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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추석 연휴 첫째 주일(10월 1일)에 청장년부 주축으로 청년들과 축구를 하기로 했으나 비가 오는 관계로 급히 청년부와의 간단한 식사와 더불어 교제를 자모실서 하게되었습니다. 서로가 가까워지기 바라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그동안 수줍어하는 마음이 더 컸나 봅니다. 이런 자리로 서로가 더 가까워졌음을 느끼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교회의 가치관과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아가는 청장년부와 청년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음식과 함께 하는 대화는 언제나 마음을 더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청년부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먼저 청년부 부회장 박주영 형제님     김도일 형제님: 친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후 김정호 형제님의 인도로 우리 교회에 고등학생임에도 혼자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이제는 어엿한 청년부가 된 짧은 간증을 들었습니다.      유지영 자매님: 교회 온지는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청년들과 좋은 교제를 나누고 있음을 짧게 알려주셨습니다.     김달해 자매님: 방송실 막내로 섬기고 있는 방송실 선배들로부터 이쁨을 독차지(?)하고 있는 자매님입니다.     송혜민 자매님: 일명 딸기 자매님(?)이라 불리는... 우리 교회 주일학교에서 자주 가는 딸기밭 농장을 송자매님 가족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소희 자매님: 기도회를 비롯해 교회에서 틈틈이 반주로 섬기고 있는 자매님입니다.     이샤론 자매님: 지방에서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위해 이사와 직장까지 옮기는 희생(?)을 기쁨으로 하신 자매님입니다.     장미 자매님: 샤론 자매님과 더불어 이름을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자매님이십니다.     김태연 자매님: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정영찬 형제님: 영찬 형제님은 청장년부 형제 중창단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정병우 형제님: 청년부를 총 대표할 수 있는 형제님이네요.     조예성 형제님: 사랑침례교회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간증해주셨습니다.         청장년부와 청년부의 건강한 교제를 통해 교회의 튼튼한 허리와 젊은 교회의 모습이 많이 풍기길 기대해봅니다.
2017-10-15 18:05:49 | 이성준
제가 태어난 이래 처음 겪어보는 나라의 위기를 맞아 자유 대한민국의 존망과 함께 그 중심에 기독교가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게되니 사태의 심각성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념으로 교회를 무너트리려는 마귀의 간계에 속지 않고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일이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동성애 합법화 문제등 당장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다름아닌 이념전쟁이라는 현실적 자각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니.. 말씀과 함께 성경적인 이념으로 각자 무장하여 정신을 차리고 힘을 모아 나의 믿음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는만큼 보이고 알아야 산다는 말이 정말 실감납니다.
2017-10-15 12:40:10 | 김상희
나의 믿음생활은 얼마나 순수하고 간절하게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지금 이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해야할 일은 과연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7-10-15 12:20:23 | 김상희
샬롬~ 최근에 읽었던 말씀중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공유합니다.   [본문 : 누가복음8장43-49절]    의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는 과거에 인간에게 치명적이었던 질병들이  현대에 와서는 어렵지 않게 치료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본문 누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혈루증 환자 여인의 이야기는 별로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눅8:43 - 12년 동안 혈루증이 있어서 의사들에게 자기의 모든 살림을 다 갖다 바칠 정도로 치료비로 썼지만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한 비참한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혈루증은 현대 의학용어로 "만성 자궁출혈"로 볼수 있습니다. 여성은 한달에 한번씩 생리기간을 겪게 되는데, 그 기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여성들에게 상당히 힘든 기간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한 이 여성은 12년 동안 하혈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레위기15:19-30을 살펴보면 유대인들의 정결례에 따라, 생리기간에 여성은 부정하게 취급받고 그녀가 누운 곳과 앉은 곳, 그 위에 놓은 물건들, 옷가지 등을 만져도 부정하게 취급 당했습니다. 한마디로 생리기간에는 여성은 몸과 마음이 너무도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더욱 힘든점은 레15:25-26 을 보면 생리기간이 아닌데도 피의 유출이 멈추지 않으면 그것이 마칠때까지 그 여성은 한마디로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살아 있지만 식물 인간과 같은 지경에 놓이게 됨을 알수 있습니다. 