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죄성이 강한지... 초심, 가족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자꾸 잊습니다. 그래서 큰 고난 겪었을 때를 매일 아침마다 의도적으로 회상합니다. 그리곤 겨우 말씀 곁으로 옵니다. 순종적인 편인 저의 첫째애가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2017-06-20 09:58:31 | 목영주
2010년 5월에 목사님께서 교회 홈페이지에 남기신 글입니다.
만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7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하게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 또한
더 이상 간과해서도 안될 것 같습니다.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명확한 준거 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목사님의 목회 철학과 방침이 한결같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가 참된 '신약교회'를 추구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우리 교회의 당면 문제(2010년 5월 4일)
요즘 교회가 확장되면서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이끌고가는 목자로서 저는 여러 사람이 아무런 여과 장치도 없이 우리 교회에 마음대로 들어와 활보하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올 때에는 적어도 우리 교회가 어떤 것을 믿는지 잘 확인 하시기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이기에 100%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굵직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이 있으면 우리 교회의 멤버가 되거나 자주 방문하는 경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교회 홈페이지에 교리에 관련된 글을 쓰기 원하거나 교회 멤버가 되기 원하시면 먼저 목사나 집사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설교와 말씀' 부분에 있는 '우리의 믿음'에 관한 설교 자료 등을 잘 살펴본 뒤에 신중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후 300년경에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 종교가 되었을 때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느니까 좋아서 무조건 이들을 수용하고 이들의 이교도 신앙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발전/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둔 채 우리 사랑침례교회는 단순히 '사람의 증가'가 아니라 '바른 사람의 증가'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밝힙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에 좋은 사람이 많아야 더 좋은 사람이 생깁니다, 목사님"
맞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또 좋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옵니다.
합당한 사람의 첫 번째 단추는 바른 믿음입니다. 그것은 바른 교리입니다.
사랑 이전에 믿음의 진리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왔다가도 견디지 못하고 나갑니다.
오늘 아침에는 여러 교회에서 목사와 화합을 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한 분에게 우리 교회에 오지 마시라고 직접 통보했습니다.
이것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자의 최소한도의 경고 조치입니다.
이 교회에 올 때에는 목사와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협력해서 공통의 왕관을 하나님께 받으리라는 심정을 가지고 와서 섬겨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섬기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도 괴롭고 남들도 괴롭게 만듭니다.
자기의 믿음을 이 교회에서 주장하려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 '소심하고 무기력한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성경에 근거를 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처음부터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을 어기고 우리와 다른 것을 가르치거나 알리려 하면 성경적인 제재를 취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소개의 믿음 진술문 등을 잘 살펴본 뒤 믿는 바가 같다고 판단이 되면 이 교회에 와서 교제를 나누고 정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맞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맞는 데 가서 믿음 생활 할 것을 권면합니다.
아니면 틀린 것이 있을 경우 여기에 와서 고치겠다고 작정을 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런 부드러운 맘으로 와야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이 짧은 세상에서 같은 것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도 힘든데 처음부터 다른 것을 가지고 와서 목사와 성도들을 괴롭히면 얼마나 힘듭니까?
또 이왕 같은 배를 탔으면 선장과 함께 같은 생각을 품는 것이 믿음 생활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믿음도 기쁨도 자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바라건대 우리 교회는 바른 교리 안에서 사랑을 베푸는 좋은 교회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여러 사람이 방문하는 것을 보면서 우려가 되어 목자의 심정으로 한두 자 적었습니다.
교회에 사람이 느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저를 포함해서 성도들이 말씀으로 바뀌고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형제/자매님들이 저와 함께 매진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패스터 정
2017-06-20 09:42:23 | 정진철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간증입니다.
주님과 함께 썼다는 말이 마음에 닿습니다.
자매님의 수고로 감동을 함께 누리게 되니 감사 드려요.
2017-06-20 08:50:04 | 이수영
2017년 6월 18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BpZAlo99B2I
2017-06-20 00:11:37 | 관리자
어제 두 분 형제님들의 은혜로운 말씀들로 많은 위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담은 귀한 찬송을 들으며, 그 가사를 생각하니 큰 감격이 됩니다.
기회를 만들어서 성도님들과 함께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침례교회를 강건히 붙들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2017-06-19 21:45:29 | 장용철
감동을 주는 찬송가 속에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감사하며 주님위해 사는 분들의
이야기가 꼭 들어있네요.
