, ‘kingdom of God’을 ‘천국’, ‘하나님의 나라’로 각각 번역한 것은...글쎄요...상당히 사악한 행위...아닐까 싶더군요. 왕들의 왕, KING OF KINGS(계19:16), 그 ‘KING’을 지워 버리겠다는, 사탄이나 감히 품을 만한 지극히 사악한 의도가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그리고...세리 출신의 사도 마태가 기록한 마태 복음, 그 책에만 나오는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32개 절에 걸쳐 33회 나오는 그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을 말씀으로 남겨 주셨을 때는...특히...바로 이어지는 절(마19:23. 24)을 통해 예수님께서 직접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을 따로 구분하여 말씀하실 때는...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 그리하셨을 텐데...그런 건 알 필요 없고...?...그냥 하나는 ‘천국’,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로 마구 번역하다니...그야말로 대책 안 서는 사람들이라는 생각 했답니다.
하나 더 있군요...‘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 ‘천국’으로 번역된 성경...그러니까, ‘왕’, 즉 ‘king’이 사라진 ‘천국 복음’...엄밀히 말하자면, 성경에도 안 나오는 복음(글 번호 1018 '네 가지 복음 관련하여' 참조要)을 땅끝까지 전하고 어쩌고 하는 그런 분들 생각에...뭐랄까요...답답~~~한 생각 들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더 있군요...^^...거시기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kingdom’이 ‘국’이든 ‘나라’든 뭐든, 그런 건 생각조차 않음에서 나아가...유대 백성들이 입에 올리기 두려워 ‘LORD’, 즉 ‘주’로 표기해 놓았다는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 ‘YHVH’를 우리말 그대로 많이도 적어 놓은...그런 성경 들고서 주여삼창, 통성기도 소리 높여 하고 있을 이 나라 그리스도인 분들...용감한(?) 대한의 용사 아니라 대한의 그리스도인 분들 생각, 서글픈...?...두려운...?...생각에 잠겨 보았답니다.
가끔 드리곤 하는 말씀입니다만, 우리 손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있음에 무한한 감사 드리는 동시에 최대한 널리 알려 나갈 책임 느끼게 됩니다. ( 끝 )
2024-02-06 11:32:20 | 최영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형제님. 오직 성경에 기초한 바른 믿음과 영원한 구원의 확신으로 마지막 때에 미혹하는 영에 흔들리지 말아야겠습니다.
2024-02-04 22:34:29 | 김지훈
적그리스도는 한 명인가? 여러 명인가?
20년 전에 우리나라에 자칭 그리스도가 56명 있었다고 한다. 20년이 지났으니까 지금은 몇 명은 죽었을 것이다. 한 밤 중에 이상한 옷 차려입고 이 자들(자칭 적그리스도)을 섬기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가? 어느 장로교회의 한 수석 장로가 신천지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왜 넘어 갔을까?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말하는 자들은 미래에 즉 계시록 시대의 등장하는 적그리스도 밖에 모른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도 요한 시대에도 바글바글 하다고 말한다. 또 지금도 바글바글 하다고 말한다.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니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 함을 너희가 들은 것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있나니 이것에 의해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우리가 아느니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게 속하였더라면 분명히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리라. 그러나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음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요한일서 2장 18-19절)
사도 시대에도 적그리스도는 존재했다. 진짜가 아니면서 진짜인 것처럼 거짓말하는 자들이 사도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진짜 적그리스도다.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적대하는 자를 말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만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기를,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많은 사람을 속이리라.(마태복음 24장 5절)
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하거나 저기 있다. 해도 그 말을 믿지 말라.(마태복음 24장 23절)
요한일서 2장 22절에 적그리스도의 정의가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적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다. 적그리스도니까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면 누가 거짓말쟁이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니라.(요한일서 2장 22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은 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 그것에 관하여는 그것이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이미 세상에 있느니라.(요한일서 4장 3절)
성경은 요한계시록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에만 함몰되지 말고 지금도 바글바글한 적그리스도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한다.
과몰입해서 지나치게 이 부분을 종말론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는 지금은 없고 미래의 계시록 시대가 돼서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 한 명이라고 말하는데 이 자도 물론 포함된다. 이 자도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짐승의 표나 666하고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의 반대는 거짓이다. 예수님이 진리이시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이므로 적그리스도는 거짓말쟁이다. 거짓의 아비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자기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였으며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한복음 8장 44절)
어떤 사람이 진짜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으로 믿는다면서 적그리스도의 거짓말에 속을 수 있을까? 절대 속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의 반대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적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 준다.
