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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소리를 듣는데, 왜 기분이 나쁠까?   옳은 말, 바른 말을 해 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됐고, 너나 잘 하세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왜 그럴까? 아래 3구절은 모두 징계에 관한 내용이다. 3구절 중,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기분 나쁜 구절은 어느 것일까?   ⓵‘보라,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사람은 행복하니 그러므로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욥기 5장 17절)   ⓶‘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고 그분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것에 싫증을 내지 말라. 주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바로잡아 주시되 마치 아버지가 자기가 기뻐하는 아들을 바로잡아 주는 것같이 하시느니라.’(잠언 3장 11절~12절)   ⓷‘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대우하듯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가 무슨 아들이냐? 모두가 징계 받는데 참여하므로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는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2장 7절~8절)   정답은 ⓵번이다. ⓵번 구절은, 욥기 5장에서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가 욥에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를 촉구하면서 한 말이다. 엘리바스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욥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염장을 지르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욥은 열 명의 자녀들을 잃었고, 모든 재산을 잃었고, 지금 현재는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심한 종기가 나서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내 생명을 거두어 가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욥에게, 또 욥과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까?   A라는 의사가 한 암환자에게 수술을 받으라고 권했는데, “이대로 죽겠다.”며 수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B의사가 뭐라고 했더니 암수술을 받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A의사가 B의사에게 물어봤다.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수술을 받지 않으면 자식들이 고생합니다.” 라고 하니 수술에 응했다는 것이다. 대화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했을 때 추스르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 다르다. 특히 감정을 수습하는데 걸리는 시간들이 다르다. 천차만별이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털어 버려라, 예수 믿는 사람이 그 모양이니?” 라고 하면 인간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다. 안 다고 섣불리 얘기 했다가 그게 그 사람한테는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지금 상태나 상황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좋은 얘기를 했는데도 마음이 상할 수도 있고, 심지어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엘리바스의 말을 들은 욥은 “내 고통을 철저히 달아 보고 내 재난을 저울 위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각자의 고통은 비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암환자가 감기환자에게 고통은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감기환자가 암환자에게 고통은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상대방의 기쁨과 슬픔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로마서를 참고하면 좋겠다. 상황에도 맞지 않는 백 마디 말보다는 그냥 함께 기뻐하고, 그냥 함께 슬퍼하라고 한다. 욥의 세 친구들도 처음에 일주일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슬픔을 같이 했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로마서 12장 15절)
2021-10-11 10:28:15 | 이규환
샬롬 최근에 창3:5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함께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어 글을 씁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믿음의 차이가  생기고 예정설에 대한 입장까지 달라지게 될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추후에는 예정설까지 어떻게 연계가 되는지를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이번주 금요모임부터 칼빈주의에 대해서 목사님께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연관해서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Q. 창세기 3:5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이 말씀의 바른 해석은 무엇입니까?   1 먼저, 이 구절을 흠정역과 현대역본으로 비교해서 보겠습니다. [KJV흠정역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KJV 창3:5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개역한글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공동번역 창3:5] 그 나무 열매를 따 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표준새번역 창3:5]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NIV,RSV 창3:5] "For God knows that when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현대역본은 이 구절을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번역이 이렇게 되어있다 보니, 이 구절을 근거로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에 인류에게 죄가 세상에 들어 왔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왜 두셨냐?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인간은 하나님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 하나님이 선악과를 두셨으며, 그것을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를 확인하는 표시로 매개체로 활용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심지어 영지주의 계열에서는 에덴동산의 뱀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수 있다는 각성을 일으켜준 진정한 하나님의 사도라고 해석할 정도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 모두가 현대 역본의 번역의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2 동일한 구절을 KJB흠정역에서는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ye shall be as gods)...”라고 번역했습니다. 자! 그럼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신들(gods)”의 성경적 용례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욥1:6, 욥38:7)이라 불리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된(created) 자들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낳으신(begotten) 분입니다. 즉, 창조물인 천사들을 신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②[시82:1] 하나님께서 강한 자들의 회중 안에서 서시며 신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는도다. (he judgeth among the gods.) [요10:34] 너희 율법에 ,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하였노라...(Ye are gods?) 이런 구절에 언급된 “신들”은 이스라엘의 레위 계열의 재판관들을 말합니다( 출4:16, 출22:28)   ③ [시86:8, 시97:7]에서 나오는 “신들”은 신이라 불리는 거짓된 우상들을 뜻합니다.   ④ 노아의 시대에 치리자와 재판관이 되었던 “하나님의 아들들”(창6:4)(즉 처음 지위를 버리고 타락한 천사들)도 있습니다.    ⑤ [요1:1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영적 지위를 얻게 되어, 부활때에 우리 몸이 그리스도처럼 변화되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입으신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엡1:18-20, 요일3:1-3) 다시 말해 성도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3 이렇게 “신들”과 관련된 성경 용례중에 창3:5에 나오는 “신들”의 의미는 우상, 거짓 신들, 이스라엘 레위계열의 재판관, 타락한 천사들이 아닌 문맥상 천사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게 타당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천사에 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별히 [히2:9]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 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는 구절이 있고, 예수님께서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다(히2:16)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볼수 있는건 인간의 몸은 천사보다 여러 가지 능력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고 특별히 천사는 무한한 생명을 지닌 존재이지만,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점입니다.   이런 배경지식을 갖고, 뱀이 하와를 유혹했던 상황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된다”는 뱀의 말이 하와의 마음속에서 ‘선악과를 먹으면 천사들처럼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될수 있겠구나.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품게 했을 것이고, 이제 뱀에 말에 속아(딤전2:14) 선악과를 먹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하와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발휘해 불순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준 명령(창2:17)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이 한 가지였고 그들은 그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창3:11, 17). "...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창 3:11)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는 그것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하고 말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창3:17).   다시말해 첫 사람의 죄는 현대역본에 번역된 것처럼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교만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발휘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롬5:19] 한 사람(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   4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악과에 대한 선택의 여지 없이 다시말해 자유의지가 없는 존재로 창조해 버리셨다면, 인간은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자유 의지를 발휘해 하나님을 향한 사랑, 두려움, 신뢰를 보이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의 매개체로 선악과를 두셨으나, ‘선악과를 먹게 되면 신들과(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난 점이 많은 천사들) 같이 될 것이다’는 뱀의 거짓말에 속아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범죄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첫 사람 아담이 자유의지를 발휘해 범죄의 길을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자유의지를 발휘해  하나님의 긍휼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나오는 길을 여전히 열어 두셨습니다. (요3:16) [창3:5] 구절을 공부하면서 이런 부분들까지 같이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샬롬          
2021-10-09 10:55:08 | 오광일
 나는 가끔 우리가 한 가족을 이룬 이 땅 위에서 부모 자식 아내 남편으로 살아가다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살아갈 때 그 때는 그 관계성이 형제자매의 한 세대로 국한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시공을 초월한 모든 그리스도들이 한 형제지매의 관계를 가진 한 세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씀을 기억할 때면 "연극"을 떠올리게 된다. 연극에는 한 극작가가 있고 그 연극을 연출하는 감독이 있고 무대가 있고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 우리 인생이 연극과 비슷하다고 할 때 우리 인생이라는 큰 줄거리를 세우고 세상이라는 삶의 무대를 마련하고 연출해 내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세상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어떤 의미에서 배우인 우리의 삶이 있다.  보통 연극에서 우리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접하고 거거서 각자 맡은 역할을 열연하는 배우를 보게 된다.슬픈 스토리도 있고 기쁜 스토리도 있으며 치열한 대립구도 속에서 긴박감을 더해주는 연기도 보게 된다. 하지만 한 편의 연극이 끝나면 거기 출연했던 배우들은 극 중의 관계성으로부터는 완전히 자유하다. 더 이상 극 중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남편이 아니다. 남아 있다면 그 연극을 하며 가졌던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면서 회상하는 특별한 유대관계를 가질 것이다. 그 관계성의 공유는 그 연극을 함께했던 배우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극작가가 되신 우리의 현실적인 삶의 연극에 있어서 말 그대로의 연극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배우들 각자가 누리는 스토리텔링의 자유가 아닌가 한다. 연극에서 배우는 자기의 말로 연기할 수 없다. 오직 작가가 써 준대로 외어서 해야만 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펼쳐놓으신 연극의 장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배우가 스토리텔러다. 완전 자유로운 배우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제 일이 생각난다.오랜만에 네 친구가 만났다. 모처럼 느긋하게 담소를 즐기면서 각자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특히 치매를 앓고 계시는 아버지를 돌보는 친구가 안하무인격으로 자녀를 막 대하는 아버지가 너무 싫다고, 아버지 때문에 왜 자기가 이 나이에까지 자기가 누려야 할 행복을 빼앗겨야 하느냐고 탄식조로 토로했다. 그 친구의 어릴 적 삶을 들어 익히 아는 우리로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왜 우리가 부모에게 무조건 효도해야 하느냐, 그건 마땅히 해야 하는 게 아니다.부모다운 부모가 아니라면 냉담하게 대한다 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뭐 우리나라가 성리학사상에 너무 쩔어 있어 그렇다 저렇다 하면서 논리를 댔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법"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 아 이래서 하나님 말씀이 중요하구나!"를 실감했다. 사실 두 친구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어머니들을 잘 모셨기에 처음에는 그 상황만 생각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만일 삶의 어려움만 따지면서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무시하고 각자 좋을 대로 판단하고 행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하니 그건 바로 무법천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요 오늘날 빈번한 패륜의 죄들이 아무 죄책감 없이 벌어질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하나님의 보상"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하늘에 쌓아두실 보상을 믿지 못하고 이 땅에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탓이 아닐까?  결국 우리 인생은 이렇게 마련해 주신 연극의 장인 이 세상에서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 다시 말해 어떤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가야 할지 늘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우리는 이 하루 또 어떤 스토리텔링을 만들며 살게 될까?
