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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라(Make Them Learn) by Dr. Tom Vogel   모세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위대한 삶을 산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어떤 사람도 그 이전에 보거나 행하지 못했던,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못했던 일들을 보았고, 또 그러한 일들을 행했다.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철학이 있다.  그들은 위대한 일들을 믿는다.  그들이 그것을 믿기에, 그들은 그것을 이룬다. 모세의 위대한 철학 중 하나가 출애굽기 18장 16절에서 발견된다.  "내가 …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규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I do make them know the statutes of God, and his laws.)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하게 하나이다"(make)이다.  모세는 자신의 임무가 백성들에게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거나 그분의 진리를 알려 주는 것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반드시 그것들을 배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게 만든다.  그는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교실로 들어선다.  사실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교사는 반드시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게 만들어야 한다.  그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메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와 윌리엄 클락(William Clark)은 대륙횡단을 그저 한 번 시도해 본 것이 아니었다.  미조리 강에 노를 담그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그 위험한 항해를 끝마치고 다시 돌아오든지 아니면 도중에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한 번 해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해서 어떤 변명을 미리 준비해 놓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계획에 대한 일말의 주저함이나 후회도 없었다.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게 만든다.  그들은 높은 기준을 세우고는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를 매 순간 확인한다.  형편없는 교사는 주어진 커리큘럼을 끝마치는데 만족한다.  그들은 정해진 수업을 진행하지만, 학생들이 배운 진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일 학생들이 배우는데 실패했다면, 그것은 그 교사가 가르치는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도대체 왜 자기 자녀가 그 과목에서 낙제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부모가 학교에 달려와서는, 모두가 그 아이를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제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는 선생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교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아이가 배우도록" 만드는데 그가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학교에서 하는 일이다.(저자는 미국 인디애나 주의 해몬드 시에 위치한 한 중학교(Hammond Baptist Junior High School)의 교장이다. - 역자 註)   우리는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도록 만든다. 학교 교육의 참된 목적은 가르침을 받는 이들로 하여금 진리를 듣고 그것을 자신들의 삶의 일부로 만들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교사들은 학생들이 시험에 합격하면 그들이 진리를 습득했다고 간주한다.  학생들 또한 그저 시험에만 통과하면 자신들이 뭔가를 배우고 익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좋은 학점을 받았을 뿐이다. 젊은이들이 배우도록 이끄는 것은 교사가 매일 자신의 인격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강력한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것에 의해서, 그리고 그 교사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읽기를 미처 배우지 못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다음 학년으로 진급시키는 것은 죄악이며 범죄행위이다.  그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교사의 의무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저 하나의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신성한 의무이다.  그리고 그 의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단순히 학생들에게 삶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교실에서 무엇을 배운 후에는 그 삶이 변한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놓여진 하나의 위대한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는 것"이다.
2009-05-02 09:50:52 | 관리자
세상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도 이것은 모든 크리스천의 공통된 문제일 것입니다. 모두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들고 전도 사역만 해야 하나, 아니면 세상에서 직업을 갖고 거기 묻혀 살면서 조금씩 시간을 내어 주의 일을 해야 하나, 이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저 역시 아직 여기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모두 전자처럼 행할 수도 없고 후자처럼 행할 수도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예레미야, 에스겔 등과 같은 전임 대언자가 있었고 다니엘과 이사야 등과 같이 세상 일을 하면서 주의 대언자로 일한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는 양쪽을 다 체험한 것 같습니다. 아마 요셉도 후자인 것 같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바르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극단적인 사람들은 대개 세상의 것에 전혀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학교도 검정 고시로 마치고 직업도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로 하고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바친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합당한 것일까요? 성경 학교(특히 미국의)가 이 세상 최고의 학교로 알고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더럽고 추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렇게 가르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이 경우 성도들은 알게 모르게 자아 도취와 교만에 빠져 자기 교회 외에는 바른 교회가 없고 자기 목사만 바르고 자기만 바르게 신앙 생활을 한다고 믿게(세뇌 당하게) 됩니다. 또 다른 극단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모든 일에서 뛰어나게 잘 해야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의 일류만을 고집하고 거기로 자녀를 집어넣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 경우를 보니 대개 아이들이 마귀와 세상에 넘어가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디. 미국에서 10년간 이민 생활도 해 보고 국내에서 이런 저런 사례들을 보면서 과연 어느 것이 바른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을(혹은 여러분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싶습니까?   저는 균형 잡힌 크리스천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모두 전도자나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 전임 사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의 대부부은 이 세상에서 직업을 갖고 세상과 싸우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이런 것을 전혀 모르므로(고고하게 교회 안에 갇혀 있으므로) 성도들의 고통에 대해 피상적인 대답만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금까지 주님으로부터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28세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천국 다음으로 좋다는 미국의 좋은 것을 10년 이상 누렸습니다. 이것은 다 좋은 아내를 얻은 덕이었습니다. 좋다는 목사들을 만나고 교회들도 방문해 보았습니다. 또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또 아내 덕에 세 딸을 낳아 잘 키웠고 큰 아이와 둘째 아이는 소위 명문 대학이라는 Johns Hopkins 대학을 졸업했고 또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강의를 잘 하여 교육상도 수상하고 국내 학회에서는 그 해의 학술상도 받고 연구비도 많이 있어서 여러 가지 연구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학문적으로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 될 수 있는 직책도 맡았습니다(관련 기사 참조). 그런데도 마음에는 전적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괴로움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것에서 앞서도 고통이 되고 뒤쳐져도 고통이 됩니다. 이 세상 일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 허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도서의 말씀이 정말 진리입니다(전1:2-4).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에서 무슨 유익을 얻으리요?  한 세대는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요즘 보름째 제 아버지가 입원해서 매일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보고 제 막내와 그 사이의 저를 보며 "한 세대는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 세상의 것에서 성공을 했지만 결국 솔로몬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전12:12-14).   내 아들아, 또한 이 말씀들로 권고를 받으라.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육체를 피곤하게 하느니라. 우리가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은밀한 일과 더불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모든 일을 심판하시리라.   두서없이 글을 썼습니다. 오늘 글은 두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크리스천들도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 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근본주의 교회에서 이런 문제로 괴로워하는 분들에게 저의 사례가 조금이라도 이런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일반 교회에서는 너무나 세상의 성공만을 외치고 그쪽으로 사람을 몰고 갑니다.  이 경우 역시 저의 사례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성공만 좇으면 주님을 잃습니다. 거의 100% 확실합니다.    균형잡힌 크리스천이 됩시다. 모두 전임 사역자가 될 수 없음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노력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칫 이것만 강조하면 주님 없는 성공이 옵니다. 부모와 목사가 이것을 잘 파악해서 아이들을 잘 지도해야 합니다. 경쟁력 없는 크리스천을 만드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교회의 사람이나 목사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열정적인 크리스천이 되어 세상을 이기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세상의 성공은 우리에게 영혼의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해 보니 그렇습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주님 안에서 이루기 위해 정진하기 바랍니다.