위의 글을 읽으며 오광일형제님 어제 해 주신 말씀 생각났는데 이 찬송 많이 부르며 준비하셨군요.
결국 모든 문제와 아픔은 주님에 맡기고 기도해야 하는데 생활속에 적용이 잘 안되네요.
2017-06-19 10:50:03 | 김혜순
사진으로 뵈니까 더 반갑네요~
환영합니다.^^ 함께 사랑 침례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형제, 자매님이 되시길
기도할게요.
다시 한번 반갑고 환영합니다!
2017-06-19 02:42:31 | 오광일
두분이 참 많이 닮은신것 같네요^^ 보기 좋습니다.
함께 사랑 침례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형제, 자매님이 되시길
기도할게요.
다시 한번 반갑고 환영합니다!
2017-06-19 02:41:34 | 오광일
환영합니다.^^ 함께 사랑 침례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형제, 자매님이 되시길
기도할게요.
다시 한번 반갑고 환영합니다!
2017-06-19 02:40:57 | 오광일
너무도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한주간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찬양을 참으로 많이 불렀습니다.
다윗왕에게 찾아온 온갖 시련들,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과, 친구들의 배신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주관해오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자신의 모든 짐을 내어던져 드리는
믿음의 고백을 하며,
"그래 구원받은 의로운 자가 아무리 힘들어도 흔들리면 안되지!" 하며 스스로 주님 안에서
힘을 낸 모습이 상상이 되어지면서,,뜨거운 눈물이 나더라구요.
귀한 찬양 묵상 글 감사드립니다.~
참조, CTS에서 위 찬송시에 대한 동영상이 있어 링크합니다.
https://youtu.be/ExNX0FMuKAA
2017-06-18 23:19:47 | 오광일
명심하며 살게 3가지가 아니라 한가지라 다행이에요^^ 모든걸 맡기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복잡하고 힘든 이 땅에서의 삶...
엄청나신 하나님만 생각하겠습니다!
2017-06-18 22:58:04 | 목영주
395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작시자 : 죠셉 스크라이븐 Joseph M. Scriven,(1819-1886)
조셉 스크라이븐은 1819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더블린의 트리니트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을 나왔고 장래 유망한 젊은이였던 그의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와 약혼을 하고 멋진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결혼식 하루전날 그의 약혼녀는 강위로 난 다리 위를 말을 타고 그의 집으로 오다 그만 말에서 강으로 떨어져서 머리가 돌에 부딪혀 의식을 잃고 익사하고 맙니다. 그는 이 사고를 강 저편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이 일은 그가 폴리마우스 브레드런(Polymouth Breathren)이란 신앙 공동체에 깊이 위탁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조셉 스크라이븐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 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몸이 허약하여 훈련을 감당할 수 없는 관계로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주장하던 사람이었지만 이웃사람에게 그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었고 사랑하던 약혼녀가 목숨을 잃은 곳에서 살기가 힘들어 1845년 어머니를 고국에 남겨 놓은 채 아일랜드를 떠나게 됩니다. 과거를 잊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한 스크라이븐은 처음 방황했지만 이웃의 인도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가정교사 일을 보면서 틈나는 대로 고아와 가난한 과부들 병자들을 찾아다니며 돌보고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신앙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 아일랜드에 계신 어머니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 주셨던 어머니에게도 위로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걱정과 근심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만 의지하고 나아가겠노라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아서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라는 찬송시를 써서 멀리 떨어져 병환 가운데 있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이 찬송시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찬송시의 2절까지만 완성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캐서린 로체(Cathrine Roche)라는 여인을 만나 약혼을 합니다.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그의 약혼녀인 캐서린은 몸 전체를 물에 잠그는 침례를 받아야만 했는데 보리 걷이를 막 끝낸 계절이었기 때문에 날씨는 여전히 추웠습니다. 캐서린은 이미 몸이 아파서 쇠진 해 있는 상태에서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한기가 들고 아프기 시작해서 폐렴에 걸리게 되고 4개월 후에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죠셉 스크라이븐은 이렇게 상상하기 힘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독신으로 조그마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장소를 불문하고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은 그에게 과일이나 채소 찌꺼기를 던지기도 하고, 야유를 보내기도 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연행하게도 했지만, 그는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톱을 항상 들고 다니며 노약자들과 과부들을 위해 아무 돈도 받지 않고 장작을 잘라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재산과 옷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난한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의 고향인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 이미 오랜 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준 그의 모습은 남루해 보였습니다. 이러한 그를 보고 고향 사람들은 조롱과 조소를 보냅니다. 그래서 이 찬송시의 3절인 "세상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 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라는 구절이 쓰여지게 됩니다. "
우울증과 연약한 몸 그리고 가난한 삶을 짊어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며 세상 친구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았지만 그는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를 받게 되리라는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1876년 57세에 그는 Mrs. Porter와 결혼하여 함께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이 찬송시는 1869년 ‘Hymns and Other Verses’에 실려 처음 출판됐습니다. 생키(Ira D. Sankey)는 그의 저서 ‘My Life and Sacred Songs’에서 이 찬송시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크리븐이 병을 앓고 있을 때 한 이웃주민이 우연히 이 찬송시의 원고를 발견했습니다. 이 이웃은 찬송시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스크리븐에게 왜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스크리븐은 ‘특별한 슬픔의 때에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이 시를 썼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읽힐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또 다른 이웃이 ‘당신이 그 찬송시를 쓴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주님과 내가 같이 썼다’고 답했습니다.”