적그리스도를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다른 것으로 정의하게 되면 불필요한 적그리스도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본질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때를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종말론 신앙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뭔가? 적그리스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도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여기에 휘말리면 인생 망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요한일서 4장 1절)
2024-02-02 19:18:20 | 이규환
잘 정리하셔서 이해가 잘 됩니다.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2024-01-19 19:51:46 | 이규환
저는 개인적으로 이 도표를 보고 참 좋았어요.
아!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왕국이로구나!
도표가 주는 확실함으로 기쁜 마음이 되었거든요^^
2024-01-16 19:17:11 | 이수영
대~~~~~단한, 참으로 기적 같은 일에 관한 간증이로군요
가족 분들의 굳은 믿음도 느껴지고...
감동적인 내용의 글, 자~~~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2024-01-16 19:00:55 | 최영오
혹시라도 이 몸 어딘가 힘 들어가 있는 곳 없는지
살피고 또 살피며 생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 ^^
2024-01-16 18:56:52 | 최영오
특별히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성경 구절 또는 목사님 설교 말씀이 있더군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평소 간직해 온 어떤 생각, 견해 같은 것을 다시 깨우쳐 주는 구절 또는 말씀 접하게 되는 경우가 그 가운데 하나 아닐까 싶군요. 그런 경우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목사님의 저서, 개역성경분석(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내용과 기타 강해 말씀 바탕 위에 형성, 확립되었겠지만...제게는 다음과 같은 견해...라기엔 다소 거창한 또는 시건방진(^^) 측면 있을 것 같고...그러니까, 나름대로의 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뭔고 하니, NIV 등의 현대 역본 성경들과 킹 제임스 성경이 내용 상 서로 다른 곳들 중 특히 심각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를 들어보라 한다면, 1.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 ‘천국’으로 표현된 점, 2. 성경 전체 무려 535 회나 나오는 ‘혼(soul)’이 다른 말로 표현된 점(두 군데 빼고), 3.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분은 하나이시니라’라는 요일5:7(킹 제임스 성경) 말씀이 삭제된 점...그 세 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간직해 왔었답니다.
그런 까닭에...며칠 전의 목사님 설교 말씀 중 ‘성경의 주제는 왕국, 즉 kingdom’이라는 그 대목이 특별히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날은...느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성경의 주제는 왕국’이라는 대전제 하에 성경 전체 내용을 대략적으로 주욱 훑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록 잠시 동안에 불과했지만. ^^
처음에 하나님(절대적 주권)께서는 이 땅(영토) 위에 왕국을 만드셨지...아담과 이브를 국민(^^)으로 삼아서 말이지...그런데, 완전 순수하게 창조된 국민이란 자들이 뱀, 즉 사탄의 개입으로 인해 변질(^^)되어 버렸지...그런데...!...달랑 두 사람밖에 없는 제1세대 국민을 폐기 처분해 버리면 왕국 플랜 자체가 말짱 꽝(^^), 사탄의 승리로 끝...?...왕국 시작하자마자 끝...?...결코 그럴 수는 없는 법...!...변질, 그날 이후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진,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모~~~~~든 일들이 결국은...변질품 아닌 제대로된 국민들 확보하사 영원한 왕국 이루어 가시는 과정이잖아...로 이어지는 일련의 생각들 끝에...!...성경의 주제는 왕국이다...그 말씀은 참으로 진리의 말씀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더군요.
‘하늘의 왕국’을 ‘천국’으로 고쳐 버림으로 인해 창조주 하나님의 왕국 플랜(위 이미지 참조), 그러니까, 창조의 마스터 플랜 자체가 흐려져 버린, 그런 내용의 성경으로 믿음 생활 하시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많은 사람들 생각하매, 우리 손에 킹 제임스 성경, 즉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 있음에 한량없는 감사 드리는 동시에...그들을 위하여 킹 제임스 성경 널리 알려 나가야겠다는 생각 거듭하게 됩니다. ( 끝 )
2024-01-16 18:47:59 | 최영오
자매님의 열정이 대단하세요.
가족구원이, 특히나 부모님들께 복음 전해드리기가 어려운건데.
정말 기적이에요.
확실하게 주님을 받아들이셨네요.
우리는 언제든 주님께 갈 수있고 ,그것이 기쁨이 될 수 있기에 감사드리지요.
2024-01-15 13:14:35 | 이수영
짠 하고 애절하고 감동적이네요.
저의 어머니도 요양원에 계신데,기력이 좀 쇠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고기력이 좀 회복되시면 마음이 즐겁고....
2024-01-15 12:25:05 | 이규환
변함없는 자매님의 지극한 효심이
아름답게 열매맺힘으로
어머니와 온가족에게 기쁜소식을 가져다 주었군요.