2009-05-02 09:43:55 | 관리자
절대 포기하지 마라 2       오늘 아침에 전주의 김재근 형제가 나를 위로하려고 잭 하일스 목사님의 시 Don't Quit(절대 포기하지 마라)을 보내왔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그 형제님과 성경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힘을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2        잭 하일스   당신의 잔에 쑥물이 가득 차고 그 쑥물이 담즙으로 변했어도 걷다가 걸려서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다가 곧 넘어져도 높은 산의 정상에 올랐으나 아직도 거칠고 험준한 알프스가 치솟아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부러졌고 그 길을 걷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도 식탁 위의 가장 좋은 것이 슬픔의 빵으로 바뀌었어도 험난한 바다를 건너 왔는데 마라의 쓰디 쓴 물이 여전히 앞에 놓여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사나운 독수리가 내려와 안락한 보금자리를 어지럽혀도 달콤한 열매가 엉겅퀴로 바뀌고 가시덩굴이 당신의 쉼을 방해하여도 심연의 깊음만이 소리치고 실패만이 최선으로 보일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주님께서 식탁을 치우시고 기름진 것들을 다 제거하셨어도 최고의 포도즙을 다 빼앗기고 빈 통만 남았어도 한때 뽐내면 앉았던 그 화려한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건강은 병약함으로 느껴지고 약에서조차 해로움을 맛보게 되어도 고독하고만 사귐을 나누며 슬픔만이 당신의 행복이 되어도 당신의 온기가 점점 식어가며 태양 빛은 구름 속에 가려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손실만이 유일한 승리고 부족함만이 당신에게 이득이 되어도 나쁜 일들이 결코 혼자서 오지 않고 괴로운 일들이 짐짝처럼 떼를 지어 몰려와도 유혹하는 자의 거센 공격으로 당신의 혼이 상하고 지쳐서 초라해 보이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잘 행하다가 지치지 말라. 정하신 때가 되면 거둘 것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헛되이 달리지 않는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야 만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2009-05-02 09:42:40 | 관리자
절대 포기하지 마라 1      웨이트 부인   지난 해에 Mrs. Waite이 내 생일에 카드와 함께 시를 보내 주었습니다. 시의 제목은 Don't Quit(절대 포기하지 마라)이었습니다. 패배 속에 살던 내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즘 나의 삶이 또 다시 수렁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사무엘기를 통해 사울이 '다른 마음'을 받아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처럼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성도들을 위해 이 글을 드립니다. 우리 같이 힘을 내 봅시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1          가끔씩 그러하듯 일들이 잘못되어 갈 때 힘겹게 걷고 있는 길이 늘 오르막처럼 보일 때 가진 돈은 부족하고 갚을 돈은 늘어날 때 웃고 싶지만 한숨만 나올 때 염려가 당신을 짓누를 때 필요하다면 쉬어라.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마라.   삶이란 뒤틀리고 뒤집히는 것들로 이상하게 얽혀 있다. 모두가 가끔씩 배우고 있듯이 수많은 실패들도 돌고 돌므로 끝까지 실패를 붙잡고 늘어졌으면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걸음이 느리게 보이더라도 한 번 더 시도하면 성공할지도 모른다.   성공이란 실패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의심의 구름 속의 은빛 조각처럼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멀리 있어 보이지만 훨씬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크게 얻어맞을 때에도 싸움은 계속해라. 일들이 최악일 때야말로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때이다.  
