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에서 오시는 정근창 형제님 입니다.
반갑습니다.
2025-11-01 20:39:27 | 관리자
부천에서 오시는 박승재 형제님, 황순덕 자매님 부부입니다.
반갑습니다.
2025-11-01 20:32:02 | 관리자
'대책없음'이란 단어가 오늘은 참 친근하게 들리네요~^^ 제가 좋아하는 욥기시리즈를 듣는 요즈음-- 하나님을 깊이깊이 알지 못해 그렇게도 제 상황에 징징대었나 싶은게(자매님들은 저의 성화과정이라 봐주시지만..)-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만으로 기뻐해야지..에서 하나님만으로 기쁘구나,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이 너무 좋다..라는 일상고백이 감사합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이 굴리시는대로 제가 굴려지는 것이-점점더 기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말씀으로 그분을 더 많이 깊이 알아가야겠어요..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에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며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니라-욥기 42장5,6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11-01 16:01:00 | 목영주
두어 달쯤 전이었던가, 어떤 장로교 목사님 설교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완전 본의 아니게, 그야말로 우연히 마주친 유튜브 영상이었다 보니, 중간중간 정지시켜 잠깐잠깐 보는 식으로 하여 불과 5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시청을 마쳤습니다.
그런데...훑어보듯 지나친 그 영상 속 한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답니다. 너무나 감명 깊은 말씀이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사람'이란 존재, 그 '속성'에 관한 서글픔 자아내는 그런 장면이었답니다. 이하, 그 장면부터 찬찬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상19:12(이세벨을 피해 굴속에 숨은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대목) 관련 상황 설명하면서 그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중략)...여기서, 세~미한 소리란 어떤 소리냐?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그런 미~세한 소리를 말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작~~은 소리를 엄청 비중 있게 강조하시더군요.
안 봐도 비디오라고, 50년 넘게 목회 활동 하신 목사님의 자못 엄숙한 표정, 그러니까, 미~세한 하나님 목소리 못 들을까 봐 무척 긴장한 듯한 그 표정과, 그리고 그보다 더한 긴장감 느껴질 정도의 엄숙함 속에서 조용히 숨죽여 아멘...!...역시 우리 목사님...!...하고 있는 성도들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그런 모습들 떠 올려본 다음...엥? 웬 바늘? 뜨개질용 대바늘도 아니고 바느질용 바늘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거기서 왜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나오지? 그리고 세~미는 또 뭐지? 수세미는 당연히 아닐 테고...라는 생각에 즉시 영상 시청을 멈추고 NIV 성경(비교 목적으로 곁에 두고 있는) 영어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A gentle whisper...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러니까, gentle whisper, 그 두 단어를 ‘세미한 소리’라고 번역한 거죠. 글쎄요...아무리 소리의 톤을 낮춰 표현한다손 치더라도, 부드러운 속삭임...정도라면 모를까, 세미한 소리...를 넘어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그러니까, 들릴락 말락 한(거의 안 들리는) 그런 소리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번역 문제를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뜻은 제대로 못 전하고, 대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어떤 말씀 선포자와, 그 선포자의 말과 분위기에 취해 있는 성도들...이 연출하는 허울뿐인 예배 현장, 경배 현장의 서글픔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도망하느라 지칠 대로 지쳤음은 물론 곧 잡혀 죽을 절박한 상황에 놓인 엘리야한테 하나님께서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그런 미~세한 소리로 말씀하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생사의 갈림길 아니라 죽음 직전의 엘리야 청력 테스트 하실 일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
이제는 죽었다 하고 있던 엘리야의 마음 어루만져 주시듯,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통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셨을 뿐인데...미~세한 소리는 뭐고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는 또 뭐냐, 그 말씀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상식적인 차원을 벗어난 황당한 일...그러니까, 별다른 의미 없는 목소리(하나님 목소리를 두고 이런 표현 하자니 좀 그렇습니다만 ^^) 하나를 대단한 의미 있는 듯 꾸며놓고선 그에 감동하는 일...너무 황당한 그 일을, 결국은 자신을 포장하여 우매한 대중 앞에 드러낼 뿐인 그런 일을 저분은 감히 하나님 팔아서 하고 있잖아...?...라는 생각에서 답답~해지더군요.