조셉 스크리븐의 삶을 보면 그가 쓴 찬송시의 내용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특히 "죄짐 맡은 우리 구주"라는 찬송에서는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시험, 괴로움"이란 말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아마 그가 겪은 삶의 질곡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곡자 : 챨스 크로쟈트 콘버스 Charles C. Converse(1832-1918)
미국 메사츄세츠주 태생의 음악가이며 법률가로 많은 찬송 곡을 작곡했습니다.
이제 가사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1)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all our sins and griefs to bear!
우리의 죄들과 근심들을 져주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지요!
What a privilege to carry everything to God in prayer!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니 얼마나 큰 특권인지요!
O what peace we often forfeit, O what needless pain we bear,
얼마나 자주 우리는 평안을 몰수당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지고 있는지!
All because we do not carry everything to God in prayer.
이것은 모두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놓지 않기 때문이다.
(2) Have we trials and temptations? Is there trouble anywhere?
시련과 유혹 가운데 있습니까? 어느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가?
We should never be discouraged; take it to the Lord in prayer.
우린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기도로 주님께 가져갑시다.
Can we find a friend so faithful who will all our sorrows share?
우리는 모든 애통함을 나눌 신실한 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Jesus knows our every weakness; take it to the Lord in prayer.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오니, 기도드려 주님께 아룁시다.
(3) Are we weak and heavy laden, cumbered with a load of care?
우리는 연약하고 많은 근심 가운데 큰 짐을 지고 있습니까?
Precious Savior, still our refuge, take it to the Lord in prayer.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귀한 주님께 기도로 아룁시다.
Do your friends despise, forsake you? 당신의 친구들이 그대를 멸시하고 무시합니까? Take it to the Lord in prayer! 주님께로 가져갑시다!
In His arms He'll take and shield you; you will find a solace there.
주님께서 당신을 그분의 팔에 품고 보호하시며 당신은 거기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찬양 묵상
2절과 3절에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외로이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암담한 모습이 나타나는데 상대적으로 1절에서 그 질고를 떠맡으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드러나게 해 줍니다.
시인은 우리가 구하지 않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약 4:2)
시인은 우리가 주께 아뢰어야만 하는 이유로 연약함을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뢸 때 약함을 아시고 피난처가 되시며 진실한 친구가 되어 주는 분이십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연약하나 주님을 의지하며 우리의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나감으로 주께 내어놓읍시다. 우리의 문제는 또한 주님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귀한 시도 중병을 앓는 어머니를 위해 쓰여진 것처럼 우리는 주님 곁에 갈 때까지 다양한 많은 문제들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우리 주님께서는 문제나 어려움만 바라보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가져와 맡기기를 원하시니 문제를 통하여 모든 일의 해결자이신 주님을 더욱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도 귀한 형제님들을 통해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한 주도 주님과 긴밀하게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2017-06-18 22:36:42 | 남윤수
실제적이고도 바른 기준을 잘 설명?해 나간 좋은 책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지만, 읽는다고 다 성숙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이
입술의 말이 행동으로 증명이 되어야 제대로 된 인격이라 말 할 수 있지요.