2009-05-02 09:41:41 | 관리자
무엇에 미쳤는가?   시카고 무디 교회의 목회자며 저명한 라디오 설교자였던 폴 레이더는 평소에 이 예화를 종종 듣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소년이 길가의 담장에 얼굴을 대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그 아이는 때때로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그 사람은 ‘도데체 무슨 일인데 저 애가 저렇게 난리지?혹시 저 애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그 애는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야구 경기를 그 구멍을 통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애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를 칠 때마다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행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던 그 애는 행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면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미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는 분입니다!-[세상과 충돌하라]/ A.W 토저   다음의 주소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vid=34984
2009-05-01 18:07:19 | 관리자
인생은 짧고 죄는 현실이기에 인생은 허비할 것이 못되노라. 사람의 연수는 나뭇잎의 떨어지는 것, 떨어지는 빗방울이기에 허비하며 소일하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이라. 이 세상에선 오직 진실해야 할 뿐이다. 많잖은 인생, 오직 한 번이 있을 뿐. 그렇다. 오직 한 번, 오직 한 번뿐이라. 그 한 인생, 그 좁은 막간, 아, 얼마나 성스러워야 할까! 축복된 수고로 채워져야 할 나날들, 시간 시간은 새로운 생산을 낳아야 할 뿐이라! (호레이셔스 보나르)
2009-05-01 18:06:29 | 관리자
크리스천의 인격과 세상살이 그리고 하나님   한번은 싱가포르 항공의 비행기 좌석을 구하지 못해 홍콩에서발이 묶인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생길지도 모를 취소 표를 기다리며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내 옆에는 여행 중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도 나와 같은 처지인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항공사 직원에게 다가갔습니다.두 사람 사이에 상당히 거친 말들이 오가는 듯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의 손에 탑승권이 들려 있었습니다.“비결을 말씀드리죠. 나는 저곳으로 가서 내가 아는 모든 욕설을 늘어놓으며 다시는 당신네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당장 비행기 좌석을 내놓으라고 우겼더니 탑승권을 주더군요.”그는 탑승권을 과시했습니다. “선생님도 가셔서 똑같이 하세요.”물론 나도 그 항공사 직원에게 갔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처럼 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정말 치사하고 야비하게 굴면 탑승권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무시하고 욕설을해대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좀 도와주시겠어요?”결론은 그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홍콩에서 하루 반을 더 보냈습니다. 이 사건에서 얻은 교훈은 인격이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성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성숙한 인격을 가지려는 이유는 득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고 그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편리하게 풀리건 말건 우리는 성경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 「영적 성장의 길」/ 고든 맥도날드   이 땅에서는 인격의 변화가 예수 믿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갚이 묵상해 보기 바랍니다.   다음을 보기 바랍니다.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id=37687&mode=content_view&gotopage=&txtprogram=&bit=medium
2009-05-01 18:05:42 | 관리자
요즘 어떤 책들을 보고 있습니까? 성경 이 외의 책들 말입니다. 혹시 '나는 성경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성경대로 믿는다는 사람들의 한계가 이런 데서 드러나기 쉽습니다. 성경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격 성장과 세상의 이해, 사람의 죄성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경건 서적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글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를 보면 그를 알 수 있다.3년 후, 10년 후 어떤 사람이 될지는 어떤 책을 읽느냐라는 중요한 요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 - 마더 말러 앞으로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읽는 책에 의해 결정됩니다. 본 사이트에 접속하는 많은 분들이 '나는 보수 신앙인이다. 나는 근본주의자다'라고 자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책들을 읽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요, 완고한 사람 - 바리새인 - 이 됩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간직하려면 책을 많이 보기 바랍니다. 주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아니하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사회학자 벤저민 바버는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고 말합니다. 독서와 끝없는 학습, 이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강조되어온 성공의 첩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크리스천이 되는 첩경 역시 좋은 책을 읽는 데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사 홈페이지에 가서 토저, 김남준 등이 지은 책들을 보기 바랍니다. 또 부흥과 개혁사의 책들을 보기 바랍니다. 주로 장로교 저자들의 글이라 교리 면에서 조금 다른 부분이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 생활을 위해서 읽기 바랍니다. 이제는 조금 다른 부분도 이해하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 인격이 바르게 수양되지 않아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물론 지금도 어려움이 많지만 바르게 가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과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비례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종종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속의 글자를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글자에 갇히면 안 됩니다. '나는 킹제임스 성경을 본다'고 자랑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의 글자에 갇혀서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면 완고한 고립주의자가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 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 애를 쓰기 바랍니다. 토저는 이것을 '불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날이 갈 수록 새로워지는 창조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05-01 17:45:55 | 관리자
올해 저는 우리나라 나이로 50이 되었습니다. 23세에 유학갈 때는 지금의 내 모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감사할 것을 많이 생각하고 아침마다 차를 타고 오면서 감사 찬송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 중에 그의 심경을 가장 잘 그린 것은 고린도후서입니다. 그가 사랑했던 성도들이 오히려 그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사도는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고린도후서를 적어 나갔습니다. 요즘 저도 이래 저래 저를 잘 아는 분들로부터 악성 편지와 댓글 그리고 비방의 글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속에서 불이나고 화가 치밀어올랐을 텐데 요즘은 오히려 담담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면서 항상 사랑과 격려만 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철이 들면서 사도 바울의 심정을 미약하나나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보다 지혜로운 제 아내는 이미 그것을 터득하였지만 저는 이런 것에서 좀 늦습니다. 그래도 일단 깨달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얼마나 더 살겠기에 남을 욕하고 또 욕을 먹었다고 흥분하고 열을 내며 지내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공과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가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맡은 위치에서 양심을 속이지 않으면서 마음 속의 부담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악한 글이 와도 오히려 그 글을 보낸 분을 위해 기도하고 저의 잘못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일에서 제게 인내의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런 저런 반대가 있을 때 한 번 고린도후서 6장 말씀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도처럼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배반당하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주님의 은혜가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1 그런즉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2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3 이 사역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우리가 어떤 일에서도 실족거리를 주지 아니하며4 오직 모든 일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입증하되 많은 인내와 고난과 궁핍과 곤경과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소동과 수고와 깨어 있음과 금식 가운데서 그리하고6 순수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님과 거짓 없는 사랑과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과 오른손과 왼손에 든 의의 병기로 그리하며8 영예와 치욕으로 그리하고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으로 그리하였나니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며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며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다.11 오 고린도 사람들아,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려 있고 우리의 마음이 넓게 열려 있나니12 너희는 우리 안에서 좁혀지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속 중심에서 좁혀졌느니라.13 (내가 내 자녀에게 하듯 말하노니) 이제 너희도 같은 것을 보답하는 뜻으로 마음을 넓게 열라.  
