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6264개
"창조"  제 개인적으로도 이 주제에 클릭이 되어 하나님께서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눈의 결정체와 모기의 얼굴을 대면하며 우리가 보는 세상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네요.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자기가 보는것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자기가 듣는것이 세상 다인줄 알고 있으니 하나님 께서 보시면 참 웃으실 일입니다.    
2021-05-31 11:40:23 | 최지나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알고 내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지난주일 예배 중 김필제형제의 "은혜" 라는 찬양을 들으며 문득 생각해 보았다. 한 청년의 진심어린 찬양에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더욱 은혜가 되는 것은 그 형제가 나를 알고 내가 그 형제를 안다는 것이였다. 가족처럼 깊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얼굴로 알고 이름으로도 안다. 그 정도로도 그 형제의 찬양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찬양보다 더욱 깊은 은혜가 되었다. 나만 은혜받는 것이 아쉬워서 아는 분들에게 공유하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한 얼마나 자랑하고 있는가? 찬양이란 말 자체가 자랑이라는 말과 통한다고 한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아는 만큼 사랑하고 또한 자랑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것이 그 흔하게 사용하는 전도가 아닌가? 내안에 넘쳐나는 하나님에 대한 앎이 없는데 무엇이 나오겠는가? 하나님에 대한 앎이 넘쳐 흘러넘쳐서 삶에 묻어 날 때 그것이 전도가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나의 머리털 까지도 세고 알고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이 세상 만물을 “창조” 하신 분이시다.   와!!!   이보다 든든한 “백”이 있을까? 하니님께서는 처음부터 나를 아신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깊이 알고 자랑하고 있는가? 인 것이다. 성경을 읽는 이유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 모든 자연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려드리는 것이 아닐까?   “모르면 잡초 알면 약초” 요새 들나물과 산나물을 뜯으러 다닌다. 그동안 무심코 풀로만 보아오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이름을 알아가며 먹는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또한 약효까지 있다니 참 놀라울 따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은 널려져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누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앎에 대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이고 아는 만큼 닮아가고 아는 만큼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얼마나 아는가?    
2021-05-29 14:05:49 | 최지나
창조가 잘 안 믿어져요! 요즘 형제, 자매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 작년 3월 1일에 간증하기로 일정이 잡혔었는데, 요놈의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연기되었었고, 그 후로 기회가 없었다. 그때 준비했던 내용 일부를 공유하고자 한다.   1. 창조를 믿기까지의 과정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쳤던 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6일 창조였다. 한 마디로 황당 그 자체였다. 말씀으로 창조를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성경 창세기를 아무리 읽어도 풀리지 않았다. 혹시 4대 복음서를 읽으면 도움이 될까 하고 복음서를 읽었지만, 오히려 더 답답해졌다. 어떻게 물고기 2개와 빵 5개로 5천 명을 먹일 수 있는가? 어떻게 죽은 지 3일이 지난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가 있는가? 이렇게 풀리지 않은 숙제를 해결하려고 약 1년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안 믿어질까? 미칠 지경이었다. 엄청 고민하던 중에 창조과학회를 알게 되었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창조과학회에 올라온 동영상이 50개는 되는 것 같았다. 1개당 분량이 2시간 정도였다. 하루에 1편을 보면 50일이 걸리는 분량이었다. 인내하면서 한 편씩 보기 시작했다. 처음 본 동영상은 과학의 원리, 법칙과 이론의 차이점, 열역학 제1 법칙, 제2 법칙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처음 몇 편을 보면서 “이것들이 창조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괜히 시간만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창조가 믿어져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데…   창조과학회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만 두려고 하다가, 이왕 보기 시작했으니까 몇 편만 더 보고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보던 중에, 아래와 같은 눈의 모습을 확대한 사진과 모기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두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머리를 쇠망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빨려 들어가기 가기 시작했다.   <무생물 : 겨울에 내리는 눈의 모습>   <생물 : 모기의 얼굴과 머리깃 모습>   무생물인 눈의 모습은 너무나 찬란했다. 생물인 모기의 얼굴 모습은 너무나 정교했다. 이것들이 저절로 생겼을까? 어느 누가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건 필시 누군가가 개입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진 두 장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지적 설계자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2. 창조가 믿어지니까 풀리는 것들 창조가 믿어지니까 4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들이 바로 이해가 되고, 이것을 행하는 일이 너무 쉬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부활이 거부감 없이 믿어지고, 휴거가 소망이 되었다. 또한 자연세계가 위대하게 보였고, 해와 달은 물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창조가 믿어지니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신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창조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아는데 필수라는 것이 그 당시 생각이었다.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요한복음 1장 3절)
2021-05-25 18:23:05 | 이규환
신약시대라 감사한 것은 오직 말씀 외에 바라볼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인성은 죄성이 가득한지라 주님을 믿고도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요! 어떤 행위이든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서  타버리지 않을지! 주님 앞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겠어요.