어디가나 가족구원과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향한 애타는 복음에대한 열정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아주시고 응답으로
자매님의 삶가운데 동행하시고
선한길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4-01-13 15:22:52 | 김경애
-보소서,나는 비천하오니 내가 주께 무어라 대답하리이까? 내가 내 손으로 입을 막으리이다- 욥기 40장4절 하나님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만큼은 안되지만 '내가 본게 잘못 본 것이며 잘못 판단한 것이구나' 진심인정했던 경험을 잊고 싶지않은건 겸손해질 수 있는 임팩트있는 순간이라서 그런듯해요~^^ 진리가 없어 이리저리 흔들려 불안한 세상속에서 우리는 주시는 평강만으로도 구분되어지니 어느면에선 예수님 드러내기 쉬워진 마지막때라는 생각도 들고요..
2024-01-13 14:00:17 | 목영주
큰 숙제한 기분..자매님 마음이 많이 좋으셨겠어요~~
2024-01-13 13:43:42 | 목영주
새벽 5시 30분
나는 광명역에 주차를 하고 기차를 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캐리어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 방학을 맞이해서 여행을 가는 듯한 아이들과 부모들의 소리로 이른 시간임에도 북적거렸다. 기차가 출발을 했다. 창밖은 아직 캄캄해서인지 유리창에 거울처럼 내 모습이 비쳤다.
바깥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파노라마의 속을 달리는 듯한 기차는 90세가 되신 어머니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코로나19가 한참 기승을 부릴 무렵 오빠네와 언니네 집에 번갈아 계시던 어머니는 급기야 침대 바로 옆에 있는 휴대용 변기에조차 가기 어려울 정도로 움직이지를 못하시고 계속되는 통증으로 어머니의 심신이 지쳐갈 무렵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어머니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통증 뿐이었다. 검사란 검사는 다 해봤지만 통증의 원인은 알 수가 없었고 거의 먹지도 않으시니 어머니의 몸은 빠른 속도로 쇠약해지셨다.
체구는 작지만 부지런하고 짱짱하셨던 어머니....
그러나 이제 체구는 더 작아지고 푸석하게 말라서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힘없고 약한 노인이 되어 버렸다.
이사야서 40장
6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라.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니 이는 {주}의 영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 참으로 백성은 풀이니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어머니는 우리가 요양병원에 면회를 갈 때면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다.
어머니를 만나면 반가워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돌아설 때는 안타까워서 간구의 기도를 하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말없이 듣기만 하셨다.
그러다 어머니의 생신이 다가왔다.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형제들과 의논을 하여 이번 생신에는 모 연수원을 빌려서 출장 뷔페를 부르고 모든 조카들을 다 부르자고 하였다. 그리고 요양병원에는 특별 외출을 신청하였다.
그날...
어머니를 위한 기도로 목사인 셋째 오빠가 문을 열었고 사회는 내가 보았다. 나는 모두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다시 가셔도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말이 귀에 쟁쟁 울려서 힘내시도록 하자고...
그날 어머니는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고생했던 셋째 올케와 그리고 둘째 오빠, 어머니를 돌본 언니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사랑합니다” 소리를 원없이 들으셨다.
그리고...
그리고 요양병원에 들어가신지 5개월이 될 무렵 어머니는 기적같이 일어나셨다.
그리고 요양병원을 퇴원하여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예레미야서 33:3
나를 부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강력한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나는 방학을 이용하여 그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새벽열차를 탔고 덕분에 그날 아침은 어머니와 함께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지금 이렇게 걷고 계신 것이 꿈만 같다고 말하면서 요양병원에서 못나오시고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고 했다. 사실 내 주변의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신 뒤에 다시 나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셨는지 너무 힘들었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나는 생신 때 찍었던 영상을 보여 드리면서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실 것 같아 슬픈 마음으로 생신 준비를 했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이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예수님이 도와줬지. 동네에서도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아서 돌아왔다고들 해”
사무엘상 2장
6 {주}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무덤으로 끌어내리기도 하시고 끌어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주}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나는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함께 지낸 3일의 마지막 날에 구원과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제를 나누며 천주교인인 어머니에게 천주교 성경으로도 구원에 관해 읽어드렸다. 예전에는 죽으면 천국갈 수 있냐는 질문에 “죽어봐야 알지 그걸 어떻게 아냐”고 핀잔주시 듯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질문이 끝나기가 바쁘게 바로
“그럼 갈 수 있지. 나를 이렇게 있게 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여”
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는 순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닭 쫓던 개 바라보듯 망연자실한 마귀들을 떠올리고 활짝 웃었다.
에베소서 6:12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권력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나는 그 믿음 흔들리지 마시고 죽을 때까지 예수님 그분만을 꼭 붙잡고 사시라고 말씀드리며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엄마, 사랑합니다”
이제 마음이 좀 가벼워진 것 같다.