2009-05-01 17:45:17 | 관리자
―사는 데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자신감이지요. 얼마 전에 키신저가 한국 왔을 때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났어요. 그 나이에 그 먼 여행을 다 다니고 사람들도 얼마나 많이 만나는지 일정이 빡빡한 것 같더라고요. 자신감 있고 부지런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나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봐야 해요. 그래서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인터뷰에서   대우 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 나온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어느 면에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72세의 노구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실패를 경한 사람 -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 - 이기에 존경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신뢰합니다.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고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갈보리 십자가가 먼저 있고 그 뒤에 왕관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내가 잘못하고 그것을 고난을 돌리면 어리석은 일이지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실패가 없을까요? 나도 한 때는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목회를 한다고 뛰어들었다가 큰 실패를 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깊이 생각해 보니까 인생의 깊이가 더 깊어졌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또 다시 뒤를 돌아다보게 되었고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보았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제가 목사가 어떤 사람이지 모르고 교회를 시작한 데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른 채 이론만으로 일을 하다 보니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도와 교회를 하겠다고 나선 형제/자매들에게는 정말로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알지 못하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요2:23-25). 주님 안에서 큰 뜻을 품으려는 젊은이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비록 이 일로 고통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와 제 아내에게는 이 일이 오히려 약이 되어 큰 반성과 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이제 터널을 빠져 나오려 하면서 뒤를 돌아다보면 우리 주님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입니다. 그분의 의도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방황하며 고뇌하는 동안 내 자신을 돌아보며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다보면 그것이 유익했지만 당하는 순간에는 전혀 유익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이집트에서 옥살이를 하면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일을 당하는 그 순간에 너무 기뻐서 울었을까요? 그 역시 나와 여러분 같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청나게 원망도 하고 힘들어 했을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원통함과 어려움을 소망으로 극복하고 하나님의 더 큰 뜻을 보게 되었지요.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갑자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또 거기로 들어가려는 나를 바로잡기 위해 그냥 적어 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진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일진대 내게 닥친 일들이 모두 우리의 복이 되리라고 믿으며 그분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안에서 자신감을 회복합시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2009-05-01 17:44:14 | 관리자
감사하고 싶을 때- 아침에      2008년 03월 08일 (토)  이번에 미국에 갔다 오면서 Jeem Reeves의 노래들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아는 노래들이 여럿 있었지만 요즘에는 더욱 더 노래들의 가사가 와서 닿습니다.  나는 음악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침에 차를 타고 직장에 가면서 매일 이 노래를 듣습니다. 감사하고 싶어서입니다. 특히 중간에 보면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가사가 나옵니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그렇더군요. 감사를 잊기 쉬운 세상에서 다시 하번 깊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영어 발음도 정확하니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We thank Thee   We thank Thee each morning for a newborn day where we may work the fields of new mown hay We thank Thee for the sunshine and the air that we breathe Oh Lord we thank Thee We thank Thee for the rivers that run all day we thank Thee for the little birds that sing away we thank Thee for the trees and the deep blue sea Oh Lord we thank Thee Oh yes we thank Thee Lord for every flower that blooms birds that sing, fish that swim and the light of the moon. We thank Thee every day as we kneel and pray that we were born with eyes to see these things. We thank Thee for the fields where the clovers grow we thank Thee for the pastures where the cattle may roam We thank Thee for Thy love so pure and free Oh Lord we thank Thee. Oh yes we thank Thee Lord for every flower that blooms birds that sing, fish that swim and the light of the moon. We thank Thee every day as we kneel and pray that we were born with eyes to see these things. We thank Thee for the fields where the clovers grow we thank Thee for the pastures where the cattle may roam We thank Thee for Thy love so pure and so free Oh Lord we thank Thee.  