2021-05-24 09:00:16 | 이수영
그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자매님의 하나님에 대한 신실하심을 보고계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던 하나님  따님들이 엄마의 간절한 소원도 아시고 계실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때에 따님들의 마음도 열어주시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이루어 가실것을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결혼을 앞둔 큰따님께서 엄마의 마음을 잘 아시고 이해하시리라 여깁니다. 아름다운 고백의 시 감사합니다.
2021-05-23 20:04:32 | 김경애
“오늘 아침에는 차가 안와서 20분 기다렸어요. 예전 직장은 걸어서 10분이었는데 지금은 버스타고 전철타고 한 시간 걸려요. 예전 직장이 꿀이었어요.”   지난 겨울 몹시 추웠던 어느날, 오늘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퇴근을 한 큰 아이의 말입니다. 공무원인 큰 아이가 새로 발령을 받았는데 아마도 전철역 가는 시내버스가 늦게 온 모양입니다. 다음날,   “엄마가 전철역까지 태워다 줄까?”   라고 했더니 전날에 추웠던 기억이 생각났는지 너무 좋다고 해서 내 출근 시간을 좀 늦추고 아이를 전철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카톡으로 고맙다는 인사가 날아왔습니다. 나는 날씨가 추운 것도 그렇고 아이 좋아하는 모습도 좋고 해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시간이 될 때 전철역까지 태워다 줄게. 그런데 차비를 내야해~ 차비는 엄마가 날마다 보낸 묵상말씀을 잘 읽는거야. 어때?”   아이가 곧바로 좋다고 해서 나도 내심 쾌재를 부르고 전철역까지 태워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차에는 항상 극동방송을 틀어놓아서 아이랑 같이 타는 그 시간에도 변함없이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아이가 타고 내리는 그 시간대에 모교회 목사님의 큐티 말씀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듣지않고 차에서 계속 이런저런 얘기만 하더니 언젠가부터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듣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10분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는 즉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그리고 이 말씀이 생각나서 즉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우리 교회가 논현동에 있을 때에는 아이랑 같이 교회에 다니기도 했는데 공무원 연수 받고 직장 다니면서부터는 나오지를 않아 마음속으로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행16:31)‘ 말씀만을 붙잡고 아이들의 구원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었는데 응답을 받은 것 같아 너무 기뻤습니다.   며칠 전에는 변함없이 아침에 방송을 들으며 태워다주는데 제가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니 “엄마~ 들어보자.” 하며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습니다. 감사의 순간이었죠. 말씀과 간증이 같이 나와서인지 방송을 들은 아이가 때로 저에게 말하기를, 방송에 나오는 이런 간증이 일어날 수 있냐고 묻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교회에 다닐 때 저에게 묻기를 언제까지 교회를 다녀야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살까지는 다녀야하고 20살 이후부터는 성인이니 종교의 자유를 주겠다고 타협했었습니다. 20살이 훌쩍 넘은 아이들은 이제 교회에 관한 얘기를 하면 그 말의 약속을 지키라 하고, 저는 그 말을 했던 것을 땅을 치며 후회를 하곤 했습니다.   영혼 구원.... 특히 자녀들의 영혼 구원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 전쟁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심을 굳게 믿으며 다시는 물러서지 않으리라 나는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큰 아이가 차비로 내고 있는 묵상 말씀을 봤다는 확인 문자 [지불!]을 보고, 우리가 함께 할 그 날 그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시] 얼마나 좋을까!  https://youtu.be/vfDOyc7FI-M     얼마나 좋을까! /이정자   내가 가는 이 길을 너와 함께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길은 완전하시니   내가 듣는 이 말씀을 너와 함께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계시니   내가 부르는 이 찬송을 너와 함께 부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니   내가 하는 이 기도를 너와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호흡이니   내가 가는 이 길을 너와 함께 간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그분의 길은 생명의 길이니 그분의 길은 부활의 길이니  
2021-05-19 23:23:31 | 이정자
밎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위기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알수있습니다. 얼마나 믿음이 없었는지를...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견고해지듯이 말씀으로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려야겠습니다. 어떠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않는 견고함에 서도록 부지런히 뿌리를 내리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2021-05-10 20:38:28 | 김경애
맞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깊이 생각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 두려움을 느낄 때 생긴다는 말씀에 아멘입니다. 문제는 먼저 조용히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데 그게 영 쉽지 않습니다. 유튜브 볼 시간은 넘쳐나는데 성경 읽을 시간은 만들기 어려운 이 부끄러운 현실~~. 그래도 이 글 읽었으니까 오늘 저녁에 또 도전합니다.
