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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지못해 너무 아쉽네요... 좀더 자매님들과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가볍고도 깊은교제를 할수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800년된 은행나무 참 대단하죠? 전 저희남편과 작년가을 성주산을 넘어 소래산에 올랐다 내려오는길 잠시 들렀는데 그땐 노랗게 물이 들어있었는데....초록빛 은행나무도 장관이 참 보기좋았겠다..짐작이 되네요...그래도 은행나무아래 활~짝 웃고있는 우리 지체들이 훨씬 아름다워 보입니다~ㅎㅎㅎㅎ
2009-06-02 15:13:45 | 장영희
칼국수..맛있는 열무김치도 함께 있었겠네요. 답글 고마워요.사모님. 여기 연수도서관 프린터 전용석에 앉아서 쓰고 있어요. 창세기, 요한계시록 다 프린트했는데, 다른 자료들과 함께 100 장이 넘네요. 비가 엄청 오고, 날은 어둡고, 겨우 2시 22분인데 말입니다. 으시시...무섭네요. 다행히 우산이 있어요.하하. 저녁 성경공부 시간에 뵈어요..샬롬..
2009-06-02 14:23:13 | 백화자
우선 메뉴는 두부김치와 칼국수였어요. 칼국수가 얼마나 푸짐한지 나중엔 사역(!)의 심정으로 먹는다고 재근형제님이 말했지요. 날씨도 쾌청했고 장미꽃도 여기 저기 색색으로 만발하였는데 저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꽃과 함께 사진찍는 일을 자꾸 잊어 카메라는 메고 다녔지만 많이 찍지 못했네요. 다음에 야외나갈 땐 전담 촬영기사가 있었음 좋겠어요. 그곳에선 삼삼오오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단체 데이트를 하다보니 골고루 교제하지 못해 아쉬웠고 혹 심심해 하는 사람은 없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 코스인 은행나무가 정말 장관이었는데 그 일정까지 인도하신 홍집사님께 감사드려요. 자매님도 함께 있었음 좋았을텐데...가을에 한번 더 가자고 하더군요. 가을엔 운동도 하고 게임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2009-06-02 09:04:30 | 정혜미
어제 가고 싶었는데   남편이 몸살이 걸려서 아픈 바람에 못 갔네요.   오후 예배 후, 집에 왔다가, 저녁먹는 시간이라도 가려고 했는데   에고...아쉽습니다.   오랫만에 하는 회식(?)인데 말입니다.   식당에선 어떤 맛있는 음식을 드셨는지..   대공원엔 어떤 이쁜 꽃들이 피어 있는지..   누가 또 재미있는 행동들을 하셨는지..   누가 답글 좀 달아주세요..잉잉..
2009-06-01 21:47:59 | 백화자
조지 위필드 목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키기로 주님과 약속하고 매일 이것을 점검하며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 글은 특히 목사들에게 꼭 필요한 글입니다. 내 자신을 쳐서 낮추는 작업이 매일 이루어져야 합니다. 끝없이 성화의 노력을 기울여 봅시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한 번 이런 약속들을 지켜봅시다. 책상에 붙여 놓고 매일 보기 바랍니다.   첫째, 개인 기도에 열렬하였는가? 둘째, 작정해 놓은 기도시간에 기도하였는가? 셋째, 매시간 부르짖었는가? 넷째, 대화하거나 행동하기 전이나 후에 나 자신이 행하려는 것이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 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 심사숙고하였는가? 다섯째, 기쁜 일이 있을 때 즉시 하나님께 감사하였는가? 여섯째, 하루의 일과를 미리 계획하는 일을 잊지 않고 했는가? 일곱째, 모든 일에서 순수했는가, 또한 반성해 보았는가? 여덟째, 내가 행할 수 있는 선한 일을 감당하거나 행할 때 뜨거운 열심히 있었는가? 아홉째, 말하거나 행할 때 온유하고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였는가? 열 번째, 다른 이들에 대하여 교만하거나 허탄하게 굴거나 참지 못하거나 투기하지는 않았는가? 열한 번째, 먹고 마실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가? 또 잠자는 일에서 절제가 있었는가? 열두 번째, 윌리엄 로(William Law)의 규칙을 따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에 시간을 드렸는가? 열세 번째, 연구하는 일에 부지런하였는가? 열네 번째,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친절하게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는가? 열다섯 번째, 나의 모든 죄를 고백하였는가?
2009-06-01 18:03:15 | 관리자
다음은 김남준 목사의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다음 세기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다음 세기의 사람들은 더더욱 기독교신앙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신앙을 일고자하는 자들일수록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성을 점점 덜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회복함으로써 예배 속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정직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예배가 “영과 진리”안에서 드리는 예배로 회복되어야 한다. 필자는 조국교회가 이러한 예배를 회복하기를 갈망하며 죤 길리즈(John Gillies)와 함께 다음과 같은 회고에 그리움을 담아 이 글을 맺는다.   그들의 설교에는 장엄함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생각에는 타오르는 불과 힘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설교자들이 힘의 사람들이었음을 느낍니다. 그들의 증언은 나팔이 되었고 그 나팔은 성자에게나 죄인에게나 교회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나 결코 희미하거나 애매한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말씀을 증언함에 있어 주춤거림이나 입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이나 겉치레의 말로 대언을 대신하는 것 같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멸하신 십자가 위에서 죄의 종지부를 찍으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역사하게 된 큰 기쁨의 소식을 선언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율법과 형벌들은 선포하는 데 더욱더 탁월하였습니다. 그들은 구도자들을 십자가에서 완성된 바로 그 구속의 성취로 곧장 이끌어 내어 복음을 즐거워하도록 만들어 주는 일보다 먼저 그들에게 자신들의 행위가 무엇이고 무엇을 느껴야 하고 믿어야 하는지를 심어 주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간에는 또한 구주가 누구신지를 완전히 드러내 주었으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대해 자유롭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의 설교는 엄청난 능력으로 청중들에게 던져진 가장 용맹스럽고 담대한 종류의 선포들이었습니다. 그것은 격렬하지도 않았고 사납지도 않았으며 시끄럽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경건하여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것은 경박하지도 아니하였으며 무게도 있었고 날카로웠으며 사람의 심령을 깨뜨리는 힘이 있었으며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였습니다. 그들이 휘둘렀던 말씀의 무기들은 잘 담금질되어 있었고, 반짝반짝하게 닦여 있었으며, 예리하고 날카로웠습니다. 그들은 결코 빈약하거나 훈련되지 않은 무기를 휘두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2009-06-01 18:00:5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