그분이나 그 사람들이나 모두 그런 생각은커녕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 향한 경배의 일념으로 그러고 있음 생각하매...그 답답함이 참으로 큰 서글픔으로 느껴졌답니다.
이어서, 위와 같은 서글픈 장면이 발생하는, 아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근원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생각해 본 결과, 사람...그러니까, 죄성을 지닌 ‘사람’이란 존재의 어떤 속성 때문이라는 결론 내려지더군요.
그렇다면 그 속성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바로 떠 오르는 ‘속성’이 뭔고 하니...‘대책 없음’ 이었답니다. 그러니까, ‘대책 없음’이 사람이란 존재의 속성이다...사람은 좌우지간 대책 없는 존재, 그 자체다...!...라는 결론에 이르더라는 말씀입니다. ^^
원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인지라...대책 없음, 그 속성의 근원은 또 뭘까...?...그러니까, 어떤 근원적 속성, 즉 진짜 속성으로 인해 사람은 대책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자아도취, 헛똑똑이, 자기만족, 인생의 자랑, 기타 등등...수~없이 많은 단어, 표현들이 제법 한참 동안 뇌리를 스쳐간 끝에 한 단어가 결론처럼 드러났답니다. 교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결국은 그것, ‘교만’을 속성으로 지닌 사람이란 존재는 유튜브 영상 속 그런 서글픈, 일종의 가증한 장면 연출할 수밖에 없는 거다...라는 결론 내려지더군요.
바꿔말씀드리면, 그런 장면이 결국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말씀입니다.
꼬리를 물고 이는 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답니다. 그렇다면...사람은 정녕 대책 없는 존재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잠6:16-19) 중 첫 번째로 명시된 ‘교만’을 숙명적 속성으로 지닌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그것이었습니다.
역시 한참 동안 머리 굴린 끝에...결론...제법 그럴 듯한 결론 하나를 찾았답니다. 교만...그것이 사람이란 존재의 숙명적 속성인 만큼 그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그러나 거의 그 속성 없는 듯한 사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그곳에 가면...이라는 결론 말입니다.
그곳이 어디냐구요? ... 하나님 말씀 온전히 보존된 바른 성경, 성경 속 하나님 말씀 온전히 전하는 말씀 선포자, 그리고 하나님 뜻에 따른 사랑으로 서로 권면하는 성도들로 구성된 지역교회, 거기가 바로 그곳...아니겠는가...라는 결론 내려봤습니다.
늦가을로 접어들 11월 둘째 날 찾아갈 사랑침례교회, 그곳을 그려봅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 끝 )
2025-10-31 19:03:33 | 최영오
2025-10-31 15:15:53 | 심동휘
2025-10-31 14:27:14 | 박정미
2025-10-31 11:57:27 | 변시아
루터의 종교개혁을 위한 저항 운동은 "프로테스탄트"로써 생명을 건 인고의 결과물로써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의 몸부림으로 나타났습니다.앉아서 신앙을 잃기 보다는 생명을 건 최후의 몸부림으로 신앙의 원모습을 하나님 앞에 지키려는 신앙인의 절대적 모습이었다 생각합니다. 500년이 지난 현재 우리의 신앙은 다시 오염되고 은밀한 집단과의 보이지 않는 거래와 결탁으로 세상의 세태적 색깔마져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REFORMATION" 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아닌가요? 은혜로운 설교로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써 "무엇이 우리의 바른 신앙 자세인가 " 일깨워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나는 오늘도 허리를 굽혀 귀 기우려 듣기 원합니다. 귀하고 귀한 말씀 또 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2025-10-29 21:58:28 | 이강우
안녕하세요?