2009-05-01 17:43:29 | 관리자
요즘 저는 크리스천의 아픔과 고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0이 되니까 이제 믿는 것이 무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어려움과 고남이 올 때 우리 주님이 함께함을 인식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제 56 편 ¶ 요낫엘렘르호김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믹담,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가드에서 붙잡은 때에 지은 시.1 오 하나님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 하고 날마다 싸우며 나를 학대하나이다.2 오 지극히 높으신 이여, 내 원수들이 날마다 나를 삼키려 하오니 나와 싸우는 자가 많나이다.3 내가 무서워할 때에 주를 신뢰하리이다.4 하나님 안에서 내가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라.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은즉 육체가 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5 그들이 날마다 내 말들을 왜곡하나니 악을 행하려는 그들의 모든 생각이 나를 대적하나이다.6 그들이 내 혼을 기다리며 함께 모여 자기를 숨기고 내 발걸음을 지켜보나이다.7 그들이 불법을 써서 피하겠나이까? 오 하나님이여, 주의 분노로 그 백성을 내던지소서.8 내가 떠도는 것을 주께서 세시오니 내 눈물들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그것들이 주의 책에 있지 아니하나이까?9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므로 이것을 내가 아나이다.10  하나님 안에서 내가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니 곧 주 안에서 내가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라.11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은즉 사람이 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리로다.12  오 하나님이여, 주께 드리는 서원들이 내게 있사온즉 내가 주께 찬양을 돌리리니13  주께서 내 혼을 사망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산 자들의 빛 가운데로 다니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 발을 건지사 넘어지지 않게 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눈물을 병에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주님 안에서 성취하려는 소원들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다음의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나를 꼭 잡고 인도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소원과 함께 가사를 음미해 보십시오. 물론 위에 있는 시편 56편을 많이 읽고 묵상한 뒤 들어야 은혜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파주에 계시는 이영호 목사님 사모님께서 예전에 이 노래를 부른 것이 기억납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Take my hand, precious Lord   When my way groweth drear Precious Lord, linger near-ear When my li-ight is almost gone Hear my cry, hear my call Hold my ha-and lest I fa-all Take my hand, precious Lor-ord Lead me on Precious Lord, take my hand Lead me on, let me sta-and I am tired, Im weak, I am worn Through the storm, through the night Lead me on to the li-ight Take my ha-and, precious Lor-ord Lead me home When my work is all done And my race here is ru-un Let me see-ee by the light Thou hast shown That fair city so bright Where the lantern is the li-ight Take my ha-and, precious Lor-ord Lead me on Precious Lord, take my hand Lead me on, let me sta-and I am tired, Im weak, I am worn Through the storm, through the night Lead me on to the li-ight Take my ha-and, precious Lor-ord Lead me home
2009-05-01 17:42:29 | 관리자
간절히 원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하고는 다르단다.” 트리나 포울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현실의 안락함을 포기할 정도로 간절히 원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엇을 원하십니까? 조용히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정말로 무엇을 혹은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가?"를. 저는 나이가 점점 들면서 좋은 인격을 갖춘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전에는 지식 중심의 믿음 생활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 제 소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갈구해야 합니다. 나를 누르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 충만을 갈구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야 성경의 글자가 살아 있는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서 일하게 됩니다. 토저의 말대로 '불타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추구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이런 것이 참된 근본주의입니다. 이런 펀더멘탈이 강해야 내가 살고 교회가 삽니다. 기억하십시오, 뜨겁게 주님을 추구해야만 함을.  
2009-05-01 17:40:47 | 관리자
골프를 잘 치자(?)   저는 전혀 골프를 못합니다. 그런데 요 몇년 사이 주변에는 큰 골프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골프 이야기를 하고 골프 여행 계획을 세우고 합니다. 그러다 보닌 자연히 옆에서 동료들이 골프 장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새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대개 장비가 좋아야 하는 줄 알고 비싼 가격으로 장비를 구입합니다. 그러고도 못치면 장비 탓을 합니다. 그런데 골프 고수들이 그때마다 주는 교훈은 골프 채가 아무리 좋아도 골프를 못치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근본주의, 침례교회, 바른 교리 등은 모두 좋은 골프 채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채를 가지고 있어도 골프를 못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반 교회 성도들의 경우 골프 채는 조금 나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골프를 못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골프 채 자랑을 접고 이제는 골프를 잘 쳐야 합니다. 좋은 채로 골프를 잘 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요. 그래서 채는 좋은데 골프는 못치는 경우와 채는 좀 나빠도 골프를 잘치는 경우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물으면 참으로 고민이 됩니다. 물론 좋은 채로 골프를 잘 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그런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게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글자와 교리에 갇혀서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사람과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다만 머리의 부흥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가분수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고 사람을 나누고 가르고 분열하게 만듭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는 대개 그렇습니다. 이것은 마치 율법과 같습니다. 율법도 원래는 선한 것인데 죄가 기회를 타서 나쁜 것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교회 안에서 상식이 통하고 세상의 기본적인 법칙이 통해야 하며 특히 주축 멤버들이 기본적으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목사와 성도 모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또 그리스도는 흥하고 나는 쇠해야 합니다. 그런데 글자와 교리에 갇히면 이것이 안 되더군요. 저 자신의 경험입니다. 이제는 목사부터 성도에 이르기까지 바른 것을 가지고 바르게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가정과 교회에 부훙과 활력이 없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메마른 채로 완전히 말라 비틀어진 채 겨우 겨우 살다가 가게 됩니다. 이 땅의 삶에서도 기쁨이 있고 부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킹제임스 성경을 보는데 나는 이렇게 냉냉할까? 왜 우리 교회는 근본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냉냉할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머리뿐만 아니라 감성(affection)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즉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찬송가 507장을 깊이 음미해 보기 바랍니다. 너무 좋지 않습니까? 