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3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trmL1AbnlAw
2025-07-20 14:24:04 | 관리자
2025년 7월 13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F5VAQRezX9I
2025-07-20 14:19: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7월 3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1. 유다는 어디로 가려고 사도 직분에서 떨어져 나가 범법을 하였나? (1장)
자기 자신의 처소(25절)
2.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이 오기 전 해와 달이 변해도 어떤 자들이 구원을 받는가? (2장)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21절)
3. 베드로는 유대 백성들이 거룩하신 분을 부인하고 누구를 죽였다고 했나? (3장)
생명의 통치자(15절)
4. 베드로와 요한에게 병 고침의 기적을 받은 사람의 연령대는? (4장)
마흔 살이 넘음(22절)
5. 이전에 스스로 대단한 사람인 것같이 일어났으나 죽임을 당했다고 가말리엘이 언급한 사람은? (5장)
드다(36절)
6. 모세가 미디안에서 지낸 지 몇 년 되었을 때 주의 천사가 나타났나? (7장)
40년(30절)
7.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준 후 주의 영이 빌립을 채어 어디로 갔나? (8장)
아소도(40절)
8. 주께서 다마스쿠스의 아나니아에게 어디에 있는 유다의 집에서 사울을 찾으라 하셨나? (9장)
곧은 거리(11절)
9. 베드로는 욥바에서 누구 집에 묵고 있었나? (10장)
무두장이 시몬(6절)
10.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온 대언자들 중에서 큰 기근을 대언한 사람은? (11장)
아가보(28절)
11.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에게 화평을 구하기 위해 누구를 친구로 삼았나? (12장)
시종 블라스도(20절)
12. 바보의 총독이 믿음에서 돌아서게 하려고 바울 일행에 대적하다가 눈이 멀게 된 마법사는? (13장)
엘루마(11절)
13. 바울과 바나바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간 뒤 무엇으로 안디옥으로 갔나? (14장)
배를 타고 감(26절)
14.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의 서신을 가지고 안디옥에 가서 그대로 머문 사람은? (15장)
실라(34절)
15.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 무엇으로 인해 문들이 열리고 결박이 풀렸나? (16장)
큰 지진(26절)
16. 바울이 데살로니가의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성경기록으로 그들과 얼마 동안 토론했나? (17장)
세 안식일(2절)
17. 성경기록들에 능통한 아볼로에게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 완전하게 설명해 주었나? (18장)
아굴라와 브리스길라(26절)
18. 바울로 인해 혼란해진 에베소 사람들이 누구를 붙잡아 극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나? (19장)
가이오와 아리스다고(29절)
19.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 머문 기간은? (20장)
이레(6절)
20. 가이사랴의 복음 전도자 중 한 명으로 네 명의 딸을 가진 사람은? (21장)
빌립(9절)
2025-07-20 14:04:36 | 관리자
방학은 기분 좋은 단어에요^^
쉬었다가 만나면 더 반갑지요.
무더위 잘 보내고 다시 만나는 날 즐거운 해후가 있겠죠~
모두 건강하시길~
2025-07-19 07:13:29 | 이수영
우리 수현자매님도 고생했습니다아~♡스마일~~^^
2025-07-18 16:57:10 | 목영주
안녕하세요?
엊그제 목요 자매 모임이 방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6-70여 명의 자매님들이 매주 목요일에 모여 맥아더 목사님의 <예배> 책을 읽고 공감한 것들을 서로 나누며 교제를 하였습니다.
