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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정순철 형제님,  마순옥 자매님^^ 바른 진리를 찾아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먼저 내가 굳게 서야 타인에게도 전할 수 있으니  성도들과 깊은 교제가운데 주안에 있는 즐거움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026-02-09 05:53:07 | 이수영
정순철 형제님, 마순옥 자매님 반갑습니다^^ 두 분의 온화한 미소가 한겨울 추위도 녹이는 듯하네요. 모쪼록 진리의 말씀 안에서 지체들과 즐거운 교제 나누시길 바라겠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화평이 댁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2026-02-08 23:57:06 | 김지훈
안녕하세요?   이번에 <신약 교회 역사: 침례교회와 신앙의 자유>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580쪽에 달하는 이 컬러 책은 신약 교회의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침례교회의 역사, 특히 신앙의 자유를 위한 순교와 투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모든 분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무료 PDF 책으로 올리니 마음대로 다운받고 공유하셔도 됩니다. 샬롬       서문 “침례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각주: 이 책에서 말하는 ‘침례교’ 혹은 ‘침례교회’는 현대 교단이나 교파를 의미하는 좁은 용어가 아니다. 이 책에서의 침례교나 침례교회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나타난 신약 교회의 원형을 지키고자 했던 역사적 흐름 전체를 가리킨다. 시대마다 도나투스파, 왈도파, 롤라드파, 후스파, 재침례파 등 다양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는 원리는 같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침례교 역사는 특정 교파의 발전사가 아니라 신약 교회를 회복하려는 영적 전통의 역사이다. “우리는 왜 교회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교파 정체성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본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현실이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질문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교회 역사를 과거의 이야기로만 다루지 않고 오늘의 교회를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삼고자 합니다. 또한 이 질문들은 결코 추상적인 학문 주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게 되는 실제적이면서 영적인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신약 교회의 정체성과 그 역사적 뿌리를 충분히 알지 못할 때 신앙은 쉽게 흔들리고 교회는 전통과 분위기에 휩쓸려 본질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바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저는 침례교 목사로서, 그리고 신약 교회의 원형을 사랑하는 한 신앙인으로서 이 질문들 앞에서 언제나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목회는 단지 설교나 행정을 수행하는 일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진실한 관계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영적 성장을 돕고, 성경 중심의 신앙을 견고하게 세우며, 교회 자치와 회중 정치라는 침례교 고유의 원리를 지키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신약 교회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사역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침례교의 참된 정체성과 믿음의 선배들이 지켜 온 순수한 신앙을 다음 세대에 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더욱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침례교회의 우수성을 주장하거나 특정 교단의 정통성을 입증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교파를 비난하거나 평가하려는 의도로 쓰인 책도 아닙니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교단 간의 비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약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교회의 본질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보존되고 회복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침례교 역사는 그 자체로 자랑의 대상이 아니라 신약 교회를 회복하려는 영적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증언입니다. 기존의 교회사 서술은 대체로 세속 정치사나 개신교 각 교파의 발전사 중심으로 기록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으로서의 침례교의 진정한 뿌리와 신앙적 동기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사는 단순한 인간의 역사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보존하시고 인도해 오셨는지를 성경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침례교의 역사는 교회사 전체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교회사가 놓치기 쉬웠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증언이 됩니다. 