2021-10-04 12:49:23 | 박혜영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며칠 전에 우연히 한 간증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일반계시(창조세상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린 아들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증언하는 내용이었다. 욥기 42장 5절을 인용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고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길 원하는 성도들과는 사뭇 다른 증언이었다.  일반계시 시편 8편 1절에 ‘오 주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뛰어나신지요! 주께서 주의 영광을 하늘들 위에 두셨나이다.’ 3절에 ‘주의 하늘들 곧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작품과 주께서 정하신 달과 별들을 내가 깊이 생각해 보오니’   시편 19편 1절~6절에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이니 그것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말이나 언어가 없도다. 그것들의 줄이 온 땅에 두루 나갔고 그것들이 말들이 세상 끝까지 나갔도다. 그분께서 해를 위에 그것들 안에 장막을 세우셨으므로 해는 자기 침소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기를 기뻐하는 힘센 자 같도다. 해가 하늘 끝에서부터 나아가며 그것의 순환회로는 하늘 끝들까지 이르나니 해의 열기에서 숨을 것이 없도다.   로마서 1장 19절~20절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욥의 고백 욥기는 일반계시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욥기 38장 4절에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41장 리워야단을 보여주기까지 약 60여 질문을 하신다. 이에 한 마디도 답하지 못한 욥이 42장 5절에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께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고 고백한다. 창조세계가 온통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께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장 5절) 
2021-09-27 17:25:48 | 이규환
제단을 쌓을 때 연장을  사용하지 않고 돌모양 그대로 쌓지요. 반듯하게 다듬어 쌓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삼손은 분명코 나사르 인으로서는 어긋난 행동을 했지요. 요나도 자기 생각으로 다시스로 가려고  했구요. 그러한 불순종까지도 사용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죠.  그러할지라도 순종하는 자녀가 더 예쁘고 사랑스럽지요.      
2021-09-07 13:25:14 | 이수영
좋은글 감사합니다~ 삼손을 보면 궁극에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 나가지만 순종하지 않음으로, 육신의 본성에 치우쳐 삶으로써 좀더 아름다운 간증을 보여 줄 수 있음에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 하는 모습을 볼때 현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 탐구하시고 귀한 글 올려 주셔서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9-07 12:05:27 | 김세라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경구절을 자세히 살피는 꼼꼼함이 아니면 참 찾기 어려운 내용인 거 같습니다. 좋은 내용을 공유해 주시니 덩달아 성경에 대한 이해가 높아집니다. '좋아요'라도 한번 눌러드리고 싶은데 버튼이 없네요~! 얼굴 뵙기 쉽지 않은데 여기서라도 자주 뵈요~! 감사합니다!