여러 자매님들이 자발적으로 책 모임에 이렇게 많이 참석하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기뻤으며, 더욱 더 기쁜 것은 책을 읽는 일에 자매님들이 힘을 쏟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경건 서적들을 읽고 요약하고 나누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매 모임 덕분에 여러 곳에서 책 읽기 모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도 접하였습니다. 형제님들, 청년들도 책을 정해 읽고 공감하고 모여서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또한 교회를 이끌고 있는 형제/자매 리더들이 책 읽기에 앞장서고 책들로 인해 변화되는 삶을 터득하고 같이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이후로 교회의 리더들은 다 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주 오전과 오후에 저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예배> 책의 234-235쪽은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잇어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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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는 중요한 장애물은 단 하나, 바로 나 자신이다. 그것은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결과는 똑같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내세우면 제대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거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핑계 댈 수 있지만, 우리가 정말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나 활동을 위해서는 시간을 낼 수 있다. 그런 핑계를 늘어놓는 사람의 진짜 문제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즉 너무 게으르고 방종해서 우선순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스테판 차녹의 글을 읽어보자.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유익만을 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쪽에 더 가깝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우리를 먼저 만족시켜야 한다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자신보다 아래 두게 되며,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셔야 한다는 어리석은 상상에 빠진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영광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영으로 드리는 예배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즉,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내 필요와 유익과 축복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에 대해 죽기 전에는 아무도 영으로 예배할 수 없다. 예수님은 그것을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묘사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마 16:24).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영적인 의미에서 자신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 그럴 때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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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유로 공예배를 무시하거나 공예배 참석을 게을리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영적 수준과 척도를 보여 주는 시금석입니다. 죽음의 병상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공예배를 사랑하고 참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섬김이며 우리 교회가 이런 분들의 보금자리로 오랫동안 이 땅에 남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에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
샬롬
패스터
2025-07-18 14:22:5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이번 자매모임은 소규모 바자회와 조별 식사를 함께하며 방학식을 겸해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비도 많이 오지 않고 선선한 날씨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즐겁게 교제한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름 방학을 맞아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공존하지만, 잠시 쉬어가는 시간 동안 충분히 재충전하고 다음 책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요즘 나라 상황도 좋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으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평안을 약속하신 신실하신 하나님 안에서 깊은 쉼을 누리시고,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가을 자매모임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2025-07-18 13:39:36 | 박수현
일산에서도 오늘 '예배' 책 모임을 끝내고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알게 된 많은 내용들 중 지금 기억나는 것은
우리는 예배드리기 위해 구원 받았으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성경의 영원한 주제요, 구원 역사의 주제라는 말과 공예배의 중요성과 거기서 다가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목사님의 '예배' 설교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수십년 믿음 생활을 해오면서 주일 공예배를 형식적으로, 주일이면 지켜야되는 의무감으로 드렸던 때가 많았음을 느끼며 제 양심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는 매순간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예배자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2025-07-17 23:05:56 | 이명숙
너무도 맞는 말씀이고 공감가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 둘을 반반씩 합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지체간 부딪힘이 있을 때
너무 감정적이거나 너무 이성적 이어서 더 큰 문제와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배려하며 세워주는 좋은 성도들이 될거 같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5-07-17 22:32:15 | 이명숙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25-07-17 21:48:57 | 최철호
맥아더 목사님은 주님과 함께 계시니 얼마나 좋으실까요?