아는 것이 힘이고, 그다음은 실천이고, 그 다음은 성숙된 인격이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하나를 알면, 그 하나를 실생활에 적용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자요.
2017-06-18 22:03:05 | 이수영
2017년 6월 18일 (주일 오전) : 오광일 형제
https://youtu.be/2mOw-TsfAkA
2017-06-18 14:58:18 | 관리자
2017년 6월 16일 (금요일 저녁)
http://youtu.be/KssnH00duMo
2017-06-18 13:18:19 | 관리자
♥그리스도인의 실전편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 만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 책속에 표현된 교회 안에 드러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글로 마주하니 첫 주제부터 모두가 교제의 시작에 말문을 떼기가 쉽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나눈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 에서는 권면 하는 자와 권면 받는 자의 말하는 태도에 대하여 많은 의견들과 경험들로 첫 시간을 다 사용할 만큼 대화가 치열하게 오갔는데요ㅎㅎ 결국은 우리가 솔직한 소통의 훈련을 통하여 권면하는 자도 온유와 지혜 가운데 소금으로 간맞추듯 은혜롭게 말하여야 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나눈 ‘그리스도인이 자란다는 것’에서 함께 살펴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우리들이기에 교회 안에서 사랑과 공의와 거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연합된 우리 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권면하는 자도 권면 받는 자도 말의 영적 분별과 감각을 충분히 사용하며 나를 내려놓는 겸손과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세우기 위한 선한 양심이 일할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은 각자가 나에게는 공의와 거룩을 먼저 적용하고 지체에겐 사랑을 먼저 적용한다면 조금은 우리 안에 상처과 갈등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미국에서 온 베이비 이든자매도 출국 전 자매뷔페 오찬에 함께 했었는데요^^
8개월 베이비라고 하기엔 무색할 만큼 어찌나 공격적인 먹성을 자랑하시던지...ㅎ 어린 아기를 보고 있자니 우리 모두가 앞으로 해야 할 교회의 모습과 어떻게 그것을 지켜나가야 할지... 어린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교회를 생각하며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목요자매모임이 좀 더 많은 세대가 함께 하며 더욱더 사랑침례교회의 내실을 단단히 다지며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지체들의 모임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 세대가 어우러져 여과없이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자매모임은 앞으로 탁상공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앞에 여실이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확인하며 한발 한발 우리가 약속한 믿음과 교회의 철학과 문화를 세워나가는데 사랑침례교회의 모태로서 역할과 모임이 되길 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매모임에 함께할 모든 연령대 자매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2017-06-17 23:49:40 | 장영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Part.1: Christian
【신앙생활】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
사람이 거짓말을 안 하고 살수 없다. 그 중에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그냥 거짓말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치병을 앓는 사람에게 아무 이상도 없다고 하면 그에게서 인생을 정리할 황금 같은 시간을 빼앗는 것이며,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귀중한 마지막 생명의 기회를 흘려보내게 만드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거짓말은 죄라고 했다. 거짓말의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해도 말이다. 남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거짓을 동원해서까지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신 사례는 없다. 아니, 아예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였으나 (딛1:2)”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있다.
아무튼, 하나님의 속성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라면 인간의 원형도 같은 성품이며, 결국 거짓말은 죄의 습관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죄의 육신을 벗어나기까지 거짓말을 할 것이고, 최대한 줄이는 것밖에는 완전한 해결책이 없을 것이다.
사탕발림, 립 서비스, 접대용 멘트, 공허한 칭찬, 의무적인 덕담, 그리고 듣는 이 보다는 자기에게 만족이 되는 소위 ‘은혜의’ 말들을 좀 아끼면 좋겠다. 교인들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그런 말들과 문자와 메시지들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만남이 피로하고 허무하다. 칼처럼 자르는 것이 인간의 미덕이라는 뜻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가식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크리스천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는 그날까지....?”