2021-09-07 10:18:46 | 이남규
신앙의 패러독스   사사기 13장부터 4개의 장에 걸쳐 삼손 이야기가 나온다. 삼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나사르 사람으로 택함을 받는다.   1. 태에서부터 나사르 사람이 된 삼손 사사기 13장 3절~5절에 ‘{주}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그녀에게 이르되, 이제 보라, 네가 수태하지 못하므로 낳지 못하였으나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러므로 이제 원하건대 주의하여 포도즙과 독주를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민수기 6장 2절부터 8절에는 나사르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나온다. ‘남자나 여자나 자기를 구별하여 나사르 사람의 서원을 하고 자기를 구별하여 주께 드리거든 그는 포도즙과 독주로부터 자기를 구별하고 포도즙의 식초나 독주의 식초를 마시지 말며 어떤 포도즙도 마시지 말고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라. 그는 자기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씨에서부터 껍질에 이르기까지 먹지 말며 자기를 구별하기 위하여 서원하는 모든 날 동안 자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라. 그가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날들이 찰 때까지 그는 거룩할 것이요, 자기 머리털을 자라게 할 것이며,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에는 어떤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 것이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들로 인하여 자기를 부정한 자로 만들지 말지니 이는 그의 하나님의 거룩히 구분하심이 그의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라. 자기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주}께 거룩한 자니라.’   2. 이해할 수 없는 삼손의 행동 태에서부터 나사르 사람이 되고 평생동안 나사르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삼손의 행동을 보면 나사르 사람과는 완전히 반대다. 사사기 13장 25절에는 ‘{주}의 영께서 때때로 그들 감동시키기 시작하셨더라.’ 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삼손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은 자라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먼저, 이방 사람인 블레셋 사람에게서 아내를 취한다. 그 이유가 그녀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기쁜 일을 한 것이다. 둘째, 사자를 찢어 죽인다. 어떤 시체에도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나사르 사람이 오히려 시체를 만든다. 심지어 사자 사체에서 나오는 꿀을 먹는다. 셋째, 친구들에게 말도 안 되는 수수께끼를 내고 분란을 만든다. 넷째, 아스글론 사람 중에서 서른 명을 죽이고 그들을 노략한다. 다섯째, 아내를 찾아가 침실에 들어갈 것을 요구하고, 거절을 당하자 여우 삼백 마리를 풀어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과 포도원과 올리브를 태우게 한다.   3. 신앙의 패러독스 사사기 14장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구원하기로 한 재판관(사사)를 세우시는데, 우리가 보기에 좀 더 완벽한 사람을 세우시지, 어떻게 이렇게 부족한 사람,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을 세우셨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질문에서 멈추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사기 14장 4절에 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에게서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고 또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더라.’ 이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삼손의 충동적인 성품일지라도 하나님은 계획에 따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패러독스가 아닐까? 하나님이 그 당시 상황과 문화를 고려해서 그 방법을 쓰신 것이지, 결코 악한 방법이나 악한 삶을 권장하거나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021-09-06 17:44:03 | 이규환
아프가니스탄과 기드온의 300 용사 연일 외신에서 쏟아져 나오는 보도 중에 Top은 아프가니스탄이다. 카불 국제공항을 빠져나가고자 하는 국민들의 러시로 인해 공항이 아수라장이 되고, 공항을 이륙한 수송기 바퀴에 매달려 있다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보도도 있고,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이미 다른 나라로 도망가고 없고, 국민들은 탈레반 정권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지 않는 전쟁을 미국이 대신 싸워 줄 수 없다”고 했고,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한국도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프간과 같은 운명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정규군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사사기 7장에 나오는 기드온의 3백 용사가 대비된다   사사기 7장에는 미디안 족속과 연합한 13만 5천 명과 이스라엘 백성 3만 2천 명이 전쟁을 하는 상황이 나온다. 사사기 7장 2절에는 ‘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와 함께한 백성이 너무 많으므로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족속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이 나를 대적하고 자기를 치켜세우며 말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염려하노라. 사사기 7장 3절에 ‘그러므로 이제 가서 백성의 귀에 선포하여 말하기를, 누구든지 두렵고 무서운 자는 길르앗 산에서 일찍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백성 중에서 돌아간 자가 2만 2천 명이요, 남은 자가 1만 명이더라.’   하나님이 1만 명을 놓고 테스트를 한다. 물가에 데리고 가서 물을 어떻게 먹는지를 본다. 사주경계(사방에 적이 오는지를 감시하는 것)를 하면서 물을 먹는 사람들이 300명이었다. 나머지 9천 7백 명은 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처박고 물을 마셨다. 기드온은 이 3백 명으로 13만 명과 싸워 승리를 거둔다. 물론 이 싸움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자 하는 의지와 태도가 중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싸울 의지가 없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텔레반과 싸움이 되겠는가? 7만 명의 탈레반이 4천 만명의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장악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과 협상을 하고 철수했다. 이것은 과거 월남에서 일어났던 것과 복사판이다. 미국은 월남에서 철수할 때, 사이공 정부를 배제하고 월맹과 협정을 맺고 철수했었다. 한국도 이와 유사하다. 대한민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미국이 직접 협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대한민국 국군은 지금 어떤가? 국방장관이 일곱 번이나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만큼 엉망인 국군의 기강이 걱정스럽다. 내년 선거에서 한국판 탈레반 정권을 또 한 번 만들어낸다면 서울은 머지않아 카불이 되고 말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수송기에 탑승하는 모습과 수송기 내부의 모습>
2021-08-18 13:11:49 | 이규환
자매님~ 책 추천 감사해요. 더운 여름을 넘기려 추리소설 역사소설에 시간을 쓰고 있다보니 오늘은 가만히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차게 느껴지네요. 어느새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오네요. 고마워요^^    
2021-08-16 09:25:13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