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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부지런히 우리를 찾아와 주어서 반갑습니다.. 이 홈피가 우리교회성도들에게는 그리 활발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해도 이렇게 떨어져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과 만나고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마음이 설레고 잔잔한 기쁨을 선사해 줍니다. 제 남편,정목사님도 구제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봉하마을 조문인파를 보며 우리의 민심이 무엇을 목말라하는지 여러가지 이견을 차치하고 라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 집은 허름해도 예배당만큼은 커야한다는 순수한 마음과 교회는 곧 성전이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만나 기형적인 건물을 낳은 현시점에서 우리는 내 배만 배불리지 않고 주위를 돌아다 보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적인 배고픔보다 영적인 무지가 더욱 우리에게 부담을 주고 있어서 진리전파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지만 언제 어떤방식으로 구제를 실행해야할지 숙제를 안고 있지요. 이건 제 생각인데 사실 요즘 교회들이 진리의 말씀보다는 밥퍼주고 인생을 즐겁게 해주는 일에는 어느정도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보고 있고 또 사회사업으로 (복음을 어느정도 가미해서) 또다시 등치를 키우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성장이란 성도의 질적인 성숙보다는 양적인 증가에 전념하여 도움이 될만한 사업과 프로그램은 다 도입하고 사람들을 진리의 말씀보다는 내 행위에 만족하게 하는데 열심을 내게 한다고 봅니다. 진실한 나눔과 사랑으로 복음이 한꺼번에 전달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제 주위에도 어려운 친족이 있는데 물질적인 도움으로 그리스도께 인도되지 않는다는 허탈감을 받는데 이런 시행이라도 지치지 말고 해야하는지 자문할 때가 있지요. 보내주신 글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 아침에 생각과 마음을 나누게 되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2009-06-05 09:55:51 | 정혜미
오늘 아침 회사와서 PC를 켜고 처음 본 뉴스입니다 우리 크리스쳔도 이웃에 대한 이런 사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빵 한조각에 한 사람이 개종하였다는 것에 깊은 생각을 합니다. 미국의 편의점 살인사고을 많이 들어온 저로써는 제가 편의점주라면 경찰에 신고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이웃들이 참 많지요 그러나 저는 너무 내 가족만 챙기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일년에 보육시설에 돈 몇푼 보내고 제 스스로 위안을 삼는 제 자신 역시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진정으로 이웃에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말이죠. 전도도 말로만 "예수 믿으세요"만 외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실천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아침 저에게 주님이 주신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 뉴욕의 한 편의점 주인이 배고픔에 지쳐 강도짓에 나선 범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되돌려 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미국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CNN 등 미 언론은 3일 자칫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뻔했던 강도범을 회개시키고 돈과 빵을 줘 되돌려 보낸 상점 주인의 용기와 지혜에 온 국민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달 21일 밤 12시 무렵. 복면을 한 40대 강도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셜리 익스프레스’ 편의점에 들이닥쳤다. 파키스탄계 이민자인 편의점 주인 모하마드 소하일 씨(62)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과민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돈을 내놔라”고 위협하는 강도에게 “진정하라”며 안심시켰다. 순간 소하일 씨가 카운터 밑에서 소총을 꺼내들었고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당황한 강도는 방망이를 버리고 무릎을 꿇은 채 “경찰에 신고하지 마세요. 쏘지 마세요”라며 애원했다. 강도는 이어 “돈 한 푼 없어요. 집에 먹을 것도 없어요”라며 어린애처럼 울부짖었다. 동정을 느낀 소하일 씨는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40달러와 함께 빵 한 개를 강도에게 건넸다. 편의점 주인의 친절에 감동한 이 어설픈 강도는 “당신과 같은 이슬람교도가 되고 싶다”고 자청했고, 그 자리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의식까지 치렀다. 소하일 씨는 그에게 파키스탄의 전 총리와 현 대통령의 이름을 섞은 ‘나와즈 샤리프 자르다리’라는 이슬람 세례명을 붙여줬다. 소하일 씨가 “이슬람교도가 된 것을 축하한다”며 우유 한 병을 건네려고 잠시 등을 돌린 사이 이 강도는 쏜살같이 자취를 감췄다.     10분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이 강도미수 사건은 편의점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찍혀 지역 신문인 뉴스데이의 사이트(www.newsday.com)와 유튜브 지상파 등 각종 매체를 타고 방영됐다. 소하일 씨는 보도가 나간 뒤 “20여 차례의 언론 인터뷰 세례를 받았다”며 “이번 사건은 내 인생도 바꿨다. 앞으로 많은 사람에게 더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2009-06-05 08:30:27 | 김학준