이대로 해 봅시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주 모습 내 눈에 안 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 들려도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받음이라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 성도 변화하여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 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2009-05-01 17:40:02 | 관리자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은 뒤 처음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구원의 감격에 빠져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천사일 것이라고 상상하며 노란 넥타이를 매고 예배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실제는 자기의 이상과 너무 많이 다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천사들은 많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게 실제 이 땅에 존재하는 대부분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의 리더들도 이 사람의 이상적인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성도들이 모두 자기를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나 다른 리더들이 이것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리더들이 이런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직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리더를 모니터링하고 사랑으로 직언을 해 주지 않으면 그 리더는 패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회니까 안 그럴꺼야 하고 생각하면 큰코 다치기 쉽습니다. 교회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악용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떳떳하다고 하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합니까? 그러므로 목사든 집사든 교사든 교회의 리더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잘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건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충정어린 마음에서, 사랑으로 잘못을 혹은 잘못될지 모르는 요소들을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서로의 신앙의 발전을 위해 또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상누각이 될지 모릅니다. 다음은 어제 소개한 위대한 리더처럼 말하라에서 발취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글이라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직언하는 아랫사람이 있는가? 자신을 좋아하거나 자신에 대해 배타적 감정이 없는 사람을 포용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자신과 스타일이 다르고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 자신의 방식에 대해 자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잘못된 일에 대해서 거침없이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기꺼이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 수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그것이 진정한 포용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은 물론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가끔은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에 빠질 때가 있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 싶을 때는 “지금 회사에서 나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부하가 있는가?” 라고 반문하면 답이 나온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고 해도 나 혼자만 잘 해서 성공하는 일은 드물다. 대체로 한 사람의 훌륭한 인재 곁에는 차세대 인재인 충성스런 참모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 아부하는 참모가 아니라 자기 밥줄을 틀어쥐고 있는 내게도 쓴 소리를 할 줄 알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보좌해 주는 인재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맥을 아주 중요시하는 나라다. 동료나 선배, 상사, 거래처 등 그 모든 인간관계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 부하직원이나 후배의 존재는 특히 중요하다. 부하직원이나 후배는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의 눈은 날카롭다. 업무적으로든 인간적인 면에서든 부하직원은 분명 한 가지 이상 존경할 부분을 가진 리더를 따르게 되어 있다. 리더 역시 빠르게 성장, 발전하며 따르는 부하직원이 있다면 그 부하직원을 의식하면서 자기 위치를 지키기 위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하직원은 나를 키워주는 또 하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따르는 부하직원이 눈에 띄면 그를 거울로 삼아라. 혹 당돌하다 싶을 정도로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귀를 열고 들어라. 리더에게 달콤한 소리보다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 만큼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그릇을 신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에 부응하여 수용과 조화를 중시하는 리더의 탁월한 면모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2009-05-01 17:38:23 | 관리자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면서 특별히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푼 무리들  - 주로 가나한 자들, 세리, 창녀 등의 소외 계층 - 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였습니다. 즉 그들과 공감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인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우리가 교회나 사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남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점에서 늘 실패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경청하지 않아 문제에 빠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특히 듣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면서 제 자신에게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공해야 남을 리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람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정을 들어 주십니다. 귀담아 들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위대한 리더처럼 말하라'(전미옥)에서 한 부분을 따서 올립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남의 말을 듣는 일에서 확연히 다른 모습의 진보된 크리스천이 됩시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다섯 가지 스타일   - 무시하기 스타일: 내 생각이 늘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남이 이야기하는 것을 전혀 듣지 않는다. - 듣는 척하기 스타일: 상대방을 인정하고 마치 듣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상대가 말하는 내용 중 10% 정도만 듣는다. - 선택적 듣기 스타일: 상사가 부하의 말을 들을 때 자주 보이는 태도로, 어떤 것은 듣고 어떤 것은 안 듣는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보다는 전체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상대가 말하는 내용 중 30% 정도를 듣는 셈이다. - 적극적 듣기 스타일: 상대가 말을 하면 손짓 발짓해가며 맞장구를 쳐주고 적극적으로 들어 준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만 귀로만 듣기 때문에 상대가 말한 내용 중 70% 정도만 듣는 데 그친다. 마음으로는 듣지 않기 때문이다. - 공감적 듣기 스타일: 귀와 눈 그리고 온 가슴으로 듣는, 가장 바람직한 듣기 자세다. 상대의 말을 거의 90% 이상 듣는다. 연애를 할 때처럼 그야말로 ‘내 이야기’처럼 맘을 활짝 열고 듣는다.
2009-05-01 17:37:45 | 관리자