그녀와 관계된 것들은 모두 부정하다고 하니 어디를 마음대로 돌아다닐수가 있겠습니까? 먹는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가족조차도 율법을 지켜야 하기에 어쩔 도리가 없이 외톨이로 지낼수 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 여인이 12년 동안 치료되지 않은 혈루병을 치료받기 위해 왜 전 재산을 다 쓸수 밖에 없었는지 심정이 이해갑니다. 그런 그녀는 어느날 예수님(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 분)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차마 정면에서 그분을 뵐수가 없어서 그분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단(the hem of his garment)에 손을 댑니다. 옷단(the hem)은 보통 옷의 끝 부분을 의미합니다. 마9:21에 보니 그녀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온전하게 되리라' 그러자 눅8:44...즉시 그녀에게서 피 나오는 것이 멎으니라.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즉시 역사하여 효력이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일이 생기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자부하며 여러가지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중에 몇명이나 되는 사람이 이 혈루증을 치료받은 여인과 같이 예수님을 향한 순수하고 간절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제 자신에게도 이 질문을 던졌을때,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가슴속 깊이 뜨거운 눈물이 나왔습니다. 혈루증 여인이 치료되는 그 상황속에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모습으로 상상해보면, 예수님과 셀카를 찍고, 팔짱을 끼고, 어깨 동무를 하고, 동영상 촬영을 하고...그렇지만 그 수많은 인파 가운데, 혈루증 여인같이...    ' 내가 그분의 옷자락 끝이라도 만지면... 내 힘으로 해결할수 없었던 이 병, 내 전 재산을 유능하다는 의사들에게 다 갇다 줘도 해결하지 못했던 이 고질병, 내 인생을 깊은 어둠으로 몰고가고 비관하며 ...하루에도 수만번 자살하고 싶게 만들었던...이 문제가...예수님께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가져가면 해결될 것이다' 라는 순순하고 간절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단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한사람을 아시고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하시며 관심을 보이십니다.(막5:32...이일을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심) 그리고 그 한사람에게 너무도 사랑스럽게 용기를 북돋고 소망을 심어주십니다. 눅8:48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살 소망이 없던 혈루증 여인에게 예수님은 참 평안을 주시고 이후로 남은 삶의 참 소망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왜 따르며 살아가십니까? 나에게 혈루증 여인과 같은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예수님을 향한 가식없는 사랑이 있습니까?   세상을 보면 점점 악을 향해 치닫고 있고, 현재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등등의 여러 모습들이 하나같이 소망이 없는 모습들로 인해 마음이 어둡고 괴로운 시절이지만...   예수님께 대한 순수하고 간절한 믿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분께만 우리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요.
2017-10-12 23:43:02 | 오광일
귀가 아프셨나요. 저도 태어나서부터 귀가 약하여 늘 병원에 다녔고, 작년 9월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2차에 걸쳐 수술을 받았습니다. 만성적인 부분이 많이 치료되었습니다. 아프신 곳이 잘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같이 한 지체로 만나게 된 것을 기쁩니다. 힘내세요
2017-10-12 19:23:24 | 이현엽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한 징계 (6:1, 킹흠정) 이스라엘 자손이 또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니  그리고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즉시 구원하지 않으시고, 먼저 대언자를 보내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6:8-10, 킹흠정)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대언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고 너희를 속박의 집에서 데리고 나와 이집트 사람들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던 모든 자들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 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며 그들의 땅을 너희에게 주었고 내가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 너희가 거하는 땅 곧 아모리 족속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은 성도들이 거듭된 징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를 지음으로 책망하심은 나라를 빼앗기며 살아본 우리나라의 가까운 역사들중에서도 이미 복습된바가 있었기에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만든 추석영화 남한산성과 아이캔스피크가 조용한 깨달음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엊그제 야밤에 또 한번의 야음을 틈탄 B-1B 기습 출격이 미전략무기 한반도 총집결이란 제목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최첨단을 자랑하듯 주적의 동향을 감시합니다. 