오늘은 시간을 내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마음산책'(찰스 스윈들)을 다 읽었습니다. 50여 년 동안 목사, 신학대학 학장 등을 지내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신 목사님이 은퇴할 때가 되어 예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를 기술하였습니다. 보기 드물게 좋은 책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과 함께 공부하고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들어 제임스 낙스의 성령의 열매 등을 접하면서 이런 것들을 모아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는 삶에 대해 성도들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을 위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추구했고 그러자 그런 일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혼동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이 바쁘게 살면서 주님을 위한 일들을 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일입니다. 즉 내 육신을 만족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자식으로 대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은 구원 받은 사람의 옛사람에 대한 글이 좋았습니다. 자전거 아시지요. 자전거를 타다 보면 여러 가지 요령이 생기고 기술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오랫 동안 자전거를 안 타다가 또 타면 여전히 그 기술과 요령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옛사람 즉 육신(flesh)도 자전거 기술과 같습니다. 우리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습니다. 버릴래야 버릴 수 없습니다. 몸에 배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육신을 통제하지 않고 살면 성령님을 대적할 수밖에 없지요.   육신 하면 이제 자전거 생각을 합시다. 몸에 밴 기술 말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다다르도록 애를 씁시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2009-06-04 19:31:19 | 관리자
제 글을 그냥 짧게 쓰다보니 오해하신것 같아 다시 올립니다. 저도 Easy believism이 Lordship salvation보다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는 전자를 따르는 것 같아 전도사님께 여쭈어보니 전자쪽이 맞는 거라고 하셨고 저는 아닌것 같아 계속해서 질문을 드리니 칼로 무짜르듯이 명확하게 답을 못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였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06-04 16:58:35 | 김학준
저도 이 설교을 읽으면서 좀 애매했었던 부분이었는데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교회 목회자분들에게 여쭈어보니 전자의 의견이 맞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심했었는데....감사합니다.
2009-06-04 12:40:24 | 김학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접 기도 복음이 아니다 ● 정동수 요즘 심각하게 느끼는 일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하는 것입니다. 사영리 책자를 읽고 간단히 설명한 뒤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가르치는 곳이 많습니다. 설교를 들은 뒤 손을 들고 나오면 목사가 기도해 주겠다고 하는 데도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람 순수한 심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받지요. 그런데 복음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면 너무 쉽게 Easy believism에 빠져서 또 압력에 견디지 못해 영접 기도를 하게 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손을 들든지 안 들든지, 영접 기도를 하든지 안 하든지 이미 마음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갔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눈에 드러나는 외적 행동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 안 믿는다 판단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손을 들라고 하고 앞으로 나오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위선자(혹은 가짜) 그리스도인을 양산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단 교회나 집회에서 손든 사람의 수를 세면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과거에 저도 한때 그런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몰랐기 때문이고 또 순순한 의도로 그렇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폴 워셔 목사의 글입니다. 조금이라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복음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기독교가 이 세상과 친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이 세상을 향한 구원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세상에게 기독교를 받아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무엇을 해야 될까요? 이렇게 많은 사람앞에 말할 기회가 오직 한번 뿐일 때 제가 하던 것을 하겠습니다.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우리는 벌써 복음이 무엇인지 압니다. 아니요, 모릅니다. 당신이 아는 것은 그저 사영리와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의 사실들 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있지도 않는데도 그저 다른 사람들의 결심을 도와주는 것과 그들이 구원받았음을 확인시켜주는 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저 설교들과 신앙고백하는 법 그리고 교회성장등을 가르치는 것만 보아도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 일을 보십시오. 우리는 어떤 이에게 다가가 이러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죄인인 것을 아십니까?"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천국가길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또 다시 질문을 합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도를 하시겠습니까?" 그가 그렇다라고 진지하게 대답을 하며 기도하면, 우리는 그를 진정으로 거듭난 자라 일컫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이러한 방법의 전도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이단사상보다 더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은 정작 변하지도 않으면서, 그들 자신을 거듭난 기독교인이라 일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젠 그저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간단한 결정으로 축소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신이 죄인인 것을 아십니까?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렇다"라고 하면 무슨 뜻입니까? 그 대답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사탄에게 물어보십시오. 사탄도 그가 죄인인 것을 압니다. 그것도 죄인중에 죄인으로 말이죠. 