침례교의 역사는 특정 제도나 권력의 발전사를 설명하기보다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신자들의 반복된 선택과 희생을 통해 신약 교회의 원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침례교의 역사는 교회사 속에서 신약 교회관을 가장 분명하게 비추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침례교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신약 성경의 교회관을 회복하려는 긴 영적 투쟁의 기록입니다.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나타난 신자들의 공동체는 시간이 흐르며 제도화되고 국가 권력과 결탁하면서 점차 본질을 잃어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일으켜 오셨습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들의 이름은 달랐어도 그 흐름은 하나였으며, 그 운동은 종교 개혁 이후 침례교회라는 형태로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제1부에서는 초대 교회부터 약 1,500년에 걸친 교회사의 배경을 다룹니다. 초대 교회의 순수함에서 출발하여, 기독교의 국교화, 어거스틴 신학에 기반한 강제적 국가 교회 체제, 중세 카톨릭교회의 제도화와 권력 집중, 종교 재판소의 폭력과 이단 탄압,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도 성경으로 돌아가려 했던 선구자들의 움직임을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침례교 정신의 뿌리가 어떻게 준비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제2부에서는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지난 500년간 전개된 침례교의 형성과 확산을 다룹니다. 1525년 스위스 재침례교회에서 시작된 신약 교회 회복 운동이 영국에서 침례교회로 조직되고, 신대륙 미국에서 ‘정교분리, 양심의 자유, 회중 정치’라는 결실을 맺으며 전 세계로 확장되어 간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합니다. 두 부분은 서로 분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흐름입니다. 제1부는 ‘왜 침례교가 필요했는가’를, 제2부는 ‘침례교가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되었는가’를 보여 줍니다. 이 책은 교회 역사를 중립적인 사건의 나열로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은 신약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본질을 기준으로 역사를 읽고 해석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침례교 역사를 관통해 온 핵심 원리들을 하나의 해석의 기준으로 삼아 교회 역사를 살펴봅니다. 그 기준의 핵심 원리는 다음 다섯 가지입니다. 이 원리들은 침례교 역사를 관통해 온 근간이자 신약 교회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1) 성경의 절대적 권위 (2) 다시 태어난 신자들의 교회 (3) 신자 침례와 침수례  (4) 양심의 자유와 정교분리 (5) 회중 정치와 지역 교회의 자율성 이 원리들은 침례교만의 전통이 아니라 신약 교회의 본질에서 직접 나온 것들입니다. 침례교는 역사 속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이 원칙들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훨씬 더 깊고 실천적인 데 있습니다. 침례교 역사를 배우는 일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바로 세우는 영적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독자가 교회와 신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모습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도록 돕고자 합니다. - 오늘날 교회는 초대 신약 교회와 얼마나 가까운가? - 우리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실제로 따르고 있는가? - 우리는 신자 침례, 구원받은 신자들 교회, 양심의 자유, 회중 정치를 얼마나 진지하게 실천하고 있는가? - 우리는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침례교는 새로운 운동이 아닙니다. 신약 교회를 회복하려는 운동입니다.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인 진리가 이 책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책이 2,000년의 교회 역사와 500년의 침례교 역사를 따라가며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다음 한 문장을 깊이 새겨 주기를 기도합니다. “침례교는 신약 교회를 이 시대에서 실천하려는 운동이다.” 하나님께서 이 책을 사용하셔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다시 한번 신약 교회의 비전을 회복하고 신약 성경의 원리들을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로 새롭게 일어서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창조자, 구원자, 그리고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2025년 10월 유럽 종교 개혁 투어를 마친 뒤 사랑침례교회 목사 정동수
2026-02-05 19:50:23 | 관리자
하나님의 말씀을 이리저리 해석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보니 이단 삼단이 나오는 거죠~ 왜곡하지 않고 문맥을 살피고 문자 그대로. 보아야 잘못 가지 않지요. 오직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데 속히 오시기를 ......