지난해에 사랑침례교회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365 주제별 핵심 구절을 필사할 수 있는 필사노트를 만들어 모두가 무료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365구절 필사노트
그런데 필사노트가 A4 사이즈라 크고 무거워서 사용에 제약이 있다고 해서 이번에는 암송 구절들만 모아서 옆에 두고 암송하고 자기 노트에 필사할 수 있게 일반 신국판 책 사이즈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365 주제별 핵심 구절(교리 요약+구원 계획 설명)>을 만들어서 올리니 마음대로 다운받아 쓰시고 원하시면 책으로 제본해서 쓰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넘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5-10-29 16:28:05 | 관리자
네, 감사합니다.
2025-10-29 15:40:04 | 김영규
네, 감사합니다.
2025-10-29 15:39:32 | 김영규
네, 감사합니다.
2025-10-29 15:39:18 | 김영규
안녕하세요, 자매님. 가족을 대표해(?) 제가 대신 인사드립니다. 형제님의 맛난 요리를 먹으러 가까운 시일내에 제 아내와 한 번 들르겠습니다.
2025-10-29 15:36:03 | 김영규
안녕하세요, 형제님. 늘 반가운 얼굴로 친근하게 먼저 다가와 주시곤 하셨는데 이는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었는지 모릅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5-10-29 15:31:04 | 김영규
안녕하세요, 형제님. 저도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목사님의 애국설교를 통한 정치적 발언을 접하며 여러 진통(?)의 시간을 거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적 가치, 곧 하나님의 오른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의 성경적 무지함이 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된 말씀의 렌즈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니 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2025-10-29 15:25:46 | 김영규
안녕하세요, 자매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집은 저 위에 있는데 이 아래에서 사니 참 힘드네요.
조금만 더 화이팅합시다.
잠시 잠깐후면 곧 주님 품에 안길 수 있으니깐요.
2025-10-29 15:19:05 | 김영규
흑백사진 목사님 사모님 사진을 가지고 오고 싶어요~^^ 날이 갈수록 누굴만나도 제얘기는 할게 없고 하나님 아님 자연 얘기는 초롱초롱해져요. 나를 정당화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내가 나를 못보나..생각합니다.양심cctv 언행cctv같은걸로 저를 한번 보고 싶네요(딱 한번만요~^^)
우리는 참 포도나무 예수님의 가지로서 특권과 책임이 있다 (요 15장 1~11절)_요한복음 강해 4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 - https://youtube.com/live/g4V74MDqIeg?si=RYrK__bLTWj2k5Vg
2025-10-28 23:05:08 | 목영주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과 그분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을 정리해 주신 최성미 자매님 덕분에 자매님들의 소감에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10-28 18:35:47 | 김지훈
자매님과 가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드리며, 정해진 때에 우리 모두 다시 반갑게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2025-10-28 18:29:17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이제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10월 15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유럽 종교개혁 투어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이로 인해 자매모임에는 함께하지 못했고, 아래 글은 최성미 자매님이 대신 전해주시는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50여 명의 성도님들과 함께한 이번 종교개혁 투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유럽의 건축양식이 고딕(신본주의)에서 르네상스(인본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해갔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고딕양식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신본주의적 상징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국민의 혈세를 빼앗아 자신들을 드러내려는 인간의 교만이 숨어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선악과 사건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후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번 여정을 통해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시 정비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유럽에서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나누고, 이어서 최성미 자매님의 글을 아래에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지난주는 맑은 가을 햇살 아래에서 야외로 나가 교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번 고백하게 되지만, 인간의 어떤 수단으로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지난번 책나눔에서는 전적인 타락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좋은 책이지만, 가끔 칼빈주의적 뉘앙스를 떠올리게 하는 문구들도 있어 세심히 분별하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전적 타락이 곧 전적인 무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를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다시 태어날 때, 성도로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제5과 ‘죄와 치료약’을 읽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1. 죄의 추문
P149-150
우리가 자신의 죄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보시듯 보지 못한다면 죄의 치료약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사용 할수도 없다.