횟수가 늘어나며 긴장감을 높이는건지 작전상 물타기를 하는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이 하는일의 순간적인 판단은 결국 난국을 통감하고 부르짖는 기도를 기다리시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이후 (창9:11) 내가 너희와 더불어 내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내가 모든 육체를 홍수의 물들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동족간의 전쟁사를 통한 뼈아픈 깨달음을 과연 너희가 빵으로만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달음질 할수 있겠느냐 난세구국을 부르짖는 영혼들에게 오늘날도 묻고 계십니다. 부르짖으므로 대언자를 보내사 징계의 발병원인을 선포하고 일꾼을 부르시고 보내심을 통하여 믿음의 강도를 훈련시키시지요.   하나님은 오, 내주여,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일이 우리에게 닥쳤나이까? 연약한 우리네와 비슷한 성정을 가진 당돌아이콘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싸우기 전에 먼저 바알의 제단을 제거할 것을 명하신것처럼 구국 성도들이눈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벗어나 오늘날 대언자역할의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와 사단에 대해 먼저 선전포고를 해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못하는 것들을 고백할 때에 32000을 300으로 줄여가며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간섭하게 하시고 넉넉히 이기시도록 자리를 온전히 내어 드리는 시간 우리네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작업? 작전?  이상은 불순종이 반복되던 기드온시대 삶의 민낮과 낮이 두려워 밤에 명령받은 제단을 허무는 기드온의 여룹바알이야기 였습니다.    10월 모임과 섬겨주신 사랑의 오찬까지 마친 어르신들은 마침 교회옆 메가박스에서 일제말기 정신대 실화를 온몸으로 전세계에 알린 어르신의 영화 아이캔 스피크에 섬김이분들을 초청하여 지나간 역사를 회상하며 실화를 바탕으로 미처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주고 받는 시간까지 눈시울을 적시며 좋은시간 같이 하였습니다.   서로섬김에 늘 감사합니다. 11월에 뵈어요. 샬롬    
2017-10-12 07:02:34 | 윤계영
안녕하세요?   곧 바닥 공사가 끝나고 1층 기둥을 세우는 콘크리트 골조 공사가 시작됩니다. 이를 위해 어제 타뤄크레인이 설치되었습니다.   요즘 타워크레인 전복 사고 소식이 잦습니다.   공사가 안전히 진행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현재 쓰고 있는 건물이 잘 매각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7-10-11 18:42:34 | 관리자
안녕하세요?   2017년 9월 중순에 장로교 통합 교단 총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장로교 신학대학 내의 동성애 문제가 이슈로 제기되었고 총회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진 관련 동영상은 현재 6만회 이상 조회가 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불복하고 선배 목회자를 비난하는 장신대 학생들은 누구인가?>https://youtu.be/_wK3QEOW6DI   목사를 배출하는 신학대학의 동성애 문제를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이들과 함께 믿음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거대한 인본주의 물결을 막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이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야기했듯이 교회가 없는 세상에 우리 아이들을 방치해 둘 수는 없습니다.   이런 영상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역할이 어떠해야 할지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지면 좋을 것입니다.   다음은 울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법학과 교수인 이정훈 교수의 <동성애와 이데올로기> 강의입니다. 이런 강의를 통해 성도들이 철저하게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동성애와 이데올로기>https://youtu.be/fPWS-MkeqkA   이정훈 교수는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 지독히 애쓰던 중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분입니다. 요즘 매우 강력하게 주님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한번쯤 이런 영상을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늘 그러하듯, 우리와 똑같은 믿음의 소유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영상들을 통해 전체적인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7-10-11 18:18:39 | 관리자