지난 번에 말씀 드린 대로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리더십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근본주의 진영에 들어와서 가만히 살펴보니 자기가 처한 분야에서 으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이 겨우 직장을 얻어서 - 그것도 구걸하다시피 - 비실비실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교회에는 대개 자매들이 형제들보다 교육, 믿음 면에서 더 뛰어난 경우가 많고 그래서 자매들은 결혼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데서는 환난 통과를 주장하면서 젊은이들이 세상 일에 열정을 쏟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산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일터에 있든지 산에 있든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면 다 데려가십니다. 산에 들어 가려고 애쓰지 말고 이 세상 일터에서, 가정에서 열심히 삽시다. 할렐루야!      사람은 한 번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쫀쫀하게 살다 가지 맙시다. 나는 가끔씩 비행기를 타고 가다 KBS TV 프로그램 - 이름은 모르고 주일 저녁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음 - 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가수들보다 그 뒤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더 열심이더군요. 아니 그렇게 별것 아닌 것 즉 TV에 얼굴 한 번 비치는 것을 위해 온 정열을 쏟고 일 주일 내내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크리스천들 - 특히 형제들 - 좀 각성해야 하지 않읗까요? 그런지 안그런지 한 번 TV 보기 바랍니다. 우리 제발 데데하게 살고 데데하게 믿지 맙시다. 목사는 최선을 다해서 심혈을 기울여 설교를 준비하고 열정적으로 설교해서 성도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겠다고 어금니를 물고 거듭 거듭 다짐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흥하게 하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아야겠다고 거듭거듭 다짐해야 합니다. 이게 도대체 뭡니까? 열심을 가지고 살고 열심으로 믿어야 주님의 복이 임합니다. 우리 모두 각성합시다.   저는 지난 금요일에 강남에서 회의가 있어 전철을 탔습니다. 김우중씨의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집어들고는 오고가면서 책 읽는 기쁨에 빠져 다 읽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최근 들어 읽은 리더십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상의 돈을 벌기 위해서도 이렇게 애를 쓰고 혼심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있고 그분의 일을 한다면 어떻게 이렇게 미지근하게 살 수 있습니까? 이거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제 으뜸이 됩시다. 주님을 섬기는 모든 일에서, 세상 일에서, 가정 일에서 으뜸이 됩시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3:23-24).  김우중씨의 글에서 한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부디 주님과 그분의 일을 위해 으뜸이 됩시다.   으뜸이 되라   6.25 때 우리 가족은 대구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아버지는 이미 납치되어 안 계셨고 형님들은 군에 입대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우리 집의 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신문팔이로 나섰다. 그때 내 나이 열네 살이었다.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열네 살짜리 사내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신문팔이조차도 당시 신문사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옛 제자가 만들어 준 일거리였다. 그때는 신문팔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신문을 받아서 주로 팔던 곳은 방천 시장이었다. 나는 신문을 받아들면 중간에서는 한 장도 팔지 않고 방천 시장까지 달려갔다. 방천 시장에는 사람이 많은데 중간에 몇 장 파느라고 다른 사람에게 그 좋은 장소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중간에서 한두 장 파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다른 사람이 앞질러서 나보다 먼저 방천 시장에 달려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문을 파는 사람들 중에 항상 맨 먼저 방천 시장에 도착했다. 항상 1등이었다. 그러나 1등으로 도착한다고 해도 그 시장을 독차치할 수는 없었다. 신문을 한 장 팔면 거스름돈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아무리 맨 먼저 도착하여 열심히 신문을 팔더라고 3분의 1쯤 파는 사이에 뒤에 따라온 아이가 나를 앞질러서 팔아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100장을 팔아야 네 식구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집에는 어머니와 두 명의 어린 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더 효과적인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것은 거스름돈을 미리 삼각형으로 접어서 주머니에 잔뜩 넣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언제나 1등으로 도착해 신문과 거스름돈을 던져 주고 돈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니 시간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그 시장 전체에 내 신문만 팔수는 없었다. 한 3분의 2쯤 가다 보면 또 뒤에서 다른 아이가 쫓아와서 앞서 나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아예 신문 값은 받지 않고 신문만을 던져주고 나서 나중에 그 길을 돌아오면서 느긋하게 신문 값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니까 이제 아무도 나를 뒤쫓아 올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그러다가 신문 값을 떼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두 사람에게 떼이더라고 신문을 다 파는 편이 더 이익이라고 나는 계산했다. 또 그 당장에 못 받은 신문 값도 며칠 후에 만나서 대부분 다 받아낼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내가 이런 식으로 신문을 팔자 다른 신문팔이는 그 곳에는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방천 시장을 나 혼자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분야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한번 도전했으면 반드시 으뜸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은 방천 시장의 신문팔이 시절에 이미 생겼는지 모르겠다.나는 이제껏 사업을 하면서 늘 으뜸이 되고자 애썼다. 물론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런 대로 자랑할 만한 성과도 많이 거두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혹 1등은 못한다 하더라도 2등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안 돼.”, “나는 무능해”, “나는 1등을 할 실력이 못 돼.” 하고 포기해 버리면 그 사람은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만다. 어떤 일을 하느냐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느냐이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또는 예술가가 되든 학자가 되든 정말로 자기가 택한 그 분야에서 으뜸이 되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1등을 하려고 애써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뒤쳐져도 상관없고 앞서는 것에 별로 흥미 없는, 그런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지 말라. 목표는 언제나 1등이다. 1등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최선을 다한 만큼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1등을 차지한 사람은 으뜸이 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저 놀면서 대충해서 1등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헝가리 출신의 유명한 축구 선수가 오래 전에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뒤 기자 회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을 찹니다. 공을 차고 있지 않을 때는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을 때는 축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축구 선수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 1등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살아 온 사람만이 그 분야의 1등이 될 수 있다. 기적이란 없다. 대우의 급속한 성장을 두고 흔히들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으뜸이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바쳐 왔는지를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나는 그리고 대우는 언제나 으뜸이 되려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대우 가족들에게 어느 분야에서나 일단 도전을 했으면 반드시 1등이 되라고 격려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항상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고지를 향해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목표는 언제나 1등이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나 으뜸이 되어야 한다. 미리부터 1등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려고 하지 말라.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비굴이다. 그것은 희생 정신이 아니라 열등 의식이다. 행여라도 “너는 2등이면 족해.” 라든가, “내 분수에 1등은 무슨” 이라고 말하지 말라.1등의 자리는 바로 나의 것이라고, 1등은 바로 나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마음먹어 보라.그리고 최선을 다하라. 반드시 보람이 있을 것이다.  