거룩한 삶은 성화가 빠질수 없으니 삶이 곧 예배로 나타나야 마땅하다는 확실한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2025-07-17 15:10:36 | 이수영
한편으론 모든 시름 내려놓고 하나님곁에 계실 존맥아더목사님이 부러워요..고된일상은 기본, 십자가에 못박혔다생각하며 흘려보내야하는 순간들이 유독 많은 하루여도, 잠자리에 들때면 '아버지 잘못했어요.섬길수 있어서 감사합니다..'기도 드리며 자는 자녀입니다. 예수님이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당연 해주실거라 믿고 오늘 하루 감사함으로 편안히 보내겠습니다.-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바란다면 인내로 그것을 기다리느니라.-로마서8장 18절부터 25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7-17 08:30:22 | 목영주
예배는 그 자체로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과 삶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니 큰 찔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도록 정결한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2025-07-17 07:58:26 | 김지훈
각각의 약점과 서로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고 온유한 영으로 세워 주라는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2025-07-17 07:53:53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오늘은 [예배]의 마지막 장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동안 14번에 걸쳐 자매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고 깊이 있게 나누며,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떠한 자세와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지를 통찰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4일, 이 책의 저자 존 맥아더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안식에 들어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충실히 전하신 목사님께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려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목사님은, 저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었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이 모든 은혜와 깨달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홀로 영광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예배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Part 15 예배의 본래 의미
277p 우리 예배의 대상은 오직 말씀에 계시된 대로 살아 계신 참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혔다. 예배는 언제 어디서나 드릴 수 있으며, 특히 구원받은 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배의 본질을 논하였고, 영과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의 균형이 완벽하게 맞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단순히 가만히 앉아 형식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들을 때 내 마음속에서 그에 합당한 올바른 반응이 따를 때 비로소 그것이 진정한 예배라는 사실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279p 위선은 예배에 치명적이다. 방황하는 마음, 자아도취, 무관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진실하지 않은 마음으로 급히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없다.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에서 제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많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드린 죄를 가볍게 여겨왔는데,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80p 히브리서 10장 22절의 마지막 포인트는 '순수함'이다. "우리 몸이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그것은 말 그대로 몸을 씻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죄를 다루기 위해 필요한 매일의 죄 고백과 영적인 정화를 뜻하는 것이다. 회심할 때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피뿌림은 삶을 영원히 완벽하게 씻어준다. 그러나 우리의 발에는 세상의 먼지가 묻기 마련이므로 주기적으로 씻어줄 필요가 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때 속죄 헌물을 드리고 물두멍에서 손을 씻은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삶 속에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281-282p 많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교회에 다녀도 진심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것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예배가 힘들다고 불평한다. 그들의 개인적인 경건생활에서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난 것 같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신앙의 길에서 마주하는 장애물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더욱 성경 말씀을 바르게 알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사실, 죄를 인정하는 일은 육신을 가진 우리에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솔직히 인정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287p 사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예배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교회가 성화되는 것이다. 개인으로서 당신이 드리는 예배는 당신의 삶뿐 아니라 온 교회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당신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라면 교회가 더 강해지고 성화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다면 교회는 더 약해질 것이다.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앞서 나눈 이야기처럼, 개인이 어떻게 6일을 보내느냐에 따라 주일 공예배의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289p 예배는 구원 계획의 가장 큰 목적이다. 예배의 교리는 복음전도의 핵심이다. 어떤 사람은 예배와 복음전도를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미디어 사역을 통해 전도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전도에 대해 느껴야 할 영적인 책임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전도의 사명을 엄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교리를 잘 익혀 두면, 누군가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할 때 복음의 핵심을 기쁨으로, 그리고 망설임 없이 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침례교회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부록 마음과 생각과 목소리로: 찬송가와 가스펠송
300-301p 예배를 순전히 감정적인 활동으로 보는 근대적 탈근대적 개념은 교회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런 반지성주의는 우리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 왔다. 사실 오늘날 피상적이고 경박하고 내용 없는 설교가 성행하는 데 다른 무엇보다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현대 교회음악일지도 모른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오랜 세월 흥과 샤머니즘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는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겠습니다. CCM 가사나 비그리스도인의 반주, 혼을 빼놓는 듯한 힐송 음악 등은 분별하며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311p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와 장로들이 교회음악 사역을 좀 더 세심하고 주의 깊게 감독해야 하며, 의식적으로 우리가 부르는 노래의 교리적 성경적 내용에 대한 높은 기준을 정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와 찬송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교회의 리더들이 애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 목사님과 찬양을 인도하는 리더분들께 감사드리는 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서 찬양의 기준을 잘 세워가고 계심을 느낍니다.