안녕하세요?   2017년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95개조를 비텐베르크 성문에 붙이며 종교 개혁을 일으킨 날입니다.   종교 개혁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입니다.종교 개혁 이후로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우리나라는 복음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린 국가 중 하나입니다. 다음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을 요약한 글입니다.이 글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역할이 어떠해야 할지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지면 좋을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 한국 근대화를 이끈 개신교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프로테스탄트는 1517년 유럽에서 중세 암흑시대를 종식시키는 빛을 밝히며 근대(近代)를 열었고, 이후 지난 500년간 문명변화를 주도해온 삶의 태도와 인식론적 기반을 형성시켜 왔다.   실제 세계가 모델로 삼는 국가들은 대부분은 프로테스탄트적 기반 위에 있다. 인구 1000만 명 이상 국가 중 국민소득 상위 35개국은 미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대한민국, 스페인 등 총 11개국인데, 그 중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모두 기독교 기반 국가이다.   기독교에서도 가톨릭 기반이 강한 나라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뿐이고, 나머지 모두 프로테스탄적 기반이 강하다. 만약 소규모 국가이지만 고소득 국가인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등까지 포함한다면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이 강한 나라는 거의 대부분 근현대 문명을 열어온 대표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근대문명사와 종교와의 관계를 볼 때, 프로테스탄트 500년 역사는 근대문명 발전과 깊은 상호관계를 갖거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 특히 문명사와 개신교적 친화성과 관련해 기독교 인구가 2% 남짓한 일본은 예외라고 하더라도 한국은 예외로 보기 어렵다.   한국은 예외가 아니라, 명확하게 개신교의 확산과 한반도의 문명 변화가 함께 했다는 것은 지난 100 여년 간 프로테스탄트적 확산이 가장 강하고 빨랐던 나라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27.6%로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인구만으로도 19.7%를 차지해 불교 15.5%를 넘는다. 아시아 44개 국가 중 오직 한국만이 개신교 국가로 분류된다.   개신교 비율이 10%를 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개신교만으로도 19.7%로 서유럽국가의 기독교 비율과 차이가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명확히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에 서 있는 나라이며, 개신교문명과 유럽문명을 분리할 수 없듯 대한민국의 성공과 개신교 확산 및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내면화와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한민국 기반은 프로테스탄트   한국에서 근대문명 체계가 만들어지는 계기는 봉건체제에서 근대체제로 이행을 시작한 1876년 개항이다. 특히 개항 이후 펼쳐진 기독교문명 및 기독교 선교사들의 역할에 절대적으로 힘입었다. 특히 1882년 미국과의 수호조약 이후 문명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요 활동은 기독교 조직에 의한 것이었다.   개항 10년 뒤인 1885년을 전후로 가장 고립된 폐쇄, 낙후 체제인 한국에서 펼쳐진 기독교의 활동은 커다란 전환의 시점이다. 상징적으로, 연세대를 만든 언더우드는 미국 기독교계에서도 가장 철저한 칼빈주의에 입각한 네덜란드계 개혁교회(뉴저지, New Brunswich신학교) 출신인데, 그는 1600년대 일본으로 가던 도중, 조선에 억류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박연), 또 20여년 뒤 또 다시 억류당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의 선조들과 칼빈주의적 개신교라는 점이 정확히 일치한다. 이승만과 배재학당을 키운 독일계 감리교계의 아펜젤러는 독일 감리교계 개혁교회 출신이며 언더우드는 장로교계 출신으로 모두 한반도 선교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1885년 한국 최초인 인천 내리교회, 1887년 새문안교회 및 정동교회 등이 설립되었고 지역적으로도 미국 북장로회와 감리교회는 평안 및 황해도, 남장로회는 전라도 등을 맡아 학교, 병원 및 교회를 함께 만들었다.   근대교육으로는 여성 근대교육의 효시가 된  이화학당의 스크랜튼, 경신학교의 언더우드는 물론 기독교정신에 따라 오산, 숭실, 숭의, 정신, 배화 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1910년 기준 장로교는 501개 학교, 감리교는 158개 학교, 그 외 교파를 포함하면 683개, 천주교 설립학교까지 포함하면 총 807개 학교가 기독교에 의해 운영되었다.   프로테스탄트가 변화시킨 한국   한국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첫 과제는 수백 년간 계속되어온 봉건사회의 종식이었다.   개신교는 미신과 토속신앙의 극복, 봉건적 계급제도, 남녀차별, 사농공상적 신분제도와 차별제도 폐지에 선도적 역할을 했고, 그것은 나아가 근대 기본권 개념과 천부인권(天賦人權)적 자유에 입각한 개인의 시대를 여는 토대를 만들었다.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체계는 모두 개인의 삶의 질과 개인의 생명을 중시하며 전근대적 봉건적 삶의 존재 양식을 바꿔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프로테스탄트는 종교를 넘어 근대적 가치와 근대적 삶을 형성시키는 문명사적 변화를 만드는 기수였다.   나아가 반봉건 투쟁과 반식민 투쟁, 그리고 1945년 이후 반공산 투쟁 등 모든 전체주의와의 투쟁에 선봉에 섰던 것도 프로테스탄트였다. 자주 독립국가의 지향과 근대 민주공화제 건립의 기반이 된 3·1운동이 이념적으로나 주도적 활동가에서 모두 프로테스탄트가 중심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이나 조만식, 안창호, 이승훈 등 민족지도자들도 모두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에 입각했다.   