2021-05-10 16:57:14 | 이남규
위기 때, 본색이 드러난다!   1. 바닷가에 진을 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 출애굽기 14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막 탈출하여 바닷가에 진을 치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경우 배수의 진을 쳤다고 말한다. 바닷가에 진을 치는 것은 오늘날 군대 상식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추격하는 이집트의 파라오와 그의 온 군대로 인하여 영예를 얻고 내가 {주}인 줄을 이집트 사람들이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2.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이스라엘 자손들 이집트 사람들이 추격하여 바닷가에 진을 친 이스라엘을 따라잡게 되자, 이스라엘 자손은 심히 두려워하여 {주}께 부르짖으며, 모세에게 이르되, “이집트에 무덤이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데리고 나와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고 나와 이같이 우리를 대하느냐?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았으리라.”라며, 믿음 없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3. 모세의 대응방식 모세는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백성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주께서 너희에게 보여 주실 그분의 구원을 보라. 다시는 너희가 오늘 본 이집트 사람들을 영원히 또 보지 아니하리라.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조용히 있을지니라.” 하니라. 모세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한다. 모세는 보이는 위기 앞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4. 몇 가지 질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기 바로 전에 하나님의 10가지의 재앙을 눈으로 직접 봤다. 재앙도 기적이다. 기적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과 기적을 보고도 못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 다를까? 오늘날 우리에게 이와 같은 진퇴양난의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드러낼까? 아니, 나에게 닥치면 나는 모습을 보일까? 결코 이스라엘 백성보다 낫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더 많은 기적을 봐야 할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에게,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왕 앞에 나간 에스더에게 물어보면 대답해 줄까?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로마서 10장 17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히브리서 11장 6절)
2021-05-10 15:05:41 | 이규환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던 이스라엘의 치욕     블레셋 사람들은 120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다. 다윗 때에 가서 비로소 섬멸된다. 사사기 13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준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무엘상 4장에는 이스라엘의 슬프고도 치욕스러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에벤에셀에 진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을 친다.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4천 명이 죽는다.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4천 명이 죽게 되자, 장로들이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치셨느냐?”고 물은 후, 그 대책으로 하나님의 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가자고 한다. 실로에 있는 주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온다.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 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치는데, 이 외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정신무장을 하고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된다. 이어서 벌어진 싸움에서 보병 3만 명이 죽고,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고, 언약궤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다. 승전보를 기다리던 엘리는 군대 3만 명이 죽었고, 두 아들이 죽었고, 언약궤도 빼앗겼다는 비보를 듣고 의자에서 넘어져 죽는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이러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조산하게 된다. 아들을 낳았음에도 즐거움이나 기쁨이 없었다. 여자의 가장 축복인 아들을 낳았지만, 하나도 즐겁지도 아니하고 기쁘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며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고 곧바로 세상을 떠난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는 악을 행함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써서 이스라엘을 회개하려 하시는데, 회개는커녕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언약궤를 활용하려다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치욕을 당하게 된 것이다. 언약궤는 나무로 만든 상자이다. 이 상자가 무슨 신통력이 있다는 것인가? 그 안에 있는 말씀을 보지 않고 외양만을 중시하는 종교적 열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언약궤를 빼앗기는 사건은 하나님의 뜻을 어길 때 어떤 수치를 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던 이스라엘이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움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한 것이나, 오늘날 교회가 무참히 조롱당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일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세상에 나가서 말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인이면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킹제임스성경만 손에 들면 만사가 잘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신학원만 나오면 만사가 잘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빼앗긴 언약궤가 신앙생활을 되돌아 보게 한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장 4절)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장 28절)
2021-04-30 12:12:42 | 이규환