2024-01-13 11:19:55 | 이정자
장문의 글인데 아주 재미있고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다만 디스크 때문에 목이나 몸이 뻣뻣할 수도 있고
눈이 나빠서 눈에 힘이 들어가는 분도 있으니
이 점은 감안하면 좋겠어요.ㅠㅠ
저도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하면 올해에, 땅을 엄청 많이 상속 받고 싶습니다.
2024-01-13 11:06:23 | 이남규
귀한글 감사합니다.
힘을 빼는 연습
온유함으로 하나님앞에 서고 싶습니다.
2024-01-13 10:06:50 | 김경애
새해의 다짐 : 몸에 힘을 빼자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보면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헌신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있다. 자기가 드러나거나 박수를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의 섬김으로 인해 성도들이 편안하고 교회가 발전할 수만 있다면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다. 한편 어떤 성도들은 외부 자극에 너무나 빨리 반응한다. 사람들이 나를 빨리 인정해주길 바라고 인정받지 못하면 화를 내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내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공격적이 된다. 세상은 너무 급하고, 빠르고, 화가 나 분노가 차오르고 있다. 내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 견디질 못한다. 온유함과는 거리가 멀다. 온유함을 가지고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써야지만 무시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고 자격을 갖추려고 한다. 가져야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온유란 통제된 힘을 말한다. 온유는 온순하고 부드럽고 나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런 것이 온유가 아니다. 온유가 약함과 항의, 저항이 없는 모습, 활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자랄 때는 밖에서 얻어맞고 집에 돌아오면 가서 두 대 때리고 오라고 했다. 양육강식의 세상에서는 약함은 생존이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쨌든 강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온유함이 교회에 안에서는 환영받지만 세상에서는 나약하고 생존하지 못함의 상징이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다. 하나님의 성품의 일부이다. 온유는 겸손함, 신사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온유는 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사용하는데 온유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것이 신약에 1번, 구약에 1번 나온다.
민수기 12장 1-2절을 보면,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그가 결혼한 에티오피아 여인으로 인해 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참으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며 지도자인 모세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권위에 도전한다. 이어서 3절에는 (그런데 그 사람 모세는 매우 온유하여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온유하였더라.)(민수기 12장 3절)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집트에서 혈기로 사람을 죽였다. 시내산에서는 화가 치밀어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집어 던졌다. 또 반석에게 말하라고 할 때, 반석을 내리쳤다. 결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광야에서 생활을 하면서 점점 깎이면서 온유하게 되었다.
온유는 통제된 힘을 말한다. 온유를 설명할 때 야생마 이야기를 한다. 야생마가 깃들여지면 순하게 된다. 온유는 자기의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는 통제된 강력한 힘을 말한다. 주인에게 깃들여져서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힘을 쓰는 것이 온유다. 하나님은 잘 길들여진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미리암과 아론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일으켜 벌을 받았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9-30절)
예수님은 온유한 분이셨다. 힘이 있었지만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으셨다. 침례자 요한을 힘으로 밀어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힘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회의 약자들 즉, 버림받은 어린이, 고아, 과부, 나병환자들을 찾아 다니셨다. 이들을 만나는 것이 무슨 득이 되었을까? 악한 자들의 악함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피하셨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도 정복자의 백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셨고, 마지막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겸손함의 절정을 보이셨다.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짓는 자야. 너 자신을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수제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그분을 조롱하며 이르되,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으리라.(마태복음 27장 40-42절)
수제자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님께 “너나 구원해보라”고 조롱하였다. 우리 같으면 본때는 보여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조롱할 때 싹 쓸어버릴 수도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까지 조롱을 당하면서도 힘을 절제하셨다. 하나님(예수님)이 온유함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령님도 마찬가지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능력 면에서나 성품 면에서 성부, 성자 하나님과 동일하시다. 그러나 성령님은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령님은 가장 온유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함 그 자체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자신을 증언하려 하지도 않으시고 주목받으려고 하지 않으신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드러내고 깨닫게 하고 적용시키려 하신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요.(요한복음 15장 26절)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서 받아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이라.(요한복음 16장 13-14절)
새해를 맞이하면서 2024년 화두는 “몸에 힘을 빼자.”이다. 모든 운동은 몸에 힘이 들어가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좋은 성도가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몸에 힘이 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 다짐한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것이다. 몸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자. 눈에 힘을 빼자,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자. 입에 힘을 빼고 말을 더디 하자. 항상 위로가 되는 말을 하자. 목에도 힘을 빼야 한다. 뻣뻣한 목은 거만하게 보이고 교만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발 성내지 말자. 나를 드러내지 말고 남을 드러내도록 하자. 내 안에 뛰노는 야생마를 다스려 잠재우자. 세상은 힘을 추구하라고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이 힘이 빠져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몸에 힘을 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 땅을 상속받고 싶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요.(마태복음 5장 5절)
2024-01-12 21:20:25 | 이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