신의주 의거나 황해도 신천투쟁 및 공산주의를 대상으로 한 반공투쟁의 주역들도 거의 프로테스탄트였고 옥구교회,  병천교회 등 6·25전쟁에서 공산주의로부터 가장 커다란 희생을 입고 재기의 중심에 섰던 것도 프로테스탄트였다.   괄목할 만한 것은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이 자유민주주의 도입과 정착 시기는 물론이고, 산업화시대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정신이 늦어진 인식론적 근대화를 형성시키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업과 공업에 대한 천시를 극복하고, 기업과 장사 및 무역에 대한 자존감 형성을 포함해 사농공상(士農工商)적 신분사회를 타파하고, 오직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더 공급하고 서비스해주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보상체계야말로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만든 근간이다.   수백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과거급제와 공무원 시험과 같은 공직자 중심에서 기업과 시장중심적 사회 변화와 인식 기반을 개신교가 만들었던 것이다.   높은 신분을 획득하거나 권력중심적 지배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필요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바꿔냈으며 상공업사회의 변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프로테스탄트정신이 없었다면 봉건적, 전통적 한국 사회가 오늘날과 같이 근현대사회로 바뀌지 못했을 것이다.   명·청시대를 이은 500년 가까이 한반도는 폐쇄적 중국의 영향과 문명적 고립을 겪으면 근대화가 매우 늦어졌고, 서구 및 프로테스탄트와의 접촉은 불과 130여년부터 가능했다. ‘늦어진 한반도의 근대문명’과 프로테스탄트의 만남은 한반도 문명의 완벽한 변신의 계기가 되었다.   결국 500년 전, 1517년의 프로테스탄트 종교와 정신은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시작되어 영국으로, 다시 미국과 캐나다로 확산되었다가 19세기말 및 20세기 초중반에 걸친 약 100여 년 동안 아시아 극동지역인 한반도, 1945년 이후에는 한반도에서도 남쪽인 대한민국에 대거 집중되었고 그 결과가 대한민국 성공이다. 지난 130년 동안 대한민국만큼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확산과 정신이 토대가 된 나라는 찾을 수 없다.   프로테스탄트적 개인은 봉건적 속박과 가톨릭적 교회에서 벗어난 ‘세속적(secular) 개인’이다.   ‘세속에서 삶을 사는 구체적 개인’과 그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성불가침적 사고는 근대의 출발이자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요체이다. 그 전까지는 개인이 아니라 봉건계급, 가문, 교회 및 신앙공동체에 속박되어 신분계급적 삶을 요구받는 것이었지만 프로테스탄트는 세속적 삶 속에서 직업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는 개인과 그 개인의 자유를 정립했다.   물론, 개인 자유의 토대는 개인과 신(神)과의 직접 만남이란 인식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교회와 사제 혹은 교황이란 중간 매개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신과 만나는 개인이야말로 권리와 인권의 주체이고, 누구도 개인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유린할 수 없다.   교회와 사제는 개인이 신과 만나는 것을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는 신분과 계급사회로부터 개인(individual)을 분리해내고, 국가에 봉사하는 신민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는 개인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존재로 바뀌도록 만들었다.   노비든 상민이든, 혹은 여성이든 인권과 자유는 구속될 수 없고 신분, 계급, 가문 등과 같은 집단적 구속으로부터 분리된 근대적 개인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했다.   신분 집단 등과 같은 봉건적 구성에서 벗어난 개인의 형성은 개인의 행복추구와 개인의 재산(property) 형성에 대한 존중과 연결된다. 권력 추구나 신앙적 사제의 길이 아니라 남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 공급하며 가족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상의 정립이다.   그리고 그 개인이 일한 결과로 만든 재산(property)은 오직 그 개인의 것이며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개인 해방이자, 자유와 재산권 보장에 기반한 개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에서 사농공상적 사회를 해체하고 물건을 만드는 기업과 물건을 공급, 유통하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공무원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보다 기독교 신자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한국에서 프로테스탄트정신은 근대문명 정신의 기반이고 한국사회에도 개방화와 산업화시대를 관통했던 기본 정신인 것이다.   직업(일)이야말로 신의 소명   프로테스탄트는 일(toil)과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꿔 일이란 부역이 아니라 신의 소명(calling)으로 전환시켰다. 일하는 직업인이란 사제(司祭)의 길로 가지 못한 ‘열등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소명의 실천을 담당하는 존재란 인식은 근대를 여는 혁명이었다.   프로테스탄트는 일과 직업을 통해 신의 영광을 실현시켜야 했다. 그것은 일은 천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꿨고 일은 안하면서 지배를 통해 풍요를 즐기려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냈다.   