2025-07-16 17:44:34 | 박수현
감정형인 저는 돌이켜보니 그리스도인의 따뜻함을 계속 흘려보내면 상대 비난투의 말까지 좋아질까 기다린 시간도 있었네요. 사고형 상대에게 멋지다박수 쳐주는 마음 여전하지만 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제발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말아주세요오~"(^^)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계속 새로워져(혼합형?이 되어져서) 인간관계가 점점더 모두-함께-가 되는것 같아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청조물이라.옛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린도후서5장1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7-16 15:47:51 | 목영주
형제님 의견에 공감 합니다.
아이들이 블럭을 갖고 놀때보면 각기 다른 모양이 있어야 성도 만들고 공룡도 만들더라구요.
'아롱이다롱이'라는 단어도 생각이 나고요.
2025-07-16 14:00:29 | 이수영
김민영자매님 반갑습니다.
주님 안에서 함께 하게 되어 좋네요.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래요.
2025-07-16 13:54:40 | 이수영
이은재 자매님 반갑습니다.
사진을 늦게사 찍으셨네요.
우리 교회의 특성을 잘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해요.
매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2025-07-16 13:52:37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경 번역의 궁금점은 아래 링크 글들을 참조하세요.
그리고 번역 문제는 항상 홈페이지 하단에 있는 메일로 보내시면 목사님께서 답변 주실 것입니다.
https://www.keepbible.com/KJB3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어다.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 통치자 메시아가 올 때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며 참으로 고난의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고" (단 9: 25)
다니엘의 칠십 이레 중 일곱 이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며 느헤미야 6장 15절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느헤미야가 재건한 것은 성전 자체가 아니라 성벽과 도시 체계였습니다. 4번의 칙령 중 가장 나중에 내려진 것입니다.
다니엘 9장 25절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가 일곱 이레(49년)가 시작되는 기간입니다.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를 자세히 설명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BC 538 고레스: 성전 재건 허락 (에스라 1:1–4)
BC 520 다리오: 성전 재건 확인 (에스라 6:1–12)
BC 457 아닥사스다: 에스라에게 예루살렘 율법, 행정, 제도 정비 권한 부여 (에스라 7:11–26)
BC 444 아닥사스다: 느헤미야에게 성벽 재건 권한 부여 (느헤미야 2:1–8)
고레스부터 성전 건축의 명령이 나갔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사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전 건축의 의미는 예루살렘의 회복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BC 457년의 아닥사스다 조서를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이 조서는 단순히 성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과 율법과 행정 체제 전반을 회복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질문에 대해 간단하게 요약 설명 드리면,
BC 457년(아닥사스다 칙령) + 49년 = BC 408년경.
BC 408년경이면 예루살렘 성과 성벽, 율법, 행정 체제가 거의 완전히 자리 잡은 시점으로 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서는 이 시기를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일곱 이레) 통치자 메시아가 올 때까지"(육십이 이레)를 따로 강조한 것입니다.
"앞부분 7이레에 대한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라고 하셨는데,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육십이 이레(434년)를 같이 설명 드리면, BC 457년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을 시점으로
7이레 ×7 + 62이레 ×7 = 49 + 434 = 483년이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기간과 연결 시키면,
BC 457년 + 483년 = AD 27년이 됩니다.
예수님은 BC 4년경 헤롯 대왕 통치 말기에 오셨습니다.
로마의 제 2대 황제 카이사르 티베리우스 재위 원년이 AD 14년이니, “티베리우스 제15년”(누가복음 3:1)은 AD 28–29년경이 됩니다. 이때 예수님이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므로, 누가복음 3장 23절의 '비로소 예수님 그분께서 서른 살쯤 되시니라'는 기록과 잘 맞습니다.
성경을 벗어나 자신들의 생각을 더하는 목사들의 해석에 미혹되지 마시고, 올바른 성경에 믿음을 두시면 더욱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어다.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 통치자 메시아가 올 때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며 참으로 고난의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고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그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
2025-07-16 12:00:5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