죄는 하나님께 혐오스러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성경은 죄를 토한것에, 죄인들을 토한것을 도로 먹는 개에 비유한다(잠 26:11, 벧후 2:22). 또한 성경은 죄를 구덩이로, 죄인들을 그 구덩이에 눕기를 좋아하는 돼지라고 부른다(시69:2).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는 한 번 시작되면 썩게 하는 병처럼 인간의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말이, 주변을 살펴보면 참 맞는 것 같습니다.
:거짓으로 잠시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죄가 너희를 찾아내리라”는 말씀처럼 결국 그 끝은 결코 좋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2. 타락의 본질
P151
죄는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이고 강력하며 의도적인 적대다. 죄인들은 자유의지로 즐거워하며 죄를 선택한다.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하며"(롬8:7)
P152-153
죄를 위장하고 부인하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먼저 우리는 죄를 덮어서 감추려고 한다. 둘째, 우리는 자신을 정당화 하려고 한다. 죄를 항상 다른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린다. 셋째, 우리는 자신의 죄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정당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내용을 읽으며 제 마음이 걸렸습니다.
돌아보니 저 역시 많은 부분에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무지함이나 추측 속에서 죄를 짓는 모습을, 특히 교회 안의 관계 속에서 마주할 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3. 악이 제기하는 신학적 문제
P155
죄가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물을 망치지 않도록 막을 능력이 그분에게 없었는가? 약은 창조된것이 아니다. 악은 요소가 아니다. 죄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도덕적 실체다. 죄는 선한 무언가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아무도 죄를 창조하지 않았다. 죄는 하나님이 완벽하게 창조하신 존재들 안에서 완벽함을 상실한 것이다.
:"당신들은 나를 대적하며 악을 생각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이 선이 되도록 의도하시고 이날 드러난 것과 같이 그 일을 이루사 많은 사람을 살려 두셨나니"(창 50:20). 요셉의 이 고백처럼, 사람은 악을 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볼 때마다 늘 감사가 됩니다.
4. 죄와 그리스도
P163
구속받지 않은 죄인들은 죄의 종이다. 아무리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리고, 선행을 하며, 기도하고, 경건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우리의 죄악을 경감하거나 덮을 수 없다 심지어 지옥에서 영원히 불에 탄다고 해도 죄에서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P164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일하게 완벽한 희생자가 인간의 죄를 대속할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우리의 죄가 그분에게 전가된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분의 의가 믿는 우리의 것으로 간주된다
:저는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말 보잘것없는 먼지같은 나를 위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생각을 할때 마다 너무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P167
왜 하나님은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을 대신해 그분의 유일한 독생자가 심판을 받으시는 것을 허락하시기까지 죄인들이 받아 마땅한 심판에서 그들을 면제해주길 원하실까? 그 대답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찾을 수 있다(엡 2:4~6).
:또 저는 청년 시절 교회로 다시 돌아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너무 많은 눈물이 흘렀지만, 생각해보면 여전히 저를 사랑하시고 기억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말씀을 배우며 제 안의 죄된 모습을 깨닫고,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6. 사람이 거듭나지(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P168
예수님이 니고데모라는 한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수없느니라"(요 3:3). 예수님은 영적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요3:5~7). 그 일은 성령님의 주권적인 일이다. 그 일은 인간적인 수단으로는 통제할수 없는 일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P 175
그리스도가 베풀어주시는 구원은 지옥의 화염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먼저 죄의 정죄에서 벗어난 영광스런 자유다. 죄를 깨닫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 그분이 베푸시는 유일한 구원의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첫번째 단계다.
:하나님의 속성을 더 깊이 알수록, 우리가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2025-10-28 17:40:13 | 박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