종교적 삶이란 신앙생활과 사제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세속적인 일과 직업으로 실현되는 삶이라는 인식이 정착된 것이다. 그 결과 근대적 상공업층이 만들어지고 상공업층인 부르주아가 문명과 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프랭클린의 개념으로 보면 왕 혹은 공직자 앞에 서는 사람이 생겨났고,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소명을 실천하는 상공업자와 기업인이 된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내 개신교 칼뱅파를 의미하는 위그노(Huguenot)들은 1685년 이후 신앙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프랑스를 떠나 30만 명이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다른 지역으로 도피했다.   캘뱅파 위그노들은 실질을 숭상하며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술 장인을 상징했는데 그 계승은 프랑스가 아닌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및 미국으로 전해질수 밖에 없었다.   조선이 문명과 격리되었지만 대한민국 시대에 와서 근대문명이 꽃피운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toil)과 직업, 상업과 공업을 천시했던 중세유럽처럼 봉건적 조선시대에도 물건을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했다.   그런 일은 천한 자들이 하는 것이었다. 양반은 이중적 가치관을 갖고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청빈(淸貧)을 자랑하면서도 농민이 만든 생산물을 소비하는 사회였다. 유교윤리에 따라 입신양명적 씨족 및 가문(家門)사회에 고착되었고 과거급제로 신분 상승을 도모하던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 프로테스탄트는 한국 사회에서 권력과 계급, 공직이 존중되던 사농공상의 신분격차를 종결시키고 상업, 사업, 제조업이 의미를 갖게 만들었다. 특히, 개인의 성공이란 더 이상 계급, 신분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능력이 기준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   물건을 만들든지, 장사를 하든지, 무역을 하든지 아니면 남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이 성공하는 근대를 열게 된 것이고 그것이 한국 근대 산업화시대에 펼쳐진 개신교회와 개신교정신의 본질이다.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는 부(富)와 재산에 대한 인식도 바꿨다.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결과로 남게 된 재산 및 기부의 양은 곧 각 개인의 삶의 성적표가 된 것이다.   근면한 삶과 금욕적 생활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였고 그 결과는 재산이었다. 게으르고 생산하지 않으면서 남에 의존하거나 흥청망청 쓴 사람에게 재산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성실과 절약의 결과물인 재산이 곧 소명을 잘 실천한 상징으로 변한 것이다. 막스 베버는 이것을 자본주의정신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화폐는 삶과 일의 효율성에 대한 측정 기준이었다. 하나님의 삶을 가장 잘 구현한 사람은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로부터 선택을 많이 받는 것이다.   커피점을 하든, 만두집을 하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이 찾고, 선택하여 부자가 되었다면 그가 하나님의 뜻을 더 구현한 것이고, 천국에 가까운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특권계급과 그들의 게으름은 미덕이었지만 프로테스탄트에게 그것은 타락이었다.   합의와 계약에 의한 교환중심 사회가 민주주의   마지막으로 개인과 자유에 대한 보장으로부터 만들어진 근대 시민(citizen)을 그들의 합의와 교환관계 외에는 그들을 강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사회 성격이 ‘권력적 지배중심 사회’냐, ‘합의적 교환중심 사회’냐 하는 것은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가장 명확한 기준이다.   힘과 무력, 권력과 계급신분 및 허구적 인식 체계를 해체시키고 오직 합의와 계약에 의한 교환관계로만 개인관계가 만들어지는 사회가 곧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원하는 것은 지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합의에 따른 교환으로만 얻도록 하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도 하나님의 창조물인 개인을 지배할 수 없고, 오직 그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만 개인은 구속된다는 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정신이다.   그 결과로 권력과 정부행위란 구성원들의 합의사항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고, 위임된 영역에 대한 대리행사일 때만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자유의 주체인 개인이 합의하고, 위임된 범위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된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 상공업자들의 협의체인 길드(Gild)와 상공업 중심의 신앙공동체인 교회(Church)의 운영원리가 곧 민주주의적 공동체 운영의 토대가 되었다.   개신 교회와 길드의 운영원리가 정치적 운영원리로 확장된 개념이 민주주의로 발전된 것이다. 직업중심적 상공업자들의 길드(협회)운영과 지역중심적 신앙인들의 교회운영은 서구 유럽민주주의의 중요한 원형(prototype)이자 민주주의 경험이 되었고 그것이 확산된 것이 바로 국가적 차원의 민주주의이다.   