거짓말 같지만 이런 날은 반드시 온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가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되는 그날, 우리가 고대하는 그날이다. 이런 염원이 현실이 되는 날을 바라보면서, 마음만은 하늘에 속한 사람처럼 입술의 공허한 열매를 거두지 않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교회 일에 지친 교인들
교회는 누군가 일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일을 안 하고 편하게 다니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마당에 이런 봉사자들의 헌신과 노력은 박수를 쳐줄 만하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분명하다. 자기재능을 바치고 무언가 하지 않으면 교회가 운영될 수 없고, 모일 이유도 없다. 문제는 그 일이 어떤 일이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로 분주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교인들은 자기가 아니면 안 되고, 그만두려 해도 놓아주지 않는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나 아니면 안 돌아가는데 내가 정 시간과 역량이 안 되면 그 일은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없어도 다 돌아간다. 어떤 때는 더 나아지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목사들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설교하기도 한다.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성경이 틀렸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개역)”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4:2,흠정역)”
신실함은 반드시 어떤 일을 안 해도 드러날 수 있는 덕목이지만 충성이라고 하면 뭔가 겉으로 일을 해서 보여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다.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과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무조건적 순종의 의미까지 담겨 있다.
교회봉사···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성도에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악용해 편하게만 살려 하면 안 되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봉사해야 한다. 이제 헌신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그저 출석만 하는 성도는 일손을 보태고,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과감히 내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해소된다. 일하지 않는 성도들의 참여가 어쩌면 더 시급한 문제다.
하나님은 일의 양을 보시는 분이 아니다. 주일은 쉬는 날로 정하고, 일부는 돌아가면서 봉사하되 나머지는 교제와 나눔을 가질 수 있는 재충전의 날로 삼아야 한다. 이 모두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머리에 박힌 어떤 개념을 좀 털어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도인이 자란다는 것
“오직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 그분께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후3:18)”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으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더 성장해야 한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위치가 생기고 한다는 것은 믿음 생활이 오래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성장과 성숙은 더디기만 하다. 지식은 많아지지만 그 무기를 별로 좋은 일에 쓰지 않는다. 남의 말은 더 많아지고, 아는 만큼 용납은 더 못한다. 이웃을 분석하기는 잘하지만 그의 필요에는 관심이 없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성장 했는지 돌아볼 때 부끄러운 경우가 많다.
말에서 성숙한 사람이 진짜 성숙한 사람이다. 입에는 온갖 축복과 격려와 칭찬이 붙어 있는 듯해도 뒤로는 갖은 험담과 자기 추리로 재해석한 이웃 이야기들로 가득한 사람이 있다. 물론 뒷말도 그를 위하는 것처럼 긍정과 염려의 말로 가득하지만 내용에는 자기 할말이 다 들어 있다. 이런 것을 성숙의 열매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장과 성숙은 일평생 이루는 것이지만, 교회의 지체로서 충분한 기능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이루어야 하지 않나 싶다.
(에베소서 4장)
11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13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14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6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이라고 하면 엄청난 거룩함과 대단한 지식이나 업적을 얼른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마음이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목회자나 성도나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많고 서운한 일도 많다.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정말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지금 누굴 위해 살고, 누굴 위해 일하는 것인지 돌아보면 의외로 답이 간단해질 때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연합하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하나님과 계산하기 위해 아껴두며 애써 모은 열매를 쏟아버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에만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모두 포커스아웃 된다. 그분의 영광은 너무나 눈부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이란 색안경을 벗고 그 영광의 빛을 바라보며 똑바로 걷는 사람이다. 이 성숙의 길에서 다소 지친 우리지만 다시금기운을 내서 남은 여정을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매주 목요일 10시 50분 11층 식당에서 만나요!!!
2017-06-17 23:47:15 | 장영희
자매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언제 우리 둘째도 하나님앞에 저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2017-06-16 09:35:13 | 김야곱
안녕하세요?
오늘(6월 15일 목요일) 오전 11경 인천 검단에서 오시는 김형준 형제님(김애자 자매님)의 부친이신
김동백 어르신께서 68세를 일기로 별세하셨습니다.
장례식장은 옥천성모병원 장례식장(043-730-7444) 202호실입니다.
*장례식장 주소 :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성왕로1195
*연락처 : 김형준 형제님(010-4407-1617) / 김애자 자매님(010-7244-0603)
*발인 : 6월 17일(토요일)
애경사 위원장 주덕수 형제님(010-7337-6337)께서 내일(6/16) 오전에 장례식장에 다녀오실 예정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안을 기원하며 로마서 12장 10, 15절 말씀을 드립니다.
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15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
2017-06-15 17:28:57 | 관리자
영원한 진리!
세상의 진리라고 하는 인스턴트 논리들에서 벗어나
영원한 진리, 참 빛되신 주 예수님을 알게 하심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2017-06-15 11:39:21 | 태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