질문은 "당신이 죄인인 것을 아십니까"가 아니라, 복음을 깊이 들은 이후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 속에서 일하셔서 그동안 사랑해 왔던 죄악을 이젠 진심으로 싫어하냐라는 것입니다. 질문은 "천국가고 싶습니까?"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천국을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하나님이 없길 원하죠. "당신은 천국가기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할 것이 아닙니다. 질문은 복음이 당신에게 전해진 이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 속에서 주권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역사하심을 통해 그동안 싫고 무시해왔던 하나님을 이젠 당신이 간절히 원하며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으로 받아드리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라고 기도하시겠습니까?"라는 기도에 대해 그를 뒷받침 해 주는 성경구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성경에선 그를 영접하라고 했는데요?"라고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성경이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이 단지 사영리에 나오는 기도를 중얼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말씀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저 그를 당신 인생의 악세서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생명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속에서 당신의 인생을 더 좋게 만드는 분이 아니고, 그리스도는 당신의 삶이 되십니다. 그가 당신의 삶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 누가 자신의 마음속에 와달라고 나에게 기도할 것인가?" 대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회개하라 복음을 믿어라!" 절대 잊지 마십시오. 신약과 구약을 통틀어 회개는 삶의 열매에 의해 증거가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역사하심과 구원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결심을 더 의지한 채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구원받았습니까?" "네" "어떻게 아시죠?" "3년전에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거든요" "정말로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이 했습니까? 구원의 증거, 회개의 증거, 믿음의 증거는 변화되었고 변화하고 있는 삶입니다. 예전에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였는지 어떻게 아냐고요? 그 이유는 오늘도 그 회개를 지속해서 해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다 믿을 수 있냐고요? 왜냐하면 오늘도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그것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성화를 통해 그는 당신의 인생을 바꾸셨을 뿐만아니라 지속해서 당신의 인생을 바꾸십니다. 오늘날 선포되는 복음은 많이 흐려졌습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설교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일하시고 계십니다. 이 복음은 많은 메시지 중에 하나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의 메시지이며 기독교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이 복음이 오늘날 교회의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주위에 있는 서점에 가 보십시오. 200년 전, 또는 300년 전만 하더라도 기독교 서적들은 대부분 복음에 대해서였습니다. 스펄전이나 청교도나 에드워즈가 쓴 책들은 복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하면 복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복음을 설교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진실된 회심인가? 어떻게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난 것을 알 수 있을까? 오늘 주위에 있는 서점에 가 보셔서, 그러한 복음에 대해 기록된 책들을 찾아보십시요.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어떻게하면...열가지 순서들"뿐일 것입니다. 오늘날 왜 이렇게 힘이 없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모르고, 진정한 회심을 모르고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신, 그러한 것들을 예배속에서 어떠한 미디어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제작된 찬양방식이나 하나님보다도 더 원하는 우리의 좋은 인생을 원하기에 우리가 듣길 원하는 설교만을 전하는 화려한 연설자들로 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잃었기에 힘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을 회복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남자, 여자 그리고 자녀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저 꾸밈없는 순전한 복음말입니다.
2009-06-04 10:33:14 | 관리자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했습니다. 도전이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예수님과 부딛쳤는데 아무 변화가 안 생긴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합당한 표현입니다. 감사합니다. 구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극단적인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Easy believism이고 다른 하나는 Lordship salvation입니다. 많은 근본주의 교회들이 전자를 택하고 있음에 반해 워셔는 후자를 취하고 있습니다. 전자도 잘못되었지만 후자의 경우도 마치 행위가 구원의 필수 조건인 것처럼 제시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회개는 인생에서 분명히 단 한 번 생기는 사건이지만 후자의 경우 매일 새롭게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것이 극단적으로 되면 믿음 + 행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워셔의 메시지에서 이런 부분을 잘 가려서 들어야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몇 가지를 빼면 그의 메시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9-06-03 22:45:0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