예를 들면, 자유로운 개인이 신앙생활을 함께 하고자 하는 다른 개인들과 각자의 재산을 조금씩 출연해 교회를 만들고, 목회를 이끌 지도자인 목사를 모셔오거나 선출하고, 장로 중심으로 대의원(의회) 조직을 만들어 교회 및 교회재산 운용, 그리고 목회자에 대한 평가와 교체 등을 진행시켜온 것이 민주주의의 원형이다.   그 결과로, 지금도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을 가진 나라들만이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유럽국가들이라도 가톨릭적 기반의 나라들의 민주주의 수준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고 그런 민주적 방식은 프로테스탄트를 제외한 다른 종교 공동체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도 예외가 아니다. 아시아에서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을 가졌기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민주주의적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의 근대와 민주주의는 바로 1919년 3·1운동에서 만들어졌고, 나아가 임시정부(1919)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1948)로 결실을 이룬 것이다.   3·1운동은 2%밖에 되지 않던 기독교인이 중심이었으며 3·1선언문을 발표한 민족지도자의 절반을 기독교인들이 차지했고 일제에 의한 체포자의 25%가 기독교인들이었다. 자유에 기반한 공동체의 형성과 공동체 운영원리인 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빨리 뿌리내리게 된 것에는 프로테스탄트와 교회적 기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한국 민주주의는 기독교적 자유를 지키려는 분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지켜지고 발전된 것이고 평안도, 황해도 및 함경도의 기독교인들까지 월남해 끝까지 지켜낸 결과이기도 하다.   평안도와 황해도 등의 장대현교회, 산정현교회, 창동교회 등 기독교가 함께 만들고 지킨 나라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회복해야 할 프로테스탄트 정신   한국의 개신교는 종교혁명 500년을 기념하면서, 한국 문명사를 개척하고 세계적 모델국가를 만드는 주역이었던 개신교 13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어느덧 우리가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본질의 구현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은지를 검토하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 근대문명을 개척해온 프로테스탄트는 어느덧 교회중심주의와 교회 내에 계급을 만들고 있다.   1517년 정신과 달리 대형교회니 소형교회니 하면서 교회 크기를 중요시하고, 신도 숫자로 등급이 되고 있다. 장로, 권사, 집사 등 직분 그 자체가 계급(신분)이 되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수준과 헌금 액수가 우열을 가르는 요소가 되어 있다. 등급을 만들고 더 높은 등급이 천국에 더 가깝다는 식의 사고는 면죄부만큼이나 1517년 정신에 정면으로 반한다.   프로테스탄트는 교회 확장 중심적 신앙 활동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교회는 신앙인의 삶과 직업 및 사회 활동을 돕는 것이어야지, ‘교회 키우기’에 목적이 둬져서는 안 된다.   교회 확장 자체가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오직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구현하자는 소명 실천을 돕는 데 치중해야 한다. 1517년 이전 대형 성당을 만들자는 것과 지금 교회를 키우는 것에 근본적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최고 문명국가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정신이다. 개신교 500년이 만든 변화의 본질은 바로 세상에 뛰어들어 소명적 직업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실현시켜나가는 데 있다.   교회중심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사회에서 펼쳐내는 구체적 삶과 실천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 결과로 대한민국을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구현된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 프로테스탄트정신일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는 교회중심에서 사회에서의 신앙실천 중심으로, 크기와 직위중심에서 하나님 뜻의 실천이라는 활동중심으로, 마지막으로는 성경 해석보다 성경적 삶의 구현으로 나아가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500주년을 맞는 4만 교회와 960만 프로테스탄트의 소명이다.   특히, 오늘 대한민국이 남다른 문명 주도의 길을 가다말고, 길을 잃고 혼란으로 빠져버린 것도 가장 크게는 중심을 잡아야 할 개신교가 프로테스탄트정신과 교회 역할을 구현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는 무엇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가장 빛나게 만들어야 한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잃는 것은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길 잃음’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또 종교자유조차 없는 전체주의 북한과 중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모델을 보고 따라왔던 개발도상국 및 신생독립국 모두의 ‘길 잃음’이 될 것이기도 하다.   ---------출처: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683
2017-10-11 17:59:1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