2009-05-01 17:36:10 | 관리자
어려서부터 부모님들이 '공부해라, 공부해라!'해서 공부에 노이로제가 걸린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크리스천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공부하다'는 영어로 'study'인데 킹제임스 성경에는 이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구절은 딤후2:15입니다.   Study to shew thyself approved un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2 Tim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연구하다'로 번역했는데 원래 이 말은 '부지런히, 열심히 하라'는 뜻입니다. 크리스천들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성경의 권고입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우리가 들으니 너희 가운데 질서 없이 걸으며 전혀 일하지 아니하고 참견하기만 좋아하는 자들이 더러 있다 하는도다. 이제 그러한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가 명령하며 권면하노니 그들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빵을 먹을지니라(살후3:10-12).   우리의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열심히 일합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전9:10).   사람은 한 번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가게 됩니다. 그러니 혼신의 힘을 다해 바른 것을 추구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다가 부르시면 가야겠다고 굳게 작정하십시오. 또 자녀들에게도 철저한 정신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생각과 속사람도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공부하고 생각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김우중씨의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공부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서 한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부디 주님과 그분의 일을 위해 열심히 삽시다.   취미가 무엇입니까?   나는 한 해에 200일이 넘는 날을 해외에서 보낸다.또 국내에서의 잦은 지방 출장까지 계산하면 집에서 지내는 늘은 더욱 줄어든다.그러다보니 내 생일은 물론 아내나 아이들의 생일까지도 깜박 잊고 넘어가기 일쑤다. 나는 누구보다도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처럼 나를 바쁘게 살도록 만드는 일감들을 앞에 놓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더러 이런 나를 가리켜 일에 미쳤다고 말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아직까지 휴일을 하루도 가져 본 적이 없다. 가족과 함께 해수욕장을 가 본 기억도 없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다. 한 가지 일에 흠뻑 빠지지 않고 성공한 사람을 나는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고서 실패한 사람을 나는 또한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김우중처럼 그렇게 일만 붙잡고 있으면 세상사는 재미가 있겠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놀아 가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일의 노예가 돼 버리고 나면 무슨 낙이 있겠느냐고 딱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참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일에 몰두한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사람은, 특히 젊은이는 일에 몰두해 있을 때의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이다.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가슴을 뿌듯하게 채워 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그런데 왜 일하는 것이 짜증스럽고 지겹고 귀찮을까? 최근에 한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요즘 우리나라의 고교생들은 일을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을 ‘아니꼽다’, ‘스트레스’, ‘지겹다’, ‘억압감을 느낀다.' 와 같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23.5퍼센트로,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11.4퍼센트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일을 그저 생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터에 나가는 사람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위장 속에 집어넣을 먹이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노릇인가? 더구나 큰 꿈과 야망에 가슴이 불같이 뜨거워야 할 젊은이가 그렇듯 안일한 정신 상태로 살고 있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물론 ‘일’에 그와 같은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가지의 노동, 자기의 수고가 오로지 돈으로 환산될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모독하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가 ‘일’ 에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때 일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일이 즐거워질 때 자부심과 보람은 더욱 뿌듯하게 가슴을 채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공부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몰두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책을 읽는 학생의 모습은 보기가 좋다. 공부에 전념하고 있을 때 그 학생의 모습에선 빛이 난다. 무엇엔가 몰두해 있는 사람은 그처럼 아름다운 법이다. 그런데 억지로 마지못해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입에 풀칠을 하려고 내키지 않는 일터에 나온 사람만큼이나 추하고 안타깝고 비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하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껴야 하듯이 학생도 공부하는 즐거움을 스스로 발견해 내야 한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남의 일을 떠맡은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수업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달라질 것이다. 공부가 재미있게 여겨질 것이다. 돈 때문에 일하거나 석차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더 나아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어 보라. 어떻게 일이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공부가 하기 싫을 수 있겠는가?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난감해진다. 사실 취미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내게는 없다. 더구나 취미라고 하는 것이 그저 남은 시간을 때우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길 때는 더욱 그렇다. 바둑을 조금 두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니, 바둑이 취미라고 하면 정말로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그 흔한 골프 한 번 쳐보질 않았다. 다른 운동도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한가하게 연극이나 음악회 같은 데를 찾을 여유는 더욱 없다. 만일에 취미라고 하는 것을, 한 사람이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러니까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 기꺼이 행하는 어떤 행위라고 정의한다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취미는 ‘일하는 것’ 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한 번도 일을 억지로 해 본 적이 없으며 누가 시켜서 한 적도 없고 일 속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있으니 취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일이나 공부를 과업으로 여기는 데서 괴로움이 싹트는 것 같다. 그것을 취미로 삼으면 취미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을 것이다. 재미가 있으니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게 되면 저절로 능률이 오른다. 능률이 오르면 결과가 좋아지는 것인 정해진 이치이다. 그렇게 되면 무엇인가를 이룬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으로 더 없이 행복해질 것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기쁨 가운데 성취감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취미처럼 자발적으로, 기쁨을 가지고 일한다면 사업을 하는 사람은 작은 회사를 점점 키울 수 있을 것이고 시설을 하나 둘씩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성적이 부쩍부쩍 올라서 그 대가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한 번 시도해 보기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지 않고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고서 실패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법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 7년 동안 나는 한성 실업이라는 먼 친척 아저씨네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물론 친척이라지만 나는 월급쟁이였다. 그러나 나는 마치 주인처럼 내 할 일을 내가 알아서 처리했으며, 누군가 내게 명하거나 시키기 전에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했다. 휴일은커녕 늦잠도 자지 못했다. 성취하고 난 후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한 행복감 때문에 나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한다. 이런 내가 불행한가? 골프를 좀 못 쳐서? 신나는 영화 한두 편을 못 봐서? 그 재미 못지않게 해외에서 만만치 않은 인물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큰 주문을 따 냈을 때 느끼게 되는 재미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일을 가지고 접근할 때는 마음이 설레고, 마치 중요한 시합에 임하는 선수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그 시합이 어렵고 대규모일수록 내 주의력은 집중되며 흥미로움도 배가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숨겨진 카드를 읽어 내고, 내 뜻대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때의 승리감, 일을 원만히 해결하여 서로가 만족스런 얼굴로 악수할 때의 그 신선한 기쁨은 내게 솟구치는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올해도 나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생일을 보내겠다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약속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점이 늘 미안하고 이런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해 주는 식구들이 고맙다.  
2009-05-01 16:30:33 | 관리자
형제님은 고독을 아십니까?   다음은 토저의 글입니다. 규장에서 나온 임재 체험(토저 지음)을 보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 매우 잘 적응하여 편안하게 산다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회'에 편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들은 그들만의 순례자적 특징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세상의 잘못된 도덕적 구조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그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 구조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려 세상은 그들을 인정해 주고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이다.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잠자기 전에 간단히 글을 드립니다. 샬롬.   
2009-05-01 16:29:1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