2026-02-04 16:25:03 | 이수영
천국의 소망이 커지고 싶어서 요한계시록 시리즈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우주를 통치하시는 전능자 나의 아버지 닮아 오늘도 신실한 하루 살아내겠습니다.. -보라.내가 속히 가리니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요한계시록22장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kHpnbau4x4
2026-02-04 08:29:35 | 목영주
  하나님 말씀, 즉 성경 읽다 보면, 인간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가히 초월적 차원의 하나님 성품 느껴짐에 따른 놀라움, 두려움 등으로 인해 읽기를 멈추고 한동안 묵상에 잠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초월적 차원의 하나님 성품인즉 신실하심(Faithfulness)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절대적 권능의 하나님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신실함, 즉 faithfulness 를 감히 무시해 버린 듯한 무천년설 그리고 그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밝혀보려 합니다.      AD410년경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제국 멸망(AD476년)의 서막을 열어젖힌 이교도들의 말, 즉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한 결과 망했다"라는 주장에 대한 어거스틴(AD354-430)의 반론을 담은 책, 즉 신국론(The city of God)의 핵심적 내용이 바로 무천년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20장의 그 천년왕국은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재림 사이의 긴 시간, 즉 교회 시대가 영적인 천년왕국인 동시에 교회가 곧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주장, 말하자면, 이스라엘대체신학 말입니다.    대략 1,600년 전의 그 무천년설이 16C 종교개혁 당시의 장로교 창시자 존 칼빈(1509-1564)에 의해 소위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결과, 성도라는 이름의 많은 사람들이 성경, 즉 하나님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즉 문자적으로 읽고 읽은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비유적,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개혁주의 신학에 따른 무천년설이라는 그 주장이 혹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짓는 일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언젠가 언 듯 들더군요.    그날 이후 무천년설, 즉 1)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이다, 2)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의 유죄 또는 무죄를 판단(짧은 밑천으로 감히 ^^)하는 작업에 착수했던바, 그 판단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우선, 1)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이라는 그 주장은 멀쩡한(^^) 천년왕국을 다른 것으로 바꿔 버림으로써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의 전체적 구성을 뒤틀리게 하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게 만든 그 자체로써 일단 ‘죄’ 짓는 일임이 틀림없다 할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계시록 20장 2절부터 7절까지의 6회에 걸쳐 구체적인 내용으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동시에, 엉뚱하게도, 다른 것, 즉 교회 시대가 그것이라고 한 결과...애당초 놀랍도록 완벽 정교하게 짜맞춰져 있던 성경의 전체적 구성은 뒤틀려져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어서, 2)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그 주장의 경우, 성경 말씀의 단순 이해 또는 해석 차원을 넘어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 백성, 즉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 차원에서 살펴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주하나님께서는 여러 성경 말씀 구절들을 통하여,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예의 몇 개 말씀 구절들을 짚어봤습니다.   우선 이사야서 49장 14, 15 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시온은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버리셨고 내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도다.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그리고...예레미야서 31장 35, 36, 37절 말씀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는 낮에 해를 빛으로 주고 밤에 빛을 내도록 달과 별들의 규례들을 주며 바다의 파도가 울부짖을 때에 바다를 나누나니 군대들의 주가 그의 이름이니라. 만일 그 규례들이 내 앞에서 떠나 없어진다면 그때는 이스라엘의 씨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민족이 되지 못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일 사람이 위로 하늘을 잴 수 있고 아래로 땅의 기초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나 또한 이스라엘의 모든 씨가 행한 모든 것으로 인해 그들을 버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위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말씀 구절들에서 강력 분출되는 하나님 전능자의 신실하심이, 영원 불변의 뜨거운 Faith·ful·ness 가 정녕 짜릿한 전율로 마음(heart)에 와닿는 사람만이,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 아닐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늘을 잴 수 있고 땅의 기초들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 빼고.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을 향한 절대 불변의 하나님 사랑이, 읽는 사람 눈물 머금게 할 정도의 절절한 사랑이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상에만 해도 수~~~없이 많은 구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 점까지 생각할 때면, 앞서 예를 든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말씀 구절들이 주는 짜릿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곤 했답니다.   자, 그렇다면 말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되는 거죠? 영원에 계시는 주 하나님 전능자의 신실하심을,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절대 불변의 참된 신실하심을 감히 부정하는 일임이 명백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인 동시에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 즉 개혁주의 무천년설은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의 전체적 구성을 뒤틀리게 하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게 만든 ‘죄’는 물론,    주 하나님 전능자의 절대 불변 신실하심을, 그 초월적 차원의 성품을 감히 부정하는 ‘큰 죄’ 짓는 일일 것이라는 판단 내려 봤습니다.             ( 끝 )    
2026-